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성당 수리

산 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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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순종하지 않고 건방지게 된 아들의 태도에 적개심을 일으켜 아들을 악담 저주한 부친은 프란치스코를 자기 아들이 아니라고 고소했다. 아들을 호적에서 제적해 버리고, 그동안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사용한 막대한 돈의 액수까지 계산해 보았다. 아직도 아들이 가지고 있을 훔친 돈도 찾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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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는 먼저 사건의 진상을 공개 설명하고나서 프란치스코에게 권했다.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시오. 아무리 교회를 돕고 싶다고 해도 선행한다는 핑계로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얻은 돈을 갖고 있을 권리가 없으니 부친의 것은 모조리 돌려드리시오."

 

"예, 주교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이상으로 하겠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맑은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대답하고 나서는 주교관에 들어가서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둘둘 말아 들고, 완전한 나체가 되어 군중들 앞에 나와 서서 비장한 태도로, 그러나 정중하게 말했다.

 

"여러분, 내 말을 잘 들으십시오. 나는 지금까지는 피에트로 디 베르나도네를 아버지라 불러왔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나는 하나님만을 아버지로 섬기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아버지의 돈과 옷을 모두 돌려 드리겠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모조리 아버지 발 앞에 정중하게 갖다 놓고, 가지고 있던 돈도 그 위에 놓았다. 그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했다.

 

"이렇게 돌려 드립니다. 이제부터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외에는 그 누구도 아버지라 부르지 않겠습니다."

 

주교관의 재판을 둘러서서 구경하던 군중들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주교도 크게 감격하여 벗은 채 떨고 서있는 가련한 프란치스코를 자기 외투자락을 펴서 감싸주면서 껴안았다.

 

이 광경을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지켜보던 베르나도네는 돌같이 굳어진 표정으로 서 있다가 결국 군중들 앞에서 망신만 당하고 창피하여 허리를 굽혀 옷과 돈을 집어들고 도망치듯 그 자리에서 빠져 나가 버렸다. 주교가 주교관의 정원사가 입던 낡은 옷 한 벌을 프란치스코에게 입혀주니 그는 감격하여 백묵으로 저고리 잔등에 십자가 표를 그려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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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시대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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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부흥과 종교 개혁 이전의 중세기를 암흑 시대라고 하듯, 1209년 경의 교회는 형편없이 타락해 있었다. 성직 매매가 거리낌 없이 성행되었고, 교회 소유지 매매도 대담하게 자행되었다. 교황 인노센트 3세는 이같은 악한 폐단을 없이할 수 있는 방법은 '불과 칼' 뿐이라고 느꼈다.

 

그 무렵의 교황청의 성직자들에 대한 평은, '그들은 이해성에 있어서는 돌덩이요, 정의에 대해서는 나무 토막이요, 노하는 데는 불이요, 용서에 대해서는 쇳덩어리들이다. 그들은 여우처럼 속이고, 암소처럼 자존대하고, 미노토르처럼 탐욕에 젖는 놈팡이들이다.'라고 했다. 주교는 사제에게서 금전을 강탈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들은 난폭한 싸움꾼들이요, 유럽 어디에서나 조소 거리와 비웃는 속된 노랫거리가 되었다. 사제들도 역시 임종하는 사람의 머리맡에서 유산 상속권을 얻어내고, 자기의 사생아의 장래를 위해 비열한 방법으로 이익을 쌓는 데만 전력하는 천한 부류들이었다. 수도원들도 예외없이 타락했었다. 수도원 안에 야심과 탐욕과 사치의 악습이 침입했고, 수도원이 정기 시장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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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회심

...이 무렵, 어느 날 기도드리고 있을 때,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프란치스코! 네가 하나님의 뜻을 참말로 실행하고자 한다면, 네가 지금까지 육정 안에서 사랑해 온 모든 것을 멸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네가 이것을 실천한다면, 지금까지 달콤하고 사랑스럽게 생각되던 모든 것들은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이 되며, 이제까지 네가 꺼리고 회피해 다니던 모든 것이 도리어 지극히 달콤하고 기쁜 것이 되리라.'

 

어느 날 프란치스코는 말을 타고 산책을 떠났다. 이 무렵, 그의 정신에는 새 생활에 대한 감격과, 주님께 절대귀의하는 생활을 하고자 하는 열망에 가득 차 있었다. 말이 산길 구부러진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돌연히 바로 앞에 나병자 한 사람이 마주 걸어오고 있지 않은가! 평소에 나병자 공포증이 있는 그는 순간 본능적으로 말머리를 돌려 오던 길로 되돌아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나 이때,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통렬하게 자기를 자책했다.

 

'내가 이렇게 놀라운 계획을 품고 있으면서 이처럼 비겁해서야 되겠는가...'

 

모질게 휘몰아치는 양심의 책망! 그는 반사적으로 말 잔등에서 뛰어내려 나병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나병자의 손에 자기가 갖고 있던 돈주머니를 다짜고짜로 쥐어 주고는 놀라서 자기를 바라보고 섰는 나병자를 사제처럼 힘껏 가슴에 안고, 썩어 냄새나는 그의 입에 입을 맞추었다. 흥분하여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이때 프란치스코는 육체적 기분으로는 구역질이 났으나, 자기 전존재를 황홀 속에 떨게할 만큼 한없는 영혼의 기쁨에 사로잡혔다. 프란치스코가 달콤한 것보다 고난을 선택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도 약속하신 대로 고통스런 것을 달게 변화시켜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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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소년 시대

 

탄생

성 프란치스코는 1181년 말, 혹은 1182년 초에 이탈리아 아씨시의 움부리아에서 태어났다. 아씨시는 '이탈리아의 갈릴레아'라고 불리는 지방으로, 당시 로마 제국에 속해 있었다. 아씨시는 인구가 만 명도 못되는 조그만 곳으로, 해발 1,300 미터나 되는 수바시오산 기슭에 위치하여, 그 앞에 페루지아에서 스폴레토에 걸쳐 펼쳐진 넓은 평원이 내려다 보이는, 고독과 정적, 평화가 가득 깃든 마을로서, 고요히 귀 기울여 보면,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노을 속에서 잔잔히 들려온다. 지금도 그곳에는 프란치스코의 무덤이 있고, 프란치스코회의 여러 건물들과 그의 생가 자리에 지은 건물들 등 그의 생애와 관계된 기념 성당들이 있다...

 

교육

대부분의 전기에는, 프란치스코는 학문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했다. 물론 프란치스코는 신학이나 교리서 공부는 못한 사람이요, 또 성직자의 학문이나 그 당시 일반 사람들이 갖고 있던 사회적 학식에도 정통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무식한 사람이 어떻게 여러 시대, 여러 나라 사람들의 영혼에 800년 동안이나 절대적인 깊은 감동과 공명을 계속 줄 수 있었겠는가...

 

전쟁

프란치스코가 태어난 시대는 이탈리아 반도가 전쟁과 내란의 도가니 속에 소용돌이치던 시대였다. 황제와 교황이 싸우고, 공작과 후작들은 황제에게 반역하고, 평민들은 귀족들에게 반항하고, 도시는 도시끼리 서로 다투고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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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신성은 선과 진리로 되어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의 저작들을 통해서 우리는 '진리'는 충분히 접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 진리를 실제로 적용할 ''은 마땅하지가 않습니다. 하여, 고민 끝에, 그렇게 사셨던 분들의 전기를 차례대로 살피고자 합니다. 그 첫 번째 사례가 바로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엄두섭 목사 저이며, 은성출판사 간입니다.

 

성 프란치스코

은성출판사, 영성, 영성형성

eunsungpub.co.kr

 

 

 

※ 아래 링크는 위 유튜브 리딩 중에 나오는, 경기도 시흥영성수련원 박희진 원장 관련 글입니다.

 

 

“영성이 약해지면 아무리 뛰어나도 맹탕이다” - 복음인

유하면 할수록, 지배하면 할수록 욕망은 커지고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의 실체사욕을 추구하는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기쁨 누려야 독신 수도회 2곳 외에 가정을 가진

www.ing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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