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C.11 심화

3. 부정한 짐승의 주검은 만지기만 해도 부정해졌을까?’

 

11에서는 먹지 말라는 명령만큼이나 만지지 말라는 명령이 반복됩니다. 특히 부정한 짐승의 주검을 만지면 저녁까지 부정해지고, 그것을 옮기는 사람은 옷까지 빨아야 했습니다. 먹지도 않았는데 단지 접촉했다는 이유로 왜 부정해졌을까요?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1749-1756, AC) 994(9:3)는 이 문제에 직접적인 단서를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기는 이 좋은 의미에서는 선한 애정 안에 있는 자연적 즐거움을 의미하지만, 반대 의미에서는 proprium과 악한 욕망에서 나오는 더러운 즐거움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레11:27, 29-33의 부정한 기는 것들을 직접 언급하면서, 이런 것들이 악한 욕망에서 나오는 더러운 즐거움을 표상했기 때문에 당시 표상교회에서는 그것을 만지는 것까지 부정하게 여겼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접촉입니다. 인간은 어떤 악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고 해서 그 악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악한 욕망이나 거짓을 마음 가까이에 두고 반복해서 바라보고 즐기다 보면 그것이 점차 우리의 애정과 생각에 영향을 줍니다. 처음에는 단지 접촉하는 것처럼 보여도 계속 가까이하면 어느 순간 그것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AC.994가 강조하는 것은 그 안의 즐거움입니다. 악은 언제나 처음부터 무섭고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재미있고 달콤하고 만족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험담을 듣는 즐거움, 복수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느끼는 만족, 음란한 생각의 쾌감,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낫다는 것을 확인할 때의 기쁨도 처음에는 작은 즐거움처럼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 즐거움 안에 어떤 애정이 들어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원하지 않는 악한 생각이 순간적으로 떠오르거나 유혹을 받는 것 자체가 곧 그 악을 자기 것으로 삼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유혹은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받아들여 즐기고 의도하느냐, 아니면 그것이 악임을 알고 주님의 도움을 구하며 거절하느냐입니다. 악이 문 앞에 오는 것과 문을 열어 안으로 들이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또한 이 말씀을 사람 자체에 적용해서 부정한 사람과 접촉하면 나도 더러워진다고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영적으로 피해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악과 거짓입니다. 오히려 체어리티는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가까이 가면서도 그 사람을 지배하는 악을 악으로 분별할 수 있게 합니다.

 

11에서 부정해진 사람이 영원히 부정한 채 남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옷을 빨고 저녁까지 기다린 뒤 다시 정하게 됩니다. 이것은 악과 거짓의 영향이 인간에게 들어올 수 있지만 주님의 진리를 통해 다시 정결하게 될 수 있다는 큰 원리와 잘 어울립니다. 거듭남은 한 번도 더러워지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더러움을 깨닫고 계속 씻김을 받는 삶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레11의 접촉 규정은 인간의 마음이 무엇과 가까이하고 무엇을 즐기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줍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생각과 욕망과 정보와 영상과 이야기에 접촉합니다. 그 모든 것을 마음 안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것은 접촉하는 순간부터 그것이 내 애정을 어디로 끌고 가는지 살펴야 합니다.

 

거듭남에는 먹지 않는 뿐 아니라 만지지 않는 도 있습니다. 어떤 악은 충분히 경험해 본 뒤 판단하겠다고 가까이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 지혜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분별은 무엇을 사랑하고 받아들일 것인가뿐 아니라 무엇과 마음의 접촉을 끊을 것인가까지 포함합니다. 11만지지 말라는 말씀은 바로 그 마음의 경계까지 거룩하게 하시는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SWC.11 심화 3)

 

 

 

SWC.레11,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절할 것인가’

SWC.레11,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절할 것인가’ 1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육지의 모든

bygrace.kr

 

SWC.레11 심화2, ‘왜 기어 다니는 곤충 중 메뚜기 종류는 먹을 수 있었을까?’

SWC.레11 심화2. ‘왜 기어 다니는 곤충 중 메뚜기 종류는 먹을 수 있었을까?’레11의 음식법 가운데 상당히 뜻밖의 규정이 하나 있습니다.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은 일반적으로 가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SWC.11 심화

2. 기어 다니는 곤충 메뚜기 종류는 먹을 있었을까?’

 

11의 음식법 가운데 상당히 뜻밖의 규정이 하나 있습니다.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은 일반적으로 가증하게 여기라고 하시면서도 발에 뛰는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뛰는 은 먹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메뚜기와 베짱이와 귀뚜라미와 팥중이 종류가 예외가 됩니다. 왜 이런 작은 차이가 정함과 부정함을 가르는 기준이 되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스베덴보리가 놀라울 만큼 직접적인 설명을 남겼습니다. ‘계시록 해설(Apocalypse Explained, 1757-1759, AE) 543(9:3)은 바로 레11:20-22를 인용하면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런 메뚜기 종류를 먹도록 허용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다리는 영적 선과 결합된 자연적 선을 의미하고, ‘은 그 선에서 나오는 자연적 진리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에서 나오는 진리는 인간에게 받아들여지고 결합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런 곤충을 먹는 것이 허용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원리를 보여 줍니다. 메뚜기는 땅 가까이 사는 낮은 생물입니다. 가장 높은 천적인 것을 직접 표상하는 동물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자연적인 것이 영적인 선과 결합되어 있고, 거기에서 자연적인 진리가 나온다면 그것은 인간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자연적인가 영적인가의 단순한 대립이 아니라 자연적인 것이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가입니다.

 

스베덴보리의 거듭남 이해에서 자연적 인간은 제거되어야 할 인간이 아닙니다. 자연적 인간도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의 몸과 직업과 돈과 음식과 휴식과 인간관계와 일상의 즐거움은 그 자체로 악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자기애와 세상 사랑에 지배되는가, 아니면 영적인 선과 체어리티를 섬기는가입니다.

 

예를 들어 돈을 버는 것은 매우 자연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돈 자체를 사랑하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려 한다면 자연적인 것이 자기애와 결합한 것입니다. 반대로 가족을 책임지고 다른 사람을 돕고 선한 쓰임을 하기 위해 정직하게 일하여 돈을 번다면 같은 자연적 활동이 영적인 선과 연결됩니다. 음식과 휴식과 취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들이 삶의 목적이 될 때와 선한 쓰임을 위한 몸과 마음을 돌보는 수단이 될 때는 그 내적 질이 다릅니다.

 

그래서 이 작은 곤충의 뛰는 다리는 자연적인 삶을 무조건 버리지 말라는 중요한 가르침을 품고 있습니다. 다만 물리적으로 위로 뛰는 행위 자체를 영적 상승이라고 단순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직접 강조하는 핵심은 영적 선과 결합된 자연적 선에서 나오는 자연적 진리입니다.

 

거듭남은 인간을 세상에서 떼어내어 순수하게 영적인 존재로 만드는 과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평범한 자연적 삶까지 주님의 질서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과정입니다. 일하고, 먹고, 쉬고, 가족을 돌보고, 사람을 만나고, 작은 친절을 행하는 모든 일이 체어리티와 연결될 때 자연적인 삶도 천국의 질서를 섬기게 됩니다.

 

따라서 레11의 메뚜기 규례는 뜻밖의 희망을 보여 줍니다. 땅에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자연적인 것이라도 영적인 선과 결합되어 그 선에서 진리가 나오면 인간에게 받아들여져 삶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자연적인 삶을 버리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삶까지 거듭나게 하십니다. (SWC.11 심화 2)

 

 

 

SWC.레11 심화3, ‘왜 부정한 짐승의 주검은 만지기만 해도 부정해졌을까?’

SWC.레11 심화3. ‘왜 부정한 짐승의 주검은 만지기만 해도 부정해졌을까?’ 레11에서는 ‘먹지 말라’는 명령만큼이나 ‘만지지 말라’는 명령이 반복됩니다. 특히 부정한 짐승의 주검을 만지면

bygrace.kr

 

SWC.레11 심화1,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은 왜 나뉘었을까? - 음식법에 감추어진 애정의 분별’

SWC.레11 심화1.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은 왜 나뉘었을까? - 음식법에 감추어진 애정의 분별’ 레11을 읽으면 가장 먼저 생기는 질문은 ‘하나님께서는 왜 어떤 동물은 정하다고 하고 어떤 동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SWC.11 심화

1.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은 나뉘었을까? - 음식법에 감추어진 애정의 분별

 

11을 읽으면 가장 먼저 생기는 질문은 하나님께서는 어떤 동물은 정하다고 하고 어떤 동물은 부정하다고 하셨을까?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동물 자체에 도덕적인 선악이 있다는 뜻일까요? 스베덴보리의 설명은 분명합니다. 동물 자체가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당시 이스라엘 교회가 표상교회였기 때문에 각 동물이 인간 안의 서로 다른 애정을 표상했던 것입니다.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1749-1756, AC) 719(7:2)는 정한 짐승이 선한 애정을, 부정한 짐승이 악한 애정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정한 짐승들이 온순하고 선하며 유용한 성질을 가진 것으로 나타나는 반면, 부정한 짐승들은 그 반대의 성질을 표상합니다. 중요한 것은 동물을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물이 표상하는 인간의 애정입니다.

 

계시록 해설(Apocalypse Explained, 1757-1759, AE) 650(11:7)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레11의 음식법 자체를 직접 언급합니다. 당시 교회가 표상교회였기 때문에 짐승에 관한 법 하나하나에도 표상적 의미가 있었으며, 먹을 수 있는 짐승은 선을, 먹을 수 없는 짐승은 악을 의미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레11의 정결 규례는 고대의 음식 목록을 넘어 인간 안의 선한 애정과 악한 애정을 분별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먹는다는 행위와 연결됩니다. 음식은 몸 밖에 있을 때는 아직 내 몸이 아니지만 먹으면 내 몸 안으로 들어와 나의 일부가 됩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애정이나 생각이 마음에 떠올랐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이 곧 인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기며 의도할 때 점차 자기 것으로 삼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정한 것을 먹으라고 하고 부정한 것은 먹지 말라고 합니다.

 

이 원리는 거듭남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인간에게 악한 생각이나 욕망이 떠오르지 않는 상태가 거듭남은 아닙니다. 유혹 속에서는 원하지 않는 생각과 욕망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자기 것으로 인정하고 사랑하느냐, 아니면 주님의 진리 앞에서 그것이 악임을 보고 거절하느냐입니다. 우리 앞에 음식이 놓였다고 모두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듯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실패를 들었을 때 은근한 즐거움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즐거움을 계속 되새기며 즐긴다면 그것을 먹는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반대로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 용서하고 싶은 마음, 주님께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면 그런 선한 애정은 받아들이고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삶의 일부가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레11의 내적 의미를 살아간다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음식 목록을 그대로 복원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루 동안 내 마음에 들어오는 수많은 애정과 생각 가운데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절할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단순히 이것이 즐거운가?가 아니라 즐거움은 어떤 사랑에서 오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거듭남은 이런 의미에서 영적인 식생활과 같습니다. 무엇이든 마음이 원하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무엇이 생명에 속하고 무엇이 죽음에 속하는지를 분별하여 생명에 속한 것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 참된 자유입니다. 11의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은 오늘도 우리 마음의 식탁에 놓여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먹고 있는가? 어떤 애정과 생각을 것으로 만들고 있는가?이것이 음식법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시는 질문입니다. (SWC.11 심화 1)

 

 

 

SWC.레11 심화2, ‘왜 기어 다니는 곤충 중 메뚜기 종류는 먹을 수 있었을까?’

SWC.레11 심화2. ‘왜 기어 다니는 곤충 중 메뚜기 종류는 먹을 수 있었을까?’레11의 음식법 가운데 상당히 뜻밖의 규정이 하나 있습니다.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은 일반적으로 가

bygrace.kr

 

SWC.레11,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절할 것인가’

SWC.레11,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절할 것인가’ 1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육지의 모든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