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영들의 존재를 부인하며, 설령 부인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가 영들에 관해 말하는 걸 아주 듣기 거북해들 한다.

 

448

저는 세상에서 저를 알고 지냈던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오랫동안,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씩 해오고 있습니다.) 그것도 비록 내적이지만 아주 맑은 목소리로, 마치 이 세상 친구들하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대화의 주제는 때때로 사람의 사후 상태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들은 사람들이, 몸 안에 사는 동안 아무도 자기가 몸 안에 사는 삶을 마친 후에도 여전히 삶은 계속되며, 사람은 현재의 모호한 삶을 지나 명료한 삶으로 계속해서 나아간다는 사실, 그리고 주님 신앙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더욱 더 명료한 삶 속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안 믿는다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하였습니다. 그들은 제가 아직 살아있는 자기 친구들에게 글이나 말로, 자기들이 지금 어떤 상태 가운데 있는지, 마치 제가 여기 있는 자기 친구들에 관해 자기들한테 많은 걸 알려주는 거처럼 그렇게 알려주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답하기를, 만일 제가 그들의 친구들에게 그렇게 하면, 혹은 그들에게 편지를 쓰거나 하면, 그들은 안 믿을뿐더러, 오히려 그들은 망상이라며 비웃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믿을 수 있도록 무슨 싸인이나 기적을 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저 그들의 조롱거리가 될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얘기가 사실이다, 혹시 믿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실로, 사람들은 영들의 존재를 부인하며, 설령 부인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가 영들에 관해 말하는 걸 아주 듣기 거북해들 합니다. 고대에는 영들에 관한 그런 상태의 믿음은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은 정신 나간 추론을 가지고 사람들은 영들이 무엇인지 발견하려고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자신들의 정의와 가설들을 가지고 영들로부터 모든 감각을 박탈하며, 더 많이, 더 많이 배운 자들일수록 이런 짓을 저리르고 있습니다. I have conversed with many who had been known to me in this life (and this I have done for a long time—for months and years), in as clear a voice, although an inward one, as with friends in this world. The subject of our conversation has sometimes been the state of man after death, and they have wondered exceedingly that during the bodily life no one knows or believes that he is so to live when the bodily life is over, when yet there is then a continuation of life, and such a continuation that the man passes from an obscure life into a clear one, and those who are in faith in the Lord into a life that is more and more clear. They have desired me to tell their friends that they are alive, and to write and tell them what their condition is, even as I had related to themselves many things about that of their friends here. But I replied that were I to tell their friends such things, or to write to them about them, they would not believe, but would call them delusions, would scoff at them, and would ask for signs or miracles before they would believe; and I should merely expose myself to their derision. And that these things are true, perchance but few will believe. For at heart men deny the existence of spirits, and even those who do not deny it are unwilling to hear that anyone can speak with spirits. In ancient times there was no such state of belief in regard to spirits, but so it is now when by crazy ratiocination men try to find out what spirits are, and by their definitions and suppositions deprive them of all the senses, and do this the more, the more learned they desire to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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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을 지각하는 것은 몸이 아닌, 사람 안에 있는 영이다.

 

447

어떤 수사 수련 기간 중인 영이 저에게 영에 관한 얘기를 듣고는 “영이라는 게 뭡니까?” 물었습니다. 마치 자기는 사람인 줄 착각하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저는 그에게 모든 사람에게는 영이 있다는 것과, 생명 관련, 사람은 영이라는 사실, 즉, 몸은 그저 사람이 지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일 뿐이며, 살과 뼈, 곧, 몸이 사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전혀 아님을 말하면서, 그리고 이런 말을 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하는 걸 보면서, 그에게 혹시 전에 혼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혼은 뭡니까?” 그는 대답하면서, “저는 혼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허락을 받아 그에게 그 자신 지금 혼 또는 영이라고, 그가 지금 내 머리 위에 있으며, 땅 위에 있지 않은 걸 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고 하였습니다. 제가 그에게 이 사실을 알겠느냐 묻자 그는 몸서리치며 도망가면서 “나는 영이다! 나는 영이다!”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A certain novitiate spirit, on hearing me speak about the spirit, asked, “What is a spirit?” supposing himself to be a man. And when I told him that there is a spirit in every man, and that in respect to his life a man is a spirit; that the body is merely to enable a man to live on the earth, and that the flesh and bones, that is, the body, does not live or think at all; seeing that he was at a loss, I asked him whether he had ever heard of the soul. “What is a soul?” he replied, “I do not know what a soul is.” I was then permitted to tell him that he himself was now a soul, or spirit, as he might know from the fact that he was over my head, and was not standing on the earth. I asked him whether he could not perceive this, and he then fled away in terror, crying out, “I am a spirit! I am a spirit!

 

어떤 유대인이 자기는 완전히 몸 안에 살고 있다 생각하는 영이었는데, 그는 사실은 그 정반대임을 도무지 설득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가 영임을 보았으면서도, 그는 여전히 자기는 사람이라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자기는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고 말이지요. 이런 사람들은 세상 살 때, 몸에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A certain Jew supposed himself to be living wholly in the body, insomuch that he could scarcely be persuaded to the contrary. And when he was shown that he was a spirit, he still persisted in saying that he was a man, because he could see and hear. Such are they who, during their abode in this world, have been devoted to the body.

 

이런 사례들은 끝도 없이 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만 이런 말씀 드리는 이유는, 감각을 지각하는 것은 몸이 아닌, 사람 안 영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To these examples very many more might be added, but these have been given merely in order to confirm the fact, that it is the spirit in man, and not the body, which exercises sens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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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0년대 유럽 사람들 사이에 만연한 일반적인 생각들

 

446

저는 오늘날(18세기 중엽 유럽) 사람들 사이에 만연한 일반적인 생각들에 관하여 영들과 담론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영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그들이 영이라는 것을 두 눈으로 볼 수도, 그들이 가진 머릿속 지식으로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이며, 그래서 그들은 영이 확장, 곧 무슨 외연을 가진다는 것을 부인할 뿐 아니라, 영이 일종의 실체라는 것도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실체가 무엇이냐를 가지고도 다투면서 말이지요. 영이 외연을 가진다는 것을 부인하며, 또 영의 실체에 관해 다투기 때문에, 그들은 또한 영은 어떤 곳, 곧 사람 몸 안에 있다는 사실을 부인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단순한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의 혼 또는 영이 자기 몸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얘기들을 하자 훨씬 더 단순한 사람들이었던 그 영들은 현대인들이 그토록 어리석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습니다. 그리고 ‘부분들 없는 부분들’ 같은, 그리고 다른 말들을 가지고 다투고들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그런 걸 우스꽝스럽다, 터무니없다, 웃음거리다고 하며, 그런 걸로 마음을 채우면 안 된다고, 안 그러면 지혜의 길이 닫힌다고 하였습니다. I have discoursed with spirits concerning the common opinion that prevails among men at the present day, that the existence of the spirit is not to be credited because they do not see it with their eyes, nor comprehend it by their memory-knowledges [scientias], and so they not only deny that the spirit has extension, but also that it is a substance, disputing as to what substance is. And as they deny that it has extension, and also dispute about substance, they also deny that the spirit is in any place, and consequently that it is in the human body; and yet the most simple might know that his soul or spirit is within his body. When I said these things, the spirits, who were some of the more simple ones, marveled that the men of the present day are so foolish. And when they heard the words that are disputed about, such as “parts without parts,” and other such terms, they called them absurd, ridiculous, and farcical, which should not occupy the mind at all, because they close the way to intellig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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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사람들한테는 사후 살게 될 혼, 즉 영은 추상적인 생각이다라는 거 말고는 아무런 믿음도 없다

 

445

더욱 주목하게 된 것은, 배운 사람들한테는 ‘사후 살게 될 혼, 즉 영은 추상적인 생각이다’라는 거 말고는 아무런 믿음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외연과 외연에 속한 것이면 무엇이든 어떤 말도 인정하기를 꺼리는 그들의 태도를 보면 아주 지배적입니다. 어떤 주제를 가지고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외연을 갖지 않지만, 생각의 주제, 그리고 생각의 대상들은 외연을 갖기 때문입니다. 외연을 갖지 않는 그런 대상들에 관하여는 사람들은 범위를 정하고, 외연을 허용합니다. 그것들을 이해하려고 말이지요. 이것으로 아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배운 사람들은 혼 또는 영의 개념과 관련, 그건 그저 생각에 지나지 않으며, 사후엔 사라지는 것으로밖에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It was further remarked, that the learned have no other belief than that the soul which is to live after death, that is, the spirit, is abstract thought. This is very manifest from their unwillingness to admit of any term that implies extension and what belongs to extension, because thought abstractedly from a subject is not extended, whereas the subject of the thought, and the objects of the thought, are extended; and as for those objects which are not extended, men define them by boundaries and give extension to them, in order that they may comprehend them. This shows very clearly that the learned have no other conception of the soul or spirit than that it is mere thought, and so cannot but believe that it will vanish when they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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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믿기를, 영은 무슨 외연(外延, extension) 같은 걸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믿었던, 그리고 이 때문에 일절 무슨 외연 개념을 포함한 말 한마디도 용납하지 않았던 사람과 대화

 

444

생전에 믿기를, 영은 무슨 외연(外延, extension) 같은 걸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믿었던, 그리고 이 때문에 일절 무슨 외연 개념을 포함한 말 한마디도 용납하지 않았던 사람과 대화하면서, 저는 그에게 지금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그가 지금은 혼 또는 영이 되었고, 시각, 청각, 후각, 매우 정교해진 촉각, 욕망, 사고 등, 그가 자신을 마치 몸 안에 있는 거와 완전 똑같이 여길 정도로 모든 감각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상에 있을 때 했던 생각 가운데 여전히 머물러 있었는데, 말하기를 영은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의 답변을 구하면서 묻기를, 혹시 세상 살 때, 눈 같은 보는 기관(organ)이 없으면 무슨 육체적 시력 같은 것도 있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러면, 내적 시야(internal sight), 곧 생각은 어떻게 있을 수 있는지,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 어떤 기관을 이루는 실체를 가져서는 안 되는지를 말입니다. 그러자 그가 인정하기를, 몸 안에 있는 동안, 자기는 영은 그저 생각일 뿐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기관이나 외연을 갖는 모든 것을 외면하느라 헛고생만 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덧붙이기를, 만일 혼이나 영이 단지 생각일 뿐이라면, 사람의 머리가 그렇게 클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머리 전체가 내면의 모든 감각을 총괄하는 걸 보면 말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두개골은 텅 비었을 것이고, 그럴지라도 생각은 여전히 영처럼 그 안에서 활동하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이 한 가지만 살펴보더라도, 게다가 혼이 근육 안에서 매우 엄청나게 다양한 움직임을 일으키는 걸 보더라도, 당신은 영이 유기적이라는, 즉 일종의 유기적 실체임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오류를 고백했고, 자신이 그토록 어리석었었다는 사실에 어이없어했습니다. Conversing with one who while he lived in this world had believed that the spirit has no extension, and on that ground would admit of no word that implied extension, I asked him what he now thought of himself, seeing that now he was a soul or spirit, and possessed sight, hearing, smell, an exquisite sense of touch, desires, thoughts, insomuch that he supposed himself to be exactly as if in the body. He was kept in the idea which he had when he had so thought in the world, and he said that the spirit is thought. I was permitted to ask him in reply, whether, having lived in the world, he was not aware that there can be no bodily sight without an organ of vision or eye? And how then can there be internal sight, or thought? Must it not have some organic substance from which to think? He then acknowledged that while in the bodily life he had labored under the delusion that the spirit is mere thought, devoid of everything organic or extended. I added that if the soul or spirit were mere thought man would not need so large a brain, seeing that the whole brain is the organ of the interior senses; for if it were not so the skull might be hollow, and the thought still act in it as the spirit. From this consideration alone, as well as from the operation of the soul into the muscles, giving rise to so great a variety of movements, I said that he might be assured that the spirit is organic, that is, an organic substance. Whereupon he confessed his error, and wondered that he had been so foo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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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이나 영에 대해 가졌던 생각에 관하여 그들을 만나보고 쓴 몇 가지 사례들

 

443

다른 삶(the other life)에서는 사람들이 혼(soul), 영(spirit) 및 사후 삶(life after death)에 관해 몸 안에서 살 동안 품었던 견해들을 더욱 명료하게 지각하게 되는데요, 그 이유는 몸 안에 있었을 때와 비슷한 상태에 놓이게 되면, 그들은 그때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는데, 그때 그들의 생각이 마치 큰 소리로 말하는 것처럼 명료하게 서로 소통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 이야기입니다. 그는 죽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이었는데, 제가 그에게서 지각한 건 다음과 같습니다. (그가 혼자 중얼거린 겁니다) 그는 생전에 영의 존재를 정말로 믿었던 사람이지만, 속으로는 나는 사후 무슨 안개 같은 생명으로 살게 될 거야. 왜냐하면, 몸의 생명이 그치면 남는 것은 안개같이 희미한 것밖에 없을 테니까...라고 생각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생명이라는 것을 몸 안에 있는 것으로만 보았고, 영은 일종의 유령처럼 생각했었기 때문인데, 그는 사람들이 가진 생명과 거의 같은 생명을 짐승들도 갖고 있는 걸 보고, 이런 생각을 스스로 확신했던 겁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경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영들과 천사들이 가장 밝은 빛 가운데 살며, 또 너무나 완벽하여 도저히 말로 설명하기가 정말 쉽지 않은 그런 퍼셉션(perception)을 가지고, 가장 놀라운 지성과 지혜, 그리고 행복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었으며, 그 결과 그들의 삶은 모호함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가장 완벽한 명료함과 확실함 가운데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In the other life it is given to perceive clearly what opinions people had entertained while they lived in the body concerning the soul, the spirit, and the life after death; for when kept in a state resembling that of the body they think in the same way, and their thought is communicated as plainly as if they spoke aloud. In the case of one person, not long after his decease, I perceived (what he himself confessed) that he had indeed believed in the existence of the spirit, but had imagined that it must live after death an obscure kind of life, because if the life of the body were withdrawn there would remain nothing but what is dim and obscure; for he had regarded life as being in the body, and therefore he had thought of the spirit as being a phantom; and he had confirmed himself in this idea from seeing that brutes also have life, almost as men have it. He now marveled that spirits and angels live in the greatest light, and in the greatest intelligence, wisdom, and happiness, attended with a perception so perfect that it can scarcely be described; consequently that their life, so far from being obscure, is most perfectly clear and distin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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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 시대에 교회에서 분리되어 나간 많은 교리와 이단이 있었으며, 그 하나하나는 다 이름이 있었고, 그 교리와 이단의 결과물들은 오늘날 교회의 것보다 훨씬 더 심오했다

 

26절,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And to Seth, to him also there was born a son; and he called his name Enosh: then began they to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442

위에 설명한 대로 본 장의 내용으로부터 분명한 사실은, 태고 시대에 교회에서 분리되어 나간 많은 교리와 이단이 있었으며, 그 하나하나는 다 이름이 있었고, 그 교리와 이단의 결과물들은 오늘날 교회의 것보다 훨씬 더 심오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천재성이 그랬기 때문입니다. From the contents of this chapter as above explained, it is evident that in the most ancient time there were many doctrines and heresies separate from the church, each one of which had its name, which separate doctrines and heresies were the outcome of much more profound thought than any at the present day, because such was the genius of the men of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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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는 이미 태고교회 때부터, 그리고 아벨의 때에도

 

26절,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And to Seth, to him also there was born a son; and he called his name Enosh: then began they to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441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이때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다음 두 가지 사실을 보면 아주 분명한데요, 첫 번째는, 태고교회에 관하여 위에서 지금까지 말씀드려온 내용입니다. 태고교회는 다른 어느 교회보다도 가장 주님을 경배하고 예배한 교회로서 이미 이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을 예배했습니다. 두 번째는, 양 떼의 첫 새끼를 희생제물로 드린 아벨의 경우입니다. 이런 이유로 이 본문,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는 새 교회의 예배를 상징하는 것 말고는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아다와 씰라 이전의 교회들은 ‘가인’과 ‘라멕’이라는 사람들, 교회들에 의해 소멸되었기 때문입니다. That the invocation of the name of Jehovah did not commence at this time is sufficiently evident from what has already been said above in regard to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more than any other adored and worshiped the Lord; and also from the fact that Abel brought an offering of the firstlings of the flock; so that in this passage by “calling upon the name of Jehovah” nothing else is signified than the worship of the new church, after the former church had been extinguished by those who are called “Cain” and “Lam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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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의 속뜻, 그 교회는 체어리티로 예배드리는 교회

 

26절,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And to Seth, to him also there was born a son; and he called his name Enosh: then began they to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440

방금 인용된 본문,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의 의미가 그 교회는 체어리티로 예배드리는 교회라는 의미임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 곧 선행구절에서는 ‘하나님(God)이었는데 여기서는 ‘여호와(Jehovah)라는 점과, 뿐만 아니라 주님은 체어리티의 예배가 아니면 받으실 수가 없으신데, 그 이유는 참된 예배는 체어리티에 속하지 않은 신앙에서는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며, 그것은 단지 입술이지 마음의 예배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사실 등으로 보아 분명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주님을 향한 모든 예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언어 형태라는 사실은 말씀에도 나오는데요, 다음은 아브라함에 관한 본문들입니다.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13:4) 그리고,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21:33) 이 표현에 모든 예배가 포함되어 있음은 이사야를 통해서도 명료합니다. That by the words just quoted is signified the worship of that church from charity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o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is a customary and general form of speech for all worship of the Lord; and that this worship was from charity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Jehovah” is here mentioned, whereas in the preceding verse he was called “God,” as well as from the fact that the Lord cannot be worshiped except from charity, since true worship cannot proceed from faith that is not of charity, because it is merely of the lips, and not of the heart. That to “call on the name of Jehovah” is a customary form of speech for all worship of the Lord, appears from the Word; thus it is said of Abraham, that “he built an altar to Jehovah, and called on the name of Jehovah” (Gen. 12:8; 13:4) and again, that he “planted a grove in Beersheba, and called there on the name of Jehovah, the God of eternity” (Gen. 21:33). That this expression includes all worship, is plain from Isaiah:

 

22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23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 (사43:22-23)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hath said, thou hast not called upon me, O Jacob, but thou hast been weary of me, O Israel. Thou hast not brought to me the small cattle of thy burnt offerings, neither hast thou honored me with thy sacrifices. I have not caused thee to serve with an offering, nor wearied thee with incense, (Isa. 43:22–23)

 

이 본문에 모든 표상적 예배(表象, representative worship)의 요약이 들어있습니다. in which text a summary is given of all representative worship.

 

창12: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창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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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노스의 속뜻, 영적 인간(靈人, spiritual man)의 성향을 띤 평범한 인간, 체어리티를 신앙의 원리로 삼았던 어떤 교회

 

26절,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And to Seth, to him also there was born a son; and he called his name Enosh: then began they to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439

’이 신앙, 곧 이 신앙을 통해서 체어리티가 오는 그런 신앙임은 선행구절에서 보여드렸습니다. 그의 아들, 곧 그 이름이 에노스였던 아들, 체어리티를 신앙의 원리로 삼았던 어떤 교회를 가리켜 에노스라 한다는 것은 앞서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들 뿐 아니라, 다음과 같은 사실들로도 분명한데요, 그 교회를 에노스라 한다는 것, 이 이름의 뜻 역시 사람(man)인데, 천적 인간(天人, celestial man)을 말하는 건 아니고, 대신 영적 인간(靈人, spiritual man)의 성향을 띤 평범한 인간을 의미하는, 이런 게 에노스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어지는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라는 말씀으로도 분명합니다. That by “Seth” is signified the faith through which comes charity was shown in the preceding verse. That by his “son, whose name was Enosh,” is signified a church that regarded charity as the principal of faith, is also evident from what has been said before, as well as from the fact that it is called “Enosh,” which name also means a “man,” not a celestial man, but that human spiritual man which is here called “Enosh.” The same is evident also from the words that immediately follow: “then began they to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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