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63.심화

 

3.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

 

 AC.63 본문 중, 여섯째 날의 끝에서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 선한 영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며 말인데요, 여기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원래 늘 와있는 거 아닌가요? 그래야 균형 가운데 존재할 수 있다 읽은 것 같은데...

 

 

결론부터 분명히 말씀드리면, 여기서 ‘악한 영들이 떠나간다’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거나 완전히 분리된다’는 뜻이 아니라, ‘지배권과 주도권을 잃고, 사람의 중심에서 물러난다’는 뜻입니다. 즉, 여전히 주변에는 있지만, 더 이상 그 사람을 끌고 가지는 못하는 상태입니다.

 

먼저 전제부터 다시 잡으면, 목사님께서 기억하신 것처럼 사람은 기본적으로 ‘영들의 세계와 연결된 상태’에 있고, 선한 영향과 악한 영향이 모두 관계합니다. 이 점은 거듭난 이후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균형’이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런데 AC.63이 말하는 것은 ‘존재 여부’가 아니라 ‘통치 구조의 변화’입니다.

 

거듭나기 전이나 초기에는 악한 영들과 연결된 욕정과 거짓이 실제로 사람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과 감정이 그쪽에 쉽게 끌립니다. 이때는 말 그대로 ‘그들이 안에서 작용하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거듭남이 진행되어 여섯째 상태에 이르면, 중심이 바뀝니다. 이제는 선한 영들과 천사적 영향이 중심을 차지하고, 진리와 선이 사람을 이끕니다.

 

이때 ‘악한 영들이 떠난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들이 더 이상 ‘안쪽에서 주도적으로 작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밖으로 밀려난 상태’, ‘접촉은 가능하지만, 지배는 못하는 상태’입니다. 마치 이전에는 집 안 중심에 있던 것이, 이제는 문밖으로 밀려나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걸 아주 실제적으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이전에는 어떤 욕정이나 감정이 올라오면 그대로 생각을 지배하고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것이 올라오더라도, 그것이 중심을 차지하지 못하고, ‘이건 아니다’라는 더 깊은 기준 아래에서 걸러집니다. 즉, 여전히 유혹은 느끼지만, 그 유혹이 나를 움직이지는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떠나간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떠남’은 공간적 이동이 아니라 ‘상태의 변화’입니다. ‘안에 있음  밖에 있음’, ‘지배함  영향만 있음’으로 바뀐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 상태에서도 완전히 시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시험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이전에는 쉽게 넘어가던 것이 이제는 중심을 건드리지 못하고, 더 외적인 수준에서 스쳐 지나가거나 약하게 작용합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평안이 유지됩니다. 이것이 여섯째 날 이후, 곧 일곱째 날의 안식으로 이어지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악한 영들이 떠난다’는 것은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사람의 중심에서 작용하지 못하고, 주변적이고 외적인 수준으로 밀려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악한 영들의 떠남은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지배권을 잃고 중심에서 물러나는 상태를 뜻합니다.’

 

 

 

AC.63, 심화 4, ‘하늘, 곧 천적 낙원으로 인도됨’

AC.63.심화 4. ‘하늘, 곧 천적 낙원으로 인도됨’ 위 AC.63 본문 중, ‘인간은 하늘, 곧 천적 낙원으로 인도되는데’ 말인데요, 여기 ‘하늘, 곧 천적 낙원’의 의미가 뭔가요? 거듭남의 완성 단계까

bygrace.kr

 

AC.63, 심화 2, ‘주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AC.63.심화 2. ‘주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위 AC.63 본문 중, ‘그동안 주님은 계속해서 인간을 위하여 악과 거짓에 맞서 싸우시며, 여러 싸움을 통해 그를 진리와 선 안에 굳게 세우십니다. 이 싸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AC.63.심화

 

2. 주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AC.63 본문 중,

 

그동안 주님은 계속해서 인간을 위하여 악과 거짓에 맞서 싸우시며, 여러 싸움을 통해 그를 진리와 선 안에 굳게 세우십니다. 이 싸움의 시간은 곧 주님께서 역사하시는 시간이며, 그래서 예언자들 가운데서는 거듭난 인간을 하나님의 손가락의 일(the work of the fingers of God)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리고 사랑이 주된 원리가 되어 작용하기 전까지 주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를 읽다가 문득 다음 복음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63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64그 신성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65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14:63-65)

 

그러니까 주님은 위와 같은 상황에서도 저들을 위하여 저 AC.63 본문 내용의 일을 하신 거잖아요? 그뿐 아니라 제 경우에도 정말 부끄러운, 정말 그동안 살아오면서 주님 앞에 고갤 들 수 없는 순간들, 장면들이 많았는데, 그때에도 주님은... ... 정말... 무슨 말을 못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목사님께서 느끼신 그 통찰이 바로 AC.63이 말하려는 중심입니다. ‘주님은 사람이 가장 어둡고, 가장 거스르고, 심지어 주님을 거부하는 순간에도 그 사람을 향한 구원의 일을 멈추지 않으신다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14:63-65의 그 장면은 단순히 인간의 악함을 보여 주는 사건이 아니라, 동시에 ‘그 악함 한가운데서도 멈추지 않는 주님의 역사’를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사람들은 침을 뱉고, 때리고, 조롱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을 향해 무엇을 하시고 계셨는가 하면, 바로 AC.63에서 말하는 그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곧 ‘그들의 악과 거짓에 맞서 싸우시며, 그들 안에 있는 선과 진리를 위해 여전히 역사하고 계신 상태’입니다.

 

이게 왜 그렇게 중요한가 하면,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할 때는 주님이 함께하시고,내가 무너질 때는 주님이 떠나신다.’ 그런데 AC의 관점은 정반대입니다. 사람이 가장 어둡고, 가장 왜곡되고, 가장 주님과 멀어진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때가 오히려 ‘주님이 가장 깊이 싸우고 계신 시간’입니다. 사람은 거부하고 있지만, 주님은 그 거부를 뚫고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 직전의 장면은 단순히 ‘인간의 죄’가 아니라, ‘인간의 죄가 끝까지 드러나는 자리에서도 끝까지 멈추지 않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향해 손을 들고 있지만, 주님은 그들을 향해 여전히 구원의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AC.63의 ‘주님은 쉬지 않으신다’는 말의 실제 모습입니다.

 

이제 목사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신 자신의 이야기, ‘정말 부끄러운 순간들’—바로 거기서 이 말씀이 더 깊어집니다. 우리는 그런 순간을 떠올리면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때 나는 주님과 완전히 멀어져 있었다.’ 그러나 AC의 시선에서는 이렇게 봅니다. ‘그때 나는 가장 멀어져 있었지만, 주님은 가장 가까이에서 일하고 계셨다.’

 

왜냐하면 주님은 ‘사람이 잘할 때만 함께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이 무너질 때에도 그를 놓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사람이 자기 힘으로 설 수 없을 때, 그때가 주님이 더 깊이 일하실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그 싸움은 주님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그 싸움의 전부를 알지도, 감당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지금 느끼신 그 감정—말이 막히는 그 자리—그것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영적 인식입니다. ‘나는 그때 주님을 향해 있지 않았지만, 주님은 나를 향해 계셨다’는 깨달음입니다. 이것이 단순한 죄책감이 아니라, ‘은혜에 대한 인식’으로 바뀔 때, 그 사람 안에 사랑이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 장면을 이렇게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때리고 있을 때에도, 주님은 그들을 위해 싸우고 계셨다.’ 그리고 ‘내가 가장 부끄러웠던 그때에도, 주님은 나를 위해 같은 일을 하고 계셨다.’

 

이것이 바로 AC.63의 핵심입니다. 주님의 역사는 우리의 상태에 따라 시작되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태와 상관없이 계속됩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나중에야 알아보게 될 뿐입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주님은 우리가 가장 멀어져 있던 순간에도 우리를 향한 구원의 일을 멈추지 않으셨고, 바로 그때에도 우리를 위해 싸우고 계셨습니다.’

 

 

 

AC.63, 심화 3,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

AC.63.심화 3.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 위 AC.63 본문 중, ‘여섯째 날의 끝에서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 선한 영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며’ 말인데요, 여기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의 의미가 무

bygrace.kr

 

AC.63, 심화 1, ‘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

AC.63.심화 1. ‘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 위 AC.63 본문, ‘일이 이만큼 진전되어 신앙이 사랑과 결합하게 되면, 그 상태를 ‘심히 좋았더라’(very good)라고 합니다. 이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AC.63.심화

 

1. 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

 

 AC.63 본문, 일이 이만큼 진전되어 신앙이 사랑과 결합하게 되면, 그 상태를 심히 좋았더라(very good)라고 합니다. 이는 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시기 때문입니다.’에서 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 이게 무슨 말인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는 것은 사람이 더 이상 자기 힘으로 애써서 선을 행하는 상태’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진리가 그 사람 안에서 중심이 되어, 생각과 의지와 행동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상태’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의 중심이 바뀌어 주님의 질서가 그를 통해 작동하는 상태’입니다.

 

먼저 이 표현이 왜 낯설게 들리는지를 짚어보면 도움이 됩니다. ‘움직이신다’라는 말 때문에 마치 사람이 수동적으로 조종당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AC의 흐름에서는 전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강제’가 아니라 일치’입니다. 즉, 사람의 의지와 주님의 의지가 서로 어긋나지 않고 하나로 맞아떨어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움직이신다는 것은 내 안에서 내가 원하고 생각하는 것이 주님의 뜻과 같아진 상태’를 뜻합니다.

 

이걸 단계적으로 보시면 더 분명해집니다. 거듭남의 초기에는 사람이 이렇게 해야 한다’고 스스로 애쓰며 움직입니다. 이때는 중심이 아직 ’입니다. 그래서 항상 긴장과 노력, 때로는 억지가 동반됩니다. 그러나 점점 신앙이 사랑과 결합하면, 선을 행하는 것이 더 이상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오는 상태’가 됩니다. 바로 이때가 주님께서 움직이신다’는 상태입니다.

 

이걸 아주 실제적으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도 마음이 잘 따라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애써서 참고, 억지로라도 용서하려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에는 그냥 용서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상태가 됩니다. 이때는 더 이상 해야 한다’가 아니라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변화가 주님이 움직이시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표현의 핵심은 주도권의 이동’입니다. 처음에는 내가 나를 이끌지만, 나중에는 주님의 질서가 내 안에서 중심이 되어 나를 이끕니다. 그런데 그때도 여전히 나는 생각하고, 나는 선택하고, 나는 행동합니다. 다만 그 내용과 방향’이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내가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주님으로부터 흐르는 것’입니다.

 

이 상태를 스베덴보리는 자유 속에서 주님의 인도’라고 설명합니다. 강제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자유로운 상태에서 주님의 뜻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상태가 심히 좋았더라’입니다. 더 이상 내 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이 싸우지 않고, 하나의 중심으로 평안하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문장을 가장 정확하게 풀어보면 이렇게 됩니다. ‘신앙과 사랑이 결합된 상태에서는, 사람의 생각과 의지와 행동이 주님의 사랑과 진리와 일치하게 되어, 마치 주님께서 그를 통해 일하시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선이 흘러나오는 상태가 된다.’

 

한 줄로 정리하면,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는 것은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주님의 사랑과 진리가 중심이 되어 그 삶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AC.63, 심화 2, ‘주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AC.63.심화 2. ‘주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위 AC.63 본문 중, ‘그동안 주님은 계속해서 인간을 위하여 악과 거짓에 맞서 싸우시며, 여러 싸움을 통해 그를 진리와 선 안에 굳게 세우십니다. 이 싸

bygrace.kr

 

AC.63, 창1:31, '여섯째 날이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그 상태가 어떻게 완성되는지'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1:31) AC.63 그동안 주님은 계속해서 인간을 위하여 악과 거짓에 맞서 싸우시며,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