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7. 말씀에서 ‘’은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을 상징합니다. In the Word “stars” signify knowledges of good and truth (n. 2495, 2849, 4697).

 

창37:4-11, AC.4678-4703

9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And he dreamed yet another dream, and told it to his brethren, and said, Behold I have dreamed yet a dream, and behold the sun and the moon and eleven stars bowed down themselves to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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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별이 And eleven stars.

 

That this signifies the knowledges of good and truth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stars” as being the knowledges of good and truth. That “stars” have this signification in the Word is because they are small luminaries which shine at night, when they give forth into our atmosphere gleams of light, just as knowledges give forth gleams of good and truth. That such knowledges are signified by “stars” is evident from many passages in the Word, as in Jeremiah: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였고 바다를 뒤흔들어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렘31:35) Thus said Jehovah who giveth the sun for a light by day, and the ordinances of the moon and of the stars for a light by night, who stirreth up the sea that the waves thereof are tumultuous (Jer. 31:35);

 

where a new church is treated of, and by “giving the sun for a light by day” is signified the good of love and of charity, and by “giving the ordinances of the moon and of the stars for a light by night” is signified truth and knowledges.

 

[2] So too in David:

 

7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8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9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136:7-9) Jehovah who made great luminaries, the sun to rule by day, and the moon and stars to rule by night (Ps. 136:7–9);

 

one who knows nothing of 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 will believe that by the “sun” here is meant the sun of the world, and by the “moon and stars” the moon and stars of the world; but from this arises no spiritual and heavenly sense, and yet the Word is heavenly in every particular; from which again it is evident that the goods of love and charity, and the truths of faith, together with the knowledges of these, are what is signified.

 

[3] So also in the first chapter of Genesis, where the new creation of the celestial man is described: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18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1:14-18) God said, Let there be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distinguish between the day and the night; and let them be for signs and for stated times, and for days and for years; and let them be for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and it was so. And God made two great luminaries; the greater luminary to rule by day, and the lesser luminary to rule by night; and the stars. And God set them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and to rule in the day and in the night, and to distinguish between the light and the darkness (Gen. 1:14–18; see n. 30–38).

 

[4] In Matthew: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마24:29) Immediately after the affliction of those days the sun shall be darkened, and the moon shall not give her light, and the stars shall fall from heaven, and the powers of the heavens shall be shaken (Matt. 24:29);

 

that here by the “sun and moon” are signified love and charity, or good and truth, and by the “stars” knowledges, may be seen above (n. 4060); and because the last day or the last state of the church is here treated of, by “the sun being darkened and the moon not giving her light” is signified that then the good of love and of charity will perish; and by “the stars falling from heaven” that the knowledges of good and of truth will also perish.

 

[5] That these things are signified is evident from the prophetic parts of the Word, in which similar things are said of the last state of the church, as in Isaiah:

 

9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 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 10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 (사13:9-10) Behold the day of Jehovah cometh cruel, to make the earth a waste, and he shall destroy the sinners thereof out of it For the stars of the heavens and the constellations thereof shall not shine with their light; the sun shall be darkened in his rising, and the moon shall not cause her light to shine (Isa. 13:9–10).

 

In Joel:

 

14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15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욜3:14-15) The day of Jehovah is near. The sun and the moon have been blackened, and the stars have withdrawn their shining (Joel 3:14-15).

 

In Ezekiel:

 

7내가 너를 불 끄듯 할 때에 하늘을 가리어 별을 어둡게 하며 해를 구름으로 가리며 달이 빛을 내지 못하게 할 것임이여 8하늘의 모든 밝은 빛을 내가 네 위에서 어둡게 하여 어둠을 네 땅에 베풀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겔32:7-8) When I shall extinguish thee I will cover the heavens, and I will blacken the stars thereof; I will cover the sun with a cloud, and the moon shall not make her light to shine, all the luminaries of light in heaven will I make black over thee, and will set darkness upon thy land (Ezek. 32:7–8).

 

And in Revelation: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계8:12) The fourth angel sounded, and the third part of the sun was smitten, and the third part of the moon, and the third part of the stars; that the third part of them should be darkened, and the day should not shine for the third part of it, and the night in like manner (Rev. 8:12).

 

[6] Moreover, that “stars” are the knowledges of good and truth is plain from the following passages: in Daniel:

 

9그 중 한 뿔에서 또 작은 뿔 하나가 나서 남쪽과 동쪽과 또 영화로운 땅을 향하여 심히 커지더니 10그것이 하늘 군대에 미칠 만큼 커져서 그 군대와 별들 중의 몇을 땅에 떨어뜨리고 그것들을 짓밟고 (단8:9-10) Out of one of the horns of the he-goat came forth a little horn, and it grew exceedingly toward the south, and toward the east, and toward adornment. And it grew even to the army of the heavens; and some of the army and of the stars it cast down to the earth, and trampled upon them (Dan. 8:9–10);

 

and in Revelation: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계12:4) The great dragon with his tail drew the third part of the stars of heaven, and did cast them to the earth (Rev. 12:4).

 

That “stars” are not meant in these passages is evident. In Daniel and Revelation is described the state of the church in its last times.

 

[7] Likewise in David: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시147:4) Jehovah counteth the number of the stars; he giveth names to all (Ps. 147:4).

 

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시148:3) Praise ye Jehovah, sun and moon, praise him all ye stars of light (Ps. 148:3).

 

And in Revelation: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계12:1) A great sign was seen in heaven; a woman encompassed with the sun, and the moon under her feet, and upon her head a crown of twelve stars (Rev. 12:1).

 

[8] As “stars” signify the knowledges of good and truth, they signify also the doctrinals of the church, for these are knowledges. The doctrinal respecting faith separate from charity in the last times is thus described by a star in Revelation:

 

10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11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계8:10-11) The third angel sounded, and there fell from heaven a great star burning as a torch, and it fell upon the third part of the rivers, and upon the fountains of waters; and the name of the star is called Wormwood, and many men died of the waters, because they were made bitter (Rev. 8:10–11);

 

the waters made bitter by this star are truths, and the “rivers and fountains of waters” are intelligence thence and wisdom from the Word. (That “waters” are truths may be seen above, n. 2702, 3058, 3424; that “rivers” are intelligence, n. 3051; and that “fountains” are wisdom from the Word, n. 2702, 3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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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유튜브는 오디오입니다. 참고하세요.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하신 속뜻

 

 

9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10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3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눅16:9-13)

 

 

오늘날 다들 믿기를, 체어리티라는 건 단순히 선을 행하는 거고, 그러고 나서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 결과, 체어리티의 처음은 선행이고,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은 나중이라고들 믿습니다만, 그러나 이는 완전히 정반대로들 알고 있는 것입니다. 체어리티의 처음은 악을 치워버리는(to put away)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그다음입니다. (참된 기독교 437) At the present day it is believed that charity is simply doing good, and that then one does not do evil; consequently that the first thing of charity is to do good, and the second not to do evil. But it is wholly the reverse; the first thing of charity is to put away evil, and the second to do good; (TCR.437)

 

 

요즘 시대는 각종 지식과 정보들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서점에는 매일 같이 수많은 책이 새로 나오고, 컴퓨터를 켜면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린 학생들이 전문가를 뺨치는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인생의 경험이나 지혜보다는 기억력과 지식이 힘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어떤 정당에서 당 대표를 선출하는데 다선 의원들을 제치고 의원 경험이 없는 30대 젊은이가 대표로 뽑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 지난 2021년 6월, 국민의힘 당 대표로 이준석 후보가 당선된 걸 말하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 설교의 원본은 지난 2021년 6월 13일,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의 주일 설교입니다.

 

※ 설교 중 이 ‘※’는 원본에는 없는, 이 원본을 조금 다듬어 설교하는 저의 보충 설명입니다.

 

이런 현상 역시 기억력과 지식과 언변이 무엇보다 힘이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새 교회 가르침에서는 인간의 머릿속에 든 지식은 가장 차원이 낮은 진리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는 없고요, 더 높은 진리인 영적 진리를 얻기 위한 도구이며, 나아가서는 주님의 나라에 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려는 것도 바로 그것과 관련된 것입니다. 먼저 본문 9절을 살펴보겠습니다. 거기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9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주님께서는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셨습니다. 불의의 재물이란 어떤 것입니까? 인간의 기억 속에 쌓인 지식들이 불의의 재물입니다. 왜 그 지식들을 불의의 재물이라고 하셨을까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지식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지 않고, 세상의 부와 명예를 쫓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친구를 사귀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교우님들은 어떤 사람을 친구로 사귀고 싶으십니까? 저는 힘들고 외로울 때 자기 일처럼 저를 걱정해 주는 사람을 친구로 삼고 싶습니다. 또는 인생의 위기에서 저를 구해 주고 기꺼이 기댈 언덕이 되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을 친구로 삼고 싶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과연 그런 친구가 있겠습니까? 아마 주님만이 그런 친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친구란 바로 주님, 또는 진리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는 것은 세상 지식을 가지고 영적 진리를 사귀라는 것이고요, 궁극적으로는 주님을 사귀라는 뜻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식은 진리를 얻기 위한 수단이고, 주님과 결합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10절, 11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10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지극히 작은 것은 무엇이고, 큰 것은 뭘까요? 또 그것에 충성하는 것은 무슨 뜻이고, 불의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여기서 지극히 작은 것은 낮은 차원의 진리, 즉 기억에 속한 진리를 의미합니다.

 

※ 이 ‘기억에 속한 진리’라는 것은 세상에서 학습한 지식들을 가지고 알게 된 진리를 말합니다. ‘영적 진리’라는 표현이 있으니까 ‘자연적 진리’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큰 것은 그보다 높은 차원의 진리, 즉 영적인 진리를 뜻합니다. 그리고 충성한다는 것은 진리를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것이고, 불의하다는 것은 주님이 아니라 세상을 섬기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다 하시는 것은, 진리의 지식을 가지고 주님과 이웃을 섬기는 사람은 영적인 진리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가지고도 주님을 섬긴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다는 것은 세상 지식이나 말씀의 지식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지 않고 세상을 섬기는 사람은 더 높은 영적 진리가 주어졌을 때에도 그것을 가지고 세상을 섬기기만 할 뿐이라는 뜻입니다.

 

※ 갑자기 많은 수의 영 능력자들이 떠오릅니다. 각종 병 고침, 신유, 치유, 예언, 안수, 방언, 영계 체험, 그리고 집회 인도자들, 주 강사들이 말입니다. 그 가운데 정말 드물게 주께 순수한 쓰임새로 섬기는 자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잘 포장된 생업 수단으로, 그리고 자기를 높이고 주목받고자 하는 숨은 동기로 그러고들 있으니 말입니다. 다른 사람은 고사하고 저부터도 우선 그런 면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저 역시도 누가 저를 무시하고 그러면 발끈하거든요... 성 프란치스코는, 스베덴보리는 그러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저는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사람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주님과 주님의 나라인 사람은 진리를 가지고 언제나 주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목적이 오로지 세상의 부와 명예인 사람은 진리를 가지고 오직 부와 명예만을 좇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말씀으로부터 삶을 분리, 말씀을 왜곡하는 사람들입니다. 진리에 대해 불의하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12절에서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12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앞에서는 남의 것, 뒤에서는 너희의 것이라고 하셨지만, 그러나 이는 모두 진리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그러면 진리를 남의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요? 진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많이 안다 자부하거나 진리를 마음대로 왜곡하는 것은 그것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깨달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진리를 대하는 바른 태도는 진리를 주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오직 주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남의 것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뒤에서는 왜 너희의 것이라고 했을까요? 진리를 주님의 것이라고 인정하고, 진리에 따라 신실하게 사는 사람에게 주님께서는 그 진리를 그들의 생명으로 만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진리를 가지고 당신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그 진리를 그들의 사랑, 또는 의지로 만들어 주십니다. 그들의 생명인 의지와 사랑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은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에 따라 살지 않거나, 혹은 못 하거나 시험에서 넘어지는 이유는 진리가 아직 우리의 생명인 사랑이 되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그러면 그때는 뭐가 사랑이며, 뭐가 생명일까요?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이 우리의 사랑이요 생명입니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주님을 의지, 진리에 따라 세상 욕망을 이긴다면, 그때부터 그 진리는 주님에 의해 우리의 생명이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진리를 너희의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 물론, 경험에 의하면, 이후에도 계속 넘어집니다만, 그러나 오래지 않아 다시 일어나 회복, 다시 주님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넘어질 때마다 마음이 참 힘들지만, 그러면서 더욱 자신에 대해서는 낮아지고 겸손하여지며, 부인하며 내려놓게 됩니다.

 

다음 13절에서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3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신앙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행동에 있어서는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고 또 자기 자신을 사랑합니다. 머리로는 진리를 생각하면서 행동은 진리와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와 관련해서 계시록 해설 409번 글의 7번 항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과 천국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속 사람이 열리고, 그때 겉 사람은 속 사람을 섬긴다. 겉 사람은 섬기기 때문에 종이라 부르고, 속 사람은 자기 의지대로 하기 때문에 주인이라고 부른다. 반대로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속 사람이 닫히고, 겉 사람이 열린다. 겉 사람이 열리고 속 사람이 닫힐 때, 사람은 하나의 주인 즉 자기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고, 다른 주인 즉 주님과 천국을 미워한다.” With those who love the Lord and heaven cove all things, the internal or spiritual man is open, and the external or natural man serves it; then the latter is a servant because it serves, and the former is a master because it exercises its will; but with those who love themselves and the world above all things, the internal or spiritual man is closed, and the external or natural man is open; and when the latter is open and the former closed, the man loves the one master, namely, himself and the world, and hates the other, namely, the Lord and heaven. (AE.409:7)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 겉 사람이 열린다는 것은 겉 사람이 세상 또는 지옥을 향해 열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을 멀리할 때는 주님을 향한 마음인 속 사람이 열리고요, 주님을 멀리할 때는 겉 사람이 세상과 지옥을 향해 열립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향한 마음과 세상을 향한 마음이 동시에 열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어떻게 보면 기계에 밸브가 달린 것처럼 속 사람과 겉 사람 사이에 밸브가 하나 있고, 겉 사람과 지옥 사이에도 또 하나의 밸브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가 열리면 다른 하나는 자동적으로 닫히고, 다른 하나가 열리면 다른 하나는 닫히게 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는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했고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많은 신앙인들이 한 손으로는 선을 행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악을 가까이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두 주인을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을 차지도 덥지도 않다 하시고 토해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웃에게 인애를 베풀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점검해서 모든 종류의 악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리를 가지고 세상을 섬기지 않고 오직 주님 한 분만 섬길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할 때 애굽인들로부터 금은 대접들과 옷가지를 빼앗아 가지고 나오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또 민수기 3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족과 싸워 이겼을 때 그들의 부녀와 가축과 재물들을 모두 탈취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애굽인이나 미디안족은 모두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들입니다. 즉 진리의 지식을 가지고 세상을 섬기는 마음이 애굽인이며, 미디안족입니다. 우리가 그 마음을 극복할 때, 그동안 세상을 섬겼던 모든 지식들이 오직 주님과 이웃을 위해 쓰이게 됩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애굽의 재물과 미디안의 재물들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넘겨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는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지식을 세상을 섬기는데 쓰지 말고, 진정한 친구인 진리와 주님을 사귀는데 쓰라는 말씀입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하십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오늘 이 말씀에 귀 기울이시는 모든 성도들에게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3:15)

 

아멘

 

 

원본

2021-06-13(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설교

2024-01-28(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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