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452

 

저는 천국과 천국의 기쁨이 가장 위대해지는 데에 있다고 생각하던 영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에서 가장 위대한 이는 가장 작은 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작은 자가 가장 큰 행복을 지니고 있으며, 그러므로 참으로 가장 위대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위대하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이 점 때문에 지상에서는 권세 있는 자들이 권세를 통해 그것을 구하고, 부유한 자들이 재물을 통해 그것을 구합니다. 또한 그들은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천국은 가장 작아지기를 원함으로써 가장 위대해지려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실제로는 여전히 가장 위대해지기를 바라고 추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천국은 마음으로부터 다른 이들에게 자기 자신보다 더 나은 것을 바라며, 다른 이들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섬기고자 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자기를 목적으로 함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I have conversed with spirits who supposed heaven and heavenly joy to consist in being the greatest. But they were told that in heaven he is greatest who is least, because he who would be the least has the greatest happiness, and consequently is the greatest, for what is it to be the greatest except to be the most happy? It is this that the powerful seek by power, and the rich by riches. They were told, further, that heaven does not consist in desiring to be the least in order to be the greatest, for in that case the person is really aspiring and wishing to be the greatest; but that heaven consists in this, that from the heart we wish better for others than for ourselves, and desire to be of service to others in order to promote their happiness, and this for no selfish end, but from love.

 

 

해설

 

이 글은 앞선 AC.450AC.451에서 다룬 ‘위대함’과 ‘권세’의 문제를 ‘가장 정제된 형태로 마무리하는 핵심 진술’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천국의 질서를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천국에서 가장 위대한 이는 가장 작은 자입니다.

 

이 말은 역설처럼 들리지만, 스베덴보리는 즉시 그 논리를 풀어 줍니다. 가장 작은 자가 가장 큰 행복을 지니고 있으며, 가장 큰 행복을 지닌 자가 곧 가장 위대한 자라는 것입니다. 즉, 위대함의 기준이 바뀝니다. 힘이나 영향력, 인지도나 성취가 아니라, ‘행복의 질과 깊이’가 기준이 됩니다.

 

여기서 그는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가장 위대하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곧바로 답합니다. ‘가장 행복한 것이다.’ 이 정의는 지상과 천국을 동시에 비춥니다. 지상에서 사람들이 권세를 추구하고 재물을 쌓는 이유도, 결국은 더 큰 만족과 안전, 곧 행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간접적이며 언제나 불안정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흔히 오해되는 또 하나의 함정을 짚습니다. ‘가장 작아지려는 욕망’조차도, 그 동기가 잘못되면 여전히 가장 위대해지려는 욕망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겸손을 전략으로 삼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천국의 길이 아닙니다. 이 말은 매우 날카롭습니다. 왜냐하면 겉으로는 낮아 보이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비교와 우위를 계산하는 신앙을 정확히 겨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천국의 본질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천국은 마음에서 우러나 다른 이들에게 자기 자신보다 더 나은 것을 바라며, 다른 이들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섬기고자 하는 데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섬김은 어떤 보상이나 자기를 목적으로 함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이 지점에서 천국과 지옥의 방향은 완전히 갈라집니다. 지옥의 사랑은 자기 자신으로 향하고, 천국의 사랑은 타인으로 향합니다. 지옥의 질서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위로 올라가려 하고, 천국의 질서는 사랑 안에서 기꺼이 낮아집니다. 그러나 그 낮아짐은 손해가 아니라, ‘가장 깊은 행복의 자리’입니다.

 

설교자의 관점으로 보면, 이 본문은 매우 실제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섬김을 말할 때, 그것이 정말 사랑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더 나은 자리, 더 좋은 평가, 더 큰 만족을 은근히 기대하는 방식인지를 점검하게 합니다. 천국의 질서는 외적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매우 정직합니다.

 

AC.452는 이렇게 말합니다.

 

천국은 낮아지는 기술이 아니라, 비교하지 않는 사랑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 상태 안에서, 사람은 더 이상 위대해지려 애쓰지 않아도 이미 가장 깊은 행복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윤리적 훈계가 아니라, 천국의 ‘행복 구조에 대한 설명’입니다.

 

 

 

AC.451, 창5 앞, '사후 세계', 지상 권세가 안 통하는 나라

AC.451 육신의 삶에서 권세를 지니고 있었던 어떤 영이, 사후 세계에서도 여전히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다른 나라, 곧 영원한 나라에 와 있다는 말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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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1

 

육신의 삶에서 권세를 지니고 있었던 어떤 영이, 사후 세계에서도 여전히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다른 나라, 곧 영원한 나라에 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가 세상에서 가졌던 권세는 이미 죽었으며, 지금 그가 있는 곳에서는 오직 그가 지닌 선과 진리,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주님의 자비에 따라서만 가치가 매겨진다는 말과, 또한 이 나라에서도 지상과 마찬가지로 각 사람은 자신의 재산과 군주의 호의에 따라 평가되지만, 이곳에서의 재산은 선과 진리이며, 군주의 호의는 주님의 자비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그가 이 나라, 곧 남의 나라에 와서 다른 방식으로 권세를 행사하고자 한다면, 그는 이 나라에서 봤을 때는 반역자가 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부끄러워하였습니다. A certain spirit, who during his life in the body had possessed authority, retained in the other life the desire to exercise command. But he was told that he was now in another kingdom, which is eternal; that his rule on earth was dead; and that where he was now no one is held in estimation except in accordance with the good and truth, and the mercy of the Lord, in which he is; and further, that it is in that kingdom as it is on earth, where everyone is rated according to his wealth, and his favor with his sovereign; and that there good and truth are wealth, and favor with the sovereign is the Lord’s mercy; and that if he desired to exercise command in any other way, he was a rebel, seeing that he was now in the kingdom of another. On hearing this he was ashamed.

 

 

해설

 

이 글은 앞선 AC.450의 논지를 ‘개인의 사례로 압축해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중심에 놓인 주제는 ‘권세의 지속’이라는 인간의 매우 뿌리 깊은 착각입니다. 이 영은 세상에서 실제로 권위를 지녔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죽음 이후에도, 그 권위가 어떤 형태로든 이어질 것이라고 은연중에 기대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기대를 단호하면서도 질서 있게 해체합니다. 먼저 그에게 들려준 말은 이것입니다. ‘당신은 이제 다른 나라에 있다.’ 이 한 문장은 모든 것을 바꿉니다. 사후 세계는 지상의 연장이 아니라, 전혀 다른 질서가 지배하는 왕국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말이 결정적입니다. 세상에서의 그의 통치는 이미 ‘죽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기억에서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효력이 완전히 끝났다’는 뜻입니다.

 

그다음 스베덴보리는 새로운 왕국의 평가 기준을 제시합니다. 이 나라에서는 지위나 명령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지닌 선과 진리,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주님의 자비만이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즉, 존재의 가치가 외적 힘이 아니라 내적 상태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지요.

 

흥미로운 점은, 스베덴보리가 이 영에게 지상의 비유를 그대로 사용해 설명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상에서도 사람은 재산과 군주의 호의에 따라 평가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다만 지상과 달리 이 나라에서의 재산은 금이나 땅이 아니라, 선과 진리이며, 군주의 호의는 주님의 자비라고 말합니다. 이 비유는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그러나 완전히 다른 가치 체계를 제시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가장 강한 말은 ‘반역자’라는 표현입니다. 만일 그가 여전히 이전 방식으로 남의 나라인 이곳에서 권세를 행사하려 한다면, 그는 이제 다른 분의 나라에 있으면서 반역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는 도덕적 비난이 아니라, ‘질서의 문제’를 지적하는 말입니다. 왕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옛 왕의 권한을 행사하려 한다면, 그것은 충성이 아니라 반역이 됩니다.

 

이 말을 들은 후의 반응은 단순합니다. 그는 부끄러워합니다. 이 부끄러움은 처벌의 결과가 아니라, 질서를 깨달았을 때 자연스럽게 따르는 감정입니다. 그는 자신이 아직도 옛 나라의 논리로 새 나라를 살려고 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설교자의 관점으로 보면, 이 본문은 권위와 직분, 영향력에 대한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지상의 모든 권세는 그때뿐이며, 역할이었을 뿐이고, 한시적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정당했더라도, 영원한 나라로는 가져갈 수 없습니다. 영원한 나라에서 유효한 것은 오직 ‘선과 진리, 그리고 주님의 자비 안에 있는 상태’뿐이기 때문입니다.

 

AC.451은 이렇게 말합니다.

 

천국은 권세를 이어 가는 곳이 아니라, 질서를 받아들이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 질서를 받아들일 때, 사람은 지위를 잃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자기 자리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위협이 아니라 초대입니다. 이제 더 이상 지배하려 하지 말고, 주님의 나라의 질서 안에서 선과 진리로 부유해지라는 초대입니다.

 

 

 

AC.452, 창5 앞, '천국과 천국의 기쁨은 어디에 있는가?'

AC.452 저는 천국과 천국의 기쁨이 가장 위대해지는 데에 있다고 생각하던 영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에서 가장 위대한 이는 가장 작은 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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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0, 창5 앞, '천국은 높은 데서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다'

AC.450 이 세상에 있을 때 말씀에 관하여 특별히 밝은 것처럼 보였던 어떤 이들은, 천국에 대해 매우 그릇된 생각을 품고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이 높은 곳에 있으면 곧 천국에 있는 것이라고 여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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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0

 

이 세상에 있을 때 말씀에 관하여 특별히 밝은 것처럼 보였던 어떤 이들은, 천국에 대해 매우 그릇된 생각을 품고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이 높은 곳에 있으면 곧 천국에 있는 것이라고 여겼고, 그 높은 자리에서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상상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영광과 남들 위에 서는 우월함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환상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잘못되었음을 보여 주기 위하여, 그들은 실제로 높은 곳으로 올려졌고, 거기서 아래의 것들을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도록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환상에 불과한 천국임을 부끄러움 속에서 깨달았으며, 천국은 높아지는 걸로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라, 사랑과 체어리티(charity), 곧 그 안에 주님의 나라가 있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마다 그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천국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아지기를 바라는 데에 있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남들보다 더 위대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Some who during their abode in this world had seemed to be preeminently enlightened in regard to the Word, had conceived so false an idea about heaven that they supposed themselves to be in heaven when they were high up, and imagined that from that position they could rule all things below, and thus be in self-glory and preeminence over others. On account of their being in such a fantasy, and in order to show them that they were in error, they were taken up on high, and from there were permitted in some measure to rule over things below; but they discovered with shame that this was a heaven of fantasy, and that heaven does not consist in being on high, but is wherever there is anyone who is in love and charity, or in whom is the Lord’s kingdom; and that neither does it consist in desiring to be more eminent than others, for to desire to be greater than others is not heaven, but hell.

 

 

해설

 

이 글은 스베덴보리가 ‘천국에 대한 가장 뿌리 깊은 오해 하나를 정면으로 해체’하는 대목입니다. 그것은 곧 ‘높아짐’과 ‘천국’을 동일시하는 생각입니다. 특히 이 오해는 말씀에 밝다고 여겨졌던 이들, 곧 종교적 지식과 이해를 많이 갖춘 사람들에게서 더 쉽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매우 날카로운 경고가 됩니다.

 

이들은 천국을 공간적 개념으로 이해했습니다. 높은 곳, 위에 있음, 내려다봄, 다스림 같은 이미지가 천국의 본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고대부터 반복되어 온 상상입니다. 신적인 것은 위에 있고, 인간적인 것은 아래에 있으며, 위에서 아래를 통제하는 것이 곧 신적 질서라고 여기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호히 ‘환상’이라고 부릅니다.

 

흥미로운 점은, 주님께서 이 오해를 말로만 교정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믿고 있던 바로 그 환상을 실제로 체험하게 하십니다. 그들은 높은 곳으로 올려지고, 아래를 다스릴 수 있는 권한도 어느 정도 허락받습니다. 이 장면은 일종의 ‘영적 실험’과도 같습니다. 그들이 믿는 천국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스스로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경험한 것은 참된 천국의 기쁨이 아니라, 공허하고 불안정한 환상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높이 올라갔지만 평안은 없었고, 다스렸지만 기쁨은 없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들은 비로소 알게 됩니다. 천국은 위아래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과 체어리티(charity)의 문제’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천국의 정의를 매우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천국은 사랑과 체어리티 안에 있는 사람이 있는 곳마다 있으며, 그곳이 곧 주님의 나라라고 말입니다. 이는 천국이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상태’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 줍니다. 어디에 있느냐보다, 어떻게 사랑하느냐가 천국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은 이 글의 핵심을 찌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위대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충고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람의 방향’ 자체가 서로 반대임을 말합니다. 천국의 사랑은 낮아짐과 섬김으로 흐르고, 지옥의 사랑은 높아짐과 지배로 흐릅니다. 둘은 결코 같은 방향일 수 없습니다.

 

설교자의 관점으로 보면, 이 본문은 교회와 신앙의 구조를 다시 점검하게 만듭니다. 영적 지식, 직분, 영향력, 인정받음이 언제든지 ‘높아짐의 환상’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말씀에 밝고, 영적 언어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자신도 모르게 천국을 ‘위치’나 ‘지위’로 오해할 위험이 큽니다.

 

AC.450은 이렇게 말합니다.

 

천국은 위에 있지 않습니다. 천국은 사랑이 있는 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덧붙입니다.

 

남들보다 더 높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시작되는 그 지점에서, 우리는 이미 천국의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본문은 천국을 낮추는 글이 아니라, 천국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는 글’입니다.

 

 

 

AC.451, 창5 앞, '사후 세계', 지상 권세가 안 통하는 나라

AC.451 육신의 삶에서 권세를 지니고 있었던 어떤 영이, 사후 세계에서도 여전히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다른 나라, 곧 영원한 나라에 와 있다는 말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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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49, 창5 앞,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49-459)

AC.449 지금까지 천국과 천국의 기쁨이 어떠한 것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생각해 본 사람들조차도, 그것에 대해 매우 일반적이고 거친(gross) 개념을 형성하였을 뿐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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