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말씀의 속뜻은, 주님은 사람들의 거짓을 바로잡으시지도, 탐욕을 끄지도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듭나기 전, 사람의 생명은 오직 거짓과 탐욕밖에 없기 때문인데, 만일 이때 이 유일한, 비록 악하고 거짓되더라도, 생명을 건드리게 되면, 더 이상의 생명이 없어 사람은 바로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고’, 대신 비록 오랜 시간이 걸려도 그와 동행, 그가 자의로 주님의 선과 진리 쪽으로 돌이키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의 역량에 맞춰 강약을 조절하시면서 말이지요.

 

창세기 1장 30절 말씀,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에 관한, 다음과 같은 속뜻 역시 그렇습니다.

 

...거듭남의 과정을 보면, 사람이 영적 인간이 되어 갈 때, 그는 끊임없이 영적 전투 가운데 놓이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주님의 교회를 ‘전투적(militant)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거듭남 이전엔 탐욕(cupidities)이 지배적(the dominion)이기 때문인데요, 사람은 그 자체가(the whole man) 그저 탐욕과 탐욕에서 나오는 거짓으로만 되어 있기(composed of)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거듭나는 동안 이들 탐욕과 거짓이 순간적으로 폐지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존재 자체가(the whole man) 파괴되기 때문인데요, 이들 탐욕과 거짓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습득한(has acquired) 유일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런 일을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악한 영들은 오랫동안 그와 함께하면서 다음과 같은 일들을 겪게 되는데요, 즉 그들은 일단 그의 탐욕을 자극하여 그를 흥분시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계속 그러다 보면 사람은 나중엔 이런 탐욕의 추구에도 지루해하며, 싫증을 느끼고 느슨해지게 마련이며, 그 결과, 결국엔 주님에 의해 선 쪽으로 기울어질 정도가 되고, 그러면 이제 이 사람에게는 개혁될 나름의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은 섬세하시며, 사람 일생의 모든 악과 거짓조차 이런 섭리 가운데 허락하심을 볼 수 있지요. 우리 주님의 이런 모습은 현재 거듭남의 과정 중인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자녀, 성도는 물론, 기타 모든 사람을 향해서도 우리가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하는지 하는 근본적인 방향과 관점을 제공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갑자기 다음과 같은 주님 말씀이 생각나는데요,

 

1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2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11:18-20)

 

그러므로 우리 역시, 어떠한 경우에도 이러한 주님의 성품, 곧 사랑과 온유, 겸손이라는 안전하고 온전한 울타리 안에서 행해야 하겠습니다.

 

가령 아이 훈육의 경우, 이렇습니다. 아, 그전에 먼저 천국 천사들 중 어린아이를 훈육하는 천사들은 어떤 태도와 자세로 하는지를 보겠습니다. 다음은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김은경 역) 37장, '천국의 어린이들'에 나오는 내용인데요, 천사들의 훈육을 보면서 그렇다면 우리는 지상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훈육해야 하는지 하는 귀한 통찰력을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죽으면 바로 내세에서 깨어나고(부활하고), 깨어나자마자 천국으로 인도되며, 육신을 입고 살 때, 아이들을 인자하게 사랑하고 동시에 하나님을 사랑한 여성 천사들에게 맡겨진다. 그 천사들은 세상에 살 때, 모든 아이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맡겨진 아이들을 자기 아이로 여기고, 어머니의 인자함으로 받아들이며, 아이들도 타고난 성향에 의해 그 천사들을 자기 어머니처럼 사랑한다. 그 천사들은 영적 모성애로 원하는 만큼 아이들을 돌본다. 이 천국은 천사들의 이마 앞쪽, 그들이 주를 바라보는 일직선 상에 있다. 모든 아이들이 주의 직접적인 보호의 눈길 아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위치하는 것이다. 순진함의 천국, 즉 삼층천이 그들에게 유입된다...

 

...아이들은 주로 그들의 특성에 알맞는 표상으로 교육을 받는다. 그 표상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내면에서 나오는 아름다움과 지혜로 가득하다. 선함을 본질로 하는 지성이 이런 방법을 통해 아이들에게 점진적으로 심어진다. 이제 내가 허락하심 하에 보게 된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이로써 나머지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주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심과 동시에 주의 인성과 신성이 합일되는 것을 표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은 사람의 모든 지혜를 초월하면서 동시에 아이들의 순진함에 맞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떤 무덤이라는 개념이 연출되고 나서 그 안에 주님이라는 개념이 나타났는데, 아주 멀리서 보는 것처럼 어렴풋하게 표현하여 전혀 주님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무덤이라는 개념에는 뭔가 죽음이란 느낌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없애고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 다음 어떤 공기 같은 것, 아주 옅은 액체 같은 것이 조심스럽게 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적절한 거리에서 보면 이것은 세례가 상징하는 영적 삶을 표상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서 '결박된 자들'에게 내려가시고, 그들과 함께 천국으로 올라가시는 주님의 표상이 보였는데, 그 장면은 극도의 조심성과 경의로 연출되었다. 또 아이들 마음의 수준에 맞추어 거의 안 보이는 가느다란 실들이 내려와 승천하시는 주님을 지극히 부드럽고 섬세하게 거들어드리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혹시라도 영적이지 않거나 천국적이지 않은 것에 그 표상들이 닿지 않게 하려는 경건한 두려움 속에 진행되었다. 거기 다른 표상들도 연출되었다. 아이들 마음에 적합한 놀이들을 통해 아이들은 진리를 알게 되고, 선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된다...

 

...나는 아이들의 사고가 얼마나 부드러운가도 알게 되었다. 내가 주기도문을 외우고 있을 때, 그들의 사고가 내 사고의 개념들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그 흐름은 거의 애정으로만 이루어졌다고 할 만큼 온화하고 부드럽게 느껴졌다. 동시에 그들의 사고가 주님께로부터 직접 열려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들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은 마치 그들을 그냥 통과해 흐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주께서는 가장 내적 차원에서 어린아이들의 생각 안으로 유입하시는데, 그것은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처럼 생각을 닫아버리고, 진리를 이해하는 길을 막아버리는, 그릇된 가치관이나, 선을 받고 그에 따라 지혜를 받는 길을 막아버리는 악한 생활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상의 내용을 보면, 아이들이 죽은 후, 바로 천사의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진리를 알아감에 따라 점차적으로, 천국의 모든 질서에 따라서 천사의 상태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는 주께서 아이들의 특성을 낱낱이 아시며, 따라서 그들 성향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 맞추어 선의 진리와 진리의 선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많은 내용들이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아이들을 돌보는 천사들은 아이들에게 일체의 영적이지 않거나 천국적이지 않은 것들이 닿지 못하도록, 즉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극도로 조심한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우리는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네,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아이를 훈육하면서 아이를 주님께 맡긴다는 건, 아이에게 무슨 예외를 허용했다가 아이에게 그동안 기울인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리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에 계속 강행, ‘맞을래?’ 하며 아이를 위협, 끝까지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혹시 그럴지라도, 즉 설사 그런 일이 일어날지라도 아이를 가장 잘 아시는 주님을 의지, 주님의 사랑과 온유하심으로 아이를 훈육하는 것이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건, 그 순간, 방법론이 필요한 게 아니라, 영적으로 악한 기운이 아이와 엄마를 삼키지 못하도록 시급히 그 기운을 끄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천사들과 악령들이 둘씩 와 있다 전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또 사람의 연령대에 따라 그에 맞는 영들로 임무 체인지가 되는데요, 대략 영유아들에게는 삼층천 천사들이, 초중고에겐 일층천 천사들이, 청장년에겐 이층천 천사들, 그리고 다시 노년에겐 삼층천 천사들이 오며, 이에 대응하는 악한 영들 또한 그렇게 임무 교대합니다.

 

이런 아르카나에 관한 지식은 지금 훈육 중인 어린아이 앞에서도 무척 유용합니다. 이때 영안이 열려 아이 안에 와있는 악령들이 보이면 더 좋겠지만, 비록 안 보이더라도 부모가 깨어 있어 그 영적 기운, 아우라의 변화, 그 영적 감각을 느낄 수 있었으면 참 다행스럽겠습니다. 그러면 바로 ‘아, 지금 아이 안에서 악령, 이 경우는 어린 악령이겠지요, 악령이 활동하며, 내가 화를 내고, 아이를 위협할수록 더욱 사실은 내 머리 꼭대기에서 나를 가지고 장난질을 하고 있구나! 그리고 내 안에서도...’ 간파하고, 즉시 영적 기운을 변화시키기 위해, 즉 아이 안에 역시 와있는 삼층천 천사들이 일하실 수 있도록, 나의 인간적인 훈육을 중단, 천사들을 통해 주님께 맡기는 물러남이 필요합니다.

 

이 물러남은 뭐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대체로 바로 회개 기도를 하며, 주님의 임재를 구하는 게 좋겠습니다. 상황 전개에 대한 주도권을 천사들에게, 곧 그렇게 해서 주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영유아 아이라 하더라도 아이를 윽박지르고, 사납게 대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를 하여 어찌하든지 지금까지 활활 타오르던 악한 기운을 시급히 끄는 게 중요합니다. 부모의 이런 태도는 절대 수치스러운 게 아니며, 우리가 즉시 이런 조치를 취하면 오히려 상황의 중대성을 감안, 삼층천 천사들이 믿어지지 않는 속도로 상황을 수습하실 겁니다.

 

이 지경까지 안 가도록 그냥 삼층천 천사들이 바로 개입하시면 되지 않느냐 하시겠지만, 주님은 절대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자유를 일방적으로 침해하시지 않으며, 그래서 이럴 경우, 즉 끝까지 쌩고생을 하면서도 회개하지도 않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을 경우, 삼층천 천사들은 그냥 안타까워하며, 가까이 오지도 못하시고, 그저 저만치 물러나 그 상황에서 하실 수 있는 최소한의 것만 하실 뿐입니다.

 

두 가지, 곧 사람의 안에 있는 악한 생명조차 주님은 함부로 건드리시지 않는다는 사실과,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은 사랑으로 온유하게 대처하신다는 거! 이 두 가지를 꼭 기억하여 아이 훈육을 비롯, 모든 상황에서 대처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절대로 어떤 걸 이루시기 위해 악한 기운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 교육 및 훈육 방식이 무조건 나쁘다, 악하다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크게 유용하지요. 하지만 그조차도 주님의 성품, 주님의 사랑과 온유하심 가운데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Posted by bygracetistory
,

※ 다음은 AC.34번 글 가운데 특별히 '휴거' 본문이 나와 따로 올리는 글입니다.

 

 

18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19이는 그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막13:18-19) Pray ye that your flight be not in the winter, for those shall be days of affliction. (Mark 13:18–19)

 

여기서 ‘이 일’(Flight, 비행, 들림, 휴거)은 마지막 때를,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기가 죽는 때를 의미합니다. ‘겨울’(Winter)은 사랑이 결핍된 삶을, ‘환난의 날’(the day of affliction)은 저세상 삶의 끔찍한 상태를 말합니다. Flight” means the last time, and also that of every man when he dies. “Winter” is a life destitute of love; the “day of affliction” is its miserable state in the other life.

 

※ 휴거는 기독교인들, 특히 개신교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겉 글자의 뜻 그대로 이해를 했기 때문인데요, 같은 본문의 마태복음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24:31)

 

그런데 AC.4060번 글을 통해 그 속뜻을 보면, 이 말씀은 새 교회의 일어남을 의미합니다. ‘택하신 자들’은 사랑의 선, 신앙의 선 안에 있는 사람들을, ‘사방에서’는 선과 진리의 모든 상태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는 교회의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들을 의미합니다.

 

즉 휴거란, 종말의 때임에도 불구, 여전히 사랑과 신앙의 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일으켜 주님의 새 교회 세우시는 걸 의미하지, 우리가 아는 것처럼 갑자기 사람들이 공중으로 들림 받고 하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면, 태고교회 종말의 때에, 그런 암흑과도 같은 상황에서도 노아라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주님 신앙을 이어가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즉, 그들을 리메인스처럼 보관하셨다가 나중에 쓰신 것입니다.

 

참고로, 창세기 아브라함 이전까지는 그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어느 한 개인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그 이름으로 일컬었던 그 시대 신앙이나 교리, 혹은 교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위 '노아'는 우리가 아는 노아라는 한 개인이 아닌, 그 시대 저런 순결한 신앙을 고집했던 극소수 교회를 가리켜 '노아'라 했던 것입니다.

Posted by bygracetistory
,

61년생 대한민국 남자 기대수명이 21.8세... (2023/12/5)

 

완전생명표_성_연령별__20231206101440.xlsx
0.02MB

 

 

58년생 여자는 23.7세입니다. 구글링을 하니 나오는, 여성정책연구원 통계DB 완전생명표에 나오는 수치입니다. 참고로, 39년생 여자는 7.7세, 46년생 여자는 12.5세, 43년생 남자는 7.9세 등이 그 남은 기대수명입니다. 저는 61년생인데... 그러면, 이 통계대로라면, 제게 남은 시간은 22년이 채 안 되는군요...

 

꼭 이걸 신봉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러나 유의미한 무슨 지표는 되지 싶습니다. 가령, 앞으로는 절대 시간을 허투루 쓰면 안 되겠다. 앞으로는 오직 천국 입국 조건, 즉 주님의 신성에만 올인해야겠다 결심하는 등 말이지요.

 

저의 경우, 스베덴보리의 저술들 번역하는 일만 하기에도 너무 빠듯할 것 같은데요, 여러 저술 중 백미인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1749년 시작, 총 8년에 걸쳐 저술된, 창세기, 출애굽기 속뜻 라틴 주석, 총 10,837개의 글)의 경우, 하루 다섯 개씩만 잡아도 6년!

 

이 외에도 ‘계시록 해설’(Apocalypse Explained, 1232),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 581), ‘결혼애’(Conjugial Love, 696), ‘하나님의 섭리’(Divine Providence, 435),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Divine Love and Wisdom, 299), 그리고 ‘참된 기독교’(True Christian Religion, 851) 등 꼭 번역을 남기고픈 주요 저작들만 추려도 4,094개의 글이나 되는데다가...

 

스베덴보리의 책들은 그 내용이 내적(內的, internal)이요, 영적이기 때문에, 읽어보시면들 아시겠지만, 뇌가 마비될 정도로 그 내용이 깊고 높아 어렵습니다. 하여, 1차 결과물들인 번역들과 일반 독자들을 이어주는, 무슨 가교역할을 할, 좀 대중적 풀이들이 필요한데요, 사실 이 2차 결과물들이 더 요긴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이기 때문이지요!

 

특별히 그의 모든 저작 중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이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의 경우, 그 엄청난 분량에도 불구, 이미 두 종류의 한글번역들이 나와 있는데요, 정말 고생고생하셔서들 번역하셨을 줄 믿기에 이 자리를 빌어 존경과 감사의 인사말씀 올립니다만... 그러나 저의 역량 때문인지 이 기존 번역들이 제게는 좀 맞지가 않더군요... 그래서 오랜 시간 고민하다가 그냥 제가 직접 번역하자 마음 먹게 된 것입니다.

 

번역 자체도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번역자 본인이 영계에 대한 나름의 이해와 그 내면이 열려야 하기 때문인데, 그래서 영어나 라틴을 좀 한다고 바로 번역할 수 있는 게 절대 아니고, 스베덴보리를 한 4, 5년 해야 겨우 제대로 된, 걸음마 수준의 번역이라도 할 수 있지요. 이 부분에서는 전문 번역가라도 예외가 없습니다. 번역의 전문성은 있지만 이 책에 합당한 내면이 열리지 않았을 경우, 그런 분의 번역은 도저히 감출 수 없는 어떤 엉뚱함, 살짝 영혼 없는 번역이 나타나거든요... 저 역시 이 문제 때문에 창세기 앞 부분만 일곱 번째 번역 중인데요, 이제는 더이상 유턴할 시간이 없어 이런 '처음부터 다시!'를 그만하고 그냥 쭈욱 가야만 할 것 같습니다. 지난 5년, 이런 되풀이를 반복한 것은 하다 보니 너무 바보같은 번역, 너무 어처구니 없는 실수, 마치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한 번역을 한 게 하고 나면 또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만 62세를 조금 넘었습니다. 제가 언제까지 이렇게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키보드를 칠 수 있을까요? 저는 한쪽 눈이 안 보이는, 그리고 다른 눈은 사분의 일이 안 보이는 경험을 한 2년 했습니다. 지금은 주님의 은혜로 많이 회복, 번역하는 데 큰 지장은 없습니다. 운전도 별 무리 없고요. 그러나 늘 긴장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 눈을 필히 영양가 있게 써야만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저도 모르게 유튜브 보는 일에 넋 놓고 있을 때가 많아 참 안타깝습니다...

 

스베덴보리는 1688년에 태어나 1772년에 떠났습니다. 저도 저 위 기대수명만큼만 더 머물다가 간다면, 얼추 스베덴보리처럼 가게 되는데요... 그는 떠날 때, 자기가 떠나는 날을 알고 있었고, 저 위 마지막 저작, ‘참된 기독교’를 1771년에 끝마치고, 이듬해 어느 주일 오후, 아주 포근하고 향기롭게 눈을 감았습니다. 깔끔하게 떠났지요. 저 역시 떠나는 날까지 일하다가 깔끔하게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자식들을 비롯, 주변 사람들 폐 끼치지 않고 갈 수 있으니까요... 저대로라면, 저희 사모는 제가 먼저 가고 한 이 년 후, 따라오겠네요. ㅎㅎㅎ

 

자식들은 이런 얘기하면 질색들을 하겠지만... 그러나 나름 또 유익도 있겠지요. 저는 어머님은 고3 때인 1980년 9월에, 아버님은 대졸 때인 1988년 2월에 제 곁을 떠나셨는데요, 만일 그 시절에 저런 통계가 존재했다면, 그래서 대략 부모님이 앞으로 얼마를 더 사시겠다 그 기대수명을 알고 있었더라면, 좀 더 다른 시간들을 보냈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가령, 아버님의 경우, 옛날엔 화장실이 밖에 있었고, 그래서 특히 추운 겨울엔 방마다 요강이 있어 그 방안 요강으로들 해결했지요. 저는 그 시절, 중1에서 고1 때였는데, 제 기억에 아침에 요강 비우는 건 늘 칠순을 바라보시는 아버님이셨습니다. 저는 더럽다고 거의 손도 대지 않았거든요... 저는 지금은 이런 거 하나까지 다 후회가 됩니다. 그 시절, 불과 2년 후에 어머님이 그렇게 갑자기 떠나실 줄은, 그리고 아버님이 8년 후, 그렇게 또 어머니 뒤를 따르실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이제는 주신 소명 마치는, 이 쓰임새의 일에만, 그리고 그와 더불어 더더욱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삶에만 올인해야겠습니다. 아직도 이 나라, 특히 내년 총선 걱정이 크지만, 균형을 잡아야겠다, 이제 저 나라로 이민 갈 준비도 착실히 하면서... 하는 생각을 오후 잠시 쉬면서 이렇게 해봅니다.

 

Posted by bygracetistory
,

‘...제가 처음 스베덴보리를 알게 된 것은 젊은 시절 직장에 다닐 때였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의욕이 많이 떨어져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가족 중에 한 분이 ‘천국과 지옥’ 책을 읽어보라고 권해서 읽게 됐는데, 새 교회의 진리가 매우 합리적인 진리임을 알았습니다...’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님의 설교 중에서)
 
여기 이런 경우, 즉 이 ‘천국과 지옥’ 책을 읽고, ‘새 교회의 진리가 매우 합리적인 진리임을 알았습니다’ 하는 경우는, 적어도 제 경험에 의하면 매우 희귀한 경우입니다.
 
그나마 읽어보겠다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있어도 천 명 중 한 명꼴일까요? 거의 99.9%가 읽어도 도무지 무슨 뜻인지를 모르겠다거나, 읽으면서 자기가 아는 교리와 달라 속에서 불이 난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괜히 속에서 화가 난다거나 하기 때문입니다. 참 이상하지요? 천국 이야기를 하는데 왜 화가 날까요? 주님 식사 준비를 하면서 동생 마리아 때문에 힘들어 하던 마르다가 생각납니다. 하나 더 있다면, 이 책을 그저 새로운 지식 습득으로만 읽으시는 경우입니다. 위 여러 사례는 참 안타까운 경우들인데요, 만일 돌이키지 않으실 경우, 이런 분들의 사후, 어떤 운명이 이 분들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저는 이 책을 읽어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 지난 일지를 보니, 5년 전인 2018년 10월에 저는 이 책을 처음 접했습니다. 저는 당시만 해도 ‘스베덴보리’라는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고, 충주봉쇄수도원 수도사 공부를 하면서 특히 성 프란체스코, 성 분도 요셉 라브르,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 등 수많은 수도사들과, 이영환 목사의 40일 금식 훈련, 서사라 목사의 천국과 지옥 간증 및 시흥영성수련원 공용복 선생의 핵심진리, 정원 목사의 저서들 등에 몰두하던 때였지요. 즉 천국과 지옥에 관한 수많은 견해와 체험, 간증 등에 둘러싸여 있던 상황이었는데요, 그래서 새로운 책을 접하면서 이건 또  무슨 새로운 견해의 등장인가 싶었지요.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저는 난생처음 접하는 내용에, 처음엔 당혹해 하며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아, 맞다.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뭔가 뿌옇던 시야가 바람이 불더니 갑자기 확 맑아지는 그런 느낌, 백두산 천지가 구름과 안개로 안 보이다가 바람에 걷히더니 갑자기 확 드러날 때의 그 숨 막힐 듯한 위용과 장관처럼 말이지요!
 
저는 특히 다음 세 가지 점에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첫째, 이 책을 비롯, 특히 스베덴보리의 수년간의 역작인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창세기, 출애굽기 속뜻 주석)를 통해서 천국을 비롯, 그동안 석연찮던 거의 모든 신학적 주제들과 영적 이슈들이 거의 다 설명된다는 것이었는데요, 적어도 당시 제 수준과 역량에서는 말이지요,설명이 된다’는 게 제게는 중요했습니다. 전자공학을 전공하기 전, 특별히 물리학 등 순수 과학에 끌렸던 제게 이런 접근은 의미가 있었는데, 예를 들어, 과거 천동설이 지동설로 갈아타던 과정처럼 기존 이론으로는 설명이 안 되던 어떤 현상이나 증거를 새로운 이론으로는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비록 당시엔 당혹스럽고 힘들더라도 후자를 새로운 정설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학문적으로도 옳다 저는 여기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설명하실 수 없는 게 있다는 것이 저는 평소 좀  납득이 잘 안 되었었습니다.
 
둘째, 스베덴보리는 이 모든 기록을 통해 오직 주님만 높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입장과 견해가 사사로운 것이었다면, 분명 어딘가에 그 흔적이 교묘히 숨어있을 텐데, 추호도, 그리고 지난 5년간 저는 이 책 말고도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 번역을 해오고 있는데요, 그 10,837개나 되는 글 어디에서도 스베덴보리는 그 흔한 이단 사설들에서 볼 수 있는 더러운 사사로움 없이 오직 주님만 높이며, 또 주님이 허락하신 것만 밝히고 있는 걸 보면서,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새로운 계시이며, 참으로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저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흔히들 인터넷 검색을 통한 다른 사람들의 글만 읽고는 스베덴보리는 이단이래 하면서 물러나시는데요, 그보다는 본인이 직접 스베덴보리를 읽고 판단하시기를 권합니다. 본인이 참으로 반듯하고 정직하다면 분명 그 영이 꿈틀하며 어떤 유의미한 반응을 할 것입니다. 주님의 빛, 천국 빛에 건강하게 반응하는 것이지요.
 
끝으로, 저는 스베덴보리를 통해 밝히신 이 새로운 계시를 통해 참으로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더 나아가 어떤 신(神, The Divine)이신지를 점점 또렷이 알아가고 있으며, 그래서 참된 평화 가운데 거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참으로 천국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과 천국에 주목할수록,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와 함께, 참으로 '말씀'(The Word)이란 무엇이며, 구원이란 무엇인가?  타종교 등 교회 밖의 사람들은? 타교단, 교리가 다른 사람들은? 등, 사람의 사후 전개될 양상에 대한 지식이 생기자 그동안 잘 몰라서 붙들고 추구했던 것들로부터 물러나 보다 더 자유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이 고백은 다른 말로 하면, 어느 순간부터 저는 천국 관점, 곧 천사들의 관점에서 지상의 일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후 바울서신에 뿌리를 둔 현 기독교, 그리고 개신교의 많은 근본적인 오류에서 물러나되 마치 지상에서 발사된 로켓이 죽을힘을 다해 중력을 거슬러 올라 궤도 위에 안착하듯 그렇게 물러날 수 있었고, 지금은 남은 생애를 오직 스베덴보리의 모든 저작들(Writings)을 번역, 전파하는 일에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 아래는 혹시 도움되실까 제가 읽었던 번역인 김은경 역을 공유합니다. 이 말고도 여러 번역이 있으니 참고하시고요, 그리고 가능하면 영역본으로도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라틴 원본으로 읽으실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요. 저는 라틴을 몰라 못 읽고 있지만 말입니다. 제가 읽고 있는 영역본도 아래 공유합니다.
 
http://bit.ly/3t7Zl6Y

 

천국과 지옥

천국과 지옥, 그 중간의 영인들의 세계의 구조, 현상, 그곳 사람들의 상태와 생활을 보여준다. 사람이 사후 겪게되는 세계를 스베덴보리의 천사와의 대화, 관찰과 기록을 통해 알게되며 영의 실

spiritual-world.com

 

heaven_and_hell, 581.pdf
1.77MB

 

Posted by bygracetistory
,

‘10.26 사태, 올해로 44주기(1979년)를 맞이하며’ (2023/10/27)

 

44년 전인 지난 1979년 10월 27일 오늘, 지금의 대전 전민동 사시는 형님(일오, 53생)과 수원 한일합섬 옆 송죽동에서 자취를 하고 있던, 당시 수원 유신고 2학년이었던 나는 아침 기상 전, 이른 아침 이 작은 동네에 웬 갑자기 난데없는 호외 소리에, 형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의 간밤 갑작스런 서거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아니, 육영수 여사, 8.15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문세광 총탄에 역시 갑자기 돌아가신 지가 이제 겨우 5년 전인데, 왜 또? 하는 어리둥절과 함께 그 어린 고등학생 마음에도 나라의 앞날이 어찌 되는가 불안하고 어지러웠다. 그때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는 나라의 큰 국장으로 청와대를 출발, 동작동 국립현충원까지 이어지는 큰 도로변을 가득 채운 국민은 모두 크게 울었고, 그때 영상을 보면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지금도 울게 된다...

 

이후 일어난 군부 쿠데타와 이듬해 광주 5.18 사태, 그리고 그해 가을, 어머니의 교통사고로 인한 갑작스런 사별, 그리고 아주대 전자공학 입학, 남성합창단 Glee의 추억, 서울침례교회 대학부에서 엄마를 만나 교제, 22사 군 입대, 전역 후 복학하면서 학교 앞 아파트에서 네비게이토식 홈 생활 시작, 계속되는 대학가 데모로 연일 최루탄으로 자욱했던 시절, 아버님 별세, 삼성 입사, 결혼(1989), 이듬해 우석, 3년 후 준석 ^^ 등...

 

참 예사롭지 않았던 이 10월 27일의 아침, 당시를 생각하니 무슨 기억의 실타래처럼 좌악 풀려나오는구나. 어찌 보면 참 격동의 세월이었다 싶다.

 

부디 너희 세대는 이런 비극 없이 평화롭고 복된 시간들 보낼 수 있기를!

Posted by bygracetistory
,

'선을 실천하는 사람과 결합하시는 주님' (2022/10/24)

 

※ 작년 오늘 있었던 일이 생각나 공유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선을 행할 때 우리와 결합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 모두, 이웃들을 선대하며, 사랑으로 공손, 겸손히 선을 행해야 하겠습니다.

 

천국에서 주님을 사랑함이란 주님을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주님의 신성, 곧 주님의 선과 진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웃을 사랑함이란 이웃 안에 깃든 주님의 신성을 사랑하는 것이며, 더 확장하면, 지으신 모든 피조물에 깃든 주님의 신성을 예의 바르게 대하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은 모든 것 안에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

 

오후 동네 한 바퀴 산책 직전, 영감(靈感) 있어 그 자리에서 바로 윗글을 어느 카톡 방에서 나눈 후, 산책 마치고 우리 아파트 라인 현관으로 들어오는데...

 

웬 살짝 허름한 잠바 차림의 다소 작은 키, 오동통한 마스크 차림 아가씨가 저 앞에서 급히 제게 다가오며 묻습니다.

 

“여기가 택배인가요?”

 

말도 좀 어눌한데다 질문 자체가 좀 이상하여 그 연유를 살피니 자기는 네팔에서 왔는데 지금 서울로 피아노를 보내야 해서 택배 보내는 데를 찾아왔다는군요!

 

연유마저 참 뚱딴지같아 할 수 없이 좀 더 자세히 보니... 보낸다는 피아노는 다름 아닌 길쭉하니 얇은 키보드였고, 그걸 박스 포장, 택배로 보낼 생각이었는데, 택시 기사가 뭘 잘못 알고 우리 아파트 바로 우리 동에 내려 주고 간 모양입니다. 아이고...

 

혹시 마침 아파트 마당에 와있는 택배 차량이 있나 보니 한 대도 없고... 그렇다고 아가씨가 제시하는 ‘로젠택배 전민 지점’이라는 데로 가시라 할 수도 없고... 근처 우체국 택배 관련해서는 송강 시장 곁 간이우편취급국이 유일한데, 아가씨가 이 키보드를 들고 거기까지 걸어가기엔...

 

나는 어떤 예정에 없던 돌발상황 같은 것에 참 약한 사람이라 살짝 좀 망설여지는 순간, 아까 올린 윗글이 생각나면서 ‘아, 혹시 어쩌면 지금 주님이 이 네팔 아가씨 모습으로 내 앞에 계심인지도 모르겠다...’ 하는 생각에!

 

“아가씨, 여기 잠깐 있어요. 내, 얼른 가서 지하 주차장 차 꺼내 올 테니까... 내가 데려다 줄께요. 내가 지금 차 키가 없어 먼저 키 가지러 가야 해 ^^”

 

걸어가기엔 한참이지만 차로는 금방이어서 금방 도착, 주정차 금지 구역이라 양쪽 깜빡이 켜고 얼른 내려 주고 나는 출발해야 하는데, 이 아가씨...

 

잠깐만 기다리실 수 있으셔요? 하는 눈치가 뭔가 고마움의 선물을 사러 가려는... 그래서 한사코 아이고, 나는 괜찮아, 아가씨, 돈 아껴야지... 하는데도 아니라고 하면서 키보드는 둔 채 얼른 내려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한참 만에 나타나서는 페레로 로체 초콜렛을 선물하며 하는 말,

 

“아저씨, 정말 고맙습니다. 아저씨가 마치 아버지 같으셔서고요, 마침 오늘이 저희 네팔 명절이에요, 거기다 이틀 후 저는 캐나다에 가요. 겸사겸사 고맙고 감사해서 드리니 받아주세요.” 하는 취지의 말을...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래요, 아가씨, 잘 먹을께요. 그리고 캐나다 잘 가고...”

 

“네, 감사합니다.”

 

“안녕”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 무슨 일인가... 어안이 벙벙...

 

‘아, 이웃을 사랑함이 이런 거구나! 저 아가씨 안에 계신 주님을 정성을 다해 모신다는 게 이런 거구나...’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을 아주 생생하게 경험한, 아주 따끈따끈한 일화였습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Posted by bygracetistory
,

모친 별세 소식에 불현듯 지난날 유신고 시절인 1980년 9월 30일 밤, 당시 기숙사 사감이셨던 ○ 선생님 전화 받고 우리 A동 같은 방 모두 사감실 올라가 내 어머니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 접하고는, 룸메이트들이었던 자네와  , 이 등과 함께 전원, 그 밤, 성 빈센트 병원 장례식장을 찾아간 기억이 마치 비디오를 보듯 생생하게 떠오르더군... 벌써 햇수로 43년 전 일이야 ^^

 

목사로서 몇 가지만 간단히 적음세.

 

① 오늘이 사흘째지? 이제 어머니께서는 영계에서 천사들의 도움을 받아 눈을 뜨시게 되고, 몇 가지 절차를 밟으신 후, 드디어 생전에 먼저 떠나보내셨던 모든 그리운 분들, 곧 부모님 및 여러 혈육들, 친구, 지인들 등, 먼저 가신 모든 분과 재회하시는 너무나 반가운 시간들을 가지실 걸세.

 

② 처음엔 지상의 모습 그대로이셔서 어머니를 기억하던 모든 분들이 알아보시겠지만 서서히 어머니의 내면, 곧 속 사람이 주가 되고, 외면, 곧 겉 사람은 휴면 상태에 들어가면서 어머니는 천국으로 올라가실 준비를 마치게 되지. 이때 어머니의 모습은 우리가 생전에 결코 본 적 없던 놀랍도록 아름다운 천사의 모습이라네. 어머니의 일생이 선한 삶이셨다면 말일세.

 

③ 우리의 육체는 사실 우리의 영이 잠시 이 지상 생활을 하기 위해 빌려 입었던 거라, 이렇게 말하면 좀 불경스러울까?, 무슨 특별한 의미는 없어. 죽음이란 다음 세계인 영계로 이사 가는 거니까 말일세. 우리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에 굳이 지상에 묻어둔 육체를 다시 찾을 일은 없어. 육체의 다시 살아남, 곧 우리가 부활이라 믿고 있는 그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 곧 우리 주님의 부활로 족하며,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하네. 우리의 부활은 이렇게 지상에서 잠들었다가 영계에서 깨어나는 것을 말하지.

 

④ 그럼에도 우리가 이렇게 슬퍼하고, 보내드리는 예를 다하는 이유는 그것이 옳기 때문이며, 그것이 그동안 부모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머무르시며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에 대한 감사와 애정의 표현이기 때문이라네. 거듭 부모는 사실은 부모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늘 계셨던 주님이시며, 그래서 부모에 대한 태도는 곧 주님에 대한 태도요, 그래서 주님은 우리더러 십계명에서조차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하신 것이네.

 

거듭 모친을 떠나보내는 자네와 모든 유족을 주님이 크게 위로하시며, 또 이후 모든 일정에 크게 은혜 베푸시기를 기도하네.

 

어머니를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였을 참 진실한 친구 에게 주께서 천 대까지 은혜 베푸시기를 간구하오며...

 

변일국 목사

Posted by bygracetistory
,

‘천국을 아는 데 도움 되는 사전 지식들’ (2023/10/15)

 

천국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글을 하나 소개합니다. 스베덴보리 저, 김은경 역, ‘천국과 지옥’ 44장 ‘중간 영계란 무엇인가(What the World of Spirits Is)에 나오는 글이며, 이어지는 글들은 이 글을 이해하기 위한 도움말들입니다.

 

422. ...사람 안에 있는 천국(The state of heaven in man)은 바로 그 사람 안의 선과 진리가 하나된 상태(the conjunction of good and truth)다. 또 사람 안의 지옥은 그 사람 안의 악과 거짓이 하나된 상태다. 영인(靈人, a man-spirit) 안에서 선이 진리와 하나되면 그는 천국에 이른다. 이미 말했듯이 그 하나됨이 사람 안의 천국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람 안에서 악이 거짓과 하나되면 그는 지옥에 이른다. 그 하나됨이 사람 안의 지옥이기 때문이다. 이 하나됨의 과정은 중간 영계(the world of spirits)에서 일어난다. 사람은 그때 중간 상태(an intermediate state)에 있기 때문이다...

 

※ ‘영인’이란 사후 영이 되었지만, 아직 천국 상태도, 지옥 상태도 아닌 상태의 영을 말합니다.

 

※ 천국이든 지옥이든 사람이 100% 선하거나 악한 상태가 되지 않으면 갈 수 없습니다. 천국은 100% 선한 상태여야만 갈 수 있는 나라, 지옥은 100% 악한 상태여야만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100% 상태를 윗글에서는 ‘하나됨’이라고 표현했네요.

 

※ 그래서 모든 사람은 사후 일단은 이 중간 영계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곧 중간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아직 천국도, 그리고 지옥도 아닌 상태이기 때문이며, 모든 사람은 아주아주 희귀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선과 악이 조금씩은 섞인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아주아주 희귀한 이 몇몇의 사람은 살아생전에 이미 이 100% 상태가 완료된 사람들로서, 이들은 중간 영계에서 깨어나는 즉시 천국으로 올라가거나 지옥으로 뛰어듦으로서 괜히 이 중간 영계에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 천국과 지옥, 그리고 이 중간 영계를 합쳐 ‘영계(靈界)라 하는데. 이 영계는 지상 자연계처럼 무슨 시공간(視空間)의 나라가 아니라 상태와 이 상태 변화의 나라입니다.

 

※ 사람의 일생은 사실은 천국을 가기 위한 준비기간이며, 이것을 다른 말로는 ‘거듭남을 위한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일생은 이 거듭남을 위한 과정을 통해서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과정입니다.

 

※ ‘역량’이라 표현한 이유는 천국은 준비된 만큼만 누릴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업무역량도 없으면서 무슨 낙하산으로 초우량기업에 들어간들 버틸 수 없어 얼마 못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 윗글에서 계속 선과 진리, 선과 진리 하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이 ‘(good)과 ‘진리(truth)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천국이 이 ‘’과 ‘진리’, 곧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으로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주님의 사랑이라는 천국의 해로부터 선이라는 열과 진리라는 빛이 뿜어져 나와 온 천국에 충만한 그런 나라입니다. 거듭남의 과정이란 모든 악과 거짓에서 물러나 이 선과 진리로 준비되는 과정입니다.

 

※ 진리는 선을 담는 그릇입니다. 다만 세상, 세속 진리와 주님의 진리가 다른 점은, 주님의 진리에는 주님의 선을 행할 능력이 있지만, 세상 진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 세속적 진리에 정통한 사람들이 그러나 정작 주님을 위한 선한 삶을 살지는 못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사람은 ‘의지(will)와 ‘이해(understanding)로 되어 있으며, 이들은 각각 ‘’과 ‘진리’로 연결됩니다. 천국에 속한 사람은 선한 의지로 올바른 생각을 하지만, 지옥에 속한 사람은 악한 의지로 그릇된 생각을 합니다. 사람의 의지는 ‘행위’로, 사람의 이해, 생각은 ‘’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그의 하는 행위와 하는 말을 보면, 그가 천국과 지옥 중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Posted by bygracetistory
,

※ 친구가 아래 본문과 글만 달랑 보내어 그에 대한 답 또한 달랑 보내봤습니다 ㅎㅎ

 

1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바울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행‭15:1‭-‬2‬) Some people came from Judea and started teaching the Lord's followers that they could not be saved, unless they were circumcised as Moses had taught. This caused trouble, and Paul and Barnabas argued with them about this teaching. So it was decided to send Paul and Barnabas and a few others to Jerusalem to discuss this problem with the apostles and the church leaders. (Acts 15:1-2)

유대인의 전통인 할례 문제가 대두됩니다. 원래 할례는 구원받은 자의 표징이지 구원의 절대 조건이 아닙지요.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브라함이 행위로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아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습니다. 갑론을박이 커지자 문제의 정리를 위한 최초의 예루살렘 공회가 개최됩니다.

 

 

답변

 

구원이란 무슨 라이센스를 취득하는 그런 게 아니고, 내가 과연 그 나라에서 지낼 수 있는 성품, 역량이 되는가의 문제입니다.

 

주님 말씀하시길,

 

20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17:20-21)

 

하신 것도 그래서인데요, 쉽게 말씀드리면, 세계 최고 글로벌기업에 낙하산으로 들어간들 그곳에서 요구하는 업무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결국 못 견디고 나오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할례는 일종의 증명, 곧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일종의 증표 행위였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여 정말 내게 속한, 내 백성임을 표현하고 싶으면 그 증표로 할례를 행하라는 것이지요. 즉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게 아니라 이미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으로서 자기는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표현하기 위해 할례를 받는, 순서상으로 정반대가 되는 개념이지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신30:6)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이 할례를 얼마나 오해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고요, 그리고 또 개신교를 포함, 전체 기독교 역시 구원에다가 ‘은혜’라는 개념을 섞음으로써 이 할례의 의미를 이상하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은혜’의 참된 의미는 한 인간의 평생, 그가 선과 악, 진리와 거짓 중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동행하시겠다는 것이지, 그가 아직 천국에 머무를 내적 역량이 안 되는데도 그냥 교회 다니고 예수 믿는다 하니, 눈 한번 감아주시며 천국 입국을 허락하시는, 그런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신들, 그가 천국에 머무를 내적 역량, 곧 그의 속 사람이 이미 천국 상태가 아닌 이상, 그는 천국 문턱도 넘지 못하고 바로 뛰쳐나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거듭, ‘할례’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대 교회가 요구했던, 겉 사람에 관련된 증표요, 예식이었음을, 그리고 오늘날에는 주님을 사랑해서 이웃을 사랑하는 체어리티(charity)의 삶으로 이 마음의 ‘할례’를 나타내야 함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정도 답이 되었을까요? ㅎㅎ

Posted by bygracetistory
,

‘저와 상담이나 교제를 원하시는 분들께’ (2023/9/23)

 

※ 처음부터 저와 전화통화하시거나 저를 만나러 오시기 전, 사전에 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시는 것이 여러 모로 유익할 것 같아 이런 글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일종의 러프한 자기소개입니다.

 

저는 소위 모태신앙으로 출발, 장로교 통합에서 성장하다가 고등학교 때 침례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한 후에는 한동안 기업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교회 직원으로 있었고, 그리고 다소 늦은 나이에 신학을 한 후, 어느 교회 부사역자로 있다가 지난 2013년 개척, 목사 안수를 받은 침례교회 목사입니다. 저는 1961년생입니다.

 

오랫동안 침례교 신학에 오리엔티드 되어 있던 저는 그러나 무슨 신학 지식 수준에만 머무르는 게 아닌, 실제 목회현장에서 어떤 영적 체험들을 좀 하게 되면서, '정원 목사'라는 분의 저서들을 통해 영계에 입문(?)하게 되었고, 개척 초기 여러 신학적 비주류(?)들을 잠깐잠깐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그럴려던 게 아니었는데 어떤 것을 좀 살피다 보면 어딘가 저하고는 안 맞아 거기에서 물러나 또 다른 것을 살피고를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그만 결과적으로 잠깐잠깐 살펴본 게 된 것이지요. 그렇다고 무슨 이단, 삼단을 기웃거린 것은 아닙니다 ^^ 단지, 조금만 시야를 넓혀도 금새 신앙의 패러다임이 참 다양함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천국은 주님의 선의 종류에 따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동체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그중 자신에게 맞는 공동체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제가 여러 곳을 두루 살핀 것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016년 8월, 어느 기도원에서 어떤 목사님을 만나 수도원의 세계를 알게 되었는데요, 이후 시작한 수도학교에서 저는 수도학교 3년간 많은 수도사, 성인들 및 수도 영성 관련 책을 접할 수 있었고, 또 현재 수도사의 삶을 사시는 분들을 만나 교제할 수 있었으며, 이 일로 저는 현 개신교 일반 목회 스타일로부터 물러날 수 있었습니다.

 

모든 분들 한 분 한 분이 다 별과 같이 빛나는 분들이시지만, 제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책과 성인들은 '성 분도 요셉 라브르', '성 프란치스코', 그리고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 등이며, 그러다가 2017년 늦가을, '스베덴보리'(1668-1772, 스웨덴)라는 분을 알게 되었고, 6년 차인 지금은 이분의 저작들(Writings)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 대한 글은 아래 제 블로그 해당 글을 참고하시고요,

 

https://bygrace.kr/376

 

에마누엘 스베덴보리(Emanuel Swendenborg, 1688-1772)

다음은 제가 번역하는 책들의 저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입니다. 에마누엘 스베덴보리는 1688년,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출생, 웁살라대학에서 언어학, 수학, 광물학, 천문학, 생리학, 신학을

bygrace.kr

 

제 블로그에 가장 최근에 올린 따끈따끈한 글 또한 공유하오니 한번 읽어보시지요.

 

https://bygrace.kr/1671

 

‘이순신 장군은 구원받았을까? 라는 유튜브를 보고 나서...’ (2023/9/21)

‘이순신 장군은 구원받았을까? 라는 유튜브를 보고나서...’ (2023/9/21) 어젯밤 늦게 아들이 저런 제목의 유튜브를 보내와서 잠결에 한참을 들었고, 그리고 이튿날인 오늘 오전, 몇몇 글을 더 찾

bygrace.kr

 

제 블로그를 통해 스베덴보리를 좀 살피신 후에도 마음이 동하시면, 그때 비로소 제게 연락주시면 좋겠습니다. 경험상 이런 순서가 피차 좋을 듯 싶어서입니다 ^^ 제 이메일 주소는 bygrace.byun@gmail.com 이며, 이메일로 본인의 연락처 및 간략한 자기소개를 주시면, 제가 카톡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비록 교제라 할지라도 저는 주(主, dominion)가 번역의 일이라 그저 이 글을, 저 책을 읽어 보세요 정도의 코치 밖에는 못하지 싶습니다. 제 소명의 일도 있고, 그리고 제 남은 시간이 그다지 많지도 않은 것 같아서이며, 무엇보다도 제 역량(?)이 이제 겨우 첫 단계만 열린 것 같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저는 스베덴보리의 '천국과 지옥'(Heaven and Its Wonders and Hell From Things Heard and Seen)으로 시작했습니다.

heaven_and_hell, 581.pdf
1.77MB

 

아래는 번역본입니다. 라틴어 전공자의 번역입니다. 스베덴보리의 모든 저작은 그 원본이 라틴어입니다.

 

http://bit.ly/3t7Zl6Y

 

천국과 지옥

천국과 지옥, 그 중간의 영인들의 세계의 구조, 현상, 그곳 사람들의 상태와 생활을 보여준다. 사람이 사후 겪게되는 세계를 스베덴보리의 천사와의 대화, 관찰과 기록을 통해 알게되며 영의 실

spiritual-world.com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저 역시 평생을 몸담았던 기존 신학적 입장에서 물러서는 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인공위성 발사 시, 로켓 추진체가 지면을 박차고 출발, 중력을 극복하고자 죽을 힘을 다해 올라가는 것과 비슷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였음을 말씀드립니다. 참으로 주님의 은혜요, 주님과 천국을 사모함에 따른 내면 열어주심과 그 열린 창으로 천국 지혜를 부어주심이십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하오며, 저를 찾으시는 모든 분 역시, 동일한 은혜 안에 드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