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93.심화

 

3. 16:7

 

내가 너를 들의 풀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16:7) I have caused thee to multiply as the growth of the field, and thou hast increased and hast grown up, and hast come to excellent ornaments (Ezek. 16:7).

 

 

이 구절은 Book of Ezekiel 16:7로, AC.93의 흐름에서는 안식 상태에 들어간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성장과 아름다움의 확장’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앞에서 보신 에스겔 34장의 평안과 열매가 질서가 잡힌 상태’라면, 여기서는 그 상태 위에서 생명이 풍성하게 자라나는 모습’이 강조됩니다.

 

먼저 내가 너를 들의 풀같이 많게 하였다’는 표현을 보시면, 여기서 ’은 자연 상태, 아직 인위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고, ‘’은 가장 기초적인 생명, 곧 선과 진리의 첫 싹과 같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주님께서 인간 안에 생명의 시작을 주시고, 그것을 자라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점은 내가...많게 하였다’는 표현입니다. 여기서도 반복되듯이, 성장의 근원은 인간이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그다음 네가 크게 자라고’는 단순한 양적 증가가 아니라, ‘내적 생명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처음에는 작은 이해와 작은 선에서 시작했지만, 점점 더 깊어지고 넓어지며 삶 전체를 채워가는 상태입니다. 이것은 앞에서 보신 비가 내리는 것’, ‘열매를 맺는 것’과 연결되는 계속적인 성장의 단계입니다.

 

이어 심히 아름다우며’, 또는 영어의 excellent ornaments’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여기서 아름다움’은 외적인 장식이 아니라 질서가 완성된 상태에서 드러나는 조화’를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아름다움’은 언제나 선과 진리가 올바르게 결합된 상태’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내적 질서가 바로 서면, 그 사람 전체가 하나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으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AC.93의 문맥과 연결하면 이렇게 됩니다. 여섯 날의 싸움을 지나 안식에 들어간 사람은 단지 쉬는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계속 자라고 풍성해지며, 그 결과 그의 삶 전체가 아름다움’, 곧 질서 있는 조화로 드러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안식은 정지가 아니라 질서 안에서의 생명력 있는 성장’입니다.

 

주님 안에서의 삶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깊고 더 아름답게 자라는 삶입니다.’

 

이 구절은 단순한 번영의 약속이 아니라, ‘주님이 이루신 질서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풍성하고 조화롭게 변화되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AC.93, 심화 2, ‘호6:2-3’

AC.93.심화 2. ‘호6:2-3’ 2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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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3.심화

 

2. 6:2-3

 

2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하니라 (6:2, 3) After two days will he vivify us; in the third day he will raise us up, and we shall live before him and we shall know, and shall follow on to know Jehovah: his going forth is prepared as the dawn, and he shall come unto us as the rain, as the late rain watering the earth (Hos. 6:2–3).

 

 

이 구절은 Book of Hosea 6:2-3으로, AC.93의 맥락에서는 거듭남의 완성과 안식에 이르는 과정’을 시간 개념이 아니라 상태의 단계’로 매우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표 본문입니다.

 

먼저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라는 표현을 보시면, 여기서 이틀’, ‘셋째 날’은 자연적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상태의 단계’를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의 흐름에서 보면, ‘’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 곧 싸움과 준비의 상태를 의미하고, ‘’은 완성, 충만, 결합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셋째 날에 일으키신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이 지난 뒤가 아니라, ‘과정이 완성된 상태에서 새 생명으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이 점은 주님의 사흘 만에 부활’과도 같은 구조입니다.

 

그다음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는 말씀은 단순히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의 임재 안에서 사는 상태’, 곧 주님과 결합된 생명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보신 안식’의 상태입니다. 싸움이 끝나고, 분열이 정리되고, 이제 주님 앞에서 사는 상태입니다.

 

이어지는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여기서 알다’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경험과 삶을 통해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거듭남은 단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깊이 주님을 알아가는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앞의 셋째 날’이 어떤 완성이라면, 여기서는 그 완성 이후에도 계속되는 살아 있는 관계’가 강조됩니다.

 

그리고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나니’라는 부분은, 주님의 임재가 점점 밝아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새벽빛’은 어둠에서 빛으로 넘어가는 전환, 곧 진리가 점점 분명해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거듭남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경험되는 빛의 열림’입니다.

 

마지막으로 비와 같이,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서 ’는 앞에서도 보신 것처럼 진리의 유입’, 곧 주님의 진리가 인간 안으로 들어와 삶을 적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늦은 비’는 완성에 가까운 상태에서 주어지는 더 깊고 풍성한 진리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처음에는 기본적인 진리가 오고, 이후에는 더 깊은 진리가 와서 삶을 완성해 갑니다.

 

이 전체를 한 흐름으로 묶으면 이렇게 됩니다. ‘사람은 과정을 거쳐 새 생명으로 일으켜지고, 그 후에는 주님 안에서 살며 점점 더 주님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주님의 진리가 계속해서 그를 적시며 완성으로 이끈다.’ 이것이 AC.93이 말하는 안식 이후에도 계속되는 살아 있는 생명’입니다.

 

셋째 날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그날부터 우리는 주님 안에서 살며, 계속해서 더 깊이 주님을 알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보시면, 이 말씀은 단순한 회복 약속이 아니라, ‘거듭남의 완성과 그 이후의 삶’까지 함께 보여주는 매우 깊은 구조를 가진 말씀으로 열리게 됩니다.

 

 

 

AC.93, 심화 3, ‘겔16:7’

AC.93.심화 3. ‘겔16:7’ 내가 너를 들의 풀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겔16:7) I have caused thee to multiply as the growth of the field, and thou hast increased and hast grown up, and hast come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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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3, 심화 1, ‘겔34:25-27, 31’

AC.93.심화 1. ‘겔34:25-27, 31’ 25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에서 잘지라 26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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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3.심화

 

1. 34:25-27, 31

 

25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에서 잘지라 26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내 산 사방에 복을 내리며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를 내리리라 27그리한즉 밭에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그 소산을 내리니 그들이 그 땅에서 평안할지라 내가 그들의 멍에의 나무를 꺾고 그들을 종으로 삼은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낸 후에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겠고, 31내 양 곧 내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34:25-27, 31) I will make with them a covenant of peace, and will cause the evil wild beast to cease out of the land, and they shall dwell confidently in the wilderness, and sleep in the woods; and I will make them and the places round about my hill a blessing; and I will cause the rain to come down in his season; rains of blessing shall they be. And the tree of the field shall yield its fruit, and the earth shall yield its increase, and they shall be upon their ground in confidence, and shall know that I am Jehovah, when I have broken the reins of their yoke, and delivered them out of the hand of those that make them to serve them; and ye my flock, the flock of my pasture, ye are a man, and I am your God (Ezek. 34:25–27, 31).

 

 

이 구절은 Book of Ezekiel 34장의 말씀으로, AC.93에서는 ‘천적 인간의 상태’, 곧 여섯 날의 싸움 이후에 들어가는 ‘안식의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매우 풍성하게 보여주는 대표 본문으로 사용됩니다. 문자로 보면 평화로운 목자의 약속처럼 보이지만, 속뜻으로는 ‘거듭남이 이루어진 사람 안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내적 변화와 질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먼저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치게 하리니’라는 부분을 보시면, 여기서 ‘화평’은 단순한 감정적 평온이 아니라, 선과 진리가 하나로 결합된 상태, 곧 더 이상 근본적인 내적 싸움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악한 짐승’은 외부의 동물이 아니라, 사람 안에 있는 거칠고 무질서한 욕망과 충동, 곧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본성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주님께서 그 사람 안의 악한 충동을 다스리시어 그 사람을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안식의 출발입니다.

 

이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에서 잘지라’는 표현은 겉으로 보면 위험해 보이는 환경에서도 두려움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영적으로는, 이전에는 불안과 유혹의 장소였던 상태들, 곧 ‘광야’와 같은 내적 상태에서도 이제는 평안히 거할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환경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내적 질서가 바뀌었기 때문에’ 평안이 유지되는 상태입니다.

 

그다음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를 내리리라’는 말씀에서 ‘’는 스베덴보리의 용어로 ‘진리의 유입’, 곧 주님의 진리가 인간의 이해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때를 따라’라는 표현이 붙어 있습니다. 이것은 무질서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상태에 맞게 정확한 시기에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비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을 살리는 ‘복된 비’가 됩니다.

 

이어 ‘밭에 나무가 열매를 맺고 땅이 소산을 낸다’는 표현은 아주 전형적인 상응 구조입니다. ‘나무’는 사랑과 인식의 상태, ‘열매’는 그로부터 나오는 삶의 결과, 곧 선한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은 겉 사람, 삶의 실제 영역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나무, 곧 내적 상태가 바로 서면, 열매와 소산, 곧 외적 삶도 자연스럽게 선을 맺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말씀드린 ‘이성이 사랑의 봉사자가 되는 상태’와도 연결됩니다.

 

또 ‘멍에의 나무를 꺾고... 종으로 삼은 자의 손에서 건져낸다’는 표현은, 이전에 인간을 지배하던 것, 곧 자기 사랑, 세상 사랑, 그리고 그것에 결합된 거짓의 힘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해방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겠고’라고 합니다. 즉, 주님을 참으로 아는 것은 지식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자유를 경험할 때 이루어집니다.

 

마지막으로 ‘내 양 곧 내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는 선언은 이 모든 과정의 결론입니다. ‘’은 선을 사랑하는 상태의 인간을 의미하고, ‘초장’은 그 선이 양육되는 진리의 환경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너희는 사람이요’라는 말은 단순한 생물학적 인간이 아니라, ‘참된 인간됨’, 곧 주님과 결합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전체를 한 흐름으로 묶으면 이렇게 정리됩니다. ‘주님이 인간 안의 악을 잠잠케 하시고, 진리를 때에 맞게 공급하시며, 그 결과 선한 삶이 자연스럽게 열매 맺게 하시고, 마침내 그를 자유와 평안의 상태로 이끄신다.’ 이것이 바로 AC.93이 말하는 ‘천적 인간의 상태’, 곧 안식의 실제 모습입니다.

 

안식은 아무 일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주님이 내 안의 질서를 바로 세우셔서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평안히 움직이는 상태입니다.’

 

 

 

AC.93, 심화 2, ‘호6:2-3’

AC.93.심화 2. ‘호6:2-3’ 2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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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3, 창2:5-6, 말씀 전체에 일관되게 흐르는 ‘천적 인간의 상태’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2:5, 6)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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