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11.심화

 

1. ‘interior dictate

 

interior dictate’는 직역하면 내적 지시’, ‘내면의 지시’, ‘내적인 일깨움 정도가 됩니다. 여기서 interior’는 단순히 마음속(inner)이라는 뜻보다 더 깊은 차원의 속 사람에 속한’, ‘내적인’, ‘영적인’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dictate’는 누군가가 말을 받아 적게 하는 받아쓰기(dictation)의 어원이지만, 스베덴보리 문맥에서는 안에서 알려 주는 작용’, ‘내적으로 지시하는 것’, ‘직접 깨닫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따라서 AC.211에서의 interior dictate’는 어떤 음성이 귀에 들리는 현상을 뜻하지 않습니다. 또한 양심의 가책과도 완전히 동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태고교회 사람들에게 남아 있던 지각(perception)의 흔적이 작용하여, 자신들의 상태를 즉각적으로 알게 되는 내적 깨달음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당신이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해주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설명을 듣기 전부터 이미 ,내가 잘못했구나 하고 안에서 분명히 아는 상태가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interior dictate’는 이런 종류의 직접적인 내적 인식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AC.211에서 그들의 눈이 밝아져’라는 것은 새로운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interior dictate’, 곧 내적 지시에 의해 자신들이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순진무구한 상태에 있지 않고, 악 가운데 있음을 알게 되고 인정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번역으로는 내적 지시’가 가장 무난하고 정확해 보입니다. 다만 해설에서는 내면의 소리’, ‘내적 일깨움’, ‘마음 깊은 곳에서의 자각’, ‘설명 없이도 즉시 알게 되는 내적 인식 등의 표현을 함께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interior dictate’는 소리라기보다 지각이며, 음성이라기보다 직접적인 내적 앎에 가까운 개념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전체 저작을 놓고 보면, 이 표현은 특히 태고교회의 특징과 잘 어울립니다. 그들은 오늘날 사람들처럼 논증과 추론을 통해 진리를 찾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직접 진리를 지각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interior dictate’란 누군가의 설명이나 설득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빛 안에서 자신의 상태를 곧바로 알게 되는 내적 작용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AC.211 interior dictate’는 내적 지시’이면서 동시에 지각의 마지막 흔적’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표현입니다.

 

 

 

AC.211, 창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AC.211-21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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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les. (3:7)

 

AC.211

 

그들의 눈이 밝아져(eyes being opened), 내적 딕테이트(interior dictate), 즉 아직 조금 남아 있는 퍼셉션에 의해 자신들이 벗은 줄(naked), 곧 이전처럼 더 이상 순진무구한 상태에 있지 않고, 악 가운데 있음을 알게 되고 인정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Their “eyes being opened” signifies their knowing and acknowledging, from an interior dictate, that they were “naked,” that is, no longer in innocence, as before, but in evil.

 

 

해설

 

이 구절은 창세기 37절의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라는 말씀을 해설하는 대목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 구절을 ‘지식을 얻게 되었다’, ‘무언가를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전혀 다르게 읽습니다. 그에게 ‘눈이 밝아짐’은 지혜의 획득이 아니라 자기 상태에 대한 자각입니다.

 

특히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적 딕테이트(an interior dictate)라는 표현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앞선 AC.193에서도 타락 이후 사람들 안에 아직 ‘지각의 남은 흔적(remnant of perception)이 남아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완전히 무감각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상태에 들어갔는지를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 남아 있는 내적 빛에 의해 자신들의 실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눈이 밝아져’는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는 뱀의 약속이 성취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높아진 것이 아니라 떨어졌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혜를 얻은 것이 아니라 순수함을 잃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눈 밝아짐은 승리의 눈 밝아짐이 아니라 상실의 눈 밝아짐입니다.

 

또한 여기서 ‘벗은(naked)은 단순히 옷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에게 벌거벗음은 선과 진리의 보호를 잃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전에는 순진무구함과 주님에 대한 신뢰 안에 있었기 때문에 영적으로 보호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 own이 중심이 되었고, 그 결과 그 보호가 벗겨진 것입니다.

 

그래서 AC.211은 매우 중요한 균형을 보여 줍니다. 타락한 사람들은 아직 완전히 죽은 상태가 아닙니다. 그들 안에는 여전히 자신들의 상태를 알아볼 수 있는 최소한의 내적 빛, 퍼셉션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빛은 그들을 기쁘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게 된 것은 자신들의 지혜가 아니라 자신들의 상실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우리 자신의 영적 경험과도 닿아 있습니다. 사람은 때때로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 깨달음은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아프고 부끄럽고 불편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는 바로 그 자각이 은혜의 시작입니다. 완전히 어두워진 사람은 자신이 어둠 속에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AC.211의 ‘눈이 밝아져’라는 표현은 단순한 지식의 획득이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지각의 흔적에 의해 자신들의 참된 상태를 보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벗은’은 그들이 더 이상 이전의 순진무구함 가운데 있지 않고, 자기 own과 악의 영역 안으로 들어왔음을 인정하게 된 것을 뜻합니다. 이 장면은 타락의 한가운데에서조차 주님께서 완전히 꺼뜨리지 않으신 마지막 내적 빛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매우 인상적인 대목입니다.

 

 

심화

 

1. ‘interior dictate

 

 

AC.211, 심화 1, ‘interior dictate’

AC.211.심화 1. ‘interior dictate’ ‘interior dictate’는 직역하면 ‘내적 지시’, ‘내면의 지시’, ‘내적인 일깨움’ 정도가 됩니다. 여기서 ‘interior’는 단순히 마음속(inner)이라는 뜻보다 더 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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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10, 창3:6,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own’의 정의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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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10.심화

 

2. ‘own에 갇힌 자들의 생생한 실존을 보고

 

실제로 지옥에 가서 이 own에 갇힌 자들의 생생한 실존, 곧 비참한 상태를 본 스베덴보리로서는 더더욱 이 own 설명이 생생했겠어요...

 

 

그렇습니다. 저는 AC.210 같은 본문을 읽을 때마다, 이것이 단순히 책상 앞에서 세운 신학 이론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스베덴보리는 own은 지옥적이며 저주받은 것이다’라고 추상적으로 말하고 끝내지 않습니다. 그는 이후 수많은 저작들에서 실제 영계와 지옥의 주민들을 관찰한 내용을 반복해서 기록합니다. 그래서 그의 own 설명은 철학자의 정의라기보다 목격자의 증언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특히 스베덴보리가 지옥에서 본 사람들은 대개 자신들이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장 옳고, 가장 지혜롭고, 가장 정당하다고 확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중심에 두고 모든 것을 해석하기 때문에, 미움을 사랑이라 부르고, 지배욕을 정의라 부르고, 복수를 정당한 권리라 부르며,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가장 합리적인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AC.210 그들은 미움을 사랑이라 부르고, 어둠을 빛이라 부른다’는 말은 바로 이런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지옥의 고통이 외부에서 가해지는 형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자기 own 안에 갇혀 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남보다 위에 서고 싶어 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며, 지배하고 싶어 하고, 자신이 중심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똑같이 그렇게 원하기 때문에, 결국 서로 충돌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속이고, 공격하게 됩니다. 그 결과가 바로 지옥의 비참함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own은 단순한 성격상의 결함이나 작은 이기심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을 주님으로부터 분리시키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분리시키는 원리입니다. 주님과의 연결이 끊어지고, 이웃과의 연결도 끊어지며, 결국 자기 자신만 남게 됩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만 남은 상태가 바로 가장 깊은 고독과 불행의 상태가 됩니다.

 

이 점에서 보면, 스베덴보리가 own을 그렇게 강하게 표현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단지 교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끝이 어디로 가는지를 실제로 보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마치 절벽 아래를 직접 내려다본 사람이 그 길로 가지 마시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 말은 이론적 경고가 아니라 체험적 경고입니다.

 

한편으로는, 스베덴보리가 own을 가장 강하게 비판하는 만큼 주님의 자비도 가장 강하게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인간 안에 own이 얼마나 깊이 뿌리박혀 있는지를 보았고, 또한 그 own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얼마나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지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저작을 읽다 보면, 인간에 대한 평가는 매우 엄격하지만, 주님에 대한 평가는 끝없이 따뜻하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어쩌면 목사님 말씀처럼, 실제로 지옥에 가서 own에 갇힌 영들의 삶을 보고 돌아온 사람이라면 AC.210 같은 문장을 이렇게밖에 쓸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는 단순히 own은 나쁘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것이 끝내 어떤 모습이 되는지를 보았다’를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AC.210의 무게는 단순한 교리의 무게가 아니라, 영원한 세계를 목격한 증인의 무게처럼 다가오는 것입니다.

 

 

 

AC.210, 창3:6,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own’의 정의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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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10, 심화 1, ‘그저 악과 거짓이 될 뿐’(become mere evil and falsity)

AC.210.심화 1. ‘그저 악과 거짓이 될 뿐’(become mere evil and falsity) 사람은 이렇게 함으로써 그저 악과 거짓이 될 뿐이며, In this way men become mere evil and falsity, (AC.210) 이 문장은 처음 읽으면 매우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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