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2026/06/21)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35, ‘큰 영화로신 주’, 찬81, ‘주는 귀한 보배’입니다.
오늘은 창3 세 번째, 본문은 창3:6-7이고, AC 글 번호로는 207번에서 217번입니다.
먼저 본문,
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창3:6-7)
제목은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진 인간의 내면 상태
이며, 다음은 AC.207-217입니다. 그전에 먼저 오늘 범위에 대한 요약 설명 후, 필요하면 몇몇 글 리딩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창세기 3장 6절과 7절은 타락의 실제 과정과 그 결과를 보여 주는 핵심 구절입니다. 6절은 의지와 이해가 뱀의 설득을 받아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신뢰하게 되는 과정을, 7절은 그 결과로 순진무구함(innocence)이 사라지고 자기 의(selfhood)가 드러나는 상태를 묘사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이 두 절은 단순히 최초 인간 부부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태고교회가 천적 상태에서 벗어나 자아를 사랑하는 상태로 기울어 가는 영적 과정을 상징합니다.
창세기 3장 6절은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로 시작됩니다. 이는 감각과 외적 사고가 뱀의 설득에 의해 영향을 받아 진리를 판단하는 기준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먹음직도 하고’는 선에 대한 욕망처럼 보이는 것을, ‘보암직도 하고’는 진리처럼 보이는 것을,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는 것은 하나님께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지혜로워지고자 하는 욕망을 의미합니다. 이어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는 구절은 의지(여자)뿐 아니라 이해(남자)까지도 같은 설득에 동의하게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즉 사람 전체가 자아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창세기 3장 7절은 타락의 직접적인 결과를 보여 줍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라는 말씀은 참된 영적 시력이 열렸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자연적 자각이 생겼음을 의미합니다. 이전에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 안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벌거벗음을 느끼지 못했지만, 이제는 선과 진리를 상실한 상태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결핍과 수치를 가리기 위해 외적인 진리와 도덕성으로 스스로를 꾸미려 했음을 뜻합니다. 무화과나무는 외적 인간을 상징하므로, 이는 내적 생명을 잃은 사람이 외적 종교성이나 도덕성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요약하면, 6절은 ‘하나님보다 자기 판단을 신뢰하게 된 과정’을, 7절은 ‘그 결과 순진무구함이 사라지고, 자기 의와 외적 종교성으로 자신을 가리게 된 상태’를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두 절을 통해 모든 영적 타락의 본질은 금지된 열매 자체가 아니라 ‘주님 대신 자신을 지혜의 근원으로 삼는 것’이며, 그 결과 사람은 참된 생명을 잃고, 외적인 것들로 자신의 영적 빈곤을 가리려 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태고교회의 이야기인 동시에, 오늘날 모든 사람 안에서 반복될 수 있는 영적 과정에 대한 묘사이기도 합니다.
이상 요약 설명을 마치고, 아래는 해당 AC 본문, 해설 및 심화입니다.
AC.207,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AC.207-210)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bygrace.kr
AC.208, 창3:6, ‘태고교회의 네 번째 후손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bygrace.kr
AC.209, 창3:6, ‘창3의 표현들이 의지, 애정의 언어들인 이유’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bygrace.kr
AC.210, 창3:6,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own’의 정의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bygrace.kr
AC.211, 창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AC.211-21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
bygrace.kr
AC.212, 창3:7, ‘interior dictate’에 대한 스베덴보리의 이해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
bygrace.kr
AC.213, 창3:7,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
bygrace.kr
AC.214, 창3:7, ‘벌거벗음’(naked)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
bygrace.kr
AC.215, 창3:7, ‘own’을 실제 영계 체험을 근거로 증언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
bygrace.kr
AC.216, 창3:7,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
bygrace.kr
AC.217, 창3:7, ‘포도나무’(vine)와 ‘무화과나무’(fig tree)의 의미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
bygrace.kr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오늘 창3:6, 7 본문, 선악과를 따먹는 장면에 대한, 그러나 그 드러내시는, 너무나 놀라운 속뜻 앞에 우리 내면이 어리둥절할 정도로 확 밝아지며, 감사, 감동하게 됩니다. 오, 주님, 저희로 이 생명의 말씀 안에서 영원히, 그리고 새로운 한 주도 살아가게 하여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설교
2026-06-21(D1)
주일예배(2026/06/14, 창3:1-5, AC.194-206), ‘태고교회 후손들의 상태 변화, 그 중심의 이동’
※ 오늘(2026/06/14)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34, ‘참 놀랍도다 주 크신 이름’, 찬80, ‘천지에 있는 이름 중’입니다. 오늘은 창3 두 번째, 본문은 창3:1-5이고, AC 글 번호로는 194번에서 206번입니다.
bygrac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