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녹, 일곱 번째 교회, ‘므두셀라, 여덟 번째 교회

 

21절,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And Enoch lived sixty and five years, and begat Methuselah.

 

516

전에 말씀드린 대로, ‘에녹’은 일곱 번째 교회를, ‘므두셀라’는 여덟 번째 교회를 상징합니다. By “Enoch,” as before said, is signified a seventh church; and by “Methuselah” an eigh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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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햇수들은 어떤 개인의 수명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해당 교회의 때와 상태들을 상징합니다.

 

19-20절, 19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0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Jared lived after he begat Enoch eight hundred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And all the days of Jared were nine hundred sixty and two years; and he died.

 

515

이들 말씀들의 상징들 또한 위 비슷한 말씀들의 것들과 유사합니다. 야렛이 구백육십이 세를 살았다, 므두셀라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았다 하여 대홍수 이전 사람들이 실제로 이렇게 엄청나게 오래 살았었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아야 하며, 이 사실은 다음 장 3절,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창6:3)라는 말씀을 통해 특별히 주님의 신적 자비로 모두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햇수들은 어떤 개인의 수명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해당 교회의 때와 상태들을 상징합니다. The signification of these words also is similar to that of the like words above. That the ages of the antediluvians were not so great, as that of Jared nine hundred and sixty-two years, and that of Methuselah nine hundred and sixty-nine years, must appear to everyone, especially from what of the Lord’s Divine mercy will be said at verse 3 of the next chapter, where we read, “Their days shall be a hundred and twenty years”; so that the number of the years does not signify the age of any particular man, but the times and states of the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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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렛이라는 교회, 마할랄렐 에녹 둘 사이에 있었던 교회

 

18절, 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And Jared lived a hundred sixty and two years, and begat Enoch.

 

514

야렛’이라는 교회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진 게 없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가 대략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그 앞 교회였던 ‘마할랄렐’과, 그 뒤 교회인 ‘에녹’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교회는 그 둘 사이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Concerning the church called “Jared” nothing is related; but its character may be known from the church “Mahalalel” which preceded it, and the church “Enoch” which followed it, between which two it was intermedi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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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렛’, 여섯 번째 교회, ‘에녹’, 일곱 번째 교회

 

18절, 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And Jared lived a hundred sixty and two years, and begat Enoch.

 

513

야렛’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여섯 번째 교회를, ‘에녹’은 일곱 번째 교회를 상징합니다. By “Jared,” as before said, is signified a sixth church; by “Enoch” a seven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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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현들은 앞의 비슷한 표현들과 같은 의미입니다.

 

16-17절, 16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And Mahalalel lived after he begat Jared eight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7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Mahalalel were eight hundred ninety and five years; and he died.

 

512

이 표현들은 앞의 비슷한 표현들과 같은 의미입니다. It is the same with these words as with the like words before.

 

※ 팔백구십오(895)라는 숫자가 문자 그대로 실제로 895년을 뜻하는 게 아닌, 어떤 긴 시간의 흐름, 혹은 상태와 그 상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분명한 사실은, 주님은 게난에 이어 마할랄렐로 이어지는, 점점 더 안 좋은 쪽으로 기울어지는 시대의 흐름을 그대로 허용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편의상, 구백 년으로 보면, 실제로는 그 이상이었겠지만, 거의 천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인물과 사건, 사상의 부침이 있었을 텐데도, 노아의 홍수라는 종말을 향해 유유히 흘러가는 그 장강, 대하의 물결을 주님은 의도적으로 간섭하시거나 개입하셔서 강제로 돌리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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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할랄렐 교회를 구성하던 사람들의 생명은 다음과 같았는데, 그들은 진리 기뻐하기를 그 진리의 사용, 곧 그 진리를 실천했을 때 맛보는 기쁨보다 더 좋아하던 그런 사람들이었다

 

15절,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And Mahalalel lived sixty and five years, and begat Jared.

 

511

이들 교회들의 퍼셉션 역량은 감소하였고, 그래서 갈수록 더욱 특별해지거나 분명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평범해지거나 흐릿해져 버렸는데, 그런 식으로 이들 교회들의 사랑이나 쓰임새의 생명 또한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생명, 쓰임새의 생명은 소유한 퍼셉션 역량이기 때문입니다. 선에서 진리를 아는 것이 천적(天的, celestial)입니다. ‘마할랄렐’이라 하는 교회를 구성하던 사람들의 생명은 다음과 같았는데, 그들은 진리 기뻐하기를 그 진리의 사용, 곧 그 진리를 실천했을 때 맛보는 기쁨보다 더 좋아하던 그런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은 제가 영계에서 마할랄렐 때 사람들을 경험함으로써 알게 되었습니다. As the perceptive faculty decreased, and from being more particular or distinct, became more general or obscure, so also did the life of love or of uses; for as is the life of love or of uses, so is the perceptive faculty. From good to know truth is celestial; the life of those who constituted the church called “Mahalalel” was such that they preferred the delight from truths to the delight from uses, as has been given me to know by experience among their like in the othe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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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할랄렐, 다섯 번째 교회, ‘야렛(Jared), 여섯 번째 교회

 

15절,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And Mahalalel lived sixty and five years, and begat Jared.

 

510

마할랄렐(Mahalalel)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다섯 번째 교회, ‘야렛(Jared)은 여섯 번째 교회입니다. By “Mahalalel” is signified, as before said, a fifth church; by “Jared” a six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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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은 그 교회의 상태에 대한 그들의 관계로 결정된다

 

13-14절, 13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Kenan lived after he begat Mahalalel eight hundred and forty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4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Kenan were nine hundred and ten years; and he died.

 

509

여기서 꼭 주목했으면 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은 그 교회의 상태에 대한 그들의 관계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It is here only to be remarked, that all things are determined by their relation to the state of the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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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회 멤버들에게도 역시 퍼셉션이 있었다. 비록 더 일반적인 방식으로만 지각했지만...

 

13-14절, 13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Kenan lived after he begat Mahalalel eight hundred and forty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4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Kenan were nine hundred and ten years; and he died.

 

508

여기 ‘’과 ‘’의 수들(The days and numbers of years)은 앞서와(AC.482, 487, 488) 같은 의미입니다. 여기 자녀 또한 진리와 선을 의미합니다(AC.55:2, 486, 489491). 이 교회 멤버들에게도 역시 퍼셉션이 있었습니다. 비록 더 일반적인 방식으로만 지각했지만 말입니다. 그가 죽었다라는 것은 이런 퍼셉션의 상태가 멈추는, 중단되는 것과 같은 걸 말합니다. The “days” and numbers of “years” have the same signification here as before. Sons and daughters” here also signify truths and goods, whereof the members of the church had a perception, but in a more general manner. That he “died” signifies in like manner the cessation of such a state of perception.

 

※ 퍼셉션이란, 개략적으로는 주님의 신성을 호흡할 수 있는, 즉 주님의 선과 진리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타고나는 역량으로, 이것이 있어야 교회든 개인이든 주님과 연결되며, 주님과 연결되어 있어야 ‘살아있는’ 것입니다. 만일 어느 개인이나 교회가 더 이상 이 퍼셉션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는 ‘살았으나 사실은 죽은’ 상태입니다. 지금 이 창세기 본문에서 ‘몇 세를 살고 죽었다’라는 건 그 교회가 주님의 퍼셉션으로 지상에 머물렀던 상태와 그 변화를 말하는 것인데, 퍼셉션의 유무로 어느 교회의 삶을 말하는 건 이 태고교회에만 해당합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 세대는 퍼셉션이 아닌 양심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주님과 연결되기 때문이며, 이 퍼셉션의 고갈로 태고교회는 노아의 홍수라는 종말을 맞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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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난, 퍼셉션에 있어 보다 더 완전한 교회인 아담’, ’, 에노스’, 위 세 교회 중 하나로 여겨질 정도는 아니다.

 

12절, 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And Kenan lived seventy years, and begat Mahalalel.

 

507

게난’이라 하는 교회는 퍼셉션에 있어 보다 더 완전한 교회인 위 세 교회 중 하나로 여겨질 정도는 아닙니다. 이들 세 교회는 퍼셉션에 있어 전에는 뚜렷했지만 지금은 평범해지기 시작했지요. 비유하자면, 마치 열매나 씨의 핵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첫 번째 막과도 같이 말이지요. 이런 상태는 사실 어떻게 설명할 수는 없는데, 하지만 이어지는 후속 교회들, 예를 들면, ‘에녹’, ‘노아’라 하는 교회들의 상태를 보면 분명히 다릅니다. The church called “Kenan” is not to be so much reckoned among those three more perfect ones, inasmuch as perception, which in the former churches had been distinct, began now to become general, comparatively as are the first and softer membranes relatively to the kernel of fruits or seeds; which state is not indeed described, but still is apparent from what follows, as from the description of the churches called “Enoch” and “No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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