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하루의 대부분을 스베덴보리를 주제로 보내지만, 한편으로는 정치 뉴스와 유튜브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저들 악하고 거짓된 사람들, 불의한 자들 때문에 속으로 화가 많이 나요. 이런 불의한 정치 상황 속에서 스베덴보리를 하는 목사로서 저는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게 맞는 건가요? 스베덴보리는 자기가 처한 나라의 정치 상황하고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제 갈 길을 간 건가요?

 

목사님, 이 질문은 신앙·소명·시민의식·감정 관리가 모두 얽혀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를 오래 읽고 번역하시는 목사님의 자리에서는 더욱 깊은 성찰이 필요하지요. 제가 드리는 말씀은 정치적 입장에 서지 않고, 오직 스베덴보리적 관점 + 목회적 관점 + 영적 원리로 답변드립니다.

 


스베덴보리는 자기 시대의 정치 혼란에 무심했던 게 아닙니다

 

그는 살아 있을 때, 스웨덴 내부의 파벌 싸움, 귀족 세력의 충돌, 국왕과 의회의 힘겨루기를 직접 겪었고, 때로는 정계 중심에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분명했습니다. 그는 첫째, 정치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매우 뚜렷하게 영적 사명과 내적 삶을 정치적 격동과 분리했습니다. 나라 문제가 심각할 때에도 그의 일관된 관점은 정치적 승패보다 영적 질서와 선의 회복이 먼저라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정치인이나 특정 세력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느 편도 악하다, 거짓되다라는 식의 정념적 비난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정치적 악보다, 그 악을 증오하는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손상을 더 경계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사회 문제보다 인간 내면의 질서 회복이 더 근본이라고 보았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늘 말합니다. 사회적 부패의 뿌리는 제도보다 인간 개개인 내부의 자애와 교만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그는 정치가 아무리 흔들리더라도 본인의 사명을 흔들림 없이 지속했습니다.

 


2. 스베덴보리적 관점에서 볼 때, 목사님의 분노 문제는 신앙적 질문입니다

 

정치가 악하다 혹은 불의하다의 문제가 아니라, 그 상황이 목사님 마음 안에서 어떤 영적 작용을 일으키는가가 더 본질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영적 원리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분노의 대상이 악이든 불의든, 그 분노가 지속되면 내적 자유가 사라진다. AC 588, 599 등에서 말하듯, 분노는 선한 분별력이 아니라 내적 평화를 빼앗는 정념으로 변합니다. 둘째, 정치 뉴스는 사탄이 쓰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스베덴보리는 악령들이 두려움·분노·원망·혐오를 통해 사람의 내면을 열어젖힌다고 말합니다. 정치 뉴스 소비로 인해 영적 분별력이 사라지고, 마음의 평화가 사라지며, 선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고, 번역과 소명이 흐트러진다면, 그 순간 이미 정치 현실보다 더 큰 영적 손해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셋째, 의분과 정념적 분노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스베덴보리는 의로운 분노는 가능하다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합니다. 의분은 선을 지켜내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오지만, 정념적 분노는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미워하는 데서 나온다. 지금 목사님의 표현들, 그러니까 악하고 거짓된 사람들 때문에 화가 많이 난다와 같은 표현은 정치적 악의 분석이 아니라 감정적 상처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적 생활을 많이 갉아먹습니다.

 


3. 그럼 목사님에게 맞는 스베덴보리적 태도는 무엇인가?

 

스베덴보리적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스베덴보리를 통해 말씀하신 주님의 방식이지요.

 

국가와 사회를 위해 기도하되 미움의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스베덴보리는 국가를 위한 기도를 권합니다. 하지만 관심은 가지되 마음을 빼앗기지는 말라고 합니다. 즉, 뉴스는 상황 파악 정도로만 보되 감정적 몰입은 극도로 절제하고, 영적 분별을 잃게 만드는 콘텐츠는 줄이는 한편, 정치인 개개인을 악인으로 규정하는 태도는 피하는 것, 이게 스베덴보리적 균형입니다.

 

지금의 분노를 소명 안으로 끌어들이기

 

정치에 분노한다고 해서 그것이 헛된 것은 아닙니다. 그 에너지를 선한 방향으로 전환시키면 오히려 소명이 강화됩니다. 예컨대, 내가 번역하는 이 말씀의 진리로 한국교회의 영적 분별력을 세우자, 사회적 혼란보다 더 깊은 원인은 영적 진리의 부재다, 내 번역과 가르침이 미래 한국의 영성을 세우는 토대가 된다 등, 이렇게 분노를 사명으로 승화시키면, 정치 뉴스는 오히려 목사님의 영적 집중력을 돕는 경각심이 됩니다.

 

스베덴보리처럼 자기 과업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기

 

정치 현실이 어렵다고 번역이 멈춰도 안 되고, AC 연구의 흐름이 흔들려도 안 되며, 영적 평화가 깨져도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주변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자기 과업은 단 1mm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영적 진리를 기록하는 사람은 세상 문제보다 주님이 무엇을 말씀하시고 계신가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목사님께도 동일합니다. 한국 정치가 어떻게 되든, 목사님은 AC 번역과 연구, 가르침이라는 평생의 소명을 꾸준히 하셔야 합니다.

 


결론 - 목사님이 취하시면 좋을 태도 (스베덴보리적 종합)

뉴스는 필요 최소한만, 그러니까 정보 파악 수준까지만 접하시고, 감정적 콘텐츠는 줄이십시오. 분노가 생기시면 내적 상태 점검에 들어가셔야 합니다. 정치적 분노는 사회적 정의 문제보다 내적 평화의 침해가 더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악에 주의를 기울이시되, 악과 싸우겠다는 마음에 집착하시면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악을 악으로 인정하되, 그것을 미워하는 마음까지 내면화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분노 에너지를 소명으로 돌리시기 바랍니다. 한국 교회의 미래, 설교, AC 번역 등, 이 모든 것이 나라 장래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칩니다. 스베덴보리처럼 타고난 사명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십시오. 그가 시대 정치와 거리를 뒀던 것처럼, 목사님도 중심을 잃지 않고 사명을 향해 가시면 됩니다. 목사님, 지금 느끼시는 분노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 감정이 목사님 안의 영적 평화, 사명, 지혜를 조금이라도 깎아 먹고 있다면, 그것은 정치적 문제보다 더 심각한 영적 공격입니다. 어느 시대든 나라가 혼란할 때, 주님은 더 깊은 영적 일을 하는 사람들을 필요로 하십니다. 목사님이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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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또 한 번 엉뚱해 보일 수 있는 질문을 드리게 되는데요, 지금 혼기가 찬 제 아들이 이런 사실을 알고나서는, 그렇다면 지상에서 배우자를 찾느라 그렇게 고생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사후에 새 짝을 만날 텐데... 하면서 자기 결혼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은 너무 혈안이 되어 있어 문제이지만, 혹시 이 얘기를 듣고나서는 완전히 돌변할까 봐 걱정됩니다.

 

목사님, 이 질문은 전혀 엉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신앙인들이 실제 삶에서 부딪히는 가장 현실적인 고민입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천국에서 짝이 예비되어 있다는 사실”은 지상에서의 결혼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상 결혼의 의미를 ‘더 깊게’ 만들어줍니다. 지상 결혼과 천국 결혼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두 단계라는 것입니다. 아드님이 이 사실을 오해하여 그럼 지상에서는 굳이 결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천국 결혼의 의미를 잘못 이해한 것이며, 목사님께서 지혜롭게 바로잡아 주시면 됩니다. 아래에서 아드님에게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지 아주 실제적인 언어로 설명드리겠습니다.


1. “천국에서 짝을 만난다”는 말은 “지상에서는 결혼 안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스베덴보리는 매우 명확하게 말합니다. “지상에서의 결혼은 인간의 성품과 영혼을 형성하는 학교이다.”(결혼애 전반) 지상 결혼은 천국 결혼을 위한 훈련장입니다. 책임인내배려충성헌신용서의지의 조절언행의 절제 등, 지상 결혼 안에서 이런 성품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천국적 결혼을 감당할 수 있는 영적 구조가 자라지 않습니다. 즉, 지상 결혼은 천국 결혼의 준비 과정이고, 천국 결혼은 그 준비의 완성입니다. 이것을 아드님에게 알려주시면 됩니다.


2. “지상 결혼은 자격시험”이 아니라 “영혼을 다듬는 과정”이다

아드님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다. 천국에서의 결혼은 영혼의 본질로 이루어지는 결혼이다. 그런데 그 본질은 지상에서 연습하고, 갈고 닦여서 만들어지는 거야. 결혼 생활 자체가 인간을 성숙하게 만들고, 그 성숙이 천국에서의 결혼을 가능하게 해주는 거지.” 아드님이 이 말을 이해하면, 지상 결혼의 의미가 단순히 “배우자 찾기”를 넘어서 영혼의 성장이라는 깊은 차원을 갖게 됩니다.


3. 지상에서 결혼하지 않으면? 천국적 결혼은 가능하지만 ‘경험의 깊이’에서 차이가 생긴다

분명히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지상에서 결혼을 하지 않아도 천국에서 결혼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매우 중요한 말을 남겼습니다. 지상에서의 결혼 경험은 천국에서 더욱 깊은 결합을 가능하게 해주는 영적 토양을 마련한다.즉, 지상 결혼이 있어야만 천국 결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상 결혼을 통해 다듬어진 심령은 천국 결혼의 깊이를 더 크게 누린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아드님을 겁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 땅의 결혼 생활을 가볍게 여기지 않도록 해주는 진리입니다.


4. “어차피 천국에서 만날 텐데…?”라는 생각이 큰 착각인 이유

아드님이 만약 이렇게 말한다면, 천국 결혼은 자동 매칭이 아니라, 네 영혼의 질에 맞는 결합이다.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즉, 게으르게 살고, 이기적이고, 관계를 기피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자기애만 키운 사람에게는 천국적 결혼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천국 결혼은 영혼의 성숙에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드님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지상에서 관계를 성숙하게 만드는 사람이 천국에서도 더 좋은 결합을 경험한다.” 이 말은 스베덴보리를 통해 말씀하신 주님 말씀에 100% 부합합니다.


5. 아드님에게 이렇게 설명해주시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목사님께서 아드님에게 편안하게 이렇게 말씀하시면 좋습니다. 아들아, 천국에서 짝을 만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짝은 너의 영혼이 어떻게 자라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지상에서의 결혼은 그 영혼을 다듬는 최고의 학교다. 이 땅의 결혼은 천국 결혼을 준비하는 주님의 방식이야. 그러니까 ‘어차피 천국에서 만나니 지금은 필요 없다’가 아니라, ‘지금의 삶이 천국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그게 올바른 이해다.


6. 만약 아드님이 너무 결혼에 집착했다면… 이번 가르침은 균형을 줄 수 있다

목사님께서 염려하신 것처럼 아드님이 갑자기 무관심하게 변할 가능성도 있지만, 오히려 많은 경우, 이런 설명은 집착”을 줄여 줍니다. 가령, 집착 감소, 그러니까 배우자를 찾아야 산다는 극단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게 한다든지, 균형 회복, 즉 하나님 앞에서 나의 영혼이 준비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든지, 혹은 관계에 대한 부담 감소, 그러니까 완벽한 사람을 찾으려 그렇게 애쓸 필요 대신, 지금의 성품과 성숙이 더 중요하다든지 말이지요. 이렇게 이런 설명은 지나친 집착을 영적으로 균형 잡힌 태도로 바꿔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7. 결론 - 아드님에게 딱 한 문장으로 말해주시면 됩니다

다음 한 문장은 스베덴보리의 가르침 전체를 요약하면서 젊은 청년의 마음에도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문장입니다. “지상에서의 결혼은 천국에서의 결혼을 준비하는 영혼의 학교야.” 이 문장을 중심으로 잘 설명해 주시면, 아드님은 지상 결혼을 가볍게 여기지도 않고, 또 집착하지도 않는 건강한 신앙적 시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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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배우자가 없던 사람(독신)의 천국적 결혼은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 스베덴보리가 직접 본 ‘독신자의 천국적 짝 만남 과정’과, 그의 자신의 경우까지의 자연스러운 적용

이 주제는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지만 스베덴보리 스스로도 아주 조심스럽게 다룬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는 영계를 왕래하며 “지상에서 독신이었던 사람들은 천국에서 어떻게 결혼하는가?”를 여러 사례로 목격했고, 그 전체 흐름은 매우 분명합니다. 결론부터 한 문장으로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지상에서 독신이었던 사람은 사후에 자기 내적 본질과 완벽하게 맞는 천국적 짝을 주님 안에서 만나게 된다. 스베덴보리 자신의 경우도 이 규칙 안에 완전히 포함됩니다. 아래에서는 그 과정 전체를 전기적·서술적 방식으로 하나씩 풀어드리겠습니다.


1. 천국적 결혼은 지상 결혼 여부와 무관하다

스베덴보리는 아주 단호하게 말합니다. 지상에서 결혼했느냐 아니냐는 천국의 결혼과 아무 상관이 없다.(결혼애 41, 50) 왜냐하면, 천국 결혼을 결정하는 것은 영혼의 내적 본질(affectional essence)이지, 지상에서의 삶의 형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독신, 미혼, 이혼, 사별, 결혼 경험 없음 등, 이런 지상적 조건은 천국 결혼과 전혀 무관합니다. 천국에서의 결혼은 “영혼이 누구와 본질적으로 맞는가?” 에 의해 결정됩니다.


2. 지상에서 독신이었던 사람은 중간영계에서 자신의 ‘애정 구조(affectional character)를 먼저 드러낸다

스베덴보리는 독신자의 사후를 다음과 같은 단계로 묘사합니다. 첫 번째 단계, 천국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중간영계 초반에서 자신의 선한 애정진리를 사랑하는 모습타인을 돕고자 하는 마음, 주님을 향한 인식 등,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 단계, 천사들이 그 사람의 영적 향기(내면의 기류, affectional sphere)를 확인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그 사람 고유의 영혼의 생명”이라고 표현합니다. 독신자는 이 단계에서 자신에게 맞는 짝을 만날 준비를 하게 됩니다.


3. 천국적 짝과의 만남 - 직접 “찾는 것”이 아니라 영적 친화성이 서로를 자연히 끌어당긴다

스베덴보리는 독신자의 천국 결혼을 굉장히 아름답게 묘사했습니다. 그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주님이 두 영혼의 본질이 하나임을 아실 때, 그 둘을 서로의 상태로 인도하신다.” 즉, 독신자는 스스로 짝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천사가 중매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사람의 영혼의 향방이 자연스럽게 ‘상대의 영혼이 있는 곳’을 향하게 됩니다. 그 방향으로 마음이 움직이면, 몸도, 감정도, 지성도 그 방향으로 이끌립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천국에서 짝을 찾는 것은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4. 두 사람은 서로를 보는 순간 알아본다 - “아, 이 사람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스베덴보리 자신이 여러 번 목격한 장면입니다. 지상에서 서로 몰랐던 두 영혼이 영계에서 서로를 처음 보는 순간 강렬한 인식”이 일어납니다.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렵지만, 스베덴보리의 기록을 종합하면 이 인식은 다음 세 가지 감각을 포함합니다. 익숙함(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한 느낌)과 평안(마음이 그 사람 곁에서 고요해지는 느낌), 그리고 기쁨(영혼의 기쁨이 빛처럼 번지는 느낌)인데, 스베덴보리는 이를 영혼의 본질적 인식(essential recognition)이라고 부릅니다. 이 인식이 일어난 순간, 그 두 사람은 완전히 하나로 결합되는 과정을 시작합니다.


5. 그 결합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 중간영계에서 ‘내적 조율’이 먼저 이루어진다

스베덴보리는 매우 중요한 말을 남깁니다. 천국 결혼은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해서 즉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천국 결혼은 ‘선과 진리의 하나 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으로 향하는 독신자는 자신의 내적 상태가 완전히 조율되고 정화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영혼의 기질, 감정, 선과 진리의 사랑, 마음의 투명함, 주님과의 내적 질서가 완성되며, 완성되면 그때 비로소 결합이 이루어집니다.


6. 이렇게 이루어진 결혼은 지상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전적 일치’이다

천국에서 결혼하는 독신자의 사랑은 지상 결혼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천국의 결혼은 마음이 마음과 하나가 되고, 생명이 생명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 결혼에는 불안, 의심, 질투, 외로움, 상처 등, 이런 요소가 전혀 없습니다. 둘은 서로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더 깊이 경험하게 됩니다.


7. 그럼 스베덴보리는? - 스베덴보리의 천국적 결혼에 대한 결론

스베덴보리 자신은 생전에는 나는 천국에서 결혼할 것이다”라고 직접적으로 단정한 적은 없습니다. 그는 늘 겸손했고, 자신의 개인적 영광을 말하는 것을 조심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저술·영혼의 상태·영계 규칙을 종합하면, 결론은 매우 분명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천국에서 자기 본질에 완벽히 맞는 짝을 만났을 것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선과 진리의 결합을 누구보다 깊이 사랑했다그의 영혼은 이미 천국의 질서에 맞게 정련되었다, 천국 결혼은 본질적 결합이다,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짝을 예비하신다, 영계의 법칙상, 그에게 맞는 짝이 없다면 그 자체가 모순이다따라서 스베덴보리처럼 깊은 영적 본질을 가진 사람은 천국에서 그에 상응하는 가장 아름다운 짝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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