RC.033.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기 전과 낳을 때와 낳은 후에도 평생 동정녀였다’
SL.RC.033 | 천주교의 교리와 신앙 속 진리와 오류 100선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기 전과 낳을 때와 낳은 후에도 평생 동정녀였다’ - 주님의 동정녀 탄생과 마리아의 평생 동정은 같은 신앙의 진리인가?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기 전과 낳을 때와 낳은 후에도 평생 동정녀였다.’ 이것은 천주교가 가르치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終身童貞, Perpetual Virginity of Mary)에 관한 교리입니다. 천주교는 마리아가 남자와 관계없이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했다는 사실을 믿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출산하는 순간에도 그의 동정성이 보존되었으며, 출산 이후에도 요셉과 부부관계를 맺지 않고 평생 동정녀로 살았다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영원한 동정녀’라는 뜻의 그리스어 ‘아이파르테노스’(Aeiparthenos)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주님의 성육신이 전적으로 하느님의 역사였으며, 마리아의 몸과 삶이 그 특별한 소명을 위하여 온전히 봉헌되었다는 신앙적 이해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성경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할 때 동정녀였다고 분명히 증언하지만, 출산하는 순간의 신체적 상태와 그 이후의 결혼생활에 대해서도 같은 정도로 분명하게 가르칠까요?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형제들과 자매들은 누구였을까요? 무엇보다 마리아의 평생 동정이 주님의 신성과 구속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진리일까요? 이러한 질문은 단순히 마리아와 요셉의 사생활에 관한 호기심이 아닙니다. 성경이 직접 증언하는 사실과 교회가 후대에 확정한 교리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 그리고 동정과 결혼을 어떤 영적 질서 안에서 이해해야 하는지를 묻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번 명제를 검토하려면 천주교의 공식 가르침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성경의 증언과 스베덴보리의 성육신론 및 상응의 가르침을 차례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천주교의 공식 가르침은 ‘가톨릭교회 교리서’(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496–507항에 나타납니다. 496항은 예수님께서 인간 남성의 개입 없이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셨다고 설명합니다. 499항은 마리아의 동정성이 예수님을 출산하는 순간에도 보존되었다고 가르치며, 500항은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형제자매들이 마리아가 낳은 다른 자녀들이 아니라 친족들이었다고 해석합니다. 501항은 예수님이 마리아의 유일한 아들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평생 동정은 세 가지 주장으로 구별됩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잉태하고 출산하기 전까지의 동정(virginitas ante partum)이고, 둘째는 예수님을 출산하는 과정에서도 보존된 동정(virginitas in partu)이며, 셋째는 예수님을 낳은 이후에도 지속된 동정(virginitas post partum)입니다. 이 세 가지는 하나의 교리 안에 포함되어 있지만, 성경적 근거와 신학적 의미가 동일하지 않습니다. 특히 첫째는 주님의 신적 기원과 직접 연결되는 반면, 둘째와 셋째는 마리아의 출산 과정과 이후 삶에 관한 추가적인 주장입니다. 천주교는 세 가지 모두를 신앙의 진리로 고백하지만, 이를 검토하는 우리는 각각의 근거와 의미를 구별해야 합니다. 또한 천주교가 평생 동정을 단순한 신체적 순결 문제가 아니라, 마리아의 믿음과 주님께 대한 전적 헌신의 표지로 이해한다는 점도 인정해야 합니다. 실제로 교리서 506항은 마리아의 동정성을 의심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믿음과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바친 상태의 표지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 교리를 단순히 신체적인 동정 여부에 집착하는 가르침으로만 규정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출산 전 동정에 관해서는 성경의 증언이 매우 분명합니다. 마1:18은 마리아와 요셉이 함께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기록합니다. 마1:20에서 천사는 요셉에게 마리아에게 잉태된 자가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눅1:34에서 마리아는 자신이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느냐고 묻고, 눅1:35에서 천사는 성령이 그에게 임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그를 덮을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씀들은 예수님의 잉태가 일반적인 인간의 출생과 근본적으로 달랐음을 증언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주님에 관한 교리’(Doctrine of the Lord, DL, 1763) DL.48과 ‘참된 기독교’(True Christian Religion, TCR, 1771) TCR.92에서 이러한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의 특별한 질서를 설명합니다. 주님의 영혼은 처음부터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온 신성 자체였으며, 마리아는 주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위한 자연적 인성을 제공한 어머니였습니다. 주님은 인간 아버지에게서 생명을 받으신 분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신적 생명을 받으시고, 마리아에게서는 자연적 인성을 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동정녀 탄생은 단순히 놀라운 기적이나 마리아의 순결을 보여 주기 위한 사건이 아닙니다. 주님의 신적 기원과 직접 연결되는 성육신의 본질적 진리입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이 사실을 부정하면 주님의 출생을 일반 인간의 출생과 구별하는 중요한 근거를 잃게 됩니다. 따라서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기 전까지 동정녀였다는 사실은 성경과 스베덴보리의 가르침이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출산하는 순간에도 마리아의 신체적 동정성이 온전히 보존되었다는 두 번째 주장은 별도로 살펴야 합니다. 천주교는 주님의 탄생이 마리아의 동정성을 손상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거룩하게 했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출생이 일반적 출산과 달랐다는 특별한 신학적 이해입니다. 그렇다고 천주교가 주님께서 실제 인간의 몸을 취하지 않으셨다거나 출생 자체가 단순한 환상이었다고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천주교는 주님께서 참된 인간으로 태어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출생이 마리아의 동정성을 훼손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서 실제로 태어나셨다는 사실을 증언할 뿐, 출산 순간의 구체적인 신체적 과정이나 마리아의 신체 상태가 어떻게 유지되었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눅2:7은 마리아가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다고 기록하지만, 그 출산이 일반적인 신체적 출산과 어떤 점에서 달랐는지는 밝히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 역시 주님의 동정녀 잉태와 신적 기원을 중요하게 설명하지만, 확인되는 주요 직접 본문만으로는 마리아가 출산하는 순간에 어떤 신체적 상태를 유지했는지에 관한 별도의 교리를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출산 중 동정이 반드시 거짓이었다고 단정할 근거도 충분하지 않지만, 이를 주님의 성육신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신적 진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할 직접적인 근거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실제로 가르치는 내용과 교회가 신학적으로 확정한 내용을 구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세 번째 주장인 출산 후의 평생 동정은 성경 해석에서 더욱 직접적인 논쟁을 일으킵니다. 마13:55-56에서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그분의 형제들인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의 이름을 언급하고 자매들도 있다고 말합니다. 막6:3에도 같은 취지의 기록이 나타나며, 막3:31-35에서는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을 찾아온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갈1:19에서 바울은 야고보를 ‘주의 형제’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표현을 일반적인 가족관계의 문맥에서 읽으면 예수님께 실제 형제자매들이 있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이들이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다른 자녀들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성경의 친족 관계를 나타내는 표현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엄밀한 가족관계의 용어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으며, 가까운 친족을 형제라고 부르는 관습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리서 500항은 야고보와 요셉이 다른 마리아의 아들들이라고 설명하면서, 복음서의 형제자매 언급이 마리아의 다른 출산을 증명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역사적으로는 그들이 요셉의 이전 결혼에서 태어난 자녀들이었다는 해석도 존재했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형제들’이라는 표현은 마리아에게 다른 자녀들이 있었다는 해석의 중요한 근거가 되지만, 그 표현만으로 논쟁이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동시에 이들이 모두 친족이었다는 천주교의 해석 역시 성경이 직접 명시한 관계를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결국 복음서의 가족관계 표현을 해석할 때에는 그 문맥과 언어적 관습을 함께 고려해야 하며, 어느 한쪽의 결론을 처음부터 확정된 사실로 놓고 본문을 읽어서는 안 됩니다.
마1:25 역시 중요한 논쟁의 대상입니다. 이 말씀은 요셉이 마리아가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낳기까지’라는 표현을 근거로 예수님을 낳은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부부관계를 맺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특정 시점까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이후에는 반대의 일이 일어났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마1:25는 예수님의 출생 이전에 요셉과 마리아가 부부관계를 맺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주지만, 출산 이후의 결혼생활을 확정하는 결정적인 증거는 아닙니다. 눅2:7의 ‘첫아들’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아들이라는 말이 반드시 둘째나 셋째 아들의 존재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유대 율법에서 처음 태어난 아들은 후속 자녀의 유무와 관계없이 특별한 지위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표현들은 마리아가 이후 다른 자녀들을 낳았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하지만, 그 가능성을 곧바로 역사적으로 확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평생 다른 자녀를 낳지 않았다는 주장도 이 본문들만으로 직접 증명할 수 없습니다. 교회 역사에서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지지하는 전통이 일찍부터 발전했으며, 2세기의 ‘야고보 원복음서’(Protoevangelium of James) 같은 외경 문헌에서도 마리아의 특별한 동정에 관한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헌은 정경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지니지 않습니다. 4세기에는 헬비디우스가 예수님의 형제들에 관한 본문을 근거로 마리아의 출산 후 결혼생활을 주장했고, 히에로니무스는 이에 반대하여 평생 동정을 옹호했습니다. 이 논쟁은 후대 교회에서 동정과 결혼의 영적 가치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문제와도 연결되었습니다. 따라서 평생 동정은 천주교만의 독특한 교리가 아니라 오래된 기독교 전통에 속하지만, 오랜 전통 자체가 성경의 직접적인 증언과 동일한 권위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스베덴보리의 렌즈로 이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스베덴보리가 주님의 동정녀 탄생을 분명하게 가르친다는 사실과, 마리아의 출산 중 및 출산 후 동정까지 직접 확정한다는 주장은 구별해야 합니다. ‘주님에 관한 교리’ DP.48과 TCR.92는 주님의 신적 기원과 마리아에게서 취하신 인성을 설명하는 직접적인 근거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들에서 마리아가 이후에도 평생 동정녀로 살았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습니다. 스베덴보리가 강조하는 것은 마리아의 동정성이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되었는가보다, 주님께서 인간 아버지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신적 생명을 받으셨으며, 마리아에게서는 자연적 인성을 취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 인성을 시험과 싸움을 통하여 영화하셨습니다. 따라서 성육신의 본질적인 진리는 주님의 신적 기원과 인성의 영화(榮化, glorification)에 있으며, 마리아의 출산 이후 생활에 관한 추가적인 가정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평생 동정의 세 측면을 동일한 수준의 신적 진리로 확정하는 것은 스베덴보리의 직접적 가르침에서 도출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것은 마리아가 실제로 평생 동정녀였을 가능성을 부정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역사적 사실의 가능성과 신앙적으로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교리의 확실성은 서로 구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더 깊이 살펴볼 문제는 성경에서 ‘동정녀’(童貞女, virgin)가 지니는 영적 의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천국의 비밀’(Arcana Coelestia, AC, 1749–1756) AC.3081에서 창24:16에 등장하는 리브가가 동정녀이며, 남자가 그를 알지 못했다는 말씀을 해설합니다. 그는 동정녀가 주님의 나라와 교회를 나타내며, 그 안에 있는 선과 진리의 결합과 관계된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남자가 알지 못했다’는 표현은 거짓에 의하여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가르칩니다. 여기서 동정녀는 단순히 육체적 성경험이 없는 상태를 넘어, 주님의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교회의 순수한 영적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러한 설명은 마리아의 동정녀 탄생을 이해할 때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주님께서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셨다는 역사적인 사실은 신적 생명의 근원이 인간 남성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동시에 동정녀의 상응은 인간이 주님의 생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해석의 범위를 정확하게 지켜야 합니다. AC.3081은 리브가에 관한 말씀의 속뜻을 해설하는 본문이지 마리아의 평생 동정 여부를 직접 판정하는 본문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를 마리아 교리에 적용하는 것은 스베덴보리의 상응 원리에 근거한 신학적 적용이지, 그가 마리아의 출산 후 동정을 직접 인정하거나 부정했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이처럼 문자적인 역사적 사실과 말씀의 속뜻을 구별하는 것은 ‘스베덴보리의 렌즈’가 반드시 지켜야 할 해석의 원칙입니다.
이러한 영적 의미를 이해하면 육체적인 동정과 영적인 순결을 반드시 동일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결혼하지 않고 평생 동정생활을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마음이 자동으로 거짓과 악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결혼하여 배우자와 사랑을 나누고 자녀를 낳았다고 해서 영적 순결을 잃는 것도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결혼애’(Conjugial Love, CL, 1768) CL.154에서 결혼을 부정한 상태로 여기는 사람들은 참된 순결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CL.155에서는 평생 독신을 서약했다는 사실 자체가 참된 순결을 보증하지 않으며, 참된 결혼생활에 대한 사랑이 그 사람 안에 남아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CL.156에서는 결혼생활이 독신생활보다 선호되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참된 결혼애가 영적 선과 진리의 결합에 상응하며, 주님에게서 오는 거룩한 사랑이라는 그의 결혼관에 근거합니다. 따라서 결혼은 인간의 영적 삶을 더럽히는 낮은 상태가 아니라, 주님의 질서 안에서 사랑과 지혜가 결합하는 중요한 삶의 형태입니다. 물론 독신이나 동정의 삶도 주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선한 쓰임 가운데 살아간다면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동정생활 자체가 결혼생활보다 본질적으로 더 거룩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마리아의 평생 동정 교리는 중요한 질문을 받게 됩니다. 만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은 후, 요셉과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맺었다면 그의 거룩함이 훼손되었을까요? 스베덴보리의 결혼관에 비추어 보면 그렇다고 말할 근거는 없습니다. 주님의 질서 안에 있는 참된 결혼애는 거룩한 사랑이며, 정상적인 부부관계 자체는 죄나 영적인 오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서도 천주교의 공식적인 입장을 정확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천주교는 결혼 자체를 부정하거나 부부관계를 본질적으로 부정하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혼인을 ‘성사’(聖事, sacrament)로 인정하며, 배우자 사이의 사랑과 자녀의 출산을 하느님께서 주신 선한 질서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마리아의 평생 동정 교리를 결혼에 대한 멸시로 규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천주교는 마리아의 동정을 일반적인 결혼생활에 대한 부정으로 설명하기보다, 주님의 성육신이라는 유일한 사건에 온전히 봉헌된 특별한 소명으로 이해합니다. 이러한 의도에는 인정해야 할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특별한 소명을 설명하기 위하여 출산 중의 신체적 상태와 출산 이후의 모든 부부관계까지 신앙의 필수적인 진리로 확정해야 하는지는 별도로 검토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인간의 참된 거룩함은 외적 신체 상태나 결혼 여부에 의하여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께서 막3:31-35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라고 말씀하신 것도 이러한 영적 관계의 중요성을 보여 줍니다. 이 말씀은 자연적 가족관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의 참된 관계가 혈연이나 외적 조건보다 깊은 영적 차원에 있음을 가르칩니다. 따라서 마리아를 존중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그의 신체적 상태에 관한 추정을 신앙의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그가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한 믿음을 본받는 데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교리가 오늘 우리의 신앙에 던지는 질문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의 동정녀 탄생은 스베덴보리의 주님론에서 성육신의 중요한 진리입니다. 주님께서는 인간 아버지에게서 태어나신 분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신적 생명을 받으시고, 마리아에게서 자연적 인성을 취하신 분입니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그분께서는 일반 인간과 달리 자신의 신적 능력으로 모든 시험을 이기시고, 인성을 영화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마리아가 어떤 신체적 상태를 유지했으며, 요셉과 어떠한 결혼생활을 했는지는 주님의 신적 기원과 인성 영화의 진리를 이해하는 데 같은 방식으로 요구되지 않습니다. 성경이 분명하게 증언하는 것은 주님께서 동정녀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셨다는 사실이며, 마리아의 출산 순간과 이후 생활에 관한 세부 사항은 그만큼 직접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붙들어야 할 중심은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무조건 입증하거나 반박하는 데 있지 않고, 동정녀에게서 인간으로 오신 주님이 누구이신가를 올바르게 아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 각 사람 안에 이루고자 하시는 영적 출생 역시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인간이 거짓과 악에서 돌아서고 순수한 진리에 대한 애정으로 말씀을 받아들일 때, 그 사람 안에 천국의 생명을 이루십니다. 마리아가 주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 역시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선과 진리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순결은 단순한 육체적 상태가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선과 진리를 거짓과 악으로 더럽히지 않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려는 마음의 순결입니다. (SL.RC.033 해설)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기 전과 낳을 때와 낳은 후에도 평생 동정녀였다’라는 명제에는 구별하여 판단해야 할 세 가지 주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인간 아버지의 개입 없이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셨다는 출산 전 동정은 성경이 분명하게 증언하며, 스베덴보리의 성육신론에서도 중요한 신적 진리입니다. 둘째, 마리아가 예수님을 출산하는 순간에도 신체적인 동정성을 보존했다는 출산 중 동정은 천주교의 공식 교리이지만, 성경은 그 구체적인 출산 과정을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셋째,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은 후에도 요셉과 부부관계를 맺지 않고 평생 동정녀로 살았다는 출산 후 동정 역시 오랜 교회 전통에 근거하지만, 성경만으로 그 역사적 사실을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복음서의 형제자매 언급은 마리아에게 다른 자녀들이 있었다는 해석의 중요한 근거가 되지만, 친족관계에 관한 다른 해석도 존재하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스베덴보리의 직접적인 가르침 역시 이 문제를 명확히 해결한다고 주장할 근거는 부족합니다. 따라서 오류로 검토해야 할 핵심은 마리아가 실제로 평생 동정녀였을 가능성을 인정하거나 그의 특별한 소명을 존중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성경이 분명히 증언하는 동정녀 잉태와, 출산 중 및 출산 후 동정에 관한 후대의 교리적 확정을 동일한 수준의 직접적 신적 증언으로 취급하는 데 있습니다. 또한 육체적 동정 자체를 결혼생활보다 자동으로 더 높은 거룩함의 조건으로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동정녀의 속뜻은 거짓에 의하여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한 상태와 선과 진리의 결합에 관계되며, 참된 거룩함은 외적 신체 상태가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내적 삶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교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마리아의 출산 전후 생활을 신앙의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인간으로 오시고, 자신의 인성을 영화하여 인류를 구원하신 주님의 유일한 신성과 구속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있어야 합니다.
RC.032. ‘마리아는 잉태되는 첫 순간부터 원죄 없이 보존되었다’
SL.RC.032 | 천주교의 교리와 신앙 속 진리와 오류 100선 ‘마리아는 잉태되는 첫 순간부터 원죄 없이 보존되었다’ - 무염시태는 주님의 성육신과 구속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진리인가? ‘마리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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