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90.심화

 

33. ‘32:28-31

 

28오직 너는 할례를 받지 못한 자와 함께 패망할 것임이여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누우리로다 29거기에 에돔 곧 그 왕들과 그 모든 고관이 있음이여 그들이 강성하였었으나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있겠고 할례를 받지 못하고 구덩이에 내려간 자와 함께 누우리로다 30거기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내려간 북쪽 모든 방백과 모든 시돈 사람이 있음이여 그들이 본래는 강성하였으므로 두렵게 하였으나 이제는 부끄러움을 품고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누웠고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였도다 31바로가 그들을 보고 그 모든 무리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을 것임이여 칼에 죽임을 당한 바로와 그 온 군대가 그러하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2:28-31) And thou shalt be broken in the midst of the uncircumcised, and shalt lie with those slain by the sword. There is Edom, her kings, and all her chiefs, which with their might are put with those slain by the sword; they shall lie with the uncircumcised, and with those who go down to the pit. There be the princes of the north, all of them, and all the Zidonians, who have gone down with the slain; by their dismay they are ashamed of their might; and they lie uncircumcised with those slain by the sword, and bear their humiliation with those who go down to the pit. Pharaoh shall see them, and shall comfort himself over all his crowd; Pharaoh and all his host are slain by the sword, says the Lord Jehovih (Ezek. 32:28–31).

 

 

32:28-31은 애굽 왕 바로와 함께 에돔, 북방의 방백들, 시돈 사람들이 모두 구덩이로 내려가는 모습을 묘사하는 심판 예언입니다.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역사적인 국가들의 멸망을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영적 상태가 어떠한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90의 핵심은 사람은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오직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아간다는 것이며, 이 본문은 그 반대 상태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반복되는 칼에 죽임을 당한 자’, ‘할례를 받지 못한 자’,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는 모두 영적 의미를 지닙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죽임을 당함’은 영적 생명의 상실을, ‘할례받지 못함’은 사랑과 신앙으로 정결하게 되지 않은 상태를, ‘구덩이’는 주님과 분리된 영적 죽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본문은 육체적인 죽음보다 훨씬 깊은 영적 죽음을 묘사하는 말씀입니다.

 

특히 할례를 받지 못한 자’라는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말씀에서 할례는 마음의 정결과 악의 제거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할례받지 못한 자는 단순히 이방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을 버리지 않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외적으로는 살아 있을지라도 주님의 생명이 그 안에서 역사하지 않기 때문에 영적으로는 죽은 상태에 있습니다. 이것은 AC.290의 가르침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에돔과 북방의 방백들, 시돈 사람들도 각각 상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에돔은 사랑이 타락한 상태를, 북방은 진리의 빛이 없는 상태를, 시돈은 진리에 대한 지식을 잘못 사용하는 상태를 대표합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악과 거짓의 모습들이 결국 모두 동일한 결말,  구덩이’와 죽임당한 자들 가운데 놓이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은, 주님의 생명을 떠난 모든 상태의 종착점이 같음을 보여 줍니다.

 

또한 바로가 그들을 보고 위안을 얻으리라’는 말씀도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악한 영들은 비슷한 악 가운데 있는 자들과 함께 있을 때 일종의 위안을 느낀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평안이 아니라 동일한 악이 서로를 확인하며 얻는 거짓된 만족입니다. 참된 생명과 평안은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오므로, 이러한 위안은 생명 없는 상태의 또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본문 전체는 앞에서 AC.290에 인용된 겔32:23-26의 연속입니다. 앞부분에서는 앗수르, 엘람, 메섹, 두발 등이 언급되었고, 여기서는 에돔과 북방의 방백들, 시돈, 그리고 바로가 추가됩니다. 이는 특정 민족만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을 거부하는 모든 종류의 악과 거짓을 포괄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의 중심은 역사적 민족이 아니라 영적 상태입니다.

 

이 말씀은 또한 호6:2와 시85:6 주께서 우리를 살리시며’,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라는 말씀과도 선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호세아와 시편은 주님의 생명을 받아 살아나는 사람들을 보여 준다면, 에스겔은 그 생명을 거부하여 영적 죽음 가운데 머무는 사람들을 보여 줍니다. 이처럼 긍정적인 본문과 부정적인 본문이 함께 사용됨으로써, 참된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뿐이라는 진리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스베덴보리가 겔32:28-31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사람의 생명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생명을 떠난 사람은 권세와 지식, 명예를 가졌더라도 결국 영적으로는 할례받지 못한 자’, ‘칼에 죽임을 당한 자’,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로 묘사됩니다. 반대로 참된 생명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오며, 그 생명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참으로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 본문은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이심을 부정적인 예를 통하여 강력하게 증언하며, AC.290의 중심 메시지를 더욱 깊고 엄숙하게 확증하는 중요한 성경 말씀입니다.

 

 

 

AC.290, 심화 34, ‘마4:16’

AC.290.심화 34. ‘마4: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마4:16) the people who sat in darkness saw great light; and to them who sat in the 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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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0, 심화 32, ‘겔32:23-26’

AC.290.심화 32. ‘겔32:23-26’ 23그 무덤이 구덩이 깊은 곳에 만들어졌고 그 무리가 그 무덤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죽임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진 자 곧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사람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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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0.심화

 

32. ‘32:23-26

 

23그 무덤이 구덩이 깊은 곳에 만들어졌고 그 무리가 그 무덤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죽임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진 자 곧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사람을 두렵게 하던 자로다 24거기에 엘람이 있고 그 모든 무리가 그 무덤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져 지하에 내려간 자로다 그들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으나 이제는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였도다 25그와 그 모든 무리를 위하여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침상을 놓았고 그 여러 무덤은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로다 그들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으나 이제는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고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뉘었도다 26거기에 메섹과 두발과 그 모든 무리가 있고 그 여러 무덤은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로다 그들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으나 (32:23-26) whose graves are put in the flanks of the pit, and her assembly is around her grave; all of them slain, fallen by the sword, who put dismay in the land of the living. Elam is there, and all her crowd around her grave, all of them slain, fallen by the sword, who have gone down uncircumcised to the lower earth, who put their dismay in the land of the living; and they have borne their humiliation with those who go down to the pit. They have put a bed for her in the midst of the slain with all her crowd; her graves are all around him, all of them uncircumcised, slain by the sword, for their dismay was put in the land of the living, but they have borne their humiliation with them that go down to the pit. He is put in the midst of the slain. Meshech is there, Tubal, and all her crowd; her graves are all around him, all of them uncircumcised, pierced by the sword, for they put their dismay in the land of the living. (Ezek. 32:23-26).

 

 

32:23-26은 애굽과 여러 이방 민족의 멸망을 노래하는 심판 예언의 일부입니다.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이 긴 본문을 인용한 이유는 역사적인 전쟁이나 무덤 모습을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과 구덩이’, 그리고 영적으로 죽임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진 자’가 무엇인지를 통하여 참된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이심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AC.290의 주제는 사람이 스스로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며, 이 본문은 그 진리를 부정적인 측면에서 매우 강하게 보여 줍니다.

 

본문에서 반복되는 구덩이’, ‘무덤’, ‘칼에 죽임을 당한 자’,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은 모두 영적 의미를 지닙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은 단순히 이 세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이 역사하는 교회와 천국 상태를 의미합니다. 반대로 구덩이’와 무덤’은 주님에게서 분리되어 선과 진리의 생명을 잃은 상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본문은 영적 생명과 영적 죽음을 대조하여 보여 주는 예언입니다.

 

본문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는 칼에 죽임을 당한 자’도 문자적인 전사자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말씀에서 ’은 진리를 파괴하는 거짓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칼에 죽임을 당한 자’는 거짓을 받아들임으로써 선과 진리의 생명을 잃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살아 있었을지라도 영적으로는 이미 죽은 상태이며, 이것이 AC.290에서 말하는 생명은 사람 자신의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와 연결됩니다.

 

또한 본문은 여러 민족을 차례로 언급합니다. 앗수르, 엘람, 메섹, 두발 등은 단순한 역사적 국가들만이 아니라, 말씀의 상응에 따라 교회를 황폐하게 만드는 서로 다른 종류의 거짓과 악을 대표합니다. 이들이 모두 구덩이’와 무덤 가운데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거부한 모든 상태의 최종적인 결과가 동일함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다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사람을 두렵게 하던 자로다’라는 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영적 의미로는 이것은 거짓과 악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참된 신앙과 체어리티를 황폐하게 만드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한때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활동하였다고 해서 참된 생명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의 생명을 거부하고 왜곡한 결과, 결국 모두 구덩이’로 내려가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본문에서 반복되는 무덤’이라는 표현 역시 단순한 매장 장소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무덤이 영적으로는 생명 없는 상태, 곧 선과 진리가 전혀 살아 있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들의 무덤이 사방에 있다는 것은 그들의 모든 사고와 의지, 삶 전체가 영적 죽음 가운데 놓여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생명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인간 proprium의 최종적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이 본문은 앞에서 AC.290에 인용된 사26:14와도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이사야에서는 죽은 자는 살지 못하겠고’라고 선언하였다면, 에스겔은 그 죽은 상태가 어떠한 영적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더욱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또한 호6:2와 시85:6에서 주님께서 살리시고’, ‘다시 살리신다’고 말씀하신 것과도 선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살아 있는 자가 되지만, 그 생명을 거부하는 사람은 결국 무덤과 구덩이로 상징되는 영적 죽음 가운데 머물게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겔32:23-26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역사적 심판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영적 생명과 영적 죽음의 본질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본문은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는 사람만이 참으로 생존하는 사람들’이며, 그 생명을 거부하는 사람은 비록 세상에서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여도 이미 영적으로는 무덤’과 구덩이 가운데 있는 자라는 사실을 선언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사람은 그분에게서 생명을 받아야만 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AC.290의 중심 메시지를 가장 엄숙하고도 강렬한 예언적 언어로 확증하는 중요한 성경 본문입니다.

 

 

 

AC.290, 심화 33, ‘겔32:28-31’

AC.290.심화 33. ‘겔32:28-31’ 28오직 너는 할례를 받지 못한 자와 함께 패망할 것임이여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누우리로다 29거기에 에돔 곧 그 왕들과 그 모든 고관이 있음이여 그들이 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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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0, 심화 31, ‘사26:14’

AC.290.심화 31. ‘사26:14’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벌하여 그들을 멸하사 그들의 모든 기억을 없이하셨음이니이다 (사26:14) The dead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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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26:14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벌하여 그들을 멸하사 그들의 모든 기억을 없이하셨음이니이다 (26:14) The dead shall not live; the Rephaim shall not rise again, because thou hast visited and destroyed them (Isa. 26:14),

 

 

히브리어 르바임(Rephaim)은 개역개정에서 사망하였은즉’으로 번역되었으나, 원문에서는 단순한 죽은 자가 아니라 생명이 완전히 소멸된 것처럼 보이는 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이러한 죽은 자’와 오직 주님에게서 오는 참된 생명을 대조하기 위해서입니다.

 

AC.290에서 스베덴보리는 사람은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오직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사야가 말하는 죽은 자는 살지 못한다’는 말씀은 단순히 육체적 부활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을 거부한 상태 자체를 묘사하는 말씀입니다. 주님에게서 분리된 상태에서는 참된 생명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죽은 자(The dead) 르바임’은 영적 의미에서 선과 진리의 생명을 잃은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스베덴보리의 저술에서 참된 생명은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생명이며, 그 반대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영적으로 죽은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사람에게 생명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부정적인 측면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시 살지 못하겠고’,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라는 말씀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는 결코 영적 생명을 회복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만일 사람 안에 본래 생명이 있다면 스스로 살아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생명을 주실 때만 사람이 살아날 수 있으며, 주님을 떠난 상태에서는 참된 생명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AC.290의 핵심 논지와 정확히 연결됩니다.

 

이어지는 주께서 벌하여 그들을 멸하사’라는 표현도 주님의 자의적인 진노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말씀에서 주님께 돌려지는 진노와 형벌은 인간 편에서 경험하는 결과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곧 사람들이 주님의 생명을 끝내 거부한 결과, 자신들의 악과 거짓 안에 머물게 된 상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 역시 생명의 근원이 사람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심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앞에서 AC.290에 인용된 호6:2와 시85:6과도 아름다운 대조를 이룹니다. 호세아와 시편에서는 주님께서 살리시고’, ‘다시 살리신다’고 말씀하시는 반면, 이사야에서는 주님에게서 떠난 자들이 살지 못하고’, ‘일어나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앞의 두 구절이 생명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여 준다면, 이 구절은 생명을 거부한 결과를 보여 주는 부정적인 측면입니다. 그러나 세 구절 모두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이라는 동일한 진리를 증언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사26:14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매우 분명합니다. 이 구절은 참된 생명이 사람 자신의 것이 아님을 역설적인 방식으로 드러냅니다.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살아 있으며, 그 생명을 거부한 사람은 비록 자연계에서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여도 영적으로는 죽은 상태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사람은 그분으로부터 생명을 받아야만 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AC.290의 중심 메시지를 반대의 경우를 통하여 더욱 선명하게 확증하는 중요한 성경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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