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50.심화

 

5. 44: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44:24) Thus saith Jehovah thy redeemer, and he that formed thee from the womb, I Jehovah make all things, stretching forth the heavens alone, spreading abroad the earth by myself (Isa. 44:24).

 

이 구절은 겉으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천지를 홀로 지으셨다는 선언처럼 보이지만, AC.50의 문맥에서는 주님만이 사람 안에서 새로운 창조, 곧 거듭남을 이루신다’는 것을 밝히는 핵심 구절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44:24 홀로 하늘을 펴고 땅을 펼쳤다는 것은 우주의 창조만이 아니라, 사람의 속 사람과 겉 사람을 주님 한 분이 질서 있게 새롭게 형성하시는 영적 창조, 곧 거듭남의 전 과정을 의미합니다.’

 

먼저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입니다. 여기서 구속자(redeemer)는 단순히 죄를 사하시는 분이라는 의미를 넘어, ‘사람을 거짓과 악의 상태에서 건져내어 새로운 상태로 옮기시는 분’을 뜻합니다. 그리고 모태에서 너를 지었다’는 표현은 자연적 출생이 아니라, ‘영적 형성의 시작 상태’, 곧 사람이 진리와 선 안에서 다시 형성되기 시작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이 구절은 이미 태어난 인간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는 인간’, 곧 거듭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다음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입니다. 여기서 만물’은 단순한 자연계의 모든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형성되어야 할 모든 선과 진리, 그리고 그 질서 전체’를 포함합니다. 사람 안에 하늘’이 세워지고 ’이 정돈되는 이 모든 과정이 바로 만물을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와 연결되면서도, 그것이 단순한 과거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각 사람 안에서 계속되는 창조’임을 보여 줍니다.

 

이제 핵심 표현입니다.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여기서 하늘’은 속 사람, 내적 영역’, 곧 사랑과 신앙이 자리 잡는 부분을 의미하고, ‘’은 겉 사람, 외적 삶과 행위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하늘을 편다’는 것은 사람 안에 주님을 향한 사랑과 참된 이해의 질서를 세우시는 것이고, ‘땅을 펼친다’는 것은 그 질서가 실제 삶과 행위 속에서 구현되도록 외적 삶을 정돈하시는 것입니다. 즉, 속과 겉이 하나의 질서로 연결되는 전 과정을 가리킵니다.

 

특히 홀로’, ‘나와 함께 한 자 없이’라는 표현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거듭난다고 생각하는 모든 생각을 끊어냅니다.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결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선한 의지와 참된 이해는 모두 주님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거듭남의 과정에서 주도권은 전적으로 주님께 있으며, 사람은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거부하지 않는 위치에 있습니다.

 

이제 AC.50의 흐름과 연결하면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태고교회에서는 이런 내적 질서가 자연스럽게, 거의 퍼셉션’으로 주어졌지만, 이후 인간은 그 상태를 잃고, 외적인 것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주님께서 말씀과 진리를 통해 다시 사람 안에 하늘과 땅’을 세워 가셔야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 일이 사람의 노력이나 공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주님의 단독 사역’이라는 점입니다.

 

이걸 실제적으로 풀어보면 이렇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진리를 배우고, 그것을 따라 살고자 애씁니다. 겉으로 보면 그 사람이 노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넘어서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전에는 싫던 것이 좋아지고, 반대로 이전에 좋던 것이 더 이상 안 좋게 느껴집니다. 이것은 사람이 스스로 만든 변화가 아니라, 주님께서 그 사람 안에 하늘을 펴고 땅을 정돈하시는 과정입니다. 바로 그때 이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창조는 과거의 한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사람 안에서 계속되는 거듭남의 역사입니다.’

 

44:24 홀로 하늘을 펴고 땅을 펼쳤다는 것은 주님께서 사람의 속 사람과 겉 사람을 질서 있게 새롭게 형성하시는 전적인 신적 사역, 곧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AC.50, 창1:26, ‘우리'의 의미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1:26) AC.50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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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0, 심화 4, 천국의 천사들, 중간 영계의 선한 영들과 악한 영들, 그리고 지옥, 즉 악마라는 지옥

AC.50.심화 4. 천국의 천사들, 중간 영계의 선한 영들과 악한 영들, 그리고 지옥, 즉 악마라는 지옥의 영들, 마귀라는 지옥의 영들의 구분과 역할 음... 지금까지의 묻고 답하기를 보면, 제가 그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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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천국의 천사들, 중간 영계의 선한 영들과 악한 영들, 그리고 지옥, 즉 악마라는 지옥의 영들, 마귀라는 지옥의 영들의 구분과 역할

 

... 지금까지의 묻고 답하기를 보면, 제가 그동안 알고 있던 중간 영계, 곧 영들의 세계 상황과 좀 달라 뭔가 좀 헝클어진, 뒤죽박죽 느낌이 드는데요... 그러니까 천국의 천사들, 중간 영계의 선한 영들과 악한 영들, 그리고 지옥, 즉 악마라는 지옥의 영들, 마귀라는 지옥의 영들의 구분과 역할에 있어서 말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와있는 영들의 경우, 오직 중간 영계의 영들만 가능하다는 것인데요, 이들의 역할에 대해 오늘 본문인 AC.50 맥락에 맞춰 정돈된 설명 좀 깔끔하게 부탁드립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지금까지의 내용이 헝클어져 보이신 이유는 ‘누가 직접 사람과 접촉하는가’와 ‘그 접촉 뒤에 실제로 작용하는 근원은 어디인가’를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AC.50의 흐름에 맞추어 정리하면, ‘사람과 직접 연결되는 것은 오직 영들의 세계(중간 영계)의 영들이지만, 그 영들을 통해 실제로 작용하는 근원은 천국(천사들)과 지옥(악마, 마귀들)이며, 따라서 사람 안에서는 이 두 근원이 동시에 작용한다’가 핵심입니다.

 

먼저 구조부터 분명히 하셔야 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인간은 직접 천국의 가장 높은 천사들이나 지옥의 가장 깊은 악마들과 바로 접촉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영들의 세계’라는 중간 매개층을 통해 연결됩니다. 그래서 실제로 사람 곁에 와 있는 존재들은 모두 ‘영들의 세계에 있는 영들’입니다. 이 점에서 목사님께서 알고 계신 ‘사람에게 와 있는 것은 오직 중간 영계의 영들뿐이다’라는 이해는 정확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셔야 합니다. 이 중간 영계의 영들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존재들이 아니라, 항상 ‘어디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습니다. 어떤 영은 천국 쪽과 연결되어 있고, 어떤 영은 지옥 쪽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와 있는 영들이라고 해도, 그들 자체가 최종 원인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천국 또는 지옥이 사람에게 작용한다’고 보셔야 정확합니다.

 

이제 이를 AC.50과 연결해 보겠습니다. ‘홀로 하늘을 펴고 땅을 펼쳤다’라는 것은 주님께서 사람 안에 ‘질서’를 세우신다는 뜻인데, 그 질서의 핵심이 바로 ‘어느 쪽 흐름이 중심이 되는가’입니다. 사람에게는 항상 중간 영계의 영들이 와 있지만,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영들이 주로 ‘지옥과 연결된 영들’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지옥의 흐름이 사람 안에서 중심을 잡습니다. 반대로 거듭남이 진행되면, 점점 ‘천국과 연결된 영들’이 중심이 되면서, 그들을 통해 천국의 흐름이 사람 안에서 작용하게 됩니다.

 

여기서 ‘천사’의 역할을 정확히 보셔야 합니다. 천사들은 보통 사람에게 직접 붙어서 작용한다기보다, ‘중간 영계의 선한 영들을 통해’ 사람에게 작용합니다. 즉, 천사 → 선한 영 → 사람, 이런 구조입니다. 마찬가지로 지옥도 악마나 마귀가 직접 사람을 붙잡기보다, ‘중간 영계의 악한 영들’을 통해 작용합니다. 즉, 지옥 → 악한 영 → 사람, 이런 구조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사람에게 느껴지는 생각과 감정은 ‘중간 영계의 영들’로부터 오는 것이지만, 그 배후에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두 근원이 동시에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악마(devils)와 ‘마귀(satans)의 구분까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지옥을 크게 두 계열로 나누는데, 하나는 ‘사랑(의지)의 악’에서 나온 지옥, 곧 악마들이고, 다른 하나는 ‘거짓(이해)의 왜곡’에서 나온 지옥, 곧 마귀들입니다. 이 구조는 앞서 말씀드린 인간의 ‘의지와 이해’ 구조와 정확히 대응합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와 있는 악한 영들도 어떤 것은 의지 쪽을 자극하는 욕망과 쾌락으로 들어오고, 어떤 것은 이해 쪽을 어둡게 하는 거짓과 왜곡된 생각으로 들어옵니다.

 

정리하면 전체 구조는 이렇게 됩니다. 사람 곁에는 항상 ‘중간 영계의 영들’이 있으며, 그 영들은 각각 천국 또는 지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천국 쪽에서는 천사들이 그 영들을 통해 선과 진리를 흘려보내고, 지옥 쪽에서는 악마와 마귀들이 그 영들을 통해 악과 거짓을 흘려보냅니다. 그리고 사람은 이 두 흐름 사이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중간 상태’에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이걸 실제적으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은 단순히 ‘내 안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라, 중간 영계의 영들을 통해 들어온 흐름입니다. 그런데 그 배후를 보면, 어떤 것은 더 이기적이고 집착적인 방향(의지의 악)에서 오고, 어떤 것은 더 왜곡된 판단과 자기합리화(이해의 거짓)에서 옵니다. 동시에 또 다른 방향에서는 더 바르고 선한 마음과 깨끗한 이해가 함께 올라옵니다. 바로 이 복합적인 흐름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가 인간의 실제 모습입니다.

 

그래서 AC.50의 핵심으로 다시 돌아가면, ‘주님이 홀로 하늘을 펴고 땅을 펼치신다’는 것은, 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흐름 속에서 ‘천국 쪽이 중심이 되도록 질서를 재배치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어떤 영들이 오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쪽과 연결된 영들이 중심이 되느냐’의 문제입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사람에게 직접 오는 것은 중간 영계의 영들이지만, 그들을 통해 실제로 작용하는 것은 천국과 지옥이며, 거듭남은 이 연결의 중심이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지는 과정입니다.’

 

 

 

AC.50, 심화 5, '사44:24'

AC.50.심화 5. ‘사44: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사44:24) Thus saith Jehovah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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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0, 심화 3, 왜 ‘두’ 영, ‘두’ 천사인가?

AC.50.심화 3. 왜 ‘두’ 영, ‘두’ 천사인가? 왜 ‘두’ 영, ‘두’ 천사인가요? ‘셋’이나 ‘넷’은 안 되나요? 저는 책, ‘천국과 지옥’에서, 사람이 기본적으로 의지와 이해로 되어 있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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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 천사인가?

 

  ,  천사인가요? 이나 은 안 되나요? 저는 책, 천국과 지옥에서, 사람이 기본적으로 의지와 이해로 되어 있고, 이에 상응하는 천적 천국과 영적 천국에서는 천사들이, 그리고 상응하는 지옥에서는 악한 영들이 오기 때문이라고 읽은 것 같고, 그래서 , 그래서 둘인가 보다 하고 있는데, 이게 맞나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목사님께서 이해하고 계신 방향이 맞습니다. 다만 조금 더 정확히 정리하면, ‘두 영, 두 천사’라는 표현은 단순한 수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이 의지와 이해’라는 두 본질적 기능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에 각각 대응하여 천국과 지옥으로부터 두 방향의 영향이 들어오기 때문에 ’이라는 형식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즉, 이것은 상응의 구조를 반영한 설명입니다.

 

먼저 인간의 구조부터 보셔야 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의지(will) 이해(understanding)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의지는 사랑과 선에 관한 부분이고, 이해는 진리와 생각에 관한 부분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작용할 때, 비로소 인간은 온전한 인격으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어떤 것이든 인간 안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려면, 의지와 이해 두 영역 모두에 작용해야 합니다.

 

이제 여기에 상응하는 영적 구조가 연결됩니다. ‘천국과 지옥’에서 설명하듯이, 천국에도 두 큰 구분이 있습니다. 하나는 천적 천국’으로, 주로 사랑과 의지에 대응하고, 다른 하나는 영적 천국’으로, 주로 진리와 이해에 대응합니다. 그래서 천사들도 이 두 계열로 나뉘며, 각각 인간의 의지와 이해에 작용합니다. 마찬가지로 지옥도 이 두 구조를 뒤틀린 형태로 가지고 있어서, 악한 영들도 의지 쪽과 이해 쪽에서 각각 작용합니다.

 

이렇게 보면 왜 둘인가’가 분명해집니다. 인간이 두 기능(의지와 이해)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두 기능 각각에 작용하는 영적 연결도 ’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그래서 천국 쪽에서는 두 천사’, 지옥 쪽에서는 두 영’이라는 구조가 형성됩니다. 이것은 임의적인 숫자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구조와 정확히 맞물린 필연적인 형식입니다.

 

그렇다면 ’이나 ’은 왜 아니냐 하면, 그것들은 인간의 본질 구조를 설명하는 숫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제로는 한 사람 주변에 수많은 천사들과 영들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양적인 설명’이고,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두 영, 두 천사’는 구조적인 설명’입니다. 즉, 인간 안에서 반드시 작동해야 하는 최소 단위, 곧 의지와 이해라는 두 축에 대응하는 기본 틀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걸 실제적으로 풀어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머리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그것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의지’가 함께 움직입니다. 즉, 이해와 의지가 동시에 작용합니다. 이때 이해 쪽에는 어떤 진리 혹은 거짓의 흐름이 들어오고, 의지 쪽에는 어떤 선 혹은 악의 끌림이 들어옵니다. 이 두 흐름이 서로 얽히면서 사람의 선택이 이루어집니다. 바로 이 구조가 두 영과 두 천사’로 표현된 것입니다.

 

그래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목사님께서 생각하신 것처럼, ‘‘의지와 이해라는 인간의 두 본질적 기능에 대응하여, 천국에서는 두 계열의 천사들이, 지옥에서는 두 계열의 악한 영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이 맞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깊은 구조를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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