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92, 창2:5-6,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AC.90-93)

 

5, 6절,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And there was no shrub of the field as yet in the earth, and there was no herb of the field as yet growing, because Jehovah God had not caused it to rain upon the earth. And there was no man to till the ground. And he made a mist to ascend from the earth, and watered all the faces of the ground.

 

92

탐욕(cupidities)이나 거짓으로 야기되는 갈등(combat)이나 불안(unrest)이 사라질 때, 겉 사람이 맛보는 평화, 평온한 상태의 본성(The nature of the tranquility of peace)은 평화의 상태(a state of peace)라는 게 어떤 건지를 경험해본(are acquainted with)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The nature of the tranquility of peace of the external man, on the cessation of combat, or of the unrest caused by cupidities and falsities, can be known only to those who are acquainted with a state of peace.

 

※ 스베덴보리의 책, ‘천국과 지옥’(김은경 역) 제32장, ‘천국 안의 평화의 상태’ 284번 글을 보면,

 

...천국의 평화를 경험해본 사람만이 천사들이 누리는 평화를 조금이라도 감지할 수 있다. 사람은 육체를 입고 사는 동안은 천국의 평화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느낄 수도 없다. 사람의 지각능력은 자연계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감지하기 위해서는 사고기능이 몸에서 들려 올라가 영의 차원에 머물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천사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 나에게 천국의 평화가 느껴진 것도 그런 방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평화를 기술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말이 부적합하여 그 평화 그대로를 말로 옮길 수는 없다. 다만 하나님 안에서 만족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마음의 평안에 비할 수 있을 뿐이다...

 

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참고하세요 ^^

 

이 상태는 기쁨(delight)에 대한 우리의 모든 생각을 초월하는 그런 기쁨인데요, 싸움, 갈등의 종료뿐 아니라, 내적 평화로부터 뻗어나가며, 말로 어떻게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겉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생명입니다. 신앙의 진리들과 사랑의 선들, 이들 생명의 기원이 바로 이 평화의 기쁨(the delight of peace)인데, 이때 생깁니다. This state is so delightful that it surpasses every idea of delight: it is not only a cessation of combat, but is life proceeding from interior peace, and affecting the external man in such a manner as cannot be described; the truths of faith, and the goods of love, which derive their life from the delight of peace, are then b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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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91, 창2:5-6,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AC.90-93)

 

5, 6절,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And there was no shrub of the field as yet in the earth, and there was no herb of the field as yet growing, because Jehovah God had not caused it to rain upon the earth. And there was no man to till the ground. And he made a mist to ascend from the earth, and watered all the faces of the ground.

 

91

그러나 여기 이런 것들은 사람이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상태가 바뀌어 간다는 게 무엇인지를 먼저 알기 전까지는 절대로 지각할 수조차 없는 내용입니다. 그만큼 아주 깊이 감춰진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영적 상태에 있는 동안은 겉 사람은 아직 속 사람에게 기꺼이 복종하려 하거나 섬기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때는 아직 일종의 싸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천적 상태가 되면, 그때는 겉 사람은 속 사람에게 복종하고 섬기기 시작합니다. 자연히 싸움도 그치고, 평온함이 시작되지요. (cf. 87) But what these things involve cannot possibly be perceived unless it is known what man’s state is while from being spiritual he is becoming celestial, for they are deeply hidden. While he is spiritual, the external man is not yet willing to yield obedience to and serve the internal, and therefore there is a combat; but when he becomes celestial, then the external man begins to obey and serve the internal, and therefore the combat ceases, and tranquility ensues (see n. 87).

 

※ 87번 글입니다.

 

...천적 인간을 가리켜 ‘안식일(the sabbath), 즉 ‘(rest)이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천적 인간이 될 때, 싸움이 그치기 때문인데요, 이때  악한 영들은 물러가고, 선한 영들과 천적 천사들이 다가옵니다. 이들이 있으면 악한 영들은 도저히 머무를 수 없어 멀리 달아나기 때문이며, 그래서 더 이상 싸울 일이 없게 되고, 또한 그동안  전투를 치른 장본인은 이 사람 본인이 아니라 홀로 주님이시기 때문에, 그래서 주님이 쉬시는 것, 곧 주님이 ‘안식하시니라(rested) 하는 것입니다...

 

※ 거듭 성 프란치스코나 성 분도 요셉 라브르 같은 경우가 아닐까 합니다. 저 역시 사람에게 ‘성’(聖)이라는 칭호를 붙여 부르는 게 좀 거북하지만 관례라 그저 따르는 것이니 큰 의미는 부여하지 마시고요, 대신 이들의 전기를 꼭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이들은 스베덴보리를 알지도, 또 스베덴보리처럼 무슨 영계를 수십 년 왕래하며 체험한 바도 없지만, 그리고 지금 이런 아르카나도 접한 적 없지만, 참으로 겉 사람과 속 사람의 하나 됨, 합일에까지 이른 것으로 보이는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rain), ‘안개(mist)가 바로 이 평온함(tranquility)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수증기와도 같아서 마치 겉 사람이 속 사람으로부터 수분 공급을 받아 촉촉해지는 것과 같지요. 이 평온함, 곧 평화의 샘(the offspring of peace)에서 들의 초목(the shrub of the field), ‘밭의 채소(the herb of the field)라 하는 것들이 나오는데요, 이 '들의 초목', '밭의 채소'는 특별히 어떤 천적 영적 기원(a celestial spiritual origin)에서 나오는 합리적 마인드와 기억(the rational mind and of the memory [rationalia et scientifica])에 관한 것들입니다. This tranquility is signified by “rain” and “mist,” for it is like a vapor with which the external man is watered and bedewed from the internal; and it is this tranquility, the offspring of peace, which produces what are called the “shrub of the field,” and the “herb of the field,” which, specifically, are things of the rational mind and of the memory [rationalia et scientifica] from a celestial spiritual origin.

 

※ 땅에 비가 내리고 안개로 축축해져야 들의 초목과 밭의 채소가 자라듯 사람도 심령 상태가 평화, 평온해야 하늘에 기반을 둔 학습 능력과 합리적 마인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지금 이 번역의 일만 놓고 보아도 분명합니다. 나랏일과 여타 사적 일로 마음이 힘들면 번역도 잘 안 되지만 심령이 평안하면 주님의 빛도 훨씬 더 환하게 느껴지며, 번역도 참 잘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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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90, 창2:5-6,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AC.90-93)

 

5, 6절,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And there was no shrub of the field as yet in the earth, and there was no herb of the field as yet growing, because Jehovah God had not caused it to rain upon the earth. And there was no man to till the ground. And he made a mist to ascend from the earth, and watered all the faces of the ground.

 

90

들의 초목(the shrub of the field)과 ‘밭의 채소(the herb of the field)는 보통은 겉 사람한테서 나오는 모든 걸 의미합니다. 겉 사람은 사람이 아직 영적일 동안은 ‘(earth)이라고 하지만, 천적이 되면 ‘(ground) 및 ‘(field)이라고 합니다. 바로 뒤에 ‘안개(mist)로 언급되는 ‘(Rain)는 싸움이 그친 뒤 오는 평화로운 평온함(the tranquility of peace)입니다. By the “shrub of the field” and the “herb of the field” are meant in general all that his external man produces. The external man is called “earth” while he remains spiritual, but “ground” and also “field” when he becomes celestial. “Rain,” which is soon after called “mist,” is the tranquility of peace when combat cea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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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89, 창2: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4절,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These are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he created them, in the day in which Jehovah God made the earth and the heavens.

 

89

천지창조의 내력(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은 천적 인간을 빚으신 내력(the formations of the celestial man)입니다. 여기서 다루는 내용은 그다음 단계인 천적 인간을 빚으심이라는 것은,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을 자세히 관찰하면 분명히 알 수 있는데요, 예를 들면, 5절에,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라든지, 7절,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와 19절,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만드시는 장면 등등... 이들 내용들은 이미 앞장에서 다 다룬 내용들임에도 또 다루는 것을 보면, ‘아, 여기서는 또 다른 사람을 다루고 계시는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을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먼저, 주님을 가리켜 ‘여호와 하나님(Jehovah God)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영적 인간을 다룬 앞장에선 간단히 ‘하나님(God)이라고만 했지요. 그리고 또, 여기선 ‘(ground)과 ‘(field)을 함께 언급하는데, 앞에선 ‘(earth)만 언급되었습니다.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are the formations of the celestial man. That his formation is here treated of is very evident from all the particulars which follow, as that no herb was as yet growing; that there was no man to till the ground, as well as that Jehovah God formed man, and afterwards, that he made every beast and bird of the heavens, notwithstanding that the formation of these had been treated of in the foregoing chapter; from all which it is manifest that another man is here treated of. This however is still more evident from the fact that now for the first time the Lord is called “Jehovah God,” whereas in the preceding passages, which treat of the spiritual man, he is called simply “God”; and, further, that now “ground” and “field” are mentioned, while in the preceding passages only “earth” is mentioned.

 

※ 참고로, ‘여호와’는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에 대한 천적(天的, celestial) 칭호, ‘하나님’은 주님의 신성에 대한 영적 칭호입니다. 한편, ‘예수’는 주님의 인성(人性, the Divine Human)에 대한 천적 칭호, ‘그리스도’는 주님의 인성에 대한 영적 칭호입니다.

 

또 오늘 본문 구절인 이 4절에서는 ‘하늘’이 ‘’보다 먼저 언급되다가 나중에는 ‘’이 ‘하늘’보다 먼저 나오는데요, 그 이유는, ‘’은 겉 사람을, ‘하늘’은 속 사람을 각각 상징한다는 것, 그리고 개혁, 개선, 다시 빚으심이 영적 인간의 경우는 ‘’, 곧 겉 사람에서 시작하지만, 천적 인간은, 지금 다루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인데요, 천적 인간의 경우에는 속 사람, 곧 ‘하늘’에서 시작한다는 사실 등에 비추어 볼 때도 그렇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실들, 정황들을 통해, ‘아, 여기서는 천적 인간을 다루시는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In this verse also “heaven” is first mentioned before “earth,” and afterwards “earth” before “heaven”; the reason of which is that “earth” signifies the external man, and “heaven” the internal, and in the spiritual man reformation begins from “earth,” that is, from the external man, while in the celestial man, who is here treated of, it begins from the internal man, or from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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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88, 창2:2-3,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AC.84-88)

 

2, 3절,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And on the seventh day God finished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hallowed it; because that in i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88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될 때, 그를 가리켜 ‘하나님의 일(the work of God)이라 합니다. 주님 홀로 그를 위해 지금까지 싸워오셨고(has fought for), 지금까지 그를 창조해 오셨으며, 지으시고, 만들어 오셨기(has created, formed, and made)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God finished his work on the seventh day) 하는 것이며, 한 번 더 ‘하나님이 그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셨음이니라(he rested from all his work)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선지자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여호와의 손과 손가락으로 한 일(the work of the hands and of the fingers of Jehovah)이라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이사야에, 거듭난 사람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When the spiritual man becomes celestial, he is called the “work of God,” because the Lord alone has fought for him, and has created, formed, and made him; and therefore it is here said, “God finished his work on the seventh day”; and twice, tha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By the prophets man is repeatedly called the “work of the hands and of the fingers of Jehovah”; as in Isaiah, speaking of the regenerate man:

 

11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12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18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21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사45:11-12, 18, 21) Thus hath said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and his former, Seek ye signs of me, signs concerning my sons, and concerning the work of my hands command ye me. I have made the earth, and created man upon it; I, even my hands have stretched out the heavens, and all their army have I commanded. For thus hath said Jehovah that createth the heavens, God himself that formeth the earth and maketh it; he establisheth it, he created it not a void, he formed it to be inhabited; I am Jehovah and there is no God else besides me. (Isa. 45:11–12, 18, 21)

 

이 말씀을 보면 분명히 새 창조, 혹은 거듭남은 오직 주님의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창조하다(to create), ‘짓다(to form), ‘만들다(to make)라는 표현들을 다음 두 가지 경우와, 또 창세기 본 장과 앞 장에서 아주 특징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위 구절 중,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creating the heavens, forming the earth, and making it) 하는 부분, 그리고 같은 이사야 다른 구절, 예를 들면, Hence it is evident that the new creation, or regeneration, is the work of the Lord alone. The expressions to “create,” to “form,” and to “make,” are employed quite distinctively, both in the above passage—“creating the heavens, forming the earth, and making it”—and in other places in the same prophet, as: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사43:7) Everyone that is called by my name, I have created him for my glory, I have formed him, yea, I have made him, (Isa. 43:7)

 

또 창세기 1장과 지금 2장,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하는 부분들입니다. 속뜻을 생각할 때, 이런 용법을 만나면 늘 그 표현들을 눈여겨보게 되는데요, 다음 케이스들이 바로 그런 경우들입니다. 주님을 가리켜 ‘창조하시는 분(creator), ‘빚으시는 분(former), ‘만드시는 분(maker)으로 표현하는 경우들이지요. and also in both the preceding and this chapter of Genesis; as in the passage before us: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In the internal sense this usage always conveys a distinct idea; and the case is the same where the Lord is called “creator,” “former,” or “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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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87, 창2:2-3,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AC.84-88)

 

2, 3절,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And on the seventh day God finished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hallowed it; because that in i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87

천적 인간을 가리켜 ‘안식일(the sabbath), 즉 ‘(rest)이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천적 인간이 될 때, 싸움이 그치기 때문인데요, 이때  악한 영들은 물러가고, 선한 영들과 천적 천사들이 다가옵니다. 이들이 있으면 악한 영들은 도저히 머무를 수 없어 멀리 달아나기 때문이며, 그래서 더 이상 싸울 일이 없게 되고, 또한 그동안  전투를 치른 장본인은 이 사람 본인이 아니라 홀로 주님이시기 때문에, 그래서 주님이 쉬시는 것, 곧 주님이 ‘안식하시니라(rested) 하는 것입니다. Another reason why the celestial man is the “sabbath,” or “rest,” is that combat ceases when he becomes celestial. The evil spirits retire, and good ones approach, as well as celestial angels; and when these are present, evil spirits cannot possibly remain, but flee far away. And since it was not the man himself who carried on the combat, but the Lord alone for the man, it is said that the Lord “rested.

 

※ 사람은 의지(will)와 이해(understanding)로 되어 있는데, 그래서 모든 사람은 의지에 상응하는 천국과 지옥에, 그리고 이해에 상응하는 천국과 지옥에 각각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연결은 이렇게 각각 두 종류의 천국과 지옥에서 파송된 천사들과 지옥의 영들로 이루어지며, 그래서 모든 사람은 최소 천사 둘과 지옥의 영 둘이 와 있는 상황에서, 본인의 의지와 이해로 매 순간 일평생 천국 또는 지옥을 향해 나아가다가 이때, 즉, 영적 인간의 마지막 단계에서 지옥의 영들이 포기하고 물러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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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86, 창2:2-3,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AC.84-88)

 

2, 3절,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And on the seventh day God finished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hallowed it; because that in i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86

여섯째 날(the sixth day)이 된(has become) 영적 인간이 이제 천적 인간이 되려고 하는(is beginning to be) 상태를 여기서 먼저 다루고 있는데요, 이때가 유대교회에서 말하는 ‘안식일 저녁(the eve of the sabbath)입니다. 안식일의 거룩함을 저녁부터 지키는 것으로 표현했지요. 천적 인간은 이제 말씀드릴 ‘아침(the morning)입니다. When the spiritual man, who has become the “sixth day,” is beginning to be celestial, which state is here first treated of, it is the “eve of the sabbath,” represented in the Jewish church by the keeping holy of the sabbath from the evening. The celestial man is the “morning” to be spoken of presently.

 

이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눅23:54)

 

※ 유대인의 안식일은 여섯째 날인 금요일 일몰부터 일곱째 날인 토요일 일몰까지입니다.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 말씀드리면, 유대 지역 일몰이 보통 오후 5시라고 할 때, 주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때가 오후 3시 즈음이라 두 시간 만에 장례를 치러야 하는 아주 촉박한 상황임을 감안하시면서 복음서 관련 본문들을 읽어보시면 한결 와닿으실 겁니다. 한 가지 더, 유대인들은 결코 월요일, 화요일... 같은 요일 명칭을 쓰지 않습니다. 그 영어식 표현의 유래가 고대 앵글로 색슨계 신들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단순히 창세기 1장 표현대로 첫째 날, 둘째 날... 같은 명칭을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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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85, 창2:2-3,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AC.84-88)

 

2, 3절,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And on the seventh day God finished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hallowed it; because that in i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85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이며, 그래서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하시고, 안식일이라 하셨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한 번도 밝혀진 적이 없는 아르카나(arcana, 秘義)입니다. 천적 인간의 본성을 접해 본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고, 영적 인간의 경우는 약간 있었는데, 앞서 81번 글을 보면, 천적 인간과 영적 인간 사이, 실로 엄청난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 이런 무지의 결과, 그들은 천적 인간 행세를 했습니다. That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and that the seventh day was therefore hallowed, and called the sabbath, are arcana which have not hitherto been discovered. For none have been acquainted with the nature of the celestial man, and few with that of the spiritual man, whom in consequence of this ignorance they have made to be the same as the celestial man, notwithstanding the great difference that exists between them, as may be seen in n. 81.

 

※ 성 프란치스코를 비롯, 성 분도 요셉 라브르, 그리고 수많은 아토스 성산 수도사들과 그 많은 성인이라 일컬음 받는 사람들 역시 사실은 영적 인간의 완성 혹은 천적 인간에 아주 근접한 경우들이지 실제로 지상에서 천적 인간이 되어 그 본성을 접해 본 사람은 없었다는 사실에, 성인이라는 사람들에 대한 올바른 현주소를 확인하게 됩니다.

 

일곱째 날과 관련하여, 그리고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 혹은 ‘안식일’인 것과 관련하여, 이것은 주님 자신, 안식일이시라는,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사실로 분명합니다. As regards the seventh day, and as regards the celestial man being the “seventh day” or “sabbath,” this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he Lord himself is the sabbath; and therefore he says: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2:28) The son of man is Lord also of the sabbath, (Mark 2:27)

 

이 말씀에는 주님이 친히 사람이시며, 안식일 자체시라는 사실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which words imply that the Lord is man himself, and the sabbath itself.

 

※ 49번 글(창1:26)에,

 

...주님은 태고교회에 한 사람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은 이 교회 멤버들과 대면하여 대화하셨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아무한테도 ‘사람’이라 하지 않고, 오직 홀로 주님한테만, 그리고 주님에게 속한 것들에만 이 표현을 사용했는데요, 그들은 이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자신들에게조차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다만 자기들한테 있는 것들 중 가령, 모든 사랑의 선과 모든 신앙의 진리 같은, 주님으로 말미암았다 지각된 것들에 한해서만 사용했습니다...

 

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를 통해 참 사람은 오직 홀로 주님 한 분뿐이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천국과 지상에 있는 그분의 나라를 일컬어 그분으로 말미암은 안식일, 혹은 영원한 평화와 안식이라고 합니다. His kingdom in the heavens and on the earth is called, from him, a sabbath, or eternal peace and rest.

 

[2] 여기서 다루고 있는 태고교회는 이후 이 교회를 계승한 다른 어떤 교회들보다도 더 가장 주님의 안식일이었습니다. 주님의 모든 이어지는 내적 교회들 역시 일종의 안식일입니다. 모든 거듭나는 사람 역시 그가 천적이 되면 마찬가지인데요, 그것은 그가 주님의 모양(a likeness of the Lord)이기 때문입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s here treated of, was the sabbath of the Lord above all that succeeded it. Every subsequent inmost church of the Lord is also a sabbath; and so is every regenerate person when he becomes celestial, because he is a likeness of the Lord.

 

※ 51번 글(창1:26)에,

 

...‘형상(an image) 관련해서는, 형상은 모양(a likeness)이 아니고, 모양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하신 것입니다. 영적(靈的, spiritual) 인간은 형상, 천적(天的, celestial) 인간은 모양, 혹은 닮음입니다. 영적 인간은 일종의 ‘형상’인데요, 주님은 그를 가리켜 ‘빛의 아들’이라 하십니다. 그러나 천적 인간은, 이 사람이 ‘모양’인데요, 주님은 그를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라 하십니다...

 

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 형상은 모양을 담아내는 그릇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주님 닮은, 주님의 자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려면, 겉뿐 아니라 속도 주님의 형상, 주님의 모양이어야 함을 알 수 있으며, 이때가 바로 천적 인간, 곧, 안식 상태의 인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육 일간의 전투 혹은 수고가 선행합니다. The six days of combat or labor precede.

 

※ 59번 글(창1:30)에 나오는,

 

...거듭남의 과정을 보면, 사람이 영적 인간이 되어 갈 때, 그는 끊임없이 영적 전투 가운데 놓이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주님의 교회를 ‘전투적’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거듭남 이전엔 탐욕이 지배적이기 때문인데요, 사람은 그 자체가 그저 탐욕과 탐욕에서 나오는 거짓으로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거듭나는 동안 이들 탐욕과 거짓이 순간적으로 폐지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존재 자체가 파괴되기 때문인데, 이들 탐욕과 거짓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습득한 유일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 영들은 오랫동안 그와 함께하면서 다음과 같은 일들을 겪게 됩니다. 즉, 그들은 일단 그의 탐욕을 자극하여 흥분시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계속 그러다 보면 사람은 나중엔 이런 탐욕의 추구에도 지루해하며, 싫증을 느끼고 느슨해지게 마련이며, 그 결과, 결국엔 주님에 의해 선 쪽으로 기울어질 정도가 되며, 그러면 이제 이 사람에게 개혁될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라는 내용을 보면, 참으로 주님은 섬세하시며, 사람 일생의 모든 악과 거짓조차 이런 섭리 가운데 허락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이런 모습은 현재 거듭남의 과정 중인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자녀, 성도는 물론, 기타 모든 사람을 향해서도 우리가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하는지 하는 근본적인 방향을 제공합니다.

 

이런 것들이 유대교회에서 육 일간의 수고와 일곱째 날 안식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 교회에 도입된 어느 것 하나 주님과 주님 나라에 대한 표상 아닌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설명이 궤(the ark, 여호와의 법궤)로도 표현되었습니다. 궤가 나아갈 때와 궤가 쉴 때로 말이지요. 궤가 광야를 이리저리 다니는 것으로는 싸움과 시험을, 그리고 궤가 쉬는 것으로는 일종의 평화의 상태를 표현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궤가 나아갈 때, 모세는 말하기를 These things were represented in the Jewish church by the days of labor, and by the seventh day, which was the sabbath; for in that church there was nothing instituted which was not representative of the Lord and of his kingdom. The like was also represented by the ark when it went forward, and when it rested, for by its journeyings in the wilderness were represented combats and temptations, and by its rest a state of peace; and therefore, when it set forward, Moses said:

 

35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36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민10:35-36) Rise up, Jehovah, and let thine enemies be scattered, and let them that hate thee flee before thy faces. And when it rested, he said, Return, Jehovah, unto the ten thousands of the thousands of Israel. (Num. 10:35–36)

 

거기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을 떠나 ‘그들의 쉴 곳을 찾은 것은 바로 여호와의 언약궤라 하였습니다. It is there said of the ark that it went from the Mount of Jehovah “to search out a rest for them” (Num. 10:33).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민10:33)

 

[3] 천적 인간의 쉼을 이사야에서는 안식일을 가지고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The rest of the celestial man is described by the sabbath in Isaiah:

 

13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사58:13-14) If thou bring back thy foot from the sabbath, so that thou doest not thy desire in the day of my holiness, and callest the things of the sabbath delights to the holy of Jehovah, honorable; and shalt honor it, not doing thine own ways, nor finding thine own desire, nor speaking a word; then shalt thou be delightful to Jehovah, and I will cause thee to be borne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 and will feed thee with the heritage of Jacob. (Isa. 58:13–14)

 

이것이 천적 인간의 질(, quality)입니다. 그는 자신의 본성적, 태생적 욕구가 아닌, 주님의 선하신 즐거움을 따릅니다. 이것이 그의 ‘즐거움’입니다. 그 결과, 그는 내적 평화와 행복을 누립니다. 이것이 위 말씀,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로 표현된 의미이며, 동시에 그는 겉으로도 평온과 큰 기쁨을 누리는데, 이것이 바로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의 의미입니다. Such is the quality of the celestial man that he acts not according to his own desire, but according to the good pleasure of the Lord, which is his “desire. Thus he enjoys internal peace and happiness—here expressed by “being uplifted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and at the same time external tranquility and delight, which is signified by “being fed with the heritage of Jacob.”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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