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And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for his wife coats of skin, and clothed them. (3:21)

 

AC.282

 

그 첫 번째 후손에 관하여, 그 안에는 천적 영적 선(celestial spiritual good)이 있었으며, 또한 두 번째와 세 번째 후손에 관하여, 그 안에는 자연적 선(natural good)이 있었는데,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the coat of skin)을 지어 입히시니라(the coat of skin which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his wife)의 의미입니다. (21) Of its first posterity, in which there was celestial spiritual good; and of its second and third, in which there was natural good, signified by the “coat of skin which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his wife.” (verse 21)

 

 

해설

 

AC.282는 창3:21에 대한 해설의 서론입니다. 지금까지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의 타락과 홍수 전까지의 쇠퇴 과정을 설명해 왔는데, 여기서는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나타납니다. 비록 태고교회가 점차 타락하고 있었지만, 그 모든 후손이 한꺼번에 완전히 멸망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후손들 가운데 여전히 선의 흔적과 생명의 가능성을 보존하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의 후손들을 여러 세대로 구분합니다. 첫 번째 후손은 아직 ‘천적 영적 선(celestial spiritual good)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원래 태고교회의 순수한 천적 상태보다는 한 단계 낮아진 상태이지만, 여전히 주님에 대한 사랑이 중심이 되는 매우 높은 상태였습니다. 다시 말해, 완전한 타락이 시작되기 이전의 초기 후손들입니다.

 

그다음 두 번째와 세 번째 후손은 더 낮은 상태로 내려갔지만, 그래도 ‘자연적 선(natural good)은 남아 있었습니다. 여기서 자연적 선이란 천적 선이나 영적 선처럼 직접 주님께 연결된 높은 상태는 아니지만, 외적 삶 가운데 남아 있는 선한 성향, 온순함, 질서, 도덕성, 순종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선을 말합니다. 즉 교회의 본래 영광은 잃어버렸지만, 인간다움과 선의 흔적은 아직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상태를 창3:21의 ‘가죽옷’으로 설명합니다. 일반적인 해석에서는 가죽옷을 단순히 인간의 수치를 가려 주기 위한 옷으로 이해하지만, 스베덴보리에게 옷은 언제나 어떤 진리나 상태를 덮고 보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가죽(skin)은 인간의 가장 바깥층을 의미하므로, 가죽옷은 내적인 천적 상태가 사라진 이후에도 남아 있는 외적 선의 상태를 상징합니다.

 

이 점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왜냐하면 창3의 앞부분은 저주와 심판으로 가득 차 있지만, 21절에서는 오히려 주님의 자비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신을 가렸던 것과 달리, 가죽옷은 주님께서 직접 지어 입히신 것입니다. 즉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상태 속에서도 주님께서 남겨 두신 선과 보호가 있다는 뜻입니다.

 

AC.282는 가죽옷이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타락 이후에도 주님께서 후손들 안에 보존하신 선의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 후손에게는 아직 천적 영적 선이 있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후손에게는 자연적 선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남겨진 선이 훗날 새로운 교회가 세워질 수 있는 토대가 됩니다. 따라서 가죽옷은 심판의 상징이 아니라, 타락한 인류를 향한 주님의 보호와 보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화

 

1. ‘celestial spiritual good’, ‘natural good

 

 

AC.282, 심화 1, ‘celestial spiritual good’, ‘natural good’

AC.282.심화 1. ‘celestial spiritual good’, ‘natural good’ AC.282에서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의 후손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영적으로 낮아지는 과정을 매우 간결하게 요약합니다. 그는 첫 번째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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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83, 창3:20-24, ‘창3:22 개요’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And Jehovah God said, Behold, the man is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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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81, 창3:20-24, ‘창3:20 개요’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And the man [homo] called his wife’s name Eve, because she was the mother of all living. (창3:20) AC.281 천적 교회였던 태고교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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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81.심화

 

1. ‘celestial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천적(天的, celestial)은 단순히 ‘하늘에 속한’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인간과 교회의 영적 상태를 설명할 때, ‘천적’과 ‘영적’을 엄격히 구분하여 사용합니다. 천적 상태란 주님에 대한 사랑이 사람의 가장 깊은 중심이 되고, 그 사랑으로부터 생각과 의지, 그리고 삶 전체가 흘러나오는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천적’은 하늘이라는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주님 사랑이 인간의 생명을 다스리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태고교회를 천적 교회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먼저 교리를 배우고 그것을 실천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선을 행하였고, 그 선 안에서 무엇이 진리인지를 퍼셉션을 통하여 직접 깨달았습니다. 다시 말해 사랑이 진리를 이끌었고, 삶이 신앙을 살아 있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천적 교회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반면 영적 교회는 조금 다른 질서를 따릅니다. 영적인 사람은 먼저 말씀을 배우고, 진리를 이해하며,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러므로 영적 교회에서는 신앙이 사랑을 이끌어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천적 교회에서는 사랑이 먼저이고 신앙은 그 사랑 안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스베덴보리가 천적 교회를 모든 교회 가운데 가장 높은 상태로 설명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사람의 내적 구조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천적인 사람은 의지가 먼저 주님으로부터 새롭게 되고, 이해는 그 새로워진 의지를 따라 움직입니다. 반대로 영적인 사람은 이해를 통하여 진리를 배우고, 그 진리에 따라 의지가 점차 변화됩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주님으로부터 거듭나지만, 거듭나는 순서와 방식이 서로 다른 것입니다.

 

또한 천적이라는 말은 단순히 마음이 따뜻하거나 성격이 온순한 사람을 뜻하지 않습니다. 천적인 사람도 분명한 판단을 하고, 악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다만 그 모든 판단과 행동의 출발점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주님에 대한 사랑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엇보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뻐하고, 이웃의 선을 자신의 기쁨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태고교회 말기에 이르러 이러한 천적 상태는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퍼셉션을 잃고, 감각과 자기 판단을 더 신뢰하게 되었으며, 사랑이 진리를 이끌던 질서도 점차 깨졌습니다. 그 결과 사람은 자신의 rational에 의존, 진리를 판단하려 하였고, 결국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이 주님 사랑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창3에서 묘사되는 타락의 본질입니다.

 

AC.281에서 태고교회를 ‘천적’이라 하는 것은 단순히 가장 오래된 교회였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에 대한 사랑과 ‘주님에 대한 신앙의 삶’이 완전히 하나였던 교회였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선을 행하였고, 그 선 안에서 진리를 깨달았으며, 그 진리를 다시 삶으로 살아냈습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천적(celestial)의 가장 깊은 의미이며, 모든 거듭남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AC.281, 창3:20-24, ‘창3:20 개요’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And the man [homo] called his wife’s name Eve, because she was the mother of all living. (창3:20) AC.281 천적 교회였던 태고교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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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And the man [homo] called his wife’s name Eve, because she was the mother of all living. (3:20)

 

AC.281

 

천적 교회였던 태고교회는, 주님에 대한 신앙의 삶(the life of faith in the Lord)으로 말미암아 하와(Eve), 모든 산 자의 어머니(the mother of all living)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20).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was celestial, and from the life of faith in the Lord, called “Eve,” and the “mother of all living” (verse 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20)

 

 

해설

 

AC.281은 창3:20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주제를 제시하는 제목입니다. 앞에서는 태고교회의 타락과 그 결과를 설명하였다면, 이제부터는 비록 타락 이후라 할지라도 주님께서 교회를 완전히 버리지 않으시고 새로운 소망을 준비하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와’, 곧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는 이름은 단순히 첫 여인의 이름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세상에 이어 가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를 ‘천적 교회’라고 합니다. 여기서 ‘천적(天的, celestial)이란 단순히 하늘에 속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이 삶의 가장 깊은 중심이 되고, 그 사랑으로부터 모든 생각과 행동이 흘러나오는 상태를 말합니다. 천적인 사람은 먼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선을 행하며, 그 선 안에서 자연스럽게 진리를 지각합니다. 다시 말해 사랑이 진리를 이끌고, 삶이 신앙을 살아 있게 하는 상태가 바로 천적 상태입니다.

 

본문의 ‘the life of faith in the Lord’도 이러한 의미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서 life는 ‘생명’보다 ‘’으로 옮기는 것이 문맥에 더 잘 어울립니다. 스베덴보리가 자주 사용하는 ‘life of faith’, ‘life of charity’는 신앙이나 체어리티를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 삶으로 살아내는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주님에 대한 신앙의 생명’보다 ‘주님에 대한 신앙의 삶’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스베덴보리의 의도를 더 정확하게 전해 줍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 신학의 중요한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는 참된 신앙은 반드시 삶으로 나타난다고 가르칩니다. 신앙은 단순히 교리를 인정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 속에서 비로소 살아 있는 신앙이 됩니다. 그래서 그는 신앙과 삶을 결코 분리하지 않습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이 천적이었다는 것은, 그들이 퍼셉션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선을 직접 받아들이며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먼저 교리를 배우고 그것을 실천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선을 행하였고, 그 선 안에서 무엇이 진리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후대의 영적 교회와 가장 크게 구별되는 특징입니다.

 

또한 말씀은 태고교회를 ‘하와’, 곧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산 자’는 육체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받아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모든 산 자의 어머니’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삶을 낳고 길러내는 교회를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AC.281은 태고교회를 단순히 최초의 교회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 대한 사랑과 신앙의 삶이 하나였던 가장 순수한 교회의 모습을 우리에게 다시 보여줍니다. 그리고 ‘하와’라는 이름을 통하여, 참된 교회란 언제나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받아들이고, 그 생명을 실제 삶으로 살아내는 공동체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심화

 

1. ‘celestial

 

 

AC.281, 심화 1, ‘celestial’

AC.281.심화 1. ‘celestial’ 여기서 ‘천적’(天的, celestial)은 단순히 ‘하늘에 속한’이라는 막연한 뜻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의 영적 상태를 구분할 때 ‘천적’과 ‘영적’을 서로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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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82, 창3:20-24, ‘창3:21 개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And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for his wife coats of skin, and clothed them. (창3:21) AC.282 그 첫 번째 후손에 관하여, 그 안에는 천적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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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80, 창3:20-24, ‘창3:20-24 본문, 개요’(AC.280-286)

창3:20-24 20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And the man [homo] called his wife’s name Eve, because she was the mother of all living.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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