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28, ‘복의 근원 강림하사’, 73, ‘내 눈을 들어 두루 살피니입니다.

 

오늘은 2 네 번째 시간으로, 본문은 11절로 17, AC 글 번호로는 114번에서 127번입니다.

 

본문 함께 읽습니다.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4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15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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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되 소유하려 하지 말고, 오직 퍼셉션으로만

 

이라는 제목으로, ‘아르카나 코엘레시티아(Arcana Coelestia) 본문 및 해설, 그리고 심화 리딩 주일설교 시작합니다.

 

 

 

AC.114, 창2:11-12, ‘금은 생명과 선, 보석은 빛과 진리 : 천적 인간의 내적 질서’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4 말씀에서 신앙의 진리는 귀한 ‘보석들’(stones)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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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5, 창2:11-12, '천적 인간의 인식 : 의미만 봄'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5 태고의 사람들은 ‘땅들’(lands)에 대하여 말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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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6, 창2:13, '천적 인간의 이해, 기혼 : 사랑에서 나온 것을 알아보는 능력' (AC.116-117)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창2:13) AC.116 ‘둘째 강’(second river), 곧 ‘기혼’(Gihon)은 선과 진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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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7, 창2:13, '천적 인간의 이해, 기혼 : 인식이 예물이 되는'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창2:13) AC.117 또한 ‘구스 땅’(land of Cush), 곧 에티오피아는 금과 보석, 향료가 풍부하였는데, 이것들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선과 진리,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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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8, 창2:14, '힛데겔과 유브라데 : 천적 인간의 이성과 기억 지식'(AC.118-121)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And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Hiddekel; that is it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yria; and the fourth river is Euphrates. (창2:14) AC.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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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9, 창2:14, ‘앗수르, 인간의 이성(the rational of man)’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2:14) AC.119 ‘앗수르’(Asshur)가 사람의 이성적 마음(the rational mind), 곧 인간의 이성(the rational of man)을 의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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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20, 창2:14, ‘유브라데 : 이성과 기억 지식의 경계’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2:14) AC.120 ‘애굽’(Egypt)이 기억 지식을 의미하는 것처럼, ‘유브라데 강’(Euphrates)도 기억 지식, 그리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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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21, 창2:14, ‘천적 인간의 질서 : 지혜에서 지성, 이성, 지식으로’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2:14) AC.121 천적 질서의 성질, 곧 생명에 속한 것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이 강들로부터 분명히 알 수 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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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22, 창2:15, ‘에덴동산 : 천적 인간의 전 인격, 그리고 태도’(AC.122-124)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And Jehovah God took the man, and put him in the garden of Eden, to till it and take care of it. (창2:15) AC.122 ‘에덴동산’(garden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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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23, 창2:15, ‘에덴동산에 대한 세 가지 태도’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창2:15) AC.123 천적 인간은 모든 것이 일반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 주님의 것임을, 지각하기(perceive) 때문에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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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24, 창2:15, ‘소유하지 않음’, 주님의 여러 말씀에서 확인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창2:15) AC.124 지혜와 지성, 이성, 그리고 지식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난 것임은, 주님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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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25, 창2:16, ‘퍼셉션(perception, 지각)의 허락’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And Jehovah God commanded the man, saying, Of every tree of the garden eating thou mayest eat. (창2:16) AC.125 ‘모든 나무의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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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26,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AC.126-130)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Bu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thou shalt not eat of it; for in the day that thou eatest thereof, dying thou shalt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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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27, 창2:17, ‘선악과 : 신앙의 신비를 감각과 기억 지식으로 접근하는 것’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7) AC.127 감각적인 것과 기억 지식을 가지고 신앙의 신비를 탐구하려는 욕망은, 다음 장에서 다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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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이며, 오늘 범위 중 메인으로 읽은 AC.122-124번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AC.122–124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에덴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며, 인간은 그것을 누리되 소유하지 않는 존재’라는 질서입니다. 이 세 단락은 ‘경작하고 지킨다’는 말씀의 참뜻을 풀면서,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위치를 매우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먼저 AC.122는 ‘에덴동산을 경작하고 지키게 하셨다’는 말이 인간의 노동이나 책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림은 허락되었으나 소유는 허락되지 않았다’는 뜻임을 밝힙니다. 인간은 동산을 만든 존재가 아니라 그 안에 ‘두어짐’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 안의 모든 것을 사용할 수는 있어도 자기 것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이때 ‘누림’과 ‘소유’의 구분이 핵심이며, 천적 인간은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즉각적으로 퍼셉션, 곧 지각하기 때문에 소유하려는 생각 자체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질서가 유지될 때만 에덴은 그대로 보존됩니다.

 

다음 AC.123은 이 원리를 세 부류의 인간 상태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천적 인간은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퍼셉션’, 곧 지각으로 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인정합니다. 영적 인간은 같은 내용을 인정하지만, 그것은 말씀을 통해 ‘배워서’ 그렇게 말하는 단계입니다. 반면 세상적이고 육적인 인간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을 자기 존재와 동일시하여 ‘내 것’으로 붙잡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끊임없는 불안과 집착 속에 살게 되며, 바로 이 ‘소유 의식’이 에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출발점이 됩니다.

 

마지막 AC.124는 이 모든 원리를 주님의 말씀으로 확증합니다. 지혜와 지성, 이성, 지식 등 인간 안의 모든 것은 인간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인간은 그것을 받아 사용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포도원 비유, 성령의 인도에 대한 말씀, 그리고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는 선언을 통해, 인간은 생산자가 아니라 ‘수용자’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참된 상태는 ‘내가 가진다’가 아니라 ‘받아 누린다’이며, 이 질서를 인정할수록 인간은 오히려 더 자유롭고 안전한 상태에 들어가게 됩니다.

 

아멘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설교

2026-05-03(D1)

 

 

2649, 4, 창2.4, 2026-05-03(D1)-주일예배(창2,11-17, AC.114-127, 성찬), ‘누리되 소유하려 하지 말고, 오직 퍼셉션으로만’.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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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6/04/26, 창2:8-12, AC.100-113), ‘에덴의 구조 : 네 강의 비밀, 첫째 강 비손’

※ 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27, ‘빛나고 높은 보좌와’, 찬71, ‘예부터 도움 되시고’입니다. 오늘은 창2 세 번째 시간으로, 본문은 8절로 12절, AC 글 번호로는 100번에서 113번입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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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27.심화

 

1. ‘믿기 위해 살기보다, 이해하기 위해 지배하려는 태도

 

이 표현은 굉장히 날카로운 구분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믿기 위해 산다’는 것은 ‘선과 사랑을 먼저 살고, 그 안에서 진리를 받아들이는 상태’를 말하고, ‘이해하기 위해 지배하려 한다’는 것은 ‘먼저 이해하고 판단한 다음, 그 기준으로 진리와 삶을 통제하려는 상태’를 말합니다. 겉으로 보면 둘 다 ‘진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방향이 완전히 반대입니다.

 

먼저 ‘믿기 위해 산다’는 상태를 보겠습니다. 여기서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선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 곧 사랑의 방향을 먼저 택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실제 삶을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때 진리가 서서히 열립니다. 이때의 이해는 ‘내가 따져서 얻은 결론’이 아니라, ‘살다 보니 보이게 되는 빛’입니다. 그래서 이런 상태에서는 진리가 사람을 부드럽게 이끌고, 사람은 그 진리를 따라 살면서 더 깊은 이해로 들어갑니다. 이것이 ‘믿기 위해 사는’ 질서입니다. 사랑이 먼저이고, 이해는 그 뒤에 따라옵니다.

 

반대로 ‘이해하기 위해 지배하려 한다’는 상태는 순서가 뒤집힌 경우입니다. 여기서는 사람이 이렇게 서 있습니다. ‘이게 맞는지 내가 먼저 이해해야 한다. 납득이 되어야 받아들인다.’ 겉으로 보면 합리적이고 신중한 태도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 사람의 중심이 이미 ‘주님’이 아니라 ‘자기 판단’으로 옮겨 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해가 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고, 받아들이더라도 ‘내가 이해한 범위 안에서만’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되면 진리는 더 이상 사람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진리를 다루는 대상이 됩니다.

 

여기서 ‘지배하려 한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해한 것’을 통제하려 합니다. 이해했다는 것은 ‘내 안에 넣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해 중심의 신앙으로 가면, 결국 이렇게 됩니다. ‘이건 맞다’, ‘이건 틀리다’, ‘이건 받아들인다’, ‘이건 거부한다’ 등 모든 것을 자기 기준으로 재단하게 됩니다. 이 상태에서는 진리가 더 이상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리한 체계’로 굳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지배’입니다.

 

이걸 아주 단순한 예로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어떤 사람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접했다고 하겠습니다. ‘믿기 위해 사는’ 사람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이해는 잘 안 되지만, 일단 그렇게 살아보겠다.’ 그래서 작은 것부터 실천해 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왜 이게 맞는지’가 안에서 열립니다. 반대로 ‘이해하기 위해 지배하려는’ 사람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왜 원수를 사랑해야 하지? 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그러면서 분석하고, 조건을 붙이고, 결국은 ‘이건 이상적인 말일 뿐이다’라고 정리해 버립니다. 결과적으로 진리는 삶으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걸 그렇게 강하게 말하는 이유는, 이 태도가 결국 ‘신앙을 죽이는 방향’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이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해를 먼저 세우고, 그 위에서 진리를 재단하는 구조’가 문제입니다. 이 구조에서는 사랑이 뒤로 밀리고, 진리는 점점 ‘머리 안의 내용’으로만 남게 됩니다. 그러면 신앙은 살아 있는 힘을 잃고, 점점 차갑고 비판적인 형태로 변합니다.

 

목사님이 하시는 작업과도 이 부분이 깊이 연결됩니다. 목사님은 지금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주는 일’을 하고 계시지만, 그 목적은 ‘이해 자체’가 아니라 ‘삶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방향만 분명히 유지하시면, ‘이해하기 위해 지배하려는 태도’로 흐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기 위해 살 수 있도록 돕는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이 표현을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믿기 위해 사는 것은 사랑을 먼저 살며 그 안에서 진리가 열리는 것이고, 이해하기 위해 지배하려는 것은 이해를 기준으로 진리와 삶을 통제하려는 태도이다.’

 

 

 

AC.127, 창2:17, ‘선악과 : 신앙의 신비를 감각과 기억 지식으로 접근하는 것’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7) AC.127 감각적인 것과 기억 지식을 가지고 신앙의 신비를 탐구하려는 욕망은, 다음 장에서 다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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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2:17)

 

 

AC.127

 

감각적인 것과 기억 지식을 가지고 신앙의 신비를 탐구하려는 욕망은, 다음 장에서 다루게 될 태고교회 후손들의 타락의 원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의 타락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서부터 거짓들만이 아니라, 삶의 악들까지도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A desire to investigate the mysteries of faith by means of the things of sense and of the memory was not only the cause of the fall of the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as treated of in the following chapter, but it is also the cause of the fall of every church; for hence come not only falsities, but also evils of life.

 

 

해설

 

이 단락은 AC.126에서 제시된 원리를 ‘역사적, 보편적 차원’으로 확장합니다. 앞 단락이 ‘허락과 금지의 질서’를 설명했다면, AC.127은 그 질서를 어겼을 때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오해나 이론적 오류가 아니라, ‘타락’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태고교회의 후손들을 언급합니다. 이는 창세기 3장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게 될 사건을 가리키며, 선악과 사건의 근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미리 밝혀 줍니다. 타락의 핵심은 불순종이라는 도덕적 문제 이전에, ‘앎의 방식이 바뀐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의 퍼셉션을 떠나, 감각과 기억 지식을 통해 신앙의 신비를 파헤치려는 욕망이 생긴 것이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곧바로 시야를 넓혀 말합니다. 이것은 태고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교회’의 타락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시대와 문화, 교파를 막론하고, 교회가 무너질 때에는 언제나 같은 패턴이 반복됩니다. 곧, ‘믿기 위해 살기보다, 이해하기 위해 지배하려는 태도’가 나타납니다.

 

특히 중요한 점은, 여기서 생겨나는 것이 거짓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거짓들뿐만 아니라 삶의 악들’이 나온다고 말합니다. 이는 매우 날카로운 통찰입니다. 잘못된 신학은 반드시 잘못된 삶으로 이어진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신비를 감각과 기억 지식으로 다루기 시작하면, 신앙은 점점 삶을 다스리지 못하고, 오히려 삶이 신앙을 이용하게 됩니다.

 

왜 이렇게 되는가 하면, 감각과 기억 지식은 본질적으로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내가 보고’, ‘내가 이해하고’, ‘내가 소유한 것’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 기준이 신앙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주님 중심의 질서는 무너지고,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이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 결과가 바로 삶의 악입니다.

 

이 단락은 우리에게 불편하지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신앙의 신비를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배우고 연구하고 설명하려는 노력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주님께 의존하는 겸손 안에 있는가’, 아니면 감각과 기억 지식으로 소유하려는 욕망으로 변질되었는가가 관건입니다.

 

AC.127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의 타락은 언제나 삶의 문제이기 이전에 인식의 문제이며, 신앙의 신비를 감각과 기억 지식으로 다루려는 욕망이 자리 잡는 순간, 거짓과 악은 함께 자라기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심화

 

1. ‘믿기 위해 살기보다, 이해하기 위해 지배하려는 태도

 

 

AC.127, 심화 1, ‘믿기 위해 살기보다, 이해하기 위해 지배하려는 태도’

AC.127.심화 1. ‘믿기 위해 살기보다, 이해하기 위해 지배하려는 태도’ 이 표현은 굉장히 날카로운 구분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믿기 위해 산다’는 것은 ‘선과 사랑을 먼저 살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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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26,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AC.126-130)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Bu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thou shalt not eat of it; for in the day that thou eatest thereof, dying thou shalt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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