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멕의 속뜻, 황폐함(vastation)

 

23절,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And Lamech said unto his wives, Adah and Zillah, Hear my voice, ye wives of Lamech, and with your ears perceive my speech, for I have slain a man to my wounding, and a little one to my hurt.

 

428

이 본문도 그렇고, 다음 절도 그렇고... 아주 분명한 사실은 ‘라멕’이 황폐함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길, ‘내가 사람을 죽였다’, ‘내가 소년을 죽였다’ 하고 있고, 또 가인의 경우는 그 벌이 일곱 배이지만, 라멕의 경우는 ‘일흔일곱 배’라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From the contents of this and the following verse, it is very evident that by “Lamech” is signified vastation; for he says that he had “slain a man,” and a “little child,” and that Cain should be avenged sevenfold, and Lamech “seventy and sevenf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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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7(D1)-주일예배(2538, 눅18,1-8),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의 속뜻.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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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의 속뜻

 

 

1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눅18:1-8)

 

 

기도에 의존하면 안 되는 이유는 (자아로부터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기도하는 사람은 그가 구하는 것이 유익한 것인지 아닌지는 오직 주님만 아신다고 항상 생각하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를 들어주실지 말지를 주님께 맡겨야 하고 그에 따라 겟세마네의 가장 쓰라린 시험 가운데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자신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해야 한다. (천국의 비밀 8179, 이순철 역) prayer is not to be relied upon. For in prayer from the Divine it is always thought and believed that the Lord alone knows whether it is profitable or not; and therefore the suppliant submits the hearing to the Lord, and immediately after prays that the will of the Lord, and not his own, may be done, according to the Lord’s words in His own most grievous temptation at Gethsemane (Matt. 26:39, 42, 44).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26:39)

 

 

오늘부터 18장입니다. 오늘 말씀이 있기 바로 전인, 요 앞 장 17장에서 주님께서 가르치신 내용은, 교회의 마지막 때 환난과 심판이 있는데, 그때 신앙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것이었는데요, 교회의 마지막 때 모습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24장 11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11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많은 사람을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는 교회의 거짓된 교리를 의미하고, ‘불법’은 교회들이 저지르는 악을 뜻합니다. 교회의 상태가 이렇다 보니, 교회의 마지막 때 신앙인들에게는 시험이 참으로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분별력을 잃고 거짓 진리에 휩쓸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세상 즐거움에 빠져 신앙을 포기합니다. 교회의 마지막 때 신앙인들에게 닥치는 시험을 창세기에서는 노아 시대에 큰 홍수가 났을 때, 방주에 오른 사람들이 오랫동안 격랑 속을 떠다니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주님 당시 사도들도 그런 시험을 겪었고, 그리고 오늘 이 시대 우리도 역시 그런 시험 가운데 있는데요, 그렇다면, 이런 환난 가운데서 어떻게 해야 시험을 극복하고 마음속에 주님의 새 교회를 세울 수 있을까요?

 

1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오늘 말씀에서 주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항상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의 내적 진리로 다시 오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험 중에도 낙심하지 않고 항상 기도하는 신앙인들의 모습을 본문에는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로 그리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 2절과 3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어떤 도시에 사는 과부가 재판장에서 가서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달라고 하는데, 특이한 것은, 그 재판장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또 사람을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에서 ‘도시’나 ‘성읍’은 교회의 교리를 뜻하는데요, 그러니까 과부는 교회의 교리 안에서 생활하는 어떤 신앙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재판장은 누굴까요? ‘재판장’은 보통 진리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진리가 아니라 신앙인들이 가지고 있는 진리의 지식, 진리에 관한 지식을 뜻합니다. 재판장이 진리의 지식을 뜻하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한다’는 건 주님에 대해서나 이웃에 대해 사랑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재판장은 사랑 없는 진리, 즉 진리가 아니라 진리의 지식, 진리에 관한 지식을 뜻합니다. 과부는 누굴까요? ‘과부’는 남편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영적으로는 선은 있는데 진리가 없는 사람을 뜻합니다. 선은 있는데 진리가 없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삶 가운데서 선을 행하기는 하는데 진리가 없어서 잘못 행하는 걸 말합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이웃의 호의는 받아들이지 않고, 일방적으로 베풀기만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얼핏 보면 선한 행동 같지만, 상대가 원치 않을 때는 자칫 인간관계가 소원해질 수도 있지요. 그런가 하면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하면서도 그게 잘못인지를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요, 예를 들면 이런 게 모두 선만 있고 진리가 없어서 생기는 일입니다. 신앙인들이 스스로 진리 없음을 느낄 때, 말씀을 통해 또는 교리 공부를 통해 진리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진리를 통해 모든 종류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인데요, 이것이 바로 과부가 재판장에게 달려가 원한을 풀어달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원한’은 진리가 없음으로 인해 생겼던 모든 어리석은 행동들을 뜻합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종류의 과부도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과부가 선은 있는데 진리가 없는 과부라면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과부는 반대로 진리는 있는데 선이 없는 과부입니다. 진리는 있는데 선이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진리에 대해 아는 건 많은데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는 사람입니다.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인데요, 이 경우에 ‘과부가 재판장을 찾아가는 것’은 의지가 약한 신앙인들이 진리를 통해 그것을 극복하려고 기도하면서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부가 자꾸 찾아가자 마침내 재판장이 마음의 결심을 합니다. 그것에 대해 4절과 5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4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재판장은 처음 얼마 동안은 과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신앙인들이 진리를 통해 영적 문제들을 해결하려 할 때, 처음에는 잘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통해 신앙인들이 처음 가지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라 진리에 관한 지식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관한 지식은 마치 나무토막과 같은 것이어서 아무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상태에서는 영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진리의 지식들은 어떻게 해야 능력 있는 진리로 변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진리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신앙인들이 가진 진리에 관한 애정을 ‘과부가 수시로 재판장을 찾아가는 것’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 과부처럼 우리도 거듭남에 관한 모든 문제를 재판장인 진리와 그 능력으로 풀어나가야 합니다. 신앙인들이 진리를 통해 거듭남에 관한 자신의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애쓸 때, 주님께서는 그들의 이런 애정 가운데로 오셔서 죽어 있던 진리의 지식 속으로 주님의 생명을 불어넣으시고, 그렇게 해서 그 지식을 살아있는 진리로 만드십니다. 바로 그때가 본문에서 재판장이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제는 과부의 원한을 풀어 주리라 결심하는 순간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라는 것은 사랑 없는 진리가 주님에 의해 사랑 있는 진리로 변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는 건 사랑 있는 진리로 이제는 어떤 시험에서도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나타냅니다. 과부가 품고 있었던 ‘원한’은 뭘까요? 진리 또는 선이 없음으로 해서 그동안 지옥의 영들에게 당했던 수모와 아픔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6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재판장은 신앙인들이 처음 가지는 진리인 진리의 지식을 뜻합니다. 재판장을 불의하다 하는 것은 진리의 지식은 그 자체로 사랑 없는 진리이며, 그러므로 의롭지 않다는 뜻입니다. 비록 사랑 없는 진리라도 신앙인들이 그걸 붙들고 거듭나기를 힘쓸 때, 주님은 그 지식 안으로 오셔서 그것을 살아있는 진리로 만드시고, 그것으로 항상 시험에서 이길 수 있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이 말씀의 속뜻은, 말씀의 문자적 진리에라도 순종하면, 그들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재판장의 말을 듣는 것은 순종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하십니다. 여기서는 불의한 재판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한을 풀어 주신다고 하십니다. 여기 ‘하나님’은 뉘십니까? 말씀의 내적 의미로 다시 오신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말씀의 내적 진리를 통해 그동안의 원한을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내적 의미, 곧 속뜻 안에는 지옥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전능하신 주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능력에 대해 이사야서 30장 26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일곱 배’란 그때의 진리의 능력이 전보다 완전하고 거룩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진리인, 말씀의 내적 진리를 붙들고 각자의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모든 문제를 바로 해결해 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되 오래 참지 않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8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의 내적 진리로 오신 주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미친다면 모든 원한이 속히 풀릴 것입니다. 병이 고쳐지고, 가난에서 건짐을 받을 것이고, 그 밖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습니다. 어떤 조건입니까? 주님이 말씀의 내적 진리로 다시 오셨다는 것과, 그 진리 가운데 무한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진리의 능력이 속히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믿음은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새 교회 가르침 ‘신앙에 관한 교리’ 69항을 보면,

 

인애는 믿음의 생명이고 본질이다. 그러므로 인애에서 분리된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의 교리 69, 이순철 역) Faith separated from charity is no faith, because charity is the life of faith: its soul, and its essence. (F.69)

 

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믿음, 신앙의 본질은 주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인애, 체어리티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기도의 응답이 없다면,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시험에서 번번히 넘어진다면, 자신이 과연 체어리티의 삶을 살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체어리티의 삶을 살지 않으면 진정한 믿음이 생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간단하고 쉬운 일이라도 매일 같이 체어리티를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때 진실한 믿음이 생기고 그것을 통해 주님의 능력이 흘러들어와 우리들의 삶을 높이 들어 올릴 것입니다.

 

시험을 당할 때는 낙심하지 마시고, 과부의 심정으로 재판장이신 주님께 매달리시기 바랍니다. 만약 시험에서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는다면, 시험을 통해 이루시려는 주님의 목적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우리들의 영적 행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잘못이 있다면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때 막혔던 혈관이 뚫리는 것처럼 진리의 능력이 주님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와 모든 문제가 풀릴 것입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이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성도와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15:5)

 

아멘

 

2021-11-14(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2024-04-07(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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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멕’,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의 속뜻

 

23절,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And Lamech said unto his wives, Adah and Zillah, Hear my voice, ye wives of Lamech, and with your ears perceive my speech, for I have slain a man to my wounding, and a little one to my hurt.

 

427

앞서 살핀 대로(cf. 405, 406), ‘라멕’은 황폐함(vastation)을 의미합니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말을 들으라’는 죄에 대한 자백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교회라는 게 있는 데서만 할 수 있는 것이며,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cf. 409), 라멕의 ‘아내들’이 의미하는 게 바로 이 교회입니다.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는 그가 신앙을 소멸시켰음을 의미하는데, 여기 사람은 신앙을(cf. 340, 367:1)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은 그가 체어리티를 소멸시켰음을 의미합니다. 상처 상함은 더이상 온전한 것이 없음을 의미하는데, 여기 상처는 신앙이 황량해졌음을, ‘상함은 체어리티가 황폐해졌음을 의미합니다. By “Lamech” is signified vastation, as before; that he “said unto his wives Adah and Zillah, With your ears perceive my speech” signifies confession, which can only be made where there is a church, which, as has been said, is signified by his “wives.” I have slain a man to my wounding” signifies that he had extinguished faith, for by a “man” is signified faith; “a little one to my hurt” signifies that he had extinguished charity. By a “wound” and a “bruise” is signified that there was no more soundness; by a “wound,” that faith was desolated; by a “hurt,” that charity was devast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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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속뜻, 자연적 진리

 

22절,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And Zillah, she also bare Tubal-Cain, 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 and the sister of Tubal-Cain was Naamah.

 

426

’이 자연적 진리를 의미한다는 것은 에스겔 두로에 대한 말씀을 보면 더 분명합니다. That “iron” signifies natural truth is further evident from what Ezekiel says of Tyre:

 

12다시스는 각종 보화가 풍부하므로 너와 거래하였음이여 은과 철과 주석과 납을 네 물품과 바꾸어 갔도다, 19워단과 야완은 길쌈하는 실로 네 물품을 거래하였음이여 가공한 쇠와 계피와 대나무 제품이 네 상품 중에 있었도다 (겔27:12, 19) Tarshish was thy trader by reason of the multitude of all riches; in silver, iron, tin, and lead, they gave thy traffickings. Dan, and Javan, and Meusal furnished bright iron in thy tradings; cassia and calamus were in thy mart. (Ezek. 27:12, 19)

 

이 구절들뿐 아니라 같은 장 앞뒤 이어지는 구절들을 볼 때 정말 분명한 것은, 이 모든 표현이 천적, 영적 부들에 대한 의미라는 것과, 모든 특정 표현들, 하나하나 언급된 이름들까지 어떤 특별한 의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영이요,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From these words, as well as from what is said both previously and subsequently in the same chapter, it is very evident that celestial and spiritual riches are signified; and that every particular expression, and even the names mentioned, have some specific signification, for the Word of the Lord is spiritual, and not verbal.

 

[2] 예레미야입니다. In Jeremiah:

 

12누가 능히 철 곧 북방의 철과 놋을 꺾으리요 13그러나 네 모든 죄로 말미암아 네 국경 안의 모든 재산과 보물로 값없이 탈취를 당하게 할 것이며 (렘15:12-13) Can one break iron, even iron from the north, and brass? Thy substance [facultates] and thy treasures will I give for a spoil without price, and this for all thy sins, (Jer. 15:12–13)

 

여기 ‘’과 ‘’은 자연적 진리와 선을 의미하며, 그것이 ‘북방(the north)에서 온다는 것은 그것이 감각적이고 자연적임을 의미합니다. 영적, 천적인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짙은 흑암, 즉 ‘북방’과 같기 때문인데, 빛 혹은 ‘남방(the south)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말입니다. 또 그늘과도 같은데, 그늘은 두발-가인의 ‘어머니’인 ‘씰라’로 의미되는 것입니다. 재산 보물은 천적, 영적 부를 의미하는 게 아주 분명합니다. where “iron” and “brass” signify natural truth and good; that it came from the “north” signifies what is sensuous and natural; for what is natural, relatively to what is spiritual and celestial, is like thick darkness (that is, the “north”) relatively to light or the “south”; or like shade, which is also signified here by “Zillah,” who is the “mother.” That the “substance” and “treasures” are celestial and spiritual riches is also very evident.

 

[3] 다시 에스겔입니다. Again in Ezekiel:

 

또 철판을 가져다가 너와 성읍 사이에 두어 철벽을 삼고 성을 포위하는 것처럼 에워싸라 이것이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리라 (겔4:3) Take thou unto thee a pan of iron, and set it for a wall of iron between thee and the city, and set thy faces toward it, and let it be for a siege, and thou shalt straiten against it, (Ezek. 4:3)

 

여기도 역시 ‘’이 진리를 의미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강함은 진리의 속성입니다. 진리를 저항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철을 가리켜 다니엘과 계시록에서, ‘부서뜨리다’, ‘깨뜨리다 하는 것입니다. ‘은 진리, 곧 신앙의 진리를 의미합니다. where also it is evident that “iron” signifies truth. Strength is attributed to truth, because it cannot be resisted, and for this reason it is said of iron—by which is signified truth, or the truth of faith—that it “breaks in pieces” and “crushes”; as in Daniel (2:34, 40), and in John:

 

26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계2:26–27) He that overcometh, to him will I give sovereign power over the nations, that he may pasture them with a rod of iron; as the vessels of a potter shall they be broken to shivers. (Rev. 2:26–27)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계12:5) The woman brought forth a man child, who should pasture all nations with a rod of iron. (Rev. 12:5)

 

[4] ‘철장’(鐵杖, a rod of iron)은 주님의 말씀에 속한 진리임을 계시록에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That a “rod of iron” is the truth which is of the Word of the Lord, is explained in John:

 

11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3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5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계19:11, 13, 15) I saw heaven open, and behold a white horse, and he that sat upon him was called faithful and true, and in righteousness he doth judge and fight; He was clothed with a vesture dipped in blood, and his name is called the Word of God; out of his mouth goeth a sharp sword, that with it he should smite the nations; and he shall pasture them with a rod of iron. (Rev. 19:11, 13, 15)

 

단2:34, 40

34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40넷째 나라는 강하기가 쇠 같으리니 쇠는 모든 물건을 부서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쇠가 모든 것을 부수는 것 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서뜨리고 찧을 것이며 (단2:34,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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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리’의 속뜻, 자연적 선

 

22절,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And Zillah, she also bare Tubal-Cain, 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 and the sister of Tubal-Cain was Naamah.

 

425

오늘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는데요, 바로 ‘구리’(銅, brass)는 자연적 선을 의미한다는 것과, 말씀에 나오는 모든 금속은 그 속뜻으로는 어떤 특별한 의미들을 갖는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金, gold)은 천적 선을, ‘’(銀, silver)은 영적 진리를, ‘’(銅, brass)은 자연적 선을, ‘’(鐵, iron)은 자연적 진리를, 그리고 그렇게 다른 금속들도 그런데요, ‘나무’(木, wood)와 ‘’(石, stone)도 마찬가지입니다. 법궤와 성막, 그리고 성전에 사용된 ’, ‘’, ‘  나무가 그런 건데요, 그 자세한 것은 주님의 신적 자비로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거기에 이런 의미들이 있다는 것이 예언서들을 보면 아주 분명히 나타나는데요, 예를 들면, 이사야입니다. It is unknown to the world at the present day that “brass” signifies natural good, and also that every metal mentioned in the Word has a specific signification in the internal sense—as “gold,” celestial good; “silver,” spiritual truth; “brass,” natural good; “iron,” natural truth; and so on with the other metals, and in like manner “wood” and “stone.” Such things were signified by the “gold,” “silver,” “brass,” and “wood,” used in the ark and in the tabernacle and in the temple, concerning which,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That such is their signification is manifest from the prophets, as from Isaiah:

 

16네가 이방 나라들의 젖을 빨며 뭇 왕의 젖을 빨고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17내가 금을 가지고 놋을 대신하며 은을 가지고 철을 대신하며 놋으로 나무를 대신하며 철로 돌을 대신하며 화평을 세워 관원으로 삼으며 공의를 세워 감독으로 삼으리니 (사60:16-17) Thou shalt also suck the milk of the gentiles, and shalt suck the breast of kings. For brass I will bring gold, and for iron I will bring silver, and for wood brass, and for stones iron; I will also make thy tribute peace, and thine exactors righteousness, (Isa. 60:16–17)

 

이 내용은 주님의 오심과 그의 나라, 그리고 천적 교회에 관한 것입니다. 금을 가지고 놋을 대신하며는 자연적 선을 대신하는 천적 선을, ‘은을 가지고 철을 대신하며는 자연적 진리를 대신하는 영적 진리를, ‘놋으로 나무를 대신하며는 육적(肉的, corporeal) 선을 대신하는 자연적 선을, ‘철로 돌을 대신하며는 감각적 진리를 대신하는 자연적 진리를 각각 의미합니다. 에스겔입니다. treating of the Lord’s advent, of his kingdom, and of the celestial church. For brass gold,” signifies for natural good celestial good; “for iron silver,” signifies for natural truth spiritual truth; “for wood brass,” signifies for corporeal good natural good; “for stones iron,” signifies for sensuous truth natural truth. In Ezekiel:

 

야완과 두발과 메섹은 네 상인이 되었음이여 사람과 놋그릇을 가지고 네 상품을 바꾸어 갔도다 (겔27:13) Javan, Tubal, and Meshech, these were thy merchants, in the soul of man, and vessels of brass they gave thy trading, (Ezek. 27:13)

 

두로(Tyre), 영적, 천적 부를 소유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두로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놋그릇’은 자연적 선입니다. speaking of Tyre, by which are signified those who possess spiritual and celestial riches; “vessels of brass” are natural goods.

 

신명기입니다. In Moses: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신8:9) A land whose stones are iron, and out of whose mountains thou mayest hew brass, (Deut. 8:9)

 

여기 또한 ‘’은 감각적 진리를, ‘’은 자연적, 즉 합리적(rational) 진리를, ‘’은 자연적 선을 가리킵니다. 에스겔이 본 것은 where also “stones” denote sensuous truth; “iron,” natural, that is, rational truth; and “brass,” natural good. Ezekiel saw:

 

5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 그들에게 사람의 형상이 있더라 6그들에게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7그들의 다리는 곧은 다리요 그들의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광낸 구리 같이 빛나며 (겔1:7) Four living creatures, or cherubs, whose feet sparkled like the appearance of burnished brass, (Ezek. 1:7)

 

여기 다시 ‘구리’는 자연적 선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은 자연적인 것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에게도 같은 식으로 보였습니다. where again “brass” signifies natural good, for the “foot” of man represents what is natural. In like manner there appeared to Daniel,

 

5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 6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단10:5-6) A man clothed in linen, whose loins were girded with gold of Uphaz, his body also was like the beryl, and his arms and his feet like the appearance of burnished brass. (Dan. 10:5–6)

 

놋뱀’이 주님의 감각적, 자연적 선을 표현하는 것을 위 다니엘 본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That the “brazen serpent” (Num. 21:9) represented the sensuous and natural good of the Lord may be seen above.

 

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민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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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의 속뜻, 자연적 선과 진리에 친숙한 사람들

 

22절,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And Zillah, she also bare Tubal-Cain, 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 and the sister of Tubal-Cain was Naamah.

 

424

말씀에서 ‘기능공(an artificer)은 지혜롭고 지성적이며, 박식한 사람을 의미하는데, 여기 ‘구리와 쇠를 다루는 모든 기능공들’은 자연적 선과 진리에 친숙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계시록입니다. By an “artificer” in the Word is signified a wise, intelligent, and well-informed [sciens] man, and here by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 are signified those who are acquainted with natural good and truth. As in John:

 

21이에 한 힘 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22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계18:21-22) With violence shall that great city Babylon be thrown down, and shall be found no more at all. And the voice of harpers, and musicians, and of pipers, and trumpeters, shall be heard no more at all in her; and no artificer, of whatsoever craft, shall be found any more in her. (Rev. 18:21–22)

 

여기 ‘거문고 타는 자’는 위에서처럼 진리들을, ‘나팔 부는 자들’은 신앙의 선들을, ‘어떠한 세공업자든지’는 알고 있는 자, 곧 진리와 선에 관해 단지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사야입니다. Harpers” here as above signify truths; “trumpeters,” the goods of faith; an “artificer of any craft,” one who knows, or the memory-knowledge of truth and good. In Isaiah:

 

19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은 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20궁핍한 자는 거제를 드릴 때에 썩지 아니하는 나무를 택하고 지혜로운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세우느니라 (사40:19-20) The artificer melteth a graven image, and the smelter spreadeth it over with gold, and casteth silver chains; he seeketh unto him a wise artificer, to prepare a graven image that shall not be moved, (Isa. 40:19–20)

 

환상에 빠져 자기를 위해 거짓된 것, ‘우상(a graven image)을 새기고, 그것을 참인 양 가르치는 자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레미야입니다. speaking of those who from fantasy forge for themselves what is false—a “graven image”—and teach it so that it appears true. In Jeremiah:

 

1이스라엘 집이여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8그들은 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이니 우상의 가르침은 나무뿐이라 9다시스에서 가져온 은박과 우바스에서 가져온 금으로 꾸미되 기술공과 은장색의 손으로 만들었고 청색 자색 옷을 입었나니 이는 정교한 솜씨로 만든 것이거니와 (렘10:1, 8-9) At the same time as they are infatuated they grow foolish, the doctrine of vanities, it is but a stock. Silver beaten out is brought from Tarshish, and gold from Uphaz, the work of the artificer, and of the hands of the smelter; blue and raiment; they are all the work of the wise, (Jer. 10:1, 8–9)

 

거짓들을 가르치고, 자기가 지어낸 이야기를 위조하기 위하여 말씀을 수집하는 자에 관한 말씀이며, 이런 이유로, 이를 가리켜 ‘우상의 가르침’, ‘정교한 솜씨로 만든 것’이라 하고 있습니다. signifying one who teaches falsities, and collects from the Word things with which to forge his invention, wherefore it is called a “doctrine of vanities,” and the “work of the wise.”

 

※ 오늘날 대표적 이단인 신천지가 생각나네요. 이들은 거룩한 말씀을 해괴한 방식, 곧 교주 이만희를 중심으로 전부 풀면서 거짓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에 이런 인물들은 아이돌, 즉 거짓을 위조하는 장색(匠色, artificer)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이들은 아이돌을 금, 곧 선의 겉모습으로, 은, 곧 진리처럼 보이는 것으로, 청색 옷처럼 누가 보아도 아주 자연적인 것으로 꾸몄습니다. Such persons were represented in ancient times by artificers who forge idols, that is, falsities, which they adorn with gold, that is, with a semblance of good; and with silver, or an appearance of truth; and with blue and with raiment, or such natural things as are in apparent agre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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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발가인의 경우, '조상'이라 하지 않고, '인스트럭터'(the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강사, 선생)라 하는 이유

 

22절,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And Zillah, she also bare Tubal-Cain, 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 and the sister of Tubal-Cain was Naamah.

 

423

두발-가인을 일컬어 ‘모든 기능공들의 선생’이라 하면서 야발과 유발의 경우처럼 ‘조상(father)이라고는 하지 않는데요, 그 이유는 그전에는 천적, 영적인 것들, 곧 내적인 것들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야발과 유발의 경우는, 이런 내적인 것들이 그들의 때에 처음 존재하기 시작했음을 가리키기 위해 조상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지요. 반면, 그 새 교회의 자연적, 즉 외적인 것들은 이미 그전부터 존재하다가 이 시점에서 내적인 것들과 연결되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두발-가인의 경우는 조상이라 하지 않고, 대신 모든 기능공들의 선생이라 하는 것입니다. Tubal-Cain is called the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and not the “father,” as was the case with Jabal and Jubal; and the reason is that before there were no celestial and spiritual or internal things. And the term “father” is applied to Jabal and Jubal, to denote that such internal things then first began to exist; whereas natural or external things did exist before, but were now applied to internal things, so that Tubal-Cain is not called the “father,” but the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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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새 교회의 의미, 유대교회의 내적, 외적 양면성, 라헬은 내적, 레아는 외적

 

22절,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And Zillah, she also bare Tubal-Cain, 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 and the sister of Tubal-Cain was Naamah.

 

422

이 새 교회가 어떤 유형의 교회인지는 유대교회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는데요, 유대교회는 내적(內的, internal), 외적(外的, external) 양면성을 가진, 곧 천적, 영적인 것들로 이루어진 내적 교회와, 자연적인 것들로 구성된 외적 교회로 된 교회였습니다. 내적 교회는 라헬로, 외적 교회는 레아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러나 야곱, 아니 오히려 말씀에서 야곱으로 이해된 그의 후손은 오직 외적인 그런 것들만 원하거나 겉으로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레아가 라헬보다 먼저 야곱에게 주어졌습니다. 눈이 침침한 레아로는 유대교회를, 라헬로는 이방의 새 교회를 표현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야곱은 예언서에서 두 가지 의미를 갖게 되었는데요, 하나는 전도된(顚倒, perverted) 상태 가운데 있는 유대교회를, 다른 하나는 이방인들의 참된 외적 교회를 가리킵니다. 내적 교회를 의미할 때는 이스라엘이라 하는데,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나중에 더 말씀드리게 될 것입니다. How the case was with this new church may be seen from the Jewish church, which was both internal and external; the internal church consisting of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and the external church of natural things. The internal church was represented by Rachel, and the external by Leah. But as Jacob, or rather his posterity understood by “Jacob” in the Word, were such as to desire only external things, or worship in externals, therefore Leah was given to Jacob before Rachel; and by blear-eyed Leah was represented the Jewish church, and by Rachel a new church of the gentiles. For this reason “Jacob” is taken in both senses in the prophets, in one denoting the Jewish church in its perverted state, and in the other the true external church of the gentiles. When the internal church is signified, he is called “Israel”; but of these matters, by the Divine mercy of the Lord, more will be said here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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씰라’, 두발가인,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 구리’, ’, 나아마, 두발가인의 누이’의 속뜻

 

22절,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And Zillah, she also bare Tubal-Cain, 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 and the sister of Tubal-Cain was Naamah.

 

421

씰라’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새 교회의 자연적인 것들의 어머니를, ‘두발가인,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는 자연적 선과 진리의 교리를 의미하는데, 여기서 ‘구리’(brass, 銅)는 자연적 선을, ‘’(iron, 鐵)는 자연적 진리를 의미합니다. 나아마, 두발가인의 누이는 어떤 비슷한 교회, 곧 그 교회 밖에 있는 자연적 선과 진리의 교리를 의미합니다. By “Zillah” is signified, as previously stated, the mother of the natural things of the new church; by “Tubal-Cain, 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 the doctrine of natural good and truth, “brass” denoting natural good, and “iron” natural truth. By “Naamah, the sister of Tubal-Cain” is signified a similar church, or the doctrine of natural good and truth outside of tha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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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에 그렇게나 다양한 악기들이 나오는 이유

 

21절,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And his brother’s name was Jubal; he was the father of everyone that playeth upon the harp and organ.

 

420

말씀에는 다양한 악기들이 나오며, 다들 저마다의 의미들이 있습니다. 그 의미들은 주님의 신적 자비로 그때그때 적절한 곳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서는 시편 말씀으로만 말씀드립니다. In the Word mention is made of various instruments, each having its own signification, as will be shown, of the Lord’s Divine mercy, in its proper place; here however we shall adduce only what is said in David: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시27:6) I will sacrifice in the tent of Jehovah sacrifices of shouting, I will sing, yea, I will sing praises unto Jehovah, (Ps. 27:6)

 

여기 ‘장막(tent)은 천적인 것을, ‘즐거운(shouting), ‘노래하며(singing), 그리고 ‘찬송하리로다(singing praises)는 거기에서 나오는 영적인 것을 표현합니다. where by “tent” is expressed what is celestial, and by “shouting,” “singing,” and “singing praises,” what is spiritual thence derived. Again:

 

1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2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3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아름답게 연주할지어다 4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 (시33:1-4) Sing unto Jehovah, O ye righteous, for his praise is comely for the upright; confess ye to Jehovah on the harp, sing unto him with the psaltery, an instrument of ten strings. Sing unto him a new song, play skillfully with a loud noise; for the Word of Jehovah is right, and all his work is in the truth, (Ps. 33:1–4)

 

다음과 같은 내용에 관한 신앙의 진리들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denoting the truths of faith, concerning which these things are said.

 

[2] 영적인 것들, 곧 신앙의 진리들과 선들은 수금과 비파(psaltery, 14, 5 세기 현악기의 일종), 그리고 찬송 및 관련 악기들을 가지고 찬양하였던 반면, 신앙의 거룩한 천적인 것들은 트럼펫 같은 관악기를 가지고 했습니다. 이것이 성전에서 왜 그렇게나 많은 악기들이, 그리고 그렇게나 자주 사용되었는지 하는 이유인데요, 그것은 이런저런 찬양의 주제들마다 해당 특정 악기로 표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Spiritual things, or the truths and goods of faith, were celebrated with the harp and psaltery, with singing and analogous instruments, but the holy or celestial things of faith were celebrated with wind instruments, such as trumpets and the like; and this was why so many instruments were used about the temple and so often, in order that this or that subject might be celebrated with certain instruments; and in consequence of this the instruments came to be taken and understood for the subjects that were celebrated with them.

 

[3] 또 Again:

 

22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또 비파로 주를 찬양하며 주의 성실을 찬양하리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23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나의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속량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 (시71:22-23) I will confess to thee with the psaltery, even thy truth, O my God; unto thee will I sing praises with the harp, O thou holy one of Israel; my lips shall sing when I sing praises unto thee, and my soul which thou hast redeemed, (Ps. 71:22–23)

 

여기서도 신앙의 진리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where also the truths of faith are signified. Again: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시147:7) Answer to Jehovah in confession, sing praises upon the harp unto our God; (Ps. 147:7)

 

감사(confession)는 신앙의 천적인 것들에 대한 존중, 그래서 ‘여호와’가 언급되는 것이며, ‘수금으로 찬양함’은 신앙의 영적인 것들과 관련, 그래서 ‘하나님’이라 하는 것입니다. 다시 confession” has respect to the celestial things of faith, and therefore mention is made of “Jehovah”; and to “sing praises upon the harp” has reference to the spiritual things of faith, wherefore “God” is spoken of. Again: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시149:3) Let them praise the name of Jehovah in the dance, let them sing praises unto him with the timbrel and harp, (Ps. 149:3)

 

여기 ‘소고’(timbrel, 탬버린)는 선을, ‘수금’은 진리를 의미합니다. 선과 진리는 그들이 찬양하는 것으로, 곧 주님이십니다. where the “timbrel” signifies good, and the “harp” truth, which they praise.

 

[4] 다시 Again:

 

3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4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5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시150:3-5) Praise God with the sound of the trumpet; praise him with the psaltery and harp; praise him with the timbrel and dance; praise him with stringed instruments and the organ; praise him upon the loud cymbals; praise him upon the cymbals of shouting. (Ps. 150:3–5)

 

이들 악기들은 찬양의 주제들인 신앙의 선들과 진리들을 가리킵니다. 이걸 모르면, 사람들은 이 각각의 악기들이 무슨 특별한 의미 없이도 여기 이렇게나 많이 언급되었다 믿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을 언급하면서, These instruments denote the goods and the truths of faith which were the subjects of praise; for let no one believe that so many different instruments would have been here mentioned unless each had a distinct signification. Again, referring to the knowledges of good and truth:

 

3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4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시43:3, 4) O send out thy light and thy truth, let them lead me, let them bring me unto the mountain of thy holiness, and to thy habitations, and I will go in to the altar of God, unto God, the gladness of my exultation; yea, I will confess unto thee upon the harp, O God, my God. (Ps. 43:3, 4)

 

[5] 이사야에서, 신앙에 속한 것들과 그에 관한 지식들을 언급하시면서 In Isaiah, referring to the things that are of faith, and the knowledges thereof:

 

잊어버린 바 되었던 너 음녀여 수금을 가지고 성읍에 두루 다니며 기묘한 곡조로 많은 노래를 불러서 너를 다시 기억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사23:16) Take a harp, go about the city, play well, sing many songs, that thou mayest be called to remembrance. (Isa. 23:16)

 

같은 내용이 계시록에서는 계속해서 훨씬 더 명료하게 표현됩니다. The same is expressed still more plainly in John: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계5:8) The four animals and the four and twenty elders fell down before the lamb, having every one of them harps, and golden vials full of incense offerings, which are the prayers of the saints, (Rev. 5:8)

 

여기 누가 보아도 이 말씀은 생물들과 장로들이 글자 그대로 거문고를 갖고 있다는 말씀이 아니라 대신, ‘거문고(harps)는 신앙의 진리들을,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은 신앙의 선들을 의미하는 말씀이라는 게 분명합니다. where it must be evident to everyone that the animals and elders had not harps, but that by “harps” are signified the truths of faith, and by “golden vials full of incense offerings,” the goods of faith.

 

시편에서는 이들 악기들의 퍼포먼스들을 ‘찬송(praises)과 ‘감사’(confessions)라 하고 있습니다. (시42:5; 69:30-31) 그리고 계시록 다른 곳에서 In David the performances on the instruments are called “praises” and “confessions.” (Ps. 42:5; 69:31) And in another place in John:

 

2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 3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14:2-3) I heard a voice from heaven as the voice of many waters, and I heard the voice of harpers harping with their harps, and they sang a new song. (Rev. 14:2–3)

 

또 다른 구절에서 And in another place: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계15:2) I saw them standing by the sea of glass having the harps of God. (Rev. 15:2)

 

천사들과 영들은 선과 진리에 관한 자기들의 차이에 따라 사운즈, 곧 노래 및 악기 연주 소리뿐 아니라, 자신들의 목소리를 구분하며, 또 사운즈 및 그로 인한 악기 소리들과, 선과 진리의 본성과 본질(the nature and essence of the good and the true) 사이 어떤 일치가 있을 수 있을 정도로 똑같은 소리를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인정한다는, 이런 사실들은 언급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It is worthy of mention that angels and spirits distinguish sounds according to their differences with respect to good and truth, not only those produced in singing and by instruments, but also those of voices; and they admit none but such as are in accord, so that there may be a concord of the sounds, and consequently of the instruments, with the nature and essence of the good and the true.

 

※ 즉 천국 그 수많은 천사와 영들 중 단 한 사람도 똑같은 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모든 구성원은 철저히 그 선과 진리의 하나 됨이 다 다르기 때문이며, 천국에서 소리, 즉 사운드(sound)라는 것은 바로 이 선과 진리의 하나 됨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하여간 천국은 ‘똑같다’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곳입니다!

 

시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42:5)

 

시69:30-31

30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31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시69: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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