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01.심화

 

4. ‘태고교회 후손들

 

태고교회 후손들은 비록 타락은 했어도 종교적이었나 봅니다. 타락 후 바로 profanation 문제가 대두되는 걸 보면 말입니다.

 

 

네, 바로 그 점을 보신 것이 맞습니다. 태고교회 후손들은 타락했다고 해서 곧바로 무신론자나 비종교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여전히 태고교회로부터 전해 내려온 거룩한 지식과 천국에 관한 인식, 주님에 관한 가르침, 선과 진리의 내적 의미를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거룩한 것들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자기애와 감각적 욕망 아래로 끌어내려 섞기 시작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태고교회는 본래 주님으로부터 오는 퍼셉션을 통해 선과 진리를 직접 지각하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후손들은 단순히 교리 몇 가지를 머리로 배운 정도가 아니라, 천국과 영적 생명에 관한 매우 깊은 인식의 유산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비록 세대가 지나면서 퍼셉션 자체는 점차 사라졌어도, 그 퍼셉션에서 비롯된 지식과 표상, 예배 형태와 거룩한 전승은 상당 기간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그들의 타락은 단순한 무지나 야만화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거룩한 것들을 자기중심적 추론과 욕망에 종속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3에서 뱀이 여자에게 말을 걸고, 여자가 나무의 열매에 관하여 대답하며, 마침내 사람이 선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과정도 이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거룩한 것에 관하여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명령도 알고 있었고, 생명나무가 뜻하는 천적 생명의 질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지각하는 대신 감각과 memory-knowledge를 출발점으로 삼아 거룩한 것들을 판단하려 했습니다. 타락은 종교 자체를 버리는 것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종교적이고 거룩한 것을 proprium의 지배 아래 놓는 것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타락 직후 profanation의 위험이 곧바로 대두됩니다. 그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면 profanation의 위험도 그만큼 크지 않았을 것입니다. profanation은 거룩한 것을 알고 인정한 사람이 그것을 악과 결합할 때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생명나무의 길이 막힌 것은 이미 충분히 거룩한 것을 알고 있던 상태에서 더 깊은 천적 아르카나까지 접하게 될 경우, 그것마저 자기애와 거짓에 섞어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를 위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태고교회 후손들의 타락은 오늘날 흔히 생각하는 종교의 상실과는 다릅니다. 그들은 종교를 버렸다기보다 종교를 변질시켰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대신 자신을 높이기 위해 거룩한 것을 사용했고, 천국의 질서를 따르는 대신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는 데 영적 지식을 동원했습니다. 외형상으로는 여전히 예배와 거룩한 말, 그리고 종교적 표상을 간직했을 수 있지만, 그 안의 중심은 주님 사랑에서 자기 사랑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창3:22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라는 말씀은 단순히 사람이 지식을 많이 얻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지각하던 사람이 이제 그것들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판단하고 결정하려 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거룩한 영역을 떠난 것이 아니라 거룩한 영역 안에서 자기 자신을 주인으로 세우려 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profanation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장 위험한 문턱이었습니다.

 

따라서 말씀하신 대로, 태고교회 후손들은 타락한 뒤에도 매우 종교적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그 종교성은 점차 주님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종교성으로 변해 갔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것을 부정해서만 타락한 것이 아니라, 거룩한 것을 붙들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proprium과 결합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룹과 두루 도는 불칼은 단순히 죄인을 낙원 밖에 가두는 형벌이 아니라, 거룩한 것의 마지막 깊이까지 profanation하지 못하도록 막으시는 주님의 자비로운 섭리였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AC.301, 심화 5, ‘가룟 유다’

AC.301.심화 5. ‘가룟 유다’ 가룟 유다의 죄는 profanation으로 보아야 하나요? 스베덴보리의 profanation 개념에 비추어 보면, 가룟 유다의 죄는 단순한 배신을 넘어 profanation의 성격을 매우 강하게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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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01, 심화 3, ‘세속적 배신, 이중 첩자’

AC.301.심화 3. ‘세속적 배신, 이중 첩자’ profanation은 꼭 종교적, 그러니까 주님의 말씀하고만 관련되어야 성립하나요? 세상, 세속 진리, 그러니까 이중 첩자라든지, 이런저런 배신자들의 경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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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속적 배신, 이중 첩자

 

profanation은 꼭 종교적, 그러니까 주님의 말씀하고만 관련되어야 성립하나요? 세상, 세속 진리, 그러니까 이중 첩자라든지, 이런저런 배신자들의 경우는 설령 그 행태가 유사, 비슷할지라도 그냥 세상 죄일 뿐, profanation은 아닌 건가요?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스베덴보리의 정의에 따르면 ‘profanation’은 본질적으로 ‘거룩한 것’과 관련된 개념입니다. 따라서 세속적 배신이나 이중 첩자 행위 자체는 아무리 악해도, 그것만으로는 ‘profanation’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profanation’이라는 말 자체가 ‘거룩한 것(sacred things)을 속된 것(profane things)과 결합시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AC.301에서도 계속 ‘holy’와 ‘profane’의 결합을 말하지, ‘’과 ‘’ 일반의 결합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국가 기밀을 적국에 넘긴 이중 첩자는 매우 큰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는 충성심을 배반했고, 많은 사람을 위험에 빠뜨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행위가 하나님의 말씀이나 신앙의 거룩한 것과 직접 관련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악한 죄이고 배신이지만, 스베덴보리의 의미에서 ‘profanation’은 아닙니다.

 

사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생 함께 일한 동업자를 속여 회사를 빼앗거나, 친구를 배신하여 큰 이익을 얻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 역시 심각한 악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세속적 탐욕과 배신의 문제라면, 아직 AC.301이 말하는 ‘profanation’은 아닙니다.

 

그러나 같은 배신이라도 양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목회자가 성경 말씀을 이용하여 신자들의 신뢰를 얻고, 그 신뢰를 발판으로 거액의 헌금을 가로채거나 자신의 권력을 세우는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때 그는 단순히 돈을 훔친 것이 아니라, 거룩한 말씀과 하나님의 이름을 자신의 탐욕을 위해 사용한 것입니다. 여기서는 ‘배신’이면서 동시에 ‘profanation’이 될 가능성이 생깁니다.

 

또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거짓 예언을 하여 사람들을 조종한다면, 그것 역시 단순한 거짓말을 넘어 거룩한 것을 악의 도구로 사용하는 일이 됩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특별히 두려워한 경우입니다.

 

그래서 저는 ‘profanation’을 이렇게 이해하면 가장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profanation’은 죄이지만, 모든 죄가 ‘profanation’은 아닙니다.

 

모든 ‘profanation’은 악이지만, 모든 악이 ‘profanation’은 아닙니다.

 

profanation’은 ‘거룩한 것을 알고, 어느 정도 인정한 뒤, 그것을 의도적으로 악과 결합시키는 특수한 죄’입니다.

 

이 점에서 스베덴보리의 개념은 매우 좁고도 엄격합니다. 그는 사람을 쉽게 ‘profanation’의 상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AC.301에서 강조하는 것은, 주님께서 사람들이 그런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때로는 더 깊은 진리를 아직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profanation’은 일반적인 죄보다 더 깊고 특별한 영적 상태이기 때문에, 주님께서도 특별한 섭리로 그것을 막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창3:22-24는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생명나무의 길을 막으신 것은 단순히 죄인을 막으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거룩한 것’을 ‘’과 영구히 결합시키는 ‘profanation’에 빠지는 것을 막으신 주님의 자비로운 보호였다는 것이 AC.301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C.301, 심화 4, ‘태고교회 후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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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01, 심화 2, ‘중세 교회와 오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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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세 교회와 오늘날

 

중세 교황들 및 그 계급 구조 아래서 겉과 속이 다르게 산 많은 성직자들, 그리고 오늘날 뉴스에 나오는 많은 목회자들도 어쩌면 저런 경우일 수 있겠네요...

 

 

네, 충분히 그런 가능성은 있습니다. 다만 AC.301의 기준에 따르면, 특정 집단 전체를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기준은 직분이나 교단이 아니라 ‘한 사람의 내적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중세의 일부 교황들과 고위 성직자들 가운데는 말씀과 교회의 거룩한 것들을 충분히 알면서도 그것을 권력과 재물, 정치적 지배를 위해 이용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진리를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그것을 자기애와 세속적 야망의 도구로 사용하였다면, 그것은 AC.301이 말하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결합시키는 상태’에 가까운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아래에 있던 수많은 사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모두 같은 상태로 볼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는 단지 잘못된 교리 속에서 태어나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으며 살았을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려 했을 수도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도 여러 곳에서, 잘못된 교리 안에 있어도 선한 삶을 산 사람들은 사후에 진리를 배우고 받아들인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직분만으로 AC.301의 대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뉴스에 등장하는 일부 목회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그들이 말씀을 깊이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그것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속이고, 자신의 권력과 명예와 재산을 위해 복음을 수단으로 삼는다면, AC.301의 설명과 상당히 가까운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거룩한 말씀을 이용하여 악을 정당화하거나, 자신의 탐욕을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포장하는 일은 스베덴보리가 가장 심각하게 본 ‘profanation’의 방향과 일치합니다.

 

반대로 뉴스에 이름이 오르내린다고 해서 모두 AC.301의 상태라고 판단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내면과 그가 알고 있는 진리의 정도, 그리고 얼마나 의식적으로 행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 역시 최종적인 영적 상태에 대한 판단은 언제나 주님께 속한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AC.301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남을 판단하는 기준이라기보다 자신을 살피는 기준입니다. ‘나는 말씀을 배우는 만큼 그것에 따라 살려고 하는가?’, ‘혹시 내가 아는 진리를 내 자존심이나 명예, 유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가?’를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사실 스베덴보리 자신도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무지보다도 ‘알면서 거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창3:22-24를 설명하면서, 주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더 깊은 진리를 아직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조차 심판이 아니라 자비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진리를 더 많이 안다는 것은 그만큼 더 큰 책임도 함께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목회자, 신학자, 성직자뿐 아니라 스베덴보리를 연구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경고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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