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62.심화

 

4. ‘붕괴를 막기 위한 자비의 조치

 

이 상태에서 모세를 통해 복수의 아내가 허락된 것은, 이상을 낮춘 타협이 아니라, 붕괴를 막기 위한 자비의 조치였습니다. (AC.162 해설)

 

 

이 문장은 상당히 충격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은 ‘일부다처 허용’을 단순 고대 문화 수준으로만 보거나, 혹은 하나님 뜻 자체가 시대마다 달라진 것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훨씬 더 깊은 인간 상태의 문제로 봅니다.

 

AC.162 흐름에서 핵심은 이것입니다. 창조 본래 질서는 ‘하나’였습니다. 남자와 여자, 곧 진리와 선, understanding affection의 완전한 결합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막10에서 ‘처음부터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며, 다시 창조 질서로 올라가십니다. 즉 본래 천국적 질서는 하나의 결합, 하나의 사랑, 하나의 상응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점점 proprium 중심으로 기울고, 속 사람과 겉 사람의 질서가 무너지면서, 인간 안의 사랑 자체가 분열되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더 이상 하나의 선과 하나의 진리 안에 머무르지 못하게 됩니다. affection 자체가 흩어지고,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이 강해집니다. 이 상태에서 원래 질서를 그대로 강제하면, 오히려 더 심한 왜곡과 위선과 폭력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모세 율법 안의 여러 허용 조항들을 ‘최선(best)이 아니라 ‘차악(lesser evil)의 허용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곧 천국 질서 자체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이미 낮아진 인간 상태 안에서 완전 붕괴를 막기 위한 자비의 조치라는 것입니다.

 

복수의 아내 허용도 그런 맥락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래 일부다처를 이상으로 세우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 상태가 너무 외적이고 완악해져 있었기 때문에, 본래 질서를 즉시 강제할 경우, 더 큰 혼란과 파괴가 생길 수 있었던 상태를 반영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인간 상태를 고려하여, 보다 낮은 단계의 질서를 허용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막10에서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모세가 이 명령을 기록하였다’고 하신 것도 정확히 같은 원리입니다. 율법 일부는 천국의 최고 질서를 직접 반영한 것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 상태 안에서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자비의 울타리’ 역할을 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목사님 인용문에서 ‘이상을 낮춘 타협’이 아니라 ‘붕괴를 막기 위한 자비의 조치’라는 표현이 나온 것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주님은 단순 이상주의자가 아니십니다. 인간 상태를 실제 그대로 보십니다. 그리고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질서를 억지로 강제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가장 낮아진 상태 속에서도 완전 붕괴를 막으며, 다시 본래 질서 쪽으로 조금씩 이끌어 가십니다.

 

이것은 사실 성경 전체를 읽는 매우 중요한 열쇠이기도 합니다. 말씀 안에는 ‘본래 창조 질서’와 ‘타락 이후 허용 질서’가 함께 존재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점점 인간을 허용 질서에서 본래 질서로 다시 이끌어 가십니다. 막10에서 주님이 모세보다 창조 처음을 다시 끌어오시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AC.162, 심화 3, AC.160의 ‘한 몸’(one flesh)과 막10:5-9의 ‘한 몸’

AC.162.심화 3. AC.160의 ‘한 몸’(one flesh)과 막10:5-9의 ‘한 몸’ 이전에는 속 사람과, 속 사람으로부터 나온 겉 사람이 영이었으나, 이제는 육(肉, flesh)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천적인 생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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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C.160 한 몸(one flesh)과 막10:5-9 한 몸

 

이전에는 속 사람과, 속 사람으로부터 나온 겉 사람이 영이었으나, 이제는 육(, flesh)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천적인 생명과 영적인 생명이 own과 결합되어 하나인 것처럼 되었습니다. (AC.160)

 

앞에서는 한 몸(one flesh)에 대한 설명이 윗글과 같았는데 여기서는,

 

그래서 둘이 한 몸이 된다는 것은 단순 육체적 연합이나 사회 제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원래 하나였어야 할 인간 존재 구조가 다시 결합되는 것을 뜻합니다. 남자는 understanding truth 쪽을, 여자는 affection good 쪽을 상징하며, 둘이 하나 될 때 비로소 완전한 인간 질서가 형성됩니다. (AC.162 심화 2)

 

와 같네요. 둘 다 맞다면, 창세기 AC.160이 본래의 뜻이고, AC.162 10:5-9은 주님이 시대 변화에 맞춰 새롭게 해석하신 건가요?

 

 

아닙니다. 스베덴보리 흐름에서는 AC.160 AC.162가 서로 다른 해석이라기보다, 같은 구조를 서로 다른 층위에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막10에서 창2를 ‘새롭게 reinterpretation’하셨다기보다, 오히려 창2 본래 안에 이미 들어 있던 더 깊은 창조 질서를 다시 드러내셨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목사님께서 느끼신 긴장은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AC.160에서는 ‘한 몸(one flesh)이 굉장히 위험하고 미묘한 의미로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즉, 원래 spirit 상태였던 인간이 flesh 상태로 들어오면서, 천적, 영적 생명이 own과 결합되어 ‘하나처럼’ 되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의 one flesh는 인간 안에 proprium이 결합된 상태, 곧 인간이 자기 자신처럼 느끼며 사는 상태와 연결됩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타락 가능성과 긴장이 이미 들어 있습니다.

 

반면 AC.162에서는 막10을 통해 ‘둘이 한 몸이 된다’가 선과 진리, 사랑과 지혜,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결합이라는 훨씬 긍정적, 완성적 의미로 설명됩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 같은 one flesh인데 왜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지?’라는 느낌이 생깁니다.

 

그런데 사실 스베덴보리에게 이 둘은 서로 충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핵심은 ‘무엇이 무엇과 결합하느냐’에 있기 때문입니다.

 

AC.160 one flesh는, 천적, 영적 생명이 인간의 own과 결합된 상태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의 생명이 이제 인간의 자기감, 자기 의식, 자기 proprium 안으로 들어와 함께 작동하게 된 상태입니다. 이것 자체는 아직 완성도 아니고, 타락도 아닙니다. 일종의 새로운 인간 구조의 시작입니다. 인간은 이제 자기 자신처럼 느끼며 살게 됩니다. 그래서 자유와 자발성이 생기지만, 동시에 자기 사랑 방향으로 기울 위험도 함께 열립니다.

 

반면 막10 AC.162 one flesh는, 그 구조가 원래 의도된 질서 안에서 완전히 결합된 상태를 말합니다. 즉 understanding affection, truth good, 속 사람과 겉 사람이 주님 안에서 조화롭게 하나 된 상태입니다. 이것은 타락 이전 창조 질서의 본래 목적이며, 동시에 거듭남 완성 상태입니다.

 

즉 아주 단순화하면 이렇습니다. AC.160 = ‘하나 됨의 구조가 형성됨’, AC.162 = ‘그 하나 됨이 본래 질서 안에서 완성됨

 

다시 말해 AC.160은 인간 존재 안에 proprium과 생명이 결합되는 존재론적 구조를 설명하고, AC.162는 그 구조가 주님 안에서 어떻게 참되게 완성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막10에서 하신 일도, ‘시대 변화에 맞춰 새롭게 해석’하신 것이라기보다, 사람들이 문자적 결혼 규정만 보고 있던 창2 본래 의미를 다시 창조 질서 차원으로 끌어올리신 것입니다. 주님은 자꾸 ‘처음부터는 그렇지 않았다’, ‘창조 때로부터’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원래 의도된 인간 구조를 다시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스베덴보리 전체 해석 방식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같은 표현이 문맥에 따라 다른 층위를 가질 수 있습니다. ‘flesh’도 어떤 곳에서는 자기 사랑과 proprium을 뜻하고, 어떤 곳에서는 살아 있는 인간성 자체를 뜻하며, 주님에 대해서는 신적 인성의 실제성을 뜻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단어 자체보다, 그 단어 안에서 무엇이 무엇과 결합되어 있는가입니다.

 

그래서 AC.160 AC.162는 서로 다른 해석이 아니라, 같은 ‘one flesh’ 구조를 각각 ‘형성 과정’과 ‘완성 질서’ 차원에서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AC.162, 심화 4, ‘붕괴를 막기 위한 자비의 조치’

AC.162.심화 4. ‘붕괴를 막기 위한 자비의 조치’ 이 상태에서 모세를 통해 복수의 아내가 허락된 것은, 이상을 낮춘 타협이 아니라, ‘붕괴를 막기 위한 자비의 조치’였습니다. (AC.162 해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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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62, 심화 2, ‘오직 주님만이 천적 인간이시다’

AC.162.심화 2. ‘오직 주님만이 천적 인간이시다’ 온 천국은 하나의 천적 인간인데, 이는 오직 주님만이 천적 인간이시기 때문입니다. For the whole heaven is a celestial man because the Lord alone is a celest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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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직 주님만이 천적 인간이시다

 

온 천국은 하나의 천적 인간인데, 이는 오직 주님만이 천적 인간이시기 때문입니다. For the whole heaven is a celestial man because the Lord alone is a celestial man, (AC.162)

 

 

AC.162의 이 문장은 스베덴보리 천국론 전체를 압축한 매우 놀라운 선언입니다. 처음 읽으면 거의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온 천국이 하나의 천적 인간이다’, 그리고 ‘오직 주님만이 천적 인간이시기 때문이다’라는 말은, 천국을 단순 장소나 집합체가 아니라 ‘주님의 생명이 조직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인간 형상’으로 본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스베덴보리에게 ‘천적 인간(celestial man)은 단순히 아주 착한 인간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과 지혜, 선과 진리, 속 사람과 겉 사람이 완전한 질서 안에서 하나 된 상태를 뜻합니다. 그리고 이런 완전한 질서는 인간 스스로에게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지혜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truly celestial한 존재는 주님 한 분뿐이십니다.

 

그런데 천국의 모든 천사들은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습니다. 다시 말해, 천사들은 자기 자신으로 사는 독립 존재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지혜를 각자 방식대로 받아들이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천국 전체를 하나의 인간처럼 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생명이 천국 전체 안에 질서 있게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famous한 ‘Grand Man’, 곧 ‘큰 사람(Maximus Homo) 사상입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천국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인간 형상을 이루고 있습니다. 어떤 공동체는 심장 역할과 연결되고, 어떤 공동체는 폐, 눈, 귀, 팔, 손 같은 기능과 연결됩니다. 각각의 천사 공동체는 서로 다르지만, 모두 하나의 생명 안에서 조화를 이룹니다. 마치 몸의 여러 기관이 서로 다른 기능을 하지만, 한 인간을 이루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왜 천국이 ‘하나의 천적 인간’인가? AC.162는 그 이유를 아주 단순하면서도 깊게 말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천적 인간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천국은 자기 독립 생명으로 존재하는 거대한 조직이 아니라, 주님의 신적 인성(Divine Human)의 반영입니다. 천국의 인간성은 본래 자기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의 기독론도 드러납니다. 그는 주님을 단순 천국 바깥에 계신 신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천국 전체는 주님의 신적 인성 안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천국의 사랑, 지혜, 질서, 생명은 전부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옵니다. 천사들은 그것을 받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 individual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한 사람의 거듭남도 결국 작은 천국 형성입니다. 속 사람과 겉 사람이 하나 되고, 사랑과 진리가 하나 되며, 인간 전체가 주님의 질서 안으로 들어갈 때, 인간은 ‘작은 천국’이 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종종 인간을 ‘least heaven’이라고 부릅니다. 반대로 천국 전체는 ‘greatest man’입니다.

 

이 문장은 또한 인간 자율성에 대한 아주 깊은 교정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만으로 완전한 인간이 아닙니다. 진정한 인성(humanity)은 주님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참된 인간이 됩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아름답고 살아 있는 이유도 자기 자신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이 그들 안에 흐르기 때문입니다.

 

결국 AC.162의 ‘온 천국은 하나의 천적 인간이다’라는 말은, 천국이 단순 집합체가 아니라 주님의 신적 사랑과 지혜가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유기적 생명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오직 주님만이 천적 인간이시다’라는 말은, 천국의 모든 생명과 인성의 근원이 오직 주님께 있다는 선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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