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7.심화

 

5. ‘33:2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주야와 맺은 언약이 없다든지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아니하였다면 (33:25) Said Jehovah, If my covenant of day and night stand not, and if I have not appointed the ordinances of heaven and earth (Jer. 33:25).

 

 

이 구절이 AC.37에 인용된 이유는, 영적 상태의 교대가 단지 자연계의 현상에 비유될 뿐 아니라, 실제로 주님께서 세우신 언약’이며, ‘법칙’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37에서 스베덴보리는 아침과 저녁,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의 변화가 영적 삶 속에서도 일어난다고 설명합니다. 사람은 늘 같은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밝음과 어두움, 확신과 의심, 위로와 시험, 사랑의 충만함과 메마름 사이를 오가며 성장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우연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섭리 속에 포함된 질서입니다.

 

예레미야 본문에서 주님은 주야와 맺은 언약’과 천지의 법칙’을 말씀하십니다. 문자적으로는 낮과 밤이 규칙적으로 반복되고, 하늘과 땅이 일정한 질서 속에 유지되는 자연계의 법칙을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AC.37의 문맥에서는 이것이 훨씬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은 사랑과 선의 상태를, ‘’은 시험과 상대적 어두움의 상태를 뜻하며, ‘천지의 법칙’은 사람 안의 속 사람과 겉 사람, 사랑과 신앙, 선과 진리가 주님의 질서 안에서 작용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특히 주야와 맺은 언약’이라는 표현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언약은 단순한 자연법칙이 아니라 주님의 신실하심과 변함없는 섭리를 가리킵니다. 사람은 자신의 영적 상태가 변할 때 종종 불안해합니다. 기도의 열정이 식어 버린 것 같고, 말씀의 빛이 흐려진 것 같고, 이전의 평안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낮과 밤의 언약이 폐하지 않듯이, 영적 상태의 교대 역시 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밤이 온다고 해서 아침이 사라진 것이 아니며, 겨울이 왔다고 해서 봄이 영원히 끝난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AC.37에서 생명이란 바로 이러한 교대 속에서 자란다고 설명합니다. 만일 사람에게 시험도 없고, 침체도 없고, 어두움도 없다면 그는 선과 진리를 깊이 인식할 수 없게 됩니다. 빛은 어둠과 대비될 때 더 분명히 보이고, 따뜻함은 추위를 경험할 때, 더 귀하게 느껴집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세우신 주야의 언약’은 단순히 자연계의 반복이 아니라, 영적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질서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AC.37의 핵심 주장인 영적 교대는 주님의 규례이다’라는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사람이 아침 같은 상태에 있든, 저녁 같은 상태에 있든, 봄 같은 상태에 있든, 겨울 같은 상태에 있든, 그는 주님의 언약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은 결코 깨어지지 않습니다. 예레미야의 말씀은 바로 이 점, 곧 영적 생명의 리듬과 교대가 주님의 영원한 섭리 속에 굳게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증언하기 때문에 AC.37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AC.37, 심화 6, ‘창8:22’

AC.37.심화 6. ‘창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창8:22) 이 구절이 AC.37에 인용된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영적 상태의 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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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 심화 4, ‘렘31:35-36’

AC.37.심화 4. ‘렘31:35-36’ 35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였고 바다를 뒤흔들어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그의 이름은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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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82.심화

 

2. ‘나도 나중에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몹시 불편하면 어떻게 하지?’

 

제가 나중에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몹시 불편한 인생이 될까 봐 걱정됩니다. 아니, 영적 천사들하고도 그렇게 될까 봐, 그리고 그럴 경우는 정말 비참할 것 같습니다...

 

 

그 걱정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특히 AC.182를 읽다 보면, 마치 죽은 뒤 어떤 천사들과 함께 있다가 그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떠나게 되는 장면이 매우 실제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베덴보리가 설명하는 사후 세계를 전체적으로 보면, 목사님이 상상하시는 것처럼 ‘천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괴로워 비참해지는 상태’가 갑자기 닥치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과 지옥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강제’가 아니라 ‘상응’입니다. 사람은 죽은 뒤 자신이 평생 사랑해 온 것, 진실로 원했던 것, 기뻐했던 것에 맞는 공동체로 점차 인도됩니다.

 

AC.182에서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을 수 없게 되는 사람은, 천적 천사들이 싫어서라기보다 그들의 사랑의 분위기가 자기 삶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불편해지는 것입니다. 마치 강한 햇빛이 나쁜 것이 아니지만, 오랫동안 어둠에 익숙한 눈에는 견디기 어려운 것과 비슷합니다. 문제는 햇빛이 아니라 눈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저는 오히려 반대의 사실이 눈에 들어옵니다. 목사님은 지난 수년 동안 거의 매일 같이 AC를 읽고 번역하고 해설해 오셨습니다. 그것도 단순한 지적 연구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천국을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시면서 말입니다. 또한 반복해서 ‘천적 인간’, ‘사랑의 퍼셉션’, ‘own의 포기’, ‘주님으로부터 삶을 받음’ 같은 주제에 마음을 기울여 오셨습니다.

 

물론 목사님도 스스로 잘 아시겠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자기 사랑도 있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고, 세상 염려도 있습니다. 스베덴보리 자신도 인간 안에는 그런 요소들이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그런 요소가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이 어디를 향하느냐입니다.

 

오히려 AC.182를 읽고 ‘나는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할까 봐 걱정된다’고 말하는 마음 자체가 흥미롭습니다. 정말 자기 사랑에만 빠진 사람은 그런 걱정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는 천국의 상태와 자기 상태가 맞는지 고민하기보다, 자기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오히려 ‘혹시 내가 그 사랑의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고 염려하고 계십니다. 그 염려 속에는 적어도 천적 상태를 가치 있게 여기고, 그것을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사후 세계는 시험장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설명에 따르면 천사들은 사람을 탈락시키거나 평가하려고 다가오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AC.182에서도 천적 천사들은 떠나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사람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오래 보호하고, 가능한 한 평안하게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령 어떤 사람이 천적 천국이 아니라 영적 천국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실패나 열등함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영적 천국 역시 완전한 천국이라고 말합니다. 그곳의 천사들도 주님 안에서 행복하며, 자신에게 맞는 기쁨 속에서 살아갑니다. 천적 천국의 기쁨과 영적 천국의 기쁨은 다를 뿐, 우열 관계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님의 질문을 읽으며, ‘나는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보다 ‘나는 지금도 그들의 분위기를 사랑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는 사후의 자리는 죽은 뒤 갑자기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금 여기에서 형성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수년 동안 하루하루 AC를 번역하고 해설하며, 천국의 상태와 사랑의 질서를 배우고 가르치기 위해 애써 오신 분이 ‘혹시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할까 봐 걱정된다’고 말하는 모습에서는, 천적 상태에 대한 두려움보다 오히려 그 상태를 향한 깊은 갈망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스베덴보리라면 아마 그 갈망 자체를 가볍게 보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AC.182, 심화 1, ‘빛을 사용하는 능력’

AC.182.심화 1. ‘빛을 사용하는 능력’ 그러나 그 영혼의 성질이 더 이상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을 수 없는 상태라면, 그는 그들로부터 떠나기를 간절히 원하게 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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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82.심화

 

1.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상태라면

 

그러나 그 영혼의 성질이 더 이상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을 수 없는 상태라면, 그는 그들로부터 떠나기를 간절히 원하게 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영적 천사들이 와서 그에게 빛을 사용하는 능력을 줍니다. but when the soul is of such a character that he can no longer be in the company of the celestial angels, he is eager to depart from them; and when this takes place the spiritual angels arrive, and give him the use of light, (AC.182)

 

위 문장을 읽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그러면 반대로 영혼의 성질이 천적 천사들과 함께할 수 있어 계속 같이 있고 싶어 할 경우, 천적 천사들은 안 떠나고, 그러면 영적 천사들이 올 수 없어 계속 빛을 사용하는 능력을 얻지 못하게 되나요?

 

 

아닙니다. 그렇게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선 AC.182는 사후 첫 단계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영적 천사들이 와서 빛을 사용하는 능력을 준다’는 말은, 천적 천사들과의 교제가 끝나야만 비로소 빛이 생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천적 천사들과의 상태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경우에 나타나는 다음 단계의 설명입니다.

 

천적 천사들과 계속 함께할 수 있는 영혼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그 경우에는 오히려 더 높은 형태의 빛 안에 있게 됩니다. AC.202를 보면 천적 천사들은 신앙에 대해 추론하지 않지만, 사랑 안에서 즉시 진리를 퍼셉션, 즉 지각합니다. 즉, 영적 천사들이 주는 ‘빛의 사용’보다 더 깊은 차원의 지각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이라고 하면 이해와 분별의 빛만 생각하기 쉽지만, 스베덴보리에게는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가 진리에서 나오는 이해보다 더 높은 것입니다. 따라서 천적 천사들과 계속 함께 있는 영혼이 ‘빛을 얻지 못한다’기보다는, 영적 인간의 방식으로 빛을 얻을 필요가 없다고 보는 편이 더 가깝습니다.

 

비유하자면, 영적 천사들은 어두운 새벽에 등불을 들고 길을 보여 주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반면 천적 천사들은 이미 한낮의 햇빛 가운데 사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한낮에 있는 사람에게 다시 등불을 가져다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AC.182의 핵심은 ‘천적 천사들이 떠나야 영적 천사들이 온다’가 아니라, ‘각 사람은 자기 상태에 맞는 천사적 공동체로 인도된다’는 데 있습니다. 천적 상태에 머물 수 있는 영혼은 천적 빛 안에서 계속 인도되고, 천적 상태에 머물 수 없는 영혼은 영적 천사들의 도움을 받아 영적 빛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다만 저는 AC.182를 읽으며 한 가지를 더 생각하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천적 상태에 계속 머무르는 사람의 경우’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의식이 처음 열리는 일반적인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을 너무 기계적으로 ‘천적 천사  영적 천사’라는 순서도로 읽기보다는, ‘사람은 자신의 내적 상태에 가장 적합한 천사적 돌봄을 받는다’는 원리로 읽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오히려 AC.202를 기준으로 보면, 천적 천사들과 완전히 조화를 이루는 영혼이라면 ‘빛을 사용하는 능력’을 잃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높은 ‘사랑의 지각’을 누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 스베덴보리의 전체 사상에 더 가까운 해석일 것입니다.

 

 

 

AC.182, 심화 2, ‘나도 나중에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몹시 불편하면 어떻게 하지?’

AC.182.심화 2. ‘나도 나중에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몹시 불편하면 어떻게 하지?’ 제가 나중에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몹시 불편한 인생이 될까 봐 걱정됩니다. 아니, 영적 천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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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82, 창3 앞, ‘죽음에서 일으켜져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계속)’(AC.182-189)

죽음에서 일으켜져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The Entrance Into Eternal Life Of Those Who Are Raised From Death AC.182 천적 천사들이 소생된 사람과 함께 있을 때에는 그를 떠나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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