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의 속뜻, 심지어 그렇게 분리되었을지라도 신앙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신성모독이 될 것이다!

 

15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unto him, Therefore whosoever slayeth Cain, vengeance shall be taken on him sevenfold. And Jehovah set a mark upon Cain, lest any finding him should smite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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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는 말씀의 의미가 심지어 그렇게 분리되었을지라도 신앙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신성모독이 될 것이다 라는 것이 분명한 것은 ‘가인’이 체어리티로부터 분리된 신앙이라는 의미인 것과, ‘’(7, seven, 일곱)이 신성하다(sacred) 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숫자 은 잘 알려진 대로 아주 거룩하게 여겨졌습니다. 육일간의 창조에 이은 일곱 번째 날, 그 자체가 곧 천인(天人, the celestial man)이요, 그 안에 평화와 쉼, 그리고 안식이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숫자는 유대 교회의 예전에서 아주 자주 나오며, 이 숫자가 나오는 곳마다 신성함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그 기간이 아주 길든지 짧든지 둘 다 ’(7, seven)로 구별하였으며, 아래 다니엘 본문처럼 메시아의 오심을 가리키는 아주 장구한 시간 간격을 가리켜 이레’(weeks, 일곱 날, 일곱째 날)라 하였습니다. (9:24-25) 라반과 야곱은 칠 년이라는 기간을 칠 일이라 하였습니다. (29:27-28) 같은 이유로 어디서든 이 ’(7)이라는 숫자는 거룩 혹은 신성불가침(inviolable)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시편을 보면  That the words “whosoever slayeth Cain, vengeance shall be taken on him sevenfold” signify that to do violence to faith even when thus separated would be sacrilege,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Cain,” which is faith separated from charity, and from the signification of “seven,” which is what is sacred. The number “seven” was esteemed holy, as is well known, by reason of the six days of creation, and of the seventh, which is the celestial man, in whom is peace, rest, and the sabbath. Hence this number occurs so frequently in the rites of the Jewish church, and is everywhere held sacred, and hence also both greater and less periods of time were distinguished into sevens, and were called “weeks,” such as the great intervals of time to the coming of the messiah; (Dan. 9:24–25) and the time of seven years called a “week” by Laban and Jacob. (Gen. 29:27–28) For the same reason, wherever it occurs, the number seven is accounted holy or inviolable. Thus we read in David: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시119:164) Seven times a day do I praise thee. (Ps. 119:164)

 

이사야에서 In Isaiah: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사30:26) The light of the moon shall be as the light of the sun, and the light of the sun shall be sevenfold, as the light of seven days, (Isa. 30:26)

 

여기 ‘’는 사랑을, ‘’은 사랑으로 말미암은 신앙을 가리키는데, 사랑처럼 될 신앙입니다. 사람의 거듭남의 기간이 일곱 번째 날, 곧 천인이 되기 전, 숫자 ’(6, six)으로 구별되듯, 그가 황폐해지는 기간, 곧 천적인 것이 전혀 남지 않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 또한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의 여러 번 포로 생활과, 마지막 혹은 바벨론 유수(幽囚, captivity), 곧 십 년씩 일곱 번, 혹은 칠십 년간 지속된 기간은 이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땅은 안식년을 가져야 한다 여러 번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에 나오는 느부갓네살 역시 같은 내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where the “sun” denotes love, and the “moon” faith from love, which should be as love. As the periods of man’s regeneration are distinguished into six, before the seventh arrives, that is, the celestial man, so also are the periods of his vastation, up to the time when nothing celestial remains. This was represented by the several captivities of the Jews, and by the last or Babylonish captivity, which lasted seven decades, or seventy years. It is also said several times that the earth should rest on its sabbaths. The same is represented by Nebuchadnezzar, in Daniel:

 

16또 그 마음은 변하여 사람의 마음 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내리라, 23왕이 보신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어 없애라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는 땅에 남겨두고 쇠와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풀 가운데에 두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또 들짐승들과 더불어 제 몫을 얻으며 일곱 때를 지내리라 하였나이다, 32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단4:16, 23, 32) His heart shall be changed from man, and a beast’s heart shall be given unto him, and seven times shall pass over him. (Dan. 4:16, 23, 32)

 

그리고 계시록, 마지막 때의 황폐함에 관하여 And in John, concerning the vastation of the last times:

 

1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6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7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8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계15:1, 6-8) I saw another sign in heaven, great and marvelous, seven angels, having the seven last plagues; (Rev. 15:1, 6–8)

 

그리고 계속해서 and that: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계11:2) The gentiles should tread the holy city under foot forty and two months, or six times seven. (Rev. 11:2)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계5:1) I saw a book written within and on the back, sealed with seven seals. (Rev. 5:1)

 

같은 이유로 징벌의 가혹함과 더함을 모세의 책에서처럼 숫자 ‘’(7)로 표현했습니다. For the same reason the severities and augmentations of punishment were expressed by the number seven; as in Moses:

 

18또 만일 너희가 그렇게까지 되어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일곱 배나 더 징벌하리라, 21너희가 나를 거슬러 내게 청종하지 아니할진대 내가 너희의 죄대로 너희에게 일곱 배나 더 재앙을 내릴 것이라, 24나 곧 나도 너희에게 대항하여 너희 죄로 말미암아 너희를 칠 배나 더 치리라, 28내가 진노로 너희에게 대항하되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칠 배나 더 징벌하리니 (레26:18, 21, 24, 28) If ye will not yet for all this obey me, then I will chastise you sevenfold for your sins. (Lev. 26:18, 21, 24, 28)

 

그리고 시편에서 And in David:

 

주여 우리 이웃이 주를 비방한 그 비방을 그들의 품에 칠 배나 갚으소서 (시79:12) Render unto our neighbors sevenfold into their bosom. (Ps. 79:12)

 

자, 정리하자면, 신앙을 범하는 것, 신앙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일종의 신성모독(sacrilege)이었기 때문에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십니다. 그동안 말씀드린 것처럼 신앙은 예배에 속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Now as it was a sacrilege to do violence to faith—since as has been said it was to be of service—it is said that “whosoever should slay Cain, vengeance should be taken on him sevenfold.”

 

 

24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25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단9:24-25)

 

27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28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창29: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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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에게 주신 표’의 속뜻, 주님이 어떤 특별한 방식으로 신앙을 구별하셨다! 신앙의 보존을 위해서

 

15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unto him, Therefore whosoever slayeth Cain, vengeance shall be taken on him sevenfold. And Jehovah set a mark upon Cain, lest any finding him should smite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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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것을 미리 아셨고, 또 인류가 영원한 사망으로 소멸되지 않도록 하셨기 때문에, 여기 다음과 같이 선언하십니다. ‘아무도 가인을 건드리면 안 된다!’ 이 가인은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신앙을 말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에게 어떤 표를 주셨는데요, 그 표의 의미는 주님이 어떤 특별한 방식으로 신앙을 구별하셨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보존을 위해서지요. 이런 사실들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아케이나이며, 마태복음에서 주님이 결혼과 고자(鼓子, eunuch)에 관하여 하신 말씀 중에 언급되고 있습니다. Now as this was foreseen, and was provided, lest the human race should perish in eternal death, it is here declared that none should do violence to Cain, by whom is signified faith separated from charity; and further that a mark was set upon him, which means that the Lord distinguished faith in a particular manner, in order to secure its preservation. These are arcana hitherto undiscovered, and are referred to by the Lord in what he said respecting marriage, and eunuchs, in Matthew: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마19:12) There are eunuchs who were so born from their mother’s womb; and there are eunuchs who were made eunuchs of men; and there are eunuchs who have made themselves eunuchs for the kingdom of God’s sake; he that is able to receive it let him receive it. (Matt. 19:12)

 

천국의 결혼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고자’라 합니다.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들은 천적 천사들을 닮았고, ‘사람이 만든’ 고자들은 영적 천사들과 비슷하며, ‘스스로 된’ 고자들은 천사 같은 영들과 비슷한데, 체어리티보다는 순종으로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Those in the heavenly marriage are called “eunuchs”; those so “born from the womb,” are such as resemble the celestial angels; those “made of men,” are such as are like the spiritual angels; and those “made so by themselves,” are like angelic spirits, who act not so much from charity as from obedience.

 

※ 태고교회, 즉 아담 이후 인류의 미래가 아벨로 이어져 계속해서 천적 인간, 천인(天人)의 상태로 유지될 수 있었으면 가장 좋았겠지만, 어쨌든 가인이라는 자들의 일어남으로 인해 인류는 아벨 대신 가인의 역사, 체어리티 대신 신앙의 역사, 교리의 역사로 흐르게 되었고, 그래서 주님도 최선 대신 차선을 선택, 그에 따른 구원의 방도를 마련하신 것이며, 이것을 주님은 마태복음에서 고자 이야기로 표현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고자 역시, 천국 결혼의 상태가 가장 좋은 것임은 누구나 다 알지만, 실제 지상의 삶 동안, 즉 육을 입고 있는 동안은 천국 결혼의 상태, 곧 주님과 결혼, 주님과 합일의 상태에 든다는 게 그렇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는 것!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여 세상에서 주님과 결합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금욕이라는 영적 고자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해 주님 수준이 아닌 우리 수준, 곧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하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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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캐릭터 상 예견된 미래, 곧 주님 사랑에서 신앙을 분리한 다음, 그 신앙으로 교리화를 할 것이다... 그래서 준비하신 주님의 대안, 그 신앙으로 결국 체어리티의 삶을 살게 하자!

 

15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unto him, Therefore whosoever slayeth Cain, vengeance shall be taken on him sevenfold. And Jehovah set a mark upon Cain, lest any finding him should smite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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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이 말씀들의 속뜻 설명을 더 깊이 계속하기에 앞서 먼저 이 경우가 어떻게 신앙과 연결되는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태고교회는 사랑의 신앙 말고는 그 어떤 신앙도 인정하지 않는, 신앙이라는 걸 심지어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리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신앙에 속한 모든 걸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으로 지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앞서 지금까지 말씀드린 천적 천사들 또한 그렇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이런 캐릭터로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대신 주님 사랑에서 신앙을 분리하려 할 것이고, 그 다음엔 그 신앙을 가지고 독립적인 무슨 일종의 교리화를 할 것이다 라는 게 예견되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대안이 제공되었는데요, 그것은, 그들 사랑과 신앙은 실제로 분리가 될 것이고, 그렇다면 이런 식, 곧 신앙, 즉 신앙의 지식을 통해 사람들이 주님의 체어리티를 받게 하자는 것이지요. 그래서 먼저 지식이나 들음이 오고, 그다음 그걸 통해 체어리티, 즉 이웃을 향한 사랑 및 자비가 주님으로 말미암아 올 수 있도록 하자는 말입니다. 이때 이 체어리티는 신앙과 분리될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신앙의 원칙이 되게 하자는, 이런 식의 대안이 주어졌습니다. Before we proceed to elucidate 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s before us, it is necessary to know how the case is with faith. The most ancient church was of such a character as to acknowledge no faith except that which is of love, insomuch that they were unwilling even to mention faith, for through love from the Lord they perceived all things that belong to faith. Such also are the celestial angels of whom we have spoken above. But as it was foreseen that the human race could not be of this character, but would separate faith from love to the Lord, and would make of faith a doctrine by itself, it was provided that they should indeed be separated, but in such a way that through faith, that is, through the knowledges of faith, men might receive from the Lord charity, so that knowledge [cognitio] or hearing should come first, and then through knowledge or hearing, charity, that is, love toward the neighbor, and mercy, might be given by the Lord, which charity should not only be inseparable from faith, but should also constitute the principal of faith.

 

※ 모든 걸 다 구비하여 놓으시고, 그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여 그 지혜 안에 머무를 수만 있다면 다 누리게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거절, 자기가 땀흘려 벌거나 책과 씨름하는 등 온몸으로 직접 체험한 것이라야만 참 진리요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라며, 부득불 제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태도는 나름 책임감 있어 보이고, 진정성 있는 삶을 살고자 애쓰는 듯하여 건실한 듯하나... 그럼,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 지혜 안에 머물기를 힘쓰는 사람들은 인생을 날로 먹으려는 사람들일까요? 오히려 더 아름답고 진실, 성실, 세상 속에서 주님 안에 머물고자 속으로 몸부림을 치는 사람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 둘의 차이는 전자는 쉽고 가벼운 삶을 사는 한편, 후자는 어렵고 무거운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전자가 어린아이같이 주님을 따르려는 사람들이라면, 후자는 머리가 커져버려 제 소견에 옳은 대로 자기를 따르려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굳이 아버지 집을 박차고 나가 그 생(生) 고생 통해 겨우 가장 기초적 고백의 자리에 섰던 둘째 아들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아버지를 사랑하여 아버지 집에 머무르면 되었을 것을 말입니다.

 

태고교회 시절 그들에게 있었던 퍼셉션 대신 이제 그 자리를 양심이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양심은 신앙을 통해, 체어리티와 결합된 신앙을 통해 얻는 것인데요, 어떤 참된 것을 예전처럼 딕테이션으로 직관하는 게 아니라 단지 그것이 참이라 하니, 말씀에서 주님이 참이라 하시니 참인 줄 아는, 그런 것입니다. 홍수 후 교회들은 거의 대부분 이런 캐릭터였으며, 주님 초림 후 첫 교회인 초대교회 역시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영적 천사들이 천적 천사들로부터 구분이 되는 것입니다. And then instead of the perception they had in the most ancient church, there succeeded conscience, acquired through faith joined to charity, which dictated not what is true, but that it is true, and this because the Lord has so said in the Word. The churches after the flood were for the most part of this character, as also was the primitive or first church after the Lord’s advent, and by this the spiritual angels are distinguished from the celest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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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의 속뜻

 

15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unto him, Therefore whosoever slayeth Cain, vengeance shall be taken on him sevenfold. And Jehovah set a mark upon Cain, lest any finding him should smite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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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는 심지어 그렇게 분리되었을지라도 신앙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일종의 신성모독(a sacrilege)이 될 것임을,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는 주님은 신앙을 특별한 방식으로 구별하셔서 신앙이 보존될 수 있게 하셨음을 의미합니다. By “vengeance being taken sevenfold on anyone who slays Cain” is signified that to do violence to faith even when thus separated would be a sacrilege; “Jehovah set a mark upon Cain, lest any finding him should smite him” signifies that the Lord distinguished faith in a particular manner, in order that it might be p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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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세(來世, the other life)에 있는 악한 영들의 상태

 

14절,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Behold, thou hast cast me out this day from the faces of the ground; and from thy faces shall I be hid, and I shall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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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세(來世, the other life)에 있는 악한 영들의 상태를 보면 분명히 악과 거짓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서 모든 체어리티를 박탈한 사람들은 정처 없이 떠돌며, 이리저리 도망다닙니다.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가령 어느 무리든지 그들은 이들이 그저 다가오기만 할 뿐인데도 이들의 캐릭터를 즉시 지각합니다. 그런 것이 내세에 존재하기 때문인데, 그들은 이들을 쫓아낼 뿐만 아니라 할 수만 있으면 죽이려고까지 하는 적대감을 품고 너무하다 할 정도로 잔인하게 대합니다. 악한 영들은 서로를 잔인하게 대하며 학대하는 데서 가장 큰 기쁨을 얻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가장 큰 만족감이기 때문입니다. 악과 거짓 자체가 이런 것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지금까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을 원하든 자기한테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The state of evil spirits in the other life shows most clearly that those who are in evil and falsity are afraid of everybody. Those who have deprived themselves of all charity wander about, and flee from place to place. Wherever they go, if to any societies, these at once perceive their character by their mere coming, for such is the perception that exists in the other life; and they not only drive them away, but also severely punish them, and with such animosity that they would kill them if they could. Evil spirits take the greatest delight in punishing and tormenting one another; it is their highest gratification. Not until now has it been known that evil and falsity themselves are the cause of this, for whatever anyone desires for another returns upon himself.

 

※ 생전에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원했던 사람은 사후에 그 행복을 돌려받으며, 생전에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원했던 사람은 사후에 그 불행을 돌려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거짓은 그 안에 거짓에 대한 형벌이 들어 있으며, 악도 그 안에 악에 대한 형벌이 들어 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자기들 안에 이런 형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Falsity has in itself the penalty of falsity, and evil has in itself the penalty of evil, and consequently they have in themselves the fear of these penal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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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과 거짓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죽임을 당할까 봐 끝없이 두려워함

 

14절,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Behold, thou hast cast me out this day from the faces of the ground; and from thy faces shall I be hid, and I shall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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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과 거짓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죽임을 당할까 봐 끝없이 두려워합니다. 아래 모세의 글에 기록된 것처럼 말입니다. Those who are in evil and falsity are in continual dread of being slain, as is thus described in Moses:

 

33내가 너희를 여러 민족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 36너희 남은 자에게는 그 원수들의 땅에서 내가 그들의 마음을 약하게 하리니 그들은 바람에 불린 잎사귀 소리에도 놀라 도망하기를 칼을 피하여 도망하듯 할 것이요 쫓는 자가 없어도 엎드러질 것이라 37그들은 쫓는 자가 없어도 칼 앞에 있음 같이 서로 짓밟혀 넘어지리니 너희가 원수들을 맞설 힘이 없을 것이요 (레26:33, 36-37) Your land shall be a desolation, and your cities a waste, and upon them that are left of you I will bring softness into their heart in the land of their enemies, and the sound of a driven leaf shall chase them, and they shall flee as fleeing from a sword, and they shall fall when none pursueth, and shall stumble everyone upon his brother, as it were before a sword, when none pursueth. (Lev. 26:33, 36–37)

 

이사야에 In Isaiah:

 

16땅 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를 의로우신 이에게 영광을 돌리세 하도다 그러나 나는 이르기를 나는 쇠잔하였고 나는 쇠잔하였으니 내게 화가 있도다 배신자들은 배신하고 배신자들이 크게 배신하였도다 17땅의 주민아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네게 이르렀나니 18두려운 소리로 말미암아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빠지겠고 함정 속에서 올라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위에 있는 문이 열리고 땅의 기초가 진동함이라 19땅이 깨지고 깨지며 땅이 갈라지고 갈라지며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며 20땅이 취한 자 같이 비틀비틀하며 원두막 같이 흔들리며 그 위의 죄악이 중하므로 떨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 (사24:16-20) The treacherous deal treacherously, yea, in the treachery of the treacherous they deal treacherously.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he who fleeth from the noise of the fear shall fall into the pit, and he that cometh up out of the midst of the pit shall be taken in the snare; the transgression thereof shall be heavy upon it, and it shall fall, and not rise again. (Isa. 24:16–20)

 

예레미야에 In Jeremiah: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두려움을 네 사방에서 네게 오게 하리니 너희 각 사람이 앞으로 쫓겨 나갈 것이요 도망하는 자들을 모을 자가 없으리라 (렘49:5) Behold, I bring a dread upon thee, from all thy circuits shall ye be driven out every man toward his faces, and none shall gather up him that wandereth. (Jer. 49:5)

 

이사야에 In Isaiah:

 

16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 17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 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산마루 위의 기치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사30:16-17) We will flee upon the horse, therefore shall ye flee; and, we will ride upon the swift, therefore shall they that pursue you be rendered swift; one thousand shall flee at the rebuke of one, at the rebuke of five shall ye flee. (Isa. 30:16–17)

 

이 구절들과 말씀 다른 구절들에서 거짓과 악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묘사하기를 ‘도망하다’, ‘죽임을 당할까 봐 두려워하다’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을 두려워 하는데요, 자신들을 보호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악과 거짓 가운데 있는 모두가 자기들의 이웃을 미워합니다. 그래서 그렇게들 모두 서로 죽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In these and other passages of the Word, those who are in falsity and evil are described as “fleeing,” and as in “fear of being slain.” They are afraid of everybody, because they have no one to protect them. All who are in evil and falsity hate their neighbor, so that they all desire to kill one an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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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의 속뜻, 모든 악과 거짓이 그를 파괴할 것을 의미함

 

14절,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Behold, thou hast cast me out this day from the faces of the ground; and from thy faces shall I be hid, and I shall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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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가 모든 악과 거짓이 그를 파괴할 것을 의미함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에 이어지는 내용인데요, 이런 경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신에게서 체어리티를 빼앗을 때, 그는 스스로를 주님으로부터 분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을 주님과 결합하게 하는 유일한 것은 바로 체어리티, 즉 이웃을 향한 사랑과 자비이기 때문입니다. 체어리티가 없는 곳, 거기엔 괴리(乖離, disjunction)가 있으며, 괴리가 있는 곳에서는 사람은 자기 자신, 즉 오운(own)만 남게 되며, 그렇게 되면 이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든지, 무슨 마음을 먹든지 그것은 거짓이며 악입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사람을 죽게 하거나 남은 여생을 빈털터리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That “everyone finding him would slay him” signifies that every evil and falsity would destroy him, follows from what has been said. For the case is this. When a man deprives himself of charity, he separates himself from the Lord, since it is solely charity, that is, love toward the neighbor, and mercy, that conjoin man with the Lord. Where there is no charity, there is disjunction, and where there is disjunction, man is left to himself or to his own; and then whatever he thinks is false, and whatever he wills is evil. These are the things that slay man, or cause him to have nothing of life remai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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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의 속뜻, 무엇이 참이요 선인지 알지 못함

 

14절,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Behold, thou hast cast me out this day from the faces of the ground; and from thy faces shall I be hid, and I shall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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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된다는 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무엇이 참이요 선인지 알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To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means as before not to know what is true and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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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의 속뜻, 사랑의 신앙의 모든 선으로부터 분리됨

 

14절,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Behold, thou hast cast me out this day from the faces of the ground; and from thy faces shall I be hid, and I shall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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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가 사랑의 신앙의 모든 선으로부터 분리됨이라는 것은 ‘주의 낯’의 상징을 보면 분명합니다. 주의 낯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비입니다. 이 자비에서 사랑의 신앙의 모든 선이 나오는데요, 그래서 여기 그의 으로 신앙의 선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That to be “hid from thy faces” signifies to be separated from all the good of the faith of love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the “faces of Jehovah.” The “face of Jehovah,” as before said, is mercy, from which proceed all the goods of the faith of love, and therefore the goods of faith are here signified by his “faces.”

 

※ 신앙에도 두 종류가 있음을 이젠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가인의 신앙처럼 사랑과 분리되는 신앙이고, 다른 하나는 아벨의 신앙처럼 사랑과 결합하는 신앙입니다. 여기 ‘사랑의 신앙의 모든 선’은 아벨의 신앙처럼 사랑과 결합된 신앙을 말하며, 그런 신앙으로 행하는 모든 선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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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면에서 쫓아내시온즉의 속뜻, 교회의 모든 진리로부터 분리됨

 

14절,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Behold, thou hast cast me out this day from the faces of the ground; and from thy faces shall I be hid, and I shall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

 

386

이 지면에서 쫓아내시온즉’이 교회의 모든 진리로부터 분리됨이라는 것은 ‘(ground)이 상징하는 바를 보면 분명한데요, ‘’은 그 속뜻으로는 교회, 혹은 교회에 속한 사람이며, 그래서 앞서 밝힌 대로, 교회가 천명하는 모든 것입니다. 어떤 말의 의미라는 것은 다루는 주제에 따라 필연적으로 달라지는데요, 그래서 심지어 잘못된 신앙, 예를 들면, 스키즘이나 이단 신앙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이라 합니다. 여기 이 지면에서 쫓아내시온즉은 그러나 더 이상 교회의 진리 안에 있을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That to be “cast out from the faces of the ground” is to be separated from all the truth of the church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ground,” which, in the genuine sense, is the church, or the man of the church, and therefore whatever the church professes, as shown above. The meaning of a word necessarily varies with the subject treated of, and therefore even those who wrongly profess faith, that is who profess a schism or heresy, are also called “ground.” Here however to be “driven out from the faces of the ground” signifies to be no longer in the truth of the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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