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두 가지 타고나는 능력이 있는데, 바로 의지(意志, will), 곧 의도하는 능력과 이해(理解, understanding), 곧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14-17절,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And God said, Let there be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distinguish between the day and the night; and let them be for signs, and for seasons, and for days, and for years.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let them be for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and it was so.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And God made two great luminaries, the greater luminary to rule by day, and the lesser luminary to rule by night; and the stars.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And God set them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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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두 가지 타고나는 능력이 있는데, 바로 의지(意志, will), 곧 의도하는 능력과 이해(理解, understanding), 곧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이해가 의지의 통치를 받을 때, 이 둘은 한마음이 되며, 그것은 곧 하나의 생명(삶)을 이룹니다. 그때 사람은 마음먹고 행하는(wills and does) 것을 또한 생각하고 의도하기(thinks and intends)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해가 의지와 불일치할 때, (말로는 신앙을 가졌다 하면서도 실제로는 신앙과 모순되게 사는 경우처럼) 이때는 한마음이 둘로 나뉘는데요, 하나는 천국을 향하고자 하고, 다른 하나는 지옥을 향하고자 합니다. 의지는 모든 행위에 있어 행위자(doer)이기 때문에, 이 사람은 완전히 지옥으로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만일 주님이 그를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면 말입니다. Man has two faculties: will and understanding. When the understanding is governed by the will they together constitute one mind, and thus one life, for then what the man wills and does he also thinks and intends. But when the understanding is at variance with the will (as with those who say they have faith, and yet live in contradiction to faith), then the one mind is divided into two, one of which desires to exalt itself into heaven, while the other tends toward hell; and since the will is the doer in every act, the whole man would plunge headlong into hell if it were not that the Lord has mercy on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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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신앙은 분리가 허락된 적이 없습니다. 이 둘은 하나를 이루며, 같은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광명체들(luminaries)이 처음 언급될 때, 그들은 하나로 간주 되었으며, 그래서 이르시기를,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으라(Let there be [sit]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하신 것입니다.

 

14-17절,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And God said, Let there be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distinguish between the day and the night; and let them be for signs, and for seasons, and for days, and for years.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let them be for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and it was so.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And God made two great luminaries, the greater luminary to rule by day, and the lesser luminary to rule by night; and the stars.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And God set them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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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신앙은 분리가 허락된 적이 없습니다. 이 둘은 하나를 이루며, 같은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광명체들(luminaries)이 처음 언급될 때, 그들은 하나로 간주 되었으며, 그래서 이르시기를,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으라(Let there be [sit]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하신 것입니다. 이어지는 다음의 정말 놀라운 세부적인 내용들을 이런 배경과 관련지어 설명하는 것이 저에게 허락되었습니다. 천적 천사들은 천적 사랑(the celestial love)에 힘입어, 이들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 사랑 안에 있는데요, 신앙 관련 모든 지식에 있어 이 사랑으로 말미암으며, 설명하기가 정말 쉽지 않은 그런 어떤 생명과 지성의 빛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신앙의 교리들에 관한 지식 가운데 있으면서도 그러나 사랑은 없는 그런 영들의 경우, 그들은 천국 마당의 첫 번째 문턱조차 접근은 고사하고, 도로 달아날 수밖에 없는, 그런 어떤 냉기 어린 삶이나 희미한 빛 가운데 있습니다. 그들 중 더러는 그분의 계명대로 살지 않았으면서도 말하기를, 자기들은 주님을 믿어왔다고 하는데요, 이것을 주님은 마태복음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Love and faith admit of no separation, because they constitute one and the same thing; and therefore when mention is first made of “luminaries” they are regarded as one, and it is said, “Let there be [sit]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Concerning this circumstance it is permitted me to relate the following wonderful particulars. The celestial angels, by virtue of the celestial love in which they are from the Lord, are from that love in all the knowledges of faith, and are in such a life and light of intelligence that scarcely anything of it can be described. But, on the other hand, spirits who are in the knowledge of the doctrinals of faith, without love, are in such a coldness of life and obscurity of light that they cannot even approach the first threshold of the court of the heavens, but flee back again. Some of them, while not living according to his precepts, say that they have believed in the Lord, and it was of such that the Lord said in Matthew: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7:21-22, 끝까지) Not everyone that saith unto me, Lord, Lord, shall enter into the kingdom of the heavens, but he that doeth my will: many will say to me in that day, Lord, Lord, have we not prophesied through thy name. (Matt. 7:21–22, to the end)

 

[2] 그래서 분명한 것은, 사랑 안에 있는 사람들은 또한 신앙 안에 있으며, 그렇게 해서 또한 천국의 생명(삶) 가운데 있지만, 말로는 자기들은 신앙 안에 있다 하면서 그러나 실제 사랑의 생명(삶) 가운데 있지는 않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 없는 신앙생활은 볕(열) 없는 빛과도 같습니다. 겨울철에도 물론 햇빛은 있지만, 그 빛 안에 열이 없어 결국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고 만물이 죽은 듯 무기력해지는 그런 계절처럼 말입니다. 반면, 사랑을 동반한 신앙은 봄철 햇빛과도 같아서, 열매 맺게 하는 햇볕 아래 만물이 자라고 번성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영적, 천적인 것과 관련하여 정확히 일치하는데요, 그래서 말씀에서는 보통 지상에 존재하는 것을 가지고, 영적, 천적인 것을 설명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시대의 끝, 종말을 예언하실 때, 신앙이 없거나 사랑 없는 신앙을 또한 ‘겨울(winter)로 비유하셨습니다. 마가복음입니다. Hence it is evident that those who are in love are also in faith, and thereby in heavenly life, but not those who say they are in faith, and are not in the life of love. The life of faith without love is like the light of the sun without heat, as in the time of winter, when nothing grows, but all things are torpid and dead; whereas faith proceeding from love is like the light of the sun in the time of spring, when all things grow and flourish in consequence of the sun’s fructifying heat. It is precisely similar in regard to spiritual and heavenly things, which are usually represented in the Word by such as exist in the world and on the face of the earth. No faith and faith without love are also compared by the Lord to “winter,” where he foretells the consummation of the age, in Mark:

 

18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19이는 그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막13:18-19) Pray ye that your flight be not in the winter, for those shall be days of affliction. (Mark 13:18–19)

 

여기서 ‘이 일(Flight, 비행, 들림, 휴거)은 마지막 때를,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기가 죽는 때를 의미합니다. ‘겨울(Winter)은 사랑이 결핍된 삶을, ‘환난의 날(day of affliction)은 저세상 삶의 끔찍한 상태를 말합니다. Flight” means the last time, and also that of every man when he dies. “Winter” is a life destitute of love; the “day of affliction” is its miserable state in the other life.

 

※ 휴거는 특히 개신교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겉 글자의 뜻 그대로 이해를 했기 때문인데요, 같은 본문의 마태복음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24:31)

 

AC.4060번 글을 보면, 이 말씀은 새 교회의 일어남을 의미합니다. ‘택하신 자들’은 사랑의 선, 신앙의 선 안에 있는 사람들을, ‘사방에서’는 선과 진리의 모든 상태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는 교회의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들을 의미합니다. 즉 휴거란, 종말의 때임에도 불구, 여전히 사랑과 신앙의 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일으켜 주님의 새 교회 세우시는 걸 의미하지, 우리가 아는 것처럼 갑자기 사람들이 공중으로 들림 받고 하는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태고교회 종말의 때에, 그런 암흑과도 같은 상황에서도 노아라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주님 신앙을 이어가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즉, 그들을 리메인스처럼 보관하셨다가 나중에 쓰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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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사랑이라도 없이는 생명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며, 사랑에서 흘러나오지 않고서는 기쁨이라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사실, 이 사실을 아주 잘 아는 것, 이것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능력이지요. 사랑, 생명, 기쁨이란 이런 것, 곧 이렇게 서로 본질적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14-17절,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And God said, Let there be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distinguish between the day and the night; and let them be for signs, and for seasons, and for days, and for years.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let them be for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and it was so.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And God made two great luminaries, the greater luminary to rule by day, and the lesser luminary to rule by night; and the stars.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And God set them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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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사랑이라도 없이는 생명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며, 사랑에서 흘러나오지 않고서는 기쁨이라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사실, 이 사실을 아주 잘 아는 것, 이것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능력이지요. 사랑, 생명, 기쁨이란 이런 것, 곧 이렇게 서로 본질적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한테서 사랑을, 같은 말이지만 무언가 그가 간절히 원하는 걸 제거한다면, 그 순간 그는 그 즉시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없게 되며, 놀랍게도 무슨 죽은 사람처럼 되고 맙니다. 생명에 대해 지금까지 제가 영계, 특히 천국에서 목격했던 장면들처럼 말입니다. 자기 사랑(the loves of self)과 세상 사랑(the loves of the world) 안에도 생명이나 기쁨하고 뭔가 닮은 게 있습니다만, 그러나 이 둘은 참된 사랑하고는 정반대이기 때문에, 사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미움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기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면 할수록 그는 그에 비례해서 이웃을, 그리고 그 결과 주님을 미워하기 때문이지요. 참고로, 사람이 무엇보다도 주님을 사랑하는 주님 사랑과, 그리고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는 이웃 사랑은 바로 이 참된 사랑에서 시작합니다, 이런 까닭에, 참된 사랑은 주님을 향한 사랑이요, 참된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의 생명이고, 참된 기쁨은 그 생명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참된 사랑은 단 하나만 있을 수 있으며, 참된 생명 역시 그런데요, 이 생명에서 참된 기쁨과 더할 나위 없는 참된 행복이 흘러나오지요. 천국에 있는 천사들에게 속한 것들이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It is in everyone’s power very well to know that no life is possible without some love, and that no joy is possible except that which flows from love. Such however as is the love, such is the life, and such the joy: if you were to remove loves, or what is the same thing, desires—for these are of love—thought would instantly cease, and you would become like a dead person, as has been shown me to the life. The loves of self and of the world have in them some resemblance to life and to joy, but as they are altogether contrary to true love, which consists in a man’s loving the Lord above all things, and his neighbor as himself, it must be evident that they are not loves, but hatreds, for in proportion as anyone loves himself and the world, in the same proportion he hates his neighbor, and thereby the Lord. Wherefore true love is love to the Lord, and true life is the life of love from him, and true joy is the joy of that life. There can be but one true love, and therefore but one true life, whence flow true joys and true felicities, such as are those of the angels in the heav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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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신앙을 처음에는 ‘큰 광명체들(great luminaries)이라고 하시다가, 그다음엔 사랑은 ‘큰 광명체(greater luminary), 신앙은 ‘작은 광명체(lesser luminary)라 하시고, 계속해서 사랑에 관해서는 ‘낮을 주관하라(rule by day), 신앙에 관해서는 ‘밤을 주관하라(rule by night) 하십니다.

 

14-17절,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And God said, Let there be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distinguish between the day and the night; and let them be for signs, and for seasons, and for days, and for years.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let them be for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and it was so.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And God made two great luminaries, the greater luminary to rule by day, and the lesser luminary to rule by night; and the stars.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And God set them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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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신앙을 처음에는 ‘큰 광명체들(great luminaries)이라고 하시다가, 그다음엔 사랑은 ‘큰 광명체(greater luminary), 신앙은 ‘작은 광명체(lesser luminary)라 하시고, 계속해서 사랑에 관해서는 ‘낮을 주관하라(rule by day), 신앙에 관해서는 ‘밤을 주관하라(rule by night) 하십니다. 이런 것들은 감추어진 아르카나(arcana, 단수 arcanum, 秘義)인데, 특히 종말의 때인 이때 이들에 대한 설명이 주님의 신성하신 자비(the Lord’s Divine mercy)로 허락되었습니다. 이들 아르카나가 종말인 이때 특히 더 봉인된 이유는, 지금이 시대의 끝(the consummation of the age), 곧 사랑이라는 게 아주 희귀하고, 그 결과 신앙이라는 것 또한 아주 희귀한 때이기 때문인데, 주님 친히 복음서에서 이미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예언하신 것입니다. Love and faith are first called “great luminaries,” and afterwards love is called a “greater luminary,” and faith a “lesser luminary”; and it is said of love that it shall “rule by day,” and of faith that it shall “rule by night.” As these are arcana which are hidden, especially in this end of days, it is permitted of the Lord’s Divine mercy to explain them. The reason why these arcana are more especially concealed in this end of days is that now is the consummation of the age, when there is scarcely any love, and consequently scarcely any faith, as the Lord himself foretold in the evangelists in these words: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마24:29) The sun shall be darkened, and the moon shall not give her light, and the stars shall fall from heaven, and the powers of the heavens shall be shaken. (Matt. 24:29)

 

여기서 ‘(sun)는 사랑을 의미하는데 어두워지며, ‘(moon)은 신앙을 의미하는데 빛을 내지 않습니다. ‘별들(stars)은 신앙에 관한 지식들인데 하늘에서 떨어지며, 이들이 곧 ‘하늘의 권능들(virtues and powers of the heavens)입니다. By the “sun” is here meant love, which is darkened; by the “moon” faith, which does not give light; and by the “stars,” the knowledges of faith, which fall from heaven, and which are the “virtues and powers of the heavens.

 

[2] 태고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는 사랑 그 자체 말고는 무슨 다른 신앙을 인식하지도 못했습니다. 천적 천사들(天的, The celestial angels) 또한 사랑의 신앙 말고는 신앙이라는 게 뭔지도 몰랐습니다. 천국 전체가 일종의 사랑의 천국인데요, 천국에서는 사랑의 생명 말고 무슨 다른 생명이라는 건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천국의 모든 행복이 시작되는 것이며, 이는 단 한 번도 그 설명이 허락된 적도, 심지어 인류 그 어느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어서 그래서 정말 엄청난 것입니다. 사랑의 영향 아래 있는 사람들은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면서도, 또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 선언하고, 지각하기도 하는데요, 그것은 모든 사랑은,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모든 생명은, 이 생명은 오직 사랑에만 속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 결과 모든 행복은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오며, 자기들한테서는 그 어떤 사랑이나 생명, 행복도 말미암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모든 사랑의 근원이시라는 사실은 또한 기록된 대로, 주님의 변모, 변형(變形, transfiguration) 관련, 큰 광명체, 즉 ‘(sun)로 설명되었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acknowledged no other faith than love itself. The celestial angels also do not know what faith is except that which is of love. The universal heaven is a heaven of love, for there is no other life in the heavens than the life of love. From this is derived all heavenly happiness, which is so great that nothing of it admits of description, nor can ever be conceived by any human idea. Those who are under the influence of love, love the Lord from the heart, but yet know, declare, and perceive, that all love, and consequently all life—which is of love alone—and thus all happiness, come solely from the Lord, and that they have not the least of love, of life, or of happiness, from themselves. That it is the Lord from whom all love comes was also represented by the great luminary or “sun” at his transfiguration, for it is written: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마17:2) His face did shine as the sun, and his raiment was white as the light. (Matt. 17:2)

 

내면 가장 깊은 것들이 얼굴로,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것들은 옷으로 상징되는데요, 그래서 주님의 신성(神性, the Lord’s Divine)이 ‘(sun), 즉 사랑으로, 주님의 인성(人性, his human)은 ‘(light), 즉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로 상징된 것입니다. Inmost things are signified by the face, and the things that proceed from them by the raiment. Thus the Lord’s Divine was signified by the “sun,” or love; and his human by the “light,” or wisdom proceeding from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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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광명체들(great luminaries), 사랑과 신앙을 의미, ‘해, 달, 별들(sun, moon, and stars)이라고도 함

 

14-17절,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And God said, Let there be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distinguish between the day and the night; and let them be for signs, and for seasons, and for days, and for years.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let them be for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and it was so.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And God made two great luminaries, the greater luminary to rule by day, and the lesser luminary to rule by night; and the stars.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And God set them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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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광명체들(great luminaries)은 사랑과 신앙을 의미하며, ‘해, 달, 별들(sun, moon, and stars)이라고도 한다는 사실은 에스겔 같은 선지서를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e “great luminaries” signify love and faith, and are also called “sun, moon, and stars,” is evident from the prophets, as in Ezekiel:

 

7내가 너를 불 끄듯 할 때에 하늘을 가리어 별을 어둡게 하며 해를 구름으로 가리며 달이 빛을 내지 못하게 할 것임이여 8하늘의 모든 밝은 빛을 내가 네 위에서 어둡게 하여 어둠을 네 땅에 베풀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겔32:7-8) When I shall extinguish thee, I will cover the heavens and make the stars thereof black; I will cover the sun with a cloud, and the moon shall not give her light; all the luminaries of the light of heaven will I make black over thee, and I will set darkness upon thy land. (Ezek. 32:7–8)

 

이 구절에 나오는 바로와 애굽 사람들은 말씀에서 그저 감각이요, 지식일 뿐인 원리(the principle of mere sense and of mere knowledge [sensuale et scientificum])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감각과 지식일 뿐인 것들을 통해 사랑과 신앙이 끝나버렸음을 의미합니다. 이사야에서도 그렇습니다. In this passage Pharaoh and the Egyptians are treated of, by whom are meant, in the Word, the principle of mere sense and of mere knowledge [sensuale et scientificum]; and here, that by things of sense and of mere knowledge, love and faith had been extinguished. So in Isaiah:

 

9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 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 10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 (사13:9-10) The day of Jehovah cometh to set the land in desolation, for the stars of heaven and the constellations thereof shall not give their light; the sun is darkened in his going forth, and the moon shall not cause her light to shine. (Isa. 13:9–10)

 

다시, 요엘에서 Again, in Joel:

 

1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2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새벽빛이 산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 10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욜2:1-2, 10) The day of Jehovah cometh, a day of darkness and of thick darkness; the earth trembleth before him, the heavens are in commotion; the sun and the moon are blackened, and the stars withdraw their brightness. (Joel 2:1–2, 10)

 

[2] 다시 이사야에서, 주님의 오심(the advent of the Lord)과 이방인들, 결과적으로는 일종의 새로운 교회이지요, 어두움 가운데서 빛을 받아 거듭나고 있는 모든 사람의 눈이 밝아짐에 관해 말하면서 Again, in Isaiah, speaking of the advent of the Lord and the enlightening of the gentiles, consequently of a new church, and in particular of all who are in darkness, and receive light, and are being regenerated:

 

1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20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 (사60:1-3, 20) Arise, shine, for thy light is come; behold darkness covers the earth, and thick darkness the peoples, and Jehovah shall arise upon thee, and the gentiles shall come to thy light, and kings to the brightness of thy rising; Jehovah shall be to thee a light of eternity, thy sun shall no more go down, neither shall thy moon withdraw itself, for Jehovah shall be to thee a light of eternity. (Isa. 60:1–3, 20)

 

그래서 시편에서 So in David:

 

5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6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7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8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9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136:5-9) Jehovah in intelligence maketh the heavens; he stretcheth out the earth above the waters; he maketh great luminaries, the sun to rule by day, the moon and stars to rule by night. (Ps. 136:5–9)

 

3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4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시148:3-4) Glorify ye Jehovah, sun and moon, glorify him, all ye stars of light, glorify him, ye heavens of heavens, and ye waters that are above the heavens. (Ps. 148:3–4)

 

[3] 이들 모든 구절에서 ‘광명체들(luminaries)은 사랑과 신앙을 의미합니다. 유대교회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끊임없이 등불이 타오르게 하신 이유는 바로 이것, 곧 ‘광명체들’이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을 표상하고 상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교회의 모든 규례가 주님에 관한 표상(表象, representative)이었기 때문인데요, 이 등불(luminary, 광명체)에 대하여 기록된 바로는 In all these passages, “luminaries” signify love and faith. It was because “luminaries” represented and signified love and faith toward the Lord that it was ordained in the Jewish church that a perpetual luminary should be kept burning from evening till morning, for every ordinance in that church was representative of the Lord. Of this luminary it is written:

 

20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21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 (출27:20-21) Command the sons of Israel that they take oil for the luminary, to cause the lamp to ascend continually: in the tabernacle of the congregation without the veil, which is before the testimony, shall Aaron and his sons order it from evening even until morning, before Jehovah. (Exod. 27:20–21)

 

이런 것들이 사랑과 신앙을 상징한다는 것, 곧 주께서 거기에 불을 붙이셔서 먼저 속 사람에게 빛을 비추시고, 그렇게 속 사람을 통해서 이번에는 겉 사람을 비추시는 이런 주님의 신성하신 자비(the Lord’s Divine mercy)에 대해서 앞으로 해당 말씀에서 보시게 됩니다. That these things signify love and faith, which the Lord kindles and causes to give light in the internal man, and through the internal man in the external, will of the Lord’s Divine mercy be shown in its proper place.

 

※ 짐작하셨겠지만, ‘표상(表象, representative)이란 어떤 것을 가지고, 정확히는 지상의 사물을 가지고 주님과 주님께 속한 것을 가리키는, 나타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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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광명체들(great luminaries)의 의미는 먼저 신앙의 본질과, 그리고 새롭게 빚어지고 있는 사람들한테서 볼 수 있는 그 진행 과정을 알기 전까지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신앙의 본질과 생명 그 자체이신 분은 한 분 주님뿐이신데요,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주님 친히 요한복음에서 선언하신 것처럼 생명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14-17절,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And God said, Let there be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distinguish between the day and the night; and let them be for signs, and for seasons, and for days, and for years.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let them be for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and it was so.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And God made two great luminaries, the greater luminary to rule by day, and the lesser luminary to rule by night; and the stars.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And God set them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30

큰 광명체들(great luminaries)의 의미는 먼저 신앙의 본질과, 그리고 새롭게 빚어지고 있는 사람들한테서 볼 수 있는 그 진행 과정을 알기 전까지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신앙의 본질과 생명 그 자체이신 분은 한 분 주님뿐이신데요,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주님 친히 요한복음에서 선언하신 것처럼 생명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What is meant by “great luminaries” cannot be clearly understood unless it is first known what is the essence of faith, and also what is its progress with those who are being created anew. The very essence and life of faith is the Lord alone, for he who does not believe in the Lord cannot have life, as he himself has declared in John: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3:36) He that believeth on the son hath eternal life, but he that believeth not on the son shall not see life, but the wrath of God shall abide upon him. (John 3:36)

 

[2] 새롭게 빚어지고 있는 사람들한테서 볼 수 있는 신앙의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맨 처음, 그들에게는 생명이라는 게 없습니다. 생명은 오직 선과 진리 안에만 있고, 악과 거짓 안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그들은 신앙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는데요, 먼저는 기억 신앙(faith of the memory)입니다. 일종의 지식일 뿐인 신앙(a faith of mere knowledge [fides scientifica])이지요. 다음은 머리 신앙(faith in the understanding)으로, 일종의 지적 신앙(an intellectual faith)입니다. 끝으로 가슴 신앙(faith in the heart)입니다. 사랑 신앙(the faith of love), 구원 신앙(saving faith)이라고도 하지요. 앞 첫 두 종류의 신앙을 3절로 13절에서는 못 움직이는(inanimate) 것으로, 사랑으로 활기찬 신앙을 20절로 25절에서는 움직이는(animate)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사랑과 거기서 나오는 신앙을 여기서 먼저 다루는 것이며, 이르시기를 ‘광명체들(luminaries)이라 하시고, 이때 사랑을 ‘낮을 주관하는 큰 광명체(the greater luminary which rules by day), 이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을 ‘밤을 주관하는 작은 광명체(the lesser luminary which rules by night)라 하십니다. 그리고 이 둘은 하나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단수로 언급됩니다. ‘광명체들이 있으라(Let there be luminaries) be동사의 라틴어 표현을 보면 sit입니다. 복수 표현인 sint가 아니지요. The progression of faith with those who are being created anew is as follows. At first they have no life, for it is only in the good and the true that there is life, and none in the evil and the false; afterwards they receive life from the Lord by faith, first by faith of the memory, which is a faith of mere knowledge [fides scientifica]; next by faith in the understanding, which is an intellectual faith; lastly by faith in the heart, which is the faith of love, or saving faith. The first two kinds of faith are represented from verse 3 to verse 13, by things inanimate, but faith vivified by love is represented from verse 20 to verse 25, by animate things. For this reason love, and faith thence derived, are now here first treated of, and are called “luminaries”; love being “the greater luminary which rules by day”; faith derived from love “the lesser luminary which rules by night”; and as these two luminaries ought to make a one, it is said of them, in the singular number, “Let there be luminaries” [sit luminaria], and not in the plural [sint luminaria].

 

[3] 속 사람의 사랑과 신앙은 육체를 가진 겉 사람에게 있어서는 열과 빛 같은 건데요, 이런 이유로, 전자는 후자로 표현되며, 이것이 광명체들을 일컬어 ‘하늘의 궁창에 있다(set in the expanse of heaven), 즉 속 사람 안에 있다 하는 이유입니다. 큰 광명체는 속 사람의 의지(will)에, 작은 광명체는 속 사람의 이해(understanding)에 말입니다. 그러나 햇빛은 그 빛의 수용체가 있어야만 볼 수 있듯 이들은 의지와 이해 안에서만 나타납니다. 의지를 사랑으로, 그리고 이해를 진리, 즉 신앙으로 영향을 끼치게 하신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자비입니다. Love and faith in the internal man are like heat and light in the external corporeal man, for which reason the former are represented by the latter. It is on this account that luminaries are said to be “set in the expanse of heaven,” or in the internal man; a great luminary in its will, and a lesser one in its understanding; but they appear in the will and the understanding only as does the light of the sun in its recipient objects. It is the Lord’s mercy alone that affects the will with love, and the understanding with truth or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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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9, 창1:11-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11-13절, 11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tender herb, the herb yielding seed, and the fruit tree bearing fruit after its kind, whose seed is in itself, upon the earth; and it was so. 12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the earth brought forth the tender herb, the herb yielding seed after its kind, and the tree bearing fruit, whose seed was in itself,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1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third day.

 

29

(the earth), 즉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천적(天的, celestial)인 씨앗을 받아 뭔가 선하고 참된 열매를 맺을 준비가 되면, 이제 주님은 먼저 무슨 부드러운 것, 곧 ‘(the tender herb)을, 그리고 뭔가 좀 더 유용한, 그 안에 씨를 맺을 수 있는 것, 곧 ‘씨 맺는 채소(the herb yielding seed)를, 그리고 끝으로 열매까지 맺을 수 있는 어떤 선한 것, 곧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the tree bearing fruit, whose seed is in itself)를 각기 종류대로 나게 하십니다. 거듭나는 중인 사람의 처음 상태, 퀄러티(quality)는 다음과 같은데요, 그는 자기가 행하는 선과 말하는 진리가 자기한테서 나오는 줄로 압니다. 모든 선과 모든 진리가 실제로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건데도 말입니다. 누구나 다 이렇게 선과 진리가 자기로 말미암는 줄로 아는 한, 그 사람은 아직 참된 신앙의 생명(생활)(the life of true faith) 가운데 있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그는 나중에는 이런 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이런 게 주님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아직은 믿을 수 없는, 그는 이제 겨우 신앙의 생명(생활)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단계, 상태에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를 여기서는 못 움직이는(inanimate) 걸로,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상태에서는 움직이는(animate) 걸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When the “earth,” or man, has been thus prepared to receive celestial seeds from the Lord, and to produce something of what is good and true, then the Lord first causes some tender thing to spring forth, which is called the “tender herb”; then something more useful, which again bears seed in itself, and is called the “herb yielding seed”; and at length something good which becomes fruitful, and is called the “tree bearing fruit, whose seed is in itself,” each according to its own kind. The man who is being regenerated is at first of such a quality that he supposes the good which he does, and the truth which he speaks, to be from himself, when in reality all good and all truth are from the Lord, so that whosoever supposes them to be from himself has not as yet the life of true faith, which nevertheless he may afterwards receive; for he cannot as yet believe that they are from the Lord, because he is only in a state of preparation for the reception of the life of faith. This state is here represented by things inanimate, and the succeeding one of the life of faith, by animate things.

 

[2] 주님이 복음서 여러 본문에서 마지못해 친히 언급하신 것처럼, 주님은 씨 뿌리는 농부요, ‘(the seed)는 그분의 말씀이고, ‘(the earth)은 사람입니다. (마13:19-24, 37-39; 막4:14-21; 눅8:11-16) The Lord is he who sows, the “seed” is his Word, and the “earth” is man, as he himself has deigned to declare (Matt. 13:19–24, 37–39; Mark 4:14–21; Luke 8:11–16).

 

19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려진 자요 20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23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24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37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마13:19-24, 37-39)

 

같은 취지로, 주님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보태셨습니다. To the same purport he gives this description:

 

26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28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막4:26-28) So is the kingdom of God, as a man when he casteth seed into the earth, and sleepeth and riseth night and day, and the seed groweth and riseth up, he knoweth not how; for the earth bringeth forth fruit of herself, first the blade, then the ear, after that the full corn in the ear. (Mark 4:26–28)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는 일반적으로는 천국 전체(the universal heaven)를, 그보다 덜 일반적으로는 주님의 참된 교회(the true church)를, 그리고 특별하게는 참된 신앙(true faith)의 사람, 즉 신앙생활을 통해 거듭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또한 ‘천국(heaven)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그의 안에 천국이 있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의 나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의 안에 있기 때문인데요, 주님이 친히 이 사실을 가르치셨습니다. 누가복음입니다. By the “kingdom of God,” in the universal sense, is meant the universal heaven; in a sense less universal, the true church of the Lord; and in a particular sense, everyone who is of true faith, or who is regenerate by a life of faith. Wherefore such a person is also called “heaven,” because heaven is in him; and likewise the “kingdom of God,” because the kingdom of God is in him, as the Lord himself teaches in Luke:

 

20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17:20-21) Being demanded of the Pharisees when the kingdom of God should come, he answered them, and said, The kingdom of God cometh not with observation; neither shall they say, Lo here! or, Lo there! for behold,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Luke 17:20–21)

 

이것은 사람의 거듭남 연속 단계 중 세 번째 상태인데요, 이 상태는 뉘우침의 상태, 곧 그늘에서 빛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진행하는 상태와 같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13절에,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third day) 하신 것입니다. This is the third successive stage of the regeneration of man, being his state of repentance, and in like manner proceeding from shade to light, or from evening to morning; wherefore it is said (verse 13),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third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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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8, 창1: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10절,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called the dry [land] earth, and the gathering together of the waters called he seas;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28

(waters)을 가지고는 지식들(knowledges, 체험적 지식 및 학문적 지식, [cognitiones et scientifica])을, 그리고 그 결과, ‘바다(seas)를 가지고는 그런 지식들을 한데 모아놓은 걸 의미하는 것이 말씀에서는 아주 흔한 일입니다. 이사야입니다. It is a very common thing in the Word for “waters” to signify knowledges [cognitiones et scientifica], and consequently for “seas” to signify a collection of knowledges. As in Isaiah: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사11:9) The earth shall be full of the knowledge [scientia] of Jehovah, as the waters cover the sea. (Isa. 11:9)

 

그리고 이사야 다른 데서는 지식들의 결핍(a lack of knowledges [cognitionum et scientificorum])을 다루면서 And in the same prophet, where a lack of knowledges [cognitionum et scientificorum] is treated of:

 

5바닷물이 없어지겠고 강이 잦아서 마르겠고 6강들에서는 악취가 나겠고 애굽의 강물은 줄어들고 마르므로 갈대와 부들이 시들겠으며 (사19:5-6) The waters shall fail from the sea, and the river shall be dried up and become utterly dry, and the streams shall recede. (Isa. 19:5–6)

 

학개에서는, 새로운 교회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In Haggai, speaking of a new church:

 

6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2:6-7) I will shake the heavens and the earth, and the sea and the dry [land]; and I will shake all nations; and the desire of all nations shall come; and I will fill this house with glory. (Hag. 2:6–7)

 

그리고 스가랴에서는 거듭남의 과정 가운데 있는 사람과 관련하여 And concerning man in the process of regeneration, in Zechariah:

 

7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8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슥14:7-8) There shall be one day, it is known to Jehovah; not day, nor night; but it shall come to pass that at evening time it shall be light; and it shall be in that day that living waters shall go out from Jerusalem, part of them toward the eastern sea, and part of them toward the hinder sea. (Zech. 14:7–8)

 

시편 또한 지금은 황폐한 상태이나 앞으로는 거듭나 주님을 경배하게 될 사람을 묘사하면서 David also, describing a vastated man who is to be regenerated and who will worship the Lord:

 

33여호와는 궁핍한 자의 소리를 들으시며 자기로 말미암아 갇힌 자를 멸시하지 아니하시나니 34천지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바다와 그 중의 모든 생물도 그리할지로다 (시69:33-34) Jehovah despiseth not his prisoners; let the heavens and the earth praise him, the seas and everything that creepeth therein. (Ps. 69:33–34)

 

스가랴를 보면 ‘(the earth)은 일종의 리시피언트(recipient, 그릇, 用器)로 나옵니다. That the “earth” signifies a recipient, appears from Zechariah: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이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 (슥12:1) Jehovah stretcheth forth the heavens, and layeth the foundation of the earth, and formeth the spirit of man in the midst of him. (Zech.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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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7, 창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9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said, Let the waters under the heaven be gathered together in one place, and let the dry [land] appear; and it was so.

 

27

두 가지, 곧 속 사람과 겉 사람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진리와 선이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으로 흘러들어온 다음 이번엔 속 사람으로부터, 즉 속 사람을 통해서 겉 사람으로 흐른다는 사실, 비록 겉보기에는 그리 보이지 않을지라도 말입니다. 이런 사실들이 알려지면, 저들 진리와 선, 곧 거듭나고 있는 사람 안에 있는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이 그의 기억 안에 쌓이며, 그 지식들(knowledges [scientifica])사이로 분류됩니다. 겉 사람의 기억 속으로 밀어 넣어지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그게 자연적이든 영적이든, 아니면 천적이든 기억-지식(memory-knowledge)이라는 것으로 그곳에 머물며, 그 후 주님에 의해 나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들 지식이 ‘한 곳으로 모인 물(the waters gathered together into one place)이며, 부르기를 ‘바다(seas)라고 합니다. 그러나 겉 사람 자체는 ‘(the dry [land])이라 하며, 지금은 이어지는 10절에서처럼 ‘(earth)이라고 합니다. When it is known that there is both an internal and an external man, and that truths and goods flow in from, or through, the internal man to the external, from the Lord, although it does not so appear, then those truths and goods, or the knowledges of the true and the good in the regenerating man, are stored up in his memory, and are classed among its knowledges [scientifica]; for whatsoever is insinuated into the memory of the external man, whether it be natural, or spiritual, or celestial, abides there as memory-knowledge, and is brought forth thence by the Lord. These knowledges are the “waters gathered together into one place,” and are called “seas,” but the external man himself is called the “dry [land],” and presently “earth,” as in what foll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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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6, 창1: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8절,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And God called the expanse heaven.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second day.

 

26

저녁(evening), ‘아침(morning)및 ‘(day)의 의미는 위 5절에 있습니다. The meaning of “evening,” of “morning,” and of “day,” was shown above at verse 5.

 

※ 창1 개요 중 ‘둘째 날’, 곧 ‘두 번째 상태’에 대한 글인 8번 글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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