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

 

13. ‘16:15

 

끝으로 마가복음입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15) Go ye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spel to every creature (Mark 16:15).또한 복음이 전파되는 이들도 만민(creatures)이라 하는데, 이는 그들이 새롭게 창조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라는 설명이 선행하고,이어 나옵니다.

 

이 구절은 지금까지의 흐름을 사람에게 직접 적용하는 매우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16:15만민(creature)은 단순히 모든 사람이라는 뜻을 넘어서, ‘아직 새롭게 창조되어야 할 존재’, 곧 거듭남이 필요한 상태에 있는 인간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먼저 왜 ‘사람(people)이 아니라 ‘피조물(creature)이라고 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영어 성경의 ‘creature’는 단순히 생물이라는 뜻이 아니라, ‘‘창조된 존재’, 혹은 창조의 대상’’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점을 잡아서, 이 구절을 단순한 전도 명령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위한 부름’으로 이해합니다.

 

이걸 AC의 흐름과 연결하면 매우 또렷해집니다. 지금까지 계속 보신 것처럼, 사람 안에는 여러 층위, 곧 생각, 애정, 감각이 있지만, 그것이 질서 없이 흩어져 있으면 아직 온전한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거듭남을 ‘다시 태어남’일 뿐 아니라, ‘다시 창조됨(new creation)이라고 말합니다. 즉, 기존의 상태 위에 조금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질서 자체가 새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제 이 구절을 보면, ‘복음을 모든 피조물(만민)에게 전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많은 사람에게 전하라’는 양적인 명령이 아니라, ‘모든 사람 안에 있는 아직 형성되지 않은 상태, 곧 새롭게 되어야 할 상태를 향해 복음을 전하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복음은 이미 완성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직 되어 가야 할 존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연결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앞에서 ‘짐승’, ‘들짐승’, ‘생물’ 등을 보셨는데, 그것들은 모두 ‘사람 안에 있는 살아 있는 원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람 전체를 ‘creature’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사람 전체가 아직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형성되어 가야 할 살아 있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즉, 인간은 이미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통해 계속 새롭게 빚어져 가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얘깁니다.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미 생각도 있고, 감정도 있고, 삶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아직 ‘주님의 질서 안에서 하나로 묶여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때 복음이 들어오면, 그 사람 안에서 ‘생각이 바뀌고, 애정이 바뀌고,삶이 재구성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새 창조’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단순히 ‘정보를 받은 사람’이 아니라, ‘다시 만들어지고 있는 존재’, 곧 ‘creature’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단순한 전도 명령을 넘어, 이렇게 읽히게 됩니다. ‘가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모든 사람에게, 그들을 새롭게 창조하는 복음을 전하라.’ 이것이 스베덴보리적 이해입니다.

 

복음은 이미 잘 사는 사람에게 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잘 못 사는 우리, 아직 부족한 우리를 새롭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6:15만민(creature)은 단순한 사람들이 아니라, 복음을 통해 새롭게 창조되어야 할 존재로서의 인간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AC.46, 심화 12. ‘계19:4’

심화 12. ‘계19:4’ 다음도 계시록입니다.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계19:4) and fell before the throne on their faces, and worshiped

bygrace.kr

 

'즐겨찾기 > AC 창1' 카테고리의 다른 글

AC.46, 심화 12. ‘계19:4’  (0) 2026.03.24
AC.46, 심화 11. ‘계7:11’  (0) 2026.03.24
AC.46, 심화 10. ‘시148:2, 7, 9-10’  (0) 2026.03.24
AC.46, 심화 9. ‘겔31:6’  (0) 2026.03.24
AC.46, 심화 8. ‘사43:20’  (0) 2026.03.24
Posted by bygracetistory
,

심화

 

12. ‘19:4

 

다음도 계시록입니다.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19:4) and fell before the throne on their faces, and worshiped the lamb (Rev. 19:4).

 

이 구절은 앞서 보신 계7:11과 거의 같은 장면이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그들이 엎드려 경배하는가?’, 그리고 ‘그 경배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19:4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의 경배, 사람 안의 가장 높은 진리와 가장 깊은 애정이 주님 앞에서 완전히 하나 되어,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주님께 돌리는 상태’를 뜻합니다.

 

먼저 두 그룹을 구분해 보겠습니다. ‘이십사 장로’는 말씀에서 보통 ‘진리의 충만함, 곧 완전하게 정리된 이해와 신앙의 상태’를 뜻합니다. 숫자 ‘24’는 단순한 수가 아니라, ‘전체성과 충만함’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이십사 장로들은 ‘질서 잡힌 진리의 세계’, 곧 사람 안에서 정리되고 확립된 이해를 대표합니다. 반면 ‘네 생물’은 앞에서 보셨듯이 ‘살아 있는 애정, 특히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그에 따른 생명력’을 뜻합니다. 즉, 장로가 ‘이해’라면, 생물은 ‘의지’, 다시 말해 ‘진리와 선의 두 축’입니다.

 

이제 이 둘이 함께 ‘엎드려 경배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엎드린다’는 것은 단순한 몸짓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높아짐이 완전히 내려오는 상태’, 곧 ‘자기 것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다’는 인식입니다. 그리고 ‘경배’는 앞에서도 보셨듯이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존재 전체가 주님께로 향하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장면은 이렇게 읽혀야 합니다. ‘사람 안의 이해와 의지, 진리와 선이 모두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전적으로 주님께 속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상태’입니다.

 

여기서 ‘아멘, 할렐루야’라는 말도 중요합니다. ‘아멘’은 ‘진리의 확증’, 곧 ‘이것이 참되다’는 이해의 동의이고, ‘할렐루야’는 ‘사랑과 기쁨의 찬양’, 곧 의지의 응답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단어는 각각 ‘이해와 의지의 응답’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 생각으로도 인정하고, 마음으로도 기뻐하며, 전체로 주님께 돌리는 상태입니다.

 

이걸 지금까지의 흐름 속에서 보면 더 또렷해집니다. 처음에는 애정이 혼란스럽고, 그다음 질서 안으로 들어오고, 그다음 일부는 제거되고 일부는 정돈되고, 그다음 전체가 조화를 이루고, 그리고 마침내 여기에서는 ‘그 모든 것이 주님 앞에서 하나로 무릎 꿇는 상태’가 됩니다. 이것이 거듭남의 매우 깊은 단계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어떤 사람이 처음에는 ‘내가 옳다’, ‘내가 잘했다’, ‘내가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점점 주님의 진리와 선 안으로 들어가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내가 아니라 주님이 하셨습니다.’ 이때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생각도 그렇게 알고, 마음도 그렇게 느끼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감사가 나오고, 기쁨이 나오고, 찬양이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이 장면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사람 안의 진리와 선, 이해와 의지가 모두 주님께로 돌아가, 자기 것을 내려놓고 전적으로 주님께 속함을 인정하는 상태가 참된 경배이다.’ 이것이 계19:4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진짜 예배는, 우리가 무엇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19:4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의 경배, 사람 안의 이해와 의지 전체가 주님께 속함을 인정하고, 그분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거듭남의 깊은 완성 상태를 의미합니다.’

 

 

 

AC.46, 심화 13. ‘막16:15’

심화 13. ‘막16:15’ 끝으로 마가복음입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16:15) Go ye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spel to every creature (Mark 16:15).’ ‘또한 복

bygrace.kr

 

AC.46, 심화 11. ‘계7:11’

심화 11. ‘계7:11’ 다음은 계시록입니다.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계7:11) All the angels stood round about the throne

bygrace.kr

 

'즐겨찾기 > AC 창1' 카테고리의 다른 글

AC.46, 심화 13. ‘막16:15’  (0) 2026.03.24
AC.46, 심화 11. ‘계7:11’  (0) 2026.03.24
AC.46, 심화 10. ‘시148:2, 7, 9-10’  (0) 2026.03.24
AC.46, 심화 9. ‘겔31:6’  (0) 2026.03.24
AC.46, 심화 8. ‘사43:20’  (0) 2026.03.24
Posted by bygracetistory
,

심화

 

11.7:11

 

다음은 계시록입니다.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7:11) All the angels stood round about the throne, and the elders, and the four animals (Rev. 7:11), 그리고 이 구절에 앞서 선지자들은 가축(beasts)땅의 짐승(wild animals of the earth),가축(beasts)들의 짐승(wild animals of the field)을 조심스럽게 구별합니다. 그럼에도 사람 안의 선한 것들은 가축(beasts)이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늘에서 주님과 가장 가까운 이들도 생물(animals)이라 하는데,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에서 모두 그렇게 말합니다.라는 설명이 선행합니다.

 

이 구절은 지금까지 계속 따라오신 흐름의 ‘정점’이라고 보셔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더 이상 사람 안의 낮은 애정이 아니라, ‘하늘에서 가장 주님과 가까운 존재들조차 생물(animals)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통해, ‘짐승, 동물’이라는 표현의 본질이 완전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7:11네 생물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진리를 가장 충만하게 받아 살아 움직이는 존재들, 곧 천사들의 살아 있는 애정과 인식 자체를 뜻합니다.’

 

먼저 이 구절에서 왜 ‘생물(animals)이라는 표현이 쓰였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짐승’이라고 하면, 낮고 본능적인 것을 떠올리지만, 스베덴보리에게서 ‘animal’이라는 말의 핵심은 낮고 고상함의 구분이 아니라, ‘‘살아 있다(animate), 곧 생명으로 움직인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animal’은 본래 ‘생명에 의해 움직이는 것, 특히 사랑과 애정에 의해 움직이는 것’을 뜻합니다.

 

이제 계시록의 ‘네 생물’을 보겠습니다. 이들은 에스겔서에도 동일하게 등장하는 존재들로, 스베덴보리는 이들을 단순한 개별 존재라기보다, ‘천국 전체, 혹은 천국의 핵심적인 상태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봅니다. 그리고 그 핵심은 바로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사랑)과 진리(지혜)를 완전히 받아 살아 움직이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생물’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이들은 단순히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 있고, 그 사랑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들’입니다. 즉, 완전히 ‘살아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가장 높은 존재들에게 이 이름이 붙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입니다. 낮아서 ‘짐승’이 아니라, ‘너무도 살아 있어서 생물인 것’입니다.

 

이제 앞에서 보신 ‘짐승’, ‘들짐승’, ‘가축’과 연결해 보겠습니다. 처음에는 이 표현이 사람 안의 자연적 애정, 심지어는 거칠고 정리되지 않은 욕구를 가리켰습니다. 그러나 점점 질서 안으로 들어오면서, 그것은 ‘건강한 애정’, 그리고 더 나아가 ‘주님을 따르는 애정’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면, 그 애정은 단순한 자연적 수준을 넘어, ‘천국적인 사랑의 상태’가 됩니다. 바로 이 상태가 ‘네 생물’입니다.

 

그래서 이 흐름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애정이 혼란스럽고 두려운 상태 → 질서 안으로 들어옴 → 일부는 제거되고 일부는 정돈됨 → 전체가 조화를 이룸 → 마침내 그 애정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으로 충만해짐. 그리고 이 마지막 상태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생물’입니다.

 

하나님께 가장 가까운 존재들은 머리로만 아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 움직이는 존재들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여기서 ‘천사들’, ‘장로들’, ‘네 생물’이 함께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국이 단일한 상태가 아니라, ‘여러 층위와 기능이 조화를 이루는 공동체’임을 보여 줍니다. 그 가운데 ‘생물’은 특히 ‘생명력, 곧 사랑으로 움직이는 중심적인 원리’를 나타냅니다.

 

7:11네 생물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진리를 가장 충만하게 받아 살아 움직이는 천국적 상태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이렇게 보시면, 왜 스베덴보리가 ‘짐승’, ‘들짐승’, ‘가축’, ‘생물’을 그렇게 세밀하게 구분하면서도 모두 중요하게 다루는지가 하나로 이어지실 것입니다.

 

 

 

AC.46, 심화 12. ‘계19:4’

심화 12. ‘계19:4’ 다음도 계시록입니다.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계19:4) and fell before the throne on their faces, and worshiped

bygrace.kr

 

AC.46, 심화 10. ‘시148:2, 7, 9-10’

심화 10. ‘시148:2, 7, 9-10’ 다음은 시편입니다. ‘2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 7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9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수와

bygrace.kr

 

'즐겨찾기 > AC 창1' 카테고리의 다른 글

AC.46, 심화 13. ‘막16:15’  (0) 2026.03.24
AC.46, 심화 12. ‘계19:4’  (0) 2026.03.24
AC.46, 심화 10. ‘시148:2, 7, 9-10’  (0) 2026.03.24
AC.46, 심화 9. ‘겔31:6’  (0) 2026.03.24
AC.46, 심화 8. ‘사43:20’  (0) 2026.03.24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