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48.심화

 

2. ‘상대가 아직 나한테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어도?

 

상대가 아직 저에게 용서를 구하지도 않고 있는데, 무조건 제 쪽에서 먼저 용서해야 하나요?

 

이건 매우 현실적인 질문이고, 동시에 다섯 번째 상태와 여섯 번째 상태의 차이가 실제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상대가 용서를 구하지 않았더라도 마음으로는 미리 용서해야 하지만’, 관계의 회복까지 서둘러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즉, ‘내면의 용서와 외적 관계의 처리에는 구분이 필요합니다.’

 

먼저 ‘마음으로 용서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것은 ‘괜찮다, 아무 일도 아니다’라고 넘기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상대의 잘못을 정당화하는 것도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상대를 향한 미움과 복수의 의지를 내려놓고, 그 사람을 주님의 질서 안에서 다시 회복될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상태’입니다. 다시 말해, ‘당신이 한 일은 잘못이지만, 나는 당신을 미워하는 상태에 머물지 않겠다’는 선택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섯 번째 상태로 가는 방향’, 곧 사랑이 중심이 되는 움직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균형이 있습니다. 마음으로 용서했다고 해서, 곧바로 모든 관계를 이전과 동일하게 회복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상대가 여전히 같은 태도를 유지하고 있고, 상처를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면, ‘지혜롭게 거리를 두고, 질서를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이 진리와 함께 작용하는 상태’입니다. 즉,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옳은 방식으로 관계를 다루는 것’도 사랑입니다.

 

이걸 조금 더 실제적으로 풀어 보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사과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때 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마음속에 계속 분노를 품고, ‘언젠가 갚아주겠다’는 상태로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일은 잘못된 것이지만, 나는 이 사람을 미워하는 상태에 머물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후자가 ‘마음의 용서’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그 사람과 이전처럼 가까이 지내거나,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행동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분명한 선을 긋고, 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오히려 바른 질서입니다.

 

여기서 다섯 번째 상태와 여섯 번째 상태의 차이가 다시 드러납니다. 다섯 번째 상태에서는 ‘용서해야 하니까 용서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애씁니다. 그래서 여전히 마음 안에 갈등이 큽니다. 그러나 여섯 번째 상태로 갈수록, 점점 이렇게 됩니다. ‘나는 미워하고 싶지 않다. 주님이 나를 다루신 것처럼,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그래서 용서가 점점 ‘의무가 아니라 방향’이 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진리도 함께 있기 때문에, ‘무질서하게 관계를 허용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한 가장 균형 잡힌 답은 이것입니다. ‘마음에서는 먼저 용서하되, 관계에서는 지혜롭게 행하라.’ 이것이 선과 진리가 함께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대를 미워하지 말라고 하시지만, 아무렇게나 관계를 유지하라고 하시지는 않습니다.’

 

용서는 상대의 반응과 무관하게 내 마음에서 먼저 시작되어야 하지만, 관계의 회복은 진리와 지혜에 따라 분별하며 이루어져야 합니다.’

 

 

 

AC.48, 창1:24-25, ‘거듭남의 다섯 번째 상태, 여섯 번째 상태'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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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8, 심화 1, ‘다섯 번째 상태와 여섯 번째 상태’

AC.48.심화 1. ‘다섯 번째 상태와 여섯 번째 상태’ AC.48에 의하면, 다섯 번째 상태에서 사람은 ‘이해에 속한 신앙의 원리로 말하며, 그로써 진리와 선 안에서 자신을 확증한다’ 하고, 여섯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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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8.심화

 

1. ‘다섯 번째 상태와 여섯 번째 상태

 

AC.48에 의하면, 다섯 번째 상태에서 사람은 이해에 속한 신앙의 원리로 말하며, 그로써 진리와 선 안에서 자신을 확증한다 하고, 여섯 번째 상태에서는 이해에 속한 신앙과, 거기에서 나온 의지에 속한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선을 행한다고 하네요. 뭐가 다른 거지요? 다섯 번째 상태에서는 이해가 주된 반면, 여섯 번째 상태에서는 의지가 주라는 말 같은데, 좀 더 명료하게 설명해 주세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다섯 번째 상태는 이해(진리)가 앞서고 의지는 아직 따라오는 단계이고, 여섯 번째 상태는 의지(사랑)가 중심이 되어 이해와 행동까지 자연스럽게 이끄는 단계’’입니다. 겉으로 보면, 둘 다 ‘진리를 말하고 선을 행한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그 근원과 무게 중심이 완전히 다릅니다.’

 

먼저 다섯 번째 상태를 보겠습니다. 여기서는 사람이 ‘이해에 속한 신앙’, 즉 ‘무엇이 옳은가’를 비교적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진리를 가지고 말하고, 판단하고, 심지어 스스로를 설득하기도 합니다. 스베덴보리가 ‘그로써 진리와 선 안에서 자신을 확증한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즉, 이 단계의 사람은 이렇게 움직입니다. ‘이게 옳으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 그래서 실제로 선을 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직 특징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행동의 중심이 알고 있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어떤 사람이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화가 나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용서해야지.’ 그래서 참고, 노력하고, 실제로 용서하려 합니다. 이것은 분명 선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여전히 ‘싸움과 긴장, 그리고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이해가 주도하고, 의지는 그 이해를 따라가며 형성되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여섯 번째 상태를 보겠습니다. 여기서는 상황이 바뀝니다. 이제 사람은 더 이상 ‘이게 옳으니까 해야 한다’에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대신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상태’가 됩니다. 즉, 의지, 곧 사랑이 중심이 됩니다. 그래서 진리를 말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 더 이상 부담이나 의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이 됩니다.

 

같은 예로 보면 이렇게 됩니다. 이전에는 ‘용서해야 하니까 참자’였다면, 이제는 ‘저 사람을 이해하고 싶다, 용서하고 싶다’가 됩니다. 그래서 행동이 훨씬 부드럽고 자연스럽고, 억지스럽지 않습니다. 이 상태에서는 이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의지 안으로 들어가 하나가 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말할 때도 단순한 논리가 아니라, ‘사랑에서 나오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두 상태의 차이를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다섯 번째 상태는 진리가 사랑을 이끌어 가는 단계이고, 여섯 번째 상태는 사랑이 진리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단계입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다섯 번째 상태는 여전히 ‘자기 자신을 확증한다는 표현’이 들어갑니다. 즉, 아직은 어느 정도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내가 이렇게 한다’는 의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여섯 번째 상태로 가면, 점점 이 중심이 바뀌어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사랑이 중심이 되고, 사람은 그것을 받아 행하는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여섯 번째 상태는 단순히 더 착한 상태가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상태’입니다.

 

처음에는 옳은 것을 알기 때문에 선을 행하지만, 나중에는 선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행하게 됩니다.’

 

다섯 번째 상태는 이해가 주도하여 선을 행하는 단계이고, 여섯 번째 상태는 의지, 곧 사랑이 중심이 되어 진리와 행동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단계입니다.’

 

목사님께서 느끼신 그 미묘한 차이가 바로 거듭남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입니다.

 

 

 

AC.48, 심화 2, ‘상대가 나한테 아직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다면’

AC.48.심화 2. ‘상대가 나한테 아직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다면’ 상대가 아직 저에게 용서를 구하지도 않고 있는데, 무조건 제 쪽에서 먼저 용서해야 하나요? 이건 매우 현실적인 질문이고,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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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8, 창1:24-25, ‘거듭남의 다섯 번째 상태, 여섯 번째 상태'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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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24, 25)

 

AC.48

 

이로부터 사람이 거듭남의 다섯 번째 상태에 있을 때가 분명해집니다. 이때 사람은 이해에 속한 신앙의 원리로 말하며, 그로써 진리와 선 안에서 자신을 확증합니다. 그가 이때 내놓는 것들은 생명이 있는 것들이며, 그것들을 가리켜 바다의 물고기(fishes of the sea),하늘의 새(fowl of the heavens)라 합니다. 사람이 여섯 번째 상태에 이르면, 이해에 속한 신앙과, 거기에서 나온 의지에 속한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선을 행합니다. 그가 이때 내놓는 것을 생물(living soul),가축(beast)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때 그는 신앙으로뿐만 아니라 사랑으로도 행동하기 시작하므로,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이라 하는 영적 인간이 됩니다. 이것이 지금 여기서 다루는 주제입니다. Hence then it appears that man is in the fifth state of regeneration when he speaks from a principle of faith, which belongs to the understanding, and thereby confirms himself in the true and in the good. The things then brought forth by him are animate, and are called the “fishes of the sea,” and the “fowl of the heavens.” He is in the sixth state, when from faith, which is of the understanding, and from love thence derived, which is of the will, he speaks truths, and does goods; what he then brings forth being called the “living soul,” and the “beast.” And as he then begins to act from love, as well as from faith, he becomes a spiritual man, who is called an “image of God,” which is the subject now treated of.

 

 

해설

 

이 글은 지금까지 설명해 온 다섯째 날과 여섯째 날의 의미를 한 번에 정리해 주는 요약이자 전환점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거듭남의 각 단계를 분리해서 설명해 왔지만, 이 글에서는 그 단계들이 어떻게 서로 이어지고, 무엇이 결정적인 차이인지 명확히 드러냅니다.

 

다섯 번째 상태에서 사람은 신앙의 원리로 말합니다. 이 신앙은 이해력에 속하며, 사람은 그 신앙을 통해 진리와 선을 확인하고 확증합니다. 이때 그의 사고와 말은 더 이상 무생물, 곧 못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것, 곧 움직이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그래서 ‘물고기’와 ‘’가 등장합니다. 이는 기억-지식과 이성적, 지적 사고가 이제 생명을 얻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는 여전히 그 중심이 이해력에 있습니다.

 

여섯 번째 상태에 이르면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제 사람은 이해력의 신앙뿐 아니라, 그 신앙에서 나온 의지의 사랑으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다시 말해, 진리가 단지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사랑을 통해 삶으로 내려옵니다. 이때 등장하는 상징이 ‘생물’과 ‘짐승’(‘가축’)입니다. 이는 삶의 중심이 생각에서 애정과 행위로 옮겨졌음을 뜻합니다.

 

이 글에서 특히 중요한 점은, 여섯 번째 상태에서 사람이 ‘행동하기 시작한다’는 표현입니다. 앞선 단계들에서도 사람은 무언가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로 이해력의 차원, 곧 신앙의 확증과 말의 차원이었습니다. 이제는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 곧 의지 차원에서의 삶이 시작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생명의 실제적인 시작입니다.

 

그래서 이 단계의 사람을 ‘영적인 사람’, 곧 ‘영적 인간’이라 하며,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형상이라는 말은 단순한 닮음이 아니라, ‘작동 방식의 닮음’을 뜻합니다. 주님께서 사랑으로 진리를 통해 행하시는 것처럼, 이제 이 사람도 사랑과 신앙이 하나가 되어 움직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는 삶입니다.

 

이 글은 거듭남의 핵심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신앙만으로 말할 때는 아직 다섯 번째 상태이고, 신앙과 사랑이 함께 작동하여 삶으로 드러날 때 여섯 번째 상태에 이릅니다. 그리고 이때 비로소 사람은 주님의 형상을 따라 사는 영적 인간이 됩니다.

 

이 글은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가 결국 인간이 어떻게 ‘사람답게’ 되는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임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글입니다.  

 

 

심화

 

1. ‘다섯 번째 상태와 여섯 번째 상태

 

 

AC.48, 심화 1, ‘다섯 번째 상태와 여섯 번째 상태’

AC.48.심화 1. ‘다섯 번째 상태와 여섯 번째 상태’ AC.48에 의하면, 다섯 번째 상태에서 사람은 ‘이해에 속한 신앙의 원리로 말하며, 그로써 진리와 선 안에서 자신을 확증한다’ 하고, 여섯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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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대가  아직 나한테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어도?

 

 

AC.48, 심화 2, ‘상대가 나한테 아직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다면’

AC.48.심화 2. ‘상대가 나한테 아직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다면’ 상대가 아직 저에게 용서를 구하지도 않고 있는데, 무조건 제 쪽에서 먼저 용서해야 하나요? 이건 매우 현실적인 질문이고,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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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7, 창1:24-25, ‘거듭남의 순서'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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