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And Jehovah God said, Behold, the man is become as one of us, knowing good and evil; and now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 (창3:22)

 

 

301. 다른 아케이나는, 그들이 신앙의 신비들을 밝히 알게 되면, 그들은 영원히 소멸된다는 것으로, 이것이 본문,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가 상징하는 것입니다. The other arcanum is that had they been instructed in the mysteries of faith they would have perished eternally, which is signified by the words, “now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

 

이것은 이런 경우입니다. 그동안 생명의 질서들하고는 반대로 살아온 사람들은 그래서 이제는 살아가는 것도, 지혜로워지는 것도 자기 자신들로만, 그리고 자신들의 고유 본성으로만 하려고 하게 되면, 그들은 자신들이 신앙에 대해 듣는 모든 것을 그게 과연 그런지 아닌지 따져보기 시작합니다. The case is this: When men have become inverted orders of life, and are unwilling to live, or to become wise, except from themselves and from their own, they reason about everything they hear respecting faith, as to whether it is so, or not;

 

그리고 그들이 이런 짓을 자신들로부터, 그리고 감각과 기억-지식들로 구성된 자신들의 고유 본성의 일들로부터 하기 때문에, 이들은 필연적으로 부인하게 되고, 그 결과, 신성모독(神性冒瀆)과 불경(不敬)에 이르게 되며, 그래서 결국, 그들은 세속(世俗)에다가 거룩을 섞는 일을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and as they do this from themselves and from their own things of sense and of memory-knowledge, it must needs lead to denial, and consequently to blasphemy and profanation, so that at length they do not scruple to mix up profane things with holy.

 

사람이 이 지경이 되면, 그는 저 세상에서 유죄 선고를 받아 구원을 받을 아무 희망도 남지 않게 됩니다. When a man becomes like this, he is so condemned in the other life that there remains for him no hope of salvation.

 

그 이유는, 신성모독으로 섞인 것들은 그렇게 섞인 상태로 있게 되고, 그래서 어떤 거룩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것과 결합 되어 있는 불경한 생각 또한 따라 나오게 되어, 그 결과, 그 사람은 지옥 말고는 그 어떤 데에도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For things mixed up by profanation remain so mixed up, so that whenever any idea of something holy presents itself, an idea of something profane that is conjoined with it is also there, the consequence of which is that the person cannot be in any society except one of the damned.

 

이렇게 세속적인 것에 거룩한 것을 섞는 식으로 살아온 사람은 어떤 한 조각 생각을 하더라도, 저 세상에서는 정말 기가 막힌 방법으로 지각되는데요, 바로 영들의 세계에 있는 영들에 의해서, 그리고 천사 같은 영들에 의해서는 더욱더, 사람은 자기가 하는 생각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캐릭터 전체가 정말 기가 막힌 방법으로 지각된다는 사실입니다. Whatever is present in any idea of thought in consequence of being conjoined with it, is most exquisitely perceived in the other life, even by spirits in the world of spirits, and much more so by angelic spirits, so exquisitely indeed that from a single idea they know a person’s character.

 

이렇게 서로 묶여 있는 세속과 거룩 간 분리는, 지옥과도 같은 고통이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가 없는데요, 사람이 이런 것을 깨닫고, 정말 지옥 자체를 피하듯 조심조심 신성모독을 피하려고 할 때만 이 둘의 분리는 일어납니다. The separation of profane and holy ideas when thus conjoined cannot be effected except by means of such infernal torment that if a man were aware of it he would as carefully avoid profanation as he would avoid hell itself.

 

 

302. 이것이 왜 신앙의 신비들이 유대인들에게는 절대로 계시되지 않았는가 하는 이유입니다. This is the reason why the mysteries of faith were never revealed to the Jews.

 

그들은 사람의 사후에도 삶이 있다는 것과 주님이 그들을 구원하시러 세상에 오실 것이라는 말씀들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They were not even plainly told that they were to live after death, nor that the Lord would come into the world to save them.

 

그들은 아주 대단할 정도로 무지하고 어리석어서 그렇게 고집스러웠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속 사람과, 혹은 내적인 일들의 존재에 관해 몰랐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만일 그들이 전부터 그걸 알았었거나 지금 알게 되어 그걸 인정하게 되면, 그들은 기어코 그걸 신성모독하고, 그래서 기어코 저 세상에서 자기들 몫의 어떤 구원도 남겨 놓지 않을 그런 캐릭터들이기 때문입니다. So great were the ignorance and stupidity in which they were kept, and still are kept, that they did not and do not know of the existence of the internal man, or of anything internal, for if they had known of it, or if they now knew of it, so as to acknowledge it, such is their character that they would profane it, and there would be no hope of any salvation for them in the other life.

 

이것이 주께서 요한복음에서 하신 말씀의 의미입니다. This is what is meant by the Lord in John: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He hath blinded their eyes, and stopped up their heart, that they should not see with their eyes, nor understand with their heart, and convert themselves, and I should heal them. (요12:40)

 

그리고 주께서 그들에게 풀이 없이 비유로만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안 그러면 그들이 보며, 들으며,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입니다. And by the Lord speaking to them in parables without explaining to them their meaning, lest (as he himself says),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Seeing they should see, and hearing they should hear, and should understand. (마13:13)

 

같은 이유로, 신앙의 모든 신비가 그들에게는 숨겨졌고, 그들의 교회를 대표하는 것들 속으로 봉인되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또한 말씀도 예언적 스타일로 주신 것입니다. For the same reason all the mysteries of faith were hidden from them, and were concealed under the representatives of their church, and for the same reason the prophetic style is of the same character.

 

그렇지만, 아는 것과, 인정하는 것이 있습니다. It is however one thing to know, and another to acknowledge.

 

알고는 있는데 인정하지는 않는 사람은 마치 그걸 몰랐던 사람인 것처럼 있습니다. 그런데 인정을 하고, 나중에 신성모독을 하고, 불경스럽게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것이 위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들의 의미입니다. He who knows and does not acknowledge is as if he knew not; but it is he who acknowledges and afterwards blasphemes and profanes, that is meant by these words of the Lord.

 

2021-05-07(D6)-창세기(창3,22, AC.301-302), '생명 나무를 가져다 먹고 영생하는 것'.hwp
0.07MB

youtu.be/OpEtJ661Rvs

 

Posted by bygracetistor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And Jehovah God said, Behold, the man is become as one of us, knowing good and evil; and now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 (창3:22)

 

 

298. ‘여호와 하나님’이 처음엔 단수로, 그리고 나중엔 복수로(in the plural number) 언급되는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님을, 그리고 동시에 천사들의 천국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The reason “Jehovah God” is first mentioned in the singular, and afterwards in the plural number, is that by “Jehovah God” is meant the Lord, and at the same time the angelic heaven.

 

그 사람의 ‘선악을 아는 일’이 상징하는 것은, 그가 天人이 되었고, 그래서 지혜와 지성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가 의미하는 것은, 그는 절대로 신앙의 신비들에 대해 밝아서는 안 되며, 만일 그렇게 되면, 그는 영원히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여기서 말하는 ‘영원히 산다는 것’의 뜻입니다. The man’s “knowing good and evil” signifies that he had become celestial, and thus wise and intelligent;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means that he must not be instructed in the mysteries of faith, for then never to all eternity could he be saved, which is to “live to eternity.

 

 

299. 여기엔 두 가지 아케이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님과, 그리고 동시에 천국을 상징한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그들이 신앙의 신비들을 밝히 알게 되면, 그들은 영원히 소멸된다는 것입니다. Here are two arcana: first, that “Jehovah God” signifies the Lord, and at the same time heaven; secondly, that had they been instructed in the mysteries of faith they would have perished eternally.

 

 

300. 첫 번째 아케이나인, ‘여호와 하나님’이 주님과, 그리고 동시에 천국을 의미한다는 것과 관련, 말씀에서는 늘 어떤 비밀스런 이유로, 주님을 어떨 때는 단지 ‘여호와’로만, 어떨 때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어떨 때는 ‘여호와’와 그리고 ‘하나님’으로, 어떨 때는 ‘주 여호와’로, 어떨 때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그리고 어떨 때는 ‘하나님’으로만 부릅니다. As regards the first arcanum—that by “Jehovah God” is meant the Lord and at the same time heaven—it is to be observed that in the Word, always for a secret reason, the Lord is sometimes called merely “Jehovah,” sometimes “Jehovah God,” sometimes “Jehovah” and then “God,” sometimes the “Lord Jehovih,” sometimes the “God of Israel,” and sometimes “God” only.

 

그래서 창세기 첫 장, 거기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는 복수 표현이 나오는 데서 ‘하나님’으로만 일컬음을 받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 일컬음 받으시는 것은, 天人을 다루는 다음 장부터입니다. Thus in the first chapter of Genesis, where it is also said, in the plural,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he is called “God” only, and he is not called “Jehovah God” until the following chapter, where the celestial man is treated of.

 

그는 ‘여호와’라 일컬음을 받으십니다. 그는 홀로 계시며, 혹은 사시고, 그래서 본질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십니다. 전능하시며, 그래서 능력이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에서 이런 구분들이 있는 데를 보면 분명합니다. He is called “Jehovah” because he alone is or lives, thus from essence; and “God,” because he can do all things, thus from power; as is evident from the Word, where this distinction is made. (사49:4, 5; 55:7; 시18:2, 28, 29, 31; 31:14)

 

4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참으로 나에 대한 판단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5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사49:4-5)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사55:7)

 

2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28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29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31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시18: 2, 28-29, 31)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시31:14)

 

이런 이유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리고 어떤 능력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던 모든 천사나 영을 일컬어, ‘하나님’이라 하였습니다. 시편에 나오는 것처럼 말이지요. On this account every angel or spirit who spoke with man, and who was supposed to possess any power, was called “God,” as appears from David: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 God hath stood in the congregation of God, he will judge in the midst of the gods; (시82:1)

 

무릇 구름 위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신들 중에서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 Who in the sky shall be compared unto Jehovah? Who among the sons of the gods shall be likened to Jehovah? (시89:6)

 

2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3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Confess ye to the God of gods, confess ye to the Lord of lords. (시136:2–3)

 

사람들도 능력을 소유했을 때는 그들을 일컬어 ‘신들’이라 합니다. Men also as being possessed of power are called “gods,” as in Ps. 82:6; John 10:34, 35.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시82:6)

 

34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요10:34-35)

 

모세 또한 ‘바로에게 신’이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Moses also is said to be “a god to Pharaoh. (출7: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출7:1)

 

이런 이유로, 히브리어에서 ‘하나님’이라는 말은 ‘엘로힘’이라는 복수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For this reason the word “God” in the Hebrew is in the plural number—“Elohim.

 

그러나 천사들은 자기들 스스로는 그 어떤 힘도 갖고 있지 않으며, 자기들은 실제로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고, 대신 힘이라는 것은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오기 때문에, 그리고 오직 한 분 하나님만 계시기 때문에 그래서 말씀에서 ‘여호와 하나님’ 하면 주님 홀로 한 분이심을 의미합니다. But as the angels do not possess the least power of themselves, as indeed they acknowledge, but solely from the Lord, and as there is but one God, therefore by “Jehovah God” in the Word is meant the Lord alone.

 

그러나 천사들의 사역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곳에서는, 가령 창세기 첫 장에서처럼, 그분은 복수로 표현되십니다. But where anything is effected by the ministry of angels, as in the first chapter of Genesis, he is spoken of in the plural number.

 

여기서는 또한 天人이, 이 역시 사람인데요, 주님하고는 감히 비교 대상이 될 수 없고, 오직 천사하고만 비교 가능한 존재, 즉,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즉, 지혜와 지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Here also because the celestial man, as man, could not be put in comparison with the Lord, but with the angels only, it is said, the man “is become as one of us, knowing good and evil,” that is, is wise and intelligent.

 

2021-05-06(D5)-창세기(창3,22, AC.298-300), '‘여호와 하나님’이 상징하는 것'.hwp
0.07MB

youtu.be/QAOzDJfyjOU

 

Posted by bygracetistory

댓글을 달아 주세요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And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for his wife coats of skin, and clothed them. (창3:21)

 

 

296. 염소의 새끼들, 양, 염소들, 해달들과 숫양들이 영적, 자연적 선들을 상징한다는 것은, 말씀에서 야곱을 다룬 곳과, 또 궤를 다룬 곳의 속뜻으로부터 분명합니다. That the skins of kids, sheep, goats, badgers, and rams signify spiritual and natural goods, is evident from 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 where Jacob is treated of, and also where the ark is treated of.

 

야곱의 경우, ‘에서의 의복으로 옷 입혀졌고’, 그의 손과 목 매근매끈한 곳에는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입혔으며, 그리고 이삭이 그 향취를 맡았을 때, ‘내 아들의 향취는 밭의 향취로다’ 말하였다 하고 있습니다. Of Jacob it is said that he was “clothed with the raiment of Esau,” and on his hands and on his neck, where he was naked, “with skins of kids of the goats,” and when Isaac smelled them, he said, “the smell of my son is as the smell of a field. (창27:15, 16, 27)

 

15리브가가 집 안 자기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16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27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창27:15, 16, 27)

 

이 가죽들이 영적, 자연적 선들을 상징한다는 사실은 주님의 신적 자비로 해당 부분을 다룰 때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 3577번 글 참조) That these skins signify spiritual and natural goods, will of the Lord’s Divine mercy be seen in that place.

 

궤의 경우는, 성막의 덮개는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Of the ark it is said that the covering of the tent was “of rams’ skins and badgers’ skins, (출26:14; 36:19)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윗덮개를 만들지니라 (출26:14)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윗덮개를 만들었더라 (출36:19)

 

그리고 그들이 전진할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증거궤를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같은 식으로 상과 대접들, 등잔대와 그릇들, 금제단, 그리고 성소에서 봉사하는 데에 쓰는 그릇들도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and that when they set forward Aaron and his sons covered the ark with a covering “of badgers’ skins,” and likewise the table and its vessels, the candlestick and its vessels, the altar of gold, and the vessels of ministry and of the altar. (민4:6–14)

 

6그 위를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그 위에 순청색 보자기를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 7진설병의 상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대접들과 숟가락들과 주발들과 붓는 잔들을 그 위에 두고 또 항상 진설하는 떡을 그 위에 두고 8홍색 보자기를 그 위에 펴고 그것을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 9청색 보자기를 취하여 등잔대와 등잔들과 불 집게들과 불똥 그릇들과 그 쓰는 바 모든 기름 그릇을 덮고 10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를 해달의 가죽 덮개 안에 넣어 메는 틀 위에 두고 11금제단 위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고 그 채를 꿰고 12성소에서 봉사하는 데에 쓰는 모든 기구를 취하여 청색 보자기에 싸서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어 메는 틀 위에 두고 13제단의 재를 버리고 그 제단 위에 자색 보자기를 펴고 14봉사하는 데에 쓰는 모든 기구 곧 불 옮기는 그릇들과 고기 갈고리들과 부삽들과 대야들과 제단의 모든 기구를 두고 해달의 가죽 덮개를 그 위에 덮고 그 채를 꿸 것이며 (민4:6-14)

 

이 가죽들이 영적, 자연적 선을 상징한다는 것 또한 주님의 신적 자비로 해당 부분에서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증거궤, 성막, 혹은 장막 안에 있던 모든 것, 네, 아론이 거룩한 옷을 입었을 때, 그 옷 위에 있었던 모든 것이 사실은 천적, 영적인 것을 상징하고 있었고, 그래서 아주 사소한 것 하나도 그 나름의 고유한 표현을 갖지 않은 것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Of the Lord’s Divine mercy it will in that place also be seen that these skins signify spiritual and natural good, for whatever was in the ark, the tabernacle, or the tent, yea, whatever was upon Aaron when clothed with the garments of holiness, signified what is celestial spiritual, so that there was not the least thing that had not its own representation.

 

 

297. 천적 선은 옷을 입지 않습니다. 가장 내적이며, 천진(天眞)하기 때문입니다. 천적 영적 선은 옷을 입는 첫 번째 선이며, 다음은 자연적 선입니다. 이들은 더 외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이 이것으로 비유되며, 이런 선을 가리켜 ‘’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에스겔에서 고대교회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말이지요. Celestial good is not clothed, because it is inmost, and is innocent; but celestial spiritual good is that which is first clothed, and then natural good, for these are more external, and on that account are compared to and are called “garments”; as in Ezekiel, speaking of the ancient church:

 

수 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두르고 모시로 덧입히고 I clothed thee with broidered work, and shod thee with badger, I girded thee about with fine linen, and I covered thee with silk. (겔16:10)

 

이사야에서는 In Isaiah: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 Put on thy beautiful garments, O Jerusalem, the city of holiness. (사52:1)

 

계시록에서는 In Revelation:

 

4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Who have not defiled their garments, and they shall walk with me in white, for they are worthy, (계3:4–5)

 

4장 4절에서도, ‘흰옷을 입은’ 이십사 장로들에 대해 똑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where it is likewise said of the four and twenty elders that they were “clothed in white raiment. (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계4:4)

 

그래서 천적 영적인 더 외적인 선들은 ‘옷들’입니다. 또한 그런 이유로, 체어리티의 선들이 있는 사람들은 천국에서는 광채 나는 옷을 입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직 몸 안이기 때문에, ‘가죽옷’으로 대신하는 것입니다. Thus the more external goods, which are celestial spiritual, and natural, are “garments”; wherefore also those who are endowed with the goods of charity appear in heaven clothed in shining garments; but here, because still in the body, with a “coat of skin.

 

2021-05-05(D4)-창세기(창3,21, AC.296-297), '가죽, 옷'.hwp
0.07MB

youtu.be/ypplWvDWHNg

 

Posted by bygracetistory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