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2:2, 3)
AC.88
영적 인간이 천적 상태가 될 때, 그를 가리켜 ‘하나님의 일’(work of God)이라고 합니다. 이는 오직 주님께서 그를 위하여 싸우셨고, 그를 창조하시고, 형성하시며,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기 ‘하나님이 그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셨다’(God finished his work on the seventh day)라고 하시고, 또 ‘그의 하시던 모든 일에서 안식하셨다’(he rested from all his work)라고 하시는 등 두 번이나 반복하시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선지자들에 의해서 사람은 여러 차례 ‘여호와의 손과 손가락의 일’(work of the hands and of the fingers of Jehovah)이라 불립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에서, 거듭난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데를 보면 그렇습니다. When the spiritual man becomes celestial, he is called the “work of God,” because the Lord alone has fought for him, and has created, formed, and made him; and therefore it is here said, “God finished his work on the seventh day”; and twice, tha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By the prophets man is repeatedly called the “work of the hands and of the fingers of Jehovah”; as in Isaiah, speaking of the regenerate man:
11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12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18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21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사45:11-12, 18, 21) Thus hath said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and his former, Seek ye signs of me, signs concerning my sons, and concerning the work of my hands command ye me. I have made the earth, and created man upon it; I, even my hands have stretched out the heavens, and all their army have I commanded. For thus hath said Jehovah that createth the heavens, God himself that formeth the earth and maketh it; he establisheth it, he created it not a void, he formed it to be inhabited; I am Jehovah and there is no God else besides me (Isa. 45:11–12, 18, 21).
이로부터 새 창조, 곧 거듭남은 오직 주님의 일임이 분명합니다. ‘창조하다’(create), ‘형성하다’(form), ‘만들다’(make)라는 표현들은 위의 구절에서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creating the heavens, forming the earth, and making it)라는 말씀처럼 구별되어 사용되었고, 같은 이사야 다른 곳에서도 동일하게 구별되어 사용됩니다. 예컨대, Hence it is evident that the new creation, or regeneration, is the work of the Lord alone. The expressions to “create,” to “form,” and to “make,” are employed quite distinctively, both in the above passage—“creating the heavens, forming the earth, and making it”—and in other places in the same prophet, as: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사43:7) Everyone that is called by my name, I have created him for my glory, I have formed him, yea, I have made him (Isa. 43:7),
이러한 구별은 창세기 앞 장과 본 장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며, 여기 본문에서도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안식하시니라’(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라고 표현됩니다. 내적 의미에서 이러한 표현들은 언제나 서로 구별된 뜻을 전달하며, 주님을 ‘창조자’(creator), ‘지으신 이’(former), ‘만드시는 이’(maker)로 부르는 경우에도 동일합니다. and also in both the preceding and this chapter of Genesis; as in the passage before us: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In the internal sense this usage always conveys a distinct idea; and the case is the same where the Lord is called “creator,” “former,” or “maker.”
해설
이 글은 창세기 2장의 안식이라는 주제를 다시 한번 더 깊은 중심으로 끌어당깁니다. AC.87이 싸움의 종식과 주님의 싸우심을 강조했다면, AC.88은 그 결과로서 ‘사람의 정체성 자체가 어떻게 바뀌는가’를 다룹니다. 천적 인간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한다는 말은, 그가 이제 자기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는 선언입니다. 이는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존재론적 진술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분명히 말합니다. ‘사람이 천적 상태에 이르는 과정에서 싸운 이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결과물 역시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주님의 일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일’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하신 어떤 외적 업적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이루신 상태’를 가리킵니다. 사람 자신이 곧 주님의 일이며, 주님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본문에서 ‘하나님이 그의 일을 마치셨다’는 말과 ‘그의 모든 일에서 쉬셨다’는 말이 반복됩니다. 반복은 강조가 아니라 구조를 드러냅니다. 주님의 일은 외부 세계의 창조가 아니라, 인간 안에서의 새 창조이며, 그 일이 마쳐질 때에 안식이 옵니다. 안식은 일이 끝났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일이 사람 안에서 완성되었기 때문에’ 옵니다.
이 점을 밝히기 위해 스베덴보리는 선지서들을 폭넓게 인용합니다. 사람을 ‘여호와의 손과 손가락의 일’이라 부르는 표현들은, 인간을 독립적 존재로 세우려는 사상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특히 이사야에서 거듭난 사람을 가리켜 ‘내 손의 일’이라고 부르는 대목은, 거듭남이 자기 계발이나 도덕적 향상의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거듭남은 ‘새로운 창조 행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창조하다’, ‘형성하다’, ‘만들다’라는 세 동사가 구별되어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문학적 변주나 수사적 반복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이 세 표현이 각각 ‘서로 다른 내적 국면’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창조는 목적의 설정이고, 형성은 질서의 구성이며, 만들기는 실제 삶의 실현입니다. 이 구별은 창세기 1–2장의 전 구조를 관통하는 핵심 원리입니다.
이사야의 구절에서 하늘을 창조하고, 땅을 형성하며, 그것을 거주하게 만들었다는 표현은, 우주에 대한 설명이면서 동시에 인간에 대한 설명입니다. 하늘과 땅은 사람 안의 속 사람과 겉 사람을 뜻하며, 거주하게 만든다는 것은 주님께서 그 안에 머무실 수 있는 상태로 만드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새 창조는 단지 새출발이 아니라, ‘주님이 거하실 처소가 다시 세워지는 일’입니다.
이 모든 논의는 한 결론으로 모입니다. 거듭남은 오직 주님의 일이라는 결론입니다. 인간은 동의하고 받아들이며 따르지만, 창조의 주체는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을 ‘창조자’, ‘형성자’, ‘만드시는 이’로 부르는 모든 표현은, 각각 다른 국면에서 동일한 진리를 가리킵니다. 인간의 구원은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 주님의 작품이라는 진리입니다.
AC.88은 안식의 의미를 다시 한번 정제합니다. 안식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내가 더 이상 나 자신을 만들려고 애쓰지 않는 상태’입니다. 그때 비로소 주님의 일이 내 안에서 온전히 드러나며, 나는 ‘하나님의 일’로서 쉬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안식은 종교적 개념이 아니라, 존재의 안정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그 안정은, 주님께서 하신 일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됩니다.
심화
1. ‘사45:11-12,18, 21’
11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12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18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21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사45:11-12, 18, 21) Thus hath said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and his former, Seek ye signs of me, signs concerning my sons, and concerning the work of my hands command ye me. I have made the earth, and created man upon it; I, even my hands have stretched out the heavens, and all their army have I commanded. For thus hath said Jehovah that createth the heavens, God himself that formeth the earth and maketh it; he establisheth it, he created it not a void, he formed it to be inhabited; I am Jehovah and there is no God else besides me (Isa. 45:11–12, 18, 21).
이 구절은 Book of Isaiah 45장의 말씀으로, AC.88의 문맥에서는 ‘거듭남과 안식의 모든 과정이 오직 주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가장 강하게 선언하는 대표 구절로 사용됩니다. 문자적으로는 ‘창조주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는 절대 선언이지만, 스베덴보리의 흐름 안에서는 이것이 곧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영적 재창조의 주체도 오직 주님뿐이다’라는 뜻으로 열립니다.
먼저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하늘을 펴고...’라는 반복은 단순한 우주 창조의 회상이 아닙니다. 여기서 ‘하늘’은 사람의 속 사람, 곧 사랑과 의지의 영역이고, ‘땅’은 겉 사람, 곧 삶과 행위의 영역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주님이 인간 안에 내적, 외적 질서를 세우신다’, 곧 거듭남을 이루신다는 뜻입니다. AC.82-85에서 계속 강조된 ‘여섯 날의 일과 일곱째 날의 안식은 주님의 일’이라는 주제가 여기서 다시 확증됩니다.
이어지는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지으셨다’는 말씀은 매우 중요한데, 이것은 인간의 상태가 본래 ‘질서 있고 거할 수 있는 상태’, 곧 주님과 결합될 수 있는 상태로 지어졌다는 뜻입니다. ‘혼돈’은 질서가 무너진 상태, 곧 거듭남 이전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단순히 창조 목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은 인간을 결국 안식의 상태, 곧 주님이 거하실 수 있는 상태로 이끄신다’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핵심은 반복되는 이 선언입니다.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이것은 단순한 유일신 사상이 아니라, AC의 문맥에서는 ‘거듭남의 모든 과정에서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즉, 싸움도, 이김도, 질서의 회복도, 안식도 모두 주님께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11절의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는 표현도 의미가 깊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마치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거나, 심지어 주님의 일까지 판단하고 지시하려는 상태를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거듭남의 일은 인간이 설계하고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루시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시는 것입니다.
이 구절 전체를 AC.88의 흐름 안에서 한 문장으로 묶으면 이렇게 정리됩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안의 새 하늘과 새 땅도 오직 주님이 이루신다.’ 그래서 앞에서 계속 목사님께서 질문하셨던 그 문제, 곧 왜 모든 것을 ‘주님이 하신다’고 하시는가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성경적 답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우리가 새로워지는 일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실 때와 똑같이 주님이 다시 지으시는 일입니다.’ 이렇게 보시면, 창조와 거듭남, 그리고 안식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면서 AC.88의 의미가 매우 선명해집니다.
2. ‘사43: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사43:7) Everyone that is called by my name, I have created him for my glory, I have formed him, yea, I have made him (Isa. 43:7),
이 구절, Book of Isaiah 43:7은 AC.88의 흐름에서 매우 핵심적인 선언입니다. 앞서 보신 사45의 말씀이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온다’는 원리를 말한다면, 이 구절은 ‘그 목적이 무엇인가’를 밝혀 줍니다.
먼저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라는 표현부터 보시면, 여기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주님의 본성과 속성’, 곧 사랑과 진리 전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말은 ‘주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 또는 ‘주님과 결합된 상태에 있는 자’를 가리킵니다. 단순히 겉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적으로 주님과 연결된 상태의 인간을 말합니다.
그다음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라는 부분이 나옵니다. 스베덴보리의 해석에서 ‘영광’(glory)은 언제나 ‘신적 진리의 빛’, 곧 진리가 드러나고 빛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인간이 창조된 목적은 주님의 진리가 그 안에서 드러나고 살아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단순히 존재하기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담고 표현하는 존재로 지어진 것입니다.
이어지는 ‘내가 지었고(formed) 내가 만들었느니라(made)’라는 반복도 의미가 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런 이중 표현을 단순한 강조로 보지 않고, 서로 다른 차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봅니다. ‘형성하다’(formed)는 내적 인간, 곧 의지와 사랑의 영역을, ‘만들다’(made)는 외적 인간, 곧 삶과 행위의 영역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주님이 인간의 속과 겉, 내적과 외적 전체를 모두 지으신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 말씀은 AC.88의 주제와 정확히 맞물립니다. 곧,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거듭남의 과정, 그러니까 싸움, 변화, 안식 등은 모두 주님의 창조와 같은 성격을 가지며, 그 목적은 ‘주님의 영광’, 곧 진리가 그 사람 안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진리가 우리 안에서 드러나도록 지어진 존재입니다.’ 이 한 문장이 이사야 43:7과 AC.88의 핵심을 아주 선명하게 담아 줍니다.
AC.87, 창2:2-3, 영계의 질서로 본 '안식'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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