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최초의 형제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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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굴욕감을 느끼는 힘든 노릇이 걸식 수도이다. 형제들이 제발 탁발하러 나가지 않게 해달라고 끈질기게 간청했기 때문에 프란치스코도 처음에는 그렇게 하도록 노력했다. 다른 형제들이 탁발을 나가지 않을 때도 건강이 쇠약한 몸으로 날마다 바릿대를 들고 구걸하러 나가는 것은 프란치스코였다. 그러나 프란치스코조차 마지막엔 기진맥진해 쓰러져 버렸다. 그런 형편인데도 아무도 대신 탁발 나가는 이가 없었으므로 프란치스코도 이 일에는 더 양보할 수 없어서 나중에 그는 형제들에게 "여러분들은 모두 우리 주님과 지극히 거룩한 어머니의 본을 받아 완전한 청빈의 길을 선택했으니 탁발쯤은 하러 나갈 결심을 해야 했을 것입니다. 남에게 시여받는 것을 힘들고 부끄러운 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들은 나가서 다만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서 희사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때 희사를 베푸는 은인들은 그 보응으로 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니까 결국 여러분들은 하나를 받고 백의 보응을 주는 격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즐겁게 탁발 나가십시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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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는 누구보다도 많이 기도했다. 여러 가지 신심행을 더하는 노력보다도 참 하나님을 쉬지 않고 예배하고 관상했다. 그는 기도하고 있는 사람이기보다 기도 자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는 복음서의 가르침 대로 숨어서 은밀하게 기도했다. 자신을 불태우는 애열의 불을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 했다. 다른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고 잠자는 시간에도 남과 함께 자리에 들었다가 모두가 깊이 잠들어 고요해졌을 때 몰래 일어나 숲속에서 기도로 밤을 새우기 위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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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온 세계가 나를 따르는 까닭을 알고 싶으냐... 그 까닭을 알고 싶으냐... 그 까닭을 알고 싶으냐? 그것은 이 세상 모든 일, 선한 것이나 악한 것이나 살펴 다스리시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이 지극히 거룩하신 분의 눈은 이 세상 모든 죄인 속에서 나보다 더 나쁘고 나보다 더 쓸모없고 나보다 더 죄 많은 자를 발견하지 못하셨다. 주는 당신 계획의 오묘한 능력을 실현하시기에 나보다 더 악한 피조물이 없으므로 나를 골라 세상의 모든 존귀한 자, 위대한 자, 아름다운 자, 강한 자, 슬기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므로 이로 인하여 모든 힘과 선은 다만 주님께로서만 나오는 것이요, 피조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또 아무도 능히 하나님 대전에서는 저 혼자의 능력으로는 형통함이 없음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다. 누구든지 번성하는 자는 주 안에서 번성하는 것이니 모든 영광과 존귀는 영원히 홀로 하나님께만 돌리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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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교회가 어떻게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는 퍼셉션이 무엇인지를 알기 전까지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5절,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that man lived were nine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he d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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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교회가 어떻게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는 퍼셉션이 무엇인지를 알기 전까지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태고교회는 퍼셉션이 있었던 교회였고, 오늘날엔 그런 교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교회의 퍼셉션은 이런 것으로 구성됩니다. 곧 그 교회의 구성원들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마치 천사들처럼 선악을 구별합니다. 이 선악은 사람들 사는 시민 사회의 선악과 같은 것이 아니고, 주님 사랑과 주님 신앙에 속한 선악을 말합니다. 생활로 확인되는 신앙고백을 통해 퍼셉션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존재하는지 여부를 알 수 있는, 그런 것입니다. How the most ancient church decreased cannot appear unless it be known what perception is, for it was a perceptive church, such as at this day does not exist. The perception of a church consists in this, that its members perceive from the Lord what is good and true, like the angels; not so much what the good and truth of civic society is, but the good and truth of love to the Lord and of faith in him. From a confession of faith that is confirmed by the life it can be seen what perception is, and whether it has any existence.

 

※ 즉 실천, 생활, 삶이 따라주는, 받쳐주는 신앙이 진짜 신앙이라는 말입니다. 선은 실천에 옮겨진 진리이며, 진리는 실천할 때 선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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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죽었다’는 것은 그런 퍼셉션, 즉 아담교회 때 있었던 퍼셉션이 더이상은 존재하지 않았다라는 의미입니다.

 

5절,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that man lived were nine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he d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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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죽었다’는 것은 그런 퍼셉션, 즉 아담교회 때 있었던 퍼셉션이 더이상은 존재하지 않았다라는 의미임은 ‘죽다’라는 단어의 의미, 즉 어떤 것이 더이상 예전처럼 있기를 그만두다라는 의미임을 생각할 때 분명합니다. That he “died” signifies that there was no longer such perception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the word “die,” which is, that a thing ceases to be such as it has been.

 

※ 퍼셉션은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합니다. 각 천국마다 다르고, 해당 천국의 무수한 공동체들마다, 그리고 해당 공동체 각 개인마다도 다릅니다. 이것은 한 분 주님한테서 이렇게 다양한 퍼셉션이 나오는 게 아니라 각 천국마다, 각 공동체마다, 그리고 각 천사마다 그 역량, 곧 주님의 신성인 선과 진리를 담는 역량 차이에 따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입니다. Thus in John:

 

1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계3:1-2) Unto the angel of the church in Sardis write, These things saith he that hath the seven spirits, and the seven stars; I know thy works, that thou art said to live, but art dead; be watchful, and strengthen the things which remain, that are ready to die; for I have not found thy works perfect before God. (Rev. 3:1–2)

 

예레미야입니다. In Jeremiah:

 

내가 너와 너를 낳은 어머니를 너희가 나지 아니한 다른 지방으로 쫓아내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으리라 (렘22:26) I will cast out thy mother that bare thee, into another country where ye were not begotten, and there shall ye die, (Jer. 22:26)

 

여기 ‘어머니’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where “mother” signifies the church.

 

지금까지 말씀드린(AC.407, 468) 것처럼 이 교회의 경우, 처음 상태, 정말 깨끗했던 온전함이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들고 퇴색되며, 잃게 되었는데, 그 주된 이유는 악의 세습 및 증가였는데, 역대 모든 부모마다 자기가 타고난 악에다 새로운 악을 더했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모든 실제적 악은 일종의 본성을 옷 입습니다. 그리고는 종종 재발 시, 그들의 본성이 되고, 그렇게 그들의 유전 악에 더해집니다. 이런 식으로, 자녀들에게 전이되고, 그렇게 후손에게 전해집니다. 이런 식으로, 유전 악은 후손들에 이르러 엄청나게 증가합니다. 이것이 그렇다는 것은 아이들의 악한 기질이 정확히 그들의 조상의 것과 똑같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우리에게 이식되어 유전되어 온 악 외에 다른 유전 악은 없다 주장하는 사람들의 견해는 완전 거짓입니다. (cf. AC.313) 진실은 이렇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고유한 죄를 실제로 지어 유전 악을 만들며, 그걸 자기가 물려받은 악에다 보태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악은 모든 후손들 가운데 축적되며 남습니다. 주님에 의해 거듭나고 있는 사람들한테서만 줄어드는 거 빼고 말입니다. 모든 교회마다 이것이 타락, 퇴보의 첫째 원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태고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For as we have said, the case with the church is that it decreases and degenerates, and loses its pristine integrity, chiefly by reason of the increase of hereditary evil, for every succeeding parent adds new evil to that which he has inherited. All the actual evil in the parents puts on a kind of nature, and when it often recurs, becomes natural to them, and is added to their hereditary evil, and is transmitted into their children, and so to posterity. In this way the hereditary evil is immensely increased in the descendants. That this is so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he evil dispositions of children are exactly like those of their progenitors. Quite false is the opinion of those who think that there is no hereditary evil except that which they allege to have been implanted in us from Adam (see n. 313). The truth is that everyone makes hereditary evil by his own actual sins, and adds it to the evils that he has inherited, and in this way it accumulates, and remains in all the descendants, nor is it abated except in those who are being regenerated by the Lord. In every church this is the principal cause of degeneration, and it was so in the most ancien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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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서는, 날과 해, 그리고 수량, 수치들의 숫자들은 그로 말미암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5절,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that man lived were nine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he died.

 

493

’과 ‘’가 때와 상태를 의미한다는 건 이제 다음과 같은 추가적 언급 말고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지 싶은데요, 그것은 세상에서는 시간과 수량을 숫자로 표현하기 위한 필요성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숫자들이 자연의 끝단들(the ultimates of nature), 곧 자연계의 가장 근본을 이루는 특징들이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말씀에서는, 날과 해, 그리고 수량, 수치들의 숫자들은 그로 말미암는 어떤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That by “days” and “years” are signified times and states needs no further explication, except to say that in the world there must needs be times and measures, to which numbers may be applied because they are in the ultimates of nature; but whenever they are applied in the Word, the numbers of the days and years, and also of the measures, have a signification abstractedly from the times and measures, in accordance with the signification of the number; as where it is said that there are six days of labor, and that the seventh is holy, of which above; that the jubilee should be proclaimed every forty-ninth year, and should be celebrated in the fiftieth;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출20:9)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20:11) (AC.395)

 

8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10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레25:8, 10)

 

이 외에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주님의 열두 제자 및 that the tribes of Israel were twelve, and the apostles of the Lord the same; that there were seventy elders, and as many disciples of the Lord; 

 

16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에 네가 알기로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칠십 명을 모아 내게 데리고 와 회막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24모세가 나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에게 알리고 백성의 장로 칠십 인을 모아 장막에 둘러 세우매 25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영을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영이 임하신 때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하지 아니하였더라 (민11:16, 24-25)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눅10:1)

 

그리고 다른 많은 경우 역시 모두 이렇게 구체적 숫자가 적용되었을 때, 그것으로 인해 어떤 특별한 의미들을 갖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그 숫자가 의미하는 상태입니다. and so in many other instances where the numbers have a special signification abstractedly from the things to which they are applied; and when thus abstracted, then it is states that are signified by the numbers.

 

※ 영계라는 곳은 일단 시공간(視空間)에 대한 개념이 전무(全無)하다고 합니다. 자연계에 사는 우리에게나 친숙한 이 시공간 개념은 해(태양, sun)를 기준으로 비롯되는 것인데, 영계에는 이 자연계의 해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영계는 대신 상태(狀態, state)와 상태의 변화가 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말씀에 사용된, 시간 관련 표현들에 대해서 우리는 시간개념으로 읽지만, 천사들은 상태개념으로 읽는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계22:20)도 우리는 ‘속히’, 즉 ‘어서, 금방, 곧’으로 읽지만, 천사들은 ‘반드시, 꼭’으로 읽는 것처럼 말입니다. 천국의 상태들은 지상의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 이렇게 시공간 개념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 그래서 여기 ‘’과 ‘’ 등 시간 관련 표현들 역시 상태, 그리고 때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기 ‘때와 상태를 나타낸다’는 건...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1950년 6월 25일’이라는 과거 어떤 특별한 날을 접하면 외국인들에겐 뭐, 70여 년 전 무슨 날인가 보다 하겠지만, 우리 민족에겐 정말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 잊을 수 없는 민족상잔(民族相殘)의 비극이 시작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저는 1961년생으로, 6.25 전쟁 발발 10년 후에 태어나 실제로 전쟁을 겪어보지 않았음에도 불구, 풍요와 안락을 누리는 요즘 세대와는 다르게 전쟁이라는 게 어떤 것이라는 걸 나름 찐하게 느끼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그 민족 간 전쟁의 결과, 이후 나라 전체의 삶이 얼마나 빈곤, 빈궁과 결핍에 쩔어 살았는지를 어린 시절, 온몸으로 체험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와 우리 세대는 이런 걸 잘 압니다. ‘1950년 6월 25일’이라는 이 날짜 표현 하나에 몇 날 며칠을 얘기해도 다 담지 못하는 엄청난 사연들, 각 개인과 나라, 민족 전체의 상태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 특별한 어떤 ‘’을 언급했을 뿐인데, 우리 부모 세대는 그 ‘’ 그 시절, 몸서리쳐지는 ‘상태’를 느끼시는 것입니다.

 

※ 태고시대, 태고교회 사람들은 이런 식의 표현법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을지 실제로는 모르는, 그리고 천국 관점에서는 굳이 지상의 후대(後代)가 그걸 꼭 알아야 하나 싶은 장구한 한 세월, 한 시대를 오늘 본문의 이런 식, 곧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처럼 ‘구백삼십’(930)이라는 숫자 표현 하나에 다 담은 것이고, 천사들은 이 숫자를 읽을 때 그 안에 담긴 모든 ‘때와 상태’를 읽는 것입니다. 창세기 11장 ‘에벨’의 때까지는 등장하는 모든 사람 이름과 나이 등은 이런 식, 곧 사람 이름은 어떤 특정 한 개인이 아닌, 교회를, 그 시대 교리 및 신앙으로, 나이 등은 때와 상태를 표현하는 용도로 사용된, 그래서 우리는 실제 역사는 아브라함 이후부터임을 염두에 두고 창세기를 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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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s) (years, )(times)와 상태(states), ‘사람의 죽음은 그런 퍼셉션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

 

5절,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that man lived were nine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he died.

 

492

여기 ‘(days)과 ‘(years, )는 위에서처럼(AC.482, 487, 488) 때(times)와 상태(states)를, ‘사람의 죽음’은 그런 퍼셉션(perception)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By “days” and “years” are here signified times and states, as above; by “man’s dying” is signified that such perception no longer exis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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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장 4, 7, 10, 13, 16, 19, 26  30절 등에 나오는 자녀들’’(sons and daughters)의 속뜻 선과 진리이며, 이는 그 시절, 퍼셉션으로 지각되었고, 태고교회는 이 퍼셉션으로만 설명 가능한 교회였으며, 이 퍼셉션은 이후 이어지는 모든 교회의 원리요, 부모였다.

 

4절,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491

본 장 4, 7, 10, 13, 16, 19, 26 및 30절 등에 나오는 ‘아들’과 ‘’은 같은 걸 상징합니다. 이런 것이 교회요, 이런 것이 ‘자녀들’’(sons and daughters), 즉 이런 것이 선과 진리입니다. 여기서 말씀드린 진리와 선은 뚜렷하게 지각된 것인데요, 태고교회가 바로 이것들로 설명이 되며, 다른 모든 이어지는 교회들의 원리요, 부모였기 때문입니다. The same things are signified by “sons” and “daughters” in this chapter (verses 4, 7, 10, 13, 16, 19, 26, 30), but such as is the church, such are the “sons and daughters,” that is, such are the goods and truths; the truths and goods here spoken of are such as were distinctly perceived, because they are predicated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e principal and parent of all the other and succeeding chur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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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서 (daughters)은 종종 선을 가리킨다. 사랑과 신앙의 선과 아름다움을 (daughter)로 설명하며, 그래서 교회를 선으로 말미암아 (daughters)이라 한다.

 

4절,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490

말씀에서 ‘(daughters)은 종종 선을 가리킵니다. 시편입니다. In the Word “daughters” frequently denote goods; as in David:

 

10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11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12두로의 딸은 예물을 드리고 백성 중 부한 자도 네 얼굴 보기를 원하리로다 13왕의 딸은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니 그의 옷은 금으로 수 놓았도다 14수 놓은 옷을 입은 그는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며 시종하는 친구 처녀들도 왕께로 이끌려 갈 것이라 15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함을 받고 왕궁에 들어가리로다 16왕의 아들들은 왕의 조상들을 계승할 것이라 왕이 그들로 온 세계의 군왕을 삼으리로다 17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 (시45:10-17) Kings’ daughters were among thy precious ones; at thy right hand doth stand the queen in the best gold of Ophir; the daughter of Tyre with a gift; the king’s daughter is all glorious within; of eyelet work of gold is her raiment; instead of thy fathers shall be thy sons, (Ps. 45:10-17)

 

여기서는 사랑과 신앙의 선과 아름다움을 ‘(daughter)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선으로 말미암아 ‘(daughters)이라 합니다. 이사야 37장 22절과 다른 많은 데서 ‘딸 시온’, ‘딸 예루살렘’으로 부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내 딸 백성’(사22:4), ‘딸 다시스’(사23:10), ‘딸 시돈’(사23:12) 및 ‘들에 있는 딸’(겔26:6, 8)이라고도 합니다. where the good and beauty of love and faith are described by the “daughter.” Hence churches are called “daughters” by virtue of goods, as the “daughter of Zion” and the “daughter of Jerusalem” (Isa. 37:22, and in many other places); they are also called “daughters of my people” (Isa. 22:4), the “daughter of Tarshish” (Isa. 23:10), the “daughter of Sidon” (verse 12), and “daughters in the field” (Ezek. 26:6, 8).

 

 

여호와께서 그에 대하여 이같이 이르시되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조소하였고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사37:22)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내 딸 백성이 패망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나를 위로하려고 힘쓰지 말지니라 (사22:4)

 

10딸 다시스여 나일 같이 너희 땅에 넘칠지어다 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 12이르시되 너 학대 받은 처녀 딸 시돈아 네게 다시는 희락이 없으리니 일어나 깃딤으로 건너가라 거기에서도 네가 평안을 얻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사23:10, 12)

 

6들에 있는 그의 딸들은 칼에 죽으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8그가 들에 있는 너의 딸들을 칼로 죽이고 너를 치려고 사다리를 세우며 토성을 쌓으며 방패를 갖출 것이며 (겔26: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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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sons and daughters), 그들이 지각했던 진리와 선(the truths and goods)을 의미

진리와 선(the truths and goods)처럼 영어로는 복수형이나 번역은 단수로 합니다. 우리말로는 좀 어색하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필요할 경우, 괄호 안에 영어 복수형을 표기합니다.

 

4절,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489

자녀(sons and daughters)는 그들이 지각했던 진리와 선(the truths and goods)을 의미하며, 실제로 ‘아들’은 진리를, ‘’은 선을 의미하고 있음은 예언서들에 나오는 많은 구절들을 보면 분명합니다. 말씀을 보면, 고대에도 그랬지만, 교회의 잉태와 해산(the conceptions and births of the church)을 가리켜 ‘자녀’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처럼 말입니다. That by “sons and daughters” are signified the truths and goods which they had a perception of, and indeed by “sons” truths, and by “daughters” goods, is evident from many passages in the prophets; for in the Word, as also in olden time, the conceptions and births of the church are called “sons and daughters,” as in Isaiah:

 

3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4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5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사60:3-5) The Gentiles shall come to thy light, and kings to the brightness of thy rising; lift up thine eyes round about and see; all they gather themselves together and come to thee; thy sons shall come from far, and thy daughters shall be nursed at thy side; then thou shalt see and flow together, and thy heart shall be amazed, and shall be enlarged, (Isa. 60:3–5)

 

위 본문에서 ‘아들들’은 진리를, ‘딸들’은 선을 의미합니다. in which passage “sons” signify truths, and “daughters” goods.

 

[2] 시편입니다. In David:

 

11이방인의 손에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그들의 입은 거짓을 말하며 12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들과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들과 같으며 (시144:11-12) Deliver me and rescue me from the hand of the sons of the stranger, whose mouth speaketh vanity; that our sons may be as plants grown up in their youth, that our daughters may be as cornerstones hewn in the form of a temple, (Ps. 144:11–12)

 

여기 ‘이방인(the sons of the stranger)은 거짓된 진리들, 곧 거짓들을, ‘우리 아들들’은 진리의 교리들을, ‘우리 딸들’은 선의 교리들을 말합니다. where the “sons of the stranger” signify spurious truths, or falsities; “our sons” signify doctrinals of truth; “our daughters,” doctrinals of good.

 

[3] 이사야입니다. In Isaiah:

 

6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끝에서 오게 하며, 8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 (사43:6, 8) I will say to the north, Give up, and to the south, Keep not back; bring my sons from far, and my daughters from the ends of the earth; bring forth the blind people, and they shall have eyes; the deaf, and they shall have ears, (Isa. 43:6, 8)

 

위 구절에서, ‘아들들’은 진리를, ‘딸들’은 선을, ‘보지 못하는 백성(the blind)은 진리를 볼 사람들을, ‘듣지 못하는 백성(the deaf)은 진리를 순종할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in which passage “sons” signify truths; “daughters,” goods; the “blind,” those who would see truths; and the “deaf,” those who would obey them.

 

[4] 예레미야입니다. In Jeremiah:

 

부끄러운 그것이 우리가 청년의 때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산업인 양 떼와 소 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사온즉 (렘3:24) Shame hath devoured the labor of our fathers from our youth; their flocks, their herds, their sons, and their daughters, (Jer. 3:24)

 

여기 ‘아들들’과 ‘딸들’은 진리와 선을 의미합니다. where “sons” and “daughters” signify truths and goods.

 

자손’과 ‘아들들’이 진리를 의미함은 이사야를 보면 명백합니다. That “children” and “sons” signify truths is plain from Isaiah:

 

22야곱이 이제는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겠고 그의 얼굴이 이제는 창백해지지 아니할 것이며 23그의 자손은 내 손이 그 가운데에서 행한 것을 볼 때에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야곱의 거룩한 이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24마음이 혼미하던 자들도 총명하게 되며 (사29:22-24) Jacob shall not now be ashamed, neither shall his face now wax pale; for when he shall see his children the work of my hands in the midst of him, they shall sanctify my name, and shall sanctify the Holy One of Jacob, and shall fear the God of Israel; they also that erred in spirit shall know understanding, (Isa. 29:22–24)

 

여기 ‘야곱의 거룩한 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주님을, ‘자손(children)은 거듭난 사람들, 곧 이 본문이 설명하고 있는 대로 선과 진리를 이해하게 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where the “holy one of Jacob, the God of Israel,” signifies the Lord; “children” signify the regenerate, who have the understanding of good and truth, as is indeed explained.

 

[5] 다시 Again: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사54:1) Sing, O barren, thou that didst not bear, for more are the sons of the desolate than the sons of the married wife, (Isa. 54:1)

 

여기 ‘홀로 된 여인의 자식(the sons of the desolate)은 초대교회(the primitive church), 즉 이방인들의 교회에 속한 진리를, ‘남편 있는 자의 자식(the sons of the married wife)은 유대교회에 속한 진리들을 말합니다. where the “sons of the desolate” signify the truths of the primitive church, or that of the Gentiles; the “sons of the married wife,” the truths of the Jewish church.

 

[6] 예레미야입니다. In Jeremiah:

 

내 장막이 무너지고 나의 모든 줄이 끊어졌으며 내 자녀가 나를 떠나가고 있지 아니하니 (렘10:20) My tent is laid waste and all my cords are plucked out; my sons are gone forth of me, and are not, (Jer. 10:20)

 

여기 ‘자녀(sons)는 진리를 의미합니다. 다시 where “sons” signify truths. Again:

 

그의 자손은 예전과 같겠고 그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렘30:20) His sons shall be as aforetime, and their congregation shall be established before me, (Jer. 30:20)

 

여기 ‘자손(sons)은 고대교회의 진리들을 말합니다. 스가랴입니다. where “sons” signify the truths of the ancient church. In Zechariah:

 

시온아 내가 네 자식들을 일으켜 헬라 자식들을 치게 하며 너를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슥9:13) I will stir up thy sons, O Zion, with thy sons, O Javan, and make thee as the sword of a mighty man, (Zech. 9:13)

 

사랑의 신앙에 속한 진리들을 의미하면서 signifying the truths of the faith of love.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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