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4.심화

 

5. ‘13:18-19

 

18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19이는 그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13:18, 19) Pray ye that your flight be not in the winter, for those shall be days of affliction (Mark 13:18–19).

 

 

이 구절이 AC.34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겨울’이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사랑이 식고 신앙만 남은 영적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34에서 스베덴보리는 해는 사랑, 달은 신앙을 뜻하며, 사람의 영적 상태도 계절에 비유된다고 설명합니다. 봄과 여름은 사랑과 신앙이 살아 있는 상태를, 가을과 겨울은 그것들이 약해지거나 사라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바로 그런 문맥에서 주님의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말씀이 인용됩니다.

 

문자 그대로 보면 주님은 단지 피난 가기 어려운 추운 계절을 말씀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마태복음 24장과 마가복음 13장이 교회의 마지막 상태, 곧 영적 황폐에 대해 말하는 장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여기의 겨울 역시 자연계의 겨울이 아니라 영적 겨울을 뜻합니다.

 

영적 겨울이란 사랑이 식어 버린 상태입니다. 신앙의 말과 지식은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따뜻함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마치 자연계에서 겨울이 되면 열매도 없고 꽃도 없으며, 생명의 활동이 거의 멈추는 것처럼, 영적 겨울에서도 선한 애정과 사랑의 활동이 약해집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의 도망함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시험과 환난의 때가 사랑 없는 상태와 겹치지 않기를 구하라는 뜻입니다.

 

특히 이어지는 그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AC.34의 주제는 사랑과 신앙의 결합인데, 사랑이 없는 신앙은 시험을 견딜 힘이 없습니다. 사랑은 영적 생명의 열이고, 신앙은 그 열에서 나오는 빛입니다. 그런데 겨울이 되면 열이 약해집니다. 따라서 영적 겨울에 큰 시험이 닥치면 사람은 쉽게 낙심하고 넘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겨울을 피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보면, 이 말씀은 단순히 미래의 어떤 역사적 사건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모든 신앙인의 내적 삶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영적 겨울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식고, 주님에 대한 애정이 희미해지고, 신앙이 지식이나 습관으로만 남는 시기가 있습니다. 그런 상태는 본래 위험한 상태인데, 거기에 큰 시험까지 더해지면 더욱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AC.34에서 이 구절은 사랑과 신앙의 관계를 설명하는 증거로 사용됩니다. 사랑이 살아 있는 상태는 영적 여름이지만, 사랑이 사라지고 신앙만 남은 상태는 영적 겨울입니다. 주님께서 겨울을 언급하신 것은 계절 자체 때문이 아니라, 사랑 없는 신앙의 상태가 얼마나 연약하고 위험한지를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결국 이 구절은 신앙이 홀로 존재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사랑이라는 열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AC.34의 중심 사상을 뒷받침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AC.34, 창1:14-17, ‘사랑 없는 신앙은 빛이 아니다 : 생명을 가르는 광명체의 본질’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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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4, 심화 4, ‘마7:21-22’

AC.34.심화 4. ‘마7:21-22’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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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7:21-22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7:21, 22, 끝까지) Not everyone that saith unto me, Lord, Lord, shall enter into the kingdom of the heavens, but he that doeth my will: many will say to me in that day, Lord, Lord, have we not prophesied through thy name (Matt. 7:21–22, to the end).

 

 

이 구절이 AC.34에 인용된 이유는, 신앙과 사랑이 분리될 수 없으며, 사랑 없는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님 자신의 말씀으로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AC.34에서 스베덴보리는 넷째 날의 큰 광명체’인 사랑과 작은 광명체’인 신앙을 설명하면서, 신앙이란 결코 지식이나 고백만이 아니고 반드시 사랑과 결합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로 그 점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말씀이 마태복음 7장입니다.

 

이 본문에서 주님은 주여 주여 하는 사람들조차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주여 주여 하는 것은 신앙의 고백을 뜻합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많은 권능도 행했다고 주장합니다. 겉으로 보면 매우 신앙적인 사람들입니다. 교리도 알고, 말씀도 전하고, 종교적 활동도 많이 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스베덴보리가 AC.34에서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주님께서 천국의 기준으로 제시하신 것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을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그 신앙이 삶 속에서 사랑과 선행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AC.33에서 말한 내용과도 직접 연결됩니다. 거기서 스베덴보리는 참된 사랑은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며, 참된 생명은 그 사랑에서 나온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AC.34에서는 사랑이 낮을 다스리는 해이고, 신앙은 밤을 다스리는 달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달이 해의 빛을 받아 빛나듯이, 신앙도 사랑으로부터 생명을 받아야만 참된 신앙이 됩니다. 사랑과 분리된 신앙은 마치 빛을 잃은 달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7장의 사람들은 바로 그런 상태를 보여 줍니다. 그들에게는 교리도 있었고, 종교적 활동도 있었고, 심지어 기적적인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을 행하는 삶, 곧 사랑의 삶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신앙의 내용보다 신앙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며, 그 생명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결국 AC.34에서 이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 신앙이 단순한 고백이나 지식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오는 삶이어야 한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주여 주여’라고 말하는 것은 신앙의 입술일 수 있지만,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은 사랑의 삶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말씀을 통해,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은 사랑과 결합된 신앙이지, 사랑 없이 홀로 존재하는 신앙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AC.34, 심화 5, ‘막13:18-19’

AC.34.심화 5. ‘막13:18-19’ 18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19이는 그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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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4, 심화 3, ‘일’(flight)

AC.34.심화 3. ‘일’(flight) 위 AC.34 본문 중 인용 구절,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막13:18)에 나오는 ‘일’(flight)을 기독교, 개신교에서는 ‘휴거’라 하여 매우 특별하게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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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flight)

 

 AC.34 본문 중 인용 구절,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막13:18)에 나오는 (flight)을 기독교, 개신교에서는 휴거라 하여 매우 특별하게 생각하는데, 이에 대한 스베덴보리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13:18의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라는 구절은 많은 개신교 전통에서 ‘휴거’나 어떤 물리적 종말 사건과 연결되어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합니다. 그는 복음서의 종말 담화를 기본적으로 ‘세계의 물리적 종말이 아니라 교회의 영적 종말과 새 교회의 시작을 예언하는 말씀’으로 봅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flight’, 곧 ‘도피’ 또는 ‘피함’도 어떤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는 사건이 아니라 ‘영적으로 타락한 교회 상태로부터 진리를 보존하기 위해 벗어나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먼저 ‘flight’라는 표현부터 보겠습니다. 문자 그대로는 ‘도망’이나 ‘도피’를 의미합니다. 복음서 문맥에서도 예수님은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 같은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런 표현을 문자 그대로 어떤 지리적 이동으로 보지 않습니다. 말씀의 내적 의미에서 ‘도망’은 ‘악과 거짓이 지배하는 상태에서 벗어나 진리를 보존하려는 영적 행동’을 의미합니다. 즉 교회가 타락하고 진리가 왜곡될 때,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타락한 상태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내적으로 그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이제 ‘겨울’이라는 표현을 보면 의미가 더 분명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말씀에서 ‘계절’이 영적 상태를 상징한다고 설명합니다. ‘’은 사랑이 시작되는 상태, ‘여름’은 사랑이 충만한 상태, ‘가을’은 신앙이 성숙한 상태를 의미하고, ‘겨울’은 ‘사랑이 식고 신앙이 거의 남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겨울에 도망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영적 의미에서는 매우 깊은 뜻을 갖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완전히 식어 버린 상태에서 진리를 지키려 하면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교회의 종말을 항상 같은 패턴으로 설명합니다. 처음에는 사랑과 진리가 함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이 점점 약해지고, 결국에는 교리나 형식만 남게 됩니다. 이 상태가 바로 ‘겨울’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사람들이 진리를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는 능력이 매우 약해집니다. 그래서 주님은 ‘겨울에 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설명됩니다. 즉 ‘사랑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진리를 붙잡으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스베덴보리가 복음서의 종말 담화를 ‘개인의 거듭남과 교회의 역사 두 가지 차원에서 동시에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로 보면, 이것은 교회가 타락할 때,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타락에서 벗어나 새로운 교회를 형성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개인의 거듭남으로 보면, 이것은 사람이 영적으로 시험과 혼란 속에 있을 때, ‘거짓과 악에서 물러나 진리를 지키려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는 이 구절이 ‘휴거’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그는 신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 세상을 떠난다는 식의 해석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종말과 심판이 ‘주로 영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그의 저서 ‘Last Judgment’에서는 최후의 심판이 이미 영계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가 지상 교회에 점차 나타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막13:18의 말씀을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설명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도피’는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영적으로 악과 거짓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겨울’은 사랑이 식어 버린 교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사랑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진리를 붙잡고, 타락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도하라’는 영적 권면입니다. 이것은 미래의 한순간에 일어나는 극적인 사건을 예언하기보다, 교회와 인간의 영적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중요한 원리를 말하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 구절을 단순한 종말 공포나 특별한 사건으로 보기보다, ‘지금 자신의 신앙 상태를 돌아보게 하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강조하신 것은 언제 어디로 들려 올라갈 것인가가 아니라, 사랑이 식어 가는 시대 속에서도 ‘진리를 붙잡고 살아가려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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