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90.심화

 

31. ‘26:14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벌하여 그들을 멸하사 그들의 모든 기억을 없이하셨음이니이다 (26:14) The dead shall not live; the Rephaim shall not rise again, because thou hast visited and destroyed them (Isa. 26:14),

 

 

히브리어 르바임(Rephaim)은 개역개정에서 사망하였은즉’으로 번역되었으나, 원문에서는 단순한 죽은 자가 아니라 생명이 완전히 소멸된 것처럼 보이는 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이러한 죽은 자’와 오직 주님에게서 오는 참된 생명을 대조하기 위해서입니다.

 

AC.290에서 스베덴보리는 사람은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오직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사야가 말하는 죽은 자는 살지 못한다’는 말씀은 단순히 육체적 부활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을 거부한 상태 자체를 묘사하는 말씀입니다. 주님에게서 분리된 상태에서는 참된 생명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죽은 자(The dead) 르바임’은 영적 의미에서 선과 진리의 생명을 잃은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스베덴보리의 저술에서 참된 생명은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생명이며, 그 반대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영적으로 죽은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사람에게 생명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부정적인 측면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시 살지 못하겠고’,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라는 말씀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는 결코 영적 생명을 회복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만일 사람 안에 본래 생명이 있다면 스스로 살아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생명을 주실 때만 사람이 살아날 수 있으며, 주님을 떠난 상태에서는 참된 생명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AC.290의 핵심 논지와 정확히 연결됩니다.

 

이어지는 주께서 벌하여 그들을 멸하사’라는 표현도 주님의 자의적인 진노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말씀에서 주님께 돌려지는 진노와 형벌은 인간 편에서 경험하는 결과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곧 사람들이 주님의 생명을 끝내 거부한 결과, 자신들의 악과 거짓 안에 머물게 된 상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 역시 생명의 근원이 사람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심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앞에서 AC.290에 인용된 호6:2와 시85:6과도 아름다운 대조를 이룹니다. 호세아와 시편에서는 주님께서 살리시고’, ‘다시 살리신다’고 말씀하시는 반면, 이사야에서는 주님에게서 떠난 자들이 살지 못하고’, ‘일어나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앞의 두 구절이 생명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여 준다면, 이 구절은 생명을 거부한 결과를 보여 주는 부정적인 측면입니다. 그러나 세 구절 모두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이라는 동일한 진리를 증언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사26:14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매우 분명합니다. 이 구절은 참된 생명이 사람 자신의 것이 아님을 역설적인 방식으로 드러냅니다.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살아 있으며, 그 생명을 거부한 사람은 비록 자연계에서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여도 영적으로는 죽은 상태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사람은 그분으로부터 생명을 받아야만 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AC.290의 중심 메시지를 반대의 경우를 통하여 더욱 선명하게 확증하는 중요한 성경 말씀입니다.

 

 

 

AC.290, 심화 30, ‘시85:6’

AC.290.심화 30. ‘시85:6’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시85:6) Wilt Thou not return, wilt Thou not make us live, That Thy people may be glad in Thee? (Ps. 85:6) 스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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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0.심화

 

30. ‘85:6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85:6) Wilt Thou not return, wilt Thou not make us live, That Thy people may be glad in Thee? (Ps. 85:6)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다시 살리사’라는 표현이 사람의 생명이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고, 오직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매우 직접적으로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살아나는 존재가 아니라 주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살아나는 존재입니다.

 

이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입니다. 여기서 생명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시편 기자는 우리가 다시 살아나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라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생명의 시작과 회복은 모두 주님의 역사이며, 이는 AC.290에서 말하는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다’는 메시지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여기서 다시 살리신다’는 것은 단순히 육체의 생명을 연장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영적인 의미에서는 주님에게서 멀어진 상태에서 다시 주님과 결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의 저술에서 참된 생명은 주님과의 결합이며, 죽음은 그 결합이 끊어진 상태입니다. 따라서 다시 살리신다’는 것은 영적 생명의 회복, 곧 거듭남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이라는 말씀도 같은 진리를 보여 줍니다. 참된 기쁨은 사람이 자기 안에서 만들어 내는 감정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이 사람 안으로 흘러 들어올 때 생기는 결과입니다. 주님께서 먼저 생명을 회복시키시고, 그 결과 사람은 주님 안에서 기뻐하게 됩니다. 생명과 기쁨의 순서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AC.290에서 설명하는 생명의 본질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사람은 생명의 소유자가 아니라 생명의 수용자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생명이 끊임없이 흘러 들어오기 때문에 살아 있으며, 그 인플럭스가 없다면 사람은 한순간도 영적으로 살 수 없습니다. 시편 기자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기도의 형식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앞에서 AC.290에 인용된 호6:2와도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6:2 주께서 우리를 살리시며’라고 선언한다면, 85:6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는 주님의 약속을 선포하는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그 약속을 믿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두 말씀 모두 사람의 생명이 오직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동일한 진리를 증언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시85:6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매우 분명합니다. 이 구절은 사람이 스스로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주님께서 끊임없이 생명을 주실 때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 줍니다. 또한 생명의 회복과 거듭남, 그리고 그로부터 오는 참된 기쁨까지 모두 주님의 역사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사람은 그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존재라는 AC.290의 중심 메시지를 기도와 찬양의 형식으로 아름답게 확증하는 대표적인 성경 말씀입니다.

 

 

 

AC.290, 심화 31, ‘사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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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6: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6:2) After two days He will make us live; in the third day He will raise us up, and we shall live before Him (Hos. 6:2).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살리시며’, ‘일으키시리니’, ‘살리라’는 말씀이 모두 참된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이심을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살아나는 존재가 아니라 주님의 생명에 참여함으로 살아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 구절은 간결하면서도 강력하게 보여 줍니다.

 

이 구절에서 중심이 되는 말씀은 우리를 살리시며’,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입니다. 여기서 주어는 언제나 여호와이십니다. 사람은 자신을 살리거나 스스로 일으키는 존재가 아니라, 주님께서 살리시고 일으키실 때 비로소 살아갑니다. 이것은 AC.290의 핵심 메시지인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다’는 교리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특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는 말씀은 참된 생명이 주님의 임재와 결합 안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성경에서 주님의 앞’은 단순한 공간적 위치가 아니라 주님과의 영적 결합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앞에서 산다’는 것은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며 그분과 함께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독립된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AC.290의 메시지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또한 살리신다’와 일으키신다’는 표현은 육체의 생명보다 영적 생명을 먼저 가리킵니다. 스베덴보리의 저술에서 죽음은 무엇보다 주님에게서 떠난 영적 상태를 의미하며, 살아남은 주님과 다시 연결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을 주님께서 거듭나게 하시고, 새로운 생명으로 이끄시는 과정을 묘사하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이틀 후’와 셋째 날 역시 단순한 시간 계산이 아니라 영적 상태의 변화를 나타냅니다. 스베덴보리는 말씀에서 수와 날은 상태를 의미한다고 반복하여 설명합니다. 따라서 셋째 날’은 시험과 준비의 상태가 끝나고 새로운 생명과 완성이 시작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결국 이 구절은 사람 안에서 주님의 생명이 충만하게 역사하는 거듭남의 완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호6:2는 앞에서 AC.290에 인용된 시69:28과 계시록의 여러 생명책 구절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생명책은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상태를 말하고, 6:2는 그 생명이 실제로 사람 안에서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생명책이 생명의 상태를 말한다면, 6:2는 그 생명의 근원이 언제나 주님이심을 적극적으로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스베덴보리가 호6:2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매우 분명합니다. 그는 이 말씀을 통하여 사람은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오직 주님께서 살리시고 일으키실 때만 참으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살리시며’,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는 세 표현은 모두 사람의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끊임없이 흘러나온다는 동일한 진리를 증언하며, 따라서 이 구절은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고, 사람은 그 생명을 받아 살아간다는 AC.290의 중심 메시지를 아름답고도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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