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2:11, 12)

 

AC.111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내적 의미에서 어떠한지 그대로 설명하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는 사랑에서 나온 신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그로부터 나오는 지혜와 지성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외적인 인간들은 거의 기억 지식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그것을 지성과 지혜, 그리고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사랑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많은 이들은 의지와 이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들이 하나의 마음을 이룬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각각의 것들은 서로 구별되며, 참으로 매우 명확하게 구별됩니다. 그리고 온 하늘은 주님에 의해, 수없이 많은 사랑과 신앙의 차이에 따라, 가장 정밀한 질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It is however a very difficult matter to describe these things as they are in the internal sense, for at the present day no one knows what is meant by faith from love, and what by the wisdom and intelligence thence derived. For external men scarcely know of anything but memory-knowledge, which they call intelligence and wisdom, and faith. They do not even know what love is, and many do not know what the will and understanding are, and that they constitute one mind. And yet each of these things is distinct, yea, most distinct, and the universal heaven is ordinated by the Lord in the most distinct manner according to the differences of love and faith, which are innumerable.

 

 

해설

 

이 글은 앞선 AC.110의 설명을 잠시 멈추어 세우며, ‘왜 이런 설명이 오늘날 이해되기 어려운가’를 정직하게 밝히는 자리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개념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 상태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다시 말해, 문제는 설명의 난해함이 아니라, 듣는 귀의 상실입니다.

 

그가 가장 먼저 지적하는 것은 ‘사랑에서 나온 신앙(faith from love)이라는 개념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앙을 교리의 동의, 혹은 생각의 확신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천적 인간의 신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생명의 방식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차이가, 오늘날 거의 인식되지 않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어 그는 오늘날의 인간을 ‘외적 인간(external men)으로 규정합니다. 외적 인간은 기억 지식, 곧 정보와 경험의 축적만을 알고, 그것을 지성, 지혜,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이때 지성은 사고 능력이 되고, 지혜는 노하우가 되며, 신앙은 의견이나 신념이 됩니다. 그러나 이런 의미의 지성, 지혜, 신앙은,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내적 의미(internal sense)와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더 나아가 그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감정이나 애착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깊은 원리입니다. 또한 많은 이들이 의지와 이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들이 하나의 마음을 이룬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인간을 단일한 ‘생각하는 주체’로만 이해하는 현대적 사고에 대한 근본적 비판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분명히 말합니다. 의지와 이해, 사랑과 신앙, 지혜와 지성은 서로 섞인 개념이 아니라, ‘각각 구별되며, 매우 명확하게 구별된다’고 말입니다. 이 구별이 사라질 때, 인간 내면은 흐려지고, 영적 질서는 보이지 않게 됩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 단락의 무게를 하늘 차원으로 끌어올립니다. 온 하늘은 주님에 의해, 사랑과 신앙의 차이에 따라 가장 정밀하게 배열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하늘은 획일적 공동체가 아니라, ‘사랑의 질적 차이에 따라 질서 지어진 생명의 우주’입니다. 그 차이는 몇 가지가 아니라, ‘셀 수 없이 많다’고 표현됩니다.

 

이 말은 곧,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사랑과 신앙의 상태가 ‘그 자체로 고유하며, 대체 불가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천적 인간의 지혜와 지성을 설명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질서의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AC.111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설명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과 신앙을 감각하고 분별하는 내적 구조 자체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늘은 여전히, 그 잃어버린 구별 위에 완전한 질서로 서 있습니다.  

 

 

심화

 

1. ‘인간 상태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

 

 

AC.111, 심화 1, ‘인간 상태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

AC.111.심화 1. ‘인간 상태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 위 본문에 나오는 ‘오늘날에는 사랑에서 나온 신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그로부터 나오는 지혜와 지성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 없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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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온 하늘은 가장 정밀한 질서로 배열되어 있다

 

 

AC.111, 심화 2, ‘온 하늘은 가장 정밀한 질서로 배열되어 있다’

AC.111.심화 2. ‘온 하늘은 가장 정밀한 질서로 배열되어 있다’ 위 본문에 언급하기를, ‘외적인 인간들은 거의 기억 지식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그것을 지성과 지혜, 그리고 신앙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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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2, 창2:11-12, '지혜, 지성, 선, 진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기준은 오직 주님'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2 더욱이 다음의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에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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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0, 창2:11-12, '천적 인간의 첫 지성, 비손 : 사랑에서 나온 신앙'(AC.110-115)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The name of the first is Pishon; that is it which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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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0.심화

 

1. ‘사랑에서 나온 신앙

 

위 본문에 사랑에서 나온 신앙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럼, 우리가 보통 말하는 신앙은 안 그런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가 보통 말하는 신앙은 대부분 ‘사랑에서 나온 신앙’이라기보다 ‘진리나 지식에서 시작되어 사랑으로 나아가야 하는 신앙’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가 AC.110에서 말하는 ‘사랑에서 나온 신앙’은 일반적인 신앙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신앙의 완성된 상태’, 곧 천적 인간의 신앙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신앙은 먼저 듣고, 배우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합니다. 말씀을 배우고, 교리를 익히고, 무엇이 참인지 분별하려는 과정이 먼저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나는 이것이 옳다고 믿는다’라는 의식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신앙은 아직 사랑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이 아니라, 이해와 선택을 통해 붙들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신앙에는 종종 긴장과 싸움이 따릅니다. 알지만 따르기 어렵고, 믿지만 흔들리는 일이 생깁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영적 인간의 신앙’입니다.

 

반면 AC.110에서 말하는 ‘사랑에서 나온 신앙’은 출발점이 완전히 다릅니다. 여기서는 먼저 사랑이 있고, 그 사랑에서 자연스럽게 신앙이 흘러나옵니다. 다시 말해, 무엇이 옳은지를 먼저 따져서 믿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이 참으로 보이고 받아들여지는 상태입니다. 이때 신앙은 더 이상 ‘결정’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표현’이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굳이 논증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뜻을 이해하고 따르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일반적인 신앙에서는 ‘나는 믿는다’는 감각이 중심에 있지만, 사랑에서 나온 신앙에서는 ‘주님이 이끄신다’는 감각이 중심이 됩니다. 전자는 여전히 자기 의식이 앞서 있고, 후자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자연스럽게 따르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후자의 경우에는 신앙이 힘들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기쁨으로 살아 움직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 두 신앙이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연속된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먼저 일반적인 신앙, 곧 진리에서 시작하는 신앙을 통해 준비됩니다. 말씀을 배우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양심을 형성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사랑도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이 목적은 아닙니다. 이 신앙이 점차 사랑과 결합되고, 마침내 사랑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상태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AC.110에서 말하는 ‘사랑에서 나온 신앙’이 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렇게 말하는 셈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아직 ‘완성된 형태는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출발점일 수도 있고, 열매일 수도 있습니다. 영적 인간에게는 신앙이 출발점이고, 천적 인간에게는 신앙이 사랑의 열매입니다.

 

정리하면, 우리가 보통 말하는 신앙은 ‘진리에서 시작하여 사랑으로 가야 하는 신앙’이고, AC.110에서 말하는 신앙은 ‘이미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신앙’입니다. 이 둘의 차이는 내용의 차이가 아니라 ‘근원의 차이’, 곧 어디에서 시작되느냐의 차이입니다.

 

 

 

AC.110, 창2:11-12, '천적 인간의 첫 지성, 비손 : 사랑에서 나온 신앙'(AC.110-115)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The name of the first is Pishon; that is it which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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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The name of the first is Pishon; that is it which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 where there is gold. And the gold of that land is good; there is bdellium and the onyx stone. (2:11, 12)

 

AC.110

 

첫째(first) , 비손(Pishon)은 신앙의 지성을 의미하는데, 이 신앙은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윌라 땅(the land of Havilah)은 마음을 의미하고, (gold)은 선을 의미하며, 베델리엄과 호마노(bdellium and the onyx stone)는 진리를 의미합니다. (gold)이 두 번 언급되는 것은, 사랑의 선과 사랑에서 나온 신앙의 선을 의미하기 때문이며, 베델리엄과 호마노(bdellium and the onyx stone)가 언급되는 것은, 하나는 사랑의 진리를, 다른 하나는 사랑에서 나온 신앙의 진리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적 인간의 상태입니다. The “first” river, or “Pishon,” signifies the intelligence of the faith that is from love; “the land of Havilah” signifies the mind; “gold” signifies good; “bdellium and the onyx stone,” truth. “Gold” is mentioned twice because it signifies the good of love and the good of faith from love; and “bdellium and the onyx stone” are mentioned because the one signifies the truth of love, and the other the truth of faith from love. Such is the celestial man.

 

해설

 

이 글은 에덴에서 흘러나온 하나의 지혜의 강이 ‘구체적 지성의 첫 형태’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줍니다. 네 강 가운데 ‘첫째 강’이 먼저 설명되는 이유는, 천적 인간의 지성이 ‘사랑에서 시작되는 신앙의 지성’으로 가장 먼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 지성은 교리에서 출발한 신앙이 아니라, 사랑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신앙입니다.

 

‘비손’이 의미하는 것은 사랑에서 나온 신앙의 지성입니다. 이는 신앙이 이해의 산물이 아니라, 사랑의 열매라는 뜻입니다. 천적 인간에게서 신앙은 무엇을 믿을지 고민한 결과가 아니라, 사랑 안에서 이미 살아 있는 인식입니다. 그래서 이 지성은 차갑거나 분석적이지 않고, ‘따뜻한 빛을 띤 이해’입니다.

 

하윌라 땅’이 마음을 의미한다는 설명은, 이 지성이 머무는 자리를 정확히 짚어 줍니다. 천적 인간의 지성은 머릿속 개념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마음 전체, 곧 사랑과 의지가 자리한 내적 영역 안에 놓여 있습니다. 지성과 사랑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장에서 작동하는 상태입니다.

 

이제 ‘’과 ‘보석들’이 등장합니다. 금은 선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금이 두 번 언급됩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 반복입니다. 하나는 ‘사랑의 선’, 다른 하나는 ‘사랑에서 나온 신앙의 선’입니다. 천적 인간에게서는 신앙조차도 선의 성격을 띱니다. 신앙이 의무나 판단이 아니라, 선에서 흘러나온 생명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베델리엄’과 ‘호마노’는 진리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진리 또한 중립적 사실이나 교리 명제가 아닙니다. 하나는 사랑의 진리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에서 나온 신앙의 진리입니다. 즉, 진리마저도 사랑을 근원으로 하여 두 겹의 깊이를 가집니다. 진리는 사랑을 드러내는 방식이며, 신앙의 진리는 사랑을 따라 말하는 진리입니다.

 

이 구조를 종합하면, 비손 강의 영역에서는 ‘선이 중심이고, 진리는 그 선을 섬기는 빛’입니다. 지성은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지 않고, 사랑을 더 잘 살도록 봉사합니다. 이것이 바로 천적 인간의 지성 구조입니다.

 

마지막 문장에서 스베덴보리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천적 인간이다.’ 이는 정의라기보다, ‘삶의 상태에 대한 묘사’입니다. 천적 인간은 선과 진리, 사랑과 신앙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 살며, 그의 지성은 언제나 사랑에서 흘러나옵니다. 비손 강은 그 첫 흐름이며, 이후의 강들은 이 흐름이 어떻게 더 세분화되는지를 보여주게 됩니다.

 

AC.110은 이렇게 말합니다. 천적 인간의 첫 지성은 사랑에서 나온 신앙이며, 그 지성의 땅에는 선이 금처럼 풍부하고, 진리는 보석처럼 빛난다고 말입니다.  

 

 

심화

 

1. ‘사랑에서 나온 신앙

 

 

AC.110, 심화 1, ‘사랑에서 나온 신앙’

AC.110.심화 1. ‘사랑에서 나온 신앙’ 위 본문에 ‘사랑에서 나온 신앙’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럼, 우리가 보통 말하는 신앙은 안 그런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가 보통 말하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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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1, 창2:11-12, '왜 이런 설명이 오늘날 이해되기 어려운가'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1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내적 의미에서 어떠한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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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09, 창2:10, '지혜와 지성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성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강'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창2:10) AC.109 지혜와 지성 나타나는 것이 겉보기엔 사람인 것 같아도,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사실은 오직 주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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