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12.심화

 

2.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그러니까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사는 것이네요?

 

 

네, 정확히 그 방향입니다. 다만 ‘요셉처럼, 다니엘처럼’이라는 말을 단순히 ‘세상 속에서도 성공한 신앙인’이라는 이미지로만 이해하면 핵심을 놓칠 수 있습니다. 더 깊은 의미는 ‘외적 환경과 상관없이 내적 중심을 지킨 사람’이라는 데 있습니다. 요셉과 다니엘은 각각 이집트와 바벨론이라는 전혀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았지만, 그들의 삶의 근원은 그 체제에 있지 않았습니다.

 

요셉의 경우를 보면,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그 체제의 언어와 구조를 그대로 사용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지혜를 ‘내가 해석하나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께서 해석하시나이다’라고 돌렸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같은 지혜를 사용하지만, 그 출처를 자기에게 두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과,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을 구별하는 삶’입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바벨론의 학문과 행정 체계 안에서 최고 수준의 지성으로 활동했지만, 그 중심은 바벨론에 있지 않았습니다. 왕의 꿈을 해석할 때도, 그는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지 않고 ‘지혜는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또한 상황이 아무리 자신에게 불리, 자신을 에워싸더라도, 내적 방향, 곧 기도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겉으로는 완전히 그 시대와 사회 안에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전혀 다른 근원에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질서입니다. 겉 사람은 세상과 함께 움직이지만, 속 사람은 주님을 향해 열려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역할이나 위치가 아니라 ‘출처’입니다. 같은 판단을 하고, 같은 일을 해도, 그것이 자기 영광이나 두려움에서 나오느냐, 아니면 주님께 맡기고 이웃을 위한 선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삶이 됩니다. 요셉과 다니엘은 특별한 환경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니라, 이 ‘출처의 질서’를 지켰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살되, 세상에서 나오지 않는 생명으로 사는 것, 이것이 요셉과 다니엘의 삶이고, 동시에 우리가 지금 이 혼란 속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깊은 길입니다.

 

 

 

AC.112, 창2:11-12, '지혜, 지성, 선, 진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기준은 오직 주님'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2 더욱이 다음의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에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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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2, 심화 1, ‘세상에서는 가짜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AC.111.심화 1. ‘세상에서는 가짜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위 본문의 끝을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지 않은 것들, 곧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들도 비록 이러한 이름들로 불리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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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2.심화

 

1. ‘세상에서는 가짜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위 본문의 끝을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지 않은 것들, 곧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들도 비록 이러한 이름들로 불리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가짜입니다.’라고 하는데요,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그런 가짜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을까요?

 

 

말씀하신 대로, 이 세상에서는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지 않은 것들’, 곧 겉보기에는 지혜, 신앙, 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들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스베덴보리의 요지는 그것들을 ‘당장 제거하라’가 아니라, ‘그것들과 함께 살되, 그것에 속하지 말라’는 데 있습니다. 즉, 문제의 핵심은 외적 환경이 아니라 ‘내적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입니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사랑에서 나오도록’ 방향을 잡는 것입니다. 같은 말, 같은 행동이라도 그 출발점이 자기 사랑과 인정 욕구에서 나오느냐, 아니면 이웃에 대한 선의와 주님께 대한 순종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됩니다. 세상 속에서는 동일한 언어와 구조를 사용하더라도, 그 안에서 ‘내가 이것을 왜 하는가’가 중심을 결정합니다. 이 중심이 흐려지지 않도록 조용히 점검하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구별은 하되, 정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짜와 진짜를 분별하는 눈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적 질서가 쉽게 흐려집니다. 그러나 그 분별이 곧 사람에 대한 판단과 배척으로 이어지면, 그 순간 이미 중심이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는 사람 자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질서와 출처를 분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사람은 품되, 그 안의 흐름을 식별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는 ‘겉으로는 함께, 속으로는 방향을 지키는 삶’이 됩니다. 직장과 사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동일한 시스템과 언어를 사용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이것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인가, 아니면 나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인가’를 조용히 살피는 태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이 반복될수록, 사람은 점점 더 ‘흐름의 출처’를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퍼셉션으로 가는 길입니다.

 

또한 너무 급하게 완전한 상태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상태에서는 대부분의 신앙이 ‘진리에서 시작하여 사랑으로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짜와 섞여 있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과정의 일부’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 방향이 바뀌고 있는가입니다. 점점 더 사랑에서 나오려 하고, 점점 더 주님께 돌리려 한다면, 이미 질서는 회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삶은 겉으로는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더 평범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출처가 바뀐 삶’입니다. 같은 일을 하되, 다른 근원에서 하는 삶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변화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을 떠나지 않고도, 세상 한가운데서 ‘다른 질서로 사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태도는 가짜를 피해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는 흐름’을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 때, 사람은 점점 더 분별하게 되고, 동시에 점점 더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AC.112, 심화 2,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AC.112.심화 2.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그러니까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사는 것이네요? 네, 정확히 그 방향입니다. 다만 ‘요셉처럼, 다니엘처럼’이라는 말을 단순히 ‘세상 속에서도 성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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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2, 창2:11-12, '지혜, 지성, 선, 진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기준은 오직 주님'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2 더욱이 다음의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에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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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2:11, 12)

 

AC.112

 

더욱이 다음의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에서 나오지 않는 지혜는 없으며, 그러므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지혜라는 건 없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신앙에서 나오지 않는 지성도 없으며, 그러므로 역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지성이라는 건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에서 나오지 않는 선은 없고, 따라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선도 없으며, 신앙에서 나오지 않는 진리는 없고, 그러므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진리도 없습니다.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지 않은 것들, 곧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들도 비록 이러한 이름들로 불리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가짜입니다. Be it known moreover that there is no wisdom which is not from love, thus from the Lord; nor any intelligence except from faith, thus also from the Lord; and that there is no good except from love, thus from the Lord; and no truth except from faith, thus from the Lord. What are not from love and faith, and thus from the Lord, are indeed called by these names, but they are spurious.

 

 

해설

 

이 글은 지금까지 이어진 모든 설명을 ‘원천의 문제’로 단정 짓는 매우 강한 선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지혜, 지성, 선, 진리라는 네 가지를 나열하지만, 그 요지는 단순합니다. ‘출처가 주님인가 아닌가’입니다. 무엇이 얼마나 고상해 보이는지, 얼마나 정교한지,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는 기준이 아닙니다. 기준은 오직 하나, 사랑과 신앙을 통해 주님에게서 나왔는가 하는 점입니다.

 

먼저 지혜와 지성의 구분이 다시 한번 분명해집니다. 지혜는 사랑에서 나오고, 지성은 신앙에서 나옵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기능이지만, 근원은 같습니다. 사랑과 신앙이 주님에게서 오기 때문에, 지혜와 지성 또한 주님에게서 옵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자율적 생산 영역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받아들이는 그릇이지, 원천이 아닙니다.

 

이어 선과 진리의 문제로 넘어갑니다. 선은 사랑에서 나오고, 진리는 신앙에서 나옵니다. 이는 앞서 ‘생명나무’가 사랑과 그로부터 나온 신앙을 의미한다는 설명과 정확히 맞물립니다. 선과 진리는 인간의 도덕적 성취나 지적 판단의 결과가 아니라, ‘사랑과 신앙의 생명’이 드러난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것들의 근원은 언제나 주님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한발 더 나아가, 매우 불편할 수 있는 말을 합니다.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지 않은 것들도, 세상에서는 지혜, 지성, 선, 진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가짜’라고 단언합니다. 이 말은 지적 능력이나 도덕적 행위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근원의 왜곡’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가짜라는 말의 핵심은, 그것들이 ‘생명을 주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겉으로는 지혜처럼 보일 수 있고, 진리처럼 말할 수 있으며, 선처럼 행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신앙, 곧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유입이 없다면, 그것들은 지속되지 않고, 사람을 살리지 못합니다. 결국 자기 사랑이나 세상 사랑으로 되돌아갑니다.

 

이 글은 천적 인간의 상태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합니다. 천적 인간에게서는 지혜와 지성, 선과 진리가 분리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근원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에서 신앙이 나오고, 그 신앙에서 지성이 나오며, 그 모든 것이 다시 사랑의 선으로 돌아갑니다. 이 순환이 살아 있을 때, 그것은 참된 것입니다.

 

AC.112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나오느냐이며,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주님에게서 나오지 않은 것은 이름만 같을 뿐, 생명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심화

 

1. ‘세상에서는 가짜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AC.112, 심화 1, ‘세상에서는 가짜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AC.111.심화 1. ‘세상에서는 가짜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위 본문의 끝을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지 않은 것들, 곧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들도 비록 이러한 이름들로 불리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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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AC.112, 심화 2,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AC.112.심화 2.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그러니까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사는 것이네요? 네, 정확히 그 방향입니다. 다만 ‘요셉처럼, 다니엘처럼’이라는 말을 단순히 ‘세상 속에서도 성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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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1, 창2:11-12, '왜 이런 설명이 오늘날 이해되기 어려운가'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1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내적 의미에서 어떠한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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