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026/05/31)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32, ‘만유의 주재’, 78, ‘저 높고 푸른 하늘과입니다.

 

오늘은 창2, 3 사이 쉬어가는 주로, AC 글 번호로는 168번에서 181입니다.

 

제목은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입니다.

 

참고로, 아래는 왜 이런 내용이 AC 각 장 시작과 끝에 덧붙여지는지 하는 이유입니다. 전에 다룬 내용입니다.

 

 

AC.70, 창2 앞,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의 연속이다’

AC.70 여러 해 동안 제가 듣고 보았던 것을 밝히는 것이 저에게 허락되었으므로, 여기에서는 먼저 사람이 ‘소생될 때’(when he is being resuscitated), 곧 육체의 삶에서 ‘영원한 삶’(the life of eter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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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1, 창2 앞, '말씀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AC 구성 원칙'

AC.71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말씀 본문 안에 들어 있는 내용들 사이에 그대로 끼워 넣게 되면, 그것들은 흩어지고 서로 연결되지 않게 될 것이므로,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미암아 그것들을 각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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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2, 창2 앞, '이제, 죽음에서 영원한 삶으로의 전환을 말하다'

AC.72 그러므로 이 장의 끝에서, 사람이 어떻게 죽음에서 일으켜 세워져 영원한 삶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지를 말해도 좋다는 허락을 저는 받았습니다. At the end of this chapter, accordingly, I am allowed to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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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각 글 번호를 열어 본문만 죽 리딩하는 방식으로 하겠습니다. 이 내용은 그러니까 일종의 ‘영계 체험담(Memorable Relations)이어서, 스베덴보리 본인이 직접 체험한 내용들을 이야기식으로 적어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혹시 중간중간 필요하면 해설이나 심화(深化) 리딩도 병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이런 해설이나 심화가 필요한 이유는, 제가 지난 수년간 이 AC를 하다 보니 느껴지는 게, 스베덴보리는 오늘날 우리한테는 배경지식이 좀 필요한 사항들을 뭐,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여기는 듯 기술해 나가고 있는 경향이 있더군요. 아마 18세기 유럽 기독교 세계관 안에서는 오늘 우리 현대인들과 달리 무슨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이해가 되었었나 봅니다. 약 300년이라는 시간 간격이 있어서인가요? 그래서인지 오늘 우리는 이 AC 본문 자체가 좀 벽처럼 느껴져 부득이하게 ‘해설’이 시작되었고, 그러다 보니 ‘본문’과 ‘해설’에서마저도 커버가 안 되는 빈틈들이 보이기 시작, 할 수 없이 한 걸음 더 나아간 ‘심화’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이 해설과 심화 아이디어는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시작합니다.

 

 

AC.168, 창2 뒤,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AC.168-181)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68 사람이 육체의 생명에서 영원의 생명으로 어떻게 옮겨 가는지, 곧 그가 어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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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69, 창2 뒤, ‘죽어 가는 사람들과 거의 같은 상태에 놓이게 됨’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69 저는 육체의 감각들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상태로 이끌려 들어갔고, 그래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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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70, 창2 뒤, ‘천적 천사들이 와 있는 상태’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70 천적 천사들이 함께 있었는데, 그들은 심장 영역에 해당하며, 그로 인해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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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71, 창2 뒤, ‘영들의 세계에 있는 영들과의 교통에서 물러남’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71 이와 같이 저는 영들의 세계에 있는 영들과의 교통에서 물러나 있었으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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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72, 창2 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소생 과정’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72 심장 영역에 해당하는 천적 천사들 외에도, 제 머리맡에는 두 천사가 앉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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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73, 창2 뒤, ‘다만 얼굴을 통해 그들의 생각을 전달하는 천사들’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73 제 머리맡에 앉아 있던 천사들은 완전히 침묵하고 있었으며, 다만 얼굴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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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74, 창2 뒤, ‘입 region’, ‘입 province’, ‘cogitative speech’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74 그들의 얼굴이 인식된 뒤에, 그들은 입 region 부근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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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75, 창2 뒤, ‘시체 같은 냄새가 향기로운 것으로 지각’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75 향기로운 냄새가 지각되었는데, 그것은 마치 방부 처리된 시신의 냄새와 같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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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76, 창2 뒤, ‘심장 영역의 맥박’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76 그사이에 저는 심장 영역이 천적 천사들과 매우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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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77, 창2 뒤, ‘죽어 가는 사람들이 하는 생각’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77 사람이 죽음의 순간에 품고 있던 경건하고 거룩한 생각들 속에 천사들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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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78, 창2 뒤, ‘천적 천사들이 떠나고, 영적 천사들에게 맡겨짐’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78 이들은 이 생각 안에 상당한 시간 동안 천적 천사들에 의해 머물게 되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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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79, 창2 뒤, ‘몸의 내부가 차가워지기 시작하자마자’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79 몸의 내부 부분들이 차가워지기 시작하자마자, 생명적인 요소들은 어디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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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80, 창2 뒤, ‘천적 천사들이 오류와 거짓을 대하는 방식’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80 머리맡에 앉아 있던 천적 천사들은 제가 마치 소생된 것 같은 뒤에도 얼마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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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81, 창2 뒤, 지금까지는 ‘천적 소생’, 이후에는 ‘영적 각성’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81 이처럼 천적 천사들에 의해 소생된 사람은 아직은 어두운 생명(obscure life)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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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오늘도 들려주신 이 놀라운 말씀들을 우리가 몇 번씩 되새김할 마음을 주시며, 우리가 되새김할 때, 그때마다 우리를 환히 비추사 우리로 밝히 이해되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설교

2026-05-31(D1)

 

 

2653, 8, 창2.8, 2026-05-31(D1)-주일예배(창2 뒤, AC.168-181),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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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6/05/24, 창2:23-25, AC.156-167),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여자, 아내, 둘이 한 몸을 이루다

※ 오늘(2026/05/24)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31,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찬77,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 오늘은 창2 일곱 번째, 마지막 시간으로, 본문은 23절로 25절, AC 글 번호로는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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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심화

 

7. ‘8:11-15

 

11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12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13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14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15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8:11-15)

 

 

이 누가복음 8장 구절이 AC.29에 인용된 이유는, 앞의 마태복음 13장과 마가복음 4장보다도 더욱 직접적으로 씨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AC.29에서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1 11절의 씨 맺는 채소’를 신앙에 속한 것들, 곧 진리와 신앙의 원리들로 해석하고, ‘열매 맺는 나무’를 체어리티와 선한 삶에 속한 것들로 해석합니다. 다시 말해 씨는 신앙의 시작이고, 열매는 신앙이 삶 속에서 완성된 모습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주님께서 친히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석해 주십니다. 이 한마디가 바로 AC.29의 해석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말씀은 단순한 문자나 종교 지식이 아니라 주님의 진리가 담긴 그릇입니다. 따라서 씨는 사람 안에 심어지는 진리이며, 거듭남의 모든 시작은 이 씨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창세기에서 씨 맺는 채소’가 먼저 등장하는 것은, 거듭남의 초기 단계에서 사람이 먼저 진리와 신앙의 지식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아직 열매는 없지만, 씨는 이미 심긴 상태입니다.

 

또한 이 비유는 진리가 사람 안에 들어간 뒤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도 보여 줍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아예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빼앗기며, 바위 위의 씨는 잠시 자라지만 깊이가 없어 시련 가운데 사라집니다. 가시떨기 속의 씨는 세상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막혀 성장하지 못합니다. 오직 좋은 땅에 떨어진 씨만이 자라서 결실합니다. 이것은 AC.29가 설명하는   성장  열매’라는 거듭남의 질서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특히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들보다 마지막 결론을 더욱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주님은 좋은 땅을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라고 설명하십니다. 여기에는 거듭남의 전 과정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먼저 말씀을 듣고, 그다음 그것을 지키며, 오랜 시간 인내하고, 마침내 열매를 맺습니다. 이는 단순히 교리를 아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는 스베덴보리의 가르침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신앙은 반드시 삶으로 내려와야 하며, 결국 체어리티의 열매를 낳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착하고 좋은 마음’이라는 표현은 AC.29 좋은 땅 개념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땅은 사람의 의지와 삶의 영역을 뜻합니다. 아무리 좋은 씨라도 좋은 땅이 없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많은 진리를 배우고 기억하더라도, 의지가 변화되지 않으면 그 진리는 결실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신앙의 진리와 체어리티의 삶을 결코 분리하지 않습니다.

 

결국 스베덴보리가 이 본문을 AC.29에 인용한 이유는 단순히 씨가 말씀이라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그는 이 비유를 통해 씨는 하나님의 말씀, 곧 신앙의 진리이며, 그 진리는 사람 안에서 자라고 보존되어야 하며, 마침내 체어리티라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 창세기 1장의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는 식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말씀의 진리가 사람 안에 심어져 사랑과 선한 삶의 열매를 맺는 거듭남의 전 과정을 가리킨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이 구절이 인용된 것입니다.

 

 

 

AC.29, 심화 6, ‘막4:14-20’

AC.29.심화 6. ‘막4:14-20’ 14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15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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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심화

 

6. ‘4:14-20

 

14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15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16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17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18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19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20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4:14-20)

 

 

이 마가복음 4장 구절이 AC.29에 인용된 이유는, 창세기 1 11절의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주님 자신의 말씀으로 가장 분명하게 설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AC.29에서 스베덴보리는 씨 맺는 채소’를 신앙에 속한 것들, 곧 진리와 신앙의 원리들로 해석하고, ‘열매 맺는 나무’를 체어리티와 선한 삶으로 해석합니다. 여기서 씨는 신앙의 시작이며, 열매는 신앙이 삶 속에서 성숙하여 나타난 결과입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주님께서 비유를 친히 해석하시며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의 해석에서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씨가 단순한 정보나 교양 지식이 아니라 사람 안에 심어지는 말씀의 진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창세기의  역시 자연적 씨앗을 넘어 사람 안에 심어지는 신앙의 진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비유의 중심은 씨의 질이 아니라 땅의 상태에 있습니다. 씨는 모두 동일한 말씀인데, 길가에서는 빼앗기고, 돌밭에서는 잠시 자라다가 말라 버리며, 가시떨기에서는 세상 염려와 욕심에 막혀 성장하지 못합니다. 오직 좋은 땅에 떨어진 씨만이 결실합니다. 이것은 거듭남의 과정에서 진리가 사람 안에 심어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것이 보존되고 자라서 마침내 삶의 열매를 맺어야 함을 보여 줍니다.

 

특히 마지막 말씀은 AC.29의 핵심 사상을 잘 드러냅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여기서 결실은 더 많은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의 진리가 사람 안에서 선한 삶과 체어리티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열매 맺는 나무’의 상태입니다. 씨는 신앙이고, 열매는 체어리티입니다.

 

창세기 1장의 순서도 바로 이 질서를 보여 줍니다. 먼저 씨 맺는 채소가 나오고, 그다음 열매 맺는 나무가 나옵니다. 먼저 진리가 심겨지고, 그 후에 사랑과 선한 삶이 나타납니다. 마가복음의 비유 역시 같은 구조를 따릅니다. 말씀의 씨가 뿌려지고, 그것이 자라며, 마침내 결실합니다. 따라서 이 비유는 창세기 1장의 영적 의미를 설명하는 매우 적절한 증거가 됩니다.

 

결국 스베덴보리가 이 본문을 AC.29에 인용한 이유는, 창세기 1장의 식물 창조가 단순한 자연계 식물의 기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말씀의 진리가 심어지고 그것이 자라 체어리티의 열매를 맺는 거듭남의 과정을 뜻한다는 사실을 주님 자신의 비유를 통해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본문은 씨는 말씀의 진리이고, 열매는 그 진리가 삶 속에서 이루는 체어리티이며, 거듭남은 씨 뿌림에서 결실로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AC.29의 핵심 사상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용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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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심화

 

5. ‘13:19-24, 37-39

 

19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려진 자요 20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23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24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37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13:19-24, 37-39)

 

 

이 마태복음 13장 구절이 AC.29에 인용된 이유는, 창세기 1 11절의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주님 자신의 말씀으로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AC.29에서 스베덴보리는 씨 맺는 채소’를 신앙에 속한 것들, 곧 진리와 신앙의 원리들로 해석하고, ‘열매 맺는 나무’를 체어리티에 속한 것들, 곧 사랑과 선한 삶으로 해석합니다. 따라서 씨는 신앙의 시작이고, 열매는 신앙이 삶 속에서 완성된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비유를 해석하시며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씨는 단순한 문자나 정보가 아니라 사람 안에 심어지는 진리이며, 신앙의 원리입니다. 따라서 씨가 뿌려진다는 것은, 사람 안에 주님의 진리가 심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창세기에서 씨 맺는 채소’가 등장하는 이유와 정확히 연결됩니다.

 

또한 이 비유 전체를 보면 관심의 초점은 씨 자체보다 씨가 어떤 땅에 떨어졌는가에 있습니다. 같은 씨라도 길가에서는 빼앗기고, 돌밭에서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며, 가시떨기에서는 세상 염려와 욕심에 막혀 버립니다. 오직 좋은 땅에 떨어진 씨만이 자라서 결실합니다. 이는 진리가 사람 안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것이 보존되고 성장하여 실제 삶 속에서 열매를 맺어야 함을 보여 줍니다.

 

특히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결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여기서 결실은 단순히 더 많은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가 사랑과 선한 삶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AC.29에서 말하는 열매 맺는 나무’입니다. 씨는 신앙이고, 열매는 체어리티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라고 하신 말씀 역시 AC.29의 중요한 주제와 연결됩니다. 사람 안에 심어지는 모든 참된 신앙의 씨는 사람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고 주님에게서 옵니다. 사람은 단지 그 씨를 받는 밭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시작도 주님에게서 오고, 성장도 주님에게서 오며, 결실도 궁극적으로는 주님의 역사입니다.

 

결국 스베덴보리가 이 본문을 AC.29에 인용한 이유는, 창세기 1장의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가 자연계 식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님의 진리가 사람 안에 심어지고, 그것이 자라 체어리티의 열매를 맺는 거듭남의 과정을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씨는 신앙의 진리이고, 열매는 사랑의 삶이며, 거듭남은 씨 뿌림에서 결실에 이르는 전 과정이라는 것을 주님의 비유를 통해 증명하기 위해 이 구절이 인용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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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8.심화

 

7. ‘12:1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이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 (12:1) Jehovah stretcheth forth the heavens, and layeth the foundation of the earth, and formeth the spirit of man in the midst of him (Zech. 12:1).

 

 

12:1 구절이 AC.28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하늘’, ‘’, 그리고 사람 안의 영’이 서로 분리된 주제가 아니라, 인간 거듭남 안에서 하나의 질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AC.28의 핵심인 땅은 수용체(recipient)’라는 점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구절이기 때문에 인용된 것입니다.

 

본문은 세 가지를 연속해서 말합니다.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연결을 매우 중요하게 봅니다. 문자적으로는 우주 창조와 인간 창조를 함께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재창조의 구조를 묘사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먼저 하늘을 펴신다’는 것은 속 사람(inner man)을 여시는 것을 뜻합니다. 속 사람은 주님의 빛과 생명이 먼저 유입되는 영역이며, 인간 안의 가장 내적인 차원입니다. 하늘이 펼쳐진다는 것은, 닫혀 있던 속 사람이 주님의 진리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열리는 상태입니다.

 

이어 땅의 터를 세우신다’는 말에서 땅은 겉 사람(external man)을 뜻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단순히 땅이라고 하지 않고 터를 세운다’고 합니다. 이는 겉 사람이 단순한 외적 존재가 아니라, 속 사람에게서 오는 생명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초와 질서를 갖추는 과정을 뜻합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AC.28에서 스베덴보리는 땅을 수용체(recipient)라고 설명합니다.

 

즉, 땅은 스스로 생명을 만들어 내는 주체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생명을 받아들이는 자리입니다. 겉 사람은 속 사람에서 오는 진리와 선을 받아 실제 삶과 행위 안에서 열매 맺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땅은 받는 구조’이며, 주님께서 그 터를 세우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다’고 합니다. 이것이 결정적입니다. 하늘과 땅의 질서가 세워진 목적은 결국 사람 안에 영(spirit)을 형성하시기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거듭남은 단순히 지식을 쌓거나 외적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새로운 영적 생명을 형성하는 과정입니다.

 

이 구절은 AC.25와도 긴밀히 연결됩니다. 거기서도 하늘을 펴고 땅을 펼친다’는 표현이 인간 거듭남의 언어라고 설명했는데, 여기 슥12:1은 그 과정이 결국 사람 안의 영 형성을 목표로 한다는 점까지 밝혀 줍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AC.28에 인용하여, ‘하늘사람의 영’이라는 연결 구조를 통해, 속 사람과 겉 사람, 그리고 그 안에 저장된 지식과 생명이 모두 주님의 질서 안에서 하나로 형성된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창조의 언어는 우주의 구조를 넘어서, 인간 안에 새로운 영을 지으시는 거듭남의 언어라는 것입니다.

 

 

 

AC.28, 창1:10, ‘물과 바다와 땅 : 지식이 모이고, 생명이 머무는 거듭남의 그릇’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called the dry [land] earth, and the gathering together of the waters called he seas;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창1:10)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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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8, 심화 6, ‘시69:33-34’

AC.28.심화 6. ‘시69:33-34’ 33여호와는 궁핍한 자의 소리를 들으시며 자기로 말미암아 갇힌 자를 멸시하지 아니하시나니 34천지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바다와 그 중의 모든 생물도 그리할지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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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9:33-34

 

33여호와는 궁핍한 자의 소리를 들으시며 자기로 말미암아 갇힌 자를 멸시하지 아니하시나니 34천지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바다와 그 중의 모든 생물도 그리할지로다 (69:33, 34) Jehovah despiseth not his prisoners; let the heavens and the earth praise him, the seas and everything that creepeth therein (Ps. 69:33–34).

 

 

69:33-34 구절이 AC.28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바다(seas)와 그 안의 ‘생물들(everything that creepeth therein)이 단순한 자연 세계의 요소들이 아니라, 인간 안에 저장된 지식들과 그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상태를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이 구절은 황폐했던 사람이 거듭남을 통해 다시 살아나는 상태를 묘사하는 예로 사용됩니다.

 

본문은 먼저 ‘궁핍한 자’, ‘갇힌 자’를 말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이런 표현들은 단순한 사회적 약자를 넘어서, 영적으로 황폐하고 속박된 상태의 사람을 뜻합니다. 곧 진리와 선의 생명을 잃고, 자기 본성과 거짓 속에 갇혀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그런 사람을 멸시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이는 거듭남의 시작이 언제나 주님의 자비에서 비롯된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움직이는 모든 것이 그를 찬송할 것’이라는 표현이 AC.28의 핵심과 연결됩니다. 여기서 ‘하늘’은 속 사람(inner man), ‘’은 겉 사람(external man)을 뜻하며, ‘바다’는 그 겉 사람 안에 저장된 기억-지식(scientifica)의 총체를 뜻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단순히 바다만이 아니라, ‘그 가운데 움직이는 모든 것(everything that creepeth therein)까지 함께 찬양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AC.27-28에서 물과 바다는 지식의 저장 상태를 뜻했는데, 이제 그 지식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 등장합니다. 이는 기억 속에 저장된 진리들이 더 이상 죽은 정보로 머물지 않고, 생명을 얻어 실제로 움직이고 작용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즉, 거듭남 이전에는 지식이 단지 바닷속에 저장된 물처럼 존재할 뿐이었다면, 이제는 그 안에 생명 있는 움직임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바닷속의 생물들은 살아 있는 지식, 곧 주님과 연결되어 생명을 얻은 진리들을 상징합니다.

 

또 ‘찬송한다’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말씀에서 찬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존재 전체가 주님의 질서 안으로 들어온 상태를 뜻합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의 모든 것이 함께 찬양한다는 것은, 인간의 속 사람과 겉 사람, 기억과 지식, 애정과 사고까지 모두 주님을 향한 질서 안에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AC.28에 인용하여, 바다와 물이 지식의 상징이라는 점을 넘어서, 그 지식이 거듭남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즉, 기억 속에 저장된 진리들이 주님의 생명과 연결될 때, 바다는 더 이상 황폐와 혼돈의 장소가 아니라, 찬양과 생명의 영역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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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4:7-8

 

7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8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14:7, 8) There shall be one day, it is known to Jehovah; not day, nor night; but it shall come to pass that at evening time it shall be light; and it shall be in that day that living waters shall go out from Jerusalem, part of them toward the eastern sea, and part of them toward the hinder sea (Zech. 14:7–8).

 

 

14:7-8 구절이 AC.28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waters), 특별히 생수(living waters)가 살아 있는 진리의 지식들을 뜻하며, 그 지식이 인간과 교회 전체로 흘러가는 과정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8에서 스베덴보리는 ’은 지식들을, ‘바다’는 그 지식들이 모여 있는 기억의 총체를 뜻한다고 설명했는데, 이 스가랴 구절은 그 물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지식’이라는 점까지 드러내는 중요한 본문입니다.

 

먼저 7절의 한 날(one day)이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이 날은 문자적 하루가 아니라, 주님께서 아시는 특별한 영적 상태, 곧 새 교회와 새로운 영적 질서가 열리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고 합니다. 이는 기존의 빛과 어둠의 구분이 흔들리는 과도기적 상태, 곧 황폐와 회복이 교차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어서 저녁 때에 빛이 있으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저녁은 AC.22에서 설명했듯이 신앙이 약해지고 어두워진 상태를 뜻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저녁에 빛이 생긴다는 것은, 가장 어두운 상태 속으로 주님께서 새롭게 진리를 비추신다는 뜻입니다. 즉, 황폐 속에서 새로운 교회와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문맥 속에서 8절의 생수’가 등장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물은 진리의 지식이지만, 여기서는 단순한 정보나 기억-지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물’입니다. 왜 살아 있느냐 하면, 그것이 예루살렘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말씀에서 예루살렘은 교회, 특별히 주님의 진리가 있는 교회를 뜻합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는 주님에게서 나오는 살아 있는 진리의 유입입니다.

 

또 이 물이 동해’와 서해’로 나뉘어 흐른다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동쪽은 사랑과 빛의 근원을 뜻하고, 서쪽은 상대적으로 어둡고 외적인 영역을 뜻합니다. 따라서 생수가 동해와 서해 모두로 흐른다는 것은, 주님의 진리가 인간 안의 밝은 영역뿐 아니라 아직 어두운 영역까지도 적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기억과 삶의 모든 영역이 살아 있는 진리로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는 말은, 이러한 생명의 유입이 일시적 상태가 아니라 지속적인 것임을 보여 줍니다. 영적 상태의 변화와 교대 속에서도 주님께서 공급하시는 생수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AC.28에 인용하여, ‘’과 바다’가 지식과 기억의 상징이라는 점을 넘어서, 참된 지식은 살아 있는 생명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물이 단지 저장된 정보일 때는 바다에 머물지만, 주님에게서 나오는 생수가 될 때는 인간 전체를 적시고 움직이며 생명을 낳습니다. 이것이 AC.28에서 말하는 살아 있는 지식’, 곧 주님과 연결된 진리의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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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6-7

 

6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6, 7) I will shake the heavens and the earth, and the sea and the dry [land]; and I will shake all nations; and the desire of all nations shall come; and I will fill this house with glory (Hag. 2:6–7).

 

 

2:6-7 구절이 AC.28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하늘’, ‘’, ‘바다’, ‘육지’가 단순한 자연 세계의 요소들이 아니라, 인간과 교회 안의 영적 구조와 상태들을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AC.28의 문맥에서는 바다’가 지식들의 집합, 곧 기억 속에 저장된 진리의 지식들을 뜻한다는 점을 확증하는 중요한 예로 사용됩니다.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우주적 대격변처럼 보이지만,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새 교회가 세워질 때 인간과 교회 전체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재질서화로 읽습니다.

 

여기서 하늘’은 속 사람(inner man), 곧 주님과 직접 연결되는 내적 영역을 뜻하고, ‘’과 육지’는 겉 사람(external man), 곧 삶과 행위의 영역을 뜻합니다. 그리고 바다’는 그 겉 사람 안에 축적된 기억-지식(scientifica)의 총체입니다. 따라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킨다’는 것은, 인간 존재 전체와 그 안의 지식 구조까지 모두 흔들어 새롭게 질서 잡으신다는 뜻입니다.

 

특히 바다’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AC.28의 핵심과 직접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미 창세기 1장의 모인 물’을 기억 속에 저장된 지식들로 설명했는데, 학개의 이 구절은 그 지식의 영역 역시 새 창조와 새 교회 형성에서 반드시 재정렬되어야 함을 보여 줍니다. 즉, 단순히 내면의 감정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사고 체계 전체가 주님의 질서 아래 흔들리고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말씀에서 나라들(nations)은 흔히 애정들과 의지의 상태들을 뜻합니다. 따라서 여기서의 진동은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인간 안의 사랑과 욕망, 가치 질서까지 모두 뒤흔드는 영적 변화입니다.

 

이어지는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라는 말은, 이렇게 흔들리고 정화된 뒤에 비로소 참된 선과 진리가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는 말씀에서 성전은 인간과 교회를, 영광은 주님의 진리와 임재를 뜻합니다. 결국 이 전체 과정은 새 교회, 곧 새롭게 거듭난 인간의 형성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AC.28에 인용하여, 말씀의 바다’가 실제 바다가 아니라 기억 속 지식들의 영역이라는 점, 그리고 주님께서 새 창조를 이루실 때, 그 지식의 바다까지도 흔들어 새롭게 하신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학개의 진동’은 자연 재난이 아니라,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재창조의 흔들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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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9:5-6

 

5바닷물이 없어지겠고 강이 잦아서 마르겠고 6강들에서는 악취가 나겠고 애굽의 강물은 줄어들고 마르므로 갈대와 부들이 시들겠으며 (19:5, 6) The waters shall fail from the sea, and the river shall be dried up and become utterly dry, and the streams shall recede (Isa. 19:5–6).

 

 

19:5-6 구절이 AC.28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과 ’이 지식(knowledges)을 뜻하며, 그것들이 마르고 사라진다는 것은 영적 지식의 황폐와 생명 상실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8에서 스베덴보리는 ’은 진리의 지식들을, ‘바다’는 그 지식들이 모인 총체를 뜻한다고 설명하는데, 이 구절은 그 반대 상태, 곧 지식이 황폐해진 상태를 설명하는 예로 사용됩니다.

 

본문은 문자적으로는 애굽의 재앙과 황폐를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에게서 애굽(Egypt)은 단순한 나라가 아니라 기억-지식(scientifica)의 영역, 곧 인간의 자연적 지식 체계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애굽의 강물이 마르고 시내가 줄어든다는 것은, 인간 안의 지식이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상태를 뜻합니다.

 

특히 바닷물이 없어지겠고’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AC.27-28에서 바다는 기억 속에 모인 지식들의 집합이라고 설명되었는데, 이제 그 바다에서 물이 사라진다는 것은, 지식은 남아 있어도 그 안의 살아 있는 의미와 생명이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즉, 단순한 정보는 남아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주님과 연결시키는 진리의 생명은 끊어진 상태입니다.

 

 강이 마른다’, ‘시내가 물러간다’는 표현은 지식의 흐름 자체가 중단된 상태를 뜻합니다. 강과 시내는 흘러가는 지식, 곧 살아 움직이며, 삶을 적시는 진리의 흐름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마른다는 것은, 인간 안에서 진리와 선의 연결이 끊어졌다는 말입니다.

 

이어지는 갈대와 부들이 시든다’는 표현도 같은 의미입니다. 갈대와 부들은 물가에서 자라는 식물들이므로, 물이 사라지면 함께 시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참된 지식의 흐름이 끊기면, 그 위에 세워져 있던 삶과 애정들도 함께 쇠퇴한다는 뜻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AC.28에 인용하여, 물과 바다가 단순한 자연 요소가 아니라 영적 지식의 상징이라는 점을 더욱 분명히 합니다. 11:9에서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한 상태를 보여 주었다면, 이사야 19장에서는 그 반대로 물이 마르고 강이 끊어진 황폐 상태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즉, 이 두 본문은 서로 대조를 이루며, ‘ = 진리의 지식’, ‘바다 = 그 지식의 총체’라는 상응을 함께 증명합니다. 그리고 AC.28의 문맥에서는, 기억 속에 저장된 지식들이 주님과 연결될 때는 생수가 되지만, 그 연결이 끊기면 마른 강과 황폐한 바다가 된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 이 구절이 인용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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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1: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11:9) The earth shall be full of the knowledge[scientia] of Jehovah, as the waters cover the sea (Isa. 11:9).

 

 

11:9 구절이 AC.28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waters) 바다(sea)가 지식(knowledges, scientia)의 상징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8에서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1장의 모인 물’, 곧 바다가 인간 안에 저장된 기억-지식(memory-knowledges)을 뜻한다고 설명하는데, 이 이사야 구절은 그 상응을 말씀 전체의 용례로 확증하는 대표적 본문입니다.

 

본문의 핵심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지식’은 단순한 정보 축적이 아니라, 주님에 대한 살아 있는 인식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 충만함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라고 표현됩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표현에 주목합니다.

 

물이 바다를 덮는다는 것은, 물들이 흩어진 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큰 집합 안에 가득 모여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AC.27 AC.28에서 설명했듯이, 물은 진리의 지식들을, 바다는 그 지식들이 기억 속에 모여 저장된 총체를 뜻합니다. 따라서 이사야의 표현은 인간과 교회 안에 주님에 관한 진리의 지식이 충만하게 축적되고 질서 있게 채워진 상태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또 여기서 세상(earth)은 단순한 지구가 아니라, 지식을 받아들이는 인간과 교회를 뜻합니다. 즉, 땅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진다는 것은, 인간의 겉 사람과 삶 전체가 진리의 빛으로 채워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본문 앞부분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다’고 말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참된 지식이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평화와 질서를 가져오는 살아 있는 지식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할 때, 인간 안의 혼란과 파괴는 잠잠해집니다. 그래서 물이 바다를 덮는 이미지는 단순한 양적 풍성함이 아니라, 질서와 생명의 충만함을 뜻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통해, 창세기 1장의 모인 물’과 바다’를 지식의 상징으로 읽는 것이 임의적 해석이 아니라 말씀 전체의 일관된 언어 사용이라는 점을 보여 줍니다. 즉, 바다는 기억 속에 모인 진리의 지식들이며, 주님께서 그것들을 통해 인간 안에 생명과 질서를 세우실 때, 비로소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AC.28, 심화 3, ‘사19:5-6’

AC.28.심화 3. ‘사19:5-6’ 5바닷물이 없어지겠고 강이 잦아서 마르겠고 6강들에서는 악취가 나겠고 애굽의 강물은 줄어들고 마르므로 갈대와 부들이 시들겠으며 (사19:5, 6) The waters shall fail from the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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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8, 심화 1, ‘스베덴보리가 AC 초기부터 여러 인용 구절의 속뜻을 알 수 있었던 이유’

AC.28.심화 1. ‘스베덴보리가 AC 초기부터 여러 인용 구절의 속뜻을 알 수 있었던 이유’ AC.28을 보면, 스베덴보리는 여러 곳, 그러니까 이사야, 학개, 스가랴, 시편 등에서 여러 구절들을 인용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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