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99.심화

 

1. 이해, 이성, 기억 지식 속으로 흘러들어오다

 

 AC.99 본문에 나오는 주님께서 신앙을 통하여 그의 이해, 이성, 기억 지식 속으로 흘러들어오신다는 표현이 무슨 뜻인가요? 그냥 깨달아지고 납득되는 걸 이렇게 표현한 건가요?

 

 

좋은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AC.99에서 말하는 주님께서 신앙을 통하여 그의 이해, 이성, 기억 지식 속으로 흘러들어오신다’는 것은 단순히 , 이해가 된다’, ‘납득이 된다’는 인지적 경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측면이 포함될 수는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깊고 본질적인,  생명 쪽에서부터 이해가 열리는 사건’을 말합니다. 스베덴보리 식으로 표현하면 이것은 정보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안에서부터 질서를 잡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이해한다고 할 때, 일반적으로는 바깥에서 정보를 받아 머리로 정리하는 과정을 떠올립니다. 책을 읽고, 설명을 듣고, 비교하고 판단해서 이게 맞다’라고 결론 내리는 것이지요. 이건 기억 지식  이성  이해’로 올라가는 흐름입니다. 그런데 AC.99에서 말하는 것은 그 반대 방향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먼저 어떤 생명의 흐름’, 곧 선과 진리의 감각이 들어오고, 그것이 아래로 내려오면서 이해, 이성, 기억 지식의 영역을 안에서부터 밝히고 배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내용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전혀 못 알아듣고, 어떤 사람은 이게 이거였구나 하고 열리는 일이 생깁니다.

 

여기서 신앙을 통하여’라는 표현이 매우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신앙’은 단순히 교리를 받아들이는 지적 동의가 아니라, ‘주님과 연결되는 통로’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어떤 진리를 살려고 할 때’, 곧 체어리티 안에서 그것을 받아들이려 할 때, 그때 그 사람 안에 주님과 통하는 길이 열립니다. 그러면 그 통로를 따라 인플럭스(influx), 즉 주님의 생명이 흘러들어옵니다. 이 흐름이 바로 이해를 밝히는 실제 원인입니다. 그래서 어떤 진리는 머리로 백 번 설명을 들어도 닫혀 있다가, 삶이 조금 바뀌는 순간 갑자기 선명해지기도 합니다.

 

이걸 그냥 깨달아지는 것 아닌가요?’라고 느끼신 것은 아주 정확한 감각입니다. 맞습니다, 겉으로는 깨달음’처럼 나타납니다. 그런데 차이는 그 깨달음의 출처’에 있습니다. 단순한 지적 깨달음은 비교, 추론, 논증에서 나옵니다. 반면 여기서 말하는 것은 사랑에서 비롯된 빛’이 이해를 비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천적 인간은 먼저 사랑하고, 그다음에 안다’고 하지요. 이때의 앎은 판단의 결과라기보다 퍼셉션의 확장에 가깝습니다.

 

조금 더 와닿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어떤 말씀이나 아르카나 구절을 읽을 때, 평소에는 그냥 문장으로만 보이던 것이 어느 날은 이상하게 마음에 와닿고, ‘이게 이런 뜻이었구나 하면서 동시에 이건 이렇게 살아야겠구나’까지 함께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때는 이해와 의지가 동시에 움직입니다. 단순히 맞는 말이네’가 아니라 이게 진짜다’라는 느낌이 옵니다. 바로 그때가 이해, 이성, 기억 지식 속으로 주님이 흘러들어오신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표현은 인지 작용의 설명’이 아니라 영적 작용의 설명’입니다. 이해가 열리는 것은 결과이고, 그 원인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인플럭스입니다. 그리고 그 인플럭스는 아무 때나 임의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신앙 안에서, 곧 진리를 살려는 방향으로 자신을 둘 때 그 통로가 열립니다. 이 점이 핵심입니다.

 

정리하면, AC.99의 이 표현은 이해가 잘 된다’는 말보다 훨씬 깊은 뜻입니다.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신앙이라는 통로를 통해 들어와, 사람의 생각 구조 전체를 안에서부터 밝히고 정렬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깨달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명이 이해를 만들어 내는 사건’입니다.

 

 

 

AC.99, 창2:8, 생명의 질서에서 본 ‘에덴동산’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2:8) AC.99 영적 인간한테 있어서의 생명, 곧 생명의 질서는 이와 같습니다. 주님께서 신앙을 통하여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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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2:8)

 

AC.99

 

영적 인간한테 있어서의 생명, 곧 생명의 질서는 이와 같습니다. 주님께서 신앙을 통하여 그의 이해, 이성, 기억 지식 속으로 흘러들어오심에도 불구하고, 겉 사람이 속 사람과 싸우고 있기 때문에, 지성이 주님으로부터 흘러드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사람 자신으로부터, 곧 기억 지식과 이성을 통하여 나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천적 인간의 생명, 곧 생명의 질서는 이와 다릅니다. 주님께서 사랑과 사랑의 신앙을 통하여 그의 이해, 이성, 기억 지식 속으로 흘러들어오시며, 속 사람과 겉 사람 사이에 싸움이 없기 때문에, 그는 이것이 실제로 그러하다는 것을 퍼셉션합니다. 이와 같이, 영적 인간한테는 거꾸로 되어 있던 질서가, 이제 천적 인간한테 있어서는 회복된 것으로 묘사되며, 이 질서, 곧 이 사람을 동방의 에덴동산(garden in Eden in the east)이라 부릅니다. 최고 의미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창설하신 동산(garden planted by Jehovah God in Eden in the east)은 주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가장 내적인 의미, 곧 또한 보편적 의미에서는, 이것은 주님의 나라, 그리고 사람이 천적 인간이 되었을 때 놓이게 되는 하늘을 의미합니다. 이때 그의 상태는, 그가 하늘의 천사들과 함께 있으며, 마치 그들 가운데 하나인 것과 같습니다. 이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도 동시에 하늘에 있을 수 있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그의 모든 생각과 생각의 관념들, 심지어 그의 말과 행동들까지도 주님으로부터 열려 있으며, 그 안에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각각의 것 안에 주님의 생명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로 하여금 퍼셉션을 가질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Life, or the order of life, with the spiritual man, is such that although the Lord flows in, through faith, into the things of his understanding, reason, and memory [in ejus intellectualia, rationalia, et scientifica], yet as his external man fights against his internal man, it appears as if intelligence did not flow in from the Lord, but from the man himself, through the things of memory and reason [per scientifica et rationalia]. But the life, or order of life, of the celestial man, is such that the Lord flows in through love and the faith of love into the things of his understanding, reason, and memory, and as there is no combat between the internal and the external man, he perceives that this is really so. Thus the order which up to this point had been inverted with the spiritual man is now described as restored with the celestial man, and this order, or man, is called a “garden in Eden in the east.” In the supreme sense, the “garden planted by Jehovah God in Eden in the east” is the Lord himself. In the inmost sense, which is also the universal sense, it is the Lord’s kingdom, and the heaven in which man is placed when he has become celestial. His state then is such that he is with the angels in heaven, and is as it were one among them; for man has been so created that while living in this world he may at the same time be in heaven. In this state all his thoughts and ideas of thoughts, and even his words and actions, are open, even from the Lord, and contain within them what is celestial and spiritual; for each one [of these] has the Lord’s life within it, which enables him to have perception.

 

 

해설

 

이 글은 AC.98에서 제시된 ‘에덴동산’의 구조를, ‘생명의 질서’라는 관점에서 정밀하게 해부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차이를, 도덕성이나 경건의 정도로 설명하지 않고, 오직 ‘유입이 어떻게 인식되는가’라는 문제로 설명합니다. 이것은 매우 깊고도 실제적인 구분입니다.

 

먼저 영적 인간의 상태가 설명됩니다. 주님은 실제로 그의 이해, 이성, 기억 지식 속으로 흘러들어오십니다. 이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인식입니다. 겉 사람이 속 사람과 싸우고 있기 때문에, 이 유입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걸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마치 자신이 기억 지식과 이성을 사용하여 스스로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처럼 느낍니다. 즉, 유입은 있지만, 출처가 가려져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영적 인간은 지성을 가지고 있으나, 그 지성은 항상 ‘내가 이해했다’, ‘내가 판단했다’는 감각을 동반합니다. 이는 교만의 문제라기보다, 아직 질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겉 사람이 여전히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생명의 흐름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거꾸로 된 질서’입니다.

 

이에 반해 천적 인간의 생명의 질서는 완전히 다릅니다. 주님은 사랑과 사랑의 신앙을 통하여 그의 이해, 이성, 기억 지식 속으로 흘러들어오십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때에는 속 사람과 겉 사람 사이에 더 이상 싸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성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퍼셉션합니다’. 그는 ‘, 이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구나’ 하고 즉각적으로 압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천적 인간은 더 많은 정보를 갖기 때문에 다른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차이는 오직 하나, ‘질서가 회복되었는가’입니다. 생명은 위에서 아래로,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거쳐 지성으로 흘러갑니다. 천적 인간은 이 흐름을 막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있는 그대로 느낍니다. 이것이 바로 ‘에덴동산’의 실체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회복된 질서, 혹은 그 사람 자체를 ‘동방의 에덴동산’이라고 부릅니다. 동쪽은 주님, 에덴은 사랑, 동산은 지성입니다. 즉,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통하여 지성으로 흘러드는 생명의 질서가 완전히 살아 있는 상태입니다. 이것은 장소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의 상태’입니다.

 

이어 스베덴보리는 의미의 층위를 한 단계씩 올립니다. 최고 의미에서는 이 동산이 주님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모든 생명과 질서의 근원이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가장 내적인 의미, 곧 보편적 의미에서는, 이것이 주님의 나라, 그리고 사람이 천적 인간이 되었을 때 놓이게 되는 하늘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에덴동산은 개인 안에도 있고, 교회 전체 안에도 있으며, 하늘 전체 안에도 있습니다.

 

이제 놀라운 진술이 나옵니다. 천적 인간은 하늘의 천사들과 함께 있으며, 마치 그들 가운데 하나인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는 사후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분명히 말합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동시에 하늘에 있을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인간 창조의 본래 목적입니다.

 

이 상태에서 사람의 모든 생각과 생각의 관념들, 심지어 말과 행동까지도 주님으로부터 열려 있습니다. 이는 무의식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깨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 속에는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담겨 있습니다. 왜냐하면 각각의 것 안에 주님의 생명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습니다. 사람이 퍼셉션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각 생각과 말과 행동 안에 주님의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퍼셉션은 특별한 은사가 아니라, ‘생명이 올바른 질서로 흐를 때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상태’입니다.

 

AC.99는 이렇게 말합니다. 천적 인간은 더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생명의 출처를 숨기지 않고 그대로 느끼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 곧 그 질서 자체가 바로 ‘동방의 에덴동산’입니다.  

 

 

심화

 

1.이해, 이성, 기억 지식 속으로 흘러들어오다

 

 

AC.99, 심화 1, ‘이해, 이성, 기억 지식 속으로 흘러들어오다’

AC.99.심화 1. ‘이해, 이성, 기억 지식 속으로 흘러들어오다’ 위 AC.99 본문에 나오는 ‘주님께서 신앙을 통하여 그의 이해, 이성, 기억 지식 속으로 흘러들어오신다’는 표현이 무슨 뜻인가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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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8, 창2:8, ‘동방의 에덴동산’, 천적 인간의 지성(AC.98-101)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And Jehovah God planted a garden eastward in Eden, and there he put the man whom he had formed. (창2:8) AC.98 ‘동산’(garden)은 지성(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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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8.심화

 

2. 퍼셉션의 확장

 

 AC.98 해설에, 그러나 천적 인간의 지성은 사랑에서 출발합니다. 그는 먼저 기뻐하고, 그다음에 압니다. 그의 이해는 판단이 아니라 퍼셉션의 확장입니다.’라고 하는데요, 여기 그의 이해는 판단이 아니라 퍼셉션의 확장입니다라는 이 표현, 무슨 뜻인가요?

 

 

핵심을 바로 짚어 드리면, ‘그의 이해는 판단이 아니라 퍼셉션의 확장’이라는 말은 천적 인간의 앎은 ‘따져서 결론 내리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안에서 주어진 퍼셉션이 점점 더 또렷해지고 넓어지는 과정’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영적 단계의 이해가 판단(judgment)이라면, 천적 단계의 이해는 확장(expansion)이라는 말입니다.

 

먼저 판단’이 무엇인지부터 대비해 보겠습니다. 판단은 보통 이런 구조입니다. ‘이것이 맞나?’에서 시작, 근거를 찾고, 비교하고, 결론을 내는 것이죠. 여기서는 아직 모르는 상태’에서 출발해서, 사고 과정을 통해 아는 상태’로 갑니다. 그래서 이때는 이성이 주인이고, 퍼셉션은 없거나 약한 상태입니다.

 

반면 퍼셉션의 확장’은 완전히 다른 출발점입니다. 이미 안에서 이것이 선하다’, ‘이것이 옳다’는 것이 느껴지고 보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맞나 틀리나 따지는 과정’이 중심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걸 더 깊이, 더 넓게 이해하는 과정’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확장’이라는 표현이 정확합니다. 처음에는 한 점처럼 보이던 것이 점점 더 또렷해지고, 더 많은 경우에 적용되고, 더 깊은 의미로 열리는 것입니다.

 

이걸 실제적인 예로 보시면 더 분명합니다. 예를 들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선하다’는 걸 생각해 보겠습니다.

영적 단계에서는 왜 사랑해야 하지? 어디까지가 사랑인가? 나도 손해 보지 않아야 하는데...’ 등, 이런 판단과 비교가 계속 일어납니다.

 

그러나 천적 상태에서는 이미 사랑하는 것은 선하다’라는 것이 안에서 분명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그걸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사랑하는 것이 맞을까?’, ‘이 사람에게는 어떤 방식이 가장 선한 걸까?’ 등, 이렇게 같은 선이 다양한 상황 속에서 더 풍성하게 열립니다.’

 

이것이 바로 퍼셉션의 확장’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은 이것입니다.

 

판단은 맞다/틀리다’를 가르지만, 퍼셉션의 확장은 더 깊다/더 넓다’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천적 인간의 이해는 논쟁적이지 않고’, ‘방어적이지 않으며’, ‘점점 더 조화롭게 됩니다.’ 왜냐하면 출발이 옳음을 증명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선을 사랑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판단은 모르는 데서 시작해 결론에 이르지만, 퍼셉션의 확장은 이미 아는 데서 시작해 더 깊이 열립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천적 인간의 이해는 생각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보이고, 그 보임이 점점 넓어지는 것’입니다.

 

천적 인간은 옳음을 증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미 안에서 보이기 때문에, 그 보임이 삶 속에서 점점 더 깊어지고 넓어질 뿐입니다.’

 

퍼셉션의 확장’은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지성과 사랑의 질서가 완전히 바뀐 상태에서 일어나는 실제적인 앎의 방식’입니다.

 

 

 

AC.98, 창2:8, ‘동방의 에덴동산’, 천적 인간의 지성(AC.98-101)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And Jehovah God planted a garden eastward in Eden, and there he put the man whom he had formed. (창2:8) AC.98 ‘동산’(garden)은 지성(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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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8, 심화 1, ‘사랑을 통하여 흘러들어오는 지성’

AC.98.심화 1. ‘사랑을 통하여 흘러들어오는 지성’ 위 AC.98 본문에 ‘‘동방의 에덴동산’(garden of Eden eastward)은 사랑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천적 인간의 지성(the intelligence of the 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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