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026/08/16)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9, ‘하늘에 가득 찬 영광의 하나님’, 89, ‘샤론의 꽃 예수입니다.

 

오늘 4 절별 주석 시작 전 먼저 창4 전체 개요를 살피는 4 본문, 개요 및 배경시간으로 AC 글 번호로는 324번에서 337번입니다.  

 

먼저 본문입니다. 오늘은 전체 개요이므로 창4 전체를 봉독하겠습니다.

 

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4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16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17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18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19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20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1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22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2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25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4)

 

제목은

 

가인과 아벨, 신앙과 체어리티에 관하여

 

이며, 다음은 오늘 범위인 AC.324-337 요약입니다.

 

가인과 아벨, 신앙과 체어리티에 관하여(AC.324-337)

 

AC.324-337은 창4에 기록된 가인과 아벨, 가인의 후손들, 그리고 셋과 에노스를 통하여 태고교회 안에서 신앙과 사랑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져 갔는지를 보여 줍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창4에 기록된 이름들을 반드시 기록된 순서 그대로 이어진 개인들의 역사나 교회의 시간표로만 읽지 않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이름들을 통하여 태고교회 안에서 나타난 여러 교리와 교회의 모습을 설명합니다. 따라서 가인으로 이어지는 흐름과 셋과 에노스로 이어지는 흐름은 하나가 완전히 끝난 뒤 다른 하나가 시작되었다고 보기보다, 태고교회 안에서 서로 구별되어 나타난 흐름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AC.324는 이 장 전체의 주제를 먼저 밝힙니다. 여기서는 교회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교리들, 곧 이단들을 다루며, 또한 에노스라 불리는 새로운 교회를 다룹니다. 따라서 창4의 중심에는 처음부터 두 방향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참된 교회의 생명에서 벗어나 여러 이단과 분파로 갈라져 가는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 신앙과 체어리티의 결합을 다시 이루어 새로운 교회를 세워 가시는 흐름입니다.4의 여러 이름은 이러한 교회의 변화를 사람과 족보의 형식으로 보여 줍니다.

 

AC.325-326에서 그 첫 번째 중요한 구별이 가인아벨로 나타납니다. 태고교회는 본래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부터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신앙을 사랑에서 분리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이렇게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의 교리가 가인이라 불렸습니다. 반면 이웃을 향한 사랑인 체어리티는 아벨이라 불렸습니다. 따라서 가인의 문제는 신앙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그것의 생명인 사랑과 체어리티에서 떼어 내어 독립적인 것으로 만든 데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사 역시 이러한 차이를 보여 줍니다.가인의 제물은 사랑과 분리된 신앙에서 나오는 예배를,아벨의 제물은 체어리티에서 나오는 예배를 뜻합니다. 주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는 것은 외적인 예배의 형식보다 그 안에 있는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아무리 신앙을 고백하고 진리를 많이 알고 있더라도, 그것이 이웃을 사랑하고 선을 행하는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참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AC.327-329는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이 점차 어떤 성격을 띠게 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가인의 분노안색이 변함은 분리된 신앙의 상태가 악해졌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가인에게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신앙이 체어리티보다 자신을 앞세우지 않고, 다시 선을 행하는 삶과 결합한다면 회복될 수 있음을 뜻합니다. 체어리티 역시 신앙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문제는 신앙이 자신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세우고, 체어리티를 그 아래에 두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분리된 신앙이 끝내 자신을 체어리티보다 높이게 되면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속뜻으로 신앙을 체어리티에서 분리하고, 체어리티보다 앞세운 사람들에게서 마침내 체어리티가 소멸되었음을 뜻합니다.아벨의 핏소리는 그렇게 소멸된 체어리티를 나타내며,땅으로부터 저주를 받음은 그 결과 교리가 왜곡된 것을,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됨은 거기서 비롯된 거짓과 악을 나타냅니다. 신앙이 체어리티를 잃으면 신앙 자신도 참된 생명을 잃고, 결국 방향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가인을 곧바로 없애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에게 를 주어 아무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섭리를 보여 줍니다.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은 잘못된 것이지만, 신앙에 속한 것 자체까지 완전히 없어져서는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주님께서는 바로 신앙으로 사람 안에 체어리티를 다시 심으실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가인의 표는 분리된 신앙을 옳다고 인정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장차 회복을 위하여 신앙에 속한 것을 보존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나타냅니다.

 

이러한 가인의 흐름 안에서는 분리된 신앙의 교리가 계속 확대되고 여러 형태로 갈라집니다. 그 확대가 에녹으로, 거기에서 파생된 여러 이단들이 그 후손들의 이름으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라멕이라 불리는 마지막 상태에 이르면 마침내 신앙에 속한 것조차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됩니다. 이어 아다와 씰라 및 그 자녀들로 표현되는 새로운 교회의 모습이 나타나며, 야발은 그 교회의 천적인 것들을, 유발은 영적인 것들을, 두발가인은 자연적인 것들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태고교회의 쇠퇴 가운데서도 주님께서 선과 진리에 속한 것을 완전히 사라지게 하지 않으시고, 계속 새로운 형태로 보존하셨음을 보여 줍니다.

 

한편,4에는 이와 구별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교회의 흐름이 에노스로 나타납니다.은 주님께서 주신 새로운 신앙을 뜻하며,에노스는 그 신앙으로 체어리티가 심어진 교회를 뜻합니다. 따라서 셋과 에노스를 가인과 라멕의 역사가 모두 끝난 뒤에 비로소 등장한 후대의 교회라고 단순하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은 서로 다른 교리와 교회의 흐름을 각각의 이름과 계보 아래 보여 주고 있으며,5에서는 다시 셋으로 이어지는 계열을 별도로 전개합니다. 이렇게 보면 가인 계열과 셋 계열은 태고교회 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두 계열 모두 결국 홍수로 표상되는 태고교회의 마지막 때를 향해 갑니다.

 

AC.337은 이러한 모든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다시 태고교회 본래의 모습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무엇이 왜곡되었는지를 알려면 먼저 왜곡되기 전의 참된 질서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태고교회는 천적 교회였으며, 주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에 속한 것 외에는 다른 신앙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사랑으로부터 주님에게서 신앙을 받았으며,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지를 퍼셉션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사랑과 별개의 것으로 말하기조차 원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이 없어서가 아니라 신앙이 이미 사랑 안에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시72을 인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는 사랑을,은 신앙을 상징합니다. 달이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해의 빛을 받아 비추듯, 태고교회의 신앙도 사랑으로부터 생명과 빛을 받았습니다.30:26달빛은 햇빛 같겠고라는 말씀 역시 신앙이 사랑과 결합하여 마침내 하나의 생명이 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가인으로 표현된 최초의 왜곡은 신앙을 없앤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 안에 있던 신앙을 따로 떼어 독립적인 것으로 만든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AC.337은 오늘날의 사람에게 태고교회와 똑같은 질서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오늘날에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사랑으로부터 신앙으로 나아갔지만, 이후의 인간은 먼저 말씀을 통하여 진리를 배우고, 그것을 신앙으로 받아들인 뒤, 주님께서 그 신앙으로 체어리티를 심으시는 길을 걷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신앙을 배우고 고백하는 것 자체가 가인적인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신앙이 체어리티로 나아가지 않고, 사랑과 삶에서 분리된 채 그 자체로 구원의 전부라고 주장할 때입니다.

 

따라서 AC.324-337의 중심은 단순히 신앙보다 체어리티가 중요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더 깊은 핵심은 신앙과 체어리티가 서로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있습니다. 태고교회에서는 사랑으로부터 신앙이 나왔고, 이후의 인간에게는 신앙으로 체어리티가 심어지는 질서가 마련되었습니다. 방향은 달라졌지만, 주님의 목적은 같습니다. 사람이 알고 믿는 진리가 마침내 그가 사랑하고 살아가는 선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가인은 그 결합이 깨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셋과 에노스는 주님께서 그 결합을 다시 이루어 가시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 모든 흐름은 인간의 실패 가운데서도 선과 진리를 보존하시고, 새로운 교회를 준비하시는 주님의 끊임없는 섭리를 보여 줍니다.

 

 

이상 요약을 마치고, 아래는 AC 본문, 해설 및 심화입니다.

 

 

AC.324, 창4, ‘창4 본문, 개요, 배경’(AC.324-337)

창4 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And the man knew Eve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Cain, and said, I have gotten a man

bygrace.kr

 

AC.325, 창4:1-2, ‘가인과 아벨’

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And the man knew Eve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Cain, and said, I have gotten a man [vir

bygrace.kr

 

AC.326, 창4:3-5, ‘가인의 제물, 아벨의 제물’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And at the end of days it came to pass that Cain brought of the fruit of the ground an offering to Jehovah.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

bygrace.kr

 

AC.327, 창4:5-6,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And unto Cain and unto his offering he looked not, and Cain’s anger was kindled exceedingly, and his faces fell.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

bygrace.kr

 

AC.328, 창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If thou doest well, art thou not exalted? And if thou doest not well, s

bygrace.kr

 

AC.329, 창4:8-9,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8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And Cain talked to Abel his brother; and it came to pass when they were in the field, that Cain rose up against Abel his brothe

bygrace.kr

 

AC.330, 창4:10-16, ‘창4:10-16 전체의 속뜻’

10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And he said, What hast thou done?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s crieth to me from the ground.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

bygrace.kr

 

AC.331, 창4:17, ‘에녹’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And Cain knew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Enoch; and he was building a city, and cal

bygrace.kr

 

AC.332, 창4:18, ‘라멕’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And unto Enoch was born Irad; and Irad begat Mehujael; and Mehujael begat Methusael; and Methusael begat Lamech. (창4

bygracetistory.tistory.com

 

AC.333, 창4:19-22, ‘아다와 씰라, 야발, 유발, 두발가인’

19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And Lamech took unto him two wives; the name of the one was Adah, and the name of the other Zillah. 20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

bygrace.kr

 

AC.334, 창4:23-24, AC.333의 ‘그때’에 대한 설명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And Lamech

bygrace.kr

 

AC.335, 창4:25, ‘셋’(Seth)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And the man knew his wife again, and she bare a so

bygrace.kr

 

AC.336, 창4:26, ‘에노스’(Enosh)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And to Seth, to him also there was born a son; and he called his name Enosh: then began they to call upon the name of J

bygrace.kr

 

AC.337, 창4, ‘배경’ - ‘참된 교회가 어떠했는지를 먼저 올바르게 이해해야 하는 이유’

AC.337 이 장은 태고교회의 퇴보, 곧 그 교리가 왜곡된 것과, 그 결과 생겨난 이단들과 분파들을 가인과 그의 후손들의 이름 아래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

bygrace.kr

 

 

오늘 AC 리딩 본문 전체는 여기까지이고, 이 가운데 보충 리딩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AC.337, 심화 2, 가인의 분리’에 대한 재미있는 비유

AC.337.심화 2. ‘가인의 분리’에 대한 재미있는 비유 가인이 신앙을 사랑에서 ‘분리’했다는 말을 처음 접하면, 이것이 왜 그렇게 심각한 문제였는지 쉽게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앙을 중

bygrace.kr

 

AC.334, 심화 2, ‘신앙과 체어리티에 속한 것들에게 폭력을 가한다?’

AC.334.심화 2. ‘신앙과 체어리티에 속한 것들에게 폭력을 가한다?’ AC.334의 ‘신앙과 체어리티에 속한 모든 것이 소멸되고, 그것들에 폭력이 가해졌다’는 표현에서 ‘폭력을 가한다’는 말은

bygrace.kr

 

AC.324, 심화 1, ‘창4와 창5는 나란히 진행된 두 계열 이야기’

AC.324.심화 1. ‘창4와 창5는 나란히 진행된 두 계열 이야기’ 좀 성급한 질문일 수 있지만, 그리고 이미 몇 차례 거듭 고민했던 질문이지만... 창4, 창5를 시간순으로 읽어야 하나요? 이런 질문을

bygrace.kr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주부터는 창4 절별 주석 및 해설, 그리고 심화 리딩 시작합니다.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설교

2026-08-16(D1)

 

2664, 1, 창4.1, 2026-08-16(D1)-주일예배(창4, AC.324-337), ‘창4 본문, 개요 및 배경’.pdf
1.09MB

 

 

 

주일예배(2026/08/09, 창3:24-4:1, AC.314-323), ‘사람이 영생에 들어간다는 것과 영으로 산다는 것’

※ 오늘(2026/08/09)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8,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 찬88, ‘내 진정 사모하는’입니다. 오늘은 일종의 쉬어가는 주로 AC 글 번호로는 314번에서 323번입니다. AC 창3 뒤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AC.337.심화

 

4. ‘30: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30:26)

 

 

AC.337에서 스베덴보리가 사30:26을 인용한 이유는 바로 앞에서 인용한 시72의 ‘’와 ‘’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시72에서 ‘’는 사랑을, ‘’은 신앙을 의미하며, 특히 ‘달이 다할 때까지’라는 말씀을 스베덴보리는 ‘신앙이 사랑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30:26의 ‘달빛은 햇빛 같겠고’는 바로 이 상태, 곧 신앙이 사랑과 분리된 채 따로 존재하지 않고 사랑과 하나가 되는 천적 질서를 매우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여기서 ‘달빛은 햇빛 같겠고’라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빛의 밝기가 강해지는 현상으로만 읽어서는 AC.337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를 알기 어렵습니다. 속뜻으로 ‘’은 신앙을, ‘’는 사랑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달빛이 햇빛 같아진다’는 것은 신앙이 사랑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마침내 사랑과 하나가 되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것이 바로 태고교회 천적 인간의 상태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사랑은 사랑이고, 신앙은 신앙’이라는 식의 분리가 없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가운데 무엇이 참인지 알았고, 그 사랑 안에서 진리를 지각했습니다.

 

이 점은 AC.337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지금 ‘가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바로 이 하나였던 것을 갈라놓았습니다. 태고교회에서 사랑 안에 있던 신앙을 사랑으로부터 떼어 내어 독립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사30:26의 ‘달빛은 햇빛 같겠고’가 보여 주는 것은 가인의 분리와 정확히 반대되는 상태입니다. 가인은 ‘’을 ‘’에서 떼어 놓았다면, 이사야의 말씀은 ‘달빛’이 다시 ‘햇빛’과 같아지는 상태를 보여 줍니다. 곧 신앙이 다시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특히 이 구절의 앞부분인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도 이 문맥에서 의미심장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AC.337에서 직접 이 부분을 세세하게 풀이하지는 않으므로 지나치게 확대해서는 안 되지만, 적어도 인용된 말씀 전체의 흐름은 ‘상처를 싸매심’, ‘고치심’, 그리고 ‘달빛이 햇빛 같아짐’을 하나의 회복의 그림으로 보여 줍니다. 분리되고 손상된 것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질서를 회복하는 모습입니다. AC.337의 주제인 사랑과 신앙의 관계를 생각하면 매우 잘 어울리는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도 주목할 만합니다. 말씀에서 ‘일곱’은 거룩함과 완전함을 나타내는 수로 자주 사용됩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단순히 햇빛의 광도가 물리적으로 일곱 배 강해진다는 뜻보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의 충만함과 그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완전한 질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신앙이 더 밝아졌다’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이 사랑과 결합하면서 사랑 자체의 충만함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서 살펴본 ‘부부간 준수 사항’의 비유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서로 깊이 사랑하는 부부에게 여러 원칙과 약속은 사랑과 떨어져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존중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배려하며, 사랑하기 때문에 약속을 지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준수 사항’이 사랑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원칙이 사랑 안에서 생명을 얻습니다. 이것이 ‘달빛이 햇빛 같아지는’ 상태를 이해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됩니다. 신앙의 진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하나가 되어 그 사랑을 표현하는 살아 있는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오늘날 우리의 거듭남과 연결되는 중요한 점도 있습니다. 우리는 태고교회의 천적 인간처럼 처음부터 사랑에서 진리를 퍼셉션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AC.337이 분명히 말하듯 오늘날에는 신앙이 먼저이고, 주님께서 그 신앙으로 체어리티를 심으십니다. 처음에는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므로 해야 한다’며 진리를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남이 진행되면서 처음에는 의무로 행하던 것을 점차 사랑해서 행하게 됩니다. ‘해야 하니까 하던 것’이 ‘하고 싶어서 하는 것’으로 변해 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30:26의 ‘달빛은 햇빛 같겠고’라는 말씀이 개인의 거듭남에도 매우 아름답게 와닿습니다. 처음에는 신앙으로 알고 믿었던 진리가 점차 사랑의 것이 되고, 마침내 그 사람의 의지와 삶이 됩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원수를 용서해야 한다’는 말씀을 진리이기 때문에 힘들게 순종하지만, 거듭남이 깊어지면서 실제로 그 사람의 선을 바라게 된다면, 신앙으로 받아들였던 진리가 체어리티의 생명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달빛’이 점차 ‘햇빛’과 같아지는 모습이라고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30:26 AC.337에서 단순한 보충 성구가 아닙니다. 시72에서 제시한 ‘해는 사랑, 달은 신앙’이라는 상응을 더욱 깊게 보여 주면서, 참된 신앙의 완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신앙의 완성은 신앙이 독립적으로 더욱 강해지는 데 있지 않습니다. 신앙이 사랑과 결합하여 사람이 믿는 진리가 곧 그가 사랑하고 살아가는 진리가 되는 데 있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가인’은 사랑과 신앙이 ‘갈라지는’ 방향을 보여 주고, 사30:26은 그 둘이 주님 안에서 다시 ‘하나가 되는’ 방향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가인의 분리를 설명하는 AC.337에서 이 말씀을 끌어온 것입니다. ‘달빛은 햇빛 같겠고’라는 짧은 한 구절 안에, 신앙이 사랑에서 생명을 얻고, 마침내 사랑과 하나가 되는 참된 교회의 질서가 압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AC.337, 창4, ‘배경’ - ‘참된 교회가 어떠했는지를 먼저 올바르게 이해해야 하는 이유’

AC.337 이 장은 태고교회의 퇴보, 곧 그 교리가 왜곡된 것과, 그 결과 생겨난 이단들과 분파들을 가인과 그의 후손들의 이름 아래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

bygrace.kr

 

AC.337, 심화 3, ‘시72:1, 3, 5,7’

AC.337.심화 3. ‘시72:1, 3, 5,7’ 1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3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5그들이 해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AC.337.심화

 

3. ‘72:1, 3, 5,7

 

1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3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5그들이 해가 있을 동안에도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도 대대로 그리하리로다, 7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시72:1, 3, 5, 7) Give the king thy judgments, and thy righteousness to the king’s son. The mountains shall bring peace to the people, and the hills in righteousness. They shall fear thee with the sun, and toward the faces of the moon, generation of generations. In his days shall the righteous flourish, and abundance of peace, until there be no moon. (Ps. 72:1, 3, 5, 7)

 

 

AC.337에서 스베덴보리가 시72:1, 3, 5, 7을 인용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가인’으로 의미되는 신앙의 분리가 얼마나 심각한 일이었는지를 설명하기에 앞서, 그 분리가 일어나기 전 태고교회의 본래 질서가 어떠했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AC.337 첫머리에서 참된 교회가 어떠했는지를 알지 못하면 그 교리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가인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시72를 통하여 천적 인간의 본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 시편에서 핵심은 ‘’, ‘’, ‘산들’, ‘작은 산들’, 그리고 ‘평강’입니다.

 

먼저 스베덴보리는 ‘’가 사랑을, ‘’이 신앙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이 이 인용의 중심입니다. 해는 스스로 빛을 내지만, 달은 해의 빛을 받아 비춥니다. 마찬가지로 태고교회에서 신앙은 사랑과 독립되어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부터 생명과 빛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먼저 주님을 사랑했고, 그 사랑 안에서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지 퍼셉션으로 알았습니다. 따라서 신앙은 사랑과 나란히 놓인 또 하나의 독립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 안에 신앙이 있었던 것입니다. 시72의 해와 달은 바로 이 질서를 보여 줍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이 해가 있을 동안에도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도 대대로 그리하리로다’라는 말씀은 단순히 해와 달이 존재하는 오랜 세월을 뜻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속뜻으로 보면 사랑과 신앙이라는 교회의 두 핵심 요소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둘이 서로 독립된 두 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태고교회에서는 ‘’가 중심입니다. 곧 사랑이 중심이고, ‘’인 신앙은 그 사랑으로부터 빛을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인’이 나타나기 전 참된 교회의 질서입니다.

 

산들’과 ‘작은 산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들이 태고교회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말씀에서 높은 곳, 특히 산은 주님을 향한 사랑과 연결됩니다. 그래서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의로 말미암아 그리하리로다’라는 말씀은 천적 교회의 중심이 사랑이었으며, 그 사랑에서 ‘평강’이 흘러나왔음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평강은 단순히 갈등이 없는 편안한 상태가 아니라, 사랑과 신앙, 선과 진리가 주님의 질서 안에서 하나를 이루는 내적 평화를 생각하게 합니다.

 

특히 ‘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라는 마지막 표현이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달이 다할 때까지’라고 한 이유를 놀랍게도 ‘신앙이 사랑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신앙이 없어져 버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앙이 사랑과 완전히 결합되어 더 이상 사랑과 떨어진 별개의 것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나는 이것이 진리라고 믿는다’고 하던 것이 마침내 ‘나는 이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산다’는 생명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이 사랑 안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바로 사30:26의 ‘달빛은 햇빛 같겠고’라는 말씀까지 연결합니다. 달이 상징하는 신앙의 빛이 해가 상징하는 사랑의 빛과 같아진다는 것은, 신앙과 사랑의 결합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결국 시72와 사30은 같은 천적 질서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보여 줍니다. 신앙의 최종 목적은 사랑과 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데 있지 않고, 사랑과 하나가 되어 삶 자체가 되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왜 이 구절이 ‘가인’을 설명하는 AC.337에 필요한지가 선명해집니다. ‘가인’은 바로 이 질서를 깨뜨렸습니다. 태고교회에서는 해와 달, 곧 사랑과 신앙이 하나의 질서 안에 있었는데, 가인으로 불린 사람들은 ‘’을 ‘’에서 떼어 내듯 신앙을 사랑에서 분리했습니다. 더 나아가 분리된 신앙을 그 자체로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가인의 문제는 단순히 어떤 잘못된 교리 하나를 새로 주장한 데 있지 않았습니다. 태고교회를 교회답게 하던 가장 근본적인 질서, 곧 ‘사랑으로부터 신앙이 나온다’는 질서를 뒤집은 데 있었습니다.

 

이것을 앞서 살펴본 부부의 비유와 연결하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려하고 존중하던 부부가 어느 순간부터 사랑 자체보다 ‘부부간 준수 사항 20가지’를 따로 떼어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과 비슷합니다. 준수 사항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본래 사랑 안에서 생명을 얻던 것이 사랑에서 분리되어 독립적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 문제입니다. 시72는 바로 그 분리가 일어나기 전의 상태, 곧 사랑과 그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이 하나였던 상태를 보여 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표현이 ‘generation of generations’, 곧 ‘대대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이 ‘홍수 이후의 교회들’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시72의 인용은 태고교회만 바라보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태고교회의 천적 질서가 사라진 이후에도 주님의 목적은 여전히 같습니다. 인간의 상태가 달라져 이제는 먼저 신앙을 배우고 그 신앙으로 체어리티가 심어지는 질서가 필요해졌지만, 최종 목적은 여전히 신앙과 사랑의 결합입니다. 길은 달라졌지만, 주님께서 사람을 이끄시는 목적은 변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AC.337의 시72 인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이렇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가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설명하기 전에, 72의 해와 달, 산들과 평강을 통하여 태고교회에서 사랑과 신앙이 본래 하나였던 천적 질서를 먼저 보여 줍니다.’ 그래야 신앙을 사랑에서 ‘분리’한 일이 왜 당시에는 그토록 엄청난 악으로 여겨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인용의 중심은 ‘해와 달’입니다. ‘’인 사랑이 먼저이고, ‘’인 신앙은 그 사랑으로부터 빛을 받습니다. 그리고 완성에서는 달이 해와 하나가 되듯 신앙이 사랑과 하나가 됩니다. ‘가인’은 바로 이 둘을 갈라놓은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시72는 단순히 천적 인간을 아름답게 묘사하기 위해 덧붙인 인용이 아니라, ‘가인의 분리’가 무엇을 깨뜨렸는지를 보여 주는 기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C.337, 심화 4, ‘사30:26’

AC.337.심화 4. ‘사30: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사30:26) AC.337에서

bygrace.kr

 

AC.337, 심화 2, 가인의 분리’에 대한 재미있는 비유

AC.337.심화 2. ‘가인의 분리’에 대한 재미있는 비유 가인이 신앙을 사랑에서 ‘분리’했다는 말을 처음 접하면, 이것이 왜 그렇게 심각한 문제였는지 쉽게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앙을 중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