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BzMw68OuMkg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06:1)

 

아멘, 48일 월요일, 갈라디아서 41절로 11절 본문입니다.

 

교회를 개척, 십여 년 고생고생 하여 겨우 일군 교회, 그러나 잠시 어디를 좀 다녀오느라 교회를 비운 사이 교회가 그만 신천지 같은 이단에 넘어가버렸다면 그 어이없음, 그 억장이 무너져 내림 등을 어찌 표현할까요? 오늘 갈라디아 교회가 거의 이런 상황인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바울 사도의 절박함과 안타까워함 등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본문들입니다. 특히 율법과 믿음을 집중적으로 비교, 조명하는 것으로 보아, 갈라디아 교회의 어려움은 유대교 사람들의 소행인가 보다 여겨지지요.

 

우리의 구원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바울의 주장, 고백은 사실이요, 진리입니다. 동의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정말 율법이라는 게 바울의 주장처럼 그렇게 나쁜 것인가, 그렇게 약하고 천박한 것인가, 그렇게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것인가 하는 데에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기가 막힌 정황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사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요. 아무리 화가 나도 공정한 태도를 유지, 좌우로 치우치지 말아야지요.

 

율법에 대한 우리의 출발점은 먼저, 이 율법을 주신 분은 주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아무런 성경적 배경이 없으신 분들이 갈라디아서부터 읽으면 , 율법이라는 것은 나쁜 거구나.’ 선입견을 가지실 수 있어요. 율법은 하나님이 주셨는데 그러면 하나님은 나쁜 것도 주실 수 있는 신이구나 할 수 있지요. 이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주님은 율법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마태복음 517절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2323에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바울은 왜 율법 이야기를 하기 전, 이런 주님의 말씀, 주님의 입장을 먼저 살피려 하지 않았을까요? 주님 오시기 이전 구약 시대를 살았던 많은 믿음의 사람들, 선지자, 사사, 왕과 제사장들 그리고 의인들은 모두 율법의 시대를 살았는데, 왕들은 주의 율법책을 평생 곁에 두고 읽었는데, 다윗은 시편 119편에 율법의 말씀에 대한 감격을 끝없이 노래하고 있는데 이런 여러 증거들이 있는데 바울은 왜 이렇게 율법에 대해 악하게 말하며, 진저리를 치고 있을까요?

 

율법은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주님의 모든 것이 녹아져 있으며, 참으로 정직한 심령과 맑은 영으로 율법의 말씀들을 읽으면 울지 않을 수 없으며, 통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에스라 때를 비롯, 성경 여러 곳에 주의 율법의 말씀을 읽을 때, 통곡하는 장면들이 나오잖아요. 율법의 삶을 살면서도 주님사랑, 이웃사랑의 삶을 얼마든지 사는 사람이 잇는가하면, 이 시대 슬로건인 오직 믿음을 외치면서도 정작 자기사랑, 세상사랑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우리가 어느 시대를 사느냐, 우리가 율법의 시대를 사느냐, 교회시대를 사느냐가 우리를 의롭게 하고 구원에 이르는 걸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주의 말씀 앞에 우리가 어떤 삶을 사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속사람의 모습이 우리의 미래, 우리의 영원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참으로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또한 아주 결정적으로 오버한 부분들도 있어요. 비록 사도들의 글이라 하더라도 그 근본 되시는 주님의 말씀에 반드시 비춰보아야 합니다. 어떻게 주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글이 대등할 수가 있겠어요?

 

아멘, 이 사실을 꼭 붙드시고, 오늘도 주님 안에서 이기시는 하루되시기를 사순절 이 기간,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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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06:1)

 

아멘, 45일 금요일, 갈라디아서 31절로 9절 본문입니다.

 

사순절의 기간, 아무도 멸망치 않고 영생 얻게 하시려고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을 꼭 만나시는 하루하루 이 기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6절에서 바울은 창세기 15장 아브라함 이야기를 인용합니다. 창세기 156절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모세의 율법으로 그만 돌아가 버린, 기울어진 갈라디아 교회 소식을 접한 사도 바울, 그 모세보다 5, 6백 년 전 아브라함으로 거슬러 올라가 믿음의 이야기, 의롭다 함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창세기 본문의 아브라함은 주님을 예표합니다. 곧 아브라함의 일생은 우리 주님의 일생을 예표한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었다는 이 짧은 표현 속에는 사실은 독생자로 오신 주님과 아들을 주신 아버지 사이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랑과 사연이 담겨있답니다. 모계혈통을 통해 인성을 입고 오신 주님은 출생 때부터 모든 악과 거짓에 노출되시고, 순간순간 부단한 싸움을 싸우시며, 또 이기셨고, 그래서 타고난 금수저로 별 고생 없이 의롭다 함을 받으신 게 아니라 직접 싸워 얻으신, 그래서 참된 의를 전가 받으신 것이지요. 이것이 참된 이신칭의입니다. , 거짓과 싸워 피 흘릴 마음은 별로 없이 그저 이신칭의라는 교리만 붙들고 쉽게 의롭다 함을 받고자 하는 그런 분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의(, righteousness)가 되셨는데, 이 의는 단지 마음으로, 머리로, 추상적으로 믿기만 해서 얻으신 게 아니라 실제로 악과 싸워, 매순간 거짓과 싸워 쟁취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분을 주님으로 모시고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뭘 믿는다 하는 것은 사실은 그 내용보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구냐를 믿는 것입니다. 말만 번지르르하고 실제로 그가 나를 위해 뭘 희생하거나 사랑한 증거가 없다... 그러면 그런 사람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며, 지금 바울이 기가 막혀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지요.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세우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며, 자기를 희생했을까요? 반면, 갈라디아 교회를 율법의 삶으로 돌이킨 거짓 교사들은 그들을 위해 무슨 희생을 했나요? 바울은 이런 아주 간단한 것조차 판단을 못하는 갈라디아 교회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던 겁니다.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하신 개척교회 목사님들, 지금 이 상황이 결코 남의 얘기 같지 않으실 거예요...

 

믿음은 사랑이요, 인격이요, 사연입니다.

 

아멘, 이 사실을 꼭 붙드시고, 오늘도 주님 안에서 이기시는 하루되시기를 사순절 이 기간,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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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06:1)

 

아멘, 44일 목요일, 갈라디아서 211절로 21절 본문입니다.

 

갈라디아서 본문을 시작하면서 본의 아니게 계속 바울에 대하여 좀 안타까운 메시지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저도 참 곤혹스러워 어제는 설교 준비하다가 주님께 이런 기도를 드렸네요. ‘주님, 우리는 바울에 대하여 너무나도 익숙한 기독교인들입니다. 너무 바울에 대하여 이렇게만 접근하시면 그만 마음들이 닫히고 등들을 돌릴 수 있어요. 어떡하면 좋아요?’ 그때 주님은 겨우 요정도로 그럴진대 이천년 전 그때 오랜 세월 모세의 율법으로 살아온 유대사회를 찾은 나는 어땠겠느냐?’ 하시네요. 어휴, 주님... 바울의 또 다른 본문들, 바울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감동의 설교들 역시 풍성히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오늘 본문 첫 구절부터 게바를 면박하는 바울을 만나네요. 주님의 수제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기둥 베드로가 바울에게 면박을 당하는 참 민망한 상황입니다. 자기를 예루살렘 교회에 추천하여서 오늘의 바울이 있게 한 바나바 역시 옆에서 얼마나 난처했을까요? ... 꼭 이래야만 했을까요? 이런 비슷한 상황에 대하여 우리 주님 친히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마태복음 18장인데요, 15절입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바울이 이때 주님의 이 가이드를 좀 지켰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또 베드로와 다른 유대인들, 그리고 바나바가 이방인들과 식사를 하다가 일어나 자리를 비켜준 것이 어쩌면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로 하여금 놀라지 않게 하려는 일종의 배려, 사려 깊은 행동이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그걸 외식으로 보는 건 어쩌면 바울의 관점, 바울의 편견이었을 수도 있잖아요...

 

다른 누구보다도 율법의 삶을 살았던 바울,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율법에 대하여 이토록 진절머리를 치는 걸까요? 율법을 주신 분이 주님이신데, 주님도 참 당혹스러우셨을 것 같습니다. ‘, 네가 그토록 힘들어하는 그 율법을 바로 내가 주었는데, 내가 준 율법에 무슨 문제가 있기라도 하듯 그렇게 진절머리를 치니 내가 참 민망하구나...’ 하셨을 것 같아요. 율법의 시대를 살면서도 여전히 그 안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을 수 있고, 반면, 오늘 이신칭의를 부르짖으면서도 사실은 자기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 역시 있을 수 있잖아요?

 

의롭다함을 받는 거, 구원받아 천국 가는 거는 그런 게 아닙니다. 천국은 오늘 바울처럼 무슨 확고한 태도를 취한다고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고 오직 삶으로, 그리고 삶을 통해 빚어진 주님의 성품으로만 갈 수 있는 나라라는 사실!

 

아멘, 이 사실을 꼭 붙드시고, 오늘도 주님 안에서 성품훈련에 힘쓰시는 하루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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