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천국을 만드는 것은 주님의 신성이다
It Is the Divine of the Lord That Makes Heaven
HH.8
천국에 있는 모두가 알고, 믿으며, 심지어 지각하기(perceive)까지 하는 게 있는데, 그것은 곧 스스로 뭘 의도하거나 행하는 게 전혀 없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 뭘 생각하거나 믿는 것도 전혀 없다는 것, 대신 오직 신성(the Divine)으로, 그러니까 오직 주님한테서 오는 걸로만 그렇다는 것, 그리고 또 자신한테서 나오는 선은 선이 아니며, 진리 역시 자기한테서 나오는 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는 그것들 안에는 신성으로 말미암는 생명이 전혀 없기 때문이지요. 더 나아가, 가장 내적 천국(the inmost heaven) 천사들은 그 인플럭스를 분명히 지각하고 느끼며, 그것을 더 많이 받아들이면 들일수록 자신들이 더욱더 천국 안에 있는 걸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그들은 사랑과 신앙 안에, 지성과 지혜의 빛 안에, 그리고 거기서 오는 천적 기쁨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주님의 신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바로 그 안에서 천사들은 자기들의 천국(their heaven)을 가지므로, 천국을 만드는 것은 천사들한테나 어울리는 그들 고유의 어떤 것(proprium. own, 고유 본성)이 아니라 주님의 신성임이 분명합니다.(주16) 이것이 왜 천국을 말씀에서 주님의 ‘거처’(dwelling place)라 하고, ‘그의 보좌’(his throne)라 하며, 그곳에 있는 이들을 ‘주님 안에 있다’고 하는가 하는 이유입니다.(주17) 그러나 신성이 어떤 식으로 주님으로부터 나아와 천국을 채우는지는 이어지는 내용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Everyone in the heavens knows and believes and even perceives that he wills and does nothing of good from himself, and that he thinks and believes nothing of truth from himself, but only from the Divine, thus from the Lord; also that good from himself is not good, and truth from himself is not truth, because these have in them no life from the Divine. Moreover, the angels of the inmost heaven clearly perceive and feel the influx, and the more of it they receive the more they seem to themselves to be in heaven, because the more are they in love and faith and in the light of intelligence and wisdom, and in heavenly joy therefrom; and since all these go forth from the Divine of the Lord, and in these the angels have their heaven, it is clear that it is the Divine of the Lord, and not the angels from anything properly their own that makes heaven.16 This is why heaven is called in the Word the “dwelling place” of the Lord and “his throne,” and those who are there are said to be in the Lord.17 But in what manner the Divine goes forth from the Lord and fills heaven will be told in what follows.
주16. 천국 천사들은 모든 선은 주님으로 말미암으며, 자신들로부터는 아무것도 말미암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주님은 그들 안에 있는 주님의 것 안에 계시고, 그들의 것 안에는 계시지 않으신다. The angels of heaven acknowledge all good to be from the Lord, and nothing from themselves, and the Lord dwells in them in His own and not in their own (n. 9338, 10125, 10151, 10157). 그래서 말씀에서 ‘천사들’은 주님께 속한 무엇을 의미한다. Therefore in the Word by “angels” something of the Lord is meant (n. 1925, 2821, 3039, 4085, 8192, 10528). 더 나아가 천사들은 주님으로 말미암는 신성 수용체라는 의미에서 ‘신들’이라 한다. Furthermore, angels are called “gods” from the reception of the Divine from the Lord (n. 4295, 4402, 7268, 7873, 8192, 8301). 거듭, 선이기 때문에 선한 모든 것, 진리이기 때문에 진리인 모든 것, 결과적으로, 모든 평화, 사랑, 체어리티, 그리고 신앙은 주님으로 말미암는다. Again, all good that is good, and all truth that is truth, consequently all peace, love, charity, and faith, are from the Lord (n. 1614, 2016, 2751, 2882, 2883, 2891, 2892, 2904). 또한 모든 지혜와 지성도 마찬가지다. Also all wisdom and intelligence (n. 109, 112, 121, 124).
주17. 천국에 있는 사람들을 주 안에 있다고들 한다. Those who are in heaven are said to be in the Lord (n. 3637, 3638).
해설
이 글은 HH.7의 내용을 한층 더 깊이 밀어붙입니다. HH.7이 ‘천국은 주님의 신적 사랑과 신적 진리를 받아들이는 상태’라고 했다면, HH.8은 그 받아들임이 얼마나 철저한 자기 부인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천국의 모든 천사는 ‘선을 의도하는 것, 이것은 나한테서 나오는 게 아니다. 진리를 생각하는 것, 이것도 마찬가지다’라는 것을 단지 교리적으로만이 아닌, ‘알고, 믿고, 지각하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지각한다’(perceive)는 말은 단순한 추론이 아니라, 내적 확신이며 살아 있는 인식입니다. 천사에게는 이것이 사상(思想)이 아니라 경험입니다.
왜냐하면 자기한테서 나온 선과 진리는 ‘신적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생명은 오직 주님께만 속합니다. 피조물은 생명의 그릇입니다. 따라서 ‘자기에게서 나온 선’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자기 사랑과 공로 의식이 섞인 선이며, 그 안에는 하늘의 빛이 없습니다. 천사들은 이것을 분명히 압니다.
특히 ‘가장 내적 천국’ 천사들은 ‘인플럭스’(influx, 유입)를 분명히 느낀다고 합니다. 인플럭스는 스베덴보리 사상의 핵심 개념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진리가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며, 천사는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더 많이 받을수록 자기 자신이 더 살아 있는 것처럼, 더 천국 안에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인간의 자연적 사고로는 ‘내 것이 아니면 나는 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천국의 질서는 그 반대입니다. ‘내 것이 아니라고 인정할수록, 나는 더 충만해진다.’ 왜냐하면 그때 비로소 사랑과 신앙, 지성과 지혜, 그리고 거기서 오는 천적 기쁨이 온전히 흐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천국은 어떤 외적 환경이 아니라, ‘사랑 안에 있음’, ‘신앙 안에 있음’, ‘지성과 지혜의 빛 안에 있음’, ‘거기서 오는 기쁨 안에 있음’으로 정의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주님의 신성으로부터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만드는 것은 천사들의 프로프리움(proprium. own, 고유 본성)이 아니라, 주님의 신성입니다.
그래서 말씀에서는 천국을 ‘주님의 거처’, ‘그의 보좌’라고 부릅니다. 이는 공간적 표현이 아니라 상태적 표현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진리가 충만히 받아들여지는 곳이 곧 그의 거처이며 보좌입니다. 또한 천사들이 ‘주님 안에 있다’고 하는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이 글은 결국 우리에게 한 가지 근본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선과 진리를 어디에서 온 것으로 인정하는가?’ 만일 내가 ‘내가 옳다, 내가 선하다, 내가 했다’는 생각에 머문다면, 그만큼 인플럭스는 가려집니다. 그러나 ‘모든 선과 진리는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온다’는 고백이 단지 말이 아니라 실제 인식이 될 때, 그만큼 사랑과 빛과 기쁨이 열립니다.
HH.8은 천국의 본질을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천국은 주님의 신성이 받아들여지는 상태이다.’ 그리고 그 받아들임은 자기 고유 본성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그 신성이 어떻게 나아가 천국을 채우는지 설명하겠다고 합니다. 이로써 스베덴보리는 천국을 심리적, 영적 역동 속에서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심화
1. ‘천국에 있는 모두가 알고, 믿으며, 심지어 지각하기(perceive)까지 하는 게 있는데’
‘알고, 믿고, 심지어 지각한다’는 표현은 단순한 반복이나 강조가 아니라, 의식의 서로 다른 층위를 가리키는 점층적 구조입니다. 먼저 ‘안다’(know)는 것은 지성의 차원입니다. 어떤 교리를 듣고 이해하며, 논리적으로 납득하는 단계입니다. 예를 들어 ‘모든 선은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말을 듣고 그 뜻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은 앎입니다. 다음으로 ‘믿는다’(believe)는 것은 그 이해에 동의하는 단계입니다. 단순히 뜻을 아는 것을 넘어 ‘그렇다’고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차원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아직 생각과 판단의 영역에 속합니다.
‘지각한다’(perceive)는 것은 그 진리가 단지 생각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의지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추론의 결과가 아니라, 내적 빛 속에서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확신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을 아는 것과, 그 말이 참이라고 믿는 것은 가능하지만, 실제로 기도 가운데 그 사랑이 자기 안에 흘러들어와 마음이 녹고 평안과 기쁨이 동반되는 경험은 지각의 차원입니다. 또 ‘불은 뜨겁다’는 것을 배우는 것은 앎이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믿음이지만, 실제로 불 가까이에서 열기를 느끼는 것은 지각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지각은 바로 이런 살아 있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HH.8에서 천국의 모든 이가 ‘알고, 믿고, 지각한다’고 한 것은, 그들이 단지 교리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선과 진리가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실제로 느끼며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사상이 아니라 경험입니다. 진리가 그들의 사랑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은 내적 감각처럼 분명합니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진리를 알고 심지어 믿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사랑과 결합되지 않으면 지각하지는 못합니다.
앎은 머리의 빛이고, 믿음은 의지의 동의이며, 지각은 사랑 안에서 느끼는 내적 빛입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살아 있는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HH.8은 바로 그 살아 있는 차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2. ‘오직 신성(the Divine)으로, 그러니까 오직 주님한테서 오는 걸로만 그렇다는 것’
먼저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스베덴보리에게서 ‘주님’(the Lord)과 ‘신성’(the Divine)은 서로 다른 두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신성은 주님과 분리된 어떤 에너지나 힘이 아니라, 주님의 본질이며 주님 자신입니다. 다만 표현의 관점이 다를 뿐입니다. ‘주님’이라는 말은 인격적 호칭으로, 사랑하시고 인도하시고 말씀하시는 분을 가리킵니다. 반면 ‘신성’이라는 말은 그 주님의 본질적 생명, 곧 사랑과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존재는 하나이되,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는 각도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HH.8에서 ‘신성으로부터, 곧 주님으로부터’라고 병렬로 말하는 것은 둘을 구분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이 추상적 무엇이 아니라 바로 주님 자신임을 분명히 하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도 주님을 영적 태양에 비유하며, 그 태양으로부터 사랑의 열과 진리의 빛이 나온다고 설명합니다. 이 비유를 사용할 때 중요한 점은, 열과 빛이 태양과 다른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열과 빛은 태양의 발현이며, 태양이 밖으로 나타난 방식입니다. 태양이 없으면 열과 빛도 없고, 열과 빛이 닿는 곳에는 태양의 영향과 현존이 실제로 작용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성은 주님이 사랑과 진리로 우리에게 나아오시는 방식이며, 우리가 받는 것은 어떤 비인격적 에너지가 아니라 주님 자신의 사랑과 진리입니다.
주님은 영적 태양과 같고, 신성은 그 태양에서 나오는 사랑의 열과 진리의 빛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열과 빛은 태양과 분리된 다른 무엇이 아니라, 태양 자신이 밖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직접 물리적으로 들어오시는 것은 아니지만, 그분의 사랑과 진리가 우리 안을 채울 때, 우리는 실제로 주님의 현존 안에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성은 주님과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 안에 임하시는 살아 있는 방식입니다.
3. ‘가장 내적 천국(the inmost heaven) 천사들’
‘가장 내적 천국’(the inmost heaven)이라는 표현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내적’이라는 말을 들으면 공간적 안쪽을 먼저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내적’은 공간의 깊이가 아니라 사랑의 깊이, 수용의 깊이를 말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천국은 위아래로 층이 있는 장소라기보다,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얼마나 깊이 받아들이느냐에 따른 상태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가장 내적’이란 더 안쪽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을 가장 순수하고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사람 안에도 바깥 생각이 있고, 더 깊은 생각이 있으며, 그보다 더 깊은 마음의 중심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같은 말을 해도, 어떤 사람은 습관적으로 말하고, 어떤 사람은 진심으로 말하며, 어떤 사람은 사랑에서 우러나와 말합니다. 이처럼 인간 안에도 층이 있습니다.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천국이지만, 어떤 이는 주님의 사랑을 더 깊이, 더 직접적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이는 비교적 외적인 진리의 빛을 통해 받아들입니다. 그 차이를 가리켜 ‘가장 내적’, ‘중간’, ‘가장 외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내적’은 거리의 개념이 아니라 친밀도의 개념입니다. 태양에 더 가까운 행성이 더 많은 빛과 열을 받는 것처럼, 주님의 사랑에 더 깊이 열려 있는 상태를 ‘내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내적 천국’의 천사들은 주님의 사랑의 유입, 곧 인플럭스를 가장 분명히 느끼고, 그 사랑 안에서 사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먼저 따져서 사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사랑 안에서 즉각적으로 옳고 선한 것을 지각하는 상태에 있는 이들입니다.
‘가장 내적 천국이란, 주님의 사랑을 가장 깊이 받아들이는 상태를 말합니다.’
4. ‘그 안에서 천사들은 자기들의 천국(their heaven)을 가지므로’
‘그 안에서 천사들은 자기들의 천국(their heaven)을 가진다’는 표현은 처음 들으면 마치 각자가 따로 자기 전용 천국을 소유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어서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their’는 소유권의 의미가 아니라 ‘수용의 정도에 따른 고유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천국은 하나이며, 그 본질은 주님의 신적 사랑과 신적 진리입니다. 하지만 그 동일한 신성이 각 천사 안에서 받아들여지는 방식과 깊이가 다르기 때문에, 각 천사는 그 수용에 따라 ‘자기에게 해당하는 천국’을 경험합니다.
이미 ‘가장 내적’, ‘중간’, ‘가장 외적’ 천국으로 구분된다고 했을 때, 그것은 큰 범주의 구분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각 천사들은 서로 다릅니다. 마치 하나의 오케스트라 안에서 모두 같은 곡을 연주하지만, 각 악기는 서로 다른 음색과 역할을 가지는 것과 같습니다. 음악은 하나이지만, 각 악기는 그 음악을 자기 방식으로 담고 울립니다. 이처럼 천국은 하나의 유기적 전체이지만, 각 천사는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자기 고유한 사랑과 기능에 따라 받아들이고, 바로 그 수용 안에서 ‘자기 천국’을 가집니다.
‘천국은 하나이지만, 각 사람은 그 천국을 자기 마음의 그릇만큼 담습니다.’ 같은 햇빛이 비추어도 수정과 유리, 물은 서로 다르게 빛을 반사합니다. 빛은 하나지만, 반사되는 색과 광채는 다릅니다. 그 차이를 가리켜 ‘자기들의 천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리된 여러 천국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의 천국이 각 존재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방식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누가 ‘이미 가장 내적, 중간, 가장 외적으로 나뉘어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수 있습니다. 그 구분은 큰 구조이고, ‘자기들의 천국’은 그 구조 안에서 각 천사가 주님의 신성을 받아들이는 고유한 상태를 말합니다. 천국은 공동체적이면서도 동시에 인격적입니다. 모두가 하나의 천국에 속하지만, 그 천국은 각 사람 안에서 각기 다른 깊이와 색채로 살아 있습니다.
‘천국은 하나이되, 각 천사는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자기 고유한 상태 안에서 그 천국을 경험한다.’ 이것이 ‘their heaven’의 의미입니다.
5. ‘천사들한테나 어울리는 그들 고유의 어떤 것(proprium. own, 고유 본성)이 아니라’
‘프로프리움’(proprium)이 어려운 이유는, 이 단어가 단순히 ‘자기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주님과 분리된 채 자기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느끼는 생명 의식 전체’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프로프리움은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내가 스스로 사랑하고, 내가 스스로 선을 행한다’고 느끼는 그 자아 중심의 감각입니다. 겉으로는 자율성과 개성처럼 보이지만,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주님과 단절된 상태일 때, 참된 생명을 담지 못하는 왜곡된 중심이 됩니다.
중요한 점은, 스베덴보리가 ‘고유 본성’이라고 할 때, 단순히 개성이나 인격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분명 고유한 성향과 기능, 독특한 자리와 역할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거되어야 할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을 ‘근원으로부터 독립된 것’으로 여길 때입니다. 프로프리움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자기 것으로 돌리는 태도’이며, 더 깊이 말하면 ‘자기 자신을 생명의 근원으로 여기는 상태’입니다.
달은 빛을 냅니다. 그러나 달은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태양빛을 반사합니다. 만약 달이 ‘이 빛은 내 것이다’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이 바로 프로프리움의 상태입니다. 빛을 반사하는 고유한 모습은 남아 있어야 하지만, 빛의 근원을 자기로 돌리는 순간 왜곡이 시작됩니다. 스베덴보리가 ‘프로프리움은 본질상 악하다’고까지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기중심으로 굽어 들어가는 사랑, 곧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을 중심에 두기 때문입니다.
또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프로프리움은 내가 주인이라고 느끼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천국의 질서는 내가 주인이 아니라 주님이 주인이시라는 것을 아는 데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아는 것’은 단지 교리적 동의가 아니라, 실제로 모든 선과 진리를 주님께 돌리는 내적 방향 전환을 말합니다.
따라서 ‘천사들 고유의 어떤 것(proprium)이 아니라’라는 말은, 천국을 이루는 것이 천사들의 독립적 능력이나 자아적 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들 안에 있는 선과 진리는 그들의 소유물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것은 ‘근원과 연결된 고유성’이지, ‘근원과 단절된 자아’가 아닙니다.
‘프로프리움은 내가 스스로 살아 있고 스스로 선하다고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참된 생명은 주님에게서 오며,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프로프리움은 주님의 질서 안으로 재정렬됩니다.’
6. ‘그 인플럭스(influx, 유입)를 분명히 지각하고 느끼며’
‘인플럭스’(influx, 유입)와 ‘퍼셉션’(perception, 지각)의 차이는 방향과 위치를 구분하면 비교적 쉽습니다. 인플럭스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흐름’이고, 퍼셉션은 ‘그 흐름을 안에서 알아차리는 내적 감각’입니다. 하나는 원천에서 나오는 작용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작용이 도달했을 때 생기는 의식입니다. 쉽게 말해 인플럭스는 ‘들어오는 것’이고, 퍼셉션은 ‘그 들어옴을 느끼는 것’입니다.
비유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햇빛이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인플럭스입니다. 그런데 그 방 안에 있는 사람이 따뜻함과 밝음을 느끼는 것은 퍼셉션입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것은 인플럭스이고, 그 바람을 피부로 감지하는 것은 퍼셉션입니다. 음악이 울려 퍼지는 것은 인플럭스이고, 그 음악의 화성과 조화를 마음으로 감지하는 것은 퍼셉션입니다. 들어오는 것과 느끼는 것은 구분됩니다.
스베덴보리의 구조 안에서 보면, 인플럭스는 항상 주님에게서 먼저 시작됩니다. 사랑과 진리, 생명은 위로부터 흘러옵니다. 인간이나 천사는 그 근원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유입이 곧바로 퍼셉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이 순수할수록, 자기 중심성이 적을수록, 그 유입은 더 분명히 느껴집니다. 그래서 ‘가장 내적 천국’의 천사들은 인플럭스를 분명히 지각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유입은 모든 천사에게 있지만, 그것을 자각하는 깊이는 다릅니다.
또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인플럭스는 객관적 사실이고, 퍼셉션은 주관적 체험입니다. 주님으로부터의 유입은 언제나 일어나고 있지만, 그것을 의식하는가 아닌가는 사랑의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마치 공기가 항상 우리를 둘러싸고 있지만, 숨을 깊이 들이쉴 때 더 또렷이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인플럭스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흐름이고, 퍼셉션은 그 흐름을 안에서 느끼는 빛입니다.’
유입은 근원 쪽의 작용이고, 지각은 수용 쪽의 반응입니다. 둘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관계 안에 있습니다. 주님이 흘러오시고, 천사는 그것을 느낍니다. 바로 그 만남의 자리에서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HH.7, 2장, '천국을 만드는 것은 주님의 신성이다' (HH.7-12)
2천국을 만드는 것은 주님의 신성이다It Is the Divine of the Lord That Makes Heaven HH.7천사들을 다 합쳐 ‘천국’(heaven)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천국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나 개별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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