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4:26)

 

AC.441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이때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앞에서 태고교회에 관해 이미 설명한 내용으로 충분히 분명합니다. 태고교회는 다른 어떤 교회보다도 주님을 경배하고 예배했습니다. 또한 아벨이 양 떼의 첫 새끼를 제물로 드렸다는 사실에서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다’(calling upon the name of Jehovah)는 가인과 라멕이라고 하는 이들에 의해 이전 교회가 소멸된 후에 세워진 새 교회의 예배 외에 다른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That the invocation of the name of Jehovah did not commence at this time is sufficiently evident from what has already been said above in regard to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more than any other adored and worshiped the Lord; and also from the fact that Abel brought an offering of the firstlings of the flock; so that in this passage by “calling upon the name of Jehovah” nothing else is signified than the worship of the new church, after the former church had been extinguished by those who are called “Cain” and “Lamech.”

 

해설

AC.441은 창4:26의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이해할 때 생길 수 있는 오해를 직접 바로잡습니다. ‘비로소’라고 해서 이때 인류가 처음으로 주님을 알고 예배하거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앞에서 설명한 태고교회만 생각해 보아도 이것이 분명하다고 합니다. 태고교회는 다른 어떤 교회보다도 주님을 경배하고 예배했기 때문입니다.

 

아벨 역시 그 사실을 보여 주는 직접적인 근거입니다. 창4:4에서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여호와께 제물로 드렸습니다. 에노스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주님께 드리는 예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창4:26의 ‘그때에 비로소’라는 표현을 인류 역사에서 예배 자체가 처음 생겨난 시점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AC.440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다’가 주님께 드리는 예배 전반을 뜻한다 설명했다면, AC.441은 이제 그 예배가 ‘비로소 시작되었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밝힙니다.

 

그 답은 ‘새 교회의 예배’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다’가 여기서는 ‘이전 교회가 가인과 라멕이라고 하는 이들에 의해 소멸된 후에 시작된 새 교회의 예배’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시작’의 주어는 인류 전체의 예배가 아니라 새 교회의 예배입니다. 이전에는 아무도 주님을 예배하지 않다가 에노스 때 처음 예배가 생긴 것이 아니라, 이전 교회가 소멸된 뒤 새롭게 형성된 교회가 이제 그 교회에 속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은 창4 전체의 흐름과 연결해서 볼 때 더욱 분명해집니다. 가인은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을 나타냈고, 그 신앙은 아벨이 나타내는 체어리티를 소멸시켰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가운데에서도 신앙을 완전히 사라지게 하지 않으시고 ‘가인의 표’를 통해 보존하셨습니다. 이후 라멕에 이르러서는 그렇게 보존되어 있던 신앙마저 황폐해지는 상태가 나타납니다. 곧 창4의 흐름은 체어리티가 소멸된 뒤에도 보존되었던 신앙이 마침내 황폐해지는 데까지 내려갑니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주님께서 새로운 것을 일으키시는 방향으로 전환됩니다.

 

그 새로운 시작을 나타내는 것이 셋과 에노스입니다. 앞의 AC.434-440에서 셋은 체어리티로 이어지는 새로운 신앙을, 에노스는 체어리티를 신앙의 으뜸으로 여긴 교회를 나타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말씀은 단순히 새로운 종교적 행위가 생겨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체어리티가 소멸되고, 그 후 보존되어 있던 신앙마저 황폐해진 이전 교회의 뒤를 이어, 주님께서 새로운 신앙을 주시고 체어리티가 다시 중심이 되는 새 교회를 일으키셨으며, 이제 그 교회에서 체어리티로부터 나오는 예배가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보면 AC.440과 AC.441은 서로 정확히 이어집니다. AC.440의 초점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있었다면, AC.441의 초점은 ‘왜 그것을 이제 시작했다고 하는가’에 있습니다. 전자는 그것이 주님께 드리는 예배 전반이며 그 예배는 체어리티에서 나와야 한다고 설명하고, 후자는 그러한 예배 자체가 인류에게 처음 생긴 것이 아니라 ‘새 교회의 예배’가 이제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창4:26의 ‘비로소’는 최초의 예배를 가리키는 시간적 표현이라기보다, 이전 교회의 소멸과 새 교회의 출현 사이에 놓인 영적 전환을 보여 주는 말입니다.

 

또한 ‘가인과 라멕이라고 하는 이들’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두 역사적 개인이 하나의 교회를 없앴다는 의미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의 속뜻에서 가인과 라멕은 교회가 거쳐 간 특정한 영적 상태를 나타냈습니다. 따라서 이전 교회의 소멸 역시 창4에서 계속 다루어 온 신앙과 체어리티의 변질과 황폐라는 흐름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소멸 뒤에 셋과 에노스가 등장한다는 것은 인간의 실패가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전 교회의 생명이 다한 자리에서도 주님께서는 새로운 신앙과 체어리티를 일으키시고, 그로부터 다시 참된 예배가 시작되게 하십니다. 이것이 AC.441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then began they to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는 말씀을 통해 드러나는 창4 마지막 부분의 중요한 전환입니다. (AC.441 해설)

 

 

 

AC.440, 창4:26, ‘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체어리티에서 비롯된 예배를 의미하는가?’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4:26) AC.440방금 인용한 말씀이 그 교회의 체어리티에서 비롯된 예배를 뜻한다는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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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4:26)

 

AC.440

방금 인용한 말씀이 그 교회의 체어리티에서 비롯된 예배를 뜻한다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다’(call upon the name of Jehovah)가 주님께 드리는 모든 예배를 나타내는 관용적이고 일반적인 표현이라는 사실에서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 예배가 체어리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앞 절에서는 그분을 ‘하나님’(God)이라고 했으나 여기서는 ‘여호와’(Jehovah)라고 한 사실에서도 분명합니다. 또한 주님은 체어리티가 아니고서는 예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체어리티에 속하지 않은 신앙에서는 참된 예배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 예배는 단지 입술의 것일 뿐 마음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다’(call on the name of Jehovah)가 주님께 드리는 모든 예배를 나타내는 관용적인 표현이라는 것은 말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 관해, That by the words just quoted is signified the worship of that church from charity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o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is a customary and general form of speech for all worship of the Lord; and that this worship was from charity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Jehovah” is here mentioned, whereas in the preceding verse he was called “God,” as well as from the fact that the Lord cannot be worshiped except from charity, since true worship cannot proceed from faith that is not of charity, because it is merely of the lips, and not of the heart. That to “call on the name of Jehovah” is a customary form of speech for all worship of the Lord, appears from the Word; thus it is said of Abraham, that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창12:8);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13:4) “he built an altar to Jehovah, and called on the name of Jehovah” (Gen. 12:8; 13:4)

 

또다시, and again, that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창21:33) he “planted a grove in Beersheba, and called there on the name of Jehovah, the God of eternity” (Gen. 21:33).

 

이 표현이 모든 예배를 포함한다는 것은 이사야에서도 분명합니다. That this expression includes all worship, is plain from Isaiah:

 

22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23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 (사43:22, 23)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hath said, thou hast not called upon me, O Jacob, but thou hast been weary of me, O Israel. Thou hast not brought to me the small cattle of thy burnt offerings, neither hast thou honored me with thy sacrifices. I have not caused thee to serve with an offering, nor wearied thee with incense, (Isa. 43:22–23)

 

이 말씀에는 모든 표상적 예배의 요약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in which text a summary is given of all representative worship.

 

해설

AC.440은 창4:26의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말씀 가운데 특히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다’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이것은 단순히 ‘여호와’라는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기 시작했다는 뜻이 아니라, 말씀에서 주님께 드리는 ‘모든 예배’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표현입니다. 따라서 창4:26의 초점은 하나님의 이름을 처음 발음한 시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에노스로 나타나는 교회에서 어떠한 예배가 이루어졌는가에 있습니다.

 

그런데 AC.440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예배의 근원이 ‘체어리티’였다고 말합니다. 그 첫 번째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하나님’(God)과 ‘여호와’(Jehovah)라는 이름의 차이입니다. 앞 절, 곧 창4:25에서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고 하여 ‘하나님’이라고 했지만, 창4:26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명칭의 변화 자체를 의미 있는 것으로 보고, 여기서 말하는 예배가 체어리티에서 비롯된 예배라는 근거 가운데 하나로 제시합니다. 다만 AC.440은 이 글에서 ‘하나님’과 ‘여호와’의 차이를 더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으므로, 그 구체적인 의미까지 미리 확대해서 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두 번째 근거는 더욱 직접적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주님은 체어리티가 아니고서는 예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예배의 외적 형식보다 그것을 낳는 내적 생명입니다. 신앙이 있다고 말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입술로 신앙을 고백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 참된 예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이 체어리티에 속하지 않는다면 그 신앙에서 나오는 예배 역시 ‘입술의 것’일 뿐 ‘마음의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참된 예배는 체어리티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이 설명은 창4 전체의 흐름과도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가인은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을 나타냈고, 그 분리된 신앙은 아벨이 나타내는 체어리티를 소멸시켰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신앙을 보존하셨고, 셋에 이르러서는 ‘체어리티로 이어지는 신앙’이 나타났으며, 에노스에서는 ‘체어리티를 신앙의 으뜸으로 여긴 교회’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제 그 교회의 예배가 ‘체어리티에서 비롯된 예배’라고 설명됩니다. 결국 신앙과 체어리티의 관계가 예배에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무엇을 믿는가만이 아니라 그 믿음이 어떠한 사랑과 삶에서 나오는가가 예배의 성격을 결정합니다.

 

아브라함에 관한 창12:8, 13:4와 창21:33의 인용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다’라는 표현이 예배 전반을 가리킨다는 것을 말씀 자체에서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거나 브엘세바에서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단순히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는 한 행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드리는 예배를 포괄하는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4:26의 같은 표현 역시 이러한 말씀의 용례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어지는 사43:22-23의 인용은 그 의미를 더욱 넓혀 줍니다. 그 말씀에는 여호와를 부르는 것과 함께 번제, 제물, 향 등 당시의 여러 예배 행위가 함께 언급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모든 표상적 예배의 요약’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표현 안에는 한 가지 기도 행위만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예배 전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단, 번제, 제물, 향과 같은 외적 형식들이 서로 달라도 그것들은 모두 예배라는 하나의 큰 범주 안에 놓입니다.

 

그러나 AC.440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예배를 참된 예배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제단을 쌓고 제물을 드리며 향을 피우는 외적인 예배가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마음의 예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신앙을 고백한다고 해도 체어리티와 분리되어 있다면 그것은 ‘입술의 것’에 머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에노스로 나타나는 교회에서는 체어리티를 신앙의 으뜸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 체어리티에서 예배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 점에서 창4:26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였다’는 말씀은 앞에서부터 이어져 온 신앙과 체어리티의 문제가 마침내 예배의 문제로까지 나아간 것을 보여 줍니다. 참된 예배는 입술에서 시작하여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체어리티가 있는 마음에서 나와 입술과 삶으로 표현되는 예배입니다. (AC.440 해설)

 

 

 

AC.441, 창4:26,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은 새 교회의 예배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4:26) AC.441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이때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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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39, 창4:26, ‘에노스는 왜 천적 인간이 아닌 영적 인간을 의미하는가?’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4:26) AC.439‘셋’(Seth)이 체어리티로 이어지는 신앙을 뜻한다는 것은 앞 절에서 설명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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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4:26)

 

AC.439

‘셋’(Seth)이 체어리티로 이어지는 신앙을 뜻한다는 것은 앞 절에서 설명했습니다. 그의 ‘아들, 곧 이름이 에노스인 이’(son, whose name was Enosh)가 체어리티를 신앙의 으뜸으로 여긴 교회를 뜻한다는 것 역시 앞에서 말한 내용으로 분명하며, 또한 그에게 ‘에노스’(Enosh)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사실에서도 분명합니다. 이 이름 역시 ‘사람’(man)을 뜻하는데, 천적 인간(celestial man)이 아니라 여기서 ‘에노스’라고 하는 바로 그 영적 인간(spiritual man)을 뜻합니다. 이것은 바로 이어지는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였다’(then began they to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는 말씀에서도 분명합니다. That by “Seth” is signified the faith through which comes charity was shown in the preceding verse. That by his “son, whose name was Enosh,” is signified a church that regarded charity as the principal of faith, is also evident from what has been said before, as well as from the fact that it is called “Enosh,” which name also means a “man,” not a celestial man, but that human spiritual man which is here called “Enosh.” The same is evident also from the words that immediately follow: “then began they to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해설

AC.439는 앞의 AC.438에서 제시한 에노스의 의미를 그의 이름을 통해 한층 더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셋은 ‘체어리티로 이어지는 신앙’을 뜻하고, 그의 아들 에노스는 ‘체어리티를 신앙의 으뜸으로 여긴 교회’를 뜻합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에노스’라는 이름 자체도 ‘사람’(man)을 뜻한다고 하면서 매우 중요한 구별을 하나 덧붙입니다. 에노스가 나타내는 사람은 ‘천적 인간’(celestial man)이 아니라 ‘영적 인간’(spiritual man)이라는 것입니다.

 

이 구별은 창세기 앞부분을 읽어 온 독자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질문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창1에서는 거듭남의 과정을 거쳐 영적 인간이 되고, 창2에서는 더 나아가 천적 인간이 된 상태를 다루었습니다. 태고교회의 본래 상태는 이 천적 인간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아직 홍수 이전인 창4의 에노스에게 스베덴보리가 다시 ‘영적 인간’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따라서 에노스의 등장을 태고교회 처음의 천적 상태가 그대로 회복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AC.439 자체는 왜 이 시점에서 다시 영적 인간이 나타나는지까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에노스가 천적 인간이 아니라 영적 인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데 머뭅니다.

 

이 사실은 앞에서 이어져 온 신앙과 체어리티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욱 주목할 만합니다. 가인은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을, 아벨은 체어리티를 나타냈습니다. 분리된 신앙이 체어리티를 소멸시킨 뒤에도 주님께서는 신앙을 완전히 사라지게 하지 않으시고 보존하셨습니다. 그리고 셋에서는 마침내 ‘체어리티로 이어지는 신앙’이 나타납니다. 이제 에노스에서는 그 신앙을 통하여 체어리티를 신앙의 으뜸으로 여기는 교회가 나타납니다. 따라서 에노스는 앞의 가인과 같은 분리된 신앙의 상태가 아니라, 신앙과 체어리티의 관계가 다시 올바른 방향을 찾은 상태와 관련됩니다.

 

여기서 ‘체어리티를 신앙의 으뜸으로 여겼다’(regarded charity as the principal of faith)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에노스로 나타나는 교회는 신앙을 버리거나 가볍게 여긴 교회가 아닙니다. 오히려 신앙을 인정하면서도 그 신앙이 체어리티를 향해야 하며, 체어리티가 신앙에서 으뜸이 되어야 한다고 여긴 교회입니다. 가인에게서 문제였던 것은 신앙 자체가 아니라 신앙이 사랑과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것이었습니다. 셋과 에노스에 이르러서는 이 관계가 달라집니다. 셋은 체어리티로 이어지는 신앙이고, 에노스는 체어리티를 신앙의 으뜸으로 여기는 교회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어지는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였다’는 말씀도 에노스의 의미를 뒷받침한다고 합니다. AC.438에서는 이 말씀을 ‘체어리티에서 비롯된 그 교회의 예배’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에노스로 나타나는 교회가 체어리티를 신앙의 으뜸으로 여겼다는 것과, 그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예배가 나타났다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체어리티가 단순히 교리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인정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예배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AC.439는 에노스로 나타나는 ‘교회’를 직접 ‘영적 교회’라고 규정하지 않습니다. 에노스라는 이름이 뜻하는 ‘사람’이 천적 인간이 아니라 영적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 한 글만을 근거로 에노스의 교회를 훗날 홍수 후에 등장하는 고대교회와 같은 의미의 ‘영적 교회’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단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태고교회 처음의 천적 상태가 그대로 되돌아온 것이 아니며, 에노스라는 이름에는 분명히 ‘영적 인간’이라는 새로운 성격이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에서 AC.439는 창4 마지막의 회복을 단순한 원상복귀로 이해하지 못하게 합니다. 주님께서는 체어리티를 소멸시킨 신앙을 그대로 두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처음의 천적 상태를 단순히 되돌려 놓으신 것도 아닙니다. 셋으로 나타나는 신앙을 통하여 체어리티가 다시 중심에 놓이는 교회를 마련하셨고, 그 교회를 나타내는 에노스라는 이름에는 ‘천적 인간이 아니라 영적 인간’이라는 중요한 변화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교회에서 체어리티로부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예배가 나타납니다. 왜 홍수 이전에 벌써 ‘영적 인간’이 등장하는지는 이후의 설명까지 더 살펴보아야 하지만, 적어도 AC.439는 태고교회의 쇠퇴 이후 이루어지는 회복이 처음 상태의 단순한 반복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AC.439 해설)

 

 

 

AC.440, 창4:26, ‘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체어리티에서 비롯된 예배를 의미하는가?’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4:26) AC.440방금 인용한 말씀이 그 교회의 체어리티에서 비롯된 예배를 뜻한다는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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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38, 창4:26, ‘에노스는 체어리티를 신앙의 으뜸으로 여긴 교회를 의미한다’ (AC.438-442)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And to Seth, to him also there was born a son; and he called his name Enosh: then began they to call upon the name of 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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