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95.심화

 

4. ‘5:19-20

 

19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20여호와의 날은 빛 없는 어둠이 아니며 빛남 없는 캄캄함이 아니냐 (5:19, 20) As if a man came into a house, and leaned his hand on the wall, and a serpent bit him. Shall not the day of Jehovah be darkness and not light? even thick darkness, and no brightness in it (Amos 5:19–20)?

 

 

AC.195에서 스베덴보리가 암5:19-20을 인용하는 이유는, 감각적 추론에 의지하는 사람이 스스로는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더 깊은 영적 어둠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특별히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라는 표현에 주목합니다.

 

그는 AC.195에서 손을 벽에 대는 것’을 자기 자신의 힘(self-derived power) 감각적인 것들에 대한 신뢰’로 해석합니다. 집 안에 들어왔으니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벽을 짚었으니 든든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뱀에게 물립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보면 매우 의미심장한 그림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판단과 경험, 지식을 의지할 때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뱀, 곧 감각적 추론의 독이 침투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창3의 뱀도 사람을 노골적인 악으로 유혹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판단하라’, ‘직접 확인하라’, ‘네 눈으로 보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그것을 자유와 지혜의 확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그것이 실제로는 영적 시력을 잃어 가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아모스의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벽을 짚고 있으니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장 위험한 곳에 손을 올려놓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뱀에게 물린다’는 것은 단순한 공격이 아닙니다. 자기 확신이 낳는 영적 결과를 의미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감각, 기억 지식에 의존할수록 점점 더 확신에 차게 됩니다. 그러나 그 확신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빛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면, 결국 그 확신 자체가 독이 됩니다. AC.195가 계속 말하는 뱀의 독’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어지는 여호와의 날은 빛 없는 어둠이 아니냐’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보통 사람들은 여호와의 날을 빛과 구원의 날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어둠의 날이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빛은 그 사람의 거짓된 확신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빛이 왔는데도 어둠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빛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상태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아모스의 말씀은 AC.194 AC.195 전체를 요약하는 본문처럼 보입니다. 사람은 감각을 신뢰하고,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고, 자신의 지식을 신뢰합니다. 마치 집 안에 들어와 벽을 짚은 것처럼 안심합니다. 그러나 그가 의지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 뱀이 숨어 있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물립니다.

 

목사님께서 앞서 말씀하신 이성질’이라는 표현을 다시 사용해 본다면, 이 본문은 이성질의 가장 위험한 특징은 그것이 자신을 지혜롭게 보이게 한다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도둑은 자기가 도둑질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감각적 추론에 사로잡힌 사람은 오히려 자신이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현실적이며, 가장 분별력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 점이 뱀의 독이 무서운 이유입니다.

 

그래서 AC.195에서 스베덴보리가 아모스를 인용하는 이유는 단순히 ’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이 말씀을 통해 자기 힘과 감각을 의지하는 사람은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영적 독에 물리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빛 없는 어둠’, 곧 진리의 빛을 받아들일 수 없는 영적 맹목 상태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AC.195, 심화 5, ‘렘46:22-24’

AC.195.심화 5. ‘렘46:22-24’ 22애굽의 소리가 뱀의 소리 같으리니 이는 그들의 군대가 벌목하는 자 같이 도끼를 가지고 올 것임이라 23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황충보다 많아서 셀 수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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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95, 심화 3, ‘시58:3-5’

AC.195.심화 3. ‘시58:3-5’ 3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4그들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그들은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5술사의 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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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58:3-5

 

3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4그들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그들은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5술사의 홀리는 소리도 듣지 않고 능숙한 술객의 요술도 따르지 아니하는 독사로다 (58:3-5) They go astray from the womb, speaking a lie. Their poison is like the poison of a serpent, like the deaf poisonous asp that stoppeth her ear, that she may not hear the voice of the mutterers, of a wise one that charmeth charms [sociantis sodalitia] (Ps. 58:3–5).

 

 

AC.195에서 스베덴보리가 시58:3-5를 인용하는 이유는, 창3의 ‘’이 단순히 잘못된 생각 하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듣지 않으려는 상태 자체를 의미한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앞서 시편 140편이 ‘뱀의 독’이라는 표현을 통해 감각적 추론의 해악을 보여 주었다면, 시편 58편은 그 추론이 사람을 어떤 상태로 만드는지를 보여 줍니다.

 

특히 스베덴보리가 주목하는 부분은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입니다. 그는 AC.195에서 바로 이어 ‘이성적인 사람이 하는 말이나 지혜로운 자의 음성을 들으려 하지 않는 추론’을 ‘뱀의 독’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문제는 단순히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미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창3의 뱀도 단순히 질문을 던진 것이 아닙니다. 그 질문 뒤에는 이미 결론이 들어 있었습니다. ‘정녕 죽지 아니하리라.’ 즉 그는 진리를 배우기 위해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질문합니다. AC.195의 시편 58편 인용도 바로 이 점을 설명합니다. 독사는 술사의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자의 음성을 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스스로 옳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에게 ‘귀머거리 독사’는 단순한 무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매우 위험한 상태입니다. 무지한 사람은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확신에 사로잡힌 사람은 배우지 못합니다. 그는 새로운 진리를 들을 수 없고, 설령 들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이미 감각과 자기 판단의 기준으로 재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AC.195의 핵심은 ‘’보다도 어쩌면 ‘귀를 막는다’는 표현에 있습니다. 독은 결과이고, 귀를 막는 것이 원인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거부하는 이유는 진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반복해서 말하는 ‘감각적 인간’도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손에 잡히는 것만 인정하며, 자기 경험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은 처음부터 배제합니다. 그러니 천국, 영혼, 양심, 인플럭스, 주님의 섭리 같은 것은 애초에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편 58편의 ‘귀머거리 독사’는 AC.194에서 말한 ‘보고 느끼지 않으면 믿지 않는 사람’의 다음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그런가?’라고 묻습니다. 그다음에는 ‘내가 확인해야 믿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는 이미 알고 있다’는 상태가 됩니다. 그때는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독사의 귀가 막힌 상태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들을 수 있는 상태’에서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AC.189에서도 천국으로 인도되기 위해서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과 ‘자기 인식’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인식의 첫걸음은 ‘내가 모를 수도 있다’는 인정입니다. 반대로 귀머거리 독사는 ‘나는 이미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들을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AC.195가 시편 58편을 인용한 이유는 매우 분명합니다. 뱀의 독은 단순히 잘못된 논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진리의 음성에 귀 막게 만드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창3의 뱀이 상징하는 감각적 추론의 가장 위험한 결과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앞서 말씀하신 ‘이성질’이라는 표현을 다시 빌려 보자면, 진정한 위험은 ‘이성질’ 자체보다 ‘이성질을 하고 있다는 말을 더 이상 듣지 못하는 상태’일 것입니다. AC.195의 귀머거리 독사는 바로 그 상태를 보여 줍니다. 자기 판단이 최종 권위가 되어 버린 사람, 그래서 더 이상 지혜로운 자의 음성도, 주님의 음성도 들을 수 없게 된 사람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편은 창3의 뱀이 단순한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닫힘과 영적 청각의 상실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인용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AC.195, 심화 4, ‘암5:19-20’

AC.195.심화 4. ‘암5:19-20’ 19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20여호와의 날은 빛 없는 어둠이 아니며 빛남 없는 캄캄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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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95, 심화 2, ‘시140:3’

AC.195.심화 2. ‘시140:3’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 (시140:3) They sharpen their tongue like a serpent; the poison of the asp is under their lips (Ps. 140:3). AC.195에서 스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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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40:3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 (140:3) They sharpen their tongue like a serpent; the poison of the asp is under their lips (Ps. 140:3).

 

 

AC.195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시편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이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감각적인 것에 근거한 추론’ 또는 ‘신앙의 진리를 공격하는 추론’을 상징한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한다’는 표현은 단순히 말을 험하게 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추론을 날카롭게 벼려 진리를 공격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특히 스베덴보리는 ‘’에 주목합니다. 혀는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기관입니다. 따라서 상응적으로는 사고와 추론이 밖으로 드러난 것을 뜻합니다. 뱀의 혀가 날카롭다는 것은 감각과 외적 경험에 근거한 논리가 매우 설득력 있고 교묘하게 작동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거짓은 대개 처음부터 거짓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매우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며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창3의 뱀도 처음부터 ‘하나님을 거역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정녕 그러하냐?’고 물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질문 속에는 이미 신앙을 감각의 법정에 세우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독사의 독이 그 입술 아래 있다’는 표현은 더욱 중요합니다. 독은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입술 아래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몸 안으로 들어가면 생명을 해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감각적 추론의 위험성에 비유합니다. 감각적 추론은 처음에는 지혜처럼 보이고 상식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신비를 그것으로 판단하기 시작하면, 결국 영적 생명을 마비시키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이것을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이라고 부릅니다.

 

흥미로운 것은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단순히 악한 말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신비를 감각과 기억지식으로 판단하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감각의 범위를 넘어서는 모든 것을 의심하기 때문에, 영적인 것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독은 남을 죽이는 것 이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마비시킵니다.

 

이 때문에 AC.195에서 시편 140편은 단순한 도덕적 경고가 아니라 영적 경고로 사용됩니다. ‘뱀의 혀’는 감각적 추론을, ‘독사의 독’은 그 추론이 영혼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을 뜻합니다. 즉,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통해 ‘신앙의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 이성을 사용하는 것’과 ‘신앙의 진리를 감각으로 재판하는 것’을 구별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앞서 말씀하신 ‘이성질’이라는 표현을 빌리자면, 이 시편 구절은 단순한 ‘이성’이 아니라 ‘이성질’의 위험성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이성이 진리를 섬길 때는 유익한 도구가 되지만, 진리를 심판하는 자리에 올라앉을 때는 ‘독사의 독’처럼 영적 생명을 해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AC.195는 이 시편 구절을 통해 창3의 뱀이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인간 안에서 작동하는 잘못된 추론의 원리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AC.195, 심화 3, ‘시58:3-5’

AC.195.심화 3. ‘시58:3-5’ 3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4그들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그들은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5술사의 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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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95, 심화 1, ‘이성질’(理性, reason)

AC.195.심화 1. ‘이성질’(理性, reason) 이로부터 또한 감각의 증거에 근거, 신앙의 신비들에 대해 추론하는 것들, 곧 이성질(理性질)하는 것들을 ‘뱀의 독’(poison of a serpent)이라 했고, 그러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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