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1:14-17)

 

AC.33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사랑도 없이는 생명이라는 게 있을 수도, 그리고 사랑에서 흘러나오지 않는 기쁨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음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사랑이 어떠한가에 따라 생명이 그러하고, 기쁨도 그러합니다. 만일 사랑(loves), 같은 말이지만 욕망(desires)을 제거한다면, 욕망은 사랑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즉시 멈추고, 사람은 마치 죽은 사람과 같이 될 것입니다. 실제로 저는 이것을 생생히 본 적이 있습니다.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the loves of self and of the world)에도 어떤 생명과 기쁨의 모습 같은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은 참된 사랑과는 전적으로 반대됩니다. 참된 사랑이란 사람이 무엇보다도 주님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는 만큼, 그만큼 이웃을 미워하게 되고, 그 결과 주님을 미워하게 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그것들은 사랑이 아니라 미움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사랑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참된 생명은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의 생명이며, 참된 기쁨은 그 생명에서 나오는 기쁨입니다. 참된 사랑은 하나뿐이므로, 참된 생명도 하나뿐입니다. 그 하나의 생명에서 참된 기쁨과 참된 행복이 흘러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천국(heavens)의 천사들이 누리는 기쁨과 행복입니다. It is in everyone’s power very well to know that no life is possible without some love, and that no joy is possible except that which flows from love. Such however as is the love, such is the life, and such the joy: if you were to remove loves, or what is the same thing, desires—for these are of love—thought would instantly cease, and you would become like a dead person, as has been shown me to the life. The loves of self and of the world have in them some resemblance to life and to joy, but as they are altogether contrary to true love, which consists in a man’s loving the Lord above all things, and his neighbor as himself, it must be evident that they are not loves, but hatreds, for in proportion as anyone loves himself and the world, in the same proportion he hates his neighbor, and thereby the Lord. Wherefore true love is love to the Lord, and true life is the life of love from him, and true joy is the joy of that life. There can be but one true love, and therefore but one true life, whence flow true joys and true felicities, such as are those of the angels in the heavens.

 

 

해설

 

이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생명과 사랑의 관계를 가장 단순하면서도 단호하게 정리합니다. 생명은 사랑 없이 존재할 수 없고, 기쁨은 사랑에서 흘러나오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신앙적 선언이기 이전에, 인간 존재에 대한 보편적 관찰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면, 삶이 살아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는 언제나 어떤 사랑, 어떤 욕망이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점을 단순한 논증이 아니라, 영적 체험에 근거해 말합니다. 사랑과 욕망이 제거되면 생각이 즉시 멈추고, 사람은 죽은 사람과 같은 상태가 된다는 것을 실제로 봤다고 말합니다. 이는 생각이 이성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시작된다는 그의 일관된 인간 이해를 드러냅니다. 사랑이 멈추면 생각도 멈춥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전환이 나옵니다. 모든 사랑이 참된 사랑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도 겉으로는 생명과 기쁨을 닮은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은 거기서 열정과 만족을 느끼고,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그냥 닮은 것’이라고 부르며, 본질적으로는 참된 사랑과 반대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참된 사랑의 정의에 있습니다. 참된 사랑은 주님을 무엇보다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정의 앞에 서면,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은 즉시 그 정체가 드러납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는 만큼, 그는 필연적으로 이웃을 수단화하거나 배제하게 되고, 결국 주님이 질서로 세워 놓으신 사랑의 방향에 거슬러 서게 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것들을 사랑이 아니라 미움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이 말은 감정의 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의 문제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바깥을 향해 흐르는데, 자기 사랑은 모든 것을 자기에게로 끌어당깁니다. 이 방향성의 전도(顚倒)가 곧 미움입니다. 그래서 자기 사랑이 강해질수록,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이웃을 미워하게 되고, 그 근원에서 주님을 거부하게 됩니다.

 

이러한 구분 위에서 스베덴보리는 다시 한번 핵심을 정리합니다. 참된 사랑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참된 생명은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의 생명이며, 참된 기쁨은 그 생명에서 흘러나오는 기쁨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중간 단계나 타협이 없습니다. 사랑이 둘일 수 없듯이, 참된 생명도 둘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참된 기쁨과 참된 행복 역시 하나의 근원에서만 나옵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의 천사들이 누리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외적 조건이나 성취에서 오지 않으며, 비교나 경쟁에서도 오지 않습니다. 사랑의 방향이 주님을 향해 바로 서 있을 때, 그 자체로 흘러나오는 생명의 상태입니다.

 

AC.33은 넷째 날의 ‘광명체’ 논의를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차원으로 끌어내립니다. 빛과 열, 사랑과 신앙의 문제는 결국 삶이 어디에서 생명을 얻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이 글은 독자에게 단순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 사랑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사랑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AC.32, 창1:14-17, ‘두 큰 광명체’인 해는 사랑, 달은 신앙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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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1:14-17)

 

AC.32

 

사랑과 신앙을 처음에는 함께 ‘큰 광명체들(great luminaries)이라 하고, 그다음에는 사랑을 ‘더 큰 광명체(greater luminary), 신앙을 ‘더 작은 광명체(lesser luminary)라 합니다. 또한 사랑을 가리켜서는 ‘낮을 다스린다(rule by day) 하고, 신앙을 가리켜는 ‘밤을 다스린다(rule by night)고 합니다. 이런 내용이 바로 아르카나(arcana)인데, 특히 이 마지막 시대에 숨겨져 있는 것을 이제 제가 설명해도 좋다는 주님의 신적 자비(the Lord’s Divine mercy)가 있었습니다. 이 아르카나가 특히 이 마지막 시대에 가려져 있는 이유는, 지금이 세대의 종말(the consummation of the age)이기 때문이며, 이때에는 사랑이 거의 없고, 그 결과 신앙도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복음서에서 다음과 같이 친히 예고하신 바와 같습니다. Love and faith are first called “great luminaries,” and afterwards love is called a “greater luminary,” and faith a “lesser luminary”; and it is said of love that it shall “rule by day,” and of faith that it shall “rule by night.” As these are arcana which are hidden, especially in this end of days, it is permitted of the Lord’s Divine mercy to explain them. The reason why these arcana are more especially concealed in this end of days is that now is the consummation of the age, when there is scarcely any love, and consequently scarcely any faith, as the Lord himself foretold in the evangelists in these words: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4:29) The sun shall be darkened, and the moon shall not give her light, and the stars shall fall from heaven, and the powers of the heavens shall be shaken (Matt. 24:29).

 

여기서 ‘(sun)는 사랑, 곧 어두워지는 사랑을, ‘(moon)은 신앙, 특히 빛을 내지 못하는 신앙을, ‘별들(stars)은 신앙 관련 지식(the knowledges of faith), 즉 하늘에서 떨어지는, 그러니까 하늘의 권능들(virtues and powers of the heavens) 의미합니다. By the “sun” is here meant love, which is darkened; by the “moon” faith, which does not give light; and by the “stars,” the knowledges of faith, which fall from heaven, and which are the “virtues and powers of the heavens.”

 

[2] 태고교회는 사랑 자체 외에 무슨 다른 신앙을 알지 못했습니다. 천적 천사들 역시 사랑에 속한 신앙 외에 무슨 다른 신앙을 알지 못합니다. 온 천국은 사랑의 천국이며, 천국(heavens)에는 사랑의 생명 외에 다른 생명은 없습니다. 모든 천국 행복이 여기서 나오는데, 그 그레이트(great)함은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 어떤 인간의 생각으로도 결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영향을 받는 이들은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모든 사랑과, 그 결과 모든 생명, 곧 사랑에서만 나오는 모든 생명과 모든 행복이 오직 주님에게서만 온다는 사실을 알고, 고백하며, 지각합니다(perceive). 그들은 자신에게서 나오는 사랑이나 생명이나 행복은 조금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압니다. 모든 사랑이 주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은, 주님의 변화산 사건에서 큰 광명체, 곧 ‘(sun)로도 표현되었습니다. 기록되기를, The most ancient church acknowledged no other faith than love itself. The celestial angels also do not know what faith is except that which is of love. The universal heaven is a heaven of love, for there is no other life in the heavens than the life of love. From this is derived all heavenly happiness, which is so great that nothing of it admits of description, nor can ever be conceived by any human idea. Those who are under the influence of love, love the Lord from the heart, but yet know, declare, and perceive, that all love, and consequently all life—which is of love alone—and thus all happiness, come solely from the Lord, and that they have not the least of love, of life, or of happiness, from themselves. That it is the Lord from whom all love comes was also represented by the great luminary or “sun” at his transfiguration, for it is written: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17:2) His face did shine as the sun, and his raiment was white as the light (Matt. 17:2).

 

얼굴은 가장 안쪽의 것들을 뜻하고, 옷은 거기서 나오는 것들을 뜻합니다. 따라서 주님의 신성(the Lord’s Divine)은 ‘(sun), 곧 사랑으로, 그의 인성(his human)은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 곧 ‘(light)으로 상징되었습니다. Inmost things are signified by the face, and the things that proceed from them by the raiment. Thus the Lord’s Divine was signified by the “sun,” or love; and his human by the “light,” or wisdom proceeding from love.

 

 

해설

 

이 단락은 넷째 날의 핵심을 가장 깊은 차원에서 풀어 주는 부분입니다. 사랑과 신앙을 가리켜 왜 처음에는 함께 ‘큰 광명체들’이라 하고, 그다음에는 사랑은 더 크고 신앙이 더 작다고 하는지가 여기서 분명해집니다. 이는 가치 평가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질서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랑은 생명의 근원이고, 신앙은 그 생명이 인식과 이해의 차원에서 드러나는 방식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사랑이 우선합니다.

 

사랑을 가리켜 ‘낮을 다스린다’ 하는 말은, 인간의 밝은 상태, 곧 생명이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상태를 이끈다는 뜻입니다. 반면 신앙을 가리켜 ‘밤을 다스린다’ 하는 말은, 아직 완전한 빛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게 하는 기능을 한다는 뜻입니다. 밤에는 해가 없지만 달과 별이 길을 비추듯이, 신앙은 사랑이 완전히 지배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인간을 붙잡아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아르카나가 특히 ‘이 마지막 시대’에 숨겨져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입니다. 지금은 사랑이 거의 사라진 시대이기 때문에, 사랑을 신앙의 본질로 이해하는 시각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지식이나 교리로만 이해되고, 사랑은 부차적인 덕목으로 밀려났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사랑이 신앙의 생명이라는 사실이 안 보이게 됩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서 하신 말씀은 바로 이 상태를 가리킵니다.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으며 별이 떨어진다는 말은, 자연 재난의 예고가 아니라, 교회와 인간 내면의 상태 진단입니다. 사랑이 식으면 신앙은 빛을 잃고, 신앙의 지식들조차 삶과 연결되지 못한 채 흩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하늘의 덕과 능력이 흔들리는 것’이라고 부릅니다.

 

태고교회와 천적 천사들에 대한 언급은 이 글의 방향을 분명히 합니다. 그들에게 신앙은 사랑과 분리된 어떤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사랑을 살았고, 그 사랑 안에서 진리를 보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사랑에서 나온 신앙’ 외의 신앙 개념 자체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의 상태입니다.

 

천국이 사랑의 천국이라는 말은, 천국이 감정적으로 따뜻한 장소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 방식의 문제입니다. 천국에서는 모든 생명이 사랑에서 나오며, 그 사랑이 곧 생명입니다. 그래서 천국의 행복은 외부 조건에서 오지 않고, 사랑 그 자체에서 흘러나옵니다. 인간의 언어와 상상력이 그 행복을 담아낼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의 영향을 받는 이들이 갖는 태도는 매우 특징적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동시에 그 사랑이 자기에게서 나왔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랑과 생명과 행복이 주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알고, 말하며, 지각합니다. 이것이 참된 겸손이며, 참된 자유입니다.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 없다는 인식은 무력함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 끊임없이 공급된다는 확신입니다.

 

마지막으로 변화산 사건은 이 모든 내용을 하나의 장면으로 요약합니다. 주님의 얼굴이 해처럼 빛났다는 말은, 주님의 가장 안쪽 본질이 사랑임을 뜻합니다. 그의 옷이 빛처럼 희어졌다는 말은, 그 사랑에서 지혜와 진리가 흘러나와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얼굴과 옷의 구분은, 신적 본질인 신성과 그것의 발현인 인성을 구분하면서도 분리하지 않습니다.

 

AC.32는 결국 이것을 말합니다. 신앙은 빛이지만, 빛은 해에서 옵니다. 신앙은 생명을 비추지만, 생명은 사랑에 있습니다. 이 질서를 잃을 때 교회는 어두워지고, 이 질서를 회복할 때 인간 안에 다시 아침이 옵니다.

 

 

 

AC.33, 창1:14-17, ‘사랑’, 생명과 기쁨의 근원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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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1, 창1:14-17, ‘큰 광명체들’, 곧 '해, 달, 별'의 속뜻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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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1:14-17)

 

AC.31

 

큰 광명체들(great luminaries)의 의미가 사랑과 신앙이며, 또한 ‘해, 달, 별(sun, moon, and stars)이라 한다는 사실은 선지자들의 글을 보면 분명합니다. 에스겔에서처럼 말입니다. That the “great luminaries” signify love and faith, and are also called “sun, moon, and stars,” is evident from the prophets, as in Ezekiel:

 

7내가 너를 불 끄듯 할 때에 하늘을 가리어 별을 어둡게 하며 해를 구름으로 가리며 달이 빛을 내지 못하게 할 것임이여 8하늘의 모든 밝은 빛을 내가 네 위에서 어둡게 하여 어둠을 네 땅에 베풀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2:7, 8) When I shall extinguish thee, I will cover the heavens and make the stars thereof black; I will cover the sun with a cloud, and the moon shall not give her light; all the luminaries of the light of heaven will I make black over thee, and I will set darkness upon thy land (Ezek. 32:7–8).

 

이 구절들은 바로와 애굽을 다루는데, 말씀에서 바로와 애굽은 감각적인 것과 단지 지식적인 것의 원리를 뜻합니다. 여기서는 감각과 단순한 지식에 의해 사랑과 신앙이 소멸되었음을 말합니다. 이사야에서도 그렇습니다. In this passage Pharaoh and the Egyptians are treated of, by whom are meant, in the Word, the principle of mere sense and of mere knowledge [sensuale et scientificum]; and here, that by things of sense and of mere knowledge, love and faith had been extinguished. So in Isaiah:

 

9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 10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 (13:9, 10) The day of Jehovah cometh to set the land in desolation, for the stars of heaven and the constellations thereof shall not give their light; the sun is darkened in his going forth, and the moon shall not cause her light to shine (Isa. 13:9–10).

 

요엘에서도입니다. Again, in Joel:

 

1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2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새벽빛이 산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 10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2:1-2, 10) The day of Jehovah cometh, a day of darkness and of thick darkness; the earth trembleth before him, the heavens are in commotion; the sun and the moon are blackened, and the stars withdraw their brightness (Joel 2:1–2, 10).

 

[2] 다시 이사야에서는 주님의 강림과 이방인들의 밝아짐, 곧 새 교회와, 특히 어둠 가운데 있다가 빛을 받아 거듭나는 모든 사람에 대해 말하면서, Again, in Isaiah, speaking of the advent of the Lord and the enlightening of the gentiles, consequently of a new church, and in particular of all who are in darkness, and receive light, and are being regenerated:

 

1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20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 (60:1-3, 20) Arise, shine, for thy light is come; behold darkness covers the earth, and thick darkness the peoples, and Jehovah shall arise upon thee, and the gentiles shall come to thy light, and kings to the brightness of thy rising; Jehovah shall be to thee a light of eternity, thy sun shall no more go down, neither shall thy moon withdraw itself, for Jehovah shall be to thee a light of eternity (Isa. 60:1–3, 20).

 

시편도 이렇게 말합니다. So in David:

 

5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6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7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8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9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5-9) Jehovah in intelligence maketh the heavens; he stretcheth out the earth above the waters; he maketh great luminaries, the sun to rule by day, the moon and stars to rule by night (Ps. 136:5–9).

 

3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4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148:3, 4) Glorify ye Jehovah, sun and moon, glorify him, all ye stars of light, glorify him, ye heavens of heavens, and ye waters that are above the heavens (Ps. 148:3–4).

 

[3] 이 모든 구절에서 ‘광명체들(luminaries)은 사랑과 신앙을 뜻합니다. 광명체들이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을 나타내고 뜻했기 때문에, 유대교회에서는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타는 등불을 두도록 했습니다. 그 교회의 모든 규례는 주님을 대표, 즉 표상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이 등불에 관한 기록입니다. In all these passages, “luminaries” signify love and faith. It was because “luminaries” represented and signified love and faith toward the Lord that it was ordained in the Jewish church that a perpetual luminary should be kept burning from evening till morning, for every ordinance in that church was representative of the Lord. Of this luminary it is written:

 

20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21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 (27:20, 21) Command the sons of Israel that they take oil for the luminary, to cause the lamp to ascend continually: in the tabernacle of the congregation without the veil, which is before the testimony, shall Aaron and his sons order it from evening even until morning, before Jehovah (Exod. 27:20–21).

 

이 모든 것이 주님께서 속 사람 안에서 사랑과 신앙을 불붙이시고 빛나게 하시며, 속 사람을 통해 겉 사람 안에서도 그렇게 하신다는 뜻임은, 주님의 신적 자비로 적절한 곳에서 밝힐 것입니다. That these things signify love and faith, which the Lord kindles and causes to give light in the internal man, and through the internal man in the external, will of the Lord’s Divine mercy be shown in its proper place.

 

 

해설

 

이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큰 광명체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성경 전체의 증언을 통해 확정합니다. 해와 달과 별은 단순한 천체가 아니라, 사랑과 신앙의 상태를 나타내는 대표적 상징입니다. 이 점이 분명해지지 않으면, 선지서에 나오는 해와 달과 별의 어두워짐이나 밝아짐을 문자적으로 오해하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오해를 막기 위해 여러 선지서의 예를 연속적으로 제시합니다.

 

에스겔에서 바로와 애굽이 다루어질 때, 해와 달과 별이 어두워진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바로와 애굽이 감각적인 사고와 단순한 지식 중심의 사고를 뜻한다고 설명합니다. 즉, 인간이 감각과 지식만을 의지할 때, 사랑과 신앙은 자연스럽게 소멸됩니다. 이때 해와 달과 별이 어두워진다는 말은, 외적 상황의 변화가 아니라 내적 상태의 붕괴를 가리킵니다.

 

이사야와 요엘에서 반복되는 ‘여호와의 날’에 대한 묘사도 같은 맥락입니다.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별이 빛을 거둔다는 표현은, 심판의 날에 자연 질서가 무너진다는 예언이 아니라, 교회와 인간 안에서 사랑과 신앙이 사라진 상태를 묘사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심판은 언제나 외적 파괴가 아니라, 내적 상태가 드러나는 사건입니다.

 

반면 이사야 60장에서는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집니다. 어둠 가운데 있던 자들에게 빛이 임하고, 해와 달이 다시는 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는 새 교회가 세워지고, 거듭남이 이루어지는 상태를 뜻합니다. 여기서 해와 달은 더 이상 자연의 광체가 아니라, 주님에게서 직접 나오는 사랑과 신앙의 지속성을 나타냅니다. ‘영원한 빛’이라는 표현은, 이 빛이 더 이상 인간의 상태 변화에 따라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시편의 인용들은 이 상응이 이미 고대부터 예배와 찬양의 언어 속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해와 달과 별이 여호와를 찬양한다는 말은, 인간 안에 있는 사랑과 신앙, 그리고 그것에서 파생된 모든 진리의 인식이 주님을 향해 질서 있게 작동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자연 숭배가 아니라, 내적 상태의 고백입니다.

 

이러한 이해 위에서, 유대교회의 항상 타는 등불의 규례가 설명됩니다. 저녁부터 아침까지 꺼지지 않게 타오르던 등불은,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이 인간 안에서 끊임없이 유지되어야 함을 상징했습니다. 저녁은 어둠의 상태, 아침은 빛의 상태이므로, 등불이 밤새 타오른다는 것은 인간이 어둠의 상태에 있을 때에도 주님의 사랑과 신앙이 보존된다는 뜻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규례가 단순한 종교의식이 아니라, 주님을 대표하는 상응 행위였다고 강조합니다. 등불은 인간이 스스로 밝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켜 주시고 유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문장에서 그는, 사랑과 신앙을 속 사람 안에서 불붙이시고 빛나게 하시는 분이 오직 주님이심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합니다. 인간의 역할은 그 빛이 꺼지지 않도록 질서 안에 머무는 것뿐입니다.

 

AC.31은 이렇게 넷째 날의 의미를 확장하여, 사랑과 신앙의 소멸과 회복, 교회의 몰락과 새로움, 그리고 개인 거듭남의 핵심 구조를 하나의 상징 체계 안에서 보여 줍니다. 해와 달과 별은 하늘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에서 밝아지거나 어두워지는 것들입니다. 이 인식이 생길 때, 성경의 예언들은 두려운 미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상태를 비추는 빛이 됩니다.

 

 

 

AC.30, 창1:14-17,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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