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34 심화
1. 왜 새 교회는 이전 교회의 ‘가장 어두운 때’에 일어나는가?
AC.334에서 매우 인상적인 것은 새로운 교회가 이전 교회적 상태가 조금 쇠퇴했을 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신앙과 체어리티에 속한 모든 것이 소멸되고’ 그것들에 폭력이 가해져 극도의 모독에 이르렀을 때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왜 새로운 교회는 이렇게 이전 상태의 가장 어두운 종말과 맞닿아 나타날까요?
먼저 이것을 주님께서 이전 교회를 일부러 타락시키신 뒤 새로운 교회를 세우신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타락과 왜곡은 인간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거절하고 자신의 proprium을 따르는 데서 생깁니다. 주님께서는 선과 진리를 끊임없이 공급하시지만, 인간의 자유를 파괴하면서까지 그것을 받아들이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한 교회적 상태 안에 아직 선과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남아 있는 동안에는 주님께서 그것을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보존하시고 이끄신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계속해서 선과 진리를 거부하고 왜곡하며, 마침내 신앙과 체어리티에 속한 것에 폭력까지 가하는 상태에 이르면 그 교회적 상태는 더 이상 본래의 교회적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됩니다.
이때 ‘새로운 교회가 일어난다’는 것은 실패한 상태를 강제로 수리하여 원래대로 돌려놓는 것과는 다릅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자유를 보존하시면서도 교회의 생명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도록 새로운 교회적 상태를 마련하십니다. 인간의 한 상태가 끝나는 것과 주님의 구원의 섭리가 끝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이 점에서 AC.330의 가인의 표를 다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인에게 아직 신앙에 속한 것이 있었을 때, 그것은 장차 체어리티가 신앙을 통하여 심어질 수 있도록 보존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보존은 가인에서 이어지는 모든 상태가 반드시 올바르게 회복될 것이라는 보장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라멕에 이르러 그 계열은 신앙에 속한 것마저 잃고, AC.334에서는 신앙과 체어리티에 폭력을 가하는 상태에까지 이릅니다.
그렇다고 주님의 섭리가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바로 그 종말의 때에 아다와 씰라로 의미된 새로운 교회가 일어납니다. 이것은 주님의 섭리가 특정한 한 교리적 계열의 성공에 매여 있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한 상태가 자유의 오용으로 종말에 이를 수 있지만, 구원의 길 자체까지 인간이 소멸시킬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아다와 씰라가 문자적으로 라멕의 아내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렇다면 새 교회가 라멕의 악에서 생겨난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초기의 가족과 계보는 속뜻에서 교회와 교리의 상태 관계를 표상합니다. 따라서 라멕의 악이 변하여 새 교회가 되었다고 읽기보다, 라멕으로 표상되는 종말의 상태와 새로운 교회의 출현이 말씀의 계보 안에서 함께 묘사된다고 이해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이 새로운 교회가 홍수 이후 노아로 표상되는 고대교회와 같다는 뜻도 아닙니다. 아다와 씰라로 표상되는 교회는 아직 홍수 이전의 문맥 안에 있습니다. 노아의 교회는 이후 태고교회의 종말과 더 큰 거듭남 질서의 전환 속에서 다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교회’라는 표현이 나온다고 해서 모두 동일한 역사적 교회 시대를 가리킨다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왜 말씀은 새로운 교회의 출현을 굳이 가장 어두운 종말과 함께 묘사할까요? 그것은 인간의 실패와 주님의 섭리를 동시에 보여 주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 편에서는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정도로 선과 진리를 소멸시키고 모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에도 주님께서는 구원의 길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가장 어두워져야 주님이 역사하신다’는 법칙을 만들자는 뜻도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역사하십니다. 오히려 인간이 그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다가 한 상태가 끝에 이르렀을 때, 주님의 섭리가 그 종말 너머에서도 계속되고 있음을 우리가 뒤늦게 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AC.334의 ‘가장 어두운 때’는 절망의 증거라기보다 인간의 종말이 주님의 종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자리입니다. 신앙과 체어리티에 속한 것이 모두 소멸되고 모독이 극에 이른 상태에서도 주님의 뜻은 변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다시 선과 진리가 결합되고, 체어리티와 신앙이 살아 있는 교회적 상태가 일어날 수 있도록 계속 섭리하십니다.
이것이 AC.334가 교회의 종말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희망을 품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전 교회의 내적 생명은 끝날 수 있지만, 교회를 향한 주님의 사랑과 섭리는 끝나지 않습니다. 인간이 만든 가장 깊은 어둠보다 주님의 구원의 뜻이 더 멀리 갑니다.
AC.334 심화 2, 신앙과 체어리티에 속한 것들에게 폭력을 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AC.334 심화2. 신앙과 체어리티에 속한 것들에게 폭력을 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AC.334의 ‘신앙과 체어리티에 속한 모든 것이 소멸되고, 그것들에 폭력이 가해졌다’는 표현은 처음 읽으면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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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34, 창4:23-24, 신앙과 체어리티가 소멸되고 모독이 극에 이르렀을 때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And Lam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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