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se thou hast done this, thou art cursed above every beast, and above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upon thy belly shalt thou go, and dust shalt thou eat all the days of thy life. (3:14)



AC.247

뱀이 배로 기어간다(serpent going on his belly)는 것은 그들의 감각 파트(the sensuous part)가 더 이상 하늘의 것들을 바라볼 수 없고, 오직 몸과 땅에 속한 것들만 바라보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고대인들이 (belly)로는 땅에 가장 가까운 것들을, ‘가슴(chest)으로는 땅보다 높은 것들을, 그리고 머리(head)로는 가장 높은 것들을 의미하였다는 사실로부터 분명합니다. 여기서 감각 파트는 인간 본성 가운데 가장 낮은 부분인데, 그것이 배로 기어간다(went upon its belly) 한 것은 땅에 속한 것들로 향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대교회에서 배를 땅에 대고 엎드리거나 머리에 티끌을 뿌리는 행위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편은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That the “serpent going on his belly” denotes that their sensuous part could no longer look upward to the things of heaven, but only downward to those of the body and the earth,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in ancient times by the “belly” such things are signified as are nearest to the earth; by the “chest” such as are above the earth; and by the “head,” what is highest. It is here said that the sensuous part, which in itself is the lowest part of man’s nature, “went upon its belly,” because it turned to what is earthly. The depression of the belly even to the earth, and the sprinkling of dust on the head, had a similar signification in the Jewish church. Thus we read in David:

 

24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25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26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44:24-26) Wherefore hidest thou thy faces, and forgettest our misery and our oppression? For our soul is bowed down to the dust, and our belly cleaveth to the earth. Arise, a help for us, and redeem us for thy mercys sake (Ps. 44:24–26),

 

여기서도 사람이 여호와의 얼굴에서 돌아설 때, ‘배가 티끌과 땅에 붙는다(cleaves by his belly to the dust and to the earth)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요나가 큰 물고기의 뱃속에 들어간 일도 가장 낮은 곳들, 곧 아래의 땅(lower earth)을 의미하며, 그래서 그는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라고 말합니다. where also it is evident that when man averts himself from the face of Jehovah, he “cleaves by his belly to the dust and to the earth.” In Jonah likewise, by the “belly” of the great fish, into which he was cast, are signified the lower parts of the earth, as is evident from his prophecy: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2:2) Out of the belly of hell cried I, and thou heardest my voice (Jonah 2:2),

 

여기서 스올(hell)은 아래의 땅을 의미합니다. where “hell” denotes the lower earth.

 

 

해설

 

이 글은 창3:14의 ‘배로 기어갈지니라’는 말씀을 더욱 깊이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뱀이 원래부터 배로 기어 다니므로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인간 안의 감각 파트가 영적인 방향을 잃어버린 상태를 묘사하는 상징으로 해석합니다.

 

고대교회 사람들은 인간의 몸 자체를 하나의 상응 구조로 보았습니다. 머리는 가장 높은 것들, 곧 천적이고 신적인 것들을 의미하였고, 가슴은 사랑과 신앙 같은 중간 영역을 의미하였으며, 배는 가장 아래 단계, 곧 자연적이고 감각적인 영역을 의미하였습니다. 따라서 ‘배로 기어간다’는 것은 단순한 자세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향이 완전히 아래로 향했다는 뜻입니다.

 

원래 인간은 위를 향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눈은 하늘을 볼 수 있고, 생각은 진리를 향할 수 있으며, 사랑은 주님을 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감각이 주인이 되면 시선이 바뀝니다. 이제 관심은 영적인 것보다 세속적인 것에, 영원한 것보다 눈앞의 것에, 주님보다 자기 자신에게 머물게 됩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배로 기어가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시편을 인용합니다.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라는 말은 단순히 육체적 고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낮아지고 세상적인 것에 얽매인 상태를 묘사합니다. 특히 ‘배가 땅에 붙었다’는 표현은 감각적 인간이 하늘을 향한 시선을 잃어버린 상태를 상징합니다.

 

요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물고기의 배를 단순한 생물학적 공간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것은 가장 낮은 영적 상태, 곧 빛이 거의 닿지 않는 영역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요나는 ‘물고기의 배’와 ‘스올의 뱃속’을 연결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이것은 영적으로 깊은 침체와 어둠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결국 AC.247의 핵심은 ‘’가 가장 낮은 차원의 삶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뱀이 배로 기어간다’는 것은 감각적 인간이 더 이상 위를 바라보지 못하고, 오직 아래의 것들만 바라보게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형벌의 선언이 아니라, 인간이 주님에게서 멀어질 때 일어나는 영적 방향 상실의 묘사입니다. 원래 하늘을 향하던 존재가 이제는 땅만 바라보게 되었고, 영원을 생각하던 존재가 순간적인 것만 생각하게 되었으며, 주님을 향하던 사랑이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 향하게 된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것이 ‘배로 기어가는 뱀’의 가장 깊은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화

 

1. ‘44:24-26

 

24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25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26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44:24-26) Wherefore hidest thou thy faces, and forgettest our misery and our oppression? For our soul is bowed down to the dust, and our belly cleaveth to the earth. Arise, a help for us, and redeem us for thy mercys sake (Ps. 44:24–26),

 

 

이 시편 구절은 AC.247에서 ‘(belly)가 가장 낮은 차원의 것, 곧 몸과 땅에 속한 것을 의미한다는 증거로 인용됩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시편 기자는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한 육체적 고통의 표현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그는 여기서 ‘영혼(soul)이 진토에 엎드려 있고, ‘(belly)가 땅에 붙어 있다는 표현 속에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특히 ‘배가 땅에 붙었다(our belly cleaveth to the earth)는 표현은 창3:14의 ‘배로 기어갈지니라’와 직접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배는 인간 안의 가장 낮은 수준, 곧 감각적이고 자연적인 차원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배가 땅에 붙는다는 것은 인간의 생각과 관심, 그리고 사랑이 하늘의 것들보다 세상과 몸의 것들에 매여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AC.247에서 그는 ‘사람이 여호와의 얼굴에서 돌아설 때, 배가 티끌과 땅에 붙는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얼굴을 돌리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주님의 얼굴에서 돌아섰다는 점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인간의 시선은 위를 향하지 못하고 아래를 향하게 됩니다. 영원한 것보다 일시적인 것을, 천국보다 세상을, 주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시편 기자는 바로 그 상태에서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부르짖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도움 요청이 아니라, 땅에 붙어 있는 상태에서 다시 위를 향하게 해 달라는 영적 기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AC.247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가 가장 낮은 감각적 수준을 의미하며, ‘배가 땅에 붙는다’는 것은 감각적 인간이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고 세상적인 것들에 매이게 된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곧 창세기에서 뱀이 ‘배로 기어가게 된 것’의 의미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성경적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2. ‘2:2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2:2) Out of the belly of hell cried I, and thou heardest my voice (Jonah 2:2),

 

 

이 구절은 AC.247에서 ‘(belly)가 가장 낮은 것들, 곧 땅과 육체에 속한 차원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인용됩니다.

 

문자적으로는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기도이지만, 스베덴보리는 그보다 더 깊은 내적 의미에 주목합니다. 그는 ‘스올의 뱃속(out of the belly of hell)이라는 표현을 단순한 물고기의 위장 속으로 보지 않고, 영적으로 가장 낮고 어두운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특히 여기서 ‘’는 앞에서 본 창3:14의 ‘배로 기어갈지니라’와 같은 상응을 가집니다. 고대교회의 상응 언어에서 머리는 가장 높은 것들, 가슴은 중간의 영적, 자연적인 것들, 배는 가장 낮은 감각적, 육체적인 것들을 의미하였습니다. 따라서 ‘스올의 뱃속’은 단순히 어떤 장소가 아니라, 인간이 영적으로 가장 아래 단계까지 내려간 상태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뱀이 배로 기어가는 것은 하늘을 등지고 아래만 바라보는 타락의 상태를 의미하지만, 요나는 가장 낮은 상태에 있으면서도 여호와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아래에 있지만 아래에 머물기를 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그곳에서 위를 향해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보면, 이 구절은 단순히 고난 중의 기도가 아니라 인간이 영적으로 가장 어두운 상태에 있을지라도 주님께 부르짖을 수 있으며, 주님은 그 음성을 들으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요나는 가장 낮은 곳에 있었지만, 주님과의 연결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AC.247에서 이 구절은 ‘’가 가장 낮은 차원을 의미한다는 증거로 사용됩니다. 동시에 그 낮은 상태가 반드시 절망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보여줍니다. 사람이 비록 ‘스올의 뱃속’과 같은 상태에 있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주님을 향해 부르짖기 시작하는 순간 이미 위를 향한 길이 열리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AC.247에서 욘2:2를 인용한 이유는, ‘’가 영적으로 가장 낮은 차원과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며, 동시에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도 주님의 자비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영적 원리를 암시하기 위해서입니다. 요나는 땅 아래와 같은 상태에 있었지만, 그의 기도는 하늘에 닿았고,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인간을 다루시는 방식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AC.246, 창3:14, ‘들의 모든 짐승’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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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6.심화

 

1. ‘68:9-10

 

9하나님이여 주께서 흡족한 비를 보내사 주의 기업이 곤핍할 때에 주께서 그것을 견고하게 하셨고 10주의 회중을 그 가운데에 살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 (68:9, 10) Thou, O God, dost send the rain of thy kindnesses; thou confirmest thy laboring inheritance; thy wild animal shall dwell therein (Ps. 68:9–10),

 

 

68:9-10 AC.246에서 ‘들의 짐승(wild animal of the field)이 애정(affection)을 의미한다는 증거로 인용됩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메마른 기업을 회복시키시고, 그 가운데 주의 회중이 거하게 하신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영어 원문에는 ‘thy wild animal shall dwell therein’이라는 표현이 있어, 스베덴보리는 이 ‘들의 짐승’을 단순한 동물로 보지 않습니다.

 

그의 상응 해석에 따르면 ‘(rain)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진리와 축복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기업(inheritance)은 교회 또는 주님께 속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 가운데 거하는 들짐승(wild animal)’은 그 교회 안에 살아 있는 선한 애정, 곧 주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정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의 내적 의미는, 주님께서 진리의 비를 내려 황폐해진 교회를 회복시키시고, 그 안에 선한 애정들이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AC.246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성경의 ‘들의 짐승’이 언제나 실제 동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의 애정들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특히 여기서는 ‘들의 짐승이 하나님의 기업 가운데 거한다’고 말하는데, 문자 그대로의 동물보다 교회 안에 거하는 선한 애정으로 이해할 때 훨씬 자연스럽고 깊은 의미가 드러난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field)이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은 단순한 자연의 들판이 아니라 진리와 선이 심기고 자라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들의 짐승’은 교회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애정들, 특히 선과 진리를 사랑하는 정서들을 뜻하게 됩니다.

 

결국 AC.246에서 이 시편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들의 짐승’이 상응으로는 인간 안의 애정, 특히 선한 애정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성경 자체로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주의 들짐승이 그 가운데 거하나이다’라는 말씀은, 주님께서 회복하신 교회 안에 선의 애정과 체어리티가 살아 있음을 뜻하는 말씀으로 해석되는 것입니다.

 

 

 

AC.246, 창3:14, ‘들의 모든 짐승’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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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se thou hast done this, thou art cursed above every beast, and above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upon thy belly shalt thou go, and dust shalt thou eat all the days of thy life. (3:14)



AC.246

짐승(beast)들의 짐승(wild animal of the field)이 애정(affections)을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 내용(AC.45, 46)으로부터 분명합니다. 여기에 다윗의 다음 말씀을 덧붙일 수 있습니다. That the “beast and the wild animal of the field” signify affections is evident from what was previously said concerning them (n. 45–46), to which it is permitted to add the following passage from David:

 

9하나님이여 주께서 흡족한 비를 보내사 주의 기업이 곤핍할 때에 주께서 그것을 견고하게 하셨고 10주의 회중을 그 가운데에 살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 (68:9, 10) Thou, O God, dost send the rain of thy kindnesses; thou confirmest thy laboring inheritance; thy wild animal shall dwell therein (Ps. 68:9–10),

 

여기서도 들의 짐승(wild animal)은 선의 애정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기업 가운데 거한다(dwell in the inheritance of God) 하기 때문입니다. where also “wild animal” denotes the affection of good, because it is said that it shall “dwell in the inheritance of God.”

 

또한 여기와 창2:19-20에서는 짐승들의 짐승이 언급되는 반면, The reason why here, and also in chapter 2:19–20, the “beast and the wild animal of the field” are mentioned,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20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9, 20)

 

1:24-25에서는 짐승땅의 짐승이 언급되는 이유는, while in chapter 1:24–25, the “beast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re named,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24, 25)

 

여기서는 교회(church) 또는 거듭난 사람(regenerated man)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반면, 첫째 장에서는 아직 교회가 되지 않은 상태, 곧 장차 거듭나게 될 사람에 대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field)이라는 말은 교회 또는 거듭난 사람에게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is that the present passage treats of the church or regenerated man, whereas the first chapter related to what was as yet not a church, or to man about to become regenerate; for the word “field” is applied to the church, or to the regenerate.

 

 

해설

 

이 본문은 먼저 ‘짐승’과 ‘들의 짐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줍니다. 현대인은 동물을 보면 동물 자체를 생각하지만, 스베덴보리에게 성경 속 동물들은 대부분 인간 안의 애정과 욕구, 성향을 상징합니다. 선한 동물은 선한 애정을, 사나운 동물은 왜곡된 애정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시편 68편의 ‘주의 들짐승이 그 가운데 거하나이다’라는 구절을 문자적으로 읽으면 이상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업 가운데 동물이 산다는 말이 핵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들의 짐승’을 주님께서 사람 안에 심어 주시는 선의 애정, 곧 체어리티와 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기업 가운데 들짐승이 거한다는 것은, 교회 안에 선한 애정이 살아 있다는 뜻이 됩니다.

 

이어서 스베덴보리는 매우 흥미로운 차이를 지적합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땅의 짐승(wild animal of the earth)이라고 했는데, 창세기 2장과 여기서는 ‘들의 짐승(wild animal of the field)이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차이를 우연한 표현상의 차이로 보지 않습니다. 창세기 1장은 아직 완성된 교회가 아니라, 장차 거듭남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의 상태를 다룹니다. 그래서 ‘(earth)이라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반면 창세기 2장 이후는 이미 교회가 형성된 상태, 또는 거듭난 사람의 상태를 다루므로 ‘(field)이라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스베덴보리 저작에서 ‘(field)은 매우 중요한 상응입니다. ‘’은 씨가 뿌려지고 열매가 맺히는 장소이므로, 진리와 선이 심기고 자라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은 종종 교회 자체나, 교회의 진리와 선이 자라는 인간의 마음을 뜻합니다.

 

이 때문에 ‘들의 짐승’은 단순한 자연 동물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애정들을 의미하게 됩니다. 선한 애정일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왜곡된 애정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교회와 관련된 내적 상태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AC.246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성경의 ‘짐승’과 ‘들의 짐승’은 인간 안의 애정들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땅의 짐승’과 ‘들의 짐승’의 차이는 ‘’과 ‘’의 차이와 같으며, ‘’은 특별히 교회와 거듭난 사람의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창세기의 단어 하나까지도 우연히 기록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같은 ‘짐승’이라도 ‘땅의 짐승’인지 ‘들의 짐승’인지에 따라 그 내적 의미가 달라지며, 이를 통해 말씀은 인간의 거듭남과 교회의 상태를 매우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심화

 

1. ‘68:9-10

 

 

AC.246, 심화 1, ‘시68:9-10’

AC.246.심화 1. ‘시68:9-10’ 9하나님이여 주께서 흡족한 비를 보내사 주의 기업이 곤핍할 때에 주께서 그것을 견고하게 하셨고 10주의 회중을 그 가운데에 살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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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7, 창3:14, ‘배로 다니고’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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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5, 창3:14, ‘네가 더욱 저주를 받아’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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