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97.심화

 

2. ‘52:1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 (52:1) Put on thy beautiful garments, O Jerusalem, the city of holiness (Isa. 52:1).

 

 

52:1 AC.297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의복’이 단순한 겉 장식물이 아니라, 내적 선이 밖으로 나타날 때 입게 되는 진리와 외적 선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앞에서 천적 선은 가장 깊고 순진무구하기 때문에 옷 입지 않지만, 그보다 외적인 천적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은 ‘의복’에 비유되고, 또 의복이라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사야의 ‘아름다운 옷’은 이 원리를 뒷받침하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은 속뜻으로 단순히 한 도시를 가리키지 않고, 주님의 교회, 특히 참된 교리 안에 있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으라’는 명령은 실제 도시가 화려한 옷을 입으라는 뜻이 아니라, 황폐해졌던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다시 받아 교회다운 상태로 회복되라는 뜻입니다. 교회가 입는 옷은 교회의 외형을 이루는 참된 교리와 그 교리에 따른 선한 생활입니다.

 

여기서 ‘아름다운’이라는 말은 진리가 선으로부터 나올 때 지니는 아름다움을 나타냅니다. 진리는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사랑과 체어리티의 선이 있을 때 아름답습니다. 사랑에서 분리된 진리는 차갑고 생명이 없지만, 선을 담고 선을 표현하는 진리는 빛과 조화를 지닙니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옷’은 단순히 많은 진리를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선으로부터 나온 진리들로 교회가 단장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또한 의복은 몸 바깥에 있으면서 몸의 상태와 품위를 드러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리와 외적 예배, 말과 행동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랑과 신앙을 밖으로 드러냅니다. 교회의 가장 깊은 생명은 주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체어리티이지만, 이것은 교리와 예배, 그리고 삶이라는 의복을 통하여 겉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이 옷을 입는다는 것은 교회 안의 내적 선이 참된 교리와 거룩한 생활로 표현되는 것을 뜻합니다.

 

거룩한 성’이라는 표현도 ‘아름다운 옷’의 의미를 분명하게 합니다. 말씀에서 ‘’은 교리적인 것들을 의미하고, ‘거룩함’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거룩한 진리의 교리 안에 있는 교회를 뜻합니다. 그런 예루살렘이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은,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참된 교리와 그 교리에 일치하는 삶으로 갖추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구절은 겔16:10과도 같은 흐름에 있습니다. 에스겔에서는 주님께서 교회에 ‘수놓은 옷’, ‘가는 베’, ‘모시’를 입히시는 것으로 묘사되고, 이사야에서는 교회가 ‘아름다운 옷’을 입으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전자는 주님께서 선과 진리를 베푸시는 측면을, 후자는 교회가 주님께서 주신 선과 진리를 받아 실제로 입고 살아야 하는 측면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두 본문 모두 의복이 더 외적 선과 진리를 의미한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또한 ‘입으라’는 명령은 단지 진리를 배우고 기억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말씀에서 무엇을 입는다는 것은 그것을 자기 삶에 받아들여 자신의 상태가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옷을 입는다는 것은 선과 진리를 지식으로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사람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을 실제로 감싸고 형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진리가 생활 속에 나타날 때 비로소 그것은 사람의 의복이 됩니다.

 

AC.297에서 사52:1을 인용한 이유는, 천적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이 말씀에서 ‘의복’으로 표현된다는 사실을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름다운 옷’은 가장 깊은 천적 선 자체가 아니라, 그 선이 진리와 교리, 그리고 선한 생활을 통하여 외적으로 나타난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내적 사랑과 체어리티가 참된 진리와 거룩한 삶이라는 아름다운 의복을 입을 때, 교회가 비로소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회복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AC.297, 심화 3, ‘계3:4-5’

AC.297.심화 3. ‘계3:4-5’ 4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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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7, 심화 1, ‘겔16:10’

AC.297.심화 1. ‘겔16:10’ 수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두르고 모시로 덧입히고 (겔16:10) I clothed thee with broidered work, and shod thee with badger, I girded thee about with fine linen, and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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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7.심화

 

1. ‘16:10

 

수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두르고 모시로 덧입히고 (16:10) I clothed thee with broidered work, and shod thee with badger, I girded thee about with fine linen, and I covered thee with silk (Ezek. 16:10).

 

 

16:10 AC.297에 인용된 이유는, 주님께서 교회와 사람에게 입혀 주시는 여러 종류의 ‘의복’이 각각 서로 다른 차원의 선과 진리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AC.297의 주제는 ‘의복’이란 무엇이며, 왜 말씀에서 선과 진리가 옷 입는 것으로 표현되는가를 설명하는 데 있습니다. 에스겔의 이 구절은 그 대표적인 증거로 제시됩니다.

 

먼저 겔16은 예루살렘, 곧 교회를 한 여인으로 묘사합니다. 주님께서는 버려져 있던 그 여인을 살리시고, 아름답게 단장시키십니다. 그런데 그 단장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모두 영적인 은혜를 의미합니다. 곧 주님께서 교회에 여러 단계의 선과 진리를 공급하시고, 그것으로 교회를 온전하게 갖추어 가시는 과정을 의복과 장신구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놓은 옷을 입혔다’는 것은 다양한 진리들이 아름다운 질서 속에서 결합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수놓은(broidered work) 옷은 여러 실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아름다운 무늬를 만드는 것처럼, 말씀의 많은 진리들이 하나의 사랑 안에서 질서를 이루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진리의 아름다움을 뜻합니다.

 

물돼지 가죽신을 신겼다’는 표현은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발은 사람의 가장 낮은 자연적 차원을 의미하며, 신은 그 발을 보호하는 가장 바깥의 덮개입니다. 따라서 ‘물돼지(badgers) 가죽으로 만든 신은 자연적 선이 사람의 외적 삶을 보호하는 것을 뜻합니다. 스베덴보리가 AC.296에서 해달의 가죽을 자연적 선으로 설명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으며, 겔16은 그 해석을 다시 확인해 주는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또한 ‘가는 베로 두르고’는 순수한 진리가 삶을 질서 있게 묶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허리는 사랑과 능력이 작용하는 부분을 뜻하며, 가는 베(fine linen)는 깨끗하고 순수한 진리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허리를 가는 베로 두른다는 것은 사람의 삶이 순수한 진리에 의해 질서를 갖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어 ‘모시로 덧입히고’는 더욱 내적인 진리의 아름다움을 나타냅니다. 모시(silk)는 매우 부드럽고 빛나는 직물이므로, 사랑에서 비롯된 진리가 지닌 섬세함과 영광을 상징합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의복 자체가 아니라, 의복이 내적 생명을 밖으로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 전체는 주님께서 사람을 여러 층위의 선과 진리로 차례차례 입히시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AC.297에서 겔16:10을 인용한 이유는, 말씀에서 ‘의복’이 단순한 옷이 아니라 내적 선과 진리가 외적으로 나타난 형상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수놓은 옷’, ‘물돼지 가죽신’, ‘가는 베’, ‘모시’는 각각 서로 다른 영적 의미를 지니지만, 모두 주님께서 교회와 사람에게 입혀 주시는 선과 진리의 다양한 층위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AC.297에서 ‘의복은 천적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을 의미한다’는 설명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성경적 근거 가운데 하나로 인용된 것입니다.

 

 

 

AC.297, 심화 2, ‘사52:1’

AC.297.심화 2. ‘사52:1’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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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7, 창3:21, ‘옷‘, 천적 선, 영적, 자연적 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3:21) AC.297 천적 선은 옷 입지 않습니다. 그것은 가장 깊고 순진무구하기 때문입니다. 옷 입는 선은 천적 영적 선부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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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3:21)

 

AC.297

 

천적 선은 옷 입지 않습니다. 그것은 가장 깊고 순진무구하기 때문입니다. 옷 입는 선은 천적 영적 선부터이며, 그다음은 자연적 선입니다. 이들은 더 외적이기 때문인데, 그래서 의복(garments)에 비유되고, 또 그렇게 부릅니다. 에스겔에서 고대교회 얘기를 하면서 말이지요. Celestial good is not clothed, because it is inmost, and is innocent; but celestial spiritual good is that which is first clothed, and then natural good, for these are more external, and on that account are compared to and are called “garments”; as in Ezekiel, speaking of the ancient church:

 

수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두르고 모시로 덧입히고 (16:10) I clothed thee with broidered work, and shod thee with badger, I girded thee about with fine linen, and I covered thee with silk (Ezek. 16:10).

 

이사야에서는 In Isaiah: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 (52:1) Put on thy beautiful garments, O Jerusalem, the city of holiness (Isa. 52:1).

 

계시록에서는 In Revelation:

 

4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3:4, 5) Who have not defiled their garments, and they shall walk with me in white, for they are worthy (Rev. 3:4–5),

 

또한 이십사 장로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흰옷을 입었다 하고 있지요 (4:4). where it is likewise said of the four and twenty elders that they were clothed in white raiment” (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4:4)

 

이와 같이 더 외적 선들, 곧 천적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이 의복(garments)입니다. 그러므로 체어리티의 선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천국에서 빛나는 의복 입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직 몸 안에 있기 때문에 가죽옷(coat of skin) 입은 것으로 표현됩니다. Thus the more external goods, which are celestial spiritual, and natural, are “garments”; wherefore also those who are endowed with the goods of charity appear in heaven clothed in shining garments; but here, because still in the body, with a “coat of skin.”

 

 

해설

 

이 글의 중심은 선에도 내적 질서와 외적 질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선을 하나의 평면적인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가장 깊은 곳에는 천적 선이 있고, 그 바깥에는 천적 영적 선이 있으며, 다시 그 바깥에는 자연적 선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천적 선은 가장 깊은 생명 자체이므로 옷 입지 않습니다. 옷은 안에 있는 것을 둘러싸고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지만, 가장 깊은 것은 더 안쪽에 감추어야 할 다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천적 선이 ‘순진무구하다(innocent)는 말도 중요합니다. 여기서 순진무구함은 단순히 세상 경험이 없거나 어린아이처럼 미숙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으로부터는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고, 모든 선과 진리가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온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겉과 속이 나뉘지 않고, 사랑과 행위가 하나를 이룹니다. 그러므로 ‘천적 선(celestial good)은 무엇인가로 자신을 꾸미거나 감출 필요가 없으며, 그 자체로 생명이고 빛입니다.

 

반면 ‘천적 영적 선(celestial spiritual good)은 처음으로 옷 입는 선입니다. 이것은 가장 깊은 천적 사랑이 진리와 질서를 통해 표현되기 시작한 상태입니다. 가장 깊은 사랑 자체는 말이나 형식 없이도 존재하지만, 그것이 생각과 지각, 신앙과 교리, 그리고 삶의 형식 안으로 내려오면 외적 모양, 즉 외형, 형태를 입게 됩니다. 바로 이때 이런 걸 선이 ‘의복’을 입는다 표현합니다. 의복은 선 그 자체가 아니라, 선이 밖으로 드러나고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진리와 형식을 의미합니다.

 

그다음에 오는 자연적 선은 더욱 외적인 의복입니다. 자연적 선은 사람이 실제 생활에서 행하는 선, 곧 말과 행동, 습관과 관계, 책임과 봉사 속에서 나타나는 선입니다. 가장 깊은 사랑이 아무리 참되더라도 자연적 삶에까지 내려오지 않으면 세상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적 선은 내적인 천적 영적 선을 덮고 보호하며, 그것을 현실 속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가장 바깥 의복과 같습니다.

 

에스겔의 ‘수놓은 옷’, ‘물돼지 가죽신’, ‘가는 베’, ‘모시’는 고대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여러 층위의 선과 진리를 받아 옷 입은 상태를 나타냅니다. ‘수놓은 옷’은 다양한 진리들이 아름다운 질서 속에서 결합한 것을, ‘물돼지 가죽신’은 가장 바깥 자연적 선을, ‘가는 베’는 순수한 진리를, ‘모시’는 그 진리의 빛나는 아름다움을 나타냅니다. 곧 주님께서 교회를 옷 입히신다는 것은 교회가 스스로 선과 진리를 만들어 냈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그것들을 받아 내적 생명과 외적 삶이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사야의 ‘아름다운 옷’과 계시록의 ‘흰옷’도 같은 원리를 보여 줍니다. 예루살렘은 교회를 뜻하며, 그 교회가 아름다운 옷을 입는다는 것은 선에서 비롯된 참된 진리를 갖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들’은 외적인 말과 행위까지 악과 거짓으로 물들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흰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걷는다는 것은, 그들의 진리가 선으로부터 나와 깨끗하고 빛나는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십사 장로들의 흰옷 역시 말씀의 진리들이 선으로부터 빛나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천국에서 체어리티의 선을 가진 사람들이 빛나는 의복 입은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설명은, 그 의복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그들의 내적 상태가 밖으로 형상화된 것임을 뜻합니다. 천국에서는 겉모습이 속 상태와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선한 사랑과 체어리티 안에 있는 사람은 그 선에서 나온 진리에 따라 빛나는 옷 입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 옷의 밝음과 아름다움은 그 사람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받은 선과 진리가 밖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러나 여기서는 아직 몸 안에 있기 때문에 가죽옷(coat of skin) 입은 것으로 표현됩니다’라는 말은 창3의 상태를 설명합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는 더 이상 태고교회의 가장 깊은 천적 선 안에 머물지 못하고, 더 외적인 상태로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주어진 옷은 빛나는 천국 의복이 아니라 ‘가죽옷’이었습니다. 가죽은 동물의 가장 바깥 부분이므로, 여기서는 영적 선과 자연적 선 가운데서도 특히 몸과 자연적 삶에 가까운 외적 선을 의미합니다. 곧 ‘가죽옷’은 단순한 형벌의 표지가 아니라, 사람이 아직 몸 안에 있고 내적 생명이 약해진 상태에서도 주님께서 외적 선을 통하여 그를 덮고 보호하시며, 거듭남의 길을 남겨 두셨다는 자비로운 섭리를 나타냅니다.

 

 

심화

 

1. ‘16:10

 

 

AC.297, 심화 1, ‘겔16:10’

AC.297.심화 1. ‘겔16:10’ 수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두르고 모시로 덧입히고 (겔16:10) I clothed thee with broidered work, and shod thee with badger, I girded thee about with fine linen, and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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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52:1

 

 

AC.297, 심화 2, ‘사52:1’

AC.297.심화 2. ‘사52:1’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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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4-5

 

 

AC.297, 심화 3, ‘계3:4-5’

AC.297.심화 3. ‘계3:4-5’ 4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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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4

 

 

AC.297, 심화 4, ‘계4:4’

AC.297.심화 4. ‘계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계4:4) AC.297에서 스베덴보리는 창3:21의 ‘가죽옷’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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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8, 창3: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AC.298-304)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And Jehovah God said, Behold, the man is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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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6, 창3:21, ‘가죽‘의 상응 원리, 성경 전체를 관통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3:21) AC.296 새끼 염소와 양, 염소, 그리고 해달(badgers)과 숫양의 가죽이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을 의미한다는 것은 말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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