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18.심화

 

5. ‘스베덴보리가 앗수르를 두고 긍정과 경계를 동시에 말하는 이유

 

바로 위 심화 4 스베덴보리가 앗수르(이성)를 두고 긍정과 경계를 동시에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좀 더 자세히 풀어 주세요.

 

 

스베덴보리가 ‘앗수르’를 두고 긍정과 경계를 동시에 말하는 이유는, 이성이 본질적으로 ‘두 방향으로 모두 열려 있는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성이 주님으로부터의 유입을 따라 작동할 때는 교회를 세우는 도구가 되지만, 그 유입을 끊고 스스로 근원이 되려 할 때는 교회를 무너뜨리는 힘이 되기 때문에, 하나의 동일한 기능에 대해 동시에 칭찬과 경고가 함께 주어집니다.

 

먼저 긍정적인 측면부터 보겠습니다. 앗수르가 올바르게 사용될 때, 그것은 ‘명석한 이성’, 곧 진리를 분명하게 보고 질서를 세우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사랑과 신앙이 속 사람으로 유입되고, 그것이 이성적 마음을 거쳐 겉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위로 펼쳐질 때, 이성은 그 흐름을 ‘정리하고, 구분하고, 명료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때 이성은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온 빛을 받아 반사하고 확장하는 창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태의 앗수르는 교회를 보호하고, 진리를 왜곡 없이 전달하며, 사람의 삶을 질서 있게 만드는 유익한 기능으로 작동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경계가 시작됩니다. 이성은 본래 ‘받는 자리’인데, 인간은 쉽게 그 이성을 ‘내가 생각하고, 내가 판단하는 근원’으로 착각합니다. 즉, 이성이 유입의 통로라는 사실을 잊고, ‘자기 자신을 출발점으로 삼기 시작하는 순간’, 앗수르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바뀝니다. 이때 이성은 더 이상 위에서 내려오는 것을 섬기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기준이 되어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재단하려 합니다. 그 결과, 참된 것조차 자기 방식에 맞지 않으면 거부하고, 거짓된 것이라도 논리적으로 맞아 보이면 받아들이는 상태가 됩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예언서에서 앗수르를 교만과 왜곡의 상징으로도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이 두 상태의 차이는 ‘능력의 크기’가 아니라 ‘유입의 방향’에 있습니다. 이성 자체는 동일하지만, 그것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신앙을 따라 작동할 때는 밝아지고, 자기중심으로 닫힐 때는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성을 없애거나 억누르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이성이 어디에 붙어 있는가, 무엇을 근원으로 삼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점검하라고 말합니다’.

 

결국 ‘앗수르’에 대한 긍정과 경계가 동시에 존재하는 이유는, 이성이 인간 안에서 가장 강력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빛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창이지만, 동시에 스스로 빛이라고 착각하기 가장 쉬운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성은 폐기할 대상이 아니라, 반드시 주님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할 ‘통로’이며, 바로 그 점에서 늘 찬사와 경고가 함께 주어지는 것입니다.

 

 

 

AC.118, 창2:14, '힛데겔과 유브라데 : 천적 인간의 이성과 기억 지식'(AC.118-121)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And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Hiddekel; that is it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yria; and the fourth river is Euphrates. (창2:14) AC.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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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8, 심화 4, ‘이성적 마음’(the rational mind)

AC.118.심화 4. ‘이성적 마음’(the rational mind) 본문에 ‘겉 사람에 속한 이성적 마음’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왜 ‘이성적 마음’(the rational mind)이 겉 사람에 속하나요? 핵심부터 말씀드리면,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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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성적 마음(the rational mind)

 

본문에 겉 사람에 속한 이성적 마음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성적 마음(the rational mind)이 겉 사람에 속하나요?

 

 

핵심부터 말씀드리면, 스베덴보리에게서 이성적 마음(the rational mind) ‘‘위에서 오는 것을 받아 겉 사람의 생각과 지식을 조직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기능상 겉 사람에 속한 것으로 분류됩니다’. 이것은 이성이 낮거나 세속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속 사람)와 아래(감각, 기억 지식)를 연결하는 중간이면서도 아래쪽에 기울어 있는 층위’’라는 의미입니다.

 

먼저 구조를 보시면, 속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사랑과 신앙, 곧 생명에 속한 것을 직접 받는 자리입니다. 여기서는 퍼셉션이 중심이고, 판단 이전의 아는 상태’가 있습니다. 반면 겉 사람은 감각과 기억 지식, 말과 행위의 자리입니다. 이 둘 사이에 놓인 것이 이성적 마음입니다. 이성은 위로부터 온 것을 받아 아래의 지식과 생각을 정리하고, 연결하고, 판단으로 풀어내는 기능’을 합니다. 바로 이 아래로 작용한다’는 점 때문에, 분류상 겉 사람 쪽에 둡니다.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이성적 마음이 실제로 기억 지식(scientifica)을 재료로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이성은 아무것도 없는 데서 작동하지 않고, 경험과 언어, 개념이라는 외적 자료를 가지고 추론합니다. 그래서 그 작용의 장(場)은 자연스럽게 겉 사람의 영역에 놓입니다. 주님으로부터의 유입은 속 사람을 통해 내려오지만, 이성이 그것을 다루는 방식은 겉 사람의 재료와 형식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AC.118에서 말하는 흐름,  주님  속 사람  이성적 마음(겉 사람)’이라는 질서가 성립합니다. 이 질서가 유지되면 이성은 명석해지고, 섬기는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이 흐름이 끊어지면, 같은 이성적 마음이 자기 힘으로 생각한다고 여기며 독립하려 하고’, 그때 왜곡이 생깁니다. 스베덴보리가 앗수르(이성)를 두고 긍정과 경계를 동시에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리하면, ‘이성적 마음’이 겉 사람에 속한다고 하는 것은 그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작용의 방향과 자리의 문제’입니다. 이성은 위에서 시작되지 않고, 위에서 받은 것을 아래에서 펼쳐내는 기능이기 때문에, 구조상 겉 사람의 편에 놓입니다. 그래서 이성은 언제나 근원’이 아니라 통로’이며, 그 근원을 향해 열려 있을 때에만 참된 명석함을 갖습니다.

 

 

 

AC.118, 심화 5, ‘스베덴보리가 앗수르를 두고 긍정과 경계를 동시에 말하는 이유’

AC.118.심화 5. ‘스베덴보리가 앗수르를 두고 긍정과 경계를 동시에 말하는 이유’ 바로 위 심화 4에 ‘스베덴보리가 앗수르(이성)를 두고 긍정과 경계를 동시에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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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8, 심화 3, ‘Euphrates, Phrath’

AC.118.심화 3. ‘Euphrates, Phrath’ Euphrates를 왜 Phrath라고 하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Euphrates’와 ‘Phrath’는 서로 다른 강이 아니라 ‘같은 강을 서로 다른 언어로 부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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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uphrates, Phrath

 

Euphrates를 왜 Phrath라고 하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Euphrates’와 Phrath’는 서로 다른 강이 아니라 같은 강을 서로 다른 언어로 부른 이름’입니다.

 

Phrath’는 히브리어 원어 프라트(פְּרָת)를 그대로 음역한 이름이고, ‘Euphrates’는 이 히브리어 이름이 그리스어 유프라테스(Εὐφράτης)를 거쳐 라틴어와 영어로 전해진 형태입니다. 즉, 성경 원문에서는 Phrath’이고, 서양 번역 전통에서는 Euphrates’로 굳어진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Phrath’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원어에 더 가까운 형태를 유지하려는 의도 때문입니다. 특히 그는 상응과 내적 의미를 다루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말씀의 가장 초기 형태, 곧 히브리어 표현을 존중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권 독자에게 익숙한 Euphrates 대신 Phrath’를 사용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런 이름 선택이 단순한 언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강 이름’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각각 특정한 영적 기능을 뜻하는 상응이기 때문에, 원어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그 의미를 더 직접적으로 전달한다고 본 것입니다.

 

정리하면, ‘Phrath’는 히브리어 원어 이름이고, ‘Euphrates’는 그 번역, 전승 과정에서 생긴 그리스, 라틴식 이름이며, 스베덴보리는 내적 의미를 다루는 맥락에서 원어에 가까운 Phrath’를 선택한 것입니다.

 

 

 

AC.118, 심화 4, ‘이성적 마음’(the rational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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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8, 심화 2, ‘기혼과 힛데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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