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에 해당되는 글 212건

  1. 2024.02.24 AC.211, 창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AC.211-217) - '눈이 밝아져' 등 7절 속뜻 개요
  2. 2024.02.24 AC.210,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AC.207-210) - '사람의 오운(own)이라는 것은...'
  3. 2024.02.24 AC.209,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AC.207-210) - 'truth from good'과 'good from truth'의 차이는 홍수 전과 후의 차이
  4. 2024.02.23 AC.208,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AC.207-210) - '태고교회의 네 번째 후손'
  5. 2024.02.23 AC.207,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AC.207-210)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여자', '그도 먹은지라'의 속뜻 개요 1
  6. 2024.02.23 AC.206, 창3:4-5,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AC.204-206) -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 사람들의 천태만상
  7. 2024.02.22 AC.205, 창3:4-5,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AC.204-206) - '주님으로부터 독립, 홀로 서고자 하는 세 번째 후손'
  8. 2024.02.22 AC.204, 창3:4-5,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AC.204-206) -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와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의 속뜻
  9. 2024.02.22 AC.203, 창3:2-3,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AC.198-203) - '신앙 관련, 영적 천사들의 퍼셉션'
  10. 2024.02.21 AC.202, 창3:2-3,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AC.198-203) - '만지지도 말라'의 속뜻 1

 AC.211, 창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AC.211-217) - '눈이 밝아져' 등 7절 속뜻 개요

 

7절,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les.

 

211

그들의 ‘눈이 밝아져(eyes being opened)는 그들이 어떤 내적 딕테이트(an interior dictate)를 듣고, 자기들이 ‘벗은 줄(naked) 알게 되었다, 즉 더 이상 전처럼 이노센스(innocence)가 아닌, 악 가운데 있음을 알고 인정했다는 말입니다. Their “eyes being opened” signifies their knowing and acknowledging, from an interior dictate, that they were “naked,” that is, no longer in innocence, as before, but in evil.

 

※ 딕테이트(dictate) : 보통 딕테이션이라 하면 누가 하는 말을 곁에서 받아 적는 걸 말하지요.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들으며 활자화하는 걸 설교 딕테이션이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 딕테이션, 딕테이트는 특별히 '내적'(interior)이라 하여 영으로, 속으로 듣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못 듣지만, 본인은 생생하게 듣는 거지요. 말씀에는 이러한 예가 정말 많이 나오는데요, 오늘날도,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주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은 바로 이 딕테이트로 듣는 것입니다. 이 역시 딱히 우리말 번역이 좀 어색해서 저는 그냥 '딕테이트'로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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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10,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AC.207-210) - '사람의 오운(own)이라는 것은...'

 

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the tree was good for food, and that it was pleasant to the eyes, and a tree to be desired to give intelligence, and she took of the fruit thereof and did eat, and she gave also to her man [vir] with her, and he did eat.

 

210

사람의 오운(own)이란 무엇인가를 이렇게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사람의 오운은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으로부터, 그리고 주님이나 말씀 대신 자신을 믿는, 그리고 감각적으로 이해가 안 되거나, 기억-지식을 가지고 설명할 수 없는 건 아무 것도 아닌 걸로 여기는, 이런 태도들로부터 샘처럼 솟아나는 모든 악과 거짓입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그저 악과 거짓이 되어 모든 걸 거꾸로 보는데요, 악한 걸 선으로 보고, 선한 건 악으로 보지요. 거짓은 참으로, 참은 거짓으로, 실제로 존재하는 걸 없다 하고, 없는 걸 그들은 모든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증오라 하고, 빛을 어둠, 생명은 사망이라 하며, 그 반대로도 합니다. 말씀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다리를 저는 사람들(the lame), ‘눈먼 사람들(the blind)이라고 합니다. 네, 이런 게 사람의 오운입니다. 그 자체로 지옥적이며, 저주받은 것이지요. What man’s own is may be stated in this way. Man’s own is all the evil and falsity that springs from the love of self and of the world, and from not believing in the Lord or the Word but in self, and from supposing that what cannot be apprehended sensuously and by means of memory-knowledge [sensualiter et scientifice] is nothing. In this way men become mere evil and falsity, and therefore regard all things pervertedly; things that are evil they see as good, and things that are good as evil; things that are false they see as true, and things that are true as false; things that really exist they suppose to be nothing, and things that are nothing they suppose to be everything. They call hatred love, darkness light, death life, and the converse. In the Word, such men are called the “lame” and the “blind.” Such then is the own of man, which in itself is infernal and accur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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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09,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AC.207-210) - 'truth from good'과 'good from truth'의 차이는 홍수 전과 후의 차이

 

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the tree was good for food, and that it was pleasant to the eyes, and a tree to be desired to give intelligence, and she took of the fruit thereof and did eat, and she gave also to her man [vir] with her, and he did eat.

 

209

여기에 쓰인 표현들, 가령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the tree was good for food, pleasant to the eyes, and desirable for giving intelligence) 같은 표현들은 저 태곳적 살던 사람들의 지니어스(genius)에 맞게 조정된 그런 표현들인데, 특별히 의지에 관해서입니다. 그들의 악이 의지에서부터 샘솟듯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에서 홍수 후를 살았던 사람들이 나오는 데를 보면, 이런 표현들은 의지라기보다는 이해에 관련되어 사용되고 있는데요, 이는 태고인들은 선에서 비롯된 진리(truth from good)를 가지고 있었지만, 홍수 후를 살았던 사람들은 진리에서 비롯된 선(good from truth)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The expressions here employed, as that “the tree was good for food, pleasant to the eyes, and desirable for giving intelligence,” are such as were adapted to the genius of those who lived in that most ancient time, having especial reference to the will, because their evils streamed out from the will. Where the Word treats of the people who lived after the flood, such expressions are used as relate not so much to the will as to the understanding; for the most ancient people had truth from good, but those who lived after the flood had good from truth.

 

※ 참으로 천국을 비롯, 만물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곧 주님의 신성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음을 봅니다. 주님의 신성은 선과 진리로 되어 있는데, 만물 그 어디를 보아도, 그리고 인류의 역사, 그 흐름을 보아도 결국은 이 선과 진리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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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08,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AC.207-210) - '태고교회의 네 번째 후손'

 

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the tree was good for food, and that it was pleasant to the eyes, and a tree to be desired to give intelligence, and she took of the fruit thereof and did eat, and she gave also to her man [vir] with her, and he did eat.

 

208

이들은 태고교회의 네 번째 후손이었는데요, 이들은 자기를 사랑함으로써 유혹에 빠지는 일을 자초했고, 감각과 기억-지식에 관한 걸로 확실히 증명되지 않으면, 이미 계시된 것일지라도 믿기를 꺼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This was the fourth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o suffered themselves to be seduced by self-love [amore proprio] and were unwilling to believe what was revealed, unless they saw it confirmed by the things of sense and of memory-know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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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07,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AC.207-210) -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여자', '그도 먹은지라'의 속뜻 개요

 

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the tree was good for food, and that it was pleasant to the eyes, and a tree to be desired to give intelligence, and she took of the fruit thereof and did eat, and she gave also to her man [vir] with her, and he did eat.

 

207

먹음직도 하고(Good for food)는 탐욕(cupidity)을, ‘보암직도 하고(pleasant to the eyes)는 환상(fantasy)을,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desirable to give intelligence)은 쾌락(pleasure)을 의미합니다. 이것들은 오운(own), 곧 ‘여자(woman)에게 속한 것들입니다. ‘그도 먹은지라(the husband eating)는 이성(the rational)도 동의했음을 의미합니다 (AC.265). Good for food” signifies cupidity; “pleasant to the eyes,” fantasy; and “desirable to give intelligence,” pleasure: these are of the own, or “woman”; by the “husband eating” is signified the consent of the rational (n. 265).

 

※ 다음은 265번 글입니다. 이 글은 창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And unto the woman he said, I will greatly multiply thy sorrow and thy conception; in sorrow thou shalt bring forth sons, and thine obedience shall be to thy man [vir], and he shall rule over thee.

 

내용 중, '남편'(man [vir])에 대한 속뜻입니다.

 

265

남편(man [vir])은 본장 6절에서부터 나타나는 이성(理性, the rational, 合理)을 말하는데요, 거기 6절에서 여자는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었고, 그도 먹었지요. 이것이 의미하는 건 그도 동의했다는 겁니다. 같은 게 158번 글에 나오는 ‘남자’에 대해 한 말을 봐도 분명한데요, 거기서 그는 지혜롭고 지성적인 사람을 의미합니다. (아직 선악과를 먹기 전, 곧 타락하기 전입니다.) 그러나 여기 ‘남자’(남편)는 그와는 달리 이성(the rational)을 의미하는데, 왜냐하면, 지식의 나무, 곧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지혜와 지성이 파괴된 결과,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성은 지성의 모방, 말하자면 겉모습이기 때문이지요. That by “man” [vir] is signified the rational appears from verse 6 of this chapter, in that the woman gave to her man with her, and he did eat, by which is meant his consent; and the same is also evident from what was said of the man in n. 158, where by him is meant one who is wise and intelligent. Here however “man” denotes the rational, because in consequence of the destruction of wisdom and intelligence by eating of the tree of knowledge, nothing else was left, for the rational is imitative of intelligence, being as it were its semblance.

 

※ 우리는 인간의 이성이 뭐 대단한 건 줄 알지만, 이성은 사실은 지성이 입는 겉옷입니다. 지성은 지혜가 입는 겉옷이고요. 이 지혜와 지성은 주님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지혜는 주님의 선으로부터, 지성은 주님의 진리로부터 나오며, 진리는 선이 입는 겉옷입니다. 선악과를 먹기 전 인류는 지혜와 지성의 사람이었지만, 먹은 후에는 이성만 남은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선악과를 먹기 전 인간의 이성은 영광스러운 쓰임새 가운데 있었지만, 먹은 후에는 정말 초라한 쓰임새 밖에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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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06, 창3:4-5,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AC.204-206) -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 사람들의 천태만상

 

4-5절,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And the serpent said unto the woman, Ye shall not surely die. For God doth know that in the day ye eat thereof, then your eyes shall be opened, and ye shall be as God, knowing good and evil.

 

206

자기를 사랑하고 동시에 세상 배움에 탁월한 사람들, 그리고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된 사람들, 이 둘 중 누가 더 강한 믿음을 가진 걸까요? 그리고 누가 더 눈이 먼 걸까요? 이들에게 단지 질문만 해도 알 수 있는 사실은, 이들은 영의 존재를 믿기는 고사하고, 심지어 알지도 못한다는 겁니다. 이들은 영적, 천적 삶의 본성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낯설어하는데요, 이들은 영생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사라질 짐승과도 같은 존재라 믿으며, 주님을 인정하지도 않고, 대신 오직 자신과 자연만 예배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 가운데 좀 신중하게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르기를, 자기들이 모르는 어떤 본성을 가진 최고의 존재가 모든 걸 다스린다고 합니다. 이들이 감각 및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을 가지고 여러 가지로 스스로를 확신하는 데 사용하는 원리들이 있는데요, 이들은 맘만 먹으면 온 우주를 앞에 놓고도 그럴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으로, 혹은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관심받기를 원하면서도 정작 만약 자신들의 오운(own)에 관한 걸 갖지 않는 것, 즉 주님 앞에 자신을 부인하는 게 뭔지 아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를,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부인할 수 있냐고, 만일 자신들의 오운인 모든 걸 빼앗기게 되면 자신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들을 할 겁니다. Who have a stronger belief that their eyes are open, and that as God they know what is good and evil, than those who love themselves, and at the same time excel in worldly learning? And yet who are more blind? Only question them, and it will be seen that they do not even know, much less believe in, the existence of spirit; with the nature of spiritual and celestial life they are utterly unacquainted; they do not acknowledge an eternal life; for they believe themselves to be like the brutes which perish; neither do they acknowledge the Lord, but worship only themselves and nature. Those among them who wish to be guarded in their expressions, say that a certain supreme existence [ens] of the nature of which they are ignorant rules all things. These are the principles in which they confirm themselves in many ways by things of sense and of memory-knowledge, and if they dared, they would do the same before all the universe. Although such persons desire to be regarded as gods, or as the wisest of men, if they were asked whether they know what it is not to have anything of their own, they would answer that it is to have no existence, and that if they were deprived of everything that is their own, they would be nothing.

 

※ 조금이라도 영의 존재를 시인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사후 자기 영의 상태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이런 사람에게 맨 먼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다른 모든 빛나는 성취를 이루었어도 정작 그가 자기 영에 대하여 전혀 무지하며, 관심조차 없고, 그저 철저히 세속적이며, 물질적이기만 하다면, 이 사람에겐 가장 시급한 질문이 바로 이 영, 다른 말로는 그의 오운과 관련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오운은 타고난 자연 상태 그대로는 악 그 자체이기 때문에, 얼른 주님의 생명에 접붙임을 받아 그 안에 주님의 생명이 흘러들어 새로운 상태가 되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그런 건 일종의 환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심이 무엇인지 아느냐는 질문에는, 그건 그저 상상 속 산물로서, 천민들(賤民)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써먹을 수 있는 거라고 할 겁니다. 퍼셉션(perception)이 무엇인지는 아느냐는 질문에는, 그들은 씨익 비웃으며, 그런 건 광적 쓰레기, 곧 종교 마니아들 간 사용하는 일종의 무슨 싸인 같은 거라고 할 겁니다. If they are asked what it is to live from the Lord, they think it a fantasy. If asked whether they know what conscience is, they would say it is a mere creature of the imagination, which may be of service in keeping the vulgar under restraint. If asked whether they know what perception is, they would merely laugh at it and call it enthusiastic rubbish.

 

※ 스베덴보리 시절인 1750년대 유럽의 영적 분위기가 이랬나 봅니다. 이 하나하나의 사례가 모두 스베덴보리가 직접 겪었던 사례이지 싶은데요, 오늘날 한국 사회라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개신교를 비롯, 거의 모든 기독교가 외적(外的, external) 사고, 즉 ‘겉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인데, 말로는 ‘영성, 영성’ 하지만 그 사고의 뿌리는 ‘’에 있습니다. 내적(內的, internal) 사고, 즉 ‘’, 내면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말해도 거의 이해를 못 합니다.

 

이런 게 그들의 지혜이며, 이런 게 그들이 말하는, 소위 ‘눈이 밝아지는 것(open eyes)이고, 이런 게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gods)입니다. 이런 원리들, 그들 생각에는 대낮보다 더 밝은 원리들인데, 이런 원리들을 가지고 그들은 모든것의 출발점을 삼으며, 계속해서 이것에도, 저것에도 그렇게 삼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신앙의 신비들에 대한 이성질(理性, reason)을 하는데요, 그 결과는 과연 어둠의 깊은 심연밖에 뭐가 더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이런 것이 바로 세상을 꾀는 ‘(the serpents)인 것입니다만, 그러나 태고교회의 후손은 아직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되는 건 본 장 14절로 19절에서 다루게 됩니다. Such is their wisdom, such “open eyes” have they, and such “gods” are they. Principles like these, which they think clearer than the day, they make their starting point, and so continue on, and in this way reason about the mysteries of faith; and what can be the result but an abyss of darkness? These above all others are the “serpents” who seduce the world. But this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as not as yet of such a character. That which became such is treated of from verse 14 to verse 19 of this chapter.

 

오운(own) : 라틴어로는 프로프리엄(proprium), 보통 '소유' 관련 뉘앙스로 번역되지만, 여기선 '본성', '자아', '아이덴터티', '존재 그 자체', '그가 가진 모든 것' 등 우리말로 딱히 픽스하기 참 난처한 용어, 개념이어서, 그래서 저는 오랜 고민 끝에 그냥 발음 그대로 적고 있습니다. 퍼셉션, 체어리티처럼 말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창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에 나오는 이 '여자'를 주님이 아담에게 주시는 새로운 오운으로 설명하고 있음을(AC.151)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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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05, 창3:4-5,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AC.204-206) - '주님으로부터 독립, 홀로 서고자 하는 세 번째 후손'

 

4-5절,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And the serpent said unto the woman, Ye shall not surely die. For God doth know that in the day ye eat thereof, then your eyes shall be opened, and ye shall be as God, knowing good and evil.

 

205

모든 구절에는 그 교회의 어떤 특별한 상태나 상태의 변화가 들어 있습니다. 앞선 구절들에는 그들의 그런 기울어짐에도 불구, 그들은 그것이 불법임을 지각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고, 이들 구절에는 그것이 자기들한테 합법이 아닌지 여부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선조들로부터 들어왔던 것들이 참된 것인지 여부를 보게 될 것이고, 그러면서 그들의 눈이 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Every verse contains a particular state, or change of state, in the church: the preceding verses, that although thus inclined they nevertheless perceived it to be unlawful; these verses, an incipient doubt whether it might not be lawful for them, since they would thus see whether the things they had heard from their forefathers were true, and so their eyes would be opened;

 

※ 그러니까 두 번째 후손까지는 그래도 '아니야, 이것은 불법이야!' 하는 단호함이 있었다면, 이 세 번째 후손부터는 '혹시 불법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좀 완화된, 그런 변화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즉 주님이 주신 퍼셉션이 흐려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태고교회의 후손들이 주님보다는 자신에게 주목하게 되면서, 그에 비례해서 주님이 주신 퍼셉션이 흐릿해지기 시작한 겁니다. 퍼셉션은 어떤 선과 진리가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인지 여부를 직관적으로 아는 능력이므로, 이것이 흐릿해지면 덩달아 선과 진리에 대한 총명 또한 흐려지지요.

 

결국, 자기 사랑이 우위를 점한 결과, 그들은 스스로를 인도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렇게 해서 주님처럼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게 주님의 인도하심에 복종하기를 꺼리는, 그리고 혼자 알아서 사는 것과, 그렇게 되어 믿음이 필요한 일들에 대해 감각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 컨설팅하는 걸 더 선호하는 자기 사랑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at length, in consequence of the ascendancy of self-love, they began to think that they could lead themselves, and thus be like the Lord; for such is the nature of the love of self that it is unwilling to submit to the Lord’s leading, and prefers to be self-guided, and being self-guided to consult the things of sense and of memory-knowledge as to what is to be belie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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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04, 창3:4-5,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AC.204-206) -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와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의 속뜻

 

4-5절,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And the serpent said unto the woman, Ye shall not surely die. For God doth know that in the day ye eat thereof, then your eyes shall be opened, and ye shall be as God, knowing good and evil.

 

204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Their eyes being opened by eating of the fruit of the tree)는 만일 그들이 신앙에 관한 것들을 무슨 감각과 지식에 관한 걸로, 즉 자신들이 가진 걸로 조사, 검사, 검토할 경우, 그들은 분명 그것들, 곧 그 신앙에 관한 것들을 잘못된 걸로, 틀린 걸로 볼 거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as God, knowing good and evil)은 만일 그들이 자신들을 기준 삼아 그런 짓을 하면, 그들은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 양 스스로를 인도하려 할 것이라는, 즉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대신 오직 자기 힘으로만 살아가려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Their “eyes being opened by eating of the fruit of the tree” signifies that if they were to examine the things of faith from what is of sense and knowledge [ex sensuali et scientifico], that is, from themselves, they would plainly see those things as if erroneous. And that they would be “as God, knowing good and evil,” denotes that if they did so from themselves, they would be as God, and could guide themsel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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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03, 창3:2-3,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AC.198-203) - '신앙 관련, 영적 천사들의 퍼셉션'

 

2-3절,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And the woman said unto the serpent, We may eat of the fruit of the tree of the garden; But of the fruit of the tree which is in the midst of the garden, God hath said, Ye shall not eat of it, neither shall ye touch it, lest ye die.

 

203

그러나 영적 천사들은 신앙에 관한 대화를 하며, 지성적, 이성적, 그리고 지적 언어들로 신앙에 속한 것들을 심지어 확증까지 하지만, 그러나 이들은 결코 신앙 관련 주제들에 관한 자신들의 결론을 그런 걸 기반으로 내지는 않습니다. 그런 짓을 하는 자는 악 가운데 있기 때문이지요. 이들은 또한 신앙에 속한 모든 진리에 관한 퍼셉션을 주님으로부터 부여받습니다. 비록 천적 천사들의 것과 같은 그런 퍼셉션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영적 천사들의 퍼셉션은 일종의 양심인데요, 이것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생명력을 갖는, 겉보기엔 정말 천적 퍼셉션같지만 실제로는 그건 아니고, 오직 영적 퍼셉션일 뿐입니다. The spiritual angels, however, converse about faith, and even confirm the things of faith by those of the intellect, of the reason, and of the memory, but they never form their conclusions concerning matters of faith on such grounds: those who do this are in evil. They are also endowed by the Lord with a perception of all the truths of faith, although not with such a perception as is that of the celestial angels. The perception of the spiritual angels is a kind of conscience which is vivified by the Lord and which indeed appears like celestial perception, yet is not so, but is only spiritual perce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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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02, 창3:2-3,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AC.198-203) - '만지지도 말라'의 속뜻

 

2-3절,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And the woman said unto the serpent, We may eat of the fruit of the tree of the garden; But of the fruit of the tree which is in the midst of the garden, God hath said, Ye shall not eat of it, neither shall ye touch it, lest ye die.

 

202

태고교회는, 천적 인간이었지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기(eating of the tree of knowledge, 지식의 나무), 즉 신앙에 속한 것을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들(memory-knowledges)을 가지고 배우는 걸 삼가야 할 뿐 아니라, 그 나무를 만지는 거, 즉 신앙에 관한 문제를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들을 가지고 생각하는 게 허용조차 되지 않는 그런 캐릭터였습니다. 안 그러면, 그들은 천적 삶에서 영적 삶으로, 그리고 계속해서 그렇게 가라앉았기 때문입니다. 천적 천사들의 삶 또한 그런데요, 그들이 더욱 내적, 더욱 천적일수록, 그들은 신앙이라 이름하는 거라든지, 영적 성격을 띠는 무엇이든지 접해 보는 것 조차 일절 불허됩니다. 그리고 만일 이 신앙이라는 말을 남들을 통해서 듣게 되면, 신앙 대신 그들은 사랑에 관한 퍼셉션(perception)이 있는데요, 이게 어떻게 다른 건지는 오직 그들만 아는데, 그래서 신앙에 관한 무엇이든지 그들은 사랑과 체어리티(charity)로부터 출발하지요. 더더구나 그들은 신앙에 대해 이성을 가지고 이러니 저러니 하는 말 듣는 걸 굉장히 못 견뎌 하며, 무엇보다도 신앙 관련, 어떤 기억-지식을 가지고 그러는 걸 특히 힘들어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을 통해서, 그들은 주님으로 말미암는 선과 진리에 관한 퍼셉션이 있기 때문이며, 이 퍼셉션으로 그들은 어떤 것이 그런지 안 그런지를 즉시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어떤 신앙에 관한 말을 듣게 되면, 그들은 그저 단순히 그렇다, 아니다로 대답하는데, 그들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그걸 지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마태복음에서 하신 주님 말씀의 의미입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was a celestial man, was of such a character as not only to abstain from “eating of the tree of knowledge,” that is, from learning what belongs to faith from sensuous things and memory-knowledges, but was not even allowed to touch that tree, that is, to think of anything that is a matter of faith from sensuous things and memory-knowledges, lest they should sink down from celestial life into spiritual life, and so on downward. Such also is the life of the celestial angels, the more interiorly celestial of whom do not even suffer faith to be named, nor anything whatever that partakes of what is spiritual; and if it is spoken of by others, instead of faith they have a perception of love, with a difference known only to themselves; thus whatever is of faith they derive from love and charity. Still less can they endure listening to any reasoning about faith, and least of all to anything of memory-knowledge respecting it; for, through love, they have a perception from the Lord of what is good and true; and from this perception they know instantly whether a thing is so, or is not so. Therefore when anything is said about faith, they answer simply that it is so, or that it is not so, because they perceive it from the Lord. This is what is signified by the Lord’s words in Matthew: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마5:37) Let your communication be Yea, yea; nay, nay; for whatsoever is more than these cometh of evil. (Matt. 5:37)

 

그래서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지식의 나무 열매를 만지지 못하게 하셨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그들이 그걸 만지면, 그들은 악 가운데 있게, 즉 결과적으로 ‘죽게(die) 되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적 천사들은 다양한 주제에 관해 다른 천사들처럼 서로 대화합니다. 다만 천적 언어로 하는데, 이 언어는 사랑으로 되어 있고 사랑에서 나오며, 영적 천사들의 언어보다 더욱 형언할 수 없는 언어입니다. This then is what was meant by their not being allowed to touch the fruit of the tree of knowledge; for if they touched it, they would be in evil, that is, they would in consequence “die.” Nevertheless the celestial angels converse together on various subjects like the other angels, but in a celestial language, which is formed and derived from love, and is more ineffable than that of the spiritual angels.

 

기억-지식들(memory-knowledges) : 학습하기만 한 지식들, 아직 실천까지는 안 한, 이 지식들이 실천의 옷을 입으면 그때부터 속 사람의 일부가 됨

 

퍼셉션(perception) : 천사들에게 허용된 직관 능력, 어떤 것이 주님으로 말미암은 선과 진리인지를 본능적으로 아는. 인류는 지금까지 네 교회, 즉 태고교회(아담교회), 고대교회(노아교회), 표상교회(모세교회)가 있었고, 그리고 현 기독교회가 진행 중임. 각 교회 시대마다 그 시대의 최후의 심판과 종말, 곧 그 시대 교회의 종말이 있었음.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계속해서 주님께 연결되어 존속할 수 있도록 하셨음. 인류가 주님께 연결되어 있도록 주님이 허용하신 첫 번째가 바로 이 '퍼셉션'임. 그러나 이 퍼셉션은 태고교회의 종말, 곧 '홍수'로 말미암아 닫히고, 이후 일어난 고대교회(노아교회) 때부터 인류에게 새로운, 즉 기존 퍼셉션을 대신할 새로운 연결 방법이 주님으로부터 허용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양심'임

 

체어리티(charity) : 기부, 인애, 자원봉사, 이웃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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