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4)
AC.490
말씀에서 ‘딸들’(daughters)은 자주 선들을 의미합니다. 다윗의 시에서 In the Word “daughters” frequently denote goods; as in David:
9왕이 가까이 하는 여인들 중에는 왕들의 딸이 있으며 왕후는 오빌의 금으로 꾸미고 왕의 오른쪽에 서도다 10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11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12두로의 딸은 예물을 드리고 백성 중 부한 자도 네 얼굴 보기를 원하리로다 13왕의 딸은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니 그의 옷은 금으로 수놓았도다 14수놓은 옷을 입은 그는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며 시종하는 친구 처녀들도 왕께로 이끌려 갈 것이라 15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함을 받고 왕궁에 들어가리로다 16왕의 아들들은 왕의 조상들을 계승할 것이라 왕이 그들로 온 세계의 군왕을 삼으리로다 17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 (시45:9-17) Kings’ daughters were among thy precious ones; at thy right hand doth stand the queen in the best gold of Ophir; the daughter of Tyre with a gift; the king’s daughter is all glorious within; of eyelet work of gold is her raiment; instead of thy fathers shall be thy sons, (Ps. 45:9-17)
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딸’(daughter)에 의해 사랑과 신앙의 선과 아름다움이 묘사됩니다. 이로부터 교회들은 선에 의해 ‘딸들’이라 불리는데, ‘딸 시온’(daughter of Zion), ‘딸 예루살렘’(daughter of Jerusalem)(사37:22 및 다른 많은 곳들)이 그러합니다. 또한 그들은 ‘내 딸 백성’(daughters of my people)(사22:4), ‘딸 다시스’(daughter of Tarshish)(사23:10), ‘딸 시돈’(daughter of Sidon)(사23:12), 그리고 ‘들에 있는 딸들’(daughters in the field)(겔26:6, 8)이라고도 불립니다. where the good and beauty of love and faith are described by the “daughter.” Hence churches are called “daughters” by virtue of goods, as the “daughter of Zion” and the “daughter of Jerusalem” (Isa. 37:22, and in many other places); they are also called “daughters of my people” (Isa. 22:4), the “daughter of Tarshish” (Isa. 23:10), the “daughter of Sidon” (verse 12), and “daughters in the field” (Ezek. 26:6, 8).
여호와께서 그에 대하여 이같이 이르시되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조소하였고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사37:22)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내 딸 백성이 패망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나를 위로하려고 힘쓰지 말지니라 (사22:4)
10딸 다시스여 나일 같이 너희 땅에 넘칠지어다 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 12이르시되 너 학대 받은 처녀 딸 시돈아 네게 다시는 희락이 없으리니 일어나 깃딤으로 건너가라 거기에서도 네가 평안을 얻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사23:10, 12)
6들에 있는 그의 딸들은 칼에 죽으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8그가 들에 있는 너의 딸들을 칼로 죽이고 너를 치려고 사다리를 세우며 토성을 쌓으며 방패를 갖출 것이며 (겔26:6, 8)
해설
말씀에서 ‘딸들’이 선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스베덴보리의 해석 체계에서 이미 확립된 기본 원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AC.490은 이 원리를 다시 한번 시편과 예언서의 풍부한 사례를 통해 확증하며, 왜 교회가 자주 ‘딸’로 불리는지를 설명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딸’이라는 표현이 결코 약하거나 부차적인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본질을 드러내는 언어’라는 사실입니다.
다윗의 시편에서 묘사되는 ‘왕의 딸’의 모습은 매우 화려하고 깊은 상징을 담고 있습니다. 오빌의 금으로 단장한 왕비, 안에 영광이 가득한 딸, 금으로 수놓은 옷을 입은 딸은 모두 외적 장식의 과시가 아니라,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는 선의 내적 아름다움’을 말합니다. 이 아름다움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 이전에, 내면에 충만한 선의 상태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왕의 딸은 그 안에 영광이 가득하다’고 말합니다.
이 대목에서 주목할 것은, 선이 언제나 중심에 놓여 있다는 점입니다. 진리는 선을 드러내고 보호하는 옷과 같고, 선은 그 안에 거하는 생명입니다. 그래서 시편은 옷의 금빛을 말하면서도, 먼저 ‘안에 가득한 영광’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딸’이 선을 의미하는 이유입니다. 선은 교회의 생명이며, 교회가 교회답게 존재하게 하는 중심입니다.
이 원리로부터 교회가 ‘딸’로 불리는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딸 시온’(daughter of Zion), ‘딸 예루살렘’(daughter of Jerusalem)이라는 표현은 지리적 명칭이 아니라, ‘선에 의해 규정된 교회 상태’를 가리킵니다. 시온은 사랑의 선과 연결되고, 예루살렘은 진리의 교리와 연결되지만, 두 경우 모두 ‘딸’이라는 표현을 통해 선이 중심임이 강조됩니다. 진리는 중요하지만, 교회를 교회로 만드는 것은 언제나 선입니다.
‘내 딸 백성’(daughters of my people)이라는 표현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이는 개별적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주님께 속한 백성 가운데서 살아 있는 선들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교회가 황폐해질 때, 성경은 종종 ‘딸들이 상하였다’, ‘딸들이 사로잡혔다’고 말하는데, 이는 사람이 고통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선의 상태가 손상되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회복의 약속에서는 ‘딸들이 기뻐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선이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입니다.
‘딸 다시스’(daughter of Tarshish), ‘딸 시돈’(daughter of Sidon), ‘들에 있는 딸들’(daughters in the field)과 같은 표현들도 모두 교회의 다양한 상태를 선의 관점에서 묘사한 것입니다. 다시스와 시돈은 외적 지식과 상업적 교류로 상징되는 영역과 연결되는데, 그곳에서도 ‘딸’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것은, 외적 영역일지라도 교회가 존재하는 한 ‘선의 관점에서 평가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들에 있는 딸들은 교리의 중심지 밖에 있는 선의 상태들, 곧 보다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여전히 주님께 속한 선들을 가리킵니다.
이 모든 용례는 창세기 5장에서 말하는 ‘딸들’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해줍니다. 그 딸들은 어떤 족장의 실제 딸들이 아니라, 그 교회 상태 안에서 형성되고 보존된 선들의 퍼져나감을 말합니다. 교회가 ‘딸들을 낳았다’는 말은, 그 교회가 선을 풍성히 지니고 있었고, 그 선이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는 어떤 ‘딸들’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지식과 말, 활동과 제도는 많을지라도, 그 안에 살아 있는 선이 없다면, 성경의 언어로 말해 그것은 ‘딸이 없는 교회’입니다. 반대로 규모가 작고 눈에 띄지 않더라도, 선이 살아 있다면, 그 교회는 ‘왕의 딸’처럼 안에 영광이 가득한 교회입니다.
결국 AC.490은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을 다시 세워 줍니다. 교회의 아름다움은 외적 장식이나 성과가 아니라, ‘선의 충만함’에 있습니다. 성경이 교회를 ‘딸’이라 부르는 이유는, 교회가 본질적으로 주님과의 사랑 관계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기 때문입니다. 이 관점을 붙들 때, 우리는 교회의 참된 영광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보게 됩니다.
AC.489, 창5:4, ‘자녀들’(sons and daughters)은 진리들과 선들을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4) AC.489 ‘자녀들’(sons and daughters)은 그들이 퍼셉션하였던 진리들과 선들, 곧 ‘아들들’(sons)은 진리들을, ‘딸들’(daughters)은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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