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9.심화

 

5. ‘13:19-24, 37-39

 

19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려진 자요 20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23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24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37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13:19-24, 37-39)

 

 

이 마태복음 13장 구절이 AC.29에 인용된 이유는, 창세기 1 11절의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주님 자신의 말씀으로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AC.29에서 스베덴보리는 씨 맺는 채소’를 신앙에 속한 것들, 곧 진리와 신앙의 원리들로 해석하고, ‘열매 맺는 나무’를 체어리티에 속한 것들, 곧 사랑과 선한 삶으로 해석합니다. 따라서 씨는 신앙의 시작이고, 열매는 신앙이 삶 속에서 완성된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비유를 해석하시며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씨는 단순한 문자나 정보가 아니라 사람 안에 심어지는 진리이며, 신앙의 원리입니다. 따라서 씨가 뿌려진다는 것은, 사람 안에 주님의 진리가 심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창세기에서 씨 맺는 채소’가 등장하는 이유와 정확히 연결됩니다.

 

또한 이 비유 전체를 보면 관심의 초점은 씨 자체보다 씨가 어떤 땅에 떨어졌는가에 있습니다. 같은 씨라도 길가에서는 빼앗기고, 돌밭에서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며, 가시떨기에서는 세상 염려와 욕심에 막혀 버립니다. 오직 좋은 땅에 떨어진 씨만이 자라서 결실합니다. 이는 진리가 사람 안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것이 보존되고 성장하여 실제 삶 속에서 열매를 맺어야 함을 보여 줍니다.

 

특히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결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여기서 결실은 단순히 더 많은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가 사랑과 선한 삶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AC.29에서 말하는 열매 맺는 나무’입니다. 씨는 신앙이고, 열매는 체어리티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라고 하신 말씀 역시 AC.29의 중요한 주제와 연결됩니다. 사람 안에 심어지는 모든 참된 신앙의 씨는 사람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고 주님에게서 옵니다. 사람은 단지 그 씨를 받는 밭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시작도 주님에게서 오고, 성장도 주님에게서 오며, 결실도 궁극적으로는 주님의 역사입니다.

 

결국 스베덴보리가 이 본문을 AC.29에 인용한 이유는, 창세기 1장의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가 자연계 식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님의 진리가 사람 안에 심어지고, 그것이 자라 체어리티의 열매를 맺는 거듭남의 과정을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씨는 신앙의 진리이고, 열매는 사랑의 삶이며, 거듭남은 씨 뿌림에서 결실에 이르는 전 과정이라는 것을 주님의 비유를 통해 증명하기 위해 이 구절이 인용된 것입니다.

 

 

 

AC.29, 심화 6, ‘막4:14-20’

AC.29.심화 6. ‘막4:14-20’ 14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15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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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 심화 4, ‘갑작스런 repentance의 등장’

AC.29.심화 4. ‘갑작스런 repentance의 등장’ AC.29 두 번째 단락에, ‘This is the third successive stage of the regeneration of man, being his state of repentance,’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좀 어리둥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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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8.심화

 

7. ‘12:1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이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 (12:1) Jehovah stretcheth forth the heavens, and layeth the foundation of the earth, and formeth the spirit of man in the midst of him (Zech. 12:1).

 

 

12:1 구절이 AC.28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하늘’, ‘’, 그리고 사람 안의 영’이 서로 분리된 주제가 아니라, 인간 거듭남 안에서 하나의 질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AC.28의 핵심인 땅은 수용체(recipient)’라는 점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구절이기 때문에 인용된 것입니다.

 

본문은 세 가지를 연속해서 말합니다.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연결을 매우 중요하게 봅니다. 문자적으로는 우주 창조와 인간 창조를 함께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재창조의 구조를 묘사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먼저 하늘을 펴신다’는 것은 속 사람(inner man)을 여시는 것을 뜻합니다. 속 사람은 주님의 빛과 생명이 먼저 유입되는 영역이며, 인간 안의 가장 내적인 차원입니다. 하늘이 펼쳐진다는 것은, 닫혀 있던 속 사람이 주님의 진리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열리는 상태입니다.

 

이어 땅의 터를 세우신다’는 말에서 땅은 겉 사람(external man)을 뜻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단순히 땅이라고 하지 않고 터를 세운다’고 합니다. 이는 겉 사람이 단순한 외적 존재가 아니라, 속 사람에게서 오는 생명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초와 질서를 갖추는 과정을 뜻합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AC.28에서 스베덴보리는 땅을 수용체(recipient)라고 설명합니다.

 

즉, 땅은 스스로 생명을 만들어 내는 주체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생명을 받아들이는 자리입니다. 겉 사람은 속 사람에서 오는 진리와 선을 받아 실제 삶과 행위 안에서 열매 맺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땅은 받는 구조’이며, 주님께서 그 터를 세우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다’고 합니다. 이것이 결정적입니다. 하늘과 땅의 질서가 세워진 목적은 결국 사람 안에 영(spirit)을 형성하시기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거듭남은 단순히 지식을 쌓거나 외적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새로운 영적 생명을 형성하는 과정입니다.

 

이 구절은 AC.25와도 긴밀히 연결됩니다. 거기서도 하늘을 펴고 땅을 펼친다’는 표현이 인간 거듭남의 언어라고 설명했는데, 여기 슥12:1은 그 과정이 결국 사람 안의 영 형성을 목표로 한다는 점까지 밝혀 줍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AC.28에 인용하여, ‘하늘사람의 영’이라는 연결 구조를 통해, 속 사람과 겉 사람, 그리고 그 안에 저장된 지식과 생명이 모두 주님의 질서 안에서 하나로 형성된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창조의 언어는 우주의 구조를 넘어서, 인간 안에 새로운 영을 지으시는 거듭남의 언어라는 것입니다.

 

 

 

AC.28, 창1:10, ‘물과 바다와 땅 : 지식이 모이고, 생명이 머무는 거듭남의 그릇’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called the dry [land] earth, and the gathering together of the waters called he seas;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창1:10)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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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8, 심화 6, ‘시69:33-34’

AC.28.심화 6. ‘시69:33-34’ 33여호와는 궁핍한 자의 소리를 들으시며 자기로 말미암아 갇힌 자를 멸시하지 아니하시나니 34천지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바다와 그 중의 모든 생물도 그리할지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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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8.심화

 

6. ‘69:33-34

 

33여호와는 궁핍한 자의 소리를 들으시며 자기로 말미암아 갇힌 자를 멸시하지 아니하시나니 34천지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바다와 그 중의 모든 생물도 그리할지로다 (69:33, 34) Jehovah despiseth not his prisoners; let the heavens and the earth praise him, the seas and everything that creepeth therein (Ps. 69:33–34).

 

 

69:33-34 구절이 AC.28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바다(seas)와 그 안의 ‘생물들(everything that creepeth therein)이 단순한 자연 세계의 요소들이 아니라, 인간 안에 저장된 지식들과 그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상태를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이 구절은 황폐했던 사람이 거듭남을 통해 다시 살아나는 상태를 묘사하는 예로 사용됩니다.

 

본문은 먼저 ‘궁핍한 자’, ‘갇힌 자’를 말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이런 표현들은 단순한 사회적 약자를 넘어서, 영적으로 황폐하고 속박된 상태의 사람을 뜻합니다. 곧 진리와 선의 생명을 잃고, 자기 본성과 거짓 속에 갇혀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그런 사람을 멸시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이는 거듭남의 시작이 언제나 주님의 자비에서 비롯된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움직이는 모든 것이 그를 찬송할 것’이라는 표현이 AC.28의 핵심과 연결됩니다. 여기서 ‘하늘’은 속 사람(inner man), ‘’은 겉 사람(external man)을 뜻하며, ‘바다’는 그 겉 사람 안에 저장된 기억-지식(scientifica)의 총체를 뜻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단순히 바다만이 아니라, ‘그 가운데 움직이는 모든 것(everything that creepeth therein)까지 함께 찬양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AC.27-28에서 물과 바다는 지식의 저장 상태를 뜻했는데, 이제 그 지식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 등장합니다. 이는 기억 속에 저장된 진리들이 더 이상 죽은 정보로 머물지 않고, 생명을 얻어 실제로 움직이고 작용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즉, 거듭남 이전에는 지식이 단지 바닷속에 저장된 물처럼 존재할 뿐이었다면, 이제는 그 안에 생명 있는 움직임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바닷속의 생물들은 살아 있는 지식, 곧 주님과 연결되어 생명을 얻은 진리들을 상징합니다.

 

또 ‘찬송한다’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말씀에서 찬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존재 전체가 주님의 질서 안으로 들어온 상태를 뜻합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의 모든 것이 함께 찬양한다는 것은, 인간의 속 사람과 겉 사람, 기억과 지식, 애정과 사고까지 모두 주님을 향한 질서 안에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AC.28에 인용하여, 바다와 물이 지식의 상징이라는 점을 넘어서, 그 지식이 거듭남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즉, 기억 속에 저장된 진리들이 주님의 생명과 연결될 때, 바다는 더 이상 황폐와 혼돈의 장소가 아니라, 찬양과 생명의 영역이 되는 것입니다.

 

 

 

AC.28, 심화 7, ‘슥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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