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3:15)



AC.252

여자(woman)가 교회(the church)를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AC.155) 천국 결혼(the heavenly marriage)에 관하여 설명한 내용으로부터 분명합니다. 천국 결혼의 본질은 이와 같습니다. 천국(heaven), 곧 교회(the church)는 자신의 own을 통하여 주님(the Lord)과 결합됩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신의 own 안에 있으며, 바로 그 own을 통해 주님과 하나가 됩니다. 왜냐하면 own 없이는 결합(union)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자비로 그 own 안에 순진(innocence)과 평화(peace), 그리고 선(good)을 불어넣으시면,own은 여전히 자신의 own으로 남아 있으면서도 천적인 것(celestial)이 되며, 더없이 행복한 것이 됩니다 (AC.164 참조). 주님으로부터 오는, 천적, 천사적 own,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own, 곧 지옥적, 마귀적 own 사이의 차이는 이루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 차이는 천국(heaven)과 지옥(hell) 만큼이나 큽니다. That by the “woman” is meant the church, is evident from what was said above (n. 155) concerning the heavenly marriage. Such is the nature of the heavenly marriage, that heaven, and consequently the church, is united to the Lord by its own, insomuch that these are in their own, for without their own there can be no union. When the Lord in mercy instills innocence, peace, and good into this own, it still retains its identity, but becomes heavenly and most happy (as may be seen at n. 164). The quality of a heavenly and angelic own from the Lord, and the quality of an own, which, because from self, is infernal and diabolical, cannot be told. The difference is like that between heaven and hell.

 

 

해설

 

AC.252는 스베덴보리의 인간론 가운데 가장 깊고도 중요한 교리를 담고 있는 글입니다. 특별히 ‘own’이라는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이 구절은 쉽게 모순처럼 보입니다. 지금까지 스베덴보리는 인간의 own은 악하며, 자기 사랑과 교만의 근원이라고 반복해서 말해 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교회가 바로 그 own을 통해 주님과 결합한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이 두 말이 모두 참일 수 있을까요?

 

먼저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own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own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 인간 안에 새롭게 주시는 own입니다. 인간에게서 나오는 own은 자신을 삶의 중심에 두고, 모든 것을 자기에게 돌리려는 자기 사랑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창3에서 계속 설명된 타락의 원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거듭나는 사람 안에 새로운 own을 형성하십니다. 이것은 사람의 개성과 인격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참되게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순진(innocence), 평화(peace), 사랑(love), 선(good)이 사람 안에 자리 잡으면, 사람은 여전히 ‘’이지만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가 아니라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가 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own 없이는 결합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사랑은 인격과 인격의 만남입니다. 만일 사람이 아무런 자아도, 아무런 자유도, 아무런 개성도 없는 존재라면, 그는 주님과 사랑으로 연합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기계나 인형처럼 움직이시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독립된 인격으로 창조하시고, 그 자유 안에서 사랑의 결합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이 때문에 거듭남은 자신의 개성을 없애는 과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거짓된 own이 물러가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참된 own이 형성되는 과정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사람이고, 같은 성격이며, 같은 개성이지만, 그 중심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전에는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을 향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주님과 이웃을 향하게 됩니다.

 

AC.164에서 스베덴보리가 설명한 것처럼, 주님께서 주시는 own은 여전히 ‘나의 것’으로 느껴집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선을 행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로는 내가 사랑하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행동하는 것처럼 느낍니다. 이것이 주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주님은 사람의 자유와 개성을 없애지 않으시면서도, 그 안에 자신의 생명과 사랑을 흘려보내십니다.

 

그래서 천사들의 own은 인간의 own과 전혀 다릅니다. 천사들도 자신을 ‘’라고 말하고, 기뻐하고, 사랑하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안의 모든 선과 진리가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의 own은 자기 영광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기뻐하는 own이며, 자기 만족이 아니라 이웃의 행복을 즐거워하는 own입니다.

 

반대로 지옥적 own은 모든 것을 자기에게 집중시킵니다. 사랑도, 지식도, 권세도, 신앙도 결국 자기 자신을 높이는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그 중심은 정반대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두 own의 차이를 ‘천국과 지옥의 차이’라고까지 말합니다.

 

결국 AC.252는 참된 거듭남이란 자기 자신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받는 것임을 가르칩니다. 사람의 참된 own은 주님을 떠날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과 가장 깊이 결합될 때 비로소 형성됩니다. 그래서 천국의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비로소 참된 자기 자신을 발견한 사람인 것입니다.

 

 

 

AC.251, 창3:15, ‘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1‘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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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1.심화

 

6. ‘천 년 동안 결박하여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20:2)

 

 

아래는 스베덴보리의 Apocalypse Revealed 관련 글인 AR.842에 대한 번역 및 해설입니다.

 

 

천 년 동안 결박하여라는 말씀은, 여기서 으로 뜻하는 자들이 영들의 세계에서 다른 영들로부터 거두어져 따로 떼어 놓였으며, 얼마 동안 그들과의 교통이 없도록 하셨음을 뜻합니다. 여기서 결박하다가 영들의 세계에서 그들을 다른 이들로부터 떼어 놓아 교통을 막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은 다음 항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천 년이 문자 그대로 천 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 동안’, 또는 어떤 기간을 뜻하는 이유는, 영계에서는 다른 수가 함께 붙지 않은 이라는 수가 바로 그러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천 년을 문자 그대로 천 년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말씀 속 모든 수가 어떤 사물과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특히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는 수들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잘못된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계시록에는 5, 7, 10, 12, 144, 666, 1,200, 1,600, 12,000, 144,000등 수많은 숫자가 나오는데,이러한 수들에서 은 단지 일정한 의미를 더해 주는 요소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 다른 수와 함께 시간을 나타낼 때에는 다소 긴 기간을 의미하지만, 여기처럼 단독으로 사용될 때에는 얼마 동안’, 또는 어떤 기간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은 천국에서 저에게 알려진 바입니다. 그곳의 말씀에서는 숫자를 숫자로 읽지 않고, 숫자가 뜻하는 사물을 읽으며,  대신에 얼마 동안이라는 뜻을 읽습니다. 천국의 천사들은 교회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그처럼 많은 숫자들이 반드시 어떤 영적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보면서도, 여전히 천년왕국설(Chiliasm)이나 밀레니엄설(Millennialism)의 추측을 고집하여, 교회의 마지막 상태에 관하여 헛된 생각으로 마음을 사로잡히는 것을 매우 이상하게 여깁니다. And bound him a thousand years signifies that they who are here meant by “the dragon,” were withdrawn and torn away from the rest in the world of spirits, that for some time there might be no communication with them. That by “binding” is here signified to withdraw and tear them away from the rest in the world of spirits, in order to prevent communication with them, will be seen in the next article. The reason why by “a thousand years” are not meant a thousand years, but for a while or for some time, is because “a thousand,” without other numbers added to it, in the spiritual world has that signification; he who believes that “a thousand years” signify a thousand years does not know that all numbers in the Word signify things, and thus may be misled, especially in Revelation, with respect to the sense of the things, where numbers are read, as where the numbers, 5, 7, 10, 12, 144, 666, 1200, 1600, 12,000, 144,000, and many others occur; in which latter numbers “a thousand” only signifies a certain adjunct, and when a thousand is used to designate times, it signifies somewhat more; but when it is used by itself, as here, it signifies for a while or for some time; that this is so has been told me from heaven, where in the Word which is there no number is read, but instead of a number the thing, and instead of a “thousand” for a while; they are surprised there that when the men of the church have seen in Revelation so many numbers, which cannot but signify things, they should still adhere to the conjectures of the chiliasts and millennialists, by which their minds are impressed with vain things concerning the last state of the church. (AR.842)

 

 

해설

 

이 글은 계20 천 년’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를 제시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천 년’은 시간의 길이를 예언하는 숫자가 아니라, 영적 상태와 섭리의 한 기간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이 천 년 동안 결박되었다는 것은 악한 영들이 문자 그대로 천 년 동안 감금된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께서 새로운 교회를 세우시는 동안 그들의 영향력이 제한되고, 선한 영들과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적 교통이 차단되는 기간이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결박’의 의미입니다. 결박은 쇠사슬로 묶는 물리적 행위가 아니라, 영적 교통을 끊는 것을 말합니다. 영계에서는 가까이 있음과 멀리 있음이 공간이 아니라 사랑과 사상의 일치 여부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영을 결박한다’는 것은 그가 다른 영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그의 활동 범위를 제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심판과 섭리의 중요한 방식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또한 말씀의 모든 숫자가 영적 의미를 가진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숫자는 단순히 양을 나타내는 기호가 아니라, 상태와 질을 나타내는 상응입니다. 그래서 7은 거룩함과 완전함, 12는 교회의 모든 구성 요소, 144는 그 충만함, 666은 진리의 철저한 왜곡 등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역시 절대적인 수량이 아니라 충만한 정도나 일정한 기간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천 년’을 문자 그대로 계산하는 것은 말씀의 상응 성격을 놓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스베덴보리는 천년왕국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역사 속 어느 시점에 문자적인 천 년 동안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정치적으로 통치하신다는 기대는, 계시록 숫자를 자연적 의미로만 읽은 결과라고 봅니다. 계시록은 미래의 연대표를 제시하는 책이 아니라, 교회의 영적 역사와 인간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영적 변화를 묘사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스베덴보리가 천국의 말씀 읽는 방식을 소개하는 부분입니다. 그는 천국에서는 숫자를 숫자로 읽지 않고, 숫자가 담고 있는 영적 의미를 직접 지각한다고 증언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은 ’을 읽지만 천사는 곧바로 얼마 동안’, 또는 섭리가 허락한 일정한 기간’이라는 상태를 지각합니다. 이는 천사들의 사고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상태와 사랑의 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스베덴보리의 일관된 가르침과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결국 이 글의 핵심은, 계시록을 이해하려면 문자적 계산보다 상응의 원리를 먼저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 년’은 달력의 시간이 아니라, 주님께서 교회를 보호하시기 위하여 악의 영향력을 제한하시는 섭리의 기간입니다. 그 기간의 길이는 인간의 연대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구원 경륜 안에서 필요한 만큼 지속되는 영적 상태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계20은 미래의 정치적 왕국을 예언하는 책이 아니라, 주님께서 새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영계와 교회를 어떻게 다스리시는지를 보여주는 계시가 됩니다.

 

 

 

AC.251, 창3:15, ‘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1‘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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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1, 심화 5, ‘계20:2’

AC.251.심화 5. ‘계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계20:2) AC.251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의 ‘뱀’이 단순한 뱀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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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20:2)

 

 

AC.251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의 ‘’이 단순한 뱀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영적 원리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앞서 계12:9에서는 ‘큰 용’이 곧 ‘옛 뱀’, ‘마귀’, ‘사탄’이라고 직접 설명되었습니다. 여기 계20:2에서도 같은 표현이 반복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통해 창세기의 뱀과 계시록의 용이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즉 창세기의 뱀, 계시록의 큰 붉은 용, 옛 뱀, 마귀, 사탄은 모두 서로 다른 존재들이 아니라 동일한 영적 실재를 가리키는 다양한 표현들입니다. 그 실재란 일반적으로는 모든 악(evil)이며, 특별히는 자기 사랑(love of self)과 그로부터 나오는 거짓과 불신입니다.

 

그래서 AC.251의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창세기의 뱀은 자기 사랑에서 나오는 악을 의미합니다. 그 악은 인간 역사 속에서 계속 활동하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계시록에서는 그것이 ‘큰 용’, ‘옛 뱀’, ‘마귀’, ‘사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따라서 성경의 처음과 끝은 같은 영적 원리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서 ‘결박하여(bound)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문자적인 쇠사슬이나 감옥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는 악과 거짓의 세력이 더 이상 이전처럼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도록 제한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AC.251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는 주된 목적은 ‘천 년’이나 ‘결박’의 의미를 설명하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목적은 오직 하나, 곧 계시록이 직접 ‘ = 옛 뱀 = 마귀 = 사탄’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매우 중요한 설명을 덧붙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귀’는 어떤 특정한 악령의 이름이 아닙니다. 지옥 전체를 통치하는 한 명의 절대적 악의 군주를 뜻하는 것도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마귀’는 악한 영들의 전체 무리(the whole crew of evil spirits)와 악 자체(evil itself)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계20:2는 창세기의 뱀에 대한 스베덴보리의 해석을 뒷받침하는 증거 구절로 사용됩니다. 곧 성경의 ‘’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인간을 주님에게서 떼어 놓고,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게 만드는 모든 악과 거짓의 원리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시록은 그 사실을 ‘옛 뱀’, ‘마귀’, ‘사탄’, ‘’이라는 여러 이름으로 다시 확인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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