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47.심화

 

1. ‘44:24-26

 

24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25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26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44:24-26) Wherefore hidest thou thy faces, and forgettest our misery and our oppression? For our soul is bowed down to the dust, and our belly cleaveth to the earth. Arise, a help for us, and redeem us for thy mercys sake (Ps. 44:24–26),

 

 

이 시편 구절은 AC.247에서 ‘(belly)가 가장 낮은 차원의 것, 곧 몸과 땅에 속한 것을 의미한다는 증거로 인용됩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시편 기자는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한 육체적 고통의 표현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그는 여기서 ‘영혼(soul)이 진토에 엎드려 있고, ‘(belly)가 땅에 붙어 있다는 표현 속에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특히 ‘배가 땅에 붙었다(our belly cleaveth to the earth)는 표현은 창3:14의 ‘배로 기어갈지니라’와 직접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배는 인간 안의 가장 낮은 수준, 곧 감각적이고 자연적인 차원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배가 땅에 붙는다는 것은 인간의 생각과 관심, 그리고 사랑이 하늘의 것들보다 세상과 몸의 것들에 매여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AC.247에서 그는 ‘사람이 여호와의 얼굴에서 돌아설 때, 배가 티끌과 땅에 붙는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얼굴을 돌리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주님의 얼굴에서 돌아섰다는 점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인간의 시선은 위를 향하지 못하고 아래를 향하게 됩니다. 영원한 것보다 일시적인 것을, 천국보다 세상을, 주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시편 기자는 바로 그 상태에서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부르짖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도움 요청이 아니라, 땅에 붙어 있는 상태에서 다시 위를 향하게 해 달라는 영적 기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AC.247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가 가장 낮은 감각적 수준을 의미하며, ‘배가 땅에 붙는다’는 것은 감각적 인간이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고 세상적인 것들에 매이게 된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곧 창세기에서 뱀이 ‘배로 기어가게 된 것’의 의미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성경적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AC.247, 심화 2, ‘욘2:2’

AC.247.심화 2. ‘욘2:2’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욘2:2) Out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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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7, 창3:14, ‘배로 다니고’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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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3:14)



AC.247

뱀이 배로 기어간다(serpent going on his belly)는 것은 그들의 감각 파트(the sensuous part)가 더 이상 하늘의 것들을 바라볼 수 없고, 오직 몸과 땅에 속한 것들만 바라보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고대인들이 (belly)로는 땅에 가장 가까운 것들을, ‘가슴(chest)으로는 땅보다 높은 것들을, 그리고 머리(head)로는 가장 높은 것들을 의미하였다는 사실로부터 분명합니다. 여기서 감각 파트는 인간 본성 가운데 가장 낮은 부분인데, 그것이 배로 기어간다(went upon its belly) 한 것은 땅에 속한 것들로 향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대교회에서 배를 땅에 대고 엎드리거나 머리에 티끌을 뿌리는 행위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편은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That the “serpent going on his belly” denotes that their sensuous part could no longer look upward to the things of heaven, but only downward to those of the body and the earth,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in ancient times by the “belly” such things are signified as are nearest to the earth; by the “chest” such as are above the earth; and by the “head,” what is highest. It is here said that the sensuous part, which in itself is the lowest part of man’s nature, “went upon its belly,” because it turned to what is earthly. The depression of the belly even to the earth, and the sprinkling of dust on the head, had a similar signification in the Jewish church. Thus we read in David:

 

24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25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26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44:24-26) Wherefore hidest thou thy faces, and forgettest our misery and our oppression? For our soul is bowed down to the dust, and our belly cleaveth to the earth. Arise, a help for us, and redeem us for thy mercys sake (Ps. 44:24–26),

 

여기서도 사람이 여호와의 얼굴에서 돌아설 때, ‘배가 티끌과 땅에 붙는다(cleaves by his belly to the dust and to the earth)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요나가 큰 물고기의 뱃속에 들어간 일도 가장 낮은 곳들, 곧 아래의 땅(lower earth)을 의미하며, 그래서 그는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라고 말합니다. where also it is evident that when man averts himself from the face of Jehovah, he “cleaves by his belly to the dust and to the earth.” In Jonah likewise, by the “belly” of the great fish, into which he was cast, are signified the lower parts of the earth, as is evident from his prophecy: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2:2) Out of the belly of hell cried I, and thou heardest my voice (Jonah 2:2),

 

여기서 스올(hell)은 아래의 땅을 의미합니다. where “hell” denotes the lower earth.

 

 

해설

 

이 글은 창3:14의 ‘배로 기어갈지니라’는 말씀을 더욱 깊이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뱀이 원래부터 배로 기어 다니므로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인간 안의 감각 파트가 영적인 방향을 잃어버린 상태를 묘사하는 상징으로 해석합니다.

 

고대교회 사람들은 인간의 몸 자체를 하나의 상응 구조로 보았습니다. 머리는 가장 높은 것들, 곧 천적이고 신적인 것들을 의미하였고, 가슴은 사랑과 신앙 같은 중간 영역을 의미하였으며, 배는 가장 아래 단계, 곧 자연적이고 감각적인 영역을 의미하였습니다. 따라서 ‘배로 기어간다’는 것은 단순한 자세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향이 완전히 아래로 향했다는 뜻입니다.

 

원래 인간은 위를 향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눈은 하늘을 볼 수 있고, 생각은 진리를 향할 수 있으며, 사랑은 주님을 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감각이 주인이 되면 시선이 바뀝니다. 이제 관심은 영적인 것보다 세속적인 것에, 영원한 것보다 눈앞의 것에, 주님보다 자기 자신에게 머물게 됩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배로 기어가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시편을 인용합니다.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라는 말은 단순히 육체적 고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낮아지고 세상적인 것에 얽매인 상태를 묘사합니다. 특히 ‘배가 땅에 붙었다’는 표현은 감각적 인간이 하늘을 향한 시선을 잃어버린 상태를 상징합니다.

 

요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물고기의 배를 단순한 생물학적 공간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것은 가장 낮은 영적 상태, 곧 빛이 거의 닿지 않는 영역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요나는 ‘물고기의 배’와 ‘스올의 뱃속’을 연결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이것은 영적으로 깊은 침체와 어둠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결국 AC.247의 핵심은 ‘’가 가장 낮은 차원의 삶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뱀이 배로 기어간다’는 것은 감각적 인간이 더 이상 위를 바라보지 못하고, 오직 아래의 것들만 바라보게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형벌의 선언이 아니라, 인간이 주님에게서 멀어질 때 일어나는 영적 방향 상실의 묘사입니다. 원래 하늘을 향하던 존재가 이제는 땅만 바라보게 되었고, 영원을 생각하던 존재가 순간적인 것만 생각하게 되었으며, 주님을 향하던 사랑이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 향하게 된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것이 ‘배로 기어가는 뱀’의 가장 깊은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화

 

1. ‘44:24-26

 

 

AC.247, 심화 1, ‘시44:24-26’

AC.247.심화 1. ‘시44:24-26’ 24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25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26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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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2

 

 

AC.247, 심화 2, ‘욘2:2’

AC.247.심화 2. ‘욘2:2’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욘2:2) Out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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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8, 창3:14, ‘몸의 자세와 방향을 영적 상태의 상응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창3:14)AC.248그러므로 사람이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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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6, 창3:14, ‘들의 모든 짐승’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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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6.심화

 

1. ‘68:9-10

 

9하나님이여 주께서 흡족한 비를 보내사 주의 기업이 곤핍할 때에 주께서 그것을 견고하게 하셨고 10주의 회중을 그 가운데에 살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 (68:9, 10) Thou, O God, dost send the rain of thy kindnesses; thou confirmest thy laboring inheritance; thy wild animal shall dwell therein (Ps. 68:9–10),

 

 

68:9-10 AC.246에서 ‘들의 짐승(wild animal of the field)이 애정(affection)을 의미한다는 증거로 인용됩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메마른 기업을 회복시키시고, 그 가운데 주의 회중이 거하게 하신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영어 원문에는 ‘thy wild animal shall dwell therein’이라는 표현이 있어, 스베덴보리는 이 ‘들의 짐승’을 단순한 동물로 보지 않습니다.

 

그의 상응 해석에 따르면 ‘(rain)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진리와 축복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기업(inheritance)은 교회 또는 주님께 속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 가운데 거하는 들짐승(wild animal)’은 그 교회 안에 살아 있는 선한 애정, 곧 주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정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의 내적 의미는, 주님께서 진리의 비를 내려 황폐해진 교회를 회복시키시고, 그 안에 선한 애정들이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AC.246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성경의 ‘들의 짐승’이 언제나 실제 동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의 애정들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특히 여기서는 ‘들의 짐승이 하나님의 기업 가운데 거한다’고 말하는데, 문자 그대로의 동물보다 교회 안에 거하는 선한 애정으로 이해할 때 훨씬 자연스럽고 깊은 의미가 드러난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field)이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은 단순한 자연의 들판이 아니라 진리와 선이 심기고 자라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들의 짐승’은 교회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애정들, 특히 선과 진리를 사랑하는 정서들을 뜻하게 됩니다.

 

결국 AC.246에서 이 시편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들의 짐승’이 상응으로는 인간 안의 애정, 특히 선한 애정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성경 자체로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주의 들짐승이 그 가운데 거하나이다’라는 말씀은, 주님께서 회복하신 교회 안에 선의 애정과 체어리티가 살아 있음을 뜻하는 말씀으로 해석되는 것입니다.

 

 

 

AC.246, 창3:14, ‘들의 모든 짐승’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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