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71

 

이와 같이 저는 영들의 세계에 있는 영들과의 교통에서 물러나 있었으며, 그들은 제가 육체의 생명에서 떠났다고 생각하였습니다. I was thus removed from communication with spirits in the world of spirits, who supposed that I had departed from the life of the body.

 

 

해설

 

이 단락은 사후 이행 과정에서 일어나는 ‘관계의 전환’을 아주 짧지만 결정적으로 보여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면서, 더 이상 ‘영들의 세계에 있는 영들’과 교통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한 고립이나 단절이 아니라, 교통의 층위가 바뀌었음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그는 아직 완전히 영계로 들어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상적 상태에 머문 것도 아닌, 그 중간의 매우 특수한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들의 세계에 있던 영들이 ‘그가 육체의 생명에서 떠났다고 생각했다’는 대목입니다. 이는 죽음이 본질적으로 ‘관계적으로 인식되는 사건’임을 보여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실제로는 아직 육체와 연결된 상태였지만, 영들의 세계에서 그와의 교통이 끊어지자 그들은 그를 ‘이미 죽은 자’로 인식한 것입니다. 여기서 죽음은 육체의 상태보다, 어떤 차원의 존재들과 교통하고 있는가에 의해 판단됩니다.

 

이 점은 매우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이미 영적 세계와 끊임없이 교통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교통의 대상과 방식이 바뀔 뿐입니다. 여기서는 하위의 영들과의 교통이 끊어지고, 보다 내적이고 높은 질서의 천사들과의 결합이 이루어지면서, 외부에서 볼 때 그는 ‘이미 떠난 자’가 됩니다. 즉, 죽음은 한순간의 사건이 아니라, 교통의 중심이 이동하는 과정입니다.

 

또한 이 단락은, 사후의 첫 단계에서 인간이 혼란 속에 던져지는 존재가 아니라, 질서 있게 보호받는 상태에 놓인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하위의 영들과의 교통이 차단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보호의 한 형태입니다.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다양한 영적 영향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님께서 교통의 문을 조절하시는 것입니다.

 

이 짧은 문장은, ‘죽음 이후 인간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매우 정확한 답을 줍니다. 그는 갑자기 천국이나 지옥으로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교통이 정리되고, 관계가 재배치되며, 존재의 중심이 재정렬되는 상태를 거칩니다. AC.171은 바로 그 ‘관계의 재정렬’이 시작되는 지점을 담담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심화

 

1. ‘영들의 세계에 있는 영들과의 교통

 

 

AC.171, 심화 1, ‘영들의 세계에 있는 영들과의 교통’

AC.170.심화 1. ‘영들의 세계에 있는 영들과의 교통’ 이와 같이 저는 영들의 세계에 있는 영들과의 교통에서 물러나 있었으며, I was thus removed from communication with spirits in the world of spirits, (AC.171) 여

bygrace.kr

 

2. ‘영들이 저런 생각을 했다는 걸 어떻게?’

 

 

AC.171, 심화 2, ‘영들이 저런 생각을 했다는 걸 어떻게?’

AC.170.심화 2. ‘영들이 저런 생각을 했다는 걸 어떻게?’ 그들은 제가 육체의 생명에서 떠났다고 생각하였습니다. who supposed that I had departed from the life of the body. (AC.171) 영들이 저런 생각을 했다는

bygrace.kr

 

 

 

AC.172, 창2 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소생 과정’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72 심장 영역에 해당하는 천적 천사들 외에도, 제 머리맡에는 두 천사가 앉아 있

bygrace.kr

 

AC.170, 창2 뒤, ‘천적 천사들이 와 있는 상태’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70 천적 천사들이 함께 있었는데, 그들은 심장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AC.170.심화

 

4.  몇 시간이나?

 

그 결과 마침내 제게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오직 생각과 그에 따른 지각뿐이었고, 이러한 상태가 몇 시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and so that at length scarcely anything was left to me except thought, and the consequent perception, and this for some hours. (AC.170)

 

 몇 시간이나 지속되는 걸까요?

 

 

AC.170의 ‘몇 시간’이라는 표현은 굉장히 흥미롭고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죽음을 단순 ‘순간적 소멸’이 아니라, 실제로는 단계적 전이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인간은 육체를 벗는 순간 곧바로 완전히 새로운 상태로 확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감각과 연결이 점차 풀리면서 영적 의식 쪽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실제로 어떤 ‘transition period’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몇 시간’이 꼭 지상 시간 개념 그대로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영계에서는 상태(state)가 시간보다 더 근본적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가 ‘몇 시간’이라고 말할 때는, 인간이 자연적 의식에서 영적 의식으로 옮겨가는 일정한 상태 지속을 인간 언어로 표현한 것에 가깝습니다. 다만 그는 실제로 그것이 전혀 찰나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 시간이 필요한가? 스베덴보리 흐름에서는, 인간은 평생 육체 감각과 자연적 사고 안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그것이 완전히 제거되면, 인간 존재 전체에 너무 큰 충격이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인간을 점진적으로 자연적 층위에서 영적 층위로 옮기십니다. 마치 아주 어두운 곳에 있다가 갑자기 강한 빛을 보면 눈이 견디지 못하듯이 말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죽음 직후 인간은 여전히 자신을 ‘살아 있는 동일한 인간’으로 느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갑자기 모든 감각과 자기 의식이 끊겨 버린다면, 인간은 자기 연속성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인간이 자연스럽게 ‘나는 여전히 나다’라고 느끼는 가운데 점차 새로운 상태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이 몇 시간은 그런 부드러운 이행 과정과 관련됩니다.

 

그리고 AC.170 문맥을 보면, 스베덴보리는 특별히 심장과 호흡의 분리 과정에 주목합니다. 그는 인간 자연 생명의 중심이 심장과 호흡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죽음은 단순히 심장이 멈추는 기계적 사건이 아니라, 자연적 호흡과 영적 의식 사이의 연결이 점차 풀리는 과정처럼 설명됩니다. 이 과정이 완전히 instantaneous하지 않기 때문에, ‘thought consequent perception만 남는 상태’가 얼마간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또 이것은 주님의 자비와도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 전체에서 주님은 인간을 abrupt하게 다루지 않으십니다. 천천히, 상태에 맞게, 감당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죽음조차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갑자기 낯선 우주에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점차 자연 세계 감각을 놓고 영계 의식 안으로 옮겨집니다.

 

사실 이 설명은 매우 위로가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 ‘찰나의 절단’이 아니라, 주님의 보호 아래 이루어지는 매우 세심한 transition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이 죽을 때, 혼자 통과한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천사들이 함께하며, 주님이 인간 의식이 무너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음 상태로 이끄신다고 봅니다. 그래서 ‘몇 시간’이라는 표현은 단순 시간 정보 이상으로, 죽음이 주님의 질서 안에서 이루어지는 부드러운 전이 과정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AC.170, 창2 뒤, ‘심장 관련, 천적 천사들과 결합된 느낌’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70 천적 천사들이 함께 있었는데, 그들은 심장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

bygrace.kr

 

AC.170, 심화 3, ‘요즘 유튜브나 임사체험 등을 보면’

AC.170.심화 3. ‘요즘 유튜브나 임사체험 등을 보면’ 요즘 유튜브나 임사체험 등을 보면 위 AC.170의 천적 천사들이 와 있는 그런 얘기보다는 무슨 터널 통과 후, 누구를 만났는데 아직 올 때가 안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AC.170.심화

 

3. ‘요즘 유튜브나 임사체험 등을 보면

 

요즘 유튜브나 임사체험 등을 보면 위 AC.170의 천적 천사들이 와 있는 그런 얘기보다는 무슨 터널 통과 후, 누구를 만났는데 아직 올 때가 안 되었으니 돌아가라 하였다, 사고 후 갑자기 몸에서 튕겨 나와 공중에서 자기 몸, 그리고 사고 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등 여러 케이스들이 수두룩합니다. 육체에서 영으로 이동, 이행하는 프로세스가 250년 전 스베덴보리 때와는 또 달라진 건가요?

 

 

스베덴보리 관점으로 보면, 아닙니다. 인간이 육체에서 영적 상태로 옮겨가는 근본 질서 자체가 시대 따라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오늘날 사람들이 보고 듣고 기억하여 이야기하는 ‘표현 양식’과 ‘의식 경험의 외형’은 매우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튜브나 임사체험(NDE) 사례들 가운데 상당수는, 스베덴보리가 설명한 초기 영계 전이 상태와 어느 정도 겹쳐 보이는 부분도 실제로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몸 밖으로 나와 사고 현장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죽은 가족이나 존재를 만났다’, ‘아직 올 때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빛이나 터널을 통과했다’ 같은 경험들은, 스베덴보리 설명과 완전히 무관한 이야기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 역시 죽음 직후 인간이 여전히 자기 자신을 살아 있는 인간처럼 느끼며, 점차 새로운 의식 상태 안으로 들어간다고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신이 몸 밖에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는 부분은 상당히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차이는, 스베덴보리는 이런 경험의 ‘영상적 외형’보다 그 배후 영적 질서를 훨씬 더 중요하게 본다는 점입니다. 현대 임사체험 이야기들은 대개 개인 경험 중심이고, 감정적, 시각적 묘사가 강합니다. 반면 스베덴보리는 그 현상을 천국과 지옥, influx, 상태 변화, 천사 공동체, 인간 구조 같은 훨씬 큰 질서 안에서 설명하려 합니다. 다시 말해, 현대 NDE 증언들은 종종 ‘무엇을 보았는가’ 중심이고, 스베덴보리는 ‘왜 그런 상태가 가능한가’를 설명하려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한 죽음 과정은 ‘보편적 구조’를 설명하는 것이지, 모든 사람이 똑같은 장면을 경험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영계에서 각 사람 상태에 따라 경험 양상이 매우 다양하다고 repeatedly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거의 평화롭게 옮겨지고, 어떤 사람은 한동안 혼란을 겪고, 어떤 사람은 익숙한 환경 비슷한 상태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대 임사체험들 가운데 일부는, 영계 입구에 해당하는 ‘영들의 세계(world of spirits) 수준 경험과 어느 정도 연결해 볼 여지도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영들의 세계는 천국과 지옥 사이의 중간 상태이며, 사람은 거기서 점차 자기 내면 상태에 맞는 방향으로 정렬됩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만났다’, ‘돌아가라고 했다’,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같은 경험도 완전히 스베덴보리 구조 밖 이야기라고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스베덴보리라면 probably 매우 조심스럽게 경고했을 부분도 있습니다. 그는 영적 경험 자체를 곧 진리 보증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영계에도 appearance가 있고, 인간 기억과 imagination이 섞일 수 있으며, 어떤 경험은 상태에 따라 symbolic하게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그 경험이 인간을 주님과 선한 삶 쪽으로 이끄는가’를 더 중요하게 봅니다.

 

그리고 ‘250년 전과 지금 프로세스가 달라졌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스베덴보리식으로는 probably 이렇게 답할 가능성이 큽니다. ‘근본 질서는 동일하지만, 인간 의식과 문화와 상상 구조가 달라지면서, 사람들이 그것을 경험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사람들은 영화적 이미지와 시각적 서사에 익숙하기 때문에, 터널, 빛, 공중 시점 같은 imagery로 경험을 기억하고 설명할 가능성이 더 큽니다.

 

결국 스베덴보리에게 핵심은, 죽음이 존재 소멸이 아니라 상태 전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육체를 벗은 뒤에도 여전히 자신으로 존재하며, 주님의 질서 안에서 다음 상태로 인도된다는 것입니다. 현대 임사체험 이야기들 가운데 일부는 바로 그 ‘전이 과정’의 단편적 경험들로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지만, 스베덴보리는 그것들을 언제나 더 큰 영적 질서와 연결해서 보려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AC.170, 심화 4, 왜 ‘몇 시간’이나?

AC.170.심화 4. 왜 ‘몇 시간’이나? 그 결과 마침내 제게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오직 생각과 그에 따른 지각뿐이었고, 이러한 상태가 몇 시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and so that at length scarcely anything was

bygrace.kr

 

AC.170, 심화 2, ‘갑작스런 죽음’(sudden death)에서도?

AC.170.심화 2. ‘갑작스런 죽음’(sudden death)에서도? 그 결과 마침내 제게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오직 생각과 그에 따른 지각뿐이었고, 이러한 상태가 몇 시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and so that at length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