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73.심화

 

3. ‘모독(profanation)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상태를 모독(profanation)이라고 설명합니다. 모독이란 단순히 진리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알고도 그것을 own과 자기 사랑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AC.273 심화 2)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말하는 ‘모독(profanation)은 단순히 하나님을 모욕하거나 불경한 말을 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말씀의 의미를 알고,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달은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고도, 결국에는 own과 자기 사랑을 위하여 그 진리를 왜곡하거나 거스르는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모독은 무지에서 비롯되는 죄가 아니라, 빛을 받은 후 그 빛을 거슬러 어둠을 선택하는 데서 생겨나는 더 깊은 영적 상태입니다.

 

이 때문에 스베덴보리는 모독을 매우 심각하게 다룹니다. 진리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잘못을 범하더라도 언젠가 진리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알고도 그것을 의도적으로 자기 욕망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하면, 사람 안에서 선과 진리의 결합이 끊어지고,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이 뒤섞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모독의 본질입니다.

 

모독이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사람의 겉 행동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입으로는 말씀을 인정하고,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own과 자기 사랑을 최고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말씀은 더 이상 삶을 변화시키는 진리가 아니라, 자기 생각과 욕망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거룩한 것을 이용하여 거룩하지 않은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 바로 모독입니다.

 

이러한 상태는 교회 안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읽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것이 주님을 사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명예와 권세, 이익과 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외형은 거룩하여도 내면은 이미 own이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모독을 단순한 불신앙보다 더 깊은 영적 문제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호세아의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 날 것이니(the thorn and the thistle shall come up upon their altars)라는 말씀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제단은 본래 주님께 드리는 사랑과 예배를 상징하는 가장 거룩한 장소입니다. 그런데 그 제단 위에 ‘가시와 찔레’가 난다는 것은, 거룩한 예배의 자리까지 악과 거짓이 침투하였음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예배 자체가 own과 자기 사랑에 오염되어 모독의 상태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에서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사람의 삶 전체에 나타난 결과를 보여준다면, 호10은 그 결과가 마침내 예배의 중심인 제단에까지 미쳤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영적 황폐(vastation)가 가장 깊은 단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합니다. 이제 사람은 선과 진리를 잃었을 뿐 아니라, 거룩한 것까지 자기 사랑을 위하여 사용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람을 이러한 상태에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주님께서는 사람이 모독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때로는 진리를 충분히 알지 못하도록 허용하시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진리를 잊게 하시거나 외적인 상태에 머물게 하시기도 합니다. 이는 사람을 버리시기 때문이 아니라, 거룩한 것을 끝내 모독하는 더 큰 악으로부터 보호하시기 위한 자비입니다. 그러므로 모독에 대한 스베덴보리의 가르침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끝까지 지키려는 주님의 깊은 섭리를 함께 보여주는 교리이기도 합니다.

 

 

 

AC.273, 심화 4, ‘사32:12-13’

AC.273.심화 4. ‘사32:12-13’ 12그들은 좋은 밭으로 인하여 열매 많은 포도나무로 인하여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 13내 백성의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나며 희락의 성읍, 기뻐하는 모든 집에 나리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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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3, 심화 2, ‘호10:8’

AC.273.심화 2. ‘호10:8’ 이스라엘의 죄 곧 아웬의 산당은 파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 날 것이니 그때에 그들이 산 더러 우리를 가리라 할 것이요 작은 산 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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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3.심화

 

2. ‘10:8

 

이스라엘의 죄 곧 아웬의 산당은 파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 날 것이니 그때에 그들이 산 더러 우리를 가리라 할 것이요 작은 산 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 (10:8) The lofty places of Aven, the sin of Israel, shall be destroyed; the thorn and the thistle shall come up upon their altars (Hos. 10:8),

 

 

스베덴보리가 AC.273에서 호10:8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의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단순히 삶의 고난이나 저주의 상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거룩한 예배마저 악과 거짓으로 오염된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절은 영적 황폐(vastation)가 사람의 삶뿐 아니라 교회의 예배와 신앙까지도 침범한 모습을 매우 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먼저 ‘아웬(Aven)의 산당은 자기 사랑과 거짓 예배를 상징합니다. 산당은 원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장소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주님께서 정하신 예배가 아니라 자기 뜻과 욕망에 따라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에게 ‘아웬의 산당’은 주님을 위한 신앙이 아니라 own과 자기 사랑을 중심으로 세워진 종교를 의미합니다.

 

이어지는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 날 것이니(the thorn and the thistle shall come up upon their altars)는 말씀이 이 구절의 핵심입니다. 성경에서 ‘제단’은 주님께 대한 사랑과 예배를 상징하는 가장 거룩한 장소입니다. 그런데 그 제단 위에 ‘가시와 찔레’가 자란다는 것은, 본래 선과 진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악과 거짓이 대신 차지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예배의 형식은 남아 있지만, 그 안의 생명은 사라진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상태를 ‘모독(profanation)이라고 설명합니다. 모독이란 단순히 진리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알고도 그것을 own과 자기 사랑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제단 위에 가시와 찔레가 자란다는 것은, 거룩한 것이 더러운 것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며, 교회의 가장 깊은 부분까지 영적 황폐가 스며들었음을 나타냅니다.

 

이 점에서 이 구절은 호9:6보다 한 단계 더 심각한 상태를 보여줍니다. 호9에서는 찔레와 가시덩굴이 사람의 소유와 장막을 덮습니다. 그러나 호10에서는 마침내 제단까지 가시와 찔레가 뒤덮습니다. 이는 영적 황폐가 사람의 삶을 넘어 예배와 신앙의 중심까지 침투하였음을 뜻합니다.

 

이러한 상징은 창3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땅에서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게 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자연의 저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선과 진리가 자라야 할 자리에 악과 거짓이 자라기 시작하였음을 뜻합니다. 호세아는 이 상징을 더욱 발전, 이제는 그 악과 거짓이 예배의 중심인 제단에까지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호10:8을 인용하는 이유는,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영적 황폐의 가장 깊은 단계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사람이 고난을 겪는 상태가 아니라, 자기 사랑과 own이 주님을 대신하여 예배의 중심을 차지한 상태이며, 그 결과 거룩해야 할 제단마저 악과 거짓으로 뒤덮이게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를 통하여 스베덴보리는 창3의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사람과 교회의 가장 깊은 영적 상태를 드러내는 말씀의 상징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AC.273, 심화 3, ‘모독’(profanation)

AC.273.심화 3. ‘모독’(profanation)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상태를 ‘모독’(profanation)이라고 설명합니다. 모독이란 단순히 진리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알고도 그것을 own과 자기 사랑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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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3, 심화 1, ‘호9:6’

AC.273.심화 1. ‘호9:6’ 보라 그들이 멸망을 피하여 갈지라도 애굽은 그들을 모으고 놉은 그들을 장사하리니 그들의 은은 귀한 것이나 찔레가 덮을 것이요 그들의 장막 안에는 가시덩굴이 퍼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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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3.심화

 

1. ‘9:6

 

보라 그들이 멸망을 피하여 갈지라도 애굽은 그들을 모으고 놉은 그들을 장사하리니 그들의 은은 귀한 것이나 찔레가 덮을 것이요 그들의 장막 안에는 가시덩굴이 퍼지리라 (9:6) Lo, they are gone away because of the vastation; Egypt shall gather them; Memphis shall bury them; their desirable things of silver, the nettle shall inherit them; the bramble shall be in their tents (Hos. 9:6).

 

 

스베덴보리가 AC.273에서 호9:6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에 나오는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선과 진리가 사라진 자리에 악과 거짓이 들어선 영적 황폐(vastation)의 상태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성경 자체로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에서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었다는 말씀은, 호세아에서도 동일한 영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먼저 ‘애굽(Egypt)과 ‘(Memphis)은 영적 황폐가 일어나게 되는 원인을 보여줍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애굽’은 기억 지식을, ‘’은 그러한 기억 지식을 바탕으로 주님께 속한 것들(Divine things)을 자신의 지혜로 이해하고 판단하려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기억 지식 자체는 주님으로부터 주어진 유익한 도구이지만, 그것이 말씀을 섬기는 위치를 떠나 사람 자신의 지혜를 높이는 수단이 될 때에는 오히려 영적 생명을 메마르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이어지는 ‘그들의 은은 귀한 것이나 찔레가 덮을 것이요(their desirable things of silver, the nettle shall inherit them)라는 말씀도 같은 원리를 보여줍니다. 성경에서 ‘’은 진리를 상징하고, ‘귀한 것’은 소중히 간직해야 할 선과 진리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찔레’가 덮는다는 것은, 진리가 더 이상 사람의 삶을 다스리지 못하고, 그 자리를 거짓과 악이 뒤덮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열매를 맺어야 할 자리에 찔레가 무성해지는 것처럼, 진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거짓이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또한 ‘그들의 장막 안에는 가시덩굴이 퍼지리라(the bramble shall be in their tents)라는 말씀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성경에서 ‘장막’은 주님과 함께하는 거룩한 예배와 교회의 삶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장막 안에 가시덩굴이 퍼진다는 것은, 본래 거룩해야 할 예배와 신앙생활 속으로 거짓과 악이 점점 스며들어 영적 질서가 무너졌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교회의 외형은 남아 있지만, 그 중심에서는 주님보다 own과 자기 사랑이 지배하게 된 상태를 보여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통하여 황폐(vastation)가 단순히 선과 진리가 사라지는 상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빈자리를 악과 거짓이 대신 차지하는 상태임을 설명합니다. 영적 세계에는 공백이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진리를 거절하면, 그 자리는 곧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에서 비롯된 거짓과 악으로 채워집니다. 이것이 바로 ‘찔레(nettle)와 ‘가시덩굴(bramble)이 상징하는 영적 의미입니다.

 

이러한 상징은 창3과도 직접 연결됩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땅에서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난다는 것은 단순히 자연환경이 척박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의 겉 사람 안에서 선과 진리의 열매를 맺어야 할 자리에 거짓과 악이 자라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호9의 말씀은 창3의 상징을 다른 예언서를 통하여 다시 확인해 주는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호9:6을 인용하는 이유는, 영적 황폐란 선과 진리가 점차 사라지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거짓과 악이 대신 차지하는 상태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애굽(Egypt)과 ‘(Memphis)은 자기 지혜를 의지하는 인간을, ‘찔레(nettle)와 ‘가시덩굴(bramble)은 그 결과 나타나는 영적 황폐를 상징합니다. 이를 통하여 스베덴보리는 창3의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말씀 전체를 관통하는 동일한 영적 언어이며, 주님으로부터 멀어진 사람과 교회의 상태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징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AC.273, 심화 2, ‘호10:8’

AC.273.심화 2. ‘호10:8’ 이스라엘의 죄 곧 아웬의 산당은 파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 날 것이니 그때에 그들이 산 더러 우리를 가리라 할 것이요 작은 산 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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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3, 창3:18, ‘가시덤불과 엉겅퀴’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And the thorn and the thistle shall it bring forth unto thee, and thou shalt eat the herb of the field. (창3:18)AC.273‘가시덤불과 엉겅퀴’(the t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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