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30 심화

1. 주님께서는 왜 가인을 보호하셨는가?

 

AC.330에서 가장 깊이 생각해 볼 부분은 역시 가인의 입니다. 지금까지의 흐름만 보면 가인은 부정적인 것의 연속입니다. 사랑에서 신앙을 분리했고, 그 신앙을 체어리티보다 높였으며, 마침내 아벨을 죽여 체어리티를 소멸시켰습니다. 그 결과 교리는 왜곡되고 거짓과 악이 생겨났으며, 사람들은 주님에게서 자신을 돌이켜 영원한 죽음의 위험에 놓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께서는 그런 가인을 없애지 않으시고 오히려 보호하셨을까요?

 

AC.330은 그 이유를 한 문장으로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후 체어리티가 신앙을 통하여 심어지게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인이 보호받은 것은 그가 잘했기 때문도 아니고,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이 주님께 인정받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가인으로 표상되는 신앙에 속한 것이 장차 인간의 거듭남에 다시 사용되어야 했기 때문에 보존된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구별입니다. ‘가인의 를 단순히 살인자에게도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이라는 도덕적 교훈으로만 읽으면 AC.330이 말하는 더 깊은 의미를 놓치게 됩니다. 물론 문자적 이야기에서는 보호라는 모습이 분명히 나타납니다. 그러나 속뜻에서 스베덴보리가 강조하는 것은 신앙의 보존입니다. 체어리티를 소멸시킨 신앙이라 하더라도 신앙에 속한 것 자체가 완전히 사라져서는 안 되었습니다. 훗날 체어리티가 다시 인간에게 심어질 때 바로 그 신앙을 통하여 심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체어리티가 신앙을 통하여 심어져야 했을까요? 여기에는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와 이후 인간의 상태 사이의 변화가 배경에 있습니다. 태고교회의 가장 순수한 상태에서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지각하는 퍼셉션이 있었습니다. 사랑이 먼저였고 그 사랑 안에서 무엇이 참된지를 지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천적 상태가 상실되어 가면서 인간에게는 진리를 배우고 그것을 받아들여 그 진리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선으로 인도되는 길이 필요하게 됩니다.

 

다만 AC.330 한 번호만으로 이 이후의 거듭남 질서 전체가 완성되어 설명되었다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서 직접 말하는 핵심은 체어리티가 이후 신앙을 통하여 심어질 것이므로 신앙이 보존되었다는 것입니다. 천적 인간과 이후 영적 인간의 차이는 뒤의 AC에서 더욱 상세하게 전개됩니다. AC.330은 그 큰 전환을 미리 보여 주는 중요한 단서라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이렇게 보면 신앙은 침해받지 않도록 보존되었다는 말의 의미도 분명해집니다. 신앙이 체어리티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보호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앙은 장차 체어리티로 이끄는 기능 때문에 보호받았습니다. 신앙의 목적이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진리는 선을 향하고 신앙은 체어리티를 향해야 합니다. 사람이 진리를 배우고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국 그 진리가 삶 안에서 선이 되고 체어리티로 살아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점에서 AC.328 AC.330은 아름답게 연결됩니다. AC.328에서는 체어리티가 신앙과 함께 있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체어리티는 신앙을 없애려 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신앙이 자신을 주된 것으로 세우고 체어리티보다 높이려 한 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결국 아벨을 죽여 체어리티를 소멸시킨 뒤에도 주님께서는 가인마저 소멸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신앙을 보존하여 장차 다시 체어리티와 결합될 길을 남겨 두십니다.

 

여기서 창3 마지막 장면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잘못된 상태에서 취하여 거룩한 것을 모독하지 않도록 생명나무의 길이 보호되었습니다. AC.330의 가인의 표와 동일한 상응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두 장면 모두 인간의 타락 가운데서도 주님의 섭리가 구원의 길을 완전히 사라지게 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게 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질서를 무너뜨려도 주님께서는 그 상태에 맞추어 다시 생명으로 이어질 길을 마련하십니다.

 

특히 아벨은 죽었지만 가인은 보존된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체어리티가 없어도 신앙만 남으면 된다는 뜻으로 읽으면 AC.330의 의미가 완전히 뒤집힙니다. 가인이 보존된 이유는 아벨이 필요 없기 때문이 아니라, 다시 아벨에 해당하는 체어리티가 인간에게 심어질 길을 남겨 두기 위해서입니다. 신앙의 보존은 체어리티의 포기가 아니라 체어리티의 미래를 위한 보존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중요한 원리를 줍니다. 우리가 말씀을 배우고 교리를 연구하며 진리를 정확하게 이해하려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신앙과 지식의 목적은 결국 삶입니다. 진리를 많이 아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진리를 통하여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며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적입니다. 신앙이 체어리티를 향하지 않는다면 신앙이 보존된 본래의 목적을 잃게 됩니다.

 

특히 아르카나를 공부하는 우리에게 가인의 는 의미심장한 경고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의 속뜻을 알고 상응을 이해하며 교리를 정확하게 배우는 일은 귀하지만, 그 지식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진리를 보존하시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까닭은 그 진리를 통하여 우리의 의지와 삶이 변화되고 체어리티가 우리 안에 심어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AC.325부터 AC.330까지를 하나로 읽으면 창4의 흐름이 매우 선명해집니다. 사랑에서 신앙이 분리되고, 그 분리가 예배에 나타나며, 사람들의 상태가 악해지고, 신앙이 체어리티보다 높아지며, 마침내 체어리티가 소멸됩니다. 이어 교리가 왜곡되고 거짓과 악이 생겨나며 영원한 죽음의 위험에까지 이릅니다. 그러나 바로 그 가장 어두운 자리에서 주님께서는 가인의 를 두십니다.

 

인간은 하나였던 것을 갈라놓았지만 주님께서는 그 갈라진 것 가운데서도 다시 생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을 보존하십니다. 이것이 가인의 표에 담긴 섭리입니다. 신앙은 신앙 자체를 위해 보존된 것이 아니라, 언젠가 그 신앙을 통하여 체어리티가 다시 인간 안에 심어지도록 하기 위해 보존되었습니다. 그러므로 AC.330의 가장 깊은 중심에는 인간의 타락보다 한 걸음 앞서 구원의 길을 남겨 두시는 주님의 섭리가 놓여 있습니다.

 

 

 

AC.330, 창4:10-16, 창4:10-16 전체의 속뜻

10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And he said, What hast thou done?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s crieth to me from the ground.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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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And he said, What hast thou done?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s crieth to me from the ground.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And now art thou cursed from the ground, which hath opened its mouth to receive thy brother’s bloods from thy hand. 12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When thou tillest the ground, it shall not henceforth yield unto thee its strength; a fugitive and a wanderer shalt thou be in the earth. 13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And Cain said unto Jehovah, Mine iniquity is greater than can be taken away. 14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Behold, thou hast cast me out this day from the faces of the ground; and from thy faces shall I be hid, and I shall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 15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unto him, Therefore whosoever slayeth Cain, vengeance shall be taken on him sevenfold. And Jehovah set a mark upon Cain, lest any finding him should smite him. 16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And Cain went out from the faces of Jehovah, and dwelt in the land of Nod, toward the east of Eden. (4:10-16)

 

AC.330

핏소리(voice of bloods) 소멸된 체어리티를(10),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curse from the ground) 왜곡된 교리를(11),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fugitive and wanderer in the earth) 거기에서 비롯된 거짓과 악을(12) 각각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에게서 자신을 돌이켰기 때문에 영원한 죽음에 처할 위험에 놓였습니다. (13-14) 그러나 이후 체어리티가 신앙을 통하여 심어지게 것이었으므로, 신앙은 침해받지 않도록 보존되었으며, 이것이 가인에게 표를 주신 (mark set upon Cain)으로 의미됩니다. (15) 가인이 에덴 동쪽에 거주한 (Cain dwelling toward the east of Eden) 신앙이 이전의 위치에서 옮겨진 것을 나타냅니다. (16) Charity extinguished is called thevoice of bloods.(verse 10); perverted doctrine, thecurse from the ground.(verse 11); the falsity and evil originating thence, thefugitive and wanderer in the earth.(verse 12) And as they had averted themselves from the Lord, they were in danger of eternal death. (verses 1314) But as it was through faith that charity would afterwards be implanted, faith was made inviolable, and this is signified by themark set upon Cain.(verse 15) And its removal from its former position is denoted byCain dwelling toward the east of Eden.(verse 16)

 

해설

AC.330은 창4:10-16 전체의 속뜻을 한꺼번에 압축하여 보여 주는 중요한 개요입니다. 앞의 AC.325-329에서 사랑과 신앙의 분리로 시작된 과정은 마침내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것, 곧 체어리티의 소멸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제 AC.330은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 줍니다. 소멸된 체어리티는 핏소리, 왜곡된 교리는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거기에서 비롯된 거짓과 악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그 상태가 끝까지 진행되면 주님에게서 자신을 돌이켜 영원한 죽음의 위험에까지 이릅니다. 그러나 바로 그 가장 어두운 지점에서 뜻밖의 반전이 나타납니다. 주님께서는 가인을 완전히 없애지 않으시고 그에게 를 주어 신앙을 보존하십니다. 훗날 체어리티가 바로 그 신앙을 통하여 다시 심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핏소리는 소멸된 체어리티를 의미합니다. 4:10의 개역개정은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라고 번역하지만, 스베덴보리는 원문의 복수형을 살려 voice of bloods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피라는 물질 자체가 아니라 앞의 AC.329에서 아벨의 죽음으로 표상된 체어리티의 소멸입니다. 따라서 핏소리는 가인으로 표상되는 교회적 상태 안에서 체어리티가 소멸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이어지는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는 왜곡된 교리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체어리티가 소멸된 뒤에도 신앙과 교리에 속한 것들이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체어리티에서 분리되고 진리가 선과의 결합을 잃으면 교리 역시 본래의 질서를 잃고 왜곡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인의 길은 단순히 체어리티 없는 신앙이라는 정지된 상태에 머물지 않습니다. 분리가 계속되면서 교리가 왜곡되는 단계로 나아갑니다.

 

그 결과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로 묘사되는 거짓과 악입니다. AC.330은 이 거짓과 악이 왜곡된 교리에서 비롯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진리는 선과 결합되어 있을 때 삶의 방향을 제시하지만, 교리가 왜곡되면 생각과 삶 역시 그 왜곡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피하며 유리하는 라는 표현은 단순히 가인이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게 되었다는 문자적 의미를 넘어, 왜곡된 교리에서 생겨나는 거짓과 악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 상태는 더욱 심각한 결과로 이어집니다. AC.330그들은 주님에게서 자신을 돌이켰기 때문에 영원한 죽음에 처할 위험에 놓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그들에게서 돌아서셨다고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주님에게서 자신을 돌이켰다고 합니다. 주님의 사랑과 자비가 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에게서 돌아선 것입니다. 따라서 영원한 죽음의 위험은 주님께서 사람을 버리시는 변덕스러운 심판이라기보다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방향으로 스스로 나아간 결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AC.330의 놀라운 반전이 나타납니다. 지금까지의 흐름만 생각하면 가인으로 표상되는 신앙 역시 사라지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사랑에서 분리되었고, 체어리티보다 자신을 높였으며, 마침내 체어리티를 소멸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가인에게 를 주십니다. 스베덴보리는 그 이유를 매우 분명하게 밝힙니다. ‘이후 체어리티가 신앙을 통하여 심어지게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은 AC.330 전체의 가장 중요한 열쇠 가운데 하나입니다. 가인이 보호받은 것은 가인의 상태가 옳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이 승인되었다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장차 체어리티가 다시 인간에게 심어질 때 신앙이 그 통로로 사용되어야 했기 때문에, 신앙에 속한 것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도록 보존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인의 는 분리된 신앙에 대한 승인의 표가 아니라 미래의 구원을 위하여 신앙을 보존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나타냅니다.

 

이 점은 앞의 AC.328과 연결하면 더욱 선명해집니다. 체어리티는 신앙을 없애려 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이 자신을 주된 것으로 세워 체어리티보다 높임을 받지만 않는다면 체어리티는 신앙과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문제는 신앙 자체가 아니라 신앙과 체어리티 사이의 질서가 뒤집힌 것이었습니다. 이제 인간 편에서는 아벨을 죽여 체어리티를 소멸시켰지만, 주님께서는 신앙마저 소멸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장차 그것을 통하여 다시 체어리티가 심어질 길을 남겨 두십니다.

 

여기에는 태고교회 이후의 거듭남의 질서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도 들어 있습니다. 태고교회의 천적 인간에게서는 사랑으로부터 진리를 지각하는 질서가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상태가 상실되어 감에 따라 이후에는 사람이 진리를 배우고 그것을 신앙으로 받아들이며, 그 진리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선과 체어리티로 인도되는 길이 중요해집니다. AC.330은 아직 그 전체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지만, ‘체어리티가 신앙을 통하여 심어지게 이라는 말로 그 이후의 질서를 미리 보여 줍니다.

 

따라서 신앙은 침해받지 않도록 보존되었다는 말을 신앙이 체어리티보다 더 높은 지위를 얻었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신앙이 보존된 이유는 신앙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체어리티가 다시 심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진리가 보존되는 이유는 선으로 이끌기 위해서이고, 신앙이 보존되는 이유는 그것을 통하여 인간이 다시 체어리티의 삶으로 인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인이 에덴 동쪽에 거주하였다는 것은 신앙이 이전의 위치에서 옮겨진 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도 AC.330이 직접 말하는 범위를 먼저 붙드는 것이 좋습니다. 신앙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이제 이전과 같은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본래 태고교회의 천적 질서에서는 신앙이 사랑 안에 있었고 사랑으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신앙의 분리 이후에는 그 이전의 위치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신앙은 보존되지만 그 위치와 기능에는 변화가 생깁니다.

 

이렇게 AC.330을 전체적으로 보면 두 흐름이 동시에 나타납니다. 인간 편에서는 체어리티의 소멸 교리의 왜곡 거짓과 주님에게서 돌아섬 영원한 죽음의 위험이라는 하강이 계속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섭리 편에서는 바로 그 무너진 상태 속에서도 장차 다시 체어리티에 이를 수 있도록 신앙을 보존하시는 일이 이루어집니다. 인간은 신앙과 체어리티를 갈라놓았지만, 주님께서는 그 갈라진 신앙마저 미래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 보존하십니다.

 

그러므로 AC.330은 단순한 심판의 개요가 아닙니다. 인간의 타락이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면서 동시에 그 타락보다 더 깊이 역사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보여 줍니다. 아벨은 죽었지만 가인은 보존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체어리티 없는 신앙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언젠가 그 신앙을 통하여 체어리티가 다시 심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 가인의 가 가진 놀라운 의미가 있습니다.

 

심화

1. 주님께서는 가인 보호하셨는가?

 

AC.330 심화 1, 주님께서는 왜 ‘가인’을 보호하셨는가?

AC.330 심화1. 주님께서는 왜 ‘가인’을 보호하셨는가? AC.330에서 가장 깊이 생각해 볼 부분은 역시 ‘가인의 표’입니다. 지금까지의 흐름만 보면 가인은 부정적인 것의 연속입니다. 사랑에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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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31, 창4:17, 에녹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And Cain knew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Enoch; and he was building a city, and 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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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29, 창4:8-9,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8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And Cain talked to Abel his brother; and it came to pass when they were in the field, that Cain rose up against Abel his bro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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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29 심화

1. ‘아벨의 죽음은 교회 안에서 어떻게 일어나는가?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죽이니라. 스베덴보리는 이 말씀의 속뜻을 체어리티가 소멸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교회 안에서도 아벨의 죽음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을 다른 교회나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데 사용하기보다 먼저 우리 자신의 신앙과 교회를 살피는 질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벨의 죽음은 교회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체어리티를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체어리티가 신앙의 본질적인 생명으로 여겨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랑과 봉사와 구제를 강조하면서도 그것들을 교회의 중심적인 영적 생명과는 별개의 부수적인 활동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입술로 체어리티를 말하는 것과 신앙이 실제로 체어리티 안에서 생명을 얻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아벨의 죽음은 교리가 너무 많아서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교리는 필요합니다. 진리가 없으면 무엇이 참된 선인지 분별하기 어렵고, 사람은 자기 욕망을 사랑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확한 진리를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교회의 중요한 쓰임입니다. 문제는 교리가 선과 삶에서 분리되어 그 자체가 목적이 될 때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교회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면서  진리에 따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교리적으로 정확한 신앙 고백을 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거의 전부처럼 여겨지고, 악을 죄로 여기고 피하며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삶은 신앙의 결과 가운데 하나 정도로만 취급될 수 있습니다. 이런 질서가 굳어질수록 신앙과 체어리티 사이의 거리는 멀어집니다.

 

반대로 체어리티를 강조한다면서 진리를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것도 올바른 해결은 아닙니다. ‘사랑만 있으면 무엇을 믿든 상관없다고 한다면 선과 진리의 또 다른 분리가 일어납니다. 참된 체어리티는 진리를 필요로 합니다. 진리는 누구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무엇이 이웃의 참된 유익인지, 어떤 악을 피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따라서 가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가인을 없애고 아벨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체어리티가 다시 하나를 이루게 하는 데 있습니다.

 

아벨의 죽음은 교회 공동체의 관계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교리적 차이를 다룰 때 상대방을 한 사람의 이웃으로 보는 일을 잃어버리고,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진리를 지키겠다는 명분 아래 상대방을 모욕하거나 정죄하고, 그의 말을 공정하게 들으려 하지 않으며,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는 데만 몰두한다면 우리가 붙들고 있는 진리가 어떤 사랑과 결합되어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교리적 비판이나 분별을 체어리티의 결핍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거짓을 거짓이라고 말하고 해로운 가르침을 경계하는 것은 때로 이웃을 향한 참된 사랑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체어리티는 무조건적인 동의나 무분별한 관용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와 함께 어떤 사랑에서 그것을 말하는가?입니다. 진리를 말하면서도 상대방의 참된 유익을 구할 수 있고, 오류를 지적하면서도 사람의 최종적인 내면에 대한 판단은 주님께 남겨 둘 수 있습니다.

 

아벨의 죽음은 개인의 신앙생활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많이 읽고 교리를 깊이 공부하며 신앙에 대한 확신도 강해지는데, 이상하게도 가족에게는 더 거칠어지고 다른 사람의 허물에는 더 예민해지며 자신의 잘못은 점점 보이지 않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문제는 진리를 너무 많이 배웠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배운 진리가 체어리티와 결합되지 않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속뜻과 상응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조심해야 할 위험이 있습니다. 말씀의 내적 의미를 알게 되면서 자신이 문자적 의미만 아는 사람보다 영적으로 더 높은 곳에 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가르침을 많이 아는 것과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천국적인 삶을 사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아르카나에 관한 지식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자신의 proprium을 더 분명히 보고 주님께 의지하며 이웃에게 더 유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아벨이 살아 있는지를 살피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교회가 얼마나 사랑을 많이 말하는가?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실제로 사람의 삶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말씀을 배운 사람이 악을 더 분명히 보고 피하려 하는가, 자기 맡은 일을 더욱 정직하고 충실하게 감당하는가, 약한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가, 이웃의 참된 유익을 위해 실제 쓰임을 행하는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우리는 타인의 내면을 최종적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외적인 행동만으로 한 사람의 지배적인 사랑을 완전히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아벨을 죽였다’, ‘ 사람에게는 체어리티가 없다고 쉽게 선언하는 것은 이 심화의 목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안에서 아벨이 죽어 가고 있지는 않은가?라고 묻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는 희망도 있습니다. 4의 이야기는 아벨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인간 편에서는 체어리티를 소멸시키는 데까지 갔지만, 주님의 섭리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후 가인의 상태가 어떻게 다루어지고, 마침내 셋과 에노스를 통하여 새로운 교회적 상태가 어떻게 일으켜 세워지는지를 보게 됩니다. 인간이 질서를 무너뜨려도 주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한 길을 계속 마련하십니다.

 

따라서 오늘 교회에서 아벨을 살린다는 것은 단순히 사랑과 봉사 프로그램을 더 많이 만드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신앙과 체어리티, 진리와 선, 교리와 삶을 다시 결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진리가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는 삶으로 이어지고,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이 이웃을 향한 지혜로운 사랑과 실제 쓰임 안에서 생명을 얻도록 하는 것입니다.

 

AC.329의 짧은 한 문장은 그래서 교회에 매우 무거운 질문을 남깁니다. ‘우리에게 가인은 살아 있는데 아벨은 죽어 있지 않은가? 교리와 신앙 고백과 예배의 외형은 풍성한데 체어리티가 그 신앙의 생명으로 살아 있지 않다면 우리는 이 질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목적은 우리를 정죄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보여 주시는 진리 안에서 우리 자신의 상태를 살피고, 신앙과 체어리티가 다시 형제로 함께 있도록 질서를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AC.329, 창4:8-9,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8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And Cain talked to Abel his brother; and it came to pass when they were in the field, that Cain rose up against Abel his bro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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