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3:19)



AC.279

그러므로 이 모든 구절을 연속적으로 살펴보면 다음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All these verses then, taken in a series, involve

 

감각 파트(the sensuous part)가 천적인 것으로부터 돌아섰다는 것 (14), that the sensuous part averted itself from the celestial (verse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4)

 

주님께서 그들을 다시 결합시키기 위하여 세상에 오실 것이라는 것 (15), that the Lord would come into the world for the purpose of reuniting them (verse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5)

 

겉 사람이 돌아섰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났다는 것 (16), that combat arose in consequence of the external man averting itself (verse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6)

 

그 결과 비참함이 생겨났다는 것 (17), whence resulted misery (verse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7)

 

정죄가 뒤따랐다는 것 (18), condemnation (verse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8)

 

그리고 마침내 지옥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 (19). and at length hell (verse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19)

 

이러한 일들은 그 교회 안에서 네 번째 후손으로부터 홍수 때까지 차례로 일어났습니다. These things followed in succession in that church, from the fourth posterity down to the flood.

 

 

해설

 

AC.279는 창3 14절부터 19절까지에 대한 스베덴보리의 해석을 한눈에 정리하는 요약 결론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각 절을 따로 설명해 왔지만, 여기서는 그것들이 서로 독립된 사건들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적인 영적 쇠퇴 과정을 보여준다고 설명합니다.

 

첫 단계는 14절의 뱀입니다. 감각적 인간, 즉 인간의 감각 파트가 천적인 것에서 돌아서면서 타락이 시작됩니다. 원래 감각은 내적 인간, 즉 속 사람과 주님의 지배 아래 있어야 하지만, 그것이 독립하여 스스로 판단하기 시작할 때, 인간은 가장 낮은 수준의 사고에 갇히게 됩니다. 이것이 뱀이 흙을 먹게 되는 상태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15절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향해 가고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장차 세상에 오셔서 잃어버린 연결을 회복하실 것이 예언됩니다. 그래서 창3의 심판 가운데에도 이미 구원의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말씀은 타락의 역사 속에 심어진 최초의 복음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16절의 싸움입니다.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 즉 속 사람과 겉 사람 사이의 조화가 깨지면서 영적 전투가 시작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임신하는 고통, 수고하고 자식을 낳음’으로 설명했습니다. 진리를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일 자체가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게 되고, 갈등과 수고를 동반하게 됩니다.

 

네 번째 단계는 17절의 비참함입니다. 겉 사람이 속 사람으로부터 분리되면서 삶 전체가 고통스러워집니다. 땅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은 겉 사람이 스스로를 저주받은 상태로 만든다는 뜻이며, 사람은 더 이상 선과 진리를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다섯 번째 단계는 18절의 정죄입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난다는 것은 선과 진리 대신 악과 거짓이 자라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타락은 단순한 약화가 아니라 적극적인 황폐와 왜곡의 단계로 들어갑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 단계는 19절의 지옥입니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완전히 돌아서서 영적 생명을 상실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지옥 상태의 본질입니다.

 

특히 마지막 문장에서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과정이 ‘그 교회 안에서 네 번째 후손으로부터 홍수 때까지’ 진행되었다고 말합니다. 즉 창3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태고교회의 후손들 가운데 오랜 세월에 걸쳐 진행된 영적 쇠퇴의 역사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감각적 독립으로 시작되었지만, 결국은 비참함과 정죄를 거쳐 영적 파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AC.279는 창3:14-19 전체를 하나의 영적 연대기로 제시합니다. 곧 ‘감각의 반역 → 주님의 구원 약속 → 영적 전투 → 비참함 → 정죄 → 지옥’이라는 순서입니다. 그리고 이 흐름은 단지 홍수 이전 태고교회의 역사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인간이 주님으로부터 멀어질 때 반복될 수 있는 영적 과정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주님께로 돌아가는 길은 이 과정의 한가운데에 놓인 15절, 곧 주님의 오심과 구원의 약속에서 시작된다는 점이 이 글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AC.278, 창3:19,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9)AC.278‘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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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8.심화

 

4. ‘지옥 상태(infernal state)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지옥 상태(infernal state)는 단순히 사람이 죽은 뒤 가는 장소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과 삶이 지옥의 사랑과 하나가 된 상태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지옥은 먼저 사람 안에서 시작되며, 사후의 지옥은 그 내적인 상태가 완전히 드러난 결과입니다. 따라서 지옥(적) 상태’란 어떤 공간에 들어가는 것보다,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이 사람의 삶을 지배하게 된 영적 상태를 가리킵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생명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자신의 자유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천국(적) 상태가 형성되고, 반대로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고 자신의 유익과 지배를 최고의 목적으로 삼으면 점차 지옥(적) 상태가 형성됩니다. 따라서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장소의 차이가 아니라 사랑의 차이입니다.

 

지옥 상태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 사랑이 삶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 사랑이란 자신을 돌보는 건강한 자존감이 아니라, 자신을 모든 것의 중심에 두고 다른 사람과 세상, 심지어 주님까지도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삼으려는 사랑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랑은 처음에는 작아 보여도 점차 지배욕으로 발전,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을 미워하고, 진리보다 자신의 생각을 더 신뢰, 선보다 자신의 이익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만듭니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면 사람은 점점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불편하게 느끼기 시작합니다. 이전에는 기쁨이었던 말씀이 부담이 되고, 회개를 촉구하는 진리가 간섭처럼 느껴지며, 사랑과 섬김보다 인정과 성공이 더 중요하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이 바로 지옥 상태가 깊어지는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지옥은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날마다 무엇을 사랑하며 살아가는가에 따라 조금씩 형성됩니다.

 

또한 지옥 상태는 거짓과 악이 서로를 강화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악한 사랑이 생기면, 사람은 그 사랑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거짓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거짓은 다시 악한 사랑을 더욱 굳게 만듭니다. 이처럼 악과 거짓은 서로를 지탱하며, 사람의 마음을 점점 더 닫아 버립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지옥을 단순히 악의 세계가 아니라, 악과 거짓이 완전히 결합된 상태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는 누구도 지옥 상태에 머물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언제나 회개의 기회가 있으며, 주님께서는 끊임없이 선과 진리를 보내셔서 사람을 돌이키려 하십니다. 유혹과 시련도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지옥 상태에서 벗어나 천국 상태로 옮겨 가도록 돕는 섭리의 도구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악을 인정, 주님께 도움을 구할 때, 지옥 상태는 점차 무너지고 새로운 천국 상태가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사후에도 사람은 갑자기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상에서 형성된 사랑과 삶의 상태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뿐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에 가는 사람은 억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평생 사랑한 것과 같은 분위기를 스스로 찾아갑니다. 반대로 천국에 가는 사람도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님으로부터 형성된 천국 상태가 완전히 꽃피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지옥 상태(infernal state)는 죽음 이후의 형벌을 강조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람이 지금 이 순간 어떤 사랑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적 상태입니다. 사람은 매일의 작은 선택을 통하여 천국 상태를 키워 갈 수도 있고, 지옥 상태를 굳혀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단순히 미래의 지옥을 경고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안에 있는 지옥 상태를 발견,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진리로 그것을 날마다 새롭게 하라고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AC.278, 창3:19,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9)AC.278‘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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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8, 심화 3, ‘정죄’(condemnation)

AC.278.심화 3. ‘정죄’(condemnation)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정죄’(condemnation)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화를 내시거나 벌을 선고하시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기독교에서는 정죄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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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8.심화

 

3. ‘정죄(condemnation)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정죄(condemnation)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화를 내시거나 벌을 선고하시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기독교에서는 정죄를 하나님의 심판이나 형벌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스베덴보리는 이를 전혀 다르게 설명합니다. 그에게 정죄란 사람이 자신의 사랑과 삶을 통하여 스스로 지옥을 선택한 결과이며, 그 선택에 따라 자신의 상태가 확정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주님은 누구도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사랑 자체이시며 자비 자체이시므로, 모든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선한 사람뿐 아니라 악한 사람에게도 끊임없이 선과 진리를 보내시며, 마지막 순간까지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따라서 정죄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주님의 사랑을 끝까지 거부한 결과로 자신에게 일어나는 상태입니다.

 

이 때문에 스베덴보리는 정죄를 하나의 판결’이라기보다 상태의 귀결’로 이해합니다. 사람은 죽은 뒤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사랑하고 선택하며 살아온 모습 그대로 영계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는 겉으로 감추어졌던 사랑과 의도가 모두 드러나고, 각 사람은 자신과 같은 사랑을 가진 공동체를 스스로 찾아갑니다. 선을 사랑한 사람은 천국을, 악을 사랑한 사람은 지옥을 자신의 집처럼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정죄의 실상입니다.

 

정죄가 스스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자유와도 깊이 관련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강제로 천국에 들여보내지 않으십니다. 만일 악을 사랑하는 사람을 억지로 천국에 데려간다면, 그는 천국의 사랑과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오히려 자신과 같은 사랑이 지배하는 지옥을 더 편안하게 여기며, 그곳으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따라서 정죄란 주님께서 밀어내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사랑을 따라 스스로 머물 곳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또한 정죄는 한순간의 실수나 죄 하나 때문에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을 사랑하며 살아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주님께 도움을 구하며 거듭나기를 원하는 사람은 비록 많은 연약함이 있을지라도 정죄의 사람이 아닙니다. 반대로 악을 사랑하면서도 그것을 선이라고 정당화하고 끝까지 붙드는 사람이 스스로 정죄의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스베덴보리는 말씀에 나오는 심판’도 주님께서 사람을 임의로 구분하시는 행위라기보다, 사람 안에 있는 사랑이 드러나는 과정으로 설명합니다. 주님의 빛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비치지만, 선한 사람은 그 빛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악한 사람은 그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빛이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빛 앞에서 사람의 본래 상태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심판과 정죄도 이와 같은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정죄는 두려움의 교리가 아니라, 자유와 책임의 교리입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사람을 천국으로 이끄시지만, 그 사랑을 받아들일지 거부할지는 사람 자신의 자유에 맡기십니다. 결국 정죄란 주님께 버림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끝까지 주님을 거부한 결과 자신이 사랑하는 삶과 공동체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구원이란 주님께서 특별히 몇 사람만 선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진리를 기꺼이 받아들인 사람이 그 사랑 안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AC.278, 심화 4, ‘지옥 상태’(infernal state)

AC.278.심화 4. ‘지옥 상태’(infernal state)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지옥 상태’(infernal state)는 단순히 사람이 죽은 뒤 가는 장소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과 삶이 지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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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8, 심화 2, ‘시104:29’

AC.278.심화 2. ‘시104:29’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시104:29) Thou hidest thy faces, they are troubled; thou takest away their breath, 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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