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And Jehovah God said, Behold, the man is become as one of us, knowing good and evil; and now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 (3:22)

 

AC.283

 

네 번째 후손에 대하여. 이들에게서는 자연적 선(natural good)이 소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만일 그들이 새롭게 창조되어, 곧 거듭나서 신앙의 천적인 것들(the celestial things of faith)을 배웠다면 오히려 멸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것을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라는 말씀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22절) Of the fourth posterity, in which natural good began to be dissipated, and which, had they been created anew or instructed in the celestial things of faith, would have perished, which is meant by,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 (verse 22)

 

 

해설

 

AC.283은 태고교회 후손들의 상태가 세대를 거치며, 어떻게 점차 낮아졌는지를 설명하는 연속적인 개요 가운데 하나입니다. AC.282에서 첫 번째 후손에게는 천적 영적 선이 있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후손에게는 자연적 선이 남아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네 번째 후손에 이르러서는 그 자연적 선마저 점차 소멸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도덕성이 약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연적 바탕 자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자연적 선’은 사람의 자연적 삶 안에 나타나는 순박함, 온순함, 정직함, 인정, 이웃에 대한 호의와 같은 선을 말합니다. 이러한 선이 아직 남아 있을 때에는, 비록 높은 퍼셉션이나 천적 사랑을 잃었더라도 주님께서 그 사람을 붙드시고, 더 깊은 거듭남으로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네 번째 후손에게서는 감각과 자기 사랑이 점점 강해지면서 이 자연적 선조차 흩어지고 소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매우 놀라운 말을 덧붙입니다. 곧 이들이 만일 거듭나서 신앙의 천적인 것들을 배웠다면 오히려 멸망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보통은 사람이 높은 진리를 많이 알수록 더 구원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높은 진리를 아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내적 상태가 준비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너무 높은 진리가 주어지면, 그것은 구원의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모독의 위험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앙의 천적인 것들’은 주님에 대한 사랑과 그 사랑에서 나오는 선, 퍼셉션, 순진, 자비와 같은 가장 높은 신앙의 내용들을 뜻합니다. 이것들은 단순히 머리로 배우는 교리가 아니라, 의지와 삶 전체로 받아들여야 하는 거룩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자연적 선마저 거의 소멸한 사람에게 이러한 천적인 것들이 주어지면, 그는 그것을 참으로 사랑하거나 살아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입과 지식으로는 인정하면서도 마음과 삶으로는 거부하게 됩니다.

 

이것이 왜 멸망으로 이어지는지를 이해하려면 모독(profanation)의 원리를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은 진리를 전혀 모를 때보다, 진리를 알고 인정한 뒤에 그것을 부정하고 악한 삶과 섞을 때 더 위험한 상태에 빠집니다. 거룩한 것과 악한 것을 결합하면 사람 안에서 선과 악, 진리와 거짓이 뒤섞이며, 그 결과 주님께서 사람을 회복시키실 수 있는 질서 자체가 파괴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람을 모독으로부터 보호하시기 위하여, 그가 감당할 수 없는 높은 진리를 때로는 알지 못하게 하시고, 더 외적인 상태에 머물게 하십니다.

 

3:22의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는 말씀도 이런 의미입니다. 여기서 ‘손을 든다’는 것은 자기 능력으로 취하려는 것을 의미하고, ‘생명나무’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천적 사랑과 그 생명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사람이 자기 힘과 자기 지혜로 천적인 것을 차지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러한 사람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영원히 산다는 것은 참된 영생을 얻는다는 뜻이 아니라, 악과 거짓을 거룩한 것과 결합한 상태가 굳어져 영원히 지속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사람을 생명나무에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신 것은 형벌이 아니라 보호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구원에서 제외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더 깊은 모독과 정죄에 빠지지 않도록 천적인 것에 접근하는 길을 막으신 것입니다. 자연적 선마저 거의 사라진 상태에서는 높은 천적 진리를 직접 주시는 것보다, 더 낮고 외적인 질서 안에 머물게 하시는 편이 그들의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더 자비로운 조치였습니다.

 

AC.283은 진리가 많을수록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 진리를 사랑하고 살아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칩니다. 네 번째 후손은 자연적 선이 소멸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앙의 천적인 것들을 직접 받으면 그것을 모독하여 오히려 멸망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으심으로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이 단락은 주님의 섭리가 언제나 더 많은 계시를 주시는 방식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사람이 감당하지 못할 거룩한 것을 가리시는 방식으로도 나타난다는 깊은 진리를 보여줍니다.

 

 

 

AC.282, 창3:20-24, ‘창3:21 개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And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for his wife coats of skin, and clothed them. (창3:21) AC.282 그 첫 번째 후손에 관하여, 그 안에는 천적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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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82.심화

 

1. ‘celestial spiritual good’, ‘natural good

 

AC.282에서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의 후손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영적으로 낮아지는 과정을 매우 간결하게 요약합니다. 그는 첫 번째 후손에게는 ‘천적 영적 선(celestial spiritual good)이 있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후손에게는 ‘자연적 선(natural good)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 두 표현은 단순히 선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사람 안에서 어떻게 점차 약화되어 갔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먼저 ‘천적 영적 선’은 가장 높은 수준의 선인 ‘천적 선(celestial good)과는 조금 다릅니다. 천적 선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 자체를 말합니다. 그러나 ‘천적 영적 선’은 그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와 이웃을 향해 나타나는 선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에 대한 사랑이 근원이 되고, 그 사랑이 이웃을 사랑하고 진리를 실천하는 삶으로 나타난 상태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의 첫 후손이 비록 처음 태고교회만큼 높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천적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영적 선 안에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이 때문에 ‘천적 영적 선’은 사랑과 신앙이 아직 분리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람은 먼저 주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선을 행하며, 그 선 안에서 진리를 깨닫습니다. 즉, 사랑이 여전히 중심이고, 신앙은 그 사랑의 표현입니다. 태고교회의 첫 후손들은 처음 교회만큼 퍼셉션이 밝지는 않았지만, 아직 이러한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는 더욱 낮은 상태로 내려갑니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자연적 선’입니다. 자연적 선이란 겉으로는 선하게 보이는 삶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천적 사랑에서 직접 흘러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이웃을 돕고, 정직하게 살며, 사회 질서를 지키는 것처럼 인간 사회에서 나타나는 여러 선한 행위들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선은 여전히 선이지만, 그 근원이 천적 사랑보다는 자연적인 성향이나 교육, 양심, 사회적 질서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자연적 선이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자연적 선도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중요한 바탕입니다. 사람은 먼저 자연적 차원에서 선을 배우고 실천하며, 그 위에 영적 선과 천적 선이 점차 세워집니다. 따라서 자연적 선은 거듭남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그 안에만 머무르면 외적 도덕성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자연적 선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과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AC.282에서 말하는 교회의 변화는 바로 이러한 질서의 변화입니다. 처음 태고교회는 주님 사랑 자체 안에서 살았습니다. 그다음 세대는 아직 그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영적 선을 가지고 있었지만, 점차 그 밝음이 약해졌습니다. 다시 그다음 세대는 주님 사랑의 직접적인 퍼셉션을 잃고, 주로 자연적 선에 의하여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선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선의 근원이 점점 더 바깥쪽으로 이동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변화를 스베덴보리는 ‘가죽옷(coats of skin)이라는 상징으로 설명합니다. 옷은 사람의 가장 바깥을 덮는 것을 의미하며, 가죽은 더욱 외적인 생명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사람에게 가죽옷을 입혀 주셨다는 것은, 높은 천적 상태를 잃은 사람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이제 그들의 수준에 맞는, 보다 외적인 선과 진리를 통하여 계속 보호하시고 인도하셨다는 뜻입니다. 비록 이전보다 낮은 상태가 되었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에게도 여전히 구원의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천적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의 차이는 선의 유무가 아니라 선의 근원에 있습니다. 천적 영적 선은 주님에 대한 사랑에서 직접 흘러나오는 선이며, 자연적 선은 그보다 한 단계 바깥에서 나타나는 선입니다. AC.282는 태고교회의 후손들이 점차 높은 영적 상태를 잃어갔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주님께서는 그들이 어떤 상태에 있든지 그 수준에 맞는 선과 진리를 마련하시어 끝까지 구원의 섭리를 이어 가셨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AC.282, 창3:20-24, ‘창3:21 개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And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for his wife coats of skin, and clothed them. (창3:21) AC.282 그 첫 번째 후손에 관하여, 그 안에는 천적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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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And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for his wife coats of skin, and clothed them. (3:21)

 

AC.282

 

그 첫 번째 후손에 관하여, 그 안에는 천적 영적 선(celestial spiritual good)이 있었으며, 또한 두 번째와 세 번째 후손에 관하여, 그 안에는 자연적 선(natural good)이 있었는데,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the coat of skin)을 지어 입히시니라(the coat of skin which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his wife)의 의미입니다. (21) Of its first posterity, in which there was celestial spiritual good; and of its second and third, in which there was natural good, signified by the “coat of skin which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his wife.” (verse 21)

 

 

해설

 

AC.282는 창3:21에 대한 해설의 서론입니다. 지금까지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의 타락과 홍수 전까지의 쇠퇴 과정을 설명해 왔는데, 여기서는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나타납니다. 비록 태고교회가 점차 타락하고 있었지만, 그 모든 후손이 한꺼번에 완전히 멸망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후손들 가운데 여전히 선의 흔적과 생명의 가능성을 보존하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의 후손들을 여러 세대로 구분합니다. 첫 번째 후손은 아직 ‘천적 영적 선(celestial spiritual good)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원래 태고교회의 순수한 천적 상태보다는 한 단계 낮아진 상태이지만, 여전히 주님에 대한 사랑이 중심이 되는 매우 높은 상태였습니다. 다시 말해, 완전한 타락이 시작되기 이전의 초기 후손들입니다.

 

그다음 두 번째와 세 번째 후손은 더 낮은 상태로 내려갔지만, 그래도 ‘자연적 선(natural good)은 남아 있었습니다. 여기서 자연적 선이란 천적 선이나 영적 선처럼 직접 주님께 연결된 높은 상태는 아니지만, 외적 삶 가운데 남아 있는 선한 성향, 온순함, 질서, 도덕성, 순종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선을 말합니다. 즉 교회의 본래 영광은 잃어버렸지만, 인간다움과 선의 흔적은 아직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상태를 창3:21의 ‘가죽옷’으로 설명합니다. 일반적인 해석에서는 가죽옷을 단순히 인간의 수치를 가려 주기 위한 옷으로 이해하지만, 스베덴보리에게 옷은 언제나 어떤 진리나 상태를 덮고 보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가죽(skin)은 인간의 가장 바깥층을 의미하므로, 가죽옷은 내적인 천적 상태가 사라진 이후에도 남아 있는 외적 선의 상태를 상징합니다.

 

이 점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왜냐하면 창3의 앞부분은 저주와 심판으로 가득 차 있지만, 21절에서는 오히려 주님의 자비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신을 가렸던 것과 달리, 가죽옷은 주님께서 직접 지어 입히신 것입니다. 즉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상태 속에서도 주님께서 남겨 두신 선과 보호가 있다는 뜻입니다.

 

AC.282는 가죽옷이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타락 이후에도 주님께서 후손들 안에 보존하신 선의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 후손에게는 아직 천적 영적 선이 있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후손에게는 자연적 선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남겨진 선이 훗날 새로운 교회가 세워질 수 있는 토대가 됩니다. 따라서 가죽옷은 심판의 상징이 아니라, 타락한 인류를 향한 주님의 보호와 보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화

 

1. ‘celestial spiritual good’, ‘natural good

 

 

AC.282, 심화 1, ‘celestial spiritual good’, ‘natural good’

AC.282.심화 1. ‘celestial spiritual good’, ‘natural good’ AC.282에서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의 후손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영적으로 낮아지는 과정을 매우 간결하게 요약합니다. 그는 첫 번째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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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83, 창3:20-24, ‘창3:22 개요’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And Jehovah God said, Behold, the man is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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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81, 창3:20-24, ‘창3:20 개요’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And the man [homo] called his wife’s name Eve, because she was the mother of all living. (창3:20) AC.281 천적 교회였던 태고교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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