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후의 심판 날이 세상 파괴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3
‘새 땅’(the new earth)이 지상의 새 교회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말씀에서 ‘땅’(earth)을 읽을 때 자연적인 의미로서의 땅을 이해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땅’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자연적 의미에서는 땅이 곧 땅이지만, 영적 의미에서는 교회입니다. 이는 영적 의미 안에 있는 사람들, 곧 천사들처럼 영적인 사람들은 말씀에서 ‘땅’(the earth)이 언급될 때 그 자체의 토지로 이해하지 않고 그곳에 있는 민족과 그들의 신적 예배(Divine worship)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땅’(earth)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이것이 그러함은 아래에 인용된 것처럼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에서 볼 수 있습니다.59 That by “the new earth” is meant a new church on earth, has hitherto been unknown, for everyone by “earth” in the Word has understood the earth, when yet by it is meant the church; in the natural sense, earth is the earth, but in the spiritual sense it is the church, because they who are in the spiritual sense, that is, who are spiritual, as the angels are, when “the earth” is named in the Word, do not understand the earth itself, but the nation which is there, and its Divine worship; hence it is that by “earth” is signified the church; that it is so, may be seen in Arcana Coelestia, as quoted below.59
이제 ‘땅’(earth [land])이 교회를 뜻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도록 제가 말씀에서 한두 구절을 들어 보겠습니다. I will here adduce one or two passages from the Word, by which in some measure it may be comprehended, that “earth” [land] signifies the church:
18두려운 소리로 말미암아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빠지겠고 함정 속에서 올라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위에 있는 문이 열리고 땅의 기초가 진동함이라 19땅이 깨지고 깨지며 땅이 갈라지고 갈라지며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며 20땅이 취한 자 같이 비틀비틀하며 원두막같이 흔들리며 그 위의 죄악이 중하므로 떨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 (사24:18-20) The cataracts from on high were opened, and the foundations of the earth were shaken; in breaking, the earth is broken; in agitating, the earth is agitated; in reeling, the earth reels like a drunkard; it moves to and fro like a cottage; and heavy upon it is the transgression thereof (Isa. 24:18–20).
12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 13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사13:12, 13) I will cause a man to be more rare than pure gold; therefore I will remove the heaven, and the earth shall be removed out of her place, in the day of the fierce anger of Jehovah (Isa. 13:12, 13).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욜2:10) The earth was agitated before him, the heavens have trembled, the sun and the moon are become black, and the stars have withdrawn their splendor (Joel 2:10).
7이에 땅이 진동하고 산들의 터도 요동하였으니 그의 진노로 말미암음이로다 8그의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시18:7, 8) The land was shaken and agitated, and the foundations of the mountains trembled and were shaken (Ps. 18:7, 8, and in many other places).
59. [References in this and the following notes are to the numbered sections of Arcana Coelestia.] 말씀에서 ‘땅’(earth)은 주님의 나라와 교회를 의미합니다. By “earth” (land) in the Word is signified the kingdom of the Lord and the church (n. 662, 1066, 1067, 1262, 1413, 1607, 2928, 3355, 4447, 4535, 5577, 8011, 9325, 9643). 특히 ‘땅’(earth)이 가나안 땅을 뜻하는 경우가 많은데, 태고의 시대부터 그곳에 교회가 존재했기 때문이며, 그래서 하늘 또한 ‘하늘의 가나안’(the heavenly Canaan)이라 불립니다. Chiefly for this reason, because by “earth” is meant the land of Canaan, and the church was there from the most ancient times, hence also it is that heaven is called the heavenly Canaan (n. 567, 3686, 4447, 4454, 4516, 4517, 5136, 6516, 9325, 9327). 영적 의미에서 ‘땅’(earth)은 그곳의 민족과 그들의 예배를 뜻하며, And because in the spiritual sense by “earth” is understood the nation which is there, and its worship (n. 1262). 따라서 교회에 속한 여러 요소를 상징합니다. Hence the “earth” signifies various things pertaining to the church (n. 620, 636, 1066, 2571, 3368, 3379, 3404, 8732). ‘땅의 백성’(the people of the earth)은 영적 교회에 속한 사람들을 의미하고, The people of the “earth” are they who are of the spiritual church (n. 2928). ‘지진’(an earthquake)은 교회의 상태 변화입니다. “An earthquake” is a change of the state of the church (n. 3355). ‘새 하늘과 새 땅’(a new heaven and a new earth) 역시 교회를 뜻합니다.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signify the church (n. 1733, 1850, 2117, 2118, 3355, 4535, 10373). 홍수 이전의 태고교회와 홍수 이후의 고대교회가 모두 가나안에 있었으므로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was before the flood, and the ancient church, which was after the flood, were in the land of Canaan (n. 567, 3686, 4447, 4454, 4516, 4517, 5136, 6516, 9327). 그 땅의 모든 장소는 주님의 나라와 교회에 속한 것들을 표상하게 되었습니다. Thence all the places there became representative of such things as are in the Lord’s kingdom and in the church (n. 1585, 3686, 4447, 5136).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곳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고, 야곱의 후손 가운데 대표적 교회가 세워졌으며, 말씀의 최종적 의미 역시 그곳의 표상과 상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Therefore Abraham was commanded to go thither, since with his posterity from Jacob, a representative church was to be instituted, and the Word written, the ultimate sense of which should consist of the representatives and significatives which were there (n. 3686, 4447, 5136, 6516). 그러므로 ‘땅’(earth)과 ‘가나안 땅’(the land of Canaan)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Hence it is that by “earth” and by “the land of Canaan” is signified the church (n. 3038, 3481, 3705, 4447, 4517, 5757, 10559).
해설
LJ.3은 종말론 해석에서 결정적인 열쇠 하나를 제공합니다. ‘하늘’이 교회의 내적 차원을 뜻한다면, ‘땅’은 그 교회의 외적 구현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신앙이 실제 삶과 예배 속에서 어떻게 형태를 가지는가가 바로 ‘땅’입니다. 따라서 새 땅이 창조된다는 말은 새로운 제도나 새로운 행성이 생긴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 사회 안에 새로운 방식의 하나님 경배가 자리 잡는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종말을 우주 사건에서 ‘예배의 갱신’이라는 방향으로 완전히 전환시킵니다.
스베덴보리가 특히 강조하는 부분은 천사의 인식 방식입니다. 천사들은 ‘땅’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흙이나 지형을 떠올리지 않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그들의 예배’를 떠올립니다. 이는 영적 사고가 언제나 관계와 상태를 중심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자연적 사고는 사물을 먼저 보지만, 영적 사고는 사랑과 신앙의 질서를 먼저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도 점차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하게 된다면 이미 우리의 이해가 천사적 방향으로 옮겨 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와 요엘, 시편에 등장하는 ‘땅의 흔들림’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혀야 합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대지진이지만, 영적으로는 교회의 기반이 흔들리는 사건입니다. 진리가 왜곡되고 사랑이 식어 갈 때 교회는 안정감을 잃습니다. 그때 말씀은 ‘땅이 비틀거린다’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시적 과장이 아니라 영적 상태를 묘사하는 정확한 언어입니다. 특히 ‘그 위에 그 죄악이 무겁다’는 표현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진짜 원인이 외부 박해가 아니라 내부의 타락임을 보여 줍니다.
주59에서 가나안이 강조되는 이유도 매우 중요합니다. 가나안은 단순한 고대 지명이 아니라 ‘교회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영적 환경’을 상징합니다. 태고교회와 고대교회가 그곳에 있었다는 설명은 역사적 정보라기보다 표상적 의미를 드러냅니다.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참된 결합이 가능한 상태가 바로 ‘가나안’입니다. 그래서 천국이 ‘하늘의 가나안’이라 불린다는 말은, 천국 자체가 완전한 교회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서 설교적으로 깊은 통찰이 나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땅’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서로를 어떻게 사랑하느냐가 교회의 실제 토양입니다. 토양이 병들면 아무리 조직이 커도 교회는 흔들립니다. 반대로 토양이 건강하면 작은 공동체라도 이미 새 땅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지진 = 교회의 상태 변화’라는 대응입니다. 우리는 흔들림을 두려워하지만,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흔들림은 종종 갱신의 전조입니다. 오래된 구조가 무너지지 않으면 새로운 구조가 세워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위기 자체를 종말로 해석하기보다, 주님이 더 깊은 교회를 준비하시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목회적으로 매우 큰 소망을 제공합니다.
결국 LJ.3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어떤 땅 위에 서 있는가?’ 만일 내 신앙이 습관과 형식 위에만 서 있다면 작은 충격에도 흔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과 진리 위에 서 있다면 이미 새 땅의 시민입니다. 종말은 먼 미래가 아니라, 사랑이 새로워질 때마다 시작됩니다.
이 절을 전체 흐름 속에서 보면 점점 더 분명해지는 사실이 있습니다. 마지막 심판의 목적은 파괴가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 곧 새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교회를 버리지 않으시며, 낡은 형태가 끝날 때마다 더 깊은 형태를 준비하십니다. 그러므로 종말론의 중심 정서는 공포가 아니라 재창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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