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3:16)



AC.262

여자(woman)가 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보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전에 여자로 뜻하였던 그 proprium(own)으로 말미암아 왜곡된 교회를 의미합니다. 이는 지금 다루고 있는 대상이, 이미 타락하여 왜곡된 태고교회의 후손들이기 때문입니다. That the church is signified by the “woman” has been previously shown, but here the church perverted by the own which was itself formerly signified by the “woman,” because the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had become perverted, is now treated of.

 

 

해설

 

이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여자’라는 동일한 상징이 문맥에 따라 서로 다른 상태의 교회를 나타낼 수 있음을 설명합니다. 그는 앞에서 이미 ‘여자’는 교회를 의미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상징은 언제나 고정된 하나의 의미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문맥에 따라 그 상태가 달라집니다. 따라서 여기의 ‘여자’는 교회 일반이 아니라, 자기 고유 proprium이 들어와 본래의 순수함을 잃기 시작한 교회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특별히 중요한 표현은 ‘왜곡된 교회(the church perverted)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교회가 하루아침에 완전히 악한 교회가 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곡되었다(perverted)는 것은 본래의 질서가 점차 비틀어지고 방향이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즉, 주님을 중심으로 살던 교회가 점차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같은 진리를 가지고도 그것을 바라보는 중심이 달라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 원인이 바로 ‘proprium(own)입니다. 본래 사람은 자신에게서 선과 진리가 나오는 것처럼 느끼지만, 태고교회 사람들은 그것이 실제로는 주님으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것임을 퍼셉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proprium을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사람은 점차 자신이 선하고, 자신이 지혜롭고, 자신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자기중심성이 모든 영적 왜곡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이 글은 창3의 시점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분명히 ‘지금 다루고 있는 대상은 이미 타락하여 왜곡된 태고교회의 후손들’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창3은 태고교회가 완전히 끝난 이후의 고대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태고교회의 계보 안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이미 그들의 내적 상태는 본래의 순수함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었습니다. 이것은 AC.261에서 보았던 내적 질서의 변화가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다시 확인해 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후손(posterity)이라는 표현도 단순한 혈통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성경에서 후손을 흔히 같은 교회의 영적 계승자라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따라서 태고교회의 후손이란 태고교회의 전통과 계시를 이어받았지만, 그 정신과 생명을 점차 잃어버린 사람들을 뜻합니다. 외형상으로는 같은 교회에 속해 있지만, 내적으로는 이미 다른 상태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처럼 스베덴보리는 교회의 타락을 매우 점진적인 과정으로 설명합니다. 처음에는 퍼셉션이 약해지고, 이어 자기 proprium이 커지며, 그 결과 진리의 이해가 왜곡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사랑과 지혜의 질서 자체가 무너져 홍수에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창3은 완전한 타락의 결과를 기록한 장이라기보다, 그 타락이 시작되고 점차 심화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장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교회에도 이 원리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교회의 외형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습니다. 말씀도 있고, 예배도 있으며, 신앙고백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이 주님에서 자기 자신으로 옮겨가는 순간, 교회는 외적으로는 여전히 교회이지만 내적으로는 이미 왜곡되기 시작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변화가 항상 자기 proprium을 사랑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거듭 강조합니다.

 

AC.262는 창3에 나오는 ‘여자’가 더 이상 창2의 순수한 태고교회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는 글입니다. 여기의 ‘여자’는 자기 proprium을 사랑함으로써 본래의 질서를 잃기 시작한 태고교회의 후손들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새로운 교회의 시작이 아니라, 여전히 태고교회의 역사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영적 쇠퇴의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며, 이후 창4와 창5, 그리고 홍수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질 교회의 점진적인 타락을 이해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AC.263, 창3:16,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3:16)AC.263그러므로 감각 파트(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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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61, 창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AC.261-26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And unto the woman he said, I will greatly 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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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And unto the woman he said, I will greatly multiply thy sorrow and thy conception; in sorrow thou shalt bring forth sons, and thine obedience shall be to thy man [vir], and he shall rule over thee. (3:16)



AC.261

이제 여자(woman)는 그 교회가 사랑하였던 고유한 것(proprium)의 측면에서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greatly multiplying her sorrow)는 영적 싸움과, 그로 인해 생기는 근심과 고통을 의미합니다. ‘임신(conception)은 모든 생각을 의미하며,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sons whom she would bring forth in sorrow)는 그렇게 하여 생겨나는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남편(man)은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성적인 것(the rational)을 의미하며, 여자는 그것에 순종하게 되고, 그것이 여자를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By the “woman” is now signified the church as to proprium, which it loved; by “greatly multiplying her sorrow” is signified combat, and the anxiety it occasions; by “conception,” every thought; by the “sons whom she would bring forth in sorrow,” the truths which she would thus produce; by “man,” here as before, the rational which it will obey, and which will rule.

 

 

해설

 

이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창3:16의 말씀을 영적 의미로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뱀과 여자의 후손에 관한 말씀을 다루었다면, 이제는 타락이 시작된 이후 태고교회의 내적 상태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는 먼저 ‘여자’를 단순히 최초의 여성인 하와 개인으로 보지 않고, 교회를 상징하는 존재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특별히 ‘proprium을 사랑하게 된 교회’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본래는 모든 선과 진리가 주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로 살았던 교회가, 이제는 점차 자신의 own을 신뢰하기 시작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proprium’은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뜻합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원래 퍼셉션을 통해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흘러 들어온다는 사실을 직접 알았습니다. 그러나 뱀의 유혹 이후 사람은 자기 생각과 자기 의지, 자기 지혜를 점차 사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여전히 태고교회였지만, 그 내면에는 이미 타락의 과정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새로운 교회의 시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태고교회가 점차 본래의 순수성을 잃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라는 말씀도 문자적인 육체의 고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영적 전투(combat)와, 그로 인해 생기는 근심과 불안(anxiety)으로 설명합니다. 자기 자신을 따르려는 성향과 주님을 따르려는 성향이 서로 충돌하면서 사람 안에는 이전에는 없었던 내적 갈등이 생겨납니다. 이 고통은 주님의 형벌이 아니라, 거듭남을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영적 유혹과 내적 긴장을 의미합니다.

 

이어지는 ‘잉태, 임신(conception)은 스베덴보리가 분명하게 ‘모든 생각(every thought)이라고 설명합니다. 잉태는 아직 출산이 아닙니다. 영적으로는 진리가 처음 마음속에 받아들여지고, 생각과 이해의 형태로 형성되는 단계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 전에 먼저 잉태되듯이, 영적 생명도 먼저 생각 속에서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생각이 형성되는 모든 과정을 ‘임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다음의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라는 표현은 잉태된 생각이 실제 진리의 삶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아들’은 진리를 상징하므로,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생각 속에만 있던 진리가 실제 삶과 행동 속에서 열매를 맺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잉태와 출산은 같은 과정이 아니라 서로 이어지는 두 단계입니다. 먼저 진리가 생각 속에 잉태되고, 그다음 그 진리가 삶 속에서 실천되고 확립될 때 비로소 ‘아들이 태어난다’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이 모든 과정이 영적 싸움과 근심 가운데 이루어진다고 설명합니다.

 

마지막으로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라는 말씀도 문자적인 남녀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남편(man)은 앞에서와 같이 이성적인 것(the rational)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시점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아직 홍수 이전이며, 교회는 여전히 태고교회입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것은 퍼셉션이 이미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proprium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퍼셉션이 점차 약해지고, 그에 따라 이성의 기능이 이전보다 점점 더 중요해지는 방향으로 내적 질서가 변하기 시작하였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한순간에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창3은 태고교회가 이미 끝난 뒤의 이야기가 아니라, 태고교회가 점차 쇠퇴해 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시기의 사람들도 여전히 퍼셉션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그것은 처음 창조되었을 때처럼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 변화는 창세기 4장과 5장을 거치며 더욱 심화되었고, 마침내 홍수 이후 노아로 대표되는 고대교회에서는 퍼셉션 대신 양심(conscience)이 영적 삶의 중심이 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됩니다. 따라서 AC.261은 그 역사적 전환이 시작되는 첫 단계를 설명하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AC.261은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타락이 시작된 태고교회의 영적 상태를 묘사하는 말씀입니다. 자기 own을 사랑하기 시작한 교회는 이제 영적 전투, 싸움을 경험하게 되고, 그 싸움 속에서 새로운 진리가 먼저 생각 속에 ‘잉태’되며, 이어서 삶 속에서 ‘출산’됩니다. 동시에 사랑 안에서 직접 진리를 지각하던 퍼셉션은 점차 약해지고, 이성의 역할이 점차 커지는 방향으로 교회의 내적 질서가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아직 태고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이며, 훗날 홍수 이후 양심을 중심으로 하는 고대교회가 세워질 역사적 전환을 준비하는 단계로 이해하는 것이 스베덴보리의 전체 문맥에 가장 충실한 해석입니다.

 

 

 

AC.262, 창3:16, ‘여자’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3:16)AC.262‘여자’(woman)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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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60, 창3:15, ‘당시의 교회에게 이미 주어진 계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60지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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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2026/07/12)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38, ‘예수 우리 왕이여’, 84, ‘온 세상이 캄캄하여서입니다.

 

오늘 3 여섯 번째, 본문은 창3:15이고, AC 글 번호로는 250번에서 260입니다.  

 

먼저 본문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3:15)

 

제목은

 

타락보다 먼저 주어진 구원의 약속

 

이며, 다음은 AC.250-260입니다. 그전에 먼저 오늘 범위에 대한 요약 설명 후, 전체 글 중 특별히 몇몇 글을 리딩하겠습니다.

 

먼저 요약입니다.

 

 

오늘 읽을 AC.250-260은 창3: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는 말씀을 해설하는 부분입니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이 구절을 장차 주님께서 세상에 오실 것을 알리는 최초의 복음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스베덴보리 역시 이 말씀을 메시아에 관한 최초의 예언으로 이해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여자’,후손’,머리’,발꿈치가 각각 무엇을 뜻하는지를 말씀의 내적 의미를 따라 자세히 밝힙니다.

 

먼저 은 일반적으로 모든 악을, 특별히는 자기 사랑을 의미합니다. 뱀이 감각과 기억 지식에 밀착하여 땅을 기어다니는 것처럼, 자기 사랑에서 비롯되는 악은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천적, 영적 빛보다 자기 감각과 자기 판단을 더 신뢰하게 만듭니다. 감각과 기억 지식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주님과 말씀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면 거짓을 낳고, 거짓은 다시 악을 정당화하며, 마침내 자기 사랑과 증오가 사람의 삶을 지배하게 됩니다. 성경에 여러 종류의 뱀과 독사가 등장하는 것은 자기 사랑에서 나온 악과 거짓에도 수없이 다양한 종류와 정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자기 사랑과 주님 및 이웃에 대한 증오가 사실상 같은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자기 사랑이란 단순히 자기 자신을 돌보거나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을 모든 것의 중심에 놓고 다른 사람과 세상, 더 나아가 천국과 주님까지도 자기 뜻 아래 두려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제어되지 않으면 지배욕으로 발전하며, 자기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미워합니다. 그러므로 창3의 뱀은 단순히 한 동물이나 한 악령이 아니라, 인간 안에서 주님을 밀어내고 자신이 주인이 되려는 모든 악의 원리를 나타냅니다.

 

반면 여자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교회가 여자, 아내, 신부, 처녀, 딸로 불리는 이유는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분과 결합하는 수용체이기 때문입니다.12해를 옷 입은 여자’,54남편을 가진 아내’,21어린 양의 신부아내가 모두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창3:15의 여자도 하와라는 한 개인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주님을 받아들이며 그분과 결합하는 교회를 뜻합니다.

 

교회가 주님과 결합하는 데에는 own이 필요합니다. own이 전혀 없다면 자유로운 인격도, 사랑의 응답도, 결합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own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own은 자기 사랑과 악의 근원이지만, 주님께서 사람 안에 순진과 평화와 선을 불어넣어 새롭게 하신 own은 천적이며 천사적인 own이 됩니다. 거듭남은 사람의 개성과 인격을 없애는 과정이 아니라, 지옥적인 own이 물러가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새로운 own이 형성되는 과정입니다. 사람은 여전히 자신이 생각하고 사랑하며 행동하는 것처럼 느끼지만, 그 안의 선과 진리가 모두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뱀의 후손여자의 후손 역시 육체적인 혈통을 뜻하지 않습니다.후손’,는 어떤 근원에서 태어나고 산출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뱀의 후손은 자기 사랑과 악에서 나오는 불신과 거짓 전체를 뜻하고, 여자의 후손은 교회 안에서 주님으로부터 태어나는 신앙을 뜻합니다. 성경이 행악의 종자’,거짓의 후손’,경건한 자손이라고 말하는 것도 씨와 후손이 단순한 혈통이 아니라, 각각 악과 거짓 또는 선과 신앙에서 태어나는 영적 산물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자의 후손은 신앙만을 의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주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신앙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으로부터 오며, 주님 자신이 모든 신앙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3:15에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는 추상적인 교리나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세상에 오셔서 지옥의 세력을 직접 정복하실 주님 자신입니다. 이 점에서 창3:15은 인류가 타락한 바로 그 자리에서 주어진 최초의 구원 약속입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으로 거의 완전히 지옥적 상태에 빠진 교회 안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적 유전으로부터 받은 인성을 입으시고, 그 인성 안에서 지옥의 모든 공격과 유혹을 친히 받으셨으며, 신적 능력으로 하나씩 이기셨습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주님 안의 인간적 own은 신적 천적 own과 완전히 결합되었고, 그분의 인성은 신성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주님의 영화라고 부릅니다.

 

주님 안에서 일어난 이 결합이 온 세상과 관계되는 까닭은, 주님께서 단지 한 개인이 아니라 모든 천국과 인류에게 생명을 공급하시는 유일한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당시 지옥의 세력은 인간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와 사람의 자유와 rational을 파괴할 만큼 강해져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인성을 입고 지옥을 정복하지 않으셨다면 천국과 인류 사이의 연결이 무너지고, 사람은 더 이상 선과 진리를 자유롭게 받아 거듭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의 신성과 인성의 결합은 그분 개인에게만 일어난 변화가 아니라, 지옥을 제압하고 천국을 정돈하며 인류에게 다시 생명이 유입될 수 있도록 한 우주적인 구속 사건이었습니다.

 

뱀의 머리는 악의 지배, 특별히 자기 사랑의 지배를 의미합니다. 머리는 몸 전체를 지배하는 부분이므로, 뱀의 머리는 자기 사랑이 사람의 생각과 의지와 삶 전체를 통치하는 상태를 나타냅니다.14의 계명성은 내가 하늘에 올라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고 말하고,12의 큰 붉은 용은 여러 머리와 뿔과 왕관을 가지고 자신을 높입니다. 이 모든 말씀은 자기 사랑이 세상뿐 아니라 천국과 주님까지도 지배하려는 본성을 묘사합니다. 주님께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다는 것은 바로 이 지배권을 근본적으로 꺾으신다는 뜻입니다.

 

상하게 한다 또는 밟는다는 것은 악을 존재 자체에서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더 이상 천국과 사람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낮추고 억누르며 신적 질서 아래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26에서는 높이 솟은 성이 땅과 진토에까지 낮아지고 발에 밟히며,28에서는 교만의 면류관이 땅에 던져져 발에 밟힙니다. 이처럼 악은 자신을 높이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것을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보내십니다. 이것이 뱀이 배로 다니며 흙을 먹게 되는 상태이며, 뱀의 머리가 상하게 된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뱀도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합니다. 발꿈치는 사람 안의 가장 낮은 자연적이고 육체적인 차원, 곧 감각과 기억 지식, 외적 사고와 실제 생활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뱀은 사람 안의 가장 깊은 천적, 영적 생명을 직접 해칠 수는 없지만, 감각과 외적 삶을 통하여 사람을 흔들고 넘어뜨리려 합니다.49에서 뱀이 말굽을 물어 탄 자를 뒤로 떨어뜨리는 것, 야곱이 에서의 발꿈치를 붙잡고 태어난 것 등은 모두 이 가장 낮은 자연적 차원을 가리킵니다.

 

그럼에도 사람 안의 가장 깊은 선과 진리는 주님께서 친히 보호하십니다. 사람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속 사람 안에 저장해 두시는 선과 진리를 스베덴보리는 리메인스라고 부릅니다. 악은 사람의 발꿈치, 곧 외적이고 감각적인 삶을 상하게 할 수 있지만, 주님께서 보존하시는 리메인스에는 직접 손을 댈 수 없습니다. 바로 이 리메인스를 통하여 주님께서는 쓰러진 사람을 다시 일으키시고, 유혹 가운데 보호하시며, 마침내 거듭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읽을 AC.250-260의 전체 흐름은 이렇습니다. 인간은 감각과 자기 사랑을 따라 주님으로부터 멀어졌고, 그 결과 뱀의 후손인 불신과 거짓이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타락의 순간에 이미 여자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인성을 입고 지옥과 싸워 이기시며, 자신의 신성과 인성을 하나로 결합하심으로 악의 지배를 깨뜨리고 온 인류에게 다시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뱀은 사람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수 있지만, 주님께서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창3:15에 담긴 최초의 복음이며, 오늘 본문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메시지입니다.

 

 

이상 요약을 마치고, 아래는 AC 본문, 해설 및 심화입니다.

 

 

AC.250,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AC.250-260)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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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1, 창3:15, ‘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1‘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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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2, 창3:15, ‘여자’(own)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2‘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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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3, 창3:15, ‘여자’(church)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3교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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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4, 창3:15, ‘뱀의 후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4‘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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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5, 창3:15, ‘여자의 후손’(신앙)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5‘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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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6, 창3:15, ‘여자의 후손’(주님)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6‘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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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7, 창3:15, ‘뱀의 머리’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7‘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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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8, 창3:15, ‘상하게 할 것이요’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8‘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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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9, 창3:15, ‘발꿈치’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9‘발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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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60, 창3:15, ‘당시의 교회에게 이미 주어진 계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60지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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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위 링크들 중 특별히 선별한 글들입니다.

 

 

AC.250,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AC.250-260)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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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1, 심화 6, ‘천 년 동안 결박하여’

AC.251.심화 6. ‘천 년 동안 결박하여’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계20:2) 아래는 스베덴보리의 ‘Apocalypse Revealed’ 관련 글인 AR.842에 대한 번역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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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6, 심화 1, ‘주님의 신적 인성(Divine Human)’

AC.256.심화 1. ‘주님의 신적 인성(Divine Human)’ 그 목적은 자신의 신적 능력(Divine power)으로 자신의 인성(human essence) 안에서 신적 천적 own(Divine celestial own)과 인간적 own(human own)을 하나로 결합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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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오늘은 마치기 전, 아래와 같은 아주 근본적인 질문 하나만 생각하고 마치겠습니다.

 

 

주님은 왜 악을 그냥 밟기만 하시고, 아예 없애 버리시지는 않을까?’ 하는 질문은 누구나 한 번쯤 품게 되는 자연스러운 의문입니다.3에서는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AC.257-258에서는 이것을 밟는다’,낮춘다’,배로 다니며 흙을 먹게 한다는 의미로 해설합니다. 그런데 왜 악을 완전히 없애지 않고, 단지 억누르기만 하시는 것일까요?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악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어떤 실체가 아닙니다. 또한 악을 위해 따로 창조된 존재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선을 향한 자유를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자유를 잘못 사용하여 주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악은 바로 이러한 자유의 오용에서 비롯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을 끝까지 자신의 삶으로 선택한 사람들은 사후에 악한 영이 됩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왜 그러한 악한 영들을 완전히 없애 버리지 않으실까요? 스베덴보리는 주님께서 생명 자체이시며,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한 번 창조하신 존재를 무(無)로 돌려보내시는 분이 아닙니다. 비록 사람이 자신의 자유를 잘못 사용하여 악한 영이 되었을지라도, 존재 자체를 소멸시키지는 않으십니다. 이것은 주님의 사랑이 끝까지 생명을 보존하려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주님께서는 악을 신적 질서 안에 두십니다. 악은 더 이상 선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제한되고, 지옥은 더 이상 천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다스려집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발로 밟는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악은 존재하지만, 주님의 허락 없이는 질서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왜 이런 방식이 필요한가 하면, 사람의 자유를 보존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도 강제로 선하게 만들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선택하려면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만일 악의 가능성 자체를 없애 버리신다면, 선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일도 함께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사랑은 자유가 있을 때만 사랑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악과 선이 함께 존재하는 가운데서도, 선이 결국 승리하도록 섭리하십니다. 사람은 유혹을 통하여 악을 거절하고 선을 선택하는 법을 배우며, 그 과정에서 거듭나게 됩니다. 만일 악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면 유혹도 없고, 자유로운 선택도 없으며, 따라서 참된 사랑과 신앙도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옥을 존재에서 없애신 것이 아니라, 모든 지옥의 세력을 하나하나 이기시고 신적 질서 아래 두셨습니다. 그 결과 지옥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더 이상 천국과 인류를 지배할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다는 말씀의 참된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창3의 약속은 단순히 악을 제거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악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결코 마지막 승리를 거두지는 못한다는 구원의 약속입니다. 악은 사람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수는 있지만, 주님께서는 그 머리를 상하게 하십니다. 악은 사람을 시험할 수는 있어도 지배할 수는 없으며,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끝내 악보다 더 크신 주님의 능력과 사랑 안에서 보호받게 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자비가 무한하신 주님,

 

오늘도 저희를 말씀 앞으로 불러 주시고, 창3에 담긴 최초의 복음과 주님의 구원 약속을 깨닫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연약, 때로는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에 기울고, 유혹 가운데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미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고, 지옥의 세력을 이기셨음을 믿습니다. 저희가 언제나 자신 대신 오직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과 능력만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 저희 안에 주님께서 심어 두신 선과 진리를 지켜 주시고, 유혹 속에서도 끝까지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저희의 겉 사람은 흔들릴지라도 속 사람은 더욱 굳세게 하시고, 날마다 저의 own은 낮아지고, 대신 주님의 사랑과 진리가 저희 삶을 다스리게 하옵소서. 또한 오늘 들은 말씀이 지식으로만 머물지 않고, 한 주간의 삶 속에서 사랑과 믿음의 열매로 나타나게 하옵소서.

 

오늘 함께 예배드린, 그리고 여러 경로로 이 말씀을 접하는 모든 가정 위에 주님의 평안과 보호하심을 더하시며, 주님의 빛을 비추어 주옵소서. 저희 모두가 세상 가운데서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나타내는 삶을 살게 하시고, 모든 영광을 오직 주님께 돌리게 하옵소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축도

 

주 여호와 하나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 그 거룩한 역사하심이, 오늘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3:15)는 최초의 복음과, 이미 태초부터 인류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마침내 친히 세상에 오시어 지옥의 권세를 이기시고 구원의 길을 여신 주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섭리를 아르카나의 말씀을 통하여 다시금 마음 깊이 새기며, 거듭 진심으로 아멘 하는 모든 성도들과,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 앞에 예물을 드리는 모든 손길 위에, 이제부터 영원토록 함께하시길 간절히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설교

2026-07-12(D1)

 

2659, 6, 창3.6, 2026-07-12(D1)-주일예배(창3,15, AC.250-260), ‘타락보다 먼저 주어진 구원의 약속’.pdf
1.01MB

 

 

 

주일예배(2026/07/05, 창3:14, AC.234-249), ‘하늘을 잃은 인간과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신 주님’

※ 오늘(2026/07/05, 성찬)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37, ‘주 예수 이름 높이어’, 찬230, ‘우리의 참되신 구주시니’(성찬), 찬83, ‘나의 맘에 근심 구름’입니다. 오늘은 창3 다섯 번째, 본문은 창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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