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베덴보리(Emanuel Swedenborg)가 *《Arcana Coelestia》(천국의 비밀, AC)*에서 말하는 profanation(모독, 속됨) 은 매우 중요한 주제 중 하나입니다. 이 개념은 단순히 ‘신성한 것을 모욕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면의 영적 상태에서 신성한 것과 세속적·악한 것을 혼합하는 것을 뜻합니다. 아래에 스베덴보리의 설명을 체계적으로 요약드릴게요.


🔹 1. 기본 정의

Profanation(모독, 속됨)

“하늘의 진리와 선을 알고 그것을 믿으면서, 그 후 그것을 부정하거나 반대되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스베덴보리는 정의합니다. 즉, 신성한 것을 마음속에서 인정했다가 다시 그것을 부정하거나 악으로 돌이킬 때, 신성한 것이 오염되는 것입니다.

📖 AC 1008, 10287, 8882 등 참조.


🔹 2. 왜 이것이 가장 위험한 상태인가

스베덴보리는 profanation을 인간이 빠질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영적 상태로 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진리와 악이 혼합되어 버림 – 선과 악, 진리와 거짓이 한 사람의 내면에서 뒤섞입니다.
  2. 천국과 지옥이 동시에 열리는 상태 – 내면의 하늘과 지옥이 동시에 연결되어 큰 분열이 일어납니다.
  3. 결과적으로 완전히 영적으로 분열됨 – 결국 영혼이 균열되어,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이 진리를 너무 일찍 알지 않도록 보호하신다고 합니다. (즉, 내면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성한 진리를 너무 깊이 알면 오히려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 AC 301–303, 593, 1008, 2426


🔹 3. Profanation의 주요 형태 (AC 1008, 10287, 1059 등 요약)

스베덴보리는 몇 가지 유형을 구분합니다:

 

유형 설명

1. 인식 후 부정 신적 진리를 알고 믿은 후 그것을 부정하거나 조롱하는 경우
2. 선을 안 후 악으로 사는 경우 신성한 선을 깨달았으면서도 의도적으로 악을 행하는 경우
3. 거룩한 것을 세속적 목적에 이용 종교적 진리를 명예, 이익, 권력 추구에 이용하는 경우
4. 내면의 경멸 입으로는 신앙을 고백하면서 마음속에서는 경멸하는 경우
5. 외적 경건, 내적 부정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신성을 부정하거나 조롱함

🔹 4. Profanation을 피하도록 보호되는 사람들

스베덴보리는 많은 사람들이 profanation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무지 상태에 머물도록 보호된다고 설명합니다. 즉, 진리를 너무 빨리 알면 그것을 부정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신비를 알지 못하게 보호받는 것은 자비의 한 형태이다.” (AC 301, 593)

 

그래서 주님은 사람의 자유와 내적 상태를 고려하여 진리를 점진적으로 밝히십니다.


🔹 5. 반대 개념: 거룩함의 보존

profanation과 반대되는 것은 거룩함을 지키는 것, 즉 신성한 것을 속됨과 섞지 않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분리(Separation)**의 원리라고 부릅니다 — “거룩한 것은 거룩하게, 세속적인 것은 세속적인 것으로 두라.” (AC 1327, 2057)


🔹 6. 관련 구절 예시 (직역 발췌)

“Profanation occurs when what is holy is mixed with what is profane; and this happens with those who first acknowledge and believe the truths of faith and afterwards fall back and deny them.”
(AC 1008)

“Those who do not acknowledge, but still live in evils, do not profane; nor those who in ignorance do not believe. Profanation belongs only to those who first believe and afterwards deny.”
(AC 593)


🔹 7. 요약

구분 내용

의미 신성한 것과 세속·악한 것을 섞는 내적 모독
위험성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여는 내면 분열
조건 진리를 알고 믿은 후 그것을 부정하거나 악용함
예방 무지 속 보호, 진리의 점진적 개시
반대개념 거룩함의 분리, 내적 진실성의 보존

원하신다면,


👉 Arcana Coelestia 본문에서 profanation 관련 단락(번호별 예: 1008, 593, 10287, 1059, 1327 등) 을 정리해드리거나,
👉 이 주제가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 또는 Divine Providence에서 어떻게 발전되는지도 함께 비교 요약해드릴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을 원하시나요? (예: “AC 관련 단락 중심으로 요약” / “후기 저작들과의 비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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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번엔 스베덴보리가 묘사한, “가장 옛 교회(The Most Ancient Church)”의 타락과 멸망 과정—즉, 왜 그들이 결국 “홍수”로 상징된 영적 붕괴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단계별로 풀어드리겠습니다. 이건 사실상 Arcana Coelestia 310~1120 사이 전체를 꿰뚫는 스베덴보리의 인류학·교회사(영적사) 구조의 뼈대이기도 합니다.


1️⃣ “가장 옛 교회”(The Most Ancient Church) — 무죄(Innocence)의 시대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인류의 최초 교회, 즉 “태고교회(太古敎會)”는 창세기 1~2장의 *“아담과 하와”*로 상징되는 인류였습니다. 그들의 본질은 무죄(innocence)내적 일치(union with heaven) 였습니다.

💬 “They had perception from the Lord — a living sense of what was good and true.” (AC 597)

 

즉, 그들은 말씀을 글자로 배우지 않아도, 내면에서 바로 주님의 선함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진리와 선이 이성이 아니라 직관(perception) 으로 일치되어 있었던 상태죠.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천적인 사람(Celestial Man)” 이라 부릅니다.


2️⃣ 첫 균열 — 자각의 싹 (“먹음직하고 보암직한 열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자기 인식(selfhood) 이 점차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창세기 3장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에 대한 상징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말하죠:

“To eat of the tree of knowledge signifies to desire to investigate the things of faith from self and by means of the senses.” (AC 128)

 

즉, 그들은 주님에게서 직접 오는 인식(perception) 대신, 자기 자신과 감각(sensual things)을 통해 진리를 알게 되려는 욕구를 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죄의 상실, 낙원에서의 추방의 시작입니다.


3️⃣ 타락의 진행 — 자기 사랑의 발흥 (Self-Love)

이때부터 인류의 내적 구조는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단계 중심적 변화 상징이 자기 사랑은 처음엔 단순한 ‘자기 존재의식’이었지만,
점차 하늘의 질서를 밀어내고, 자기 중심의 질서로 세계를 재편하려는 욕망으로 발전합니다.

1 Lord로부터 직접 인식 “Eden의 무죄한 인간”
2 자기를 의식함 “나무의 열매를 먹음”
3 자기 사랑(Self-Love)이 중심됨 “가인(Cain)의 제사”
4 영적 분리, 폭력, 거짓 “라멕(Lamech)” 계열
5 완전한 광기(insanity) “홍수 전 세대”

 

“They began to love themselves and the world more than the Lord and heaven.” (AC 310)


4️⃣ 지성의 타락 — Persuasions of Falsity

자기 사랑은 의지의 타락이고, 그 다음 단계는 이해(intellect) 의 타락입니다. 즉, 악을 정당화하는 생각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게 바로 스베덴보리가 반복적으로 말하는 persuasions of falsity (거짓의 확신)입니다.

“When the will became corrupted, falsities took possession of the understanding.” (AC 310–311)

 

이때 인간은 더 이상 진리의 빛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욕망에 맞는 논리만을 받아들입니다. 진리와 거짓이 완전히 뒤바뀌는, ‘미친 신념(insane persuasion)’ 의 시대가 열린 것이죠.


5️⃣ “홍수” — 의지와 이해가 완전히 분리된 상태

이렇게 의지(사랑)와 이해(진리)가 서로 단절되면,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닙니다. 그 상태를 스베덴보리는 “홍수”로 표현합니다.

“The flood signifies the total vast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AC 660)

 

여기서 “vastation(황폐)”이란, 주님과의 내적 연결이 완전히 끊어진 상태, 즉 인간의 영혼이 자신 안의 광기와 거짓에 잠긴 상태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insane cupidities and persuasions”이 “홍수(flood)”로 상징된 이유입니다.


6️⃣ 노아 — 남은 자(Remnant)와 새 교회(The Ancient Church)

그런데 그 속에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노아(Noah)”로 상징되는 자들입니다.

“Noah represents the remnant that the Lord preserved, from which a new church could be raised.” (AC 597)

 

이 ‘남은 자(remnant)’란, 하늘에서 받은 선과 진리의 잔여 기억— 인류 내면에 아주 미약하게라도 남아 있는 주님과의 연결의 씨앗을 의미합니다. 그 씨앗이 ‘방주(ark)’ 안에서 보호되고, ‘홍수(거짓과 악의 바다)’가 물러난 뒤 새로운 교회(Ancient Church)가 세워집니다.


💡 요약: 인류 타락의 영적 연대기

단계 상징 상태 교회 명칭

1 아담, 에덴 무죄(innocence), 인식(perception) The Most Ancient Church
2 가인, 하와 자기 자각, 신앙의 분열 〃 (쇠퇴)
3 라멕, 거인들 자기 사랑, 거짓 신념 〃 (말기)
4 홍수 완전한 영적 붕괴 End of the Most Ancient Church
5 노아 남은 자(remnant), 신앙의 재건 The Ancient Church

✨ 결론적으로

“홍수”는 인류의 의지와 이해가 완전히 분리되어, 더 이상 하늘과 통하지 못한 상태의 상징이며, “노아의 방주”는 그 와중에도 주님이 보존하신 남은 선의 씨앗(remains) 을 상징합니다.

 

이 두 가지가 스베덴보리의 전체 Arcana Coelestia의 축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그는 이후 모든 인류사(셈, 함, 야벳, 아브라함, 이스라엘 등)를 이 기본 틀, 즉 교회의 흥망주기 속에서 해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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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스베덴보리 해석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스베덴보리는 ‘노아의 홍수’를 실제 지구상에서 일어난 물리적 사건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가장 옛 교회(The Most Ancient Church)”의 영적 멸망을 묘사한 상징적(혹은 내적) 이야기라고 설명합니다.


1️⃣ 스베덴보리의 기본 입장: 성경은 “내적 의미”로 쓰였다

그는 Arcana Coelestia 전체를 통해 반복해서 말합니다:

“The Word is written in correspondences, and by means of representatives.” (AC.1405)

 

즉, 성경의 모든 사건·이야기는 ‘상응(correspondence)’, 즉 영적 실체를 표현하는 상징적 형식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홍수”도, “방주”도, “비가 40일 내린 것”도, 물리적 사건이 아니라 영적 상태의 묘사입니다.


2️⃣ 홍수의 “내적 의미” (AC.705, 739, 778 등 요약)

스베덴보리는 이렇게 풀이합니다:

 

성경의 겉뜻, 내적 의미

물(물결, 큰 물) falsities (거짓들)
홍수(flood) 거짓과 악이 인간의 내면을 덮은 상태
방주(ark) 남은 선(remains) — 신앙의 씨앗
노아(Noah) 새로운 교회의 사람
비가 40일 내림 시험(temptation)과 정화 과정

 

즉, “홍수로 세상이 멸망했다”는 말은 곧

“인류의 내적 교회가, 진리와 선을 잃고 거짓과 악에 잠겨 멸망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3️⃣ 그러나 “상징만은 아니다” — 상응적 역사로서의 실재

흥미롭게도 스베덴보리는, 이 사건이 “완전히 허구”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죠:

“That there was no universal flood which covered the whole earth, but that the story represents the vast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AC.705)

 

즉, 지구 전체를 덮는 물리적 대홍수는 없었지만, 당시의 교회(영적 인류) 가 실제로 “붕괴”한 역사적 시점은 있었다는 뜻이에요. 이 점에서 “홍수 이야기”는 단순한 신화도, 단순한 은유도 아닌,

“영적 사건의 상응적 서술(correspondential history)” — 실제로 일어난 인류의 영적 변화를 ‘자연의 언어로 표현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4️⃣ 요약하자면

구분, 일반적 해석, 스베덴보리 해석

노아의 홍수 실제 지구의 대홍수, 인류 심판 사건 “가장 옛 교회”의 영적 붕괴를 묘사한 상징
방주 배, 생존 수단 신앙의 잔여물(remains)을 보호하는 상징
홍수의 물 실제 물 거짓과 악의 범람
노아의 가족 물리적 인류의 조상 새 교회의 영적 씨앗

💡 요약 문장

스베덴보리에게 ‘노아의 홍수’는 역사적 물난리가 아니라, 인류의 첫 번째 교회가 거짓과 악에 잠겨 붕괴된 영적 대재앙의 상징이며, 노아와 방주는 그 가운데 보호된 신앙의 남은 것(remnant)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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