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의 속뜻이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그로 말미암는 선들을 상징하는 이유

 

20절,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And Adah bare Jabal; he was the father of the dweller in tents, and of cattle.

 

416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그로 말미암는 선들을 상징함이 분명한 것은 야발이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맨 처음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야발과 같이 자기도 ‘양 치는 자’란 말을 들었던 아벨, 하지만 그는 아담과 하와의 둘째였던 반면, 야발은 가인에서 시작, 일곱 번째였기 때문입니다. That the holy things of love and the derivative goods are signified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Jabal was not the first of those who “dwelt in tents and in folds of cattle,” for it is said likewise of Abel, the second son of Adam and Eve, that he was “a shepherd of the flock,” and Jabal was the seventh in the order of descent from Cain.

Posted by bygracetistory
,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의 속뜻, 사랑의 거룩한 것들에서 나오는 선

 

20절,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And Adah bare Jabal; he was the father of the dweller in tents, and of cattle.

 

415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사랑의 거룩한 것들에서 나오는 선을 상징한다는 건 위 본 장 2절에서 보여드린, ‘양 치는 자’가 체어리티(charity)의 선을 상징한다는 걸 보면 분명합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양 치는 자 대신 조상, ‘양 떼 대신 가축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으며, 야발을 가리켜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라 할 때 사용된 단어 가축 장막 바로 뒤에 나옵니다. 이걸로 분명한 것은, 이것은 사랑의 거룩, 즉 거룩한 사랑에서 나오는 선을 상징한다는 것과, 가축의 주거지나 우리(fold), 즉 장막과 가축의 우리에 거주하는 자들의 조상이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표현들이 사랑의 천적인 것들로 말미암는 선들을 상징한다는 건 말씀에 나오는 다양한 본문들을 보면 분명합니다. 예레미야입니다. That by the “father of cattle” is signified the good that is derived from the holy things of love, is evident from what was shown above, at verse 2 of this chapter, where it was shown that a “shepherd of the flock” signifies the good of charity. Here however the term “father” is employed instead of “shepherd,” and “cattle” instead of “flock”; and the word “cattle,” of which Jabal is said to be the “father,” follows immediately after “tent,” whence it is evident that it signifies the good that comes from the holy of love, and that there is meant a habitation or fold for cattle, or the father of them that dwell in tents and in folds for cattle. And that these expressions signify goods from the celestial things of love, is evident from various passages in the Word. As in Jeremiah:

 

내가 내 양 떼의 남은 것을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렘23:3) I will gather the remnants of my flock out of all lands whither I have scattered them, and I will bring them again to their folds, that they may be fruitful and multiply. (Jer. 23:3)

 

에스겔입니다. In Ezekiel:

 

좋은 꼴을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리니 그것들이 그곳에 있는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겔34:14) I will feed them in a good pasture, and upon the mountains of the height of Israel shall their fold be; there shall they lie down in a good fold, and in a fat pasture shall they feed upon the mountains of Israel, (Ezek. 34:14)

 

여기 ‘우리’와 ‘’은 ‘살지다’로 서술된 사랑의 선들을 가리킵니다. 이사야입니다. where “folds” and “pastures” denote the goods of love, of which “fatness” is predicated. In Isaiah: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날에 네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사30:23) He shall give the rain of thy seed wherewith thou shalt sow the ground; and bread of the increase of the ground shall be fat and full of oil; in that day shall he feed thy cattle in a broad meadow, (Isa. 30:23)

 

여기 ‘먹을 것’은 천적인 것을, 가축이 그 가운데서 먹게 될 ‘풍성함’은 천적인 것에서 나오는 선들을 상징합니다. 예레미야입니다. where by “bread” is signified what is celestial, and by the “fat” whereon the cattle should feed, the goods thence derived. In Jeremiah:

 

11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되 12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복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렘31:11-12) Jehovah hath redeemed Jacob, and they shall come and sing in the height of Zion, and shall flow together to the good of Jehovah, for the wheat, and for the new wine, and for the oil, and for the sons of the flock, and of the herd; and their soul shall be as a watered garden, (Jer. 31:11–12)

 

여기 여호와의 거룩하심이 ‘곡식’과 ‘기름’으로,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선들이 ‘새 포도주’와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 곧 ‘가축’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다시 where the holy of Jehovah is described by “wheat” and “oil,” and the goods derived from it by “new wine” and the “sons of the flock and of the herd,” or of “cattle.” Again:

 

목자들이 그 양 떼를 몰고 와서 주위에 자기 장막을 치고 각기 그 처소에서 먹이리로다 (렘6:3) The shepherds and the flocks of their cattle shall come unto the daughter of Zion; they shall pitch their tents toward her round about; they shall feed everyone his own space. (Jer. 6:3)

 

시온의 딸’은 ‘장막’과 ‘양 떼’로 서술된 천적 교회를 가리킵니다. The “daughter of Zion” denotes the celestial church, of which “tents” and “flocks of cattle” are predicated.

Posted by bygracetistory
,

장막에 거주하여의 속뜻, 사랑의 거룩한 것

 

20절,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And Adah bare Jabal; he was the father of the dweller in tents, and of cattle.

 

414

장막에 거주하는 것’이 사랑의 거룩한 걸 상징한다는 건 말씀에서 ‘장막(tents)의 상징을 보면 분명합니다. 시편에 보면 That to “dwell in tents” signifies what is holy of love,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tents” in the Word. As in David:

 

1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2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시15:1-2) Jehovah, who shall abide in thy tent? Who shall dwell in the mountain of thy holiness? He that walketh upright, and worketh righteousness, and speaketh the truth in his heart, (Ps. 15:1–2)

 

이 말씀에서 ‘장막에 거주하는 것’, 혹은 ‘성산에 사는 것’을 사랑의 거룩한 것들, 즉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in which passage, what it is to “dwell in the tent” or “in the mountain of holiness” is described by holy things of love, namely, the walking uprightly, and working righteousness. Again: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시19:4) Their line is gone out through all the earth, and their discourse to the end of the world. In them hath he set a tent for the sun, (Ps. 19:4)

 

여기 ‘’는 사랑을 가리킵니다. 다시 where the “sun” denotes love. Again: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 (시61:4) I will abide in thy tent to eternities, I will trust in the covert of thy wings, (Ps. 61:4)

 

여기 ‘장막’은 천적인 것을, ‘날개 아래’는 거기서 나오는 영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이사야입니다. where the “tent” denotes what is celestial, and the “covert of wings” what is spiritual thence derived. In Isaiah:

 

다윗의 장막에 인자함으로 왕위가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정의를 구하며 공의를 신속히 행하리라 (사16:5) By mercy the throne has been made firm, and one hath sat upon it in truth, in the tent of David, judging and seeking judgment, and hasting righteousness, (Isa. 16:5)

 

여기 또한 ‘장막’은 사랑의 거룩한 것을 가리킵니다. ‘정의로 판결함’, ‘공의를 신속히 행함’이라는 표현을 보면 아실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시 where also the “tent” denotes what is holy of love, as may be seen by the mention of “judging judgment,” and “hasting righteousness.” Again:

 

우리 절기의 시온 성을 보라 네 눈이 안정된 처소인 예루살렘을 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사33:20) Look upon Zion, the city of our appointed feast; thine eyes shall see Jerusalem a quiet habitation, a tent that shall not be moved away, (Isa. 33:20)

 

하늘의 예루살렘을 말씀하시면서 speaking of the heavenly Jerusalem.

 

[2] 예레미야입니다. In Jeremiah: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야곱 장막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고 그 거처들에 사랑을 베풀 것이라 성읍은 그 폐허가 된 언덕 위에 건축될 것이요 (렘30:18) Thus said Jehovah, Behold, I bring again the captivity of Jacob’s tents, and will have mercy on his dwelling places, and the city shall be builded upon her own heap; (Jer. 30:18)

 

장막의 포로’는 천적인 것, 즉 사랑의 거룩한 것들의 황폐함을 상징합니다. 아모스입니다. the “captivity of tents” signifies the vastation of what is celestial, or of the holy things of love. In Amos: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암9:11) In that day will I raise up the tabernacle of David which is fallen; and will fence up the breaches thereof, and I will raise up its ruins, and I will build it as in the days of eternity, (Amos 9:11)

 

여기 ‘장막(tabernacle, 성막)은 마찬가지로 천적인 것과 그것의 거룩한 것들을 가리킵니다. 예레미야입니다. where the “tabernacle” in like manner denotes what is celestial and the holy things thereof. In Jeremiah: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 나의 장막과 휘장은 갑자기 파멸되도다 (렘4:20) The whole land is laid waste, suddenly are my tents laid waste, and my curtains in a moment. (Jer. 4:20)

 

내 장막이 무너지고 나의 모든 줄이 끊어졌으며 내 자녀가 나를 떠나가고 있지 아니하니 내 장막을 세울 자와 내 휘장을 칠 자가 다시 없도다 (렘10:20) My tent is laid waste, and all my cords are plucked out, my sons are gone forth from me, and they are not; there is none to stretch my tent anymore, and to set up my curtains, (Jer. 10:20)

 

여기 ‘장막’은 천적인 것들을, 그리고 ‘휘장’과 ‘’은 거기서 나오는 영적인 것들을 상징합니다. 다시 where the “tent” signifies celestial things, and “curtains” and “cords” spiritual things thence derived. Again:

 

너희는 그들의 장막과 양 떼를 빼앗으며 휘장과 모든 기구와 낙타를 빼앗아다가 소유로 삼고 (렘49:29) Their tents and their flocks shall they take; they shall carry off for themselves their curtains, and all their vessels, and their camels, (Jer. 49:29)

 

게달(아라비아)과 동방 자손들에 관한 말씀인데, 이들을 통해 천적인 것, 즉 거룩한 것을 소유한 사람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시 speaking of Arabia and the sons of the east, by whom are represented those who possess what is celestial or holy. Again:

 

딸 시온의 장막에 그의 노를 불처럼 쏟으셨도다 (애2:4) Into the tent of the daughter of Zion the Lord hath poured out his wrath like fire, (Lam. 2:4)

 

신앙의 천적인 것, 곧 거룩한 것들의 황폐함에 관한 말씀입니다. speaking of the vastation of the celestial or holy things of faith.

 

[3] 말씀에서 이 ‘장막’이라는 용어를 채택, 천적인 것과 사랑의 거룩한 것들을 표현하는 이유는, 고대에는 예배의 거룩한 의식들을 그들의 장막에서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신성모독의 예배를 장막에서 드림으로써 장막을 모독하기 시작하더니 성막이 세워졌고, 나중에는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이런 이유로, 장막은 먼저 성막이, 그 다음엔 성전이 가리키는 모든 것을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거룩한 사람을 가리켜 주님의 장막’, ‘성막’, 그리고 성전이라 합니다. 장막’, ‘성막’, 그리고 성전이 같은 걸 상징한다는 것은, 시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The reason why the term “tent” is employed in the Word to represent the celestial and holy things of love is that in ancient times they performed the holy rites of worship in their tents. But when they began to profane the tents by profane kinds of worship, the tabernacle was built, and afterwards the temple, and therefore tents represented all that was subsequently denoted first by the tabernacle, and afterwards by the temple. For the same reason a holy man is called a “tent,” a “tabernacle,” and a “temple” of the Lord. That a “tent,” a “tabernacle,” and a “temple” have the same signification, is evident in David:

 

4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5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6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시27:4-6) One thing have I asked of Jehovah, that will I seek after, that I may remain in the house of Jehovah all the days of my life, to behold Jehovah in sweetness, and to visit early in his temple; for in the day of evil he shall hide me in his tabernacle; in the secret of his tent shall he hide me; he shall set me up upon a rock. And now shall my head be lifted up against mine enemies round about me, and I will offer in his tent sacrifices of shouting. (Ps. 27:4–6)

 

[4] 가장 높은 뜻으로는, 주님은 그의 인성(人性, human essence)과 관련하여 ‘장막’, ‘성막’, 그리고 ‘성전’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천인(天人, celestial man)을 그렇게 부르며, 모든 천적이며 거룩한 것들 또한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주님 보시기에 자기 뒤에 일어난 교회들보다 더욱 사랑스러웠던 태고교회, 그 당시 혼자, 곧 가족 단위로 살면서 자기들의 장막에서 참으로 거룩한 예배를 드렸던 태고교회, 이런 이유로, 장막은 성전, 나중에 신성모독된 성전보다 훨씬 더 거룩한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모든 것을 기념하고자 초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이 제정되었습니다. 토지 소산을 거둘 때에 그들은 그 절기 동안 태곳적 사람들처럼 장막에서 지냈습니다. (23:39-44; 16:13; 12:9) In the supreme sense, the Lord as to his human essence is the “tent,” the “tabernacle,” and the “temple”; hence every celestial man is so called, and also everything celestial and holy. Now as the most ancient church was better beloved of the Lord than the churches that followed it, and as men at that time lived alone, that is, in their own families, and celebrated so holy a worship in their tents, therefore tents were accounted more holy than the temple, which was profaned. In remembrance thereof the feast of tabernacles was instituted, when they gathered in the produce of the earth, during which, like the most ancient people, they dwelt in tents. (Lev. 23:39–44; Deut. 16:13; Hosea 12:9)

 

23:39-44

39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40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41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일곱째 달에 이를 지킬지니라 42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43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44모세는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 (레23:39-44)

 

16:13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신16:13)

 

12:9

네가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내가 너로 다시 장막에 거주하게 하기를 명절날에 하던 것 같게 하리라 (호12:9)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