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RC.034 | 천주교의 교리와 신앙 속 진리와 오류 100선
‘마리아는 지상 생애를 마친 뒤 몸과 영혼이 함께 하늘에 올림받았다’ - 성모 승천은 특별한 육체적 영화인가, 주님의 유일한 부활과 구별해야 할 교리인가?
‘마리아는 지상 생애를 마친 뒤 몸과 영혼이 함께 하늘에 올림받았다.’ 이것은 천주교의 대표적인 마리아 교리 가운데 하나인 ‘성모 승천’(聖母昇天, Assumption of Mary)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천주교는 마리아가 지상 생애를 마친 뒤 영혼만 천국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몸과 영혼이 함께 천상의 영광에 들어갔다고 믿습니다. 여기에는 마리아가 주님의 어머니로서 특별한 은총을 받았으며,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리에 다른 신자들보다 앞서 참여했다는 신앙적 이해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리를 접하면 몇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인간은 죽은 후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데, 마리아만 몸과 영혼이 함께 하늘에 올림받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여기서 말하는 몸은 지상에서 사용하던 자연적인 육체일까요, 아니면 영광스럽게 변화된 몸일까요? 마리아의 특별한 승천은 성경 어디에 기록되어 있을까요? 무엇보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이 죽은 후에도 완전한 인간의 형상을 지닌 영적 몸으로 살아간다고 가르치는데, 이러한 사후세계의 이해와 천주교의 성모 승천 교리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요? 이 질문은 마리아의 특별한 지위에 관한 문제를 넘어 인간의 죽음과 부활, 자연계와 영계의 관계, 그리고 주님께서 이루신 인성의 영화(榮化, glorification)가 무엇인지를 묻는 중요한 신학적 문제입니다.
성모 승천은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가 교황령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Munificentissimus Deus)을 통하여 공식적으로 확정한 교리입니다. 그 정의문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하느님의 어머니이자 평생 동정녀이신 마리아가 지상 생애를 마친 뒤 몸과 영혼이 함께 천상의 영광에 들어갔다고 선언합니다. 이 가르침은 ‘가톨릭교회 교리서’(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966항에도 나타납니다. 교리서는 마리아의 승천을 그리스도의 부활에 특별하게 참여한 사건이며,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장차 이루어질 몸의 부활을 미리 보여 주는 사건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승천과 마리아의 승천은 구별해야 합니다. 영어에서 주님의 승천은 ‘어센션’(Ascension), 마리아의 승천은 ‘어섬션’(Assumption)이라고 부릅니다. 전자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자신의 신적 능력으로 하늘에 오르셨다는 의미이고, 후자는 마리아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으로 천상의 영광에 올림받았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천주교가 마리아에게 예수님과 동일한 신적 권능을 부여한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성모 승천을 자연적인 육체가 아무런 변화 없이 물질적인 공간을 이동한 사건으로 단순화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천주교는 마리아의 몸이 영화되어 천상의 영광에 참여했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검토해야 할 핵심은 바로 이러한 특별한 육체적 영화가 실제로 계시된 진리인가 하는 점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정확하게 구별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천주교가 1950년에 확정한 교리의 정의문은 마리아가 지상 생애를 마쳤다고 선언하지만, 그가 반드시 죽은 뒤 부활했는지, 아니면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하늘에 올림받았는지를 신앙의 교리로 확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지상 생애를 마친 뒤’라는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톨릭과 동방교회의 오랜 전통에서는 마리아가 실제로 죽음을 경험했다고 이해하는 견해가 널리 이어져 왔습니다. 동방교회는 이를 ‘성모 안식’(Dormition of the Theotokos)이라고 부르며, 마리아가 죽음의 잠을 거쳐 천상의 영광에 들어갔다고 이해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1997년 7월 2일의 교리교육에서 마리아가 죽은 뒤 그 몸이 영화되었다는 전통적인 이해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1950년의 교리 정의문이 마리아의 죽음 여부를 신앙의 진리로 결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따라서 천주교가 마리아는 죽지 않았다고 가르친다거나, 반대로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세부 과정까지 공식적으로 확정했다고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교리가 실제로 확정한 내용과 그 주변에서 발전한 신학적 설명 및 전승을 구별해야 합니다.
성모 승천은 앞서 살펴본 ‘무염시태’(無染始胎, Immaculate Conception) 및 마리아의 평생 동정과 연결됩니다. 천주교는 마리아가 주님의 성육신을 위하여 특별히 준비되었으며, 원죄에서 보존되는 은총을 받았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러한 특별한 은총이 지상 생애의 마지막에도 이어졌다고 이해합니다. 비오 12세는 마리아의 몸이 무덤의 부패에 맡겨지지 않고 천상의 영광에 들어간 것을 그의 특별한 신학적 지위와 연결하여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는 교리를 받아들인다고 해서, 그의 몸이 반드시 다른 모든 인간보다 먼저 영화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논리적으로 자동으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성모 승천은 무염시태와 연결되어 있지만, 그 자체로 별도의 계시적 근거를 요구하는 교리입니다. 천주교는 그 근거를 성경의 직접적인 사건 기록에서만 찾지 않고 교회의 전통과 전례, 성경의 여러 예표와 상징을 종합하여 설명합니다. 반면 스베덴보리의 렌즈로 이 문제를 검토할 때에는 그러한 신학적 연결이 실제로 말씀의 속뜻과 주님의 부활에 관한 가르침에 부합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마리아가 주님의 어머니로서 특별한 역할을 감당했다는 사실과, 그 몸이 다른 인간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방식으로 영화되었다는 주장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마리아가 주님의 성육신과 지상 생애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는 사실을 기록하지만, 그가 언제 어디에서 지상 생애를 마쳤으며 몸이 어떤 방식으로 천상의 영광에 들어갔는지는 직접적으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행1:14에는 마리아가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는 모습이 나타나지만, 그 이후의 죽음이나 승천에 관한 사건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천주교는 계12:1에 나타나는 해를 입은 여자, 창3:15의 여자와 뱀 사이의 적대 관계, 그리고 구약의 언약궤에 관한 말씀들을 성모 승천과 연결하여 해석합니다. 이러한 본문들은 마리아의 역할과 구원의 역사를 신학적으로 연결하여 생각하게 하지만, 마리아의 육체가 실제로 하늘에 올림받았다는 사건을 직접 서술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계12:1의 여인을 마리아 개인과만 동일시하는 것은 본문의 상징적 성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계시록 해설’(Apocalypse Revealed, AR, 1766) 533항에서 해를 입은 여인이 새 하늘에 있는 주님의 새 교회와 땅 위에 세워질 새 교회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이 여인은 우선 교회와 그 영적 상태를 나타내는 표상입니다. 이를 마리아의 육체적 승천을 직접 증명하는 본문으로 사용하는 것은 말씀의 속뜻과 후대의 교리적 적용을 혼동할 위험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식으로 데려가신 사람들에 관한 기록도 있습니다. 창5:24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다고 기록하며, 왕하2:11은 엘리야가 회오리바람 가운데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들이 곧 마리아에게도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는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초기 인물들의 이야기 안에 교회의 영적 상태와 변화에 관한 깊은 속뜻이 담겨 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에녹의 이야기를 문자적으로만 이해하여 마리아의 승천과 직접 연결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식으로 사람을 데려가실 수 있는가 하는 가능성의 문제와, 마리아에게 실제로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계시되었는가 하는 증거의 문제를 구별하는 일입니다. 성경에 어떤 종류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록되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도 동일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마리아의 성모 승천 역시 이러한 구별 아래에서 검토해야 합니다.
이제 스베덴보리의 사후세계론을 살펴보겠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 HH, 1758) 445–452항에서 인간이 죽는 순간의 상태와 영계에서 깨어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인간이 죽는 것은 그 존재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계에서 사용하던 육체와 분리되어 영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물질적인 육체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 안에 있으며, 육체는 영이 자연계에서 활동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따라서 육체의 기능이 멈추더라도 인간의 생명은 계속됩니다. 또한 HH.453–469에서는 사람이 죽은 후에도 완전한 인간의 형상을 지니고 있으며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능력을 계속 지닌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후의 인간이 단순히 형체 없는 의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실제로 몸을 가지고 있지만, 그 몸은 자연계의 물질로 이루어진 육체가 아니라 영계에 속하는 ‘영적 몸’(靈的身體, spiritual body)입니다. 이러한 구별은 성모 승천 교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만일 마리아가 죽은 후에도 완전한 인간의 형상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의미라면,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그것은 마리아만의 특별한 특권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이 죽은 후에도 영적 몸을 지닌 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주교의 성모 승천은 단순히 마리아가 영계에서 인간의 형상을 지닌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천주교는 마리아가 장차 모든 의인에게 이루어질 몸의 부활과 영화에 특별한 방식으로 미리 참여했다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두 전통의 차이는 사후에도 인간이 몸을 지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 몸이 무엇이며 자연적인 육체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의 문제에서 드러납니다.
이 구별은 스베덴보리의 ‘최후의 심판’(Last Judgment, LJ, 1758) 36항에서 더욱 명확해집니다. 그는 자연계의 인간은 자연적인 몸을 입고 있지만 영계의 인간은 영적인 몸을 입고 있으며, 두 몸은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한다고 설명합니다. 자연적인 눈은 자연적인 것을 보고, 영적인 눈은 영적인 것을 봅니다. 따라서 영계에 들어간 인간이 완전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지상에서 입었던 자연적인 육체가 그대로 영계로 옮겨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은 자연적인 몸을 벗고 영적인 몸으로 살아가며, 그 안에서 자신의 사랑과 신앙에 따라 영원한 삶을 계속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물질적인 육체가 다시 살아나야 비로소 인간이 완전해진다는 생각은 스베덴보리의 사후세계론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천주교와 스베덴보리의 차이는 더욱 선명해집니다. 천주교는 마지막 날에 모든 인간에게 이루어질 몸의 부활을 믿으며, 마리아는 그 영광에 특별히 앞서 참여했다고 설명합니다. 반면 스베덴보리는 인간이 죽은 후 이미 영적 몸을 지닌 완전한 인간으로 살아간다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마리아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위하여 자연적인 육체의 특별한 영화까지 필요로 했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습니다.
여기서 더욱 결정적인 본문은 HH.316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주님께서 부활하실 때 영으로만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몸까지 부활하셨다고 설명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지상 생애 동안 자신의 인성 전체를 영화하여 신적으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영혼은 처음부터 아버지이신 여호와의 신성 자체였으며, 그분의 인성은 그 신성과 완전히 하나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일반 인간과 달리 몸까지 영화하여 부활하셨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일반 인간은 영으로 부활하지만 주님은 몸까지 부활하셨다고 분명하게 구별합니다. 여기서 주님의 몸의 부활을 자연적인 물질의 몸이 아무런 변화 없이 보존된 사건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인성을 온전히 신적으로 영화하셨으며, 그 영화된 인성은 자연적인 물질의 한계에 속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부활은 일반 인간의 사후 각성과 동일한 사건이 아니라, 주님 자신의 신적 능력으로 이루신 유일한 영화의 완성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마리아가 자신의 몸까지 특별히 영화되어 하늘에 올림받았다는 천주교의 교리는 중요한 신학적 긴장을 일으킵니다. 스베덴보리는 주님만이 몸까지 영화하여 부활하셨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기서 두 전통의 용어를 무조건 같은 의미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천주교가 말하는 마리아의 몸의 영화는 피조물에게 베푸신 은총이며,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주님의 인성의 영화는 신성 자체가 인성을 신적으로 만드신 사건입니다. 두 설명은 동일한 종류의 영화가 아니므로, 단순히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모순이라고 단정하기보다 두 전통이 몸의 부활과 영화 자체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사후에 어떤 존재로 이해해야 할까요? 스베덴보리는 ‘참된 기독교’(True Christian Religion, TCR, 1771) 827항에서 마리아와 관련된 특별한 영적 경험을 기록합니다. 그는 흰옷을 입은 마리아를 보았으며, 마리아가 자신은 주님의 어머니였지만 주님께서 어머니에게서 취하신 인간적인 것을 벗으시고 인성을 신적으로 만드셨으므로 이제는 그분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예배한다고 말했다고 전합니다. 이 기록에서 마리아는 주님과 동일한 신적 권위를 지닌 존재가 아니라 주님을 예배하는 영계의 한 인간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여기서 자료의 성격을 분명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TCR.827은 성경에 기록된 사건이 아니라 스베덴보리가 자신의 영적 경험으로 보고한 내용입니다. 또한 이 본문은 마리아가 지상 생애를 마칠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의 자연적인 육체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마리아와 영계에서 만났다는 기록만으로 성모 승천의 역사적 사실이 반박되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기록은 스베덴보리가 마리아를 주님을 예배하는 영계의 인간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직접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는 모든 인간이 사후에도 영적 몸을 지닌 존재로 살아간다는 그의 사후세계론과 일치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천국의 영광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천주교는 성모 승천을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부활에 특별히 참여한 사건으로 이해하며, 장차 모든 신자에게 이루어질 몸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보여 준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천국의 영광은 자연적인 육체가 얼마나 특별한 방식으로 보존되거나 변화되었는가에 따라 결정되지 않습니다. 천국의 상태는 인간이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과 진리를 얼마나 받아들이고 그 사랑과 진리에 따라 살아가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천국의 모든 천사는 영적 몸을 지니고 있으며, 각 사람은 자신의 내적인 사랑과 신앙에 따라 서로 다른 천국의 상태에 있게 됩니다. 따라서 자연적인 육체가 특별한 방식으로 영화되었다는 사실이 천국에서의 더 높은 영적 상태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마리아의 실제적인 천국의 상태를 인간이 임의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의 내면과 영원한 상태에 대한 최종적인 앎은 오직 주님께 속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리아에게 어떤 특별한 영광이 주어졌는가보다, 천국의 모든 생명과 영광이 오직 주님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입니다. 천국은 특별한 몇 사람의 신체적인 특권에 의하여 성립하는 세계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영적인 삶의 세계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모 승천 교리에서 인정해야 할 진리와 다시 검토해야 할 주장을 구별해야 합니다. 마리아가 주님의 성육신을 위하여 선택된 복된 여인이었다는 사실은 성경에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또한 주님께서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며 죽음 이후에도 인간이 계속 살아간다는 사실은 스베덴보리의 사후세계론에서도 중요한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지상 생애를 마친 후에도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 안에서 살아간다는 이해 자체는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다른 모든 인간과 달리 자신의 자연적인 육체와 연결된 특별한 육체적 영화를 미리 누렸다는 주장은 별도의 계시적 근거를 요구합니다. 성경은 그러한 사건을 직접 기록하지 않으며, 스베덴보리의 저작 역시 그것을 신적으로 확정된 진리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인간이 죽은 후 자연적인 몸을 벗고 영적인 몸으로 살아간다고 설명하며, 주님께서 자신의 몸까지 영화하여 부활하신 사건을 일반 인간의 부활과 구별합니다. 따라서 성모 승천을 반드시 믿어야 할 신앙의 교리로 확정하는 것은 스베덴보리의 사후세계론에서 직접적인 뒷받침을 얻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는 마리아의 사후에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우리가 역사적으로 증명하거나 반증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더욱 중요하게 붙들어야 할 것은 주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베푸시며, 그들을 자신의 사랑과 진리 안에서 천국의 삶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마리아가 어떤 특별한 방식으로 하늘에 들어갔는가보다, 죽음을 이기시고 자신의 인성을 영화하여 모든 구원의 근원이 되신 주님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일이 더욱 중요합니다. 결국 인간의 영원한 생명과 천국의 영광은 마리아의 특별한 승천에 근거하지 않고, 자신의 인성을 영화하여 모든 인간에게 천국의 길을 열어 주신 주님 한 분에게서 비롯됩니다. (SL.RC.034 해설)
‘마리아는 지상 생애를 마친 뒤 몸과 영혼이 함께 하늘에 올림받았다’라는 명제에는 마리아가 주님의 성육신을 위하여 선택된 복된 여인이며, 인간의 영원한 생명이 오직 주님의 은총과 구속에서 비롯된다는 중요한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천주교는 성모 승천을 마리아가 자신의 능력으로 하늘에 올랐다는 뜻으로 가르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부활에 특별히 참여하여 몸과 영혼이 천상의 영광에 들어갔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마리아가 죽음을 경험했는지의 여부는 1950년의 교리 정의문에서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자신의 몸까지 특별히 영화되어 하늘에 올림받았다는 주장은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을 넘어서는 교리적 선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HH.445–469와 LJ.36에서 인간이 죽은 후 자연적인 몸을 벗고 영적인 몸으로 살아간다고 설명하며, HH.316에서는 주님만이 자신의 몸까지 영화하여 부활하셨다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마리아가 영계에서 완전한 인간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 살아간다는 사실과, 다른 모든 인간과 구별되는 특별한 육체적 영화를 미리 누렸다는 주장은 구별해야 합니다. 전자는 스베덴보리의 사후세계론과 일치하지만, 후자는 그의 가르침에서 직접적인 근거를 찾기 어렵습니다. 특히 천주교의 육체 부활론과 스베덴보리의 영적 몸에 관한 가르침은 인간의 사후 상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다만 이러한 신학적 차이가 마리아의 지상 육체에 실제로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역사적으로 증명하거나 반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류로 검토해야 할 핵심은 마리아가 천국에서 살아간다는 믿음이나 그의 특별한 소명을 존중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성경의 직접적인 증언과 스베덴보리의 사후세계론에서 확증되지 않는 특별한 육체적 승천을 모든 신자가 반드시 믿어야 할 신적 진리로 확정하는 데 있습니다. 천국의 생명은 자연적인 육체의 특별한 보존에 달려 있지 않으며,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영적 상태와 관계됩니다. 그러므로 이 교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마리아의 특별한 육체적 지위를 높이는 데 있지 않고, 죽음을 이기시고 자신의 인성을 영화하여 모든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 주신 주님의 유일한 신성과 구속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있어야 합니다.
RC.033.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기 전과 낳을 때와 낳은 후에도 평생 동정녀였다’
SL.RC.033 | 천주교의 교리와 신앙 속 진리와 오류 100선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기 전과 낳을 때와 낳은 후에도 평생 동정녀였다’ - 주님의 동정녀 탄생과 마리아의 평생 동정은 같은 신앙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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