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C.10 심화

3. 제사장에게 포도주와 독주를 금하셨을까? -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별한다는

 

나답과 아비후 사건 직후 여호와께서는 아론에게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이것 때문에 나답과 아비후가 술에 취해 다른 불을 드렸던 것이 아닌가?라고 추측하기도 하지만, 성경 본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음주 여부를 사실처럼 연결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포도주 금지 규례가 이 자리에 놓인 영적 이유에 대해서는 스베덴보리가 직접적인 단서를 줍니다.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1749-1756, AC) 1071(9:21)은 레10:8-10을 직접 인용하면서 취함이 신앙의 진리에 관한 오류와 혼란을 표상했기 때문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는 것이 금지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포도주 자체가 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AC.6377은 포도주가 좋은 의미에서는 영적 사랑의 선과 신앙의 선을 의미하며, 최고 의미에서는 주님의 신적 선에서 나오는 신적 진리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성찬에서도 포도주가 거룩하게 사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포도주에는 반대 의미도 있습니다. 진리가 악과 섞여 왜곡되면 포도주는 거짓을 나타내며, ‘ 취함은 진리와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고 오류 속에서 비틀거리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레10의 핵심은 술이라는 물질보다 분별력을 잃는 상태입니다.

 

실제로 본문 자체가 이유를 말합니다.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백성에게 여호와의 규례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에게 필요한 것은 종교적 흥분이 아니라 맑은 영적 분별입니다.

 

이것은 바로 앞의 다른 과 연결됩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문제는 거룩해 보이는 것과 실제로 거룩한 것을 분별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향로와 향과 성소와 제사장이라는 외적 요소만 보면 모두 거룩했습니다. 그러나 그 안의 불은 다른 불이었습니다. 외적 거룩함과 내적 거룩함을 구별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같은 위험이 있습니다. 감동적이라고 해서 모두 신적이지 않고, 열정적이라고 해서 모두 체어리티에서 나온 것도 아니며, 성경 구절을 사용한다고 해서 모든 교리가 말씀에서 나온 것도 아닙니다. ‘내가 강하게 느낀다는 사실과 이것이 주님의 진리다라는 사실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거듭남이 깊어질수록 영적 생활은 단순한 흥분보다 분별을 향합니다. 무엇이 선처럼 보이는가보다 그 선의 근원이 무엇인지, 무엇이 진리처럼 들리는가보다 그것이 실제 말씀과 주님의 사랑에 일치하는지를 살핍니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에게 이 분별은 더욱 중요합니다. 10:11은 제사장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의 규례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별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진리를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포도주 금지 규례는 레10의 중심 주제와 정확히 맞닿습니다. 다른 불과 주님의 불을 분별하고,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별하며,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분별하는 것, 이것이 주님의 쓰임을 맡은 사람에게 필요한 영적 맑음입니다. (SWC.10 심화 3)

 

 

 

SWC.레10 심화4, ‘나답과 아비후는 왜 진영 밖으로 옮겨졌을까?’

SWC.레10 심화4. ‘나답과 아비후는 왜 진영 밖으로 옮겨졌을까?’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뒤 모세는 미사엘과 엘사반에게 그들을 ‘성소 앞에서 진영 밖으로’ 메고 나가라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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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C.레10 심화2, 왜 같은 ‘여호와 앞의 불’이 제물은 받고 나답과 아비후는 삼켰을까?

SWC.레10 심화2. 왜 같은 ‘여호와 앞의 불’이 제물은 받고 나답과 아비후는 삼켰을까? 레9:24과 레10:2를 나란히 놓으면 놀라운 문장이 반복됩니다. 레9에서는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번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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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같은 여호와 앞의 제물은 받고 나답과 아비후는 삼켰을까?

 

9:24과 레10:2를 나란히 놓으면 놀라운 문장이 반복됩니다. 9에서는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번제물과 기름을 사르고, 10에서는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나답과 아비후를 삼킵니다. 왜 같은 주님의 불이 한쪽에서는 예배를 완성하고 다른 쪽에서는 심판처럼 나타날까요?

 

스베덴보리의 상응에서 불은 좋은 의미에서는 신적 사랑을 나타냅니다.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1749-1756, AC) 6832(3:2)는 제단의 거룩한 불을 신적 사랑과 연결합니다. 따라서 레9에서 주님에게서 나온 불이 번제물과 기름을 사르는 것은 주님의 사랑이 참된 예배에 생명을 주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주님의 사랑 자체가 레10에서 갑자기 증오나 분노로 변한 것은 아닙니다. 달라진 것은 불의 근원이 아니라 그것을 만나는 상태입니다. AC.9375(24:1)는 나답과 아비후가 말씀 이외의 다른 근원에서 나온 교리와 예배를 표상했다고 설명하고, AC.10244(30:20)는 그들의 예배가 주님을 향한 사랑이 아닌 다른 사랑에서 나온 것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 신학의 중요한 원리와 연결됩니다. 주님에게서 나오는 것은 언제나 선과 사랑과 생명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동일한 신적 생명이 다르게 경험됩니다. 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신적 사랑은 기쁨과 생명이 되지만, 그 사랑에 반대되는 상태에서는 그것이 견딜 수 없는 것으로 경험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레9과 레10의 두 불을 좋은 하나님과 화난 하나님의 변화로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변한 것은 인간의 상태입니다. 9에서는 주님께서 명하신 질서 안에 놓인 제물이 그 불을 받아 예배가 완성됩니다. 10에서는 다른 사랑에서 나온 예배가 그 동일한 거룩함과 만납니다.

 

빛도 비슷합니다. 같은 햇빛이 건강한 눈에는 세상을 보게 하지만 심하게 상한 눈에는 고통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태양이 어떤 사람에게는 사랑으로 빛나고 어떤 사람에게는 분노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빛을 받는 상태가 다른 것입니다.

 

이렇게 읽으면 3절의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중에서 거룩함을 나타내겠다는 말씀도 달리 들립니다. 주님의 거룩함은 인간의 상태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이 주님께 가까이 갈수록 그 거룩함과 조화를 이루는 것과 이루지 못하는 것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레10의 불은 주님의 사랑과 반대되는 별도의 분노의 에너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9의 불과 근본적으로 같은 신적 사랑의 거룩함 앞에서 무엇이 그 사랑에 속하고 무엇이 다른 사랑에 속하는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듭남에서도 일어납니다. 처음에는 자기애가 선처럼 보이고 자기 지혜가 진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과 진리가 더 가까이 들어올수록 그 안에서 무엇이 주님의 것이고 무엇이 proprium의 것인지 드러납니다. 신적 불은 참된 선을 살리고 다른 불을 드러냅니다.

 

따라서 레9의 불과 레10의 불은 서로 반대되는 두 하나님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변함없는 한 분 주님의 신적 사랑 앞에서 서로 다른 인간의 상태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 줍니다. 주님의 불은 언제나 사랑의 불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불을 품은 채 그 사랑 앞에 서는가입니다. (SWC.10 심화 2)

 

 

 

SWC.레10 심화3, ‘왜 제사장에게 포도주와 독주를 금하셨을까? -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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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C.레10 심화1, 나답과 아비후의 ‘다른 불’은 정확히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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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답과 아비후의 다른 정확히 무엇이었을까?

 

나답과 아비후 이야기를 읽으면 가장 먼저 드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도대체 다른 불이 무엇이었기에 사람이 즉시 죽어야 했을까?성경 본문은 그들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을 향로에 담아 분향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불이 물리적으로 정확히 어디에서 온 불이었는지보다 스베덴보리는 그 사건이 표상한 영적 의미를 매우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1749-1756, AC) 9375(24:1)는 나답과 아비후를 직접 다룹니다. 그들은 아론의 아들들이므로 말씀에서 나오는 교리를 표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른 을 가지고 분향한 것은 말씀 이외의 다른 근원에서 나온 교리로 예배를 세우는 을 표상했다고 설명합니다. 불은 사랑의 선을, 향은 그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진리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AC.9965(28:43)는 더욱 직접적입니다. 제단의 불은 신적 사랑, 곧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을 표상했지만 다른 은 지옥에서 나오는 사랑을 표상했다고 설명합니다. AC.10244(30:20) 역시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로 향을 피운 것은 주님을 향한 사랑이 아닌 다른 사랑에서 나온 예배를 표상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다른 의 핵심은 불의 종류가 아니라 사랑의 근원입니다. 외적으로는 똑같이 향을 피웁니다. 똑같은 성소이고 똑같은 제사장이고 똑같은 향로입니다. 그러나 예배를 움직이는 사랑이 주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인간의 proprium에서 나온다면 영적으로는 전혀 다른 예배가 됩니다.

 

이것은 매우 무서운 동시에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거룩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일을 움직이는 사랑까지 거룩하다고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하면서 명예를 사랑할 수 있고, 봉사하면서 인정받기를 사랑할 수 있으며, 진리를 변호하면서 자기 우월감을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겉의 향은 거룩하지만 속의 불은 다른 불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레9 마지막 장면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9에서 불은 여호와 앞에서 나왔습니다.인간이 만든 불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불이 번제물과 기름을 사릅니다. 참된 예배의 생명인 사랑은 주님에게서 인간에게 오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 사랑을 받아 다시 주님을 예배합니다.

 

그런데 레10에서 나답과 아비후는 자기들이 불을 가져옵니다. 바로 이 대비가 두 장을 연결합니다. 9주님의 이고 레10다른 입니다. 하나는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 아닌 다른 근원에서 오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을 단순히 현대 예배 방식의 차이나 예전의 형식 문제에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찬양 형식이나 예배 순서가 익숙하지 않다고 그것을 다른 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본문의 내적 의미와 거리가 멉니다. 핵심은 외적 형식보다 훨씬 깊은 곳, 곧 그 예배를 움직이는 사랑의 근원입니다.

 

10은 그래서 우리에게 얼마나 뜨겁게 예배하는가?보다 더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 뜨거움은 어디에서 오는가?입니다. 자기애도 뜨겁고 종교적 열광도 뜨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의 불은 오직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입니다. 참된 거듭남은 내 안의 모든 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불이 주님의 불이고 어떤 불이 proprium의 다른 불인지를 분별하여,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으로 예배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SWC.10 심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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