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51.심화

 

3. 1:12-13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4)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12, 13) As many as received him, to them gave he the power to become sons of God, even to them that believe on his name; who were born not of bloods,4 nor of the will of the flesh, nor of the will of man, but of God (John 1:12–13).

 

이 구절은 AC.51의 흐름에서 사람이 어떻게 자기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가’를 설명하는 핵심 말씀입니다. 결론부터 아주 단순하게 말씀드리면, ‘여기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이미 자녀가 되었다는 선언이 아니라, 주님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따라 살 때, 실제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는 길과 힘이 열렸다는 뜻입니다.’

 

먼저 이 부분을 가장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권세’라는 말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는데, 이것을 자격’이나 직위’로 생각하시면 헷갈립니다. 여기서 권세’는 가능하게 하는 힘’, ‘그렇게 될 수 있는 길이 열림’이라고 보시면 정확합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은, ‘이제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으로 실제로 변화할 수 있는 길과 능력이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는 무엇이냐가 중요해집니다. 여기서 자녀’는 단순한 관계 용어가 아니라, ‘무엇으로부터 태어났는가’, ‘어떤 생명을 가지고 있는가’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세상적으로는 부모에게서 태어나면 그 부모의 성향과 성질을 어느 정도 닮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생명’,  선과 진리를 사랑하는 생명’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이제 왜 이것이 권세’라고 표현되는지가 분명해집니다. 사람은 원래 그런 상태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는 자기중심적이고, 자기에게 유익한 것을 기준으로 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진리를 영접하고’, 그것을 믿는다’, 즉 받아들이고 따라 살기 시작하면, 사람 안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 바로 이 변화가 가능하도록 주어지는 것이 권세’입니다.

 

이제 이어지는 구절이 이걸 더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이것은 아주 직설적으로 말하면, ‘사람 스스로는 절대로 그렇게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혈통’은 타고난 성향, ‘육정’은 욕망, ‘사람의 뜻’은 자기 생각과 판단입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것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라고 합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내가 노력해서 도달하는 상태’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받는 상태’입니다. 사람은 그 과정을 열어 놓을 수는 있지만, 실제로 바꾸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이걸 아주 실제적으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처음에는 이렇게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말씀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과정 속에서, 어느 순간부터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사는 것이 자연스럽고 좋은 상태’로 바뀝니다. 그때는 더 이상 내가 애써서 유지하는 삶’이 아니라,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삶’이 됩니다. 바로 그 변화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상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너는 이미 자녀다’라는 선언이 아니라, ‘주님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따라 살면, 실제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주어진 길과 능력’을 의미합니다.

 

한 줄로 다시 정리하면, ‘1:12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사람이 자기로부터 사는 상태에서 벗어나, 주님으로부터 사는 새로운 생명으로 실제로 변화될 수 있도록 주어진 영적 가능성과 능력을 의미합니다.’

 

 

 

AC.51, 심화 2, ‘요15:14-15’

AC.51.심화 2. ‘요15:14-15’ 14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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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5:14-15

 

14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5:14, 15) Ye are my friends if ye do whatsoever I command you (John 15:14–15).

 

이 구절은 AC.51의 문맥에서 ‘사람이 진리를 단순히 아는 상태에서, 그것을 행함으로써 주님과 결합되는 상태로 나아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핵심 말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15:14-15 너희는 나의 친구라는 것은 단순한 관계의 변화가 아니라, 진리를 행함으로써 더 이상 외적으로 복종하는 상태(종)가 아니라, 내적으로 이해하고 함께하는 상태(친구)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먼저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행하면’입니다.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따르는 것’이 기준입니다. AC의 흐름에서 보면, 이것은 ‘이해에 있는 진리가 의지와 삶으로 내려오는 순간’을 말합니다. 사람이 진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그 진리는 아직 자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행하기 시작할 때, 그 진리는 사람 안에서 살아 있는 것이 됩니다.

 

그다음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입니다. ‘’은 단순히 신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종은 주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따릅니다. 즉, 두려움이나 의무 때문에 복종하는 상태입니다. 이것은 거듭남의 초기 상태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이때 사람은 진리를 ‘옳기 때문에’, 혹은 ‘그래야 하니까’ 따릅니다. 아직 그것을 사랑하거나 기뻐하는 상태는 아닙니다.

 

반면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에서 ‘친구’는 ‘내적인 결합 상태’를 의미합니다. 친구는 단순히 명령을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뜻을 함께 아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어서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알게 하였다’는 것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이해하게 하였다’, ‘내적 의미를 공유하게 하였다’는 뜻입니다. 즉, 더 이상 바깥에서 명령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같은 뜻으로 움직이는 상태입니다.

 

이제 AC.51과 연결하면 더 또렷해집니다. 앞에서 ‘빛을 믿으라’, ‘빛의 아들이 되라’는 말씀이 나왔는데, 여기서는 그다음 단계가 설명됩니다.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것을 실제로 행함으로써, 그 진리가 사람 안에서 ‘자기 것이 되는 상태’, 곧 주님과 내적으로 연결되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때 비로소 사람은 ‘’이 아니라 ‘친구’가 됩니다.

 

이건 그러니까 이런 뜻입니다. 처음에는 어떤 말씀을 들으면 ‘그래야지’ 하고 억지로라도 따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씀이 점점 이해되고, 결국에는 ‘, 이게 참 좋다’는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행하게 됩니다. 그때는 더 이상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됩니다. 바로 그 변화가 ‘종에서 친구로’의 전환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단순히 관계의 친밀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 순종에서 내적 일치로’, ‘의무에서 사랑으로’, ‘명령에서 이해로’ 넘어가는 거듭남의 중요한 전환점을 설명합니다.

 

15:14-15 너희는 나의 친구라라는 것은 진리를 행함으로써 외적 복종의 상태를 넘어, 주님의 뜻을 이해하고 함께하는 내적 결합의 상태에 들어감을 의미합니다.’

 

 

 

AC.51, 심화 3, ‘1:12-13’

AC.51.심화 3. ‘요1:12-13’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주4)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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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1, 심화 1, ‘요12:35-36’

AC.51.심화 1. ‘요12:35-36’ 35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36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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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35-36

 

35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36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12:35, 36) He that walketh in the darkness knoweth not whither he goeth. While ye have the light, believe in the light, that ye may be sons of light (John 12:35–36).

 

이 구절은 AC.51의 문맥에서 ‘사람이 진리를 통해 어떻게 인도받고, 또 그것을 거부할 때 어떤 상태에 놓이게 되는가’를 설명하는 핵심 말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12:35-36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는 것은 단순한 권면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진리가 아직 의식 속에 주어져 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곧 어둠(거짓과 무지)에 사로잡혀 더 이상 길을 분별할 수 없게 된다는 영적 상태의 법칙을 말합니다.’

 

먼저 ‘빛이 너희 중에 있다’입니다. 여기서 ‘’은 자연적인 빛이 아니라 ‘진리’, 곧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해의 빛을 의미합니다. 이 빛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 ‘잠시 동안’이라고 표현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사람에게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허락하시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언제나 진리를 똑같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더 밝게 보이고, 어떤 때는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그다음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입니다. ‘다닌다’는 것은 단순히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간다’, ‘선택하고 행한다’는 뜻입니다. 즉, 진리를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을 실제 삶 속에서 따르지 않으면, 곧바로 ‘어둠’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여기서 ‘붙잡힌다’는 표현이 중요한데, 이것은 단순히 모르는 상태가 아니라 ‘빠져나오기 어려운 상태’, 곧 거짓이 굳어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어지는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한다’는 말씀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방향 상실’을 말합니다. 진리를 잃은 상태에서는 사람이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조차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AC에서 말하는 ‘이해가 어두워진 상태’, 곧 영적 눈이 감긴 상태입니다.

 

이제 핵심입니다.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여기서 ‘믿는다’는 것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 곧 신앙과 삶의 결합을 의미합니다. 진리는 단지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을 실제로 따를 때, 비로소 사람 안에 자리 잡습니다. 그래서 ‘믿는다’는 것은 ‘그 진리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빛의 아들이 된다’입니다. ‘아들’은 성경에서 ‘어떤 것에서 나온 것’, ‘그것을 닮은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빛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진리로부터 태어난 사람’, 곧 이해와 삶이 진리에 의해 형성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지식을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진리가 그 사람의 삶의 원리가 된 상태입니다.

 

이제 AC.51과 연결하면,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주님은 사람에게 진리를 주시고, 그 진리를 통해 사람을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진리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받아들이면, 그 진리는 점점 사람 안에서 빛이 되어 길을 밝히고, 결국 그 사람을 ‘빛의 아들’, 곧 진리 안에 사는 상태로 이끕니다. 그러나 거부하면, 그 자리는 곧 어둠이 차지하게 되고, 사람은 점점 방향을 잃게 됩니다.

 

이건 그러니까 이런 말입니다. 어떤 순간에 ‘이게 옳다’는 깨달음이 옵니다. 그런데 그것을 따르지 않고 미루거나 무시하면, 그 깨달음은 점점 흐려지고, 나중에는 아예 느껴지지 않게 됩니다. 반대로 그것을 따라 행동하면, 다음에는 더 분명한 빛이 주어집니다. 이 반복 속에서 사람은 점점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이 되거나, 반대로 ‘어둠 속에서 길을 잃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단순한 도덕적 권면이 아니라, 영적 삶의 아주 실제적인 법칙을 말합니다. ‘빛은 주어질 때 붙잡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사라지고, 그 자리를 어둠이 대신한다’는 것입니다.

 

12:35-36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는 것은 주어진 진리를 실제 삶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곧 어둠에 사로잡혀 방향을 잃게 된다는 영적 법칙을 의미합니다.’

 

 

 

AC.51, 심화 2, ‘요15:14-15’

AC.51.심화 2. ‘요15:14-15’ 14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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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1, 창1:26, ‘형상’(image), ‘모양’(likeness)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1:26) AC.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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