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9.심화

 

7. ‘8:11-15

 

11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12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13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14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15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8:11-15)

 

 

이 누가복음 8장 구절이 AC.29에 인용된 이유는, 앞의 마태복음 13장과 마가복음 4장보다도 더욱 직접적으로 씨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AC.29에서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1 11절의 씨 맺는 채소’를 신앙에 속한 것들, 곧 진리와 신앙의 원리들로 해석하고, ‘열매 맺는 나무’를 체어리티와 선한 삶에 속한 것들로 해석합니다. 다시 말해 씨는 신앙의 시작이고, 열매는 신앙이 삶 속에서 완성된 모습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주님께서 친히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석해 주십니다. 이 한마디가 바로 AC.29의 해석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말씀은 단순한 문자나 종교 지식이 아니라 주님의 진리가 담긴 그릇입니다. 따라서 씨는 사람 안에 심어지는 진리이며, 거듭남의 모든 시작은 이 씨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창세기에서 씨 맺는 채소’가 먼저 등장하는 것은, 거듭남의 초기 단계에서 사람이 먼저 진리와 신앙의 지식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아직 열매는 없지만, 씨는 이미 심긴 상태입니다.

 

또한 이 비유는 진리가 사람 안에 들어간 뒤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도 보여 줍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아예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빼앗기며, 바위 위의 씨는 잠시 자라지만 깊이가 없어 시련 가운데 사라집니다. 가시떨기 속의 씨는 세상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막혀 성장하지 못합니다. 오직 좋은 땅에 떨어진 씨만이 자라서 결실합니다. 이것은 AC.29가 설명하는   성장  열매’라는 거듭남의 질서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특히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들보다 마지막 결론을 더욱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주님은 좋은 땅을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라고 설명하십니다. 여기에는 거듭남의 전 과정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먼저 말씀을 듣고, 그다음 그것을 지키며, 오랜 시간 인내하고, 마침내 열매를 맺습니다. 이는 단순히 교리를 아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는 스베덴보리의 가르침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신앙은 반드시 삶으로 내려와야 하며, 결국 체어리티의 열매를 낳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착하고 좋은 마음’이라는 표현은 AC.29 좋은 땅 개념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땅은 사람의 의지와 삶의 영역을 뜻합니다. 아무리 좋은 씨라도 좋은 땅이 없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많은 진리를 배우고 기억하더라도, 의지가 변화되지 않으면 그 진리는 결실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신앙의 진리와 체어리티의 삶을 결코 분리하지 않습니다.

 

결국 스베덴보리가 이 본문을 AC.29에 인용한 이유는 단순히 씨가 말씀이라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그는 이 비유를 통해 씨는 하나님의 말씀, 곧 신앙의 진리이며, 그 진리는 사람 안에서 자라고 보존되어야 하며, 마침내 체어리티라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 창세기 1장의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는 식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말씀의 진리가 사람 안에 심어져 사랑과 선한 삶의 열매를 맺는 거듭남의 전 과정을 가리킨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이 구절이 인용된 것입니다.

 

 

 

AC.29, 심화 6, ‘막4:14-20’

AC.29.심화 6. ‘막4:14-20’ 14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15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

bygrace.kr

 

'즐겨찾기 > AC 창1' 카테고리의 다른 글

AC.29, 심화 6, ‘막4:14-20’  (0) 2026.05.29
AC.29, 심화 5, ‘마13:19-24, 37-39’  (0) 2026.05.29
AC.28, 심화 7, ‘슥12:1’  (0) 2026.05.29
AC.28, 심화 6, ‘시69:33-34’  (0) 2026.05.29
AC.28, 심화 5, ‘슥14:7-8’  (0) 2026.05.29
Posted by bygracetistory
,

AC.29.심화

 

6. ‘4:14-20

 

14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15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16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17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18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19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20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4:14-20)

 

 

이 마가복음 4장 구절이 AC.29에 인용된 이유는, 창세기 1 11절의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주님 자신의 말씀으로 가장 분명하게 설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AC.29에서 스베덴보리는 씨 맺는 채소’를 신앙에 속한 것들, 곧 진리와 신앙의 원리들로 해석하고, ‘열매 맺는 나무’를 체어리티와 선한 삶으로 해석합니다. 여기서 씨는 신앙의 시작이며, 열매는 신앙이 삶 속에서 성숙하여 나타난 결과입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주님께서 비유를 친히 해석하시며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의 해석에서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씨가 단순한 정보나 교양 지식이 아니라 사람 안에 심어지는 말씀의 진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창세기의  역시 자연적 씨앗을 넘어 사람 안에 심어지는 신앙의 진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비유의 중심은 씨의 질이 아니라 땅의 상태에 있습니다. 씨는 모두 동일한 말씀인데, 길가에서는 빼앗기고, 돌밭에서는 잠시 자라다가 말라 버리며, 가시떨기에서는 세상 염려와 욕심에 막혀 성장하지 못합니다. 오직 좋은 땅에 떨어진 씨만이 결실합니다. 이것은 거듭남의 과정에서 진리가 사람 안에 심어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것이 보존되고 자라서 마침내 삶의 열매를 맺어야 함을 보여 줍니다.

 

특히 마지막 말씀은 AC.29의 핵심 사상을 잘 드러냅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여기서 결실은 더 많은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의 진리가 사람 안에서 선한 삶과 체어리티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열매 맺는 나무’의 상태입니다. 씨는 신앙이고, 열매는 체어리티입니다.

 

창세기 1장의 순서도 바로 이 질서를 보여 줍니다. 먼저 씨 맺는 채소가 나오고, 그다음 열매 맺는 나무가 나옵니다. 먼저 진리가 심겨지고, 그 후에 사랑과 선한 삶이 나타납니다. 마가복음의 비유 역시 같은 구조를 따릅니다. 말씀의 씨가 뿌려지고, 그것이 자라며, 마침내 결실합니다. 따라서 이 비유는 창세기 1장의 영적 의미를 설명하는 매우 적절한 증거가 됩니다.

 

결국 스베덴보리가 이 본문을 AC.29에 인용한 이유는, 창세기 1장의 식물 창조가 단순한 자연계 식물의 기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말씀의 진리가 심어지고 그것이 자라 체어리티의 열매를 맺는 거듭남의 과정을 뜻한다는 사실을 주님 자신의 비유를 통해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본문은 씨는 말씀의 진리이고, 열매는 그 진리가 삶 속에서 이루는 체어리티이며, 거듭남은 씨 뿌림에서 결실로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AC.29의 핵심 사상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용된 것입니다.

 

 

 

AC.29, 심화 7, ‘눅8:11-15’

AC.29.심화 7. ‘눅8:11-15’ 11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12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bygrace.kr

 

AC.29, 심화 5, ‘마13:19-24, 37-39’

AC.29.심화 5. ‘마13:19-24, 37-39’ 19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려진 자요 20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bygrace.kr

 

'즐겨찾기 > AC 창1' 카테고리의 다른 글

AC.29, 심화 7, ‘눅8:11-15’  (0) 2026.05.29
AC.29, 심화 5, ‘마13:19-24, 37-39’  (0) 2026.05.29
AC.28, 심화 7, ‘슥12:1’  (0) 2026.05.29
AC.28, 심화 6, ‘시69:33-34’  (0) 2026.05.29
AC.28, 심화 5, ‘슥14:7-8’  (0) 2026.05.29
Posted by bygracetistory
,

AC.29.심화

 

5. ‘13:19-24, 37-39

 

19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려진 자요 20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23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24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37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13:19-24, 37-39)

 

 

이 마태복음 13장 구절이 AC.29에 인용된 이유는, 창세기 1 11절의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주님 자신의 말씀으로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AC.29에서 스베덴보리는 씨 맺는 채소’를 신앙에 속한 것들, 곧 진리와 신앙의 원리들로 해석하고, ‘열매 맺는 나무’를 체어리티에 속한 것들, 곧 사랑과 선한 삶으로 해석합니다. 따라서 씨는 신앙의 시작이고, 열매는 신앙이 삶 속에서 완성된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비유를 해석하시며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씨는 단순한 문자나 정보가 아니라 사람 안에 심어지는 진리이며, 신앙의 원리입니다. 따라서 씨가 뿌려진다는 것은, 사람 안에 주님의 진리가 심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창세기에서 씨 맺는 채소’가 등장하는 이유와 정확히 연결됩니다.

 

또한 이 비유 전체를 보면 관심의 초점은 씨 자체보다 씨가 어떤 땅에 떨어졌는가에 있습니다. 같은 씨라도 길가에서는 빼앗기고, 돌밭에서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며, 가시떨기에서는 세상 염려와 욕심에 막혀 버립니다. 오직 좋은 땅에 떨어진 씨만이 자라서 결실합니다. 이는 진리가 사람 안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것이 보존되고 성장하여 실제 삶 속에서 열매를 맺어야 함을 보여 줍니다.

 

특히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결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여기서 결실은 단순히 더 많은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가 사랑과 선한 삶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AC.29에서 말하는 열매 맺는 나무’입니다. 씨는 신앙이고, 열매는 체어리티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라고 하신 말씀 역시 AC.29의 중요한 주제와 연결됩니다. 사람 안에 심어지는 모든 참된 신앙의 씨는 사람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고 주님에게서 옵니다. 사람은 단지 그 씨를 받는 밭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시작도 주님에게서 오고, 성장도 주님에게서 오며, 결실도 궁극적으로는 주님의 역사입니다.

 

결국 스베덴보리가 이 본문을 AC.29에 인용한 이유는, 창세기 1장의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가 자연계 식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님의 진리가 사람 안에 심어지고, 그것이 자라 체어리티의 열매를 맺는 거듭남의 과정을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씨는 신앙의 진리이고, 열매는 사랑의 삶이며, 거듭남은 씨 뿌림에서 결실에 이르는 전 과정이라는 것을 주님의 비유를 통해 증명하기 위해 이 구절이 인용된 것입니다.

 

 

 

AC.29, 심화 6, ‘막4:14-20’

AC.29.심화 6. ‘막4:14-20’ 14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15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

bygrace.kr

 

AC.29, 심화 4, ‘갑작스런 repentance의 등장’

AC.29.심화 4. ‘갑작스런 repentance의 등장’ AC.29 두 번째 단락에, ‘This is the third successive stage of the regeneration of man, being his state of repentance,’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좀 어리둥절합니다.

bygrace.kr

 

'즐겨찾기 > AC 창1' 카테고리의 다른 글

AC.29, 심화 7, ‘눅8:11-15’  (0) 2026.05.29
AC.29, 심화 6, ‘막4:14-20’  (0) 2026.05.29
AC.28, 심화 7, ‘슥12:1’  (0) 2026.05.29
AC.28, 심화 6, ‘시69:33-34’  (0) 2026.05.29
AC.28, 심화 5, ‘슥14:7-8’  (0) 2026.05.29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