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80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는 것은 첫째 장(창1:26, 27)에서도 또한 분명히 드러나는데, 이는 여섯째 날의 끝, 다시 말해 안식일의 저녁에 해당하며, 곧 안식일, 곧 일곱째 날이 시작될 때를 뜻합니다. 왜냐하면 일곱째 날, 곧 안식일은 천적 인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며, 이는 앞에서 보인 바와 같습니다. That they were called “man” in the day that they were created, appears also from the first chapter (Gen.1:26–27), that is, at the end of the sixth day, which answers to the evening of the sabbath, or when the sabbath or seventh day began; for the seventh day, or sabbath, is the celestial man, as was shown above.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6, 27)
해설
스베덴보리는 AC.480에서 ‘사람이라 불린 날’이 언제인지를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와 직접 연결합니다. 성경은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사람이라 불렸다’고 말하는데, 이날은 막연한 어느 하루가 아니라, ‘여섯째 날의 끝’, 곧 ‘일곱째 날이 시작되는 문턱’입니다. 이 시점은 시간적으로는 하루의 저녁이지만, 영적으로는 매우 결정적인 전환점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일곱째 날, 곧 안식일은 단순한 휴식의 날이 아니라, ‘천적 인간의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의 여섯 날은 인간이 형성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 줍니다. 빛이 생기고, 구분이 이루어지고, 생명이 질서 잡히는 모든 과정은 결국 한 목적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 목적은 인간이 주님 안에서 ‘안식‘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 안식은 피곤함에서의 쉼이 아니라, ‘내적 갈등이 사라지고 사랑과 진리가 하나가 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상태를 ‘천적 인간’이라 부르며, 바로 이 상태가 일곱째 날로 표현됩니다.
따라서 ‘사람이라 불렸다’는 선언은 여섯째 날의 한가운데서가 아니라, ‘여섯째 날이 마무리되고 일곱째 날이 시작되는 시점’에 주어집니다. 이는 사람이 단지 영적 상태로 형성되었을 때가 아니라, 그 영적 상태가 완성되어 천적 상태로 들어갈 때 비로소 참된 의미에서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앞서 보았듯이, 영적 인간은 ‘형상’(image)에 해당하고, 천적 인간은 ‘모양’(likeness)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는 이름은 형성 과정의 중간이 아니라, ‘완성의 문턱’에서 주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점을 ‘안식일의 저녁’이라는 표현으로 매우 섬세하게 설명합니다. 저녁은 끝이면서 동시에 시작입니다. 여섯째 날의 저녁은 모든 형성의 노력이 끝나는 지점이면서, 동시에 일곱째 날의 안식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이 전환점에서 인간은 더 이상 진리를 통해 선을 향해 애쓰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 안에서 자연스럽게 선을 사는 존재’로 들어갑니다. 이것이 천적 인간의 상태이며, 성경이 그를 ‘사람’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창세기 1장 26, 27절의 표현도 새롭게 읽힙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고’라고 말씀하신 후, 곧바로 ‘그들’로 표현이 바뀌는 이유는, 이 ‘사람’이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 곧 교회 전체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상태가 완성되어 안식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성경은 그들을 한 이름으로, 곧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이는 곧 태고교회가 천적 상태에 이르렀음을 선언하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여섯째 날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지, 아니면 일곱째 날을 향해 가고 있는지 하는 질문입니다. 여섯째 날은 필요하고 귀한 단계입니다. 그러나 그 단계는 목적지가 아닙니다. 진리를 배우고, 분별하고, 싸우는 모든 과정은 결국 ‘안식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입니다. 신앙생활이 언제나 긴장과 분투로만 남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여섯째 날의 저녁을 통과하지 못한 상태일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안식일을 ‘천적 인간’이라고 말함으로써, 신앙의 목표를 분명히 합니다. 그 목표는 더 많은 지식이나 더 엄격한 규범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의 내적 평안과 일치’입니다. 사랑과 신앙이 더 이상 분리되지 않고, 주님의 뜻이 자연스럽게 삶으로 흘러나오는 상태, 그것이 안식이며, 그것이 참된 ‘사람’의 상태입니다.
결국 AC.480은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가 과거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여섯째 날에서 일곱째 날로 넘어가는 그 전환은, 지금도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반복되고 있는 영적 여정입니다. 사람이 ‘사람이라 불리는 날’은, 주님 안에서 마침내 안식에 이르는 날입니다. 이 관점을 붙들 때, 안식일은 더 이상 율법의 규정이 아니라, ‘사람됨이 완성되는 은혜의 상태’로 우리 앞에 서게 됩니다.
AC.481, 창5:3,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창5:3) AC.481 ‘
bygrace.kr
AC.479, 창5:2, ‘이름 부르기’(calling a name)와 '사람'이라는 이름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79 ‘이름 부르기’(calling a name) 또는 ‘이름으로 부르기’(call
bygrace.kr
'즐겨찾기 > AC 창5' 카테고리의 다른 글
| AC.482, 창5:3, ‘세’(years), ‘년’(numbers of years) (1) | 2025.12.31 |
|---|---|
| AC.481, 창5:3,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C.481-485) (0) | 2025.12.31 |
| AC.479, 창5:2, ‘이름 부르기’(calling a name)와 '사람'이라는 이름 (0) | 2025.12.30 |
| AC.478, 창5:2, 히브리어 ‘아담’(אָדָם, Adam)의 의미 (1) | 2025.12.30 |
| AC.477, 창5:2, 주님을 닮은 상태여야 ‘사람’(man) (1) | 2025.12.3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