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5.심화

 

3. ‘42: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42:5) Jehovah God createth the heavens, and stretcheth them out; he spreadeth out the earth, and the productions thereof; he giveth breath unto the people upon it, and spirit to them that walk therein (Isa. 42:5).

 

 

42:5 구절이 AC.25에 인용된 이유는, ‘하늘을 펴고 땅을 펼친다’는 창조의 언어가 실제로는 인간 거듭남의 질서와 생명의 유입을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이 구절은 단순히 하늘과 땅의 형성만이 아니라, 그 안에 호흡’과 ’을 주시는 과정까지 함께 말하고 있기 때문에 AC.25의 핵심 사상을 아주 풍부하게 드러냅니다.

 

먼저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라는 표현에서, 스베덴보리는 하늘을 인간의 속 사람(inner man)으로 읽습니다. 속 사람은 주님의 빛과 생명이 먼저 들어오는 영역이며, 거듭남에서 가장 먼저 열려야 하는 차원입니다. ‘펼친다’는 것은 그 속 사람이 닫혀 있던 상태에서 열리고 질서 잡히는 것을 뜻합니다.

 

이어지는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에서 땅은 겉 사람(external man)을 뜻합니다. 겉 사람은 삶과 행위, 기억과 감각의 영역이며, 속 사람에게서 오는 생명을 받아 실제 삶의 열매를 맺는 자리입니다. 따라서 땅의 소산’은 겉 사람 안에서 나타나는 선한 삶과 행위들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속 사람에 유입된 생명이 겉 사람을 통해 실제 삶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뒤의 표현입니다.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호흡(breath)은 생명의 가장 직접적인 상징이며, ‘(spirit)은 더 깊은 영적 생명과 이해의 생명을 뜻합니다. 이는 생명이 단순히 인간 안에 자동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계속해서 주입하시는 것임을 보여 줍니다.

 

AC.25의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은 인간 안에서 속 사람과 겉 사람의 질서를 세우시고, 그 안에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즉, 창조는 과거의 우주 사건만이 아니라, 오늘도 인간 안에서 계속되고 있는 영적 재창조입니다.

 

또 이 구절은 AC.24에서 설명된 주님은 인간의 오류와 욕정을 곧바로 꺾지 않으시고, 참되고 선한 방향으로 굽히신다’는 원리와도 연결됩니다. 하늘과 땅을 펼치신 뒤에 곧바로 호흡과 영을 주시는 것은, 주님께서 인간을 단순한 구조로만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로 일으키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사42:5 AC.25에 인용하여, 선지자들의 창조 언어가 사실은 인간 거듭남의 언어라는 점을 증명합니다. 하늘과 땅, 호흡과 영은 모두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창조의 단계들이며, 주님은 지금도 인간 안에서 하늘을 펴시고, 땅을 펼치시며, 생명을 불어넣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AC.25, 창1:6-7, ‘하늘과 땅을 펴심 : 파괴가 아니라 굽힘으로 이루어지는 거듭남의 질서’

6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1:6, 7) AC.25 ‘하늘을 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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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 심화 2, ‘사44:24’

AC.25.심화 2. ‘사44: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사44:24) Thus saith Jehovah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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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심화

 

2. ‘44: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44:24) Thus saith Jehovah thy redeemer, and he that formed thee from the womb; I am Jehovah that maketh all things, that stretcheth forth the heavens alone, that spreadeth abroad the earth by myself (Isa. 44:24).

 

 

44:24 구절이 AC.25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하늘을 펴고 땅을 펼친다’는 표현이 단순한 우주 창조의 묘사가 아니라, 인간의 거듭남과 재창조를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5에서 스베덴보리는 선지자들이 인간 거듭남을 말할 때 반복적으로 하늘’과 ’을 언급한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하늘은 속 사람(inner man), 땅은 겉 사람(external man)을 뜻하며, ‘펼친다’는 것은 그 안에 질서와 생명이 세워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사야 44장 구절은 그 점을 아주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먼저 여호와는 자신을 너를 모태에서 지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육체적 출생만이 아니라, 인간을 영적으로 형성하시고 거듭나게 하시는 주님을 뜻합니다. AC.25의 문맥에서 이것은 분명히 재창조’의 의미로 읽힙니다.

 

이어지는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펼쳤고’라는 표현이 핵심입니다. 문자적으로는 우주 창조처럼 보이지만,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인간 안에서 속 사람과 겉 사람이 열리고 질서 잡히는 과정으로 봅니다. 주님께서 속 사람을 여시고, 겉 사람을 정돈하시며, 그 둘 사이에 생명의 질서를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특히 홀로(alone), ‘나와 함께 한 자 없이(by myself)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거듭남이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사역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인간은 협력할 수는 있어도, 자기 힘으로 속 사람을 열거나 생명을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하늘과 땅을 펼치시는 분은 오직 주님 한 분뿐이십니다.

 

또 이 구절은 AC.24에서 설명된 원리와도 연결됩니다. 주님은 사람의 오류와 욕정을 한순간에 파괴하지 않으시고, 점진적으로 질서 안으로 굽히시며, 속 사람과 겉 사람 사이의 연결을 회복하십니다. 바로 그 과정을 선지자들은 하늘을 펴고 땅을 펼친다’는 창조의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사44:24 AC.25에 인용하여, 창세기의 창조 언어가 사실은 인간 거듭남의 언어라는 점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주 창조 이야기가 동시에 인간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창조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주님께서 하늘을 펴고 땅을 펼치신다는 말은, 오늘도 인간 안에서 속 사람과 겉 사람을 새롭게 질서 짓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AC.25, 심화 3, ‘사42:5’

AC.25.심화 3. ‘사42: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사42:5) Jehovah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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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 심화 1,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사42:3)

AC.25.심화 1.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사42: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사42:3) A bruised reed shall he not break, and the smoking flax sh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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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심화

 

5. ‘5:21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5:21) Renew our days, as of old (Lam. 5:21).

 

 

5:21 구절이 AC.23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날들(days)이 단순한 과거의 시간들이 아니라 영적 상태들’을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3 전체의 목적은 창세기 1장의 날들’을 시간 단위가 아니라 거듭남의 상태들로 이해하게 하는 데 있는데, 이 구절은 그 점을 아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대표적 예입니다.

 

본문의 핵심은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지나간 좋은 시절을 다시 돌려 달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한 시간 회귀로 보지 않습니다. 여기서 날들’은 과거의 연대가 아니라, ‘과거에 가졌던 영적 상태’를 뜻합니다.

 

즉, 이 기도는 예전 시간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는 뜻이 아니라, ‘주님과 더 가까웠던 상태를 회복시켜 달라’는 간구입니다. 황폐와 어둠 속에 떨어진 사람이, 다시 주님께 향하던 생명의 상태, 신앙과 사랑이 살아 있던 상태로 회복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특히 앞부분의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거듭남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변화가 아니라, 주님께서 먼저 사람을 돌이키실 때 가능한 회복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날들을 새롭게 하소서’는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라, ‘영적 상태의 재창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옛적 같게 하옵소서’라는 표현은 AC 전체에서 자주 등장하는 태고의 상태’를 떠올리게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를 인간과 주님의 관계가 가장 순수하고 살아 있던 상태로 보는데, 여기서의 옛적 역시 그런 더 깊고 순전한 상태를 암시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단순한 민족적 회복이 아니라, 인간 영혼의 원래 질서 회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AC.23에 인용하여, 말씀의 날들’이 언제나 상태 중심의 언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증합니다. 창세기 1장의 첫째 날’, ‘둘째 날’도 마찬가지로, 우주의 시간표가 아니라 인간 안에서 주님께서 새롭게 하시는 영적 상태들의 연속이라는 것입니다.

 

즉, 예레미야 애가의 날들을 새롭게 하소서’는 결국 창세기의 날들’과 같은 언어이며, 둘 다 주님께서 인간 안에서 다시 생명을 일으키시는 상태의 변화’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AC.23, 창1:5, '날은 곧 상태다 : 시간 너머에서 읽는 거듭남의 리듬'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1:5) AC.23 말씀에서 ‘날’(day)이 시간 자체를 뜻하는 용례보다 더 흔한 것은 없습니다. 이사야에 보면, Nothing is more common in the Word than for “day”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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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 심화 4, ‘렘33:20, 25’

AC.23.심화 4. ‘렘33:20, 25’ 20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25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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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심화

 

4. ‘33:20, 25

 

20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25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주야와 맺은 언약이 없다든지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아니하였다면 (33:20, 25) If ye shall make vain my covenant of the day, and my covenant of the night, so that there be not day and night in their season (Jer. 33:20, also 25).

 

 

이 예레미야 33장 구절이 AC.23에 인용된 이유는, ‘낮과 밤’이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주님께서 세우신 영적 질서의 규례(ordinances)’이며, 따라서 말씀에서 (day)은 상태를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3에서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1장의 날들’을 문자적 시간으로 보지 않고, 인간과 교회의 영적 상태 변화로 읽고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여러 선지서의 용례를 인용하는데, 이 예레미야 구절은 특히 낮과 밤의 교대 자체가 영적 질서의 상징’이라는 점을 드러냅니다.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낮에 대한 나의 언약’,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낮과 밤이 단순한 천체 운동의 결과가 아니라, 주님께서 세우신 질서와 언약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낮과 밤의 반복은 우주의 기계적 순환이 아니라, 영적 세계까지 관통하는 신적 질서의 표현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은 선과 진리의 상태, 곧 신앙과 주님의 빛이 있는 상태를 뜻하고, ‘’은 그 반대 상태, 곧 어둠과 시험, 혹은 진리가 약화된 상태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낮과 밤의 언약’은 인간과 교회 안에서 선과 진리, 빛과 어둠, 위로와 황폐, 시험과 회복이 질서 있게 교대되는 섭리의 법칙을 가리킵니다.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낮과 밤은 그 계절과 때’를 가지고 움직입니다. 이는 영적 상태에도 정해진 질서와 시기가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항상 같은 밝기 속에 머물 수 없으며, 교회 역시 늘 같은 상태에 있지 않습니다. 아침과 저녁, 봄과 겨울 같은 교대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대는 무질서가 아니라 주님의 언약 안에 있는 질서입니다.

 

25절의 천지의 법칙(ordinances of heaven and earth)이라는 표현은 더욱 결정적입니다. 스베덴보리는 AC.37에서도 이 규례(ordinances)를 영적 상태의 교대를 다스리는 신적 질서로 설명합니다. 하늘과 땅의 법칙이 무너지지 않는 한, 낮과 밤의 질서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는 곧 인간 거듭남의 질서 역시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AC.23에 인용한 이유는, 창세기 1장의 날들’이 단순한 창조 주간의 시간이 아니라, 주님께서 세우신 영적 상태 변화의 질서라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낮과 밤은 시계의 시간이 아니라, 영혼 안에서 반복되는 빛과 어둠, 신앙과 시험, 회복과 황폐의 상태들을 뜻하며, 그 모든 교대는 주님의 언약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AC.23, 심화 5, ‘애5:21’

AC.23.심화 5. ‘애5:21’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애5:21) Renew our days, as of old (Lam.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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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 심화 3, ‘렘6:4’

AC.23.심화 3. ‘렘6:4’ 너희는 그를 칠 준비를 하라 일어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 아하 아깝다 날이 기울어 저녁 그늘이 길었구나 (렘6:4) Woe unto us, for the day is gone down, for the shadows of the ev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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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심화

 

3. ‘6:4

 

너희는 그를 칠 준비를 하라 일어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 아하 아깝다 날이 기울어 저녁 그늘이 길었구나 (6:4) Woe unto us, for the day is gone down, for the shadows of the evening are stretched out (Jer. 6:4).

 

 

6:4 구절이 AC.23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day)이 단순한 시간 개념이 아니라 영적 상태’를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3에서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1장의 날들’을 거듭남의 상태들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 예레미야 구절은 바로 그 해석 원리를 뒷받침하는 대표적 예문입니다.

 

본문에서 핵심 표현은 날이 기울어 저녁 그늘이 길어졌다’는 말입니다. 문자적으로는 하루가 저물어 가는 장면이지만, 선지서의 문맥에서는 단순한 일몰 묘사가 아닙니다. 여기서 ’은 교회와 인간의 영적 상태를 뜻하고, ‘날이 기울어 간다’는 것은 진리와 선의 빛이 약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저녁 그늘이 길어진다’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AC.22에서 이미 스베덴보리는 저녁’을 신앙이 약화되거나 없는 상태, 곧 거짓과 혼합의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저녁 그림자가 길어진다는 것은, 영적 어둠과 거짓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본문 앞부분의 정오에 올라가자’는 말도 상응적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정오는 하루 중 빛이 가장 강한 때를 뜻하므로, 영적으로는 진리가 가장 밝게 드러난 상태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곧이어 날이 기울어 저녁 그늘이 길었다’고 말하는 것은, 교회가 한때 빛 가운데 있었으나 이제 황폐와 어둠으로 기울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즉, 이 구절 전체는 단순한 전쟁의 긴박함이나 하루의 경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인간의 영적 상태 변화, 곧 빛에서 어둠으로 이동하는 상태를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AC.23에 인용하여, 말씀의 ’이라는 표현이 언제나 상태 중심적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창세기 1장의 첫째 날’, ‘둘째 날 역시 단순한 시간 계산이 아니라, 빛과 어둠, 신앙과 거짓, 질서와 혼란 사이를 오가는 인간 내면의 상태 변화를 뜻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3, 심화 4, ‘렘33:2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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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심화

 

2. ‘23:7, 15

 

7이것이 옛날에 건설된 너희 희락의 성 곧 그 백성이 자기 발로 먼 지방까지 가서 머물던 성읍이냐, 15그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연한 같이 칠십 년 동안 잊어버린 바 되었다가 칠십 년이 찬 후에 두로는 기생의 노래 같이 될 것이라 (23:7, 15) Her antiquity is of ancient days. And it shall come to pass in that day that Tyre shall be forgotten seventy years, according to the days of one king (Isa. 23:7, 15).

 

 

이사야 23장 구절이 AC.23에 인용된 이유 역시, 말씀에서 (day)이 단순한 하루가 아니라 상태와 시대’를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3에서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1장의 날들’을 시간 단위가 아니라 거듭남의 상태들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선지서에서 ’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연속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23장도 그 중요한 예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기서 중심은 옛날(ancient days), ‘그날(that day), 그리고 한 왕의 날들(the days of one king)이라는 표현들입니다. 본문은 두로(Tyre)에 대한 예언인데, 문자적으로 보면 한 도시의 역사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런 표현들 안에서 시간 자체보다 상태와 시대’를 읽습니다.

 

먼저 7절의 옛날에 건설된(Her antiquity is of ancient days)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오래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태고의 날들(ancient days) AC 전체에서 자주 태고교회’의 상태, 곧 인간과 교회가 주님과 더 가까웠던 초기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다시 말해, ‘’은 연대가 아니라 영적 상태의 시대입니다.

 

이어 15절에서는 그날부터 두로가 칠십 년 동안 잊혀질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그날’은 하루의 시작 시점이 아니라, 어떤 영적 상태가 시작되는 시대를 뜻합니다. 두로는 말씀에서 흔히 지식(knowledges, cognitiones et scientifica)을 상징하는데, 두로가 잊혀진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 참된 지식이 생명을 잃고 황폐해지는 상태를 뜻합니다.

 

특히 한 왕의 날들에 따라(according to the days of one king)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날들’은 특정 왕의 재위 기간을 문자적으로 말하는 것 이상으로, 그 왕이 대표하는 상태 전체를 뜻합니다. 성경에서 왕은 흔히 진리 혹은 진리의 통치를 상징하므로, ‘한 왕의 날들’은 단순한 시간 길이가 아니라 하나의 영적 질서와 상태의 기간을 뜻하게 됩니다.

 

 칠십 년 역시 단순한 숫자보다 충분한 기간’, 혹은 황폐와 회복을 위한 완전한 상태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이 본문 전체는 도시의 정치사라기보다, 지식이 쇠퇴하고 다시 회복되는 영적 상태의 변화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AC.23에 인용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 안에서 ’은 계속해서 어떤 상태와 시대를 뜻하고 있으며, 창세기 1장의 날들’도 동일한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첫째 날’, ‘둘째 날’은 우주의 시간 계산이 아니라, 인간과 교회의 영적 상태 변화의 단계들이라는 점을 이사야의 용례를 통해 다시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AC.23, 심화 3, ‘렘6:4’

AC.23.심화 3. ‘렘6:4’ 너희는 그를 칠 준비를 하라 일어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 아하 아깝다 날이 기울어 저녁 그늘이 길었구나 (렘6:4) Woe unto us, for the day is gone down, for the shadows of the ev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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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 심화 1, ‘사13:6, 9,13, 22’

AC.23.심화 1. ‘사13:6, 9,13, 22’ 6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9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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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심화

 

1. ‘13:6, 9,13, 22

 

6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9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 13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22그의 궁성에는 승냥이가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하던 궁전에는 들개가 울 것이라 그의 때가 가까우며 그의 날이 오래지 아니하리라 (13:6, 9, 13, 22) The day of Jehovah is at hand. Behold, the day of Jehovah cometh. I will shake the heavens, and the earth shall be shaken out of her place in the day of the wrath of mine anger. Her time is near to come, and her days shall not be prolonged (Isa. 13:6, 9, 13, 22).

 

 

이 이사야 13장 구절이 AC.23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day)이라는 표현이 단순한 24시간의 시간이 아니라, ‘특정한 영적 상태와 시대 전체’를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3에서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1장의 첫째 날’, ‘둘째 날 등을 문자적인 시간 단위로 읽지 않고, 거듭남의 상태들로 읽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해석 원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선지서들에서 ’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예로 드는 것입니다.

 

이사야 13장에서 반복되는 표현은 여호와의 날’입니다. 문자적으로 읽으면 어떤 특정 하루에 재앙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문의 내용은 단 하루의 사건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거대한 상태 변화를 묘사합니다. ‘하늘이 진동하고’, ‘땅이 흔들려 제자리에서 떠나며’, ‘황폐함이 임하고’, ‘죄인들이 멸망한다’는 표현들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교회와 인간 내면 전체의 영적 상태 변화, 곧 심판과 황폐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이 곧 (time)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합니다. 실제로 22절에서는 그의 때가 가까우며 그의 날이 오래지 아니하리라’고 병렬적으로 말합니다. 이는 말씀 안에서 ’이 물리적 하루보다 훨씬 넓은 의미, 곧 어떤 영적 시대나 상태를 뜻한다는 증거입니다.

 

특히 여호와의 날’은 스베덴보리에게 단순한 미래 재난의 날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과 교회의 상태가 드러나고, 주님의 질서 앞에서 판별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분노’와 진노 같은 표현도 문자적으로 하나님이 감정적으로 화를 내신다는 뜻이 아니라, 악과 거짓이 주님의 진리 앞에서 스스로 무너지는 상태를 인간 편에서 느끼는 방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하늘이 진동하고 땅이 흔들린다’는 말은 AC 전체의 상응 구조 안에서 보면, 속 사람과 겉 사람의 질서가 흔들리는 것을 뜻합니다. 하늘은 내적 차원, 땅은 외적 차원을 뜻하므로, 여호와의 날은 단순한 우주적 사건이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의 영적 상태 변화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창세기 1장의 ’을 해석하는 데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만일 성경 전체에서 ’이 시대와 상태를 뜻하는 데 사용된다면, 창세기 1장의  역시 단순한 물리적 하루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점을 AC.23에서 입증하려고 합니다.

 

결국 이사야 13장이 AC.23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이라는 표현이 본질적으로 주님 앞에서의 영적 상태와 시대’를 뜻하는 언어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 원리를 통해, 창세기 1장의 여섯 날은 우주의 시간표가 아니라 인간 거듭남의 여섯 상태로 읽히게 되는 것입니다.

 

 

 

AC.23, 심화 2, ‘사23:7, 15’

AC.23.심화 2. ‘사23:7, 15’ 7이것이 옛날에 건설된 너희 희락의 성 곧 그 백성이 자기 발로 먼 지방까지 가서 머물던 성읍이냐, 15그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연한 같이 칠십 년 동안 잊어버린 바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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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 창1:5, '날은 곧 상태다 : 시간 너머에서 읽는 거듭남의 리듬'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1:5) AC.23 말씀에서 ‘날’(day)이 시간 자체를 뜻하는 용례보다 더 흔한 것은 없습니다. 이사야에 보면, Nothing is more common in the Word than for “day”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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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심화

 

3. ‘8:14, 26

 

14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 하였느니라, 26이미 말한 바 주야에 대한 환상은 확실하니 너는 그 환상을 간직하라 이는 여러 날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 (8:14, 26) The holy one said unto me, Even unto evening when it becomes morning, two thousand and three hundred (Dan. 8:14, 26).

 

 

이 다니엘 8장 구절이 AC.22에 인용된 이유는, ‘저녁’과 ‘아침’이라는 표현이 단순한 하루의 시간 구분이 아니라, ‘신앙의 상실 상태에서 다시 회복되는 영적 상태의 전환’을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2에서 스베덴보리는 ‘저녁’은 신앙이 없는 상태, 곧 거짓과 황폐의 상태를 뜻하고, ‘아침’은 주님의 빛이 다시 비치는 신앙과 진리의 상태를 뜻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니엘 8장의 ‘주야’, 곧 ‘저녁에서 아침으로’라는 표현은 바로 이 영적 리듬을 예언적으로 보여 주는 본문입니다.

 

본문의 중심은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문자적으로는 일정 기간 후 성전이 회복된다는 예언처럼 보이지만,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교회와 인간 내면의 영적 상태 변화로 읽습니다. 여기서 ‘성소’는 주님이 계셔야 할 자리, 곧 인간 안의 거룩한 영역, 혹은 교회 자체를 뜻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더럽혀지고 황폐해진 상태가 바로 ‘저녁’입니다.

 

따라서 ‘저녁이 아침이 된다’는 말은 단순히 밤이 지나고 해가 뜬다는 뜻이 아니라, 황폐와 어둠의 상태가 끝나고, 다시 진리와 신앙의 빛이 회복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AC.22에서 말한 ‘아침’의 의미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곧 ‘아침’은 언제나 주님의 오심과 연결되며, 그 오심은 죽어 있던 영적 상태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새 창조의 시작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여기서 ‘저녁’이 먼저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서입니다. 사람이나 교회는 먼저 자기 힘과 자기 지혜 안에서 황폐함을 경험하게 되고, 그 뒤에야 비로소 주님의 빛을 받아들일 준비가 됩니다. 그래서 ‘저녁  아침’이라는 구조는 단순한 시간 순서가 아니라, 거듭남의 필수 질서입니다.

 

또한 ‘성소가 정결하게 된다’는 표현은, 주님의 빛이 다시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성소는 본래 주님의 임재의 자리인데, 거짓과 자기 사랑으로 어두워졌던 상태가 정결하게 된다는 것은, 다시 주님의 진리와 사랑이 그 중심을 회복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침’입니다.

 

그리고 26절에서 ‘주야에 대한 환상은 확실하다’고 하는 말씀은, 이런 영적 교대가 우연이나 감정 변화가 아니라, 주님의 섭리 안에 있는 확고한 질서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즉, 밤이 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며, 저녁은 반드시 아침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것이 주님의 질서입니다.

 

결국 AC.22에서 이 다니엘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 성경 전체에서 ‘저녁과 아침’이라는 언어가 반복해서 ‘영적 황폐와 회복’, ‘신앙 상실과 재생’, ‘주님의 오심에 의한 새 창조’를 뜻하는 상응 언어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 1장의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는 단순한 우주적 시간 기록이 아니라, 다니엘서에서도 반복되는 ‘거듭남과 회복의 리듬’인 것입니다.

 

 

 

AC.22, 창1:5, '저녁에서 아침으로 : 사람의 것에서 주님의 것으로 나아가는 첫 날의 질서'(AC.22-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rst day. (창1:5) AC.22 이제 ‘저녁’(evening)이 무엇을 뜻하고, ‘아침’(morning)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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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 심화 2, ‘삼하23:2-4’

AC.22.심화 2. ‘삼하23:2-4’ 2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3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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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심화

 

2. ‘삼하23:2-4

 

2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3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4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삼하23:2-4) The spirit of Jehovah spake in me, and his word was on my tongue; the God of Israel said, the rock of Israel spake to me. He is as the light of the morning, when the sun ariseth, even a morning without clouds, when from brightness, from rain, the tender herb springeth out of the earth (2 Sam. 23:2–4).

 

 

이 사무엘하 23장 구절이 AC.22에 인용된 이유는, ‘아침(morning)이 단순한 하루의 시작이 아니라, 주님의 임재로 인해 진리와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영적 상태를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2에서 스베덴보리는 저녁’은 신앙이 없는 상태, 곧 어둠과 거짓의 상태를 뜻하고, ‘아침’은 주님의 빛이 임하는 진리와 신앙의 상태를 뜻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아침’의 본질을 가장 아름답고 생생하게 보여 주는 본문으로 이 다윗의 마지막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본문은 먼저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다’는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이는 이어지는 묘사가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니라, 영적 상태에 대한 계시라는 뜻입니다. 이어서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가 묘사되는데, AC의 흐름에서 이런 사람은 단순한 정치적 통치자가 아니라, 주님의 질서 안에 들어온 거듭난 인간, 혹은 최고 의미에서는 주님 자신을 뜻합니다.

 

그다음 등장하는 핵심 이미지가 바로 돋는 해의 아침 빛’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sun)는 언제나 사랑, 특히 주님의 사랑을 뜻하고, 그 해에서 나오는 빛은 진리를 뜻합니다. 따라서 아침 빛’은 단순한 밝음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진리가 인간 안에 비치기 시작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이 AC.22에서 말하는 아침’의 본질입니다.

 

또한 구름 없는 아침’이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구름은 종종 문자적, 외적, 혹은 아직 완전히 밝아지지 않은 상태를 뜻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구름이 없습니다. 이는 진리가 가려지지 않고 맑게 비치는 상태, 곧 혼합과 어둠이 물러간 상태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저녁과 밤을 지나 마침내 주님의 빛이 방해받지 않고 비치는 상태입니다.

 

이어지는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이라는 표현은 AC.22의 핵심과 직접 연결됩니다. 비는 진리의 유입을, 광선은 주님의 빛을 뜻하며, 새 풀은 그 결과로 나타나는 새로운 생명과 선한 삶의 시작을 뜻합니다. 즉, 주님의 빛과 진리가 인간 안에 들어오면, 그 결과로 새로운 생명이 움트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입니다.

 

특히 이 이미지는 매우 부드럽고 점진적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거듭남을 폭력적 단절이나 즉각적 완성으로 보지 않습니다. 새 풀이 돋아나는 것처럼, 생명은 조용하고 질서 있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AC.22에서 말한 저녁에서 아침으로의 이동’이 실제로 어떤 상태인지를 감각적으로 보여 줍니다.

 

결국 이 구절이 AC.22에 인용된 이유는, ‘아침’이라는 상징을 단순한 시간 개념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진리가 인간 안에 비추어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는 상태로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윗의 이 시적 묘사는, 창세기 1장의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가 단순한 하루의 반복이 아니라, 영적 생명의 회복과 거듭남의 리듬이라는 사실을 매우 아름답게 증언하는 본문인 것입니다.

 

 

 

AC.22, 심화 1, ‘저녁, 아침 설명과 단8:14, 26 인용’

AC.22.심화 1. ‘저녁, 아침 설명과 단8:14, 26 인용’ AC.22, ‘As it is “evening” when there is no faith, and “morning” when there is faith, therefore the coming of the Lord into the world is called “morning”; and the time when 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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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0.심화

 

4. ‘1:1, 3-4, 9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1, 3-4, 9)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God was the Word. All things were made by him, and without him was not anything made that was made. In him was life, and the life was the light of men. And the light shineth in darkness. He was the true light, which lighteth every man that cometh into the world (John 1:1, 3–4, 9).

 

 

이 요한복음 1장 구절이 AC.20에 인용된 이유는, 창세기 1장의 빛이 있으라’는 말씀이 단순한 물리적 빛의 창조가 아니라, 주님 자신으로부터 오는 생명과 진리의 유입을 뜻한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AC.20에서 스베덴보리는 사람이 거듭남의 첫 단계에 들어설 때, 비로소 주님이 계시며, 그분이 선 자체요 진리 자체이심’을 알게 된다고 설명했는데, 요한복음 1장은 바로 그 진리를 가장 직접적으로 선언하는 본문입니다.

 

먼저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는 선언은, 창세기 1장의 태초’를 다시 해석하는 열쇠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말씀(the Word)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주님에게서 나오는 신적 진리 자체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는 주님과 분리된 무엇이 아니라, 곧 하나님 자신입니다. 따라서 창세기의 창조는 물질 우주를 만드는 사건 이전에, 신적 진리가 인간 안에 질서를 세우는 과정으로 읽혀야 합니다.

 

이어지는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는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여기서 만물’은 단지 자연계만이 아니라, 인간 안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모든 영적 질서까지 포함합니다. 즉, 거듭남 속에서 이루어지는 새 창조 역시 말씀, 곧 주님의 진리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AC 전체의 흐름에서 보면, 창세기 1장의 여섯 날은 모두 이 말씀의 역사’에 의해 진행됩니다.

 

특히 AC.20과 직접 연결되는 부분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는 말씀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생명과 빛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단순히 빛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생명 자체이시며, 그 생명이 인간 안에서는 ’으로 경험됩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진리를 보기 시작하는 것은 단순한 지적 계몽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이 그 안에 스며들기 시작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의 빛이 있으라’는 말은 단순히 우주 공간에 광자가 생겼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안에 처음으로 주님에게서 오는 생명의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AC.20에서 말하는 빛의 최초 침투’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은 그 빛 안에서 자기 선이 사실은 선이 아니었음을 보고, 동시에 주님만이 선과 진리의 근원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였다’는 흐름도 AC.20의 문맥과 깊이 연결됩니다. 거듭남 이전 인간은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 속에 있기 때문에, 빛이 와도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참 빛’은 모든 사람에게 비춥니다. 이는 거듭남의 시작이 인간 쪽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먼저 비추시는 주님의 역사라는 뜻입니다.

 

결국 AC.20에서 이 요한복음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 창세기 1장의 ’을 올바르게 이해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빛은 물리적 빛 이전에, 주님 자신에게서 나오는 생명의 빛이며, 말씀의 빛이며, 인간 안에서 거듭남을 시작하게 하는 진리의 빛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은 창세기 1장의 속뜻을 해설하는 복음서적 열쇠 역할을 합니다.  창조의 빛’은 곧 말씀의 빛’이며, 그 빛은 결국 주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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