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19.심화

 

5. ‘암사슴을 낙태하게 하시고

 

영어 성경과 달리 한글 성경에서는 낙태로 번역한 이유는?

 

 

좋은 질문입니다. 사실 여기에는 번역상의 문제라기보다 원문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습니다.

 

29:9의 히브리어는 전통적으로 두 가지로 번역되어 왔습니다.

 

첫 번째는 현재 개역개정처럼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낙태하게 하시고’라는 번역입니다. 두 번째는 영어 성경들 가운데 적지 않은 번역처럼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으로 하여금 새끼를 낳게 하시고’ 또는 ‘해산하게 하시고’라는 번역입니다. 예를 들어, KJV는 다음과 같습니다.

 

The voice of the LORD maketh the hinds to calve, and discovereth the forests.’

 

여기서 ‘calve’는 ‘새끼를 낳다’는 뜻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사용한 라틴어 번역도 바로 이 계열입니다.

 

The voice of Jehovah maketh the hinds to calve and uncovereth the forests.’

 

그래서 AC.219에서 스베덴보리는 ‘암사슴을 새끼 낳게 한다’는 의미를 전제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한글 성경은 ‘낙태’라고 번역했을까요? 히브리어 원어의 동사 ‘חול(chul) 또는 관련 형태는 본래 ‘몸을 떨다’, ‘산고를 겪다’, ‘해산하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런데 고통스러운 진통을 강조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일부 고대 번역 전통에서는 ‘조산’, ‘유산’, ‘낙태’의 뉘앙스로 이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어 번역자들은 문맥상 천둥과 폭풍의 위력을 강조하는 시편 29편의 분위기를 고려하여, ‘여호와의 음성이 너무 강력하여 암사슴마저 놀라 새끼를 떨어뜨린다’는 의미로 번역한 것입니다. 즉 ‘낙태하게 하신다’는 번역은 자연계의 폭풍우가 동물들에게 미치는 충격을 강조한 번역입니다.

 

반면 스베덴보리는 내적 의미를 보기 때문에 전혀 다르게 읽습니다. 그에게 암사슴(hinds)은 선한 애정(good affections)을 의미합니다. 새끼를 낳는 것(calve)은 그 애정으로부터 선한 행위와 진리가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의 음성이 암사슴을 새끼 낳게 한다’는 의미를 취합니다.

 

흥미롭게도 바로 다음 구절이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uncovereth the forests)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내면에 숨어 있던 것들을 드러내신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즉 주님의 진리는 한편으로는 선한 애정이 열매 맺게 하고(암사슴이 새끼를 낳음), 다른 한편으로는 숨겨진 거짓과 악을 드러낸다(숲을 벗김)는 것입니다.

 

따라서 AC.219의 문맥에서는 개역개정의 ‘낙태’보다 KJV의 ‘새끼를 낳게 하신다’가 스베덴보리의 해석과 훨씬 잘 맞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 저작을 번역하거나 해설할 때는 이 구절을 보통 다음과 같이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여호와의 음성은 선한 애정들(암사슴들)로 하여금 열매를 맺게 하고, 사람 안에 숨겨진 것들(삼림)을 드러내신다.’

 

 

 

AC.219, 심화 4, ‘시29:3-5, 7-9’

AC.219.심화 4. ‘시29:3-5, 7-9’ 3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4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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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19.심화

 

4. ‘29:3-5, 7-9

 

3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4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5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7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8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시키시도다 9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낙태하게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의 성전에서 그의 모든 것들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29:3-5, 7-9) The voice of Jehovah is upon the waters; the voice of Jehovah is in power; the voice of Jehovah is in glory; the voice of Jehovah breaketh the cedars; the voice of Jehovah divideth the flames of fire; the voice of Jehovah maketh the wilderness to shake; the voice of Jehovah maketh the hinds to calve and uncovereth the forests (Ps. 29:3–5, 7–9).

 

 

이 구절을 AC.219에서 인용한 이유는, 말씀에서 ‘여호와의 소리(voice of Jehovah)가 단순한 음향이나 천둥소리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작용하는 신적 진리와 계시, 그리고 내적 딕테이트(interior dictate)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문자적으로 이 시편은 폭풍우가 지나가는 장면처럼 보입니다. 천둥이 울리고, 백향목이 꺾이고, 광야가 흔들리고, 불꽃이 갈라지는 장엄한 자연 현상이 묘사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자연 현상에 대한 시적 묘사로만 보지 않습니다. 그는 여기에 인간의 영혼과 교회 안에서 역사하는 신적 진리의 작용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먼저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다’는 말에서 ‘’은 말씀의 진리와 신앙의 지식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음성이 물 위에 있다는 것은 신적 진리가 인간의 이해와 신앙 위에 역사하는 것을 뜻합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위엄차도다’라는 것은 진리 자체가 가진 능력을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진리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는 영적 힘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음성은 언제나 힘 있고 영광스럽습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신다’는 표현도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백향목은 말씀에서 흔히 인간의 높은 지성과 자랑스러운 이성적 능력을 상징합니다. 특히 레바논의 백향목은 인간이 자랑하는 지혜와 학식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음성이 그것을 꺾는다는 것은, 주님의 진리가 인간 own의 교만한 지혜와 자기 확신을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신다’는 말에서 화염은 사랑과 욕망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진리가 인간 안의 사랑과 욕망을 분별하고 드러내는 작용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진리는 무엇이 천국적 사랑이고, 무엇이 자기 사랑인지를 밝혀 줍니다.

 

또한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시킨다’라는 것은 영적으로 황폐한 상태를 흔들어 깨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광야는 진리와 선이 부족한 상태를 상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음성은 죽어 있는 양심을 흔들고, 잠든 영혼을 깨우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AC.219의 문맥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낙태하게 하시고 삼림을 벗기신다’는 구절입니다. 오늘날 번역으로는 다소 낯설게 들리지만,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영적 출산의 이미지로 읽습니다. 암사슴은 선한 애정과 순수한 정서를 상징하며, 새끼를 낳게 한다는 것은 선한 것들이 실제 삶 속에 태어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숲을 벗긴다는 것은 감추어진 것들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시29 전체는 폭풍의 시가 아니라, 여호와의 음성이 인간 안에서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보여 주는 시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물 위에서 진리를 가르치고, 교만한 백향목을 꺾고, 광야를 흔들고, 새로운 생명을 태어나게 하며, 숨겨진 것들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AC.219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창3:8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산에서 거니시는 음성’이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 음성은 아담과 하와 안에 남아 있던 마지막 지각, 곧 퍼셉션의 흔적을 깨우는 내적 딕테이트였으며, 시29의 여호와의 음성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내면을 비추고, 흔들고, 드러내고, 때로는 책망하는 신적 진리의 작용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여호와의 음성’은 귀로 듣는 소리라기보다, 영혼이 듣는 진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AC.219는 바로 그 사실을 시29를 통해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AC.219, 심화 5, ‘암사슴을 낙태하게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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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19, 심화 3, ‘시68:32-33’

AC.219.심화 3. ‘시68:32-33’ 32땅의 왕국들아 하나님께 노래하고 주께 찬송할지어다 33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내시니 웅장한 소리로다 (시68:32, 33) Sing unto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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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68:32-33

 

32땅의 왕국들아 하나님께 노래하고 주께 찬송할지어다 33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내시니 웅장한 소리로다 (68:32, 33) Sing unto God, sing praises unto the Lord, who rideth upon the heavens of heavens which were of old; lo, he shall send out his voice, a voice of strength (Ps. 68:32–33).

 

 

이 구절을 AC.219에서 인용한 이유는, 말씀에서 ‘음성(voice)이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계시(revelation)와 내적 딕테이트(interior dictate)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특별히 이 구절 가운데 ‘옛적 하늘들의 하늘(the heavens of heavens which were of old)이라는 표현에 주목합니다. 그는 이것을 단순히 아주 높은 하늘이라는 뜻으로 보지 않고, 태고교회(Most Ancient Church)의 지혜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합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후대 사람들과 달리 지각(perception)을 통해 주님의 뜻을 직접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라는 표현은 태고교회에 알려졌던 주님의 신적 통치와 인도를 가리키며, 이어지는 ‘그가 그의 음성을 내신다’는 말은 단순한 소리의 발성이 아니라 주님의 계시와 내적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특히 AC.218-219의 흐름 속에서 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창3:8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산에서 거니시는 음성’은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내적 딕테이트였습니다. 따라서 AC.219는 여러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음성’이 원래부터 계시와 양심, 내적 깨달음을 의미하는 표현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웅장한 소리(a voice of strength)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히 큰 소리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strength)은 진리가 가진 능력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진리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깨우고, 거짓을 무너뜨리고, 선을 일으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음성은 언제나 ‘힘 있는 음성’입니다.

 

더 나아가 이 구절은 태고교회와의 연결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AC.218에서는 타락한 후손들에게도 아직 퍼셉션의 잔재가 남아 있었음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AC.219에서는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언급함으로써, 그 퍼셉션이 원래 어디에서 왔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것은 태고교회가 누렸던 주님과의 직접적인 교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따라서 AC.219에서 시68:32-33을 인용한 이유는, ‘여호와의 음성’이 단순한 청각적 소리가 아니라 계시와 내적 딕테이트를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며, 특별히 ‘옛적 하늘들의 하늘’이라는 표현을 통해 태고교회 사람들이 가졌던 지각(perception)과 주님의 계시 사이의 관계를 암시하기 위해서입니다.

 

어쩌면 목사님께서 지금까지 AC.190 이후 계속 따라오신 흐름 속에서 보면, 이 구절은 매우 아름답게 읽힙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주님의 음성을 바깥에서 들은 것이 아니라 안에서 알았습니다. 그것이 퍼셉션이었습니다. 그리고 타락 후에도 그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창3:8에서 아담과 하와가 두려워했던 바로 그 ‘음성’은, 사실 태고교회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주님의 내적 부르심의 마지막 메아리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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