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들(the sons of God)은 신앙에 속한 교리적인 것들(the doctrinal things of faith)을 의미합니다.

 

2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And the sons of God saw the daughters of man that they were good; and they took to themselves wives of all that they ch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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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들(the sons of God)은 신앙에 속한 교리적인 것들(the doctrinal things of faith)을 의미합니다. 여기 나오는 ‘딸들(daughters)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갈망(yearnings)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는 신앙에 속한 교리적인 것들을 의미하는데요, 이때 이 교리적인 것들이 그들이 가진 갈망과 완전히 결합되었다는 말입니다. 그 갈망이 실제로 어떤 갈망이든 상관없이 말이지요. By the “sons of God” are signified the doctrinal things of faith. By “daughters,” here as before, yearnings. By the “sons of God seeing the daughters of man that they were good, and taking to themselves wives of all that they chose” is signified that the doctrinal things of faith conjoined themselves with yearnings, in fact with any yearnings whatever.

 

※ 여기 결합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이는 신앙의 교리, 신학, 가르침을 자신의 갈망, 자신의 욕구, 욕망을 해소, 해결하는 방편으로 이용했다는 의미입니다. 신앙의 진리, 곧 주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주님의 말씀이며, 주님이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순전함으로 따라야 하는데, 이들은 그럴 마음은 전혀 없고, 대신 오로지 자신들의 갈망, 욕망을 위해서만 이용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전형적인, 주님의 것에 사사로이 사람의 것을 섞는 신성모독입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자기 사랑의 모습이며, 결코 주님 사랑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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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daughters)이 그런 사람의 의지 안에 거주하는 것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갈망, 욕망을 상징한다는 것

 

1절,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And it came to pass that man began to multiply himself upon the faces of the ground, and daughters were born unto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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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daughters)이 그런 사람의 의지 안에 거주하는 것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갈망, 욕망을 상징한다는 것은, 그동안 ‘자녀들(sons and daughters) 관련, 앞장에서 다루어 온 내용들(AC.489-491, 창5:4)을 보면 분명하며, 거기서 ‘아들들(sons)은 진리를, ‘딸들(daughters)은 선을 각각 상징합니다. That “daughters” signify such things as are of the will of that man, consequently yearnings, is evident from what was said and shown concerning “sons and daughters” in the preceding chapter (Gen. 5:4), where “sons” signify truths, and “daughters,” goods.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4)

 

딸들’, 혹은 선은 의지에 속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런 사람이면 그의 인식능력도, 그의 의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이 ‘자녀들’입니다. Daughters,” or goods, are of the will, but such as a man is, such is his understanding and such his will, thus such are the “sons and daughters.”

 

※ 즉, 우리의 지적 능력과 의지가 어떤 모습일지는 우리의 캐릭터가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의 ‘자녀들’ 또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다루는 사람은 부패한 상태입니다. 이런 사람은 의지랄 게 없으며, 대신 원색적 욕망만 있습니다. 이들은 이런 걸 의지로 여기며, 실제로 그렇게 부릅니다. 어떤 것에 대한 설명은 설명하고 있는 그것의 퀄러티와 일치합니다. 여기서 딸들이 설명하고 있는 사람은 앞서 지금까지 죽 설명해 온 대로 부패한 사람입니다. (cf. AC.560, 562-563, 565) ‘딸들’은 의지 안에 있는 것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 선을 위한 게 전혀 없으면, 그때는 갈망(渴望, yearnings)을 상징하게 되며, ‘아들들’은 이해하는 능력(understanding) 안에 있는 것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 진리에 관한 이해가 전혀 없으면, 그때는 환상(fantasies)을 상징합니다. 왜 이런가 하는 것은, 성(sex)의 본성 때문입니다. 여성은 태생적으로 의지나 탐욕(cupidity)이 이해하는 능력(understanding)을 다스리게 되어 있습니다. 여성의 몸 모든 섬유조직이 다 이런 기질(disposition), 이런 성향이며, 이것이 여성의 본성인 반면, 남성은 지성(intellect) 또는 이성(reason)이 우위를 나타내는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남성의 몸 모든 섬유조직이 다 이런 기질, 이런 성향이며, 이것이 남성의 본성입니다. 두 사람 간 결혼이 그래서 각 사람 안의 의지와 이해하는 능력(understanding) 간 결혼과 비슷한 것입니다. 오늘날엔 선을 위한 의지는 없고, 대신 탐욕(cupidity)만 있으며, 약간의 지성(intellectual)이나 이성(rational)만 가능한데, 이것이 바로 유대교회에 있는 그 많은 법들이 왜 남편의 특권(prerogative)과 아내의 복종(obedience)에 관한 것인지 하는 이유가 되겠습니다. The present passage treats of man in a corrupt state, who has no will, but mere cupidity instead of will, which is supposed by him to be will, and is also so called. What is predicated is in accordance with the quality of the thing whereof it is predicated, and that the man of whom the daughters are here predicated was a corrupt man, has been shown before. The reason why “daughters” signify the things of the will, and, where there is no will of good, yearnings; and why “sons” signify the things of the understanding, and, where there is no understanding of truth, fantasies, is that the female sex is such, and so formed, that the will or cupidity reigns in them more than the understanding. Such is the entire disposition of their fibers, and such their nature, whereas the male sex is so formed that the intellect or reason rules, such also being the disposition of their fibers and such their nature. Hence the marriage of the two is like that of the will and the understanding in every man; and since at this day there is no will of good, but only cupidity, and still something intellectual, or rational, can be given, this is why so many laws were enacted in the Jewish church concerning the prerogative of the husband [vir], and the obedience of the w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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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에 관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사는 지역 전부를 총체적으로 아울러 교회 지역이라고 합니다.

 

1절,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And it came to pass that man began to multiply himself upon the faces of the ground, and daughters were born unto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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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에 관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사는 지역 전부를 총체적으로 아울러 교회 지역이라고 합니다. 전에 유대교회가 있었던 가나안 땅 같은 곳이지요. 지금 기독교회가 있는 유럽 또한 그렇습니다. 그 외의 지역과 나라들은 교회 지역이 아니며, 이것이 곧 오늘 본문, ‘땅 위(the faces of the ground)의 의미입니다. 홍수 전 교회들이 있었던 곳은 에덴동산에서 발원한 강들로 둘러싸인 땅들을 보고도 알 수 있겠는데요, 이 강들은 말씀 여러 곳에서 가나안 땅 경계로 자주 언급된 강들입니다. (cf. 창15:18; 신1:7; 11:24; 수1:4; 왕상5:9) 그 장소는 또한 이어지는 내용들, 가령, 네피림이 ‘거기에(in the land) 있었다는 사실과, 그들이 가나안 땅에 거주했다는 민수기 13장 33절 말씀,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에 관한 말씀 등으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All that region is called the region of the church where those live who are instructed in the doctrine of true faith; as the land of Canaan, when the Jewish church was there, and Europe, where the Christian church now is; the lands and countries outside of this are not the region of the church, or the “faces of the ground.” Where the church was before the flood, may also appear from the lands which the rivers encompassed that went forth from the garden of Eden, by which in various parts of the Word are likewise described the boundaries of the land of Canaan; and also from what follows concerning the Nephilim that were “in the land”; and that these Nephilim dwelt in the land of Canaan is evident from what is said of the sons of Anak: that they were “of the Nephilim” (Num. 13:33).

 

그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창15:18)

 

방향을 돌려 행진하여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가고 그 근방 곳곳으로 가고 아라바와 산지와 평지와 네겝과 해변과 가나안 족속의 땅과 레바논과 큰 강 유브라데까지 가라 (신1:7)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의 소유가 되리니 너희의 경계는 곧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와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서해까지라 (신11:2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수1:4)

 

또 동으로 가서 거주하면서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광야 지경까지 다다랐으니 이는 길르앗 땅에서 그 가축이 번식함이라 (대상5:9)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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