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00.심화

 

5. ‘82:1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 (82:1) God hath stood in the congregation of God, he will judge in the midst of the gods (Ps. 82:1);

 

 

AC.300에서 스베덴보리가 시82:1을 인용한 이유는 앞에서 살펴본 여러 구절과는 약간 다릅니다. 앞의 인용들이 ‘여호와’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 구절은 왜 천사들이나 사람들도 말씀에서 ‘gods’(신들)이라고 불리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증거로 사용됩니다.

 

82:1은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라고 말합니다. 겉으로만 보면 하나님 외에도 여러 ‘신들’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여러 신의 존재를 말하는 구절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참 하나님이시며, 여기서 ‘gods’는 주님으로부터 신적 능력을 받아 주님의 뜻을 수행하는 천사들, 또는 그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AC.300은 바로 이 점을 입증하기 위해 이 구절을 인용합니다. 천사들은 자기 자신에게서 어떤 신성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gods’라 불리는 이유는 주님의 신적 진리와 능력을 받아 전달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름은 그들에게 붙지만, 실제 신성은 전적으로 주님께 속합니다.

 

구절의 앞부분과 뒷부분도 이러한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구절은 먼저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라고 하여 유일하신 하나님을 제시합니다. 이어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고 하는데, 여기서 ‘신들’은 하나님과 나란한 또 다른 신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신적 진리와 능력을 받아 섬기는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심판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며, 천사들은 그분의 신적 질서를 받들어 섬기는 존재들입니다. 따라서 여기의 ‘gods’는 심판의 주체가 아니라, 주님의 신적 통치 아래 있는 수용자들입니다.

 

이 인용은 AC.300의 앞부분과도 직접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창1:26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를 설명하면서, 이 ‘우리’는 여러 신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신성을 받아 주님의 일을 수행하는 천사들을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시82:1에서 천사들을 ‘gods’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설명을 뒷받침하는 성경적 근거가 됩니다.

 

AC.300에서 시82:1을 인용한 핵심 이유는, 말씀에서 천사들을 ‘gods’라고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신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신 주님의 신적 진리와 능력을 받아 전달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임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통해 스베덴보리는 창1:26의 ‘우리’가 여러 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신성을 받아 역사하는 천사들을 가리킨다는 자신의 해석을 성경으로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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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00.심화

 

4. ‘31:14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31:14)

 

 

AC.300에서 스베덴보리가 시31:14를 인용한 이유는 앞서 인용한 사49, 사55, 시18과 동일한 원리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이 한 절을 깊이 해설하려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서 ‘여호와’와 ‘하나님’이라는 두 이름이 서로 구별된 의미를 가지고 사용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간결한 증거로 제시합니다.

 

31:14은 ‘여호와여’라고 주님을 부른 뒤, 곧이어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고백합니다. 같은 한 절 안에서 ‘여호와’와 ‘하나님’이라는 두 이름이 함께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표현이 우연한 반복이 아니라, 말씀의 내적 의미에 따른 의도적인 구별이라고 봅니다.

 

먼저 ‘여호와여’라는 부름은 생명과 존재의 근원이신 주님 자신을 향한 신뢰를 나타냅니다. 사람은 오직 스스로 존재하시며, 생명 자체이신 분께만 의지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의 ‘여호와’는 주님의 신적 존재와 본질을 나타냅니다.

 

이어지는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는 고백은 그 주님께서 자신의 하나님으로서 실제로 역사하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인정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여기의 ‘하나님’은 사람 안에서 일하시는 주님의 신적 능력과 역사를 나타냅니다. AC.300은 이러한 구별을 근거로 ‘여호와’는 본질을, ‘하나님’은 능력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짧은 한 절은 AC.300의 핵심 논지를 매우 간결하게 보여줍니다. 한 분 주님을 가리키면서도 ‘여호와’와 ‘하나님’이라는 두 이름이 함께 사용되는 것은, 주님의 신적 존재와 신적 능력이 서로 다른 두 존재가 아니라 한 분 주님 안에서 구별되면서도 하나임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AC.300에서 시31:14를 인용한 핵심 이유는, 한 절 안에 함께 나타나는 ‘여호와’와 ‘하나님’이라는 두 이름을 통하여, 말씀이 주님의 신적 본질과 신적 능력을 각각 다른 이름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절은 앞서 인용된 사49, 사55, 시18과 같은 원리를 더욱 간명하게 증명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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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00.심화

 

3. ‘18: 2, 28-29, 31

 

2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28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29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31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18: 2, 28-29, 31)

 

AC.300에서 스베덴보리가 시18:2, 28-29, 31을 인용한 이유도 앞의 이사야 본문들과 동일한 맥락입니다. 그는 시편 전체를 해설하려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서 ‘여호와’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일정한 원리에 따라 구별되어 사용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이 구절들을 인용합니다.

 

18은 다윗이 주님의 구원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그 찬양 속에는 ‘여호와’와 ‘하나님’이라는 두 이름이 자연스럽게 교차하여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2절에서는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한 뒤 곧이어 ‘나의 하나님이시요’라고 말합니다. 또 28절에서는 ‘여호와 내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함께 사용되고, 29절에서는 ‘주를 의뢰하고’와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가 나란히 나타납니다. 마지막으로 31절에서는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라고 하여 두 이름을 다시 함께 사용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표현들이 우연한 반복이 아니라 내적 의미에 따른 것이라고 봅니다.

 

먼저 ‘여호와’라는 이름은 흔들리지 않는 반석과 피난처,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을 나타냅니다. 반석, 요새, 산성이라는 표현은 모두 변하지 않는 신적 존재와 보호를 상징하며, 이는 스스로 존재하시고, 모든 생명의 근원 되시는 주님의 본질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이 시편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은 주님의 신적 존재와 사랑을 강조하는 이름으로 사용됩니다.

 

반면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주님께서 실제로 사람을 도우시고 힘을 주시며, 승리를 이루시는 능력의 측면을 나타냅니다.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라는 말씀에서는 주님의 능력이 사람 안에서 역사하여 어둠을 밝히고 원수를 이기게 하시는 모습이 강조됩니다. AC.300은 바로 이러한 점을 들어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신적 능력과 작용을 나타낸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28절의 ‘여호와 내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AC.300의 핵심 사상을 잘 보여줍니다. 여기서는 두 이름이 하나로 결합되어 사용됩니다. 이는 존재와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과, 그분의 능력이 실제로 역사하시는 측면이 서로 분리될 수 없음을 나타냅니다. 스베덴보리가 창2에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도 바로 같은 이유입니다. ‘여호와’와 ‘하나님’은 서로 다른 두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 분 주님의 서로 다른 신적 측면을 나타냅니다.

 

마지막으로 31절은 이러한 논의를 결론짓는 역할을 합니다.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라는 말씀은 참된 하나님이 오직 한 분뿐이심을 선언합니다. 다시 말해, ‘여호와’와 ‘하나님’은 서로 다른 신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라, 동일하신 주님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다만 ‘여호와’는 그분의 신적 존재와 본질을, ‘하나님’은 그 신적 본질이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측면을 각각 강조하는 것입니다.

 

AC.300에서 시18:2, 28-29, 31을 인용한 핵심 이유는, 시편 안에서 ‘여호와’와 ‘하나님’이라는 두 이름이 서로 구별되면서도 함께 사용되는 예를 통하여, 말씀이 주님의 신적 본질과 신적 능력을 각각 다른 이름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앞서 인용된 사49와 사55의 경우와 같은 원리를 또 다른 말씀을 통해 확인해 주는 증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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