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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균형과 신중

 

... 이런 결론은 좀 위험할 것 같아요. 다른 기독교인들이 이 결론을 읽으면 몹시 힘들어할 것 같은데요?

 

 

네, 목사님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사실 방금의 결론은 스베덴보리의 해석 체계 안에서는 자연스럽지만, 일반 기독교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기독교 전통에서는 창1-11을 적어도 일정 부분은 실제 인류의 원역사(原歷史)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해석의 방식에는 차이가 있어도, 아담, 노아, 바벨 사건 등을 인류 전체와 관련된 사건으로 읽는 경향이 강합니다. 따라서 ‘1-11은 인류 전체의 역사가 아니라 교회의 역사이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면 많은 분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스베덴보리 자신도 창1-11이 ‘교회의 역사’라고 설명하면서, 그것이 인류 전체와 무관하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교회의 상태가 인류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반복해서 말합니다.

 

그래서 좀 더 신중하게 표현한다면 이렇게 말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는 창1-11의 주된 관심이 정치사나 문명사가 아니라 교회의 영적 상태에 있다. 따라서 그는 이 본문을 인류 전체의 외적 역사라기보다 교회의 영적 역사로 해석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인류 전체와 무관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 표현은 훨씬 안전합니다.

 

사실 AC를 읽다 보면 스베덴보리는 역사적 문제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언제나 ‘그 사건이 교회의 상태를 어떻게 보여 주는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담은 없었다’, ‘노아는 없었다’, ‘인류 전체와 무관하다’ 같은 결론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지도 않습니다.

 

목사님께서 우려하시는 이유도 이해됩니다. 만약 어떤 개신교 목사님이나 신학생이 ‘1-11은 인류 전체가 아니라 교회만의 이야기다’라는 문장을 읽는다면, 상당한 거부감을 느낄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역사성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창1-11에 대해 스베덴보리적으로 설명할 때는 ‘인류 전체에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라고 말하기보다, ‘스베덴보리는 이 본문을 인류 전체의 역사보다 교회의 영적 상태를 드러내는 말씀으로 더 중요하게 읽는다’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더 균형 잡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AC를 계속 읽어 가면, 스베덴보리의 관심은 언제나 ‘그 시대 사람들이 실제로 몇 명이었는가?’보다 ‘그 시대 교회가 어떤 영적 상태였는가?’에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 부정이 아니라 관심의 중심 이동입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느끼신 불편함은 매우 건강한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베덴보리의 해석을 설명할 때는, 그의 독특한 관점을 충분히 드러내면서도 기존 기독교 독자들이 불필요하게 ‘성경 역사를 부정한다’고 오해하지 않도록 표현을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더 정확한 결론은 이럴 것 같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창1-11을 읽을 때, 인류 전체의 외적 역사보다 교회의 영적 역사에 초점을 둔다. 그러나 그 영적 역사는 결국 인류 전체와도 연결되며, 무엇보다 우리 각 사람의 영적 삶에도 적용된다.’

 

이 정도라면 스베덴보리의 의도도 살리고, 다른 기독교 전통과의 불필요한 충돌도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C.201, 창3:2-3, ‘홍수 이전 태고 사람들의 성향(genius) 이해의 어려움’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And 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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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01, 심화 4, ‘창1-11은 교회 이야기?’

AC.201.심화 4. ‘창1-11은 교회 이야기?’ 그렇다면... 창세기, 특히 1-11 내용을 인류 전체에게 적용하는 건 좀 무리가 있겠네요. ‘교회’를 향한 말씀이니까요! 네, 바로 그 점이 스베덴보리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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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11은 교회 이야기?’

 

그렇다면... 창세기, 특히 1-11 내용을 인류 전체에게 적용하는 건 좀 무리가 있겠네요. ‘교회를 향한 말씀이니까요!

 

 

네, 바로 그 점이 스베덴보리의 창세기 해석에서 매우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보통 우리는 창세기 1-11장을 읽을 때 무의식적으로 ‘인류 전체의 역사’로 읽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인류 최초의 개인, 에덴은 인류 최초의 거주지, 가인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 노아 홍수는 인류 전체의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합니다. 물론 문자적으로 읽으면 자연스러운 접근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훨씬 다른 관점에서 읽습니다. 그에게 창세기 1-11장은 무엇보다 ‘교회의 역사’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주님과 연결되어 있던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쇠퇴하고, 어떻게 무너지고, 어떻게 다시 보존되는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아담은 단순히 한 개인이 아니라 태고교회를 의미하고, 가인은 태고교회 안에서 신앙이 사랑으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한 상태를 의미하며, 노아는 홍수 이후 보존된 새로운 교회를 의미합니다. 중심은 언제나 인류 전체가 아니라 ‘교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사님 말씀처럼 창1-11을 곧바로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은 스베덴보리의 해석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실제로 AC를 읽어보면, 스베덴보리는 반복해서 ‘교회’에 초점을 맞춥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주님과 인간의 관계를 다루는 책이며, 그 관계가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를 덧붙여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창1-11이 교회 사람들에게만 해당되고, 나머지 인류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에게 ‘교회’는 언제나 인류 전체를 위한 통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태고교회는 당시 모든 인류가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를 통해 천국과 인간 세계가 연결되었고, 그 결과 교회 밖 사람들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습니다. 마치 심장이 몸 전체는 아니지만, 몸 전체에 생명을 공급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창1-11은 직접적으로는 교회의 역사이지만, 간접적으로는 인류 전체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상태가 결국 인류 전체의 영적 상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스베덴보리가 창1-11을 해석할 때 ‘교회의 역사’로만 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개인의 영적 역사’로도 읽습니다. 예를 들어, 아담의 창조는 한 사람 안에서 새로운 영적 생명이 시작되는 과정이기도 하고, 선악과 사건은 우리 각자가 자기 own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과정이기도 하며, 홍수는 우리 안에서 거짓과 악이 범람하는 상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창1-11은 세 겹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의 역사입니다. 둘째는 한 인간의 영적 역사입니다. 셋째는 천국과 인간 사이의 보편적 영적 원리입니다.

 

따라서 목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는 창1-11을 곧바로 ‘인류 전체의 외적 역사’로 읽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그 중심은 교회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교회의 역사는 우리 각자의 영혼 안에서도 반복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는 결국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라면 아마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창1-11은 ‘모든 사람이 무엇을 했는가’를 기록한 책이 아니라, ‘주님과 연결된 인간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를 기록한 책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교회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우리 각자의 영적 역사이기도 한 것입니다.

 

 

 

AC.201, 심화 5, ‘균형과 신중’

AC.201.심화 5. ‘균형과 신중’ 음... 이런 결론은 좀 위험할 것 같아요. 다른 기독교인들이 이 결론을 읽으면 몹시 힘들어할 것 같은데요? 네, 목사님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사실 방금의 결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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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01, 심화 3, ‘태고교회 = 인류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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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태고교회 = 인류 전체?’

 

태고교회 시대에는 천적 상태가 인류 전체의 일반적인 상태에 가까웠지만, (AC.201 심화 1)

 

전에 언젠가 제가 태고교회도 지금처럼 그 시대 인류 중 일부를 가리키는 거죠? 비록 태고 시대라 해도 그 시대 인류 전체가 태고교회는 아닌 거죠?’라고 물었더니 그렇습니다라는 대답을 들었던 것 같은데... 그러면 위 내용과 충돌하는 거 아닌가요?

 

 

좋은 질문입니다. 사실 이 둘은 반드시 충돌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표현을 조금 더 정확하게 할 필요는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태고교회(Most Ancient Church)는 언제나 ‘인류 전체’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말씀에서 ‘교회’란 특정 조직이나 국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알고 주님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태고교회 역시 당시 지상에 존재하던 모든 인간을 가리키는 말은 아닙니다.

 

실제로 스베덴보리는 여러 곳에서 교회가 있는 곳과 교회가 없는 곳을 구분합니다. 태고교회 시대에도 주님과 연결된 사람들이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사님께서 전에 질문하셨을 때의 ‘그 시대 인류 전체가 태고교회는 아니다’라는 답변은 맞습니다.

 

그렇다면 왜 ‘태고교회 시대에는 천적 상태가 인류 전체의 일반적인 상태에 가까웠다’는 표현이 나왔을까요?

 

엄밀히 말하면 그 표현은 ‘인류 전체’보다 ‘교회 전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즉, 태고교회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천적 상태가 일반적이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태고교회라는 공동체 자체가 천적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개신교 안에도 신앙 수준이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양심을 통한 신앙’, ‘말씀을 배우는 신앙’이 일반적입니다. 마찬가지로 태고교회 안에도 개인차는 있었겠지만, 전체적인 성향은 사랑으로부터 진리를 지각하는 천적 성향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정확하게 말하면, ‘태고교회 시대에는 태고교회에 속한 사람들에게 천적 상태가 일반적이었다’가 됩니다. 반면 홍수 이후의 교회들에서는 영적 상태가 일반적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스베덴보리가 태고교회를 말할 때, 종종 거의 인류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태고교회의 영향력이 매우 광범위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동일한 상태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AC를 계속 읽다 보면 태고교회 안에서도 점차 쇠퇴가 일어납니다. 가인 계열, 셋 계열, 라멕, 그리고 결국, 노아 이전 세대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면, 이미 태고교회 내부에서도 상태의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모든 사람이 동일한 상태였다면, 그런 구분 자체가 나타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목사님께서 기억하시는 이전 답변과 AC.201의 설명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태고교회는 당시 인류 전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태고교회에 속한 사람들의 일반적 성향은 천적 성향이었다.’

 

홍수 이후에는 그러한 천적 성향이 일반적이지 않게 되었고, 대신 영적 성향이 일반적이 되었다.’

 

이렇게 이해하면 두 설명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의 전체 사상을 따라가면, 주님께서는 어느 시대든 ‘남은 자(remnant)를 보존하십니다. 태고교회 시대에도 교회 밖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오늘날에도 천적 성향에 가까운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대나 집단 자체보다, 주님께서 각 사람 안에 어떤 사랑과 어떤 상태를 형성하고 계시는가입니다.

 

그래서 AC.201의 핵심은 ‘그 시대 모든 사람이 천적이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태고교회라는 교회의 본질적 성향이 천적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아마 가장 균형 잡힌 이해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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