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026/07/05, 성찬)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37, ‘주 예수 이름 높이어’, 230, ‘우리의 참되신 구주시니’(성찬), 83, ‘나의 맘에 근심 구름입니다.

 

오늘 3 다섯 번째, 본문은 창3:14이고, AC 글 번호로는 233번에서 249입니다.  

 

먼저 본문,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3:14)

 

제목은

 

하늘을 잃은 인간과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신 주님

 

이며, 다음은 AC.234-249입니다. 그전에 먼저 오늘 범위에 대한 요약 설명 후, 전체 글 중 특별히 몇몇 글을 리딩하겠니다.

 

참고로, 창3은 모두 세 마디로 되어 있습니다. 각각 1-13절, 14-19절, 그리고 20-24절이지요. 이중 오늘은 가운데 마디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마디 시작을 뜻하는 ‘본문, 개요 및 배경(AC.234-241)이 먼저 나오고, 그리고 본문이 시작되는데 오늘은 그 첫 번째 절인 14(AC.242-249), 한 절만 하겠습니다.

 

 

먼저 요약입니다.

 

 

오늘 함께 읽을 본문은 창세기 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로 시작되는 대목을 중심으로, 타락한 인간 안에서 감각 파트(sensuous part)가 어떻게 본래의 질서를 잃고, 하늘을 향하던 시선을 땅과 몸, 그리고 세상으로 돌리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앞선 본문이 아담이 숨은 장면’, 곧 주님의 음성을 두려워하면서도 아직 남아 있는 퍼셉션과 자연적 선의 흔적을 보여주었다면, 오늘 본문은 그 타락이 더 깊어져 감각이 주인이 되고, 이성이 추론으로 변질되며, 인간이 점차 영적 인간성을 잃어 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어두운 흐름 속에서 주님께서 인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장차 세상에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실 약속이 처음으로 비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기도 합니다.

 

먼저 AC.234는 오늘 본문의 큰 배경을 제시합니다. 3 두 번째 마디 전체 개요이지요.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3장이 단순히 아담과 하와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홍수에 이르기까지 태고교회 후손들의 상태를 묘사한다고 말합니다. 교회는 자기 사랑과 감각의 지배, 자기 이성의 확신 속으로 들어가면서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는 길로 갔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파괴의 자리에서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실 것이 예언됩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단순한 저주와 심판의 본문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무너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주님의 구원 약속이 시작되는 본문입니다.

 

AC.235부터 236의 의미와 주님의 약속을 연결합니다.은 실제 동물이 아니라 인간 안의 감각 파트, 곧 보고 만지고 확인할 수 있는 것만을 믿으려는 가장 바깥 부분을 의미합니다. 이 감각 파트는 본래 이성과 속 사람을 섬기는 도구여야 했지만, 타락 이후에는 자신이 주인이 되려 하였습니다. 그 결과 감각은 스스로를 저주하였고 지옥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든 인류가 지옥으로 돌진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자신이 세상에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창세기 315, 흔히 원복음이라 불리는 말씀의 깊은 의미입니다.

 

AC.237238여자남자’, 곧 의지와 이성의 타락을 설명합니다.여자는 자기 자신,own을 너무 사랑하게 된 교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랑의 방향이 주님에게서 자기 자신에게로 바뀌자, 더 이상 진리를 파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에게 아직 이성(rational)을 남겨 두셨습니다. 본래 이성은 왜곡된 애정을 다스리고 진리를 분별하도록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성마저 감각과 자기 사랑에 동의하자, 참된 이성(reason)은 사라지고 자기 생각을 정당화하는 추론(ratiocination)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경고입니다.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서 반드시 진리에 가까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빛 아래서 생각하면 이성이 되지만, 자기 사랑을 방어하기 위해 생각하면 추론이 됩니다.

 

AC.239240은 그 결과로 나타나는 인간 상태를 매우 엄중하게 묘사합니다. 저주, 황폐, 그리고 짐승 같은 본성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저주는 주님이 내리신 형벌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주님의 질서에서 벗어남으로 초래한, 즉 자초한 상태입니다. 황폐는 선과 진리가 점차 사라져 텅 비게 되는 상태이며, 짐승 같은 본성은 주님의 사랑과 진리가 아니라 본능과 욕망의 지배를 받는 상태입니다. 결국 그들은 신앙과 사랑에 속한 모든 것에 혐오를 갖게 되었고, 외형은 인간이지만 영적 의미에서는 더 이상 참된 인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지능이나 외모 때문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C.241은 오늘 본문 전체를 이해하는 매우 아름다운 열쇠입니다. 태고교회의 천적 인간들은 세상 사물을 볼 때 그 사물 자체에 머물지 않고, 그것이 표상하는 천적이고 신적인 것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에게 자연계는 목적이 아니라 창문이었습니다. 나무를 보며 생명을, 빛을 보며 진리를, 열매를 보며 선의 결실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후손들은 사물 자체를 사랑하게 되었고, 감각이 도구가 아니라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통해 하늘을 보지 않고, 하늘을 말하면서도 결국 세상만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감각적 인간의 타락입니다.

 

AC.242부터 249는 창세기 314,뱀이 배로 다니고 흙을 먹을 것이라는 말씀을 자세히 풀이합니다.배로 기어간다는 것은 감각 파트가 더 이상 하늘의 것들을 바라보지 못하고, 오직 몸과 땅의 것들만 바라보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고대인들에게 머리는 가장 높은 것, 가슴은 중간의 것, 배는 가장 낮은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뱀이 배로 기어간다는 것은 인간의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주님에게서 세상으로, 천국에서 몸과 감각으로 내려앉은 상태를 뜻합니다.

 

이와 반대로 사람이 하늘의 것들을 바라볼 때에는 바로 서서 걷는다고 합니다. 레위기의 너희를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는 말씀은 단순한 육체적 자세가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을 애굽의 종살이, 곧 감각과 세상적 지식의 속박에서 해방하여 하늘을 향해 살게 하신 상태를 의미합니다. 반대로 뒤로 물러감’,아래를 봄’,땅에 붙음은 모두 주님에게서 돌아서 자기 자신과 세상을 향하게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흙을 먹는다는 말은 감각적 인간이 더 이상 하늘의 선과 진리로 살지 못하고, 오직 몸과 세상에 속한 것들만을 양식으로 삼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실제 뱀이 흙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듯, 이 말씀도 문자적 형벌이 아니라 영적 상태의 묘사입니다. 사람이 주님과 천국의 것에서 생명을 얻지 못하면, 그는 반드시 다른 것을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때 그가 먹는 것은 세상적 성공, 육체적 만족, 자기 이익, 감각적 확신 같은 입니다. 이것이 감각적 인간의 지옥 상태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전체를 한 흐름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인간은 처음에는 세상을 통해 하늘을 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감각은 속 사람을 섬기고, 이성은 주님의 빛을 받아 진리를 분별하며, 사랑은 주님을 향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사랑이 일어나자 감각이 위로 올라가 주인이 되었고, 이성은 그 감각과 자기 사랑을 정당화하는 추론으로 변했으며, 인간은 점점 아래만 바라보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배로 기어가고 흙을 먹는 뱀처럼, 몸과 세상에 속한 것만을 실재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두운 본문 한가운데서도 주님은 인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이 지옥으로 돌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친히 세상에 오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리딩의 핵심은 감각이 주인이 된 인간의 추락그 추락 속에서도 시작되는 주님의 구원 약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 요약을 마치고, 아래는 AC 본문, 해설 및 심화입니다.


 

AC.234, 창3:14-19, ‘창3:14-19 본문, 개요’(AC.234-279)

창3:14-19 1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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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5, 창3:14-19, ‘14절 개요’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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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6, 창3:14-19, ‘15절 개요’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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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7, 창3:14-19, ‘16절 개요’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And unto the woman he said, I will greatly 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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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8, 창3:14-19, ‘17절 개요’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And unto the man he 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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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9, 창3:14-19, ‘18절 개요’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And the thorn and the thistle shall it bring forth unto thee, and thou shalt eat the herb of the field. (창3:18)AC.239 저주(curse)와 황폐(vastation)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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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0, 창3:14-19, ‘19절 개요’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In the sweat of thy face shalt thou eat bread, till th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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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1, 창3:14-19, ‘배경’

배경AC.241 태고교회의 사람들은 천적 인간(celestial men)이었기 때문에, 세상이나 땅 위의 어떤 사물을 보더라도 단지 그것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물이 의미하거나 표상하는 천적이고 신적인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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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2, 창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AC.242-249)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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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3, 창3:14, ‘배로 다니고 흙을 먹을지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창3:14)AC.243태고교회의 천적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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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4, 창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창3:14)AC.244앞에서 이미 ‘여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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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5, 창3:14, ‘네가 더욱 저주를 받아’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창3:14)AC.245‘그가 뱀에게 이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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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6, 창3:14, ‘들의 모든 짐승’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창3:14)AC.246‘짐승’(beast)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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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7, 창3:14, ‘배로 다니고’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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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8, 창3:14, ‘몸의 자세와 방향을 영적 상태의 상응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창3:14)AC.248그러므로 사람이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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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9, 창3:14, ‘흙’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창3:14)AC.249‘평생 흙을 먹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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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위 링크들 중 오늘 예배 때 시간 관계상 리딩을 위한 선별 글들입니다.

 

 

AC.234, 창3:14-19, ‘창3:14-19 본문, 개요’(AC.234-279)

창3:14-19 1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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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8, 창3:14-19, ‘17절 개요’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And unto the man he 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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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1, 창3:14-19, ‘배경’

배경AC.241 태고교회의 사람들은 천적 인간(celestial men)이었기 때문에, 세상이나 땅 위의 어떤 사물을 보더라도 단지 그것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물이 의미하거나 표상하는 천적이고 신적인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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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2, 창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AC.242-249)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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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9, 창3:14, ‘흙’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창3:14)AC.249‘평생 흙을 먹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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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오, 주님,

 

오늘 우리는 감각과 자기 사랑을 따라 살아가려는 인간의 모습을 보았고,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우리의 눈이 하늘보다 세상을, 주님의 말씀보다 우리의 판단을 더 의지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감각이 주인이 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이성이 주님의 빛 아래 머물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이 언제나 주님을 향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지식과 경험 속에서도 하늘의 것을 먼저 구하게 하시고, 우리의 삶이 흙을 먹는 삶이 아니라 주님의 선과 진리로 살아가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구원을 약속하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게 하시며, 날마다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어서 성찬 있습니다.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설교

2026-07-05(D1)

 

2658, 4, 창3.5, 2026-07-05(D1)-주일예배(창3,14, AC.234-249), ‘하늘을 잃은 인간과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신 주님’.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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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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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6/06/28, 창3:8-13, AC.218-233), ‘네가 어디 있느냐 - 타락 이후에도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

※ 오늘(2026/06/28)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36, ‘주 예수 이름 높이어’, 찬82, ‘성부의 어린 양이’입니다. 오늘은 창3 네 번째, 본문은 창3:8-13이고, AC 글 번호로는 218번에서 233번입니다. 먼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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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9.심화

 

4. ‘10: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0:14)

 

 

AC.249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먼지(dust)가 단순한 흙이 아니라 정죄된 것(condemned)과 지옥적인 것(infernal), 그리고 순전히 세속적이고 육체적인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집이나 성을 떠날 때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명하십니다. 이것은 당시에도 일종의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그 안에 더 깊은 상응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성경에서 ‘(feet)은 인간의 가장 바깥 차원, 곧 자연적이고 외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발에 묻은 ‘먼지(dust)는 세상과 접촉하면서 붙게 되는 가장 낮고 외적인 것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린다’는 것은 단순히 흙을 털어내는 행위가 아니라, 진리를 거부하고 오직 세상적인 것에만 머무는 상태와 자신을 분리하는 것을 뜻합니다.

 

특히 AC.249의 문맥에서는 창세기 3장의 ‘뱀은 흙을 먹을지니라’는 말씀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흙은 영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육체적, 세속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복음을 거부하는 집이나 성에서 먼지를 떨어 버리라는 말씀은, 그러한 상태를 자기 안에 받아들이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저주하거나 증오하라는 명령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 사람들을 정죄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그들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그 상태를 자기 안에 끌어안고 머물지 말고 떠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영적인 것을 거부하는 상태에 자신도 함께 얽매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이 구절은 매우 깊은 영적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수많은 영향들을 접하게 되지만, 주님을 향하는 사람은 그것들 가운데 영적 생명을 해치는 것들을 분별하고 떨어내야 합니다. 마치 제자들이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듯이 말입니다.

 

따라서 AC.249에서 이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 ‘먼지’가 단순한 흙이 아니라 영적으로는 가장 낮고 세속적이며 정죄된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는 말씀은 그러한 상태와 결별하고 주님의 길을 계속 걸어가라는 영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AC.249, 창3:14, ‘흙’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창3:14)AC.249‘평생 흙을 먹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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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9, 심화 3, ‘사65:25’

AC.249.심화 3. ‘사65:2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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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9.심화

 

3. ‘65:2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65:25) Dust shall be the serpents bread (Isa. 65:25).

 

 

65:25 AC.249에서 ‘(dust)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하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로 인용됩니다.

 

문자적으로 읽으면 평화로운 미래의 모습이 묘사됩니다. 맹수와 온순한 짐승이 함께 살고, 사자도 짚을 먹으며, 뱀은 흙을 먹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특별히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다(Dust shall be the serpent’s bread)라는 구절에 주목합니다.

 

그 이유는 실제 뱀이 흙을 먹고 사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상응 언어로 이해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serpent)은 감각적 인간(the sensuous man)을 의미하고, ‘(dust)은 영적, 천적인 것들을 떠나 오직 육체적, 세속적 차원에 머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흙이 뱀의 양식이다’라는 말씀은 감각적 인간이 자기 본성대로 살 때, 영적 진리와 천적 선이 아니라 세상적인 것들과 육체적인 것들만을 양식 삼게 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그의 생각과 관심, 그리고 기쁨이 모두 가장 낮은 차원에 머물게 된다는 것입니다.

 

AC.249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14의 ‘너는 평생 흙을 먹을지니라’는 말씀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사야에서도 동일하게 뱀과 흙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흙을 먹는다는 것이 감각적 인간의 영적 상태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사야 65장이 전반적으로는 새 하늘과 새 땅, 곧 회복된 교회의 평화로운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감각적 차원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가장 낮은 자리에 머문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즉 질서가 회복되더라도 감각은 감각으로 남고, 가장 아래 단계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뱀이 흙을 먹는 것이 단순한 형벌의 선언이 아니라, 감각적 차원이 본래 속한 위치를 보여주는 말씀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감각은 하늘의 것을 직접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가장 바깥 차원에서 기능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자리를 지키며 위의 것들을 섬길 때는 질서 안에 있고, 반대로 그것이 주인이 되면 창세기 3장에서 말하는 타락한 뱀의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AC.249에서 사65:25는 ‘’이 영적으로 가장 낮고 육체적, 세속적인 것을 의미하며, ‘뱀이 흙을 양식으로 삼는다’는 것은 감각적 인간이 그러한 것들만으로 살아가는 상태를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거로 인용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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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9.심화

 

2. ‘72:9

 

광야에 사는 자는 그 앞에 굽히며 그의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며 (72:9) Barbarians shall bow themselves before God, and his enemies shall lick the dust (Ps. 72:9).

 

 

72:9 AC.249에서 ‘티끌을 핥는다(lick the dust)는 표현의 영적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인용됩니다.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의 원수들이 굴복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티끌(dust)에 주목합니다. 그의 상응 해석에 따르면, 티끌은 단순한 흙이 아니라 영적이고 천적인 것들을 떠나 오직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것들만을 바라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의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며’라는 말씀은 단순히 패배와 굴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가장 낮은 차원에 머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AC.249에서 스베덴보리는 ‘원수들(enemies)을 주님과 천국의 것들보다 세상과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로 이해합니다. 그들은 하늘의 진리와 선으로부터 생명을 얻지 못하고, 오직 세상적인 것들만을 양식으로 삼습니다.

 

이 표현은 창3:14의 ‘뱀은 흙을 먹을지니라’는 말씀과 직접 연결됩니다. 뱀이 흙을 먹는다는 것은 감각적 인간이 영적인 것들을 잃어버리고,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것들만을 추구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서 원수들이 티끌을 핥는다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가장 낮은 차원의 삶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AC.247-248에서 살펴본 것처럼, 주님을 향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위를 바라보며 ‘바로 서서 걷는’ 사람입니다. 반면 티끌을 핥는 사람은 시선이 땅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의 관심은 천국이 아니라 세상이며, 진리가 아니라 자기 이익입니다. 따라서 ‘티끌을 핥는다’는 것은 영적 방향이 완전히 아래로 향한 상태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AC.249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성경에서 ‘티끌’이 단순한 흙이 아니라 영적으로 가장 낮고 세속적인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티끌을 핥는다’는 표현은 그러한 상태를 기꺼이 자신의 양식으로 삼는 감각적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창세기에서 뱀이 ‘흙을 먹게 된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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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9.심화

 

1. ‘7:14, 16-17

 

14원하건대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주하는 주의 기업의 양 떼를 먹이시되 그들을 옛날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옵소서, 16이르되 여러 나라가 보고 자기의 세력을 부끄러워하여 손으로 그 입을 막을 것이요 귀는 막힐 것이며 17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리이다 (7:14, 16-17) Feed thy people as in the days of eternity. The nations shall see and shall blush at all their might; they shall lick the dust like a serpent, they shall be shaken out of their holds like creeping things [serpentes] of the earth (Micah 7:14, 16–17).

 

 

7:14, 16-17 AC.249에서 ‘(dust)과 ‘(serpent)의 상징적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인용됩니다.

 

주의 백성을 먹이소서, 옛날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옵소서’라는 말씀에서 ‘옛날(days of eternity)은 스베덴보리에게 태고교회(the Most Ancient Church)를 의미합니다. 즉 주님과의 살아 있는 연결 속에서 천적 사랑과 지각(perception)을 누리던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 기도는 단순히 과거의 번영을 회복해 달라는 요청이 아니라, 태고교회가 가졌던 영적 생명과 주님과의 친밀함을 다시 회복시켜 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16-17절에서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여러 나라(nations)가 자기 힘을 부끄러워하고, ‘뱀처럼 티끌을 핥는다’고 말합니다. AC.249에서 스베덴보리는 이 ‘여러 나라’를 단순한 이방 민족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own을 신뢰하는 사람들로 해석합니다. 이들은 주님보다 자기 판단을, 천국보다 세상을, 진리보다 감각을 더 신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뱀처럼 티끌을 핥는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창세기 3장에서 뱀이 ‘흙을 먹을지니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여기서 흙은 단순한 흙이 아니라 가장 낮은 차원의 것, 곧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티끌을 핥는다는 것은 영적 양식을 잃어버리고, 오직 세상적인 것들만을 삶의 양식으로 삼는 상태를 뜻합니다.

 

또한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라는 표현도 같은 맥락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하늘을 향해 서지 못하고 가장 낮은 감각적 수준에 머무는 상태로 이해합니다. AC.247 AC.248에서 보았듯이, 영적으로 위를 향하는 것은 주님과 천국을 향하는 것이고, 아래를 향하는 것은 세상과 육체를 향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땅을 기는 존재는 영적 방향을 상실한 상태를 상징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구절이 단순한 심판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두려워한다고 말합니다. 즉 자기 힘과 자기 지혜를 신뢰하던 상태가 무너진 후에야 비로소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가 자주 말하는 섭리의 원리와도 연결됩니다. 인간은 자신의 own에 대한 신뢰가 깨질 때, 비로소 주님의 능력을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AC.249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뱀처럼 티끌을 핥는다’는 표현이 창세기 3장의 ‘흙을 먹을지니라’와 같은 상응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곧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은 결국 영적 양식을 잃고, 가장 낮은 육체적, 세속적 차원의 것들만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흙을 먹는 뱀’의 상태이며, 감각적 인간이 지옥적 상태로 기울어지는 모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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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3:14)



AC.249

평생 흙을 먹을 것이다(eat dust all the days of its life)라는 말씀은, 그들의 감각 파트(the sensuous part)가 몸과 땅에 속한 것 외에는 아무 걸로도 살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하며, 다시 말해 지옥 상태(infernal state)가 되었음을 뜻합니다. 이것은 말씀에서 (dust)이 갖는 의미로부터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미가서에 That to “eat dust all the days of its life” signifies that their sensuous part became such that it could not live from anything except that which is of the body and the earth, that is to say, that it became infernal, is evident also from the signification of “dust” in the Word; as in Micah:

 

14원하건대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주하는 주의 기업의 양 떼를 먹이시되 그들을 옛날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옵소서, 16이르되 여러 나라가 보고 자기의 세력을 부끄러워하여 손으로 그 입을 막을 것이요 귀는 막힐 것이며 17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리이다 (7:14, 16-17) Feed thy people as in the days of eternity. The nations shall see and shall blush at all their might; they shall lick the dust like a serpent, they shall be shaken out of their holds like creeping things [serpentes] of the earth (Micah 7:14, 16–17).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옛날(days of eternity)은 태고교회를 의미하고, ‘여러 나라(nations)는 자기 자신, 그러니까 자신의 own을 신뢰하는 자들을 의미하는데, 그들에 대하여 뱀처럼 티끌을 핥을 것(they shall lick the dust like a serpent)이라고 말합니다. 시편에서는 The “days of eternity” mean the most ancient church; the “nations,” those who trust in their own, of whom it is predicated that “they shall lick the dust like a serpent.” In David:

 

광야에 사는 자는 그 앞에 굽히며 그의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며 (72:9) Barbarians shall bow themselves before God, and his enemies shall lick the dust (Ps. 72:9).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광야에 사는 자들(Barbarians)원수들(enemies)은 영적이고 천적인 것들은 돌아보지 않고, 오직 세상과 육체의 것들만 바라보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사야에서 Barbarians” and “enemies” are those who regard only earthly and worldly things. In Isaiah: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65:25) Dust shall be the serpents bread (Isa. 65:25).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흙이 뱀의 양식이라는 것은 감각적 인간이 영적이고 천적인 것들을 잃어버리고, 오직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것만을 생명으로 삼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이유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느 집이나 성이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shake off the dust of their feet)고 명하셨습니다. As “dust” signifies those who do not regard spiritual and celestial things, but only what is corporeal and earthly, therefore the Lord enjoined his disciples that if the city or house into which they entered was not worthy, they should “shake off the dust of their feet” (Matt. 10: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0:14)

 

(‘(dust)이 정죄된 것(condemned)과 지옥적인 것(infernal)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후에 19절에서 더 설명될 것입니다.) (That “dust” signifies what is condemned and infernal, will be further shown at verse 19.)

 

 

해설

 

이 본문의 핵심은 ‘(dust)의 의미를 설명하는 데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뱀에게 ‘평생 흙을 먹을지니라’고 하신 말씀은 문자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실제 뱀은 흙을 먹고 사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감각적 인간의 영적 상태에 대한 상징으로 해석합니다.

 

그에 따르면 ‘’은 단순한 흙이 아니라 가장 낮고 가장 외적 차원의 삶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더 이상 주님과 천국의 것을 사랑하지 않고, 오직 몸과 세상, 그리고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게 되면 그는 영적으로 ‘’을 먹는 사람이 됩니다. 즉 영적 양식이 아니라 세상적 양식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가서의 ‘뱀처럼 티끌을 핥는다’는 표현은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결국 가장 낮은 차원의 것들에 머물게 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윗의 ‘원수들이 티끌을 핥을 것이다’라는 말씀도 같은 뜻입니다. 여기서 원수는 단순한 인간의 적이 아니라 주님의 길을 거부하고 세상만 바라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특히 사65:25의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라는 말씀은 AC.249의 핵심 증거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창세기 3장의 저주와 직접 연결합니다. 뱀이 흙을 먹는다는 것은 감각적 인간이 더 이상 천적인 것에서 생명을 얻지 못하고, 오직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것에서만 만족을 찾는 상태를 뜻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하신 말씀도 같은 원리로 설명합니다. 발은 인간의 가장 바깥 차원을 의미하고, 발에 묻은 먼지는 세상적이고 거부된 것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먼지를 떨어 버리는 것은 그러한 상태와 자신을 분리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결국 AC.249에서 스베덴보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창세기 3장의 ‘흙을 먹는다’는 표현이 단순한 형벌의 선언이 아니라 영적 상태의 묘사라는 점입니다. 사람이 하늘의 것을 잃어버리면 반드시 무엇인가를 양식으로 삼아야 하는데, 그때 그는 주님의 진리와 선이 아니라 세상과 육체의 것들을 양식으로 삼게 됩니다. 바로 그 상태를 성경은 ‘뱀이 흙을 먹는다’는 상응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화

 

1. ‘7:14, 16-17

 

 

AC.249, 심화 1, ‘미7:1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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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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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6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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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4:24, 25

 

24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25헛된 말을 하는 자들의 징표를 폐하며 점치는 자들을 미치게 하며 지혜로운 자들을 물리쳐 그들의 지식을 어리석게 하며 (44:24, 25) Jehovah thy redeemer, that turneth wise men backward, and maketh foolish their knowledge (Isa. 44:24–25).

 

 

AC.248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뒤로 돌린다(turn backward)는 표현이 영적으로는 진리와 지혜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여호와께서 거짓 예언자들과 점치는 자들의 헛된 지혜를 무너뜨리시고, 그들의 지식을 어리석게 만드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특히 ‘지혜로운 자들을 물리쳐(turneth wise men backward)라는 표현에 주목합니다.

 

그의 상응 해석에서 ‘(forward)은 주님과 천국을 향하는 방향이며, ‘(backward)는 자기 자신과 세상을 향하는 방향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뒤로 돌린다’는 것은 단순히 위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바라보아야 할 사람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되고, 주님께 의존해야 할 사람이 자기 지혜를 신뢰하게 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특히 이 구절의 ‘지혜로운 자들’은 참된 의미의 지혜로운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지혜를 신뢰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스베덴보리는 AC.215 AC.232-233에서도 반복하여, 사람이 자신의 감각과 이성, 그리고 학문만으로 영적 진리를 판단하려 하면 결국 어둠에 빠진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여기의 ‘지혜로운 자들을 뒤로 돌린다’는 것은 주님께서 억지로 그들을 어리석게 만드신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지혜를 최고로 여긴 결과 스스로 진리에서 멀어지게 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그들의 지식을 어리석게 한다’는 말씀도 같은 의미입니다. 지식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 주님과 분리된 지식이 문제입니다. 천국을 향해 사용되던 지식은 지혜가 되지만, 자기 사랑을 위해 사용되는 지식은 결국 어리석음이 됩니다.

 

그래서 AC.248에서 이 구절은 ‘앞을 향함’과 ‘뒤를 향함’이라는 영적 상응을 설명하는 증거로 사용됩니다. 사람이 주님을 향할 때는 영적으로 앞을 향하고 있는 것이며, 자기 자신과 세상을 향할 때는 뒤를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지혜를 신뢰하는 사람은 결국 ‘뒤로 돌려진 지혜로운 자’가 되어, 스스로는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진리에서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 이 구절의 내적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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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8, 13

 

8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 조소거리가 되었으니 전에 그에게 영광을 돌리던 모든 사람이 그의 벗었음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그는 탄식하며 물러가는도다, 13높은 곳에서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시고 내 발 앞에 그물을 치사 나로 물러가게 하셨음이여 종일토록 나를 피곤하게 하여 황폐하게 하셨도다 (1:8, 13) Jerusalem hath sinned a sin, therefore they despise her, because they have seen her nakedness; yea, she groaned and hath turned backward. From on high hath he sent fire into my bones, and hath made me to return backward; he hath made me desolate (Lam. 1:8, 13).

 

 

AC.248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뒤로 물러간다(turn backward)는 표현이 단순한 후퇴가 아니라 영적으로 주님과 천국으로부터 돌아서는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상응의 의미에서 ‘예루살렘(Jerusalem)은 교회를 뜻합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의 죄는 단순히 한 도시의 범죄가 아니라 교회의 타락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은 ‘벗은 몸(nakedness)이 드러났다고 말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미 AC.213 이하에서 ‘벌거벗음’은 순진무구함이 사라지고, 선과 진리가 결핍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벌거벗음은 교회가 더 이상 선과 진리로 옷 입고 있지 않은 상태를 뜻합니다.

 

이어지는 ‘그는 탄식하며 물러가는도다(hath turned backward)라는 표현이 AC.248의 핵심입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영적으로 ‘(forward)은 주님과 천국을 향하는 방향이고, ‘(backward)는 자기 자신과 세상을 향하는 방향입니다. 따라서 뒤로 물러간다는 것은 단순히 한 걸음 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의 방향이 주님에게서 자기 자신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13절의 ‘나로 물러가게 하셨음이여(hath made me to return backward)도 같은 의미로 이해됩니다. 문자적으로는 황폐와 심판의 탄식이지만, 내적 의미에서는 교회가 진리와 선에서 멀어져 점점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 속으로 후퇴하는 상태를 묘사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황폐하게 하셨도다(he hath made me desolate)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여기서 황폐(desolation)는 선과 진리가 점차 사라져 버린 영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구절이 창세기 3장의 뱀이 ‘배로 기어가는’ 상태와 같은 흐름 속에 있다는 점입니다. 뱀은 더 이상 위를 바라보지 못하고 아래만 바라봅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은 더 이상 앞을 바라보지 못하고 뒤를 향합니다. 두 경우 모두 공통점은 주님을 향하던 방향이 자기 자신과 세상을 향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AC.248에서 이 구절은, 성경의 ‘뒤로 물러감’이 단순한 위치 이동이 아니라 영적 방향 전환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인용된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뒤로 물러갔다는 것은 교회가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에서 떠나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그 결과 벌거벗음과 황폐가 뒤따르게 된 것입니다.

 

 

 

AC.248, 심화 4, ‘사44:24, 25’

AC.248.심화 4. ‘사44:24, 25’ 24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25헛된 말을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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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8, 심화 2, ‘미2:3’

AC.248.심화 2. ‘미2:3’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족속에게 재앙을 계획하나니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또한 교만하게 다니지 못할 것이라 이는 재앙의 때임이라 하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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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8.심화

 

2. ‘2:3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족속에게 재앙을 계획하나니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또한 교만하게 다니지 못할 것이라 이는 재앙의 때임이라 하셨느니라 (2:3) Ye shall not thence remove your necks, neither shall ye go erect (Micah 2:3).

 

 

AC.248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바로 서서 걷는다(go erect)는 표현이 영적으로는 주님과 천국을 향한 자유롭고 올바른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문자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악과 불의에 대한 심판 선언입니다. 그러나 내적 의미에서는 교회가 진리와 선에서 벗어났을 때, 어떤 영적 상태에 빠지는지를 묘사합니다.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은 거짓과 악의 멍에 아래 놓여 더 이상 자유롭게 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목은 머리와 몸을 연결하는 부분이므로, 상응으로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을 연결하는 기능을 뜻합니다. 그런데 목이 멍에에 눌리게 되면, 사람은 더 이상 위를 향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또한 교만하게 다니지 못할 것이라(neither shall ye go erect)는 단순히 당당하게 걷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바로 서서 걷는다’는 표현을 영적으로 이해합니다. 원래 거듭난 인간은 주님을 바라보며 영적으로 곧게 서 있습니다. 그러나 악과 거짓에 사로잡히면 내면이 굽어지고, 하늘을 향하던 시선이 땅으로 향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레26:13과 정반대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레위기에서는 주님께서 멍에를 부수시고 백성을 ‘바로 서서 걷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미가서에서는 스스로 악 가운데 머문 결과, 더 이상 ‘바로 서서 걷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는 자유의 상태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 속박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AC.248에서 이 구절은, 사람이 하늘의 것들을 향할 때는 ‘바로 서서 걷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세상과 자기 사랑에 사로잡힐 때는 영적으로 굽어져 더 이상 ‘바로 서서 걷지 못하는’ 사람으로 묘사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로 인용된 것입니다. 결국 ‘바로 섬’은 천국을 향한 상태를, ‘굽어짐’은 세상과 자기 자신을 향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AC.248, 심화 3, ‘애1:8, 13’

AC.248.심화 3. ‘애1:8, 13’ 8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 조소거리가 되었으니 전에 그에게 영광을 돌리던 모든 사람이 그의 벗었음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그는 탄식하며 물러가는도다, 13높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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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8, 심화 1, ‘레26:13’

AC.248.심화 1. ‘레26:13’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그들에게 종된 것을 면하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내가 너희의 멍에의 빗장을 부수고 너희를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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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8.심화

 

1. ‘26:13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그들에게 종된 것을 면하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내가 너희의 멍에의 빗장을 부수고 너희를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 (26:13) I am Jehovah your God, who brought you forth out of the land of Egypt, that ye should not be their bondmen; and I have broken the bonds of your yoke, and made you to go erect (Lev. 26:13).

 

 

AC.248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바로 서서 걷는다(go erect)는 표현이 단순한 육체적 자세가 아니라 영적인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고대교회 사람들에게 ‘위를 본다’, ‘앞을 본다’, ‘바로 선다’는 것은 모두 주님과 천국을 향하는 상태를 뜻하였고, 반대로 ‘아래를 본다’, ‘뒤를 본다’, ‘굽어진다’, ‘땅에 엎드린다’는 것은 세상과 육체, 자기 사랑을 향하는 상태를 뜻하였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바로 서서 걷게 하셨다’는 말씀은 단순히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었다는 의미만이 아닙니다. 내적 의미로는 인간이 감각과 세상적인 것들의 지배에서 벗어나 다시 하늘을 향해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애굽은 흔히 감각적 인간과 자연적 지식에 대한 의존을 의미하므로, 애굽의 종이 되었다는 것은 영적인 것보다 세상적인 것을 더 신뢰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멍에의 빗장을 부수고 바로 서서 걷게 하셨다’는 것은 주님께서 인간을 그러한 속박에서 해방시키시고, 다시 내적 사람, 곧 속 사람이 외적 사람, 곧 겉 사람을 다스리는 질서 속으로 회복시키셨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3장에서 뱀이 ‘배로 기어가는’ 상태와 정반대입니다. 뱀은 더 이상 위를 보지 못하고 땅만 바라보는 상태를 상징하지만, 여기서 ‘바로 서서 걷는’ 사람은 다시 하늘을 향해 시선을 들고, 주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상태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AC.248에서 이 구절은, 참된 자유란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해 바로 설 수 있는 상태이며, 영적으로 ‘바로 서서 걷는 것’이야말로 거듭난 인간의 모습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인용된 것입니다.

 

 

 

AC.248, 심화 2, ‘미2:3’

AC.248.심화 2. ‘미2:3’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족속에게 재앙을 계획하나니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또한 교만하게 다니지 못할 것이라 이는 재앙의 때임이라 하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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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8, 창3:14, ‘몸의 자세와 방향을 영적 상태의 상응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창3:14)AC.248그러므로 사람이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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