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73.심화

 

4. ‘32:12-13

 

12그들은 좋은 밭으로 인하여 열매 많은 포도나무로 인하여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 13내 백성의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나며 희락의 성읍, 기뻐하는 모든 집에 나리니 (32:12, 13) Mourning upon the paps for the fields of desire, for the fruitful vine; upon the ground of my people shall come up the briery thorn (Isa. 32:12–13).

 

 

스베덴보리가 AC.273에서 사32:12-13을 인용하는 이유는, ‘가시’와 ‘찔레’가 선과 진리의 결핍, 곧 영적 황폐(vastation)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본문은 본래 열매가 풍성해야 할 ‘좋은 밭’과 ‘열매 많은 포도나무’의 자리에 ‘가시와 찔레’가 나는 상태를 말하고 있으므로, 창3의 ‘가시덤불과 엉겅퀴’와 같은 영적 의미를 다른 예언서의 표현으로 보여줍니다.

 

좋은 밭으로 인하여 열매 많은 포도나무로 인하여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Mourning upon the paps for the fields of desire, for the fruitful vine)라는 말씀에서 ‘좋은 밭’은 선이 자라야 할 교회의 상태를, ‘열매 많은 포도나무’는 진리로부터 맺히는 영적 열매를 의미합니다. 밭과 포도나무는 본래 축복과 번성, 곧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가 사람 안에서 열매 맺는 상태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어서 ‘내 백성의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나며(upon the ground of my people shall come up the briery thorn)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내 백성의 땅’은 단순한 토지가 아니라 교회와 사람의 겉 사람, 곧 선과 진리가 심기고 자라야 할 삶의 자리를 의미합니다. 그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난다는 것은, 본래 선과 진리의 열매가 있어야 할 곳에 악과 거짓이 자라기 시작했음을 뜻합니다.

 

이 구절이 중요한 이유는, 황폐가 단순히 아무것도 없는 빈 상태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영적 황폐는 열매가 사라진 자리에 곧바로 가시와 찔레가 자라는 상태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자리는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own과 자기 사랑에서 나오는 거짓과 악으로 채워집니다.

 

스베덴보리는 AC.273에서 여러 본문을 나란히 인용하면서, ‘가시’, ‘찔레’, ‘가시덩굴’ 같은 표현들이 모두 같은 계열의 상징임을 보여줍니다. 호9에서는 찔레와 가시덩굴이 장막과 은을 덮고, 호10에서는 가시와 찔레가 제단 위에 나며, 사32에서는 내 백성의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납니다. 표현은 본문마다 다르지만, 모두 선과 진리가 물러난 자리에 악과 거짓이 자라는 영적 황폐를 가리킵니다.

 

특히 사32의 경우, ‘좋은 밭’과 ‘열매 많은 포도나무’가 먼저 언급된 뒤 곧바로 ‘가시와 찔레’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대조가 매우 선명합니다. 본래 교회는 열매 맺는 밭과 포도나무 같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잃으면, 같은 땅이라도 더 이상 열매를 내지 못하고, 가시와 찔레를 내는 상태가 됩니다. 이것이 창3 이후 겉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타락의 결과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사32:12-13을 인용하는 이유는, ‘가시’와 ‘찔레’가 말씀 전체에서 영적 황폐를 나타내는 일관된 상징임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좋은 밭과 열매 많은 포도나무는 축복과 번성을, 가시와 찔레는 저주와 황폐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창3의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단순한 자연의 변화가 아니라, 사람과 교회 안에서 선과 진리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악과 거짓이 차지하게 된 영적 상태를 의미한다는 스베덴보리의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AC.273, 심화 5, ‘겔28:24’

AC.273.심화 5. ‘겔28:24’ 이스라엘 족속에게는 그 사방에서 그들을 멸시하는 자 중에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가시가 다시는 없으리니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겔28:24) There s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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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3, 심화 3, ‘모독’(profanation)

AC.273.심화 3. ‘모독’(profanation)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상태를 ‘모독’(profanation)이라고 설명합니다. 모독이란 단순히 진리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알고도 그것을 own과 자기 사랑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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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독(profanation)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상태를 모독(profanation)이라고 설명합니다. 모독이란 단순히 진리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알고도 그것을 own과 자기 사랑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AC.273 심화 2)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말하는 ‘모독(profanation)은 단순히 하나님을 모욕하거나 불경한 말을 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말씀의 의미를 알고,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달은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고도, 결국에는 own과 자기 사랑을 위하여 그 진리를 왜곡하거나 거스르는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모독은 무지에서 비롯되는 죄가 아니라, 빛을 받은 후 그 빛을 거슬러 어둠을 선택하는 데서 생겨나는 더 깊은 영적 상태입니다.

 

이 때문에 스베덴보리는 모독을 매우 심각하게 다룹니다. 진리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잘못을 범하더라도 언젠가 진리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알고도 그것을 의도적으로 자기 욕망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하면, 사람 안에서 선과 진리의 결합이 끊어지고,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이 뒤섞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모독의 본질입니다.

 

모독이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사람의 겉 행동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입으로는 말씀을 인정하고,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own과 자기 사랑을 최고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말씀은 더 이상 삶을 변화시키는 진리가 아니라, 자기 생각과 욕망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거룩한 것을 이용하여 거룩하지 않은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 바로 모독입니다.

 

이러한 상태는 교회 안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읽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것이 주님을 사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명예와 권세, 이익과 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외형은 거룩하여도 내면은 이미 own이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모독을 단순한 불신앙보다 더 깊은 영적 문제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호세아의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 날 것이니(the thorn and the thistle shall come up upon their altars)라는 말씀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제단은 본래 주님께 드리는 사랑과 예배를 상징하는 가장 거룩한 장소입니다. 그런데 그 제단 위에 ‘가시와 찔레’가 난다는 것은, 거룩한 예배의 자리까지 악과 거짓이 침투하였음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예배 자체가 own과 자기 사랑에 오염되어 모독의 상태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에서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사람의 삶 전체에 나타난 결과를 보여준다면, 호10은 그 결과가 마침내 예배의 중심인 제단에까지 미쳤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영적 황폐(vastation)가 가장 깊은 단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합니다. 이제 사람은 선과 진리를 잃었을 뿐 아니라, 거룩한 것까지 자기 사랑을 위하여 사용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람을 이러한 상태에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주님께서는 사람이 모독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때로는 진리를 충분히 알지 못하도록 허용하시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진리를 잊게 하시거나 외적인 상태에 머물게 하시기도 합니다. 이는 사람을 버리시기 때문이 아니라, 거룩한 것을 끝내 모독하는 더 큰 악으로부터 보호하시기 위한 자비입니다. 그러므로 모독에 대한 스베덴보리의 가르침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끝까지 지키려는 주님의 깊은 섭리를 함께 보여주는 교리이기도 합니다.

 

 

 

AC.273, 심화 4, ‘사32:12-13’

AC.273.심화 4. ‘사32:12-13’ 12그들은 좋은 밭으로 인하여 열매 많은 포도나무로 인하여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 13내 백성의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나며 희락의 성읍, 기뻐하는 모든 집에 나리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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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3, 심화 2, ‘호10:8’

AC.273.심화 2. ‘호10:8’ 이스라엘의 죄 곧 아웬의 산당은 파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 날 것이니 그때에 그들이 산 더러 우리를 가리라 할 것이요 작은 산 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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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0:8

 

이스라엘의 죄 곧 아웬의 산당은 파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 날 것이니 그때에 그들이 산 더러 우리를 가리라 할 것이요 작은 산 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 (10:8) The lofty places of Aven, the sin of Israel, shall be destroyed; the thorn and the thistle shall come up upon their altars (Hos. 10:8),

 

 

스베덴보리가 AC.273에서 호10:8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의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단순히 삶의 고난이나 저주의 상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거룩한 예배마저 악과 거짓으로 오염된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절은 영적 황폐(vastation)가 사람의 삶뿐 아니라 교회의 예배와 신앙까지도 침범한 모습을 매우 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먼저 ‘아웬(Aven)의 산당은 자기 사랑과 거짓 예배를 상징합니다. 산당은 원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장소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주님께서 정하신 예배가 아니라 자기 뜻과 욕망에 따라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에게 ‘아웬의 산당’은 주님을 위한 신앙이 아니라 own과 자기 사랑을 중심으로 세워진 종교를 의미합니다.

 

이어지는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 날 것이니(the thorn and the thistle shall come up upon their altars)는 말씀이 이 구절의 핵심입니다. 성경에서 ‘제단’은 주님께 대한 사랑과 예배를 상징하는 가장 거룩한 장소입니다. 그런데 그 제단 위에 ‘가시와 찔레’가 자란다는 것은, 본래 선과 진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악과 거짓이 대신 차지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예배의 형식은 남아 있지만, 그 안의 생명은 사라진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상태를 ‘모독(profanation)이라고 설명합니다. 모독이란 단순히 진리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알고도 그것을 own과 자기 사랑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제단 위에 가시와 찔레가 자란다는 것은, 거룩한 것이 더러운 것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며, 교회의 가장 깊은 부분까지 영적 황폐가 스며들었음을 나타냅니다.

 

이 점에서 이 구절은 호9:6보다 한 단계 더 심각한 상태를 보여줍니다. 호9에서는 찔레와 가시덩굴이 사람의 소유와 장막을 덮습니다. 그러나 호10에서는 마침내 제단까지 가시와 찔레가 뒤덮습니다. 이는 영적 황폐가 사람의 삶을 넘어 예배와 신앙의 중심까지 침투하였음을 뜻합니다.

 

이러한 상징은 창3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땅에서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게 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자연의 저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선과 진리가 자라야 할 자리에 악과 거짓이 자라기 시작하였음을 뜻합니다. 호세아는 이 상징을 더욱 발전, 이제는 그 악과 거짓이 예배의 중심인 제단에까지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호10:8을 인용하는 이유는,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영적 황폐의 가장 깊은 단계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사람이 고난을 겪는 상태가 아니라, 자기 사랑과 own이 주님을 대신하여 예배의 중심을 차지한 상태이며, 그 결과 거룩해야 할 제단마저 악과 거짓으로 뒤덮이게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를 통하여 스베덴보리는 창3의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사람과 교회의 가장 깊은 영적 상태를 드러내는 말씀의 상징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AC.273, 심화 3, ‘모독’(profanation)

AC.273.심화 3. ‘모독’(profanation)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상태를 ‘모독’(profanation)이라고 설명합니다. 모독이란 단순히 진리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알고도 그것을 own과 자기 사랑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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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3, 심화 1, ‘호9:6’

AC.273.심화 1. ‘호9:6’ 보라 그들이 멸망을 피하여 갈지라도 애굽은 그들을 모으고 놉은 그들을 장사하리니 그들의 은은 귀한 것이나 찔레가 덮을 것이요 그들의 장막 안에는 가시덩굴이 퍼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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