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repenting and grieving at heart)는 주님의 자비(The mercy of the Lord)에 대한 묘사입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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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repenting and grieving at heart)는 주님의 자비(The mercy of the Lord)에 대한 묘사입니다. (6) 그들은 이런 갈망과 이런 신념은 사람을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하고 만다는 것을 입증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7) 이런 상황에서, 인류가 건짐을, 구원을 받을 수 있으려면 새로운 교회가 반드시 일어나야 했는데, 그 교회가 바로 노아입니다. (8) The mercy of the Lord is described by “repenting and grieving at heart” (verse 6). That they became such that their yearnings and persuasions must needs prove fatal to them (verse 7). Therefore in order that the human race might be saved, a new church should arise, which is “Noah” (verse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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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안에 퍼셉션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 개념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저는 주님의 신적 자비, 곧 주님의 허락하심을 받아 이어지는 페이지들에서 수많은 천국에 존재하는 퍼셉션의 주된 종류들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32절,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And Noah was a son of five hundred years; and Noah begat Shem, Ham, and Japhe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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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 페이지들에서, 홍수 전에 있었던 교회들이 가지고 있었던 퍼셉션에 관해 많은 말씀을 이미 드렸기 때문에, 그리고 오늘날은 퍼셉션에 관해 전혀 알려진 바 없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그걸 일종의 계시의 지속인가?, 혹은 사람들 가운데 심긴 어떤 건가?, 다른 사람들은 그저 상상인 거 아냐?, 또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어떤 거 아냐? 등 이렇게 온갖 의견들이 난무하기 때문에, 그리고 퍼셉션은 주님이 사랑의 신앙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주신 천적인 것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 유니버설한 천국 전체의 끝없는 다양성 안에 이 퍼셉션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등, 이런 여러 이유로, 사람들 안에 퍼셉션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 개념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저는 주님의 신적 자비, 곧 주님의 허락하심을 받아 이어지는 페이지들에서 수많은 천국에 존재하는 퍼셉션의 주된 종류들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As in the foregoing pages much has been said about the perception possessed by the churches that existed before the flood, and as at this day perception is a thing utterly unknown, so much so that some may imagine it to be a kind of continuous revelation, or to be something implanted in men; others that it is merely imaginary, and others other things; and as perception is the very celestial itself given by the Lord to those who are in the faith of love, and as there is perception in the universal heaven of endless variety: therefore in order that there may be among men some conception of what perception is, of the Lord’s Divine mercy I may in the following pages describe the principal kinds of perception that exist in the heav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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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라는 교회는 홍수 전에 있었던 교회들 중 하나로 번호를 매기지는 않는다는 내용이 29,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에 나옵니다.

 

32절,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And Noah was a son of five hundred years; and Noah begat Shem, Ham, and Japhe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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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라는 교회는 홍수 전에 있었던 교회들 중 하나로 번호를 매기지는 않는다는 내용이 29절,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에 나옵니다. ‘안위하다, 위로하다’는 것은 살아남아 견디는 것입니다.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 관하여는 주님의 신적 자비, 곧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이후 내용에서 다루겠습니다. That the church called “Noah” is not to be numbered among the churches that were before the flood, appears from verse 29, where it is said that it should “comfort them from their work and the toil of thei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The “comfort” was that it should survive and endure. But concerning Noah and his sons,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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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고대교회(古代, the ancient church)를 상징합니다. ‘셈, 함, 야벳 노아라는 고대교회를 부모로 하는, 세 고대교회를 상징합니다.

32절,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And Noah was a son of five hundred years; and Noah begat Shem, Ham, and Japhe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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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고대교회(古代, the ancient church)를 상징합니다. ‘셈, 함, 야벳’은 ‘노아’라는 고대교회를 부모로 하는, 세 고대교회를 상징합니다. By “Noah,” as has been said, is signified the ancient church. By “Shem, Ham, and Japheth” are signified three ancient churches, the parent of which was the ancient church called “No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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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이는 교리를 상징하는데, 어디서든 그동안 왜곡되었던 것이 이 교리로 말미암아 회복될 것이라는 내용으로, 이 또한 주님의 신적 자비로 이어지는 페이지들에 기록될 것입니다.

 

29절,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And he called his name Noah, saying, He shall comfort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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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이는 교리를 상징하는데, 어디서든 그동안 왜곡되었던 것이 이 교리로 말미암아 회복될 것이라는 내용으로, 이 또한 주님의 신적 자비로 이어지는 페이지들에 기록될 것입니다. ‘(work), 이는 그들은 수고와 고통 없이는 참된 것을 지각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이는 그들은 선을 전혀 행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라멕’, 즉 황폐해진 교회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즉 자신의 것으로 참된 것을 추구해야지, 그리고 선한 것을 행해야지 할 때가 바로 ‘일과 손의 수고’의 때입니다. 이것, 곧 ‘일과 손의 수고’의 결과라고는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즉 거짓되고 악한 것뿐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저주하심’의 의미는 위 245번 글 참조) ‘위로하다’는 ‘아들’, 즉 노아와 관련되는 말인데, 이 노아는 새로운 거듭남을, 그리고 그렇게 해서 새 교회를 상징합니다. 새 교회는 고대교회(the ancient church)입니다. 이 교회, 즉 ‘노아’는 그런 이유로 마찬가지로 쉼(rest) 및 쉼에서 오는 위로를 상징합니다. 이 쉼은 앞서 태고교회에 관해 말씀드린 내용에서 주님이 쉬셨던 바로 그 일곱 번째 날의 쉼을 말합니다. (84-88번 글 참조) That by “comforting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is signified doctrine, whereby what had been perverted would be restored, will also appear, of the Lord’s Divine mercy, in the following pages. By “work” is signified that they could not perceive what is true except with labor and distress. By the “toil of the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is signified that they could do nothing good. Thus is described “Lamech,” that is, the vastated church. There is “work and labor of the hands” when, from themselves or from their own, men must seek out what is true and do what is good. That which comes of this is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that is, nothing comes of it but what is false and evil. (But what is signified by “Jehovah cursing,” may be seen above, n. 245.) To “comfort” has reference to the “son,” or Noah, whereby is signified a new regeneration, thus a new church, which is the ancient church. By this church, or “Noah,” is therefore likewise signified rest, and comfort that comes from rest, just as it was said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at it was the seventh day, in which the Lord rested. (See n. 8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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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장에 나오는 이름들은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교회나, 혹은 같은 말이지만, 교리를 의미합니다. 교회는 교리를 가지고 존재하거나, 또는 교리에 기반한 어떤 이름들을 갖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노아 역시 그런 식으로 고대교회를 의미하거나, 혹은 태고교회에 기반을 둔 어떤 남은 교리를 의미합니다.

 

29절,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And he called his name Noah, saying, He shall comfort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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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장에 나오는 이름들은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교회나, 혹은 같은 말이지만, 교리를 의미합니다. 교회는 교리를 가지고 존재하거나, 또는 교리에 기반한 어떤 이름들을 갖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노아’ 역시 그런 식으로 고대교회를 의미하거나, 혹은 태고교회에 기반을 둔 어떤 남은 교리를 의미합니다. 교회나 교리들의 경우, 이미 기술한 대로 그들은 기울어집니다. 즉 신앙의 선과 진리가 더이상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로까지 기울어지는데, 그래서 그때 그런 걸 말씀에서는 교회가 황폐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리메인스, 즉 신앙의 선과 진리를 가진 일부 사람들은 늘 남아 보존됩니다. 비록 그 수는 아주 적지만 말입니다. 신앙의 선과 진리가 이 정말 얼마 안 되는 사람들한테서라도 보존되지 않으면 천국과 인류가 결합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한 사람 개인 안에 있는 리메인스에 대하여 보면, 이것이 적을수록 그는 그가 소유한 이성과 지식에 관한 것이 덜 밝아지는데, 그 이유는 선과 진리의 빛은 리메인스로부터, 즉 주님으로부터 리메인스를 통해 흘러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람 안에 리메인스가 전혀 남아 있지 않으면 그는 사람(a man)이라 할 수 없고, 대신 짐승보다 훨씬 더 끔찍한 그 무엇이 될 수 있습니다. 리메인스가 적을수록 그는 사람이 아니며, 리메인스가 많을수록 그는 사람입니다. 리메인스는 마치 밤하늘의 별과 같습니다. 별이 적을수록 별빛은 희미하지만, 별이 많으면 별빛도 밝은 것처럼 말입니다. 태고교회로부터 겨우 살아남은 것들이 ‘노아’라는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 가운데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그 남은 것들은 퍼셉션이 아닌, 온전함(perfection)에 관한 리메인스들이며, 또 교리에 관한 리메인스들이었는데, 이 교리는 태고교회 퍼셉션에 속한 것들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제 새 교회가 주님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는데, 이 교회는 태고교회들하고는 태생적으로 완전히 다른 교회로서 고대교회라 하였고, 여기서 고대(ancient)라는 것은, 홍수 전 시대 끝 무렵에 존재, 홍수 후 처음 동안 있었던 데서 온 것입니다. 이 교회에 관해서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나중에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By the names in this chapter, as we have said, are signified churches, or what is the same, doctrines; for the church exists and has its name from doctrine; thus by “Noah” is signified the ancient church, or the doctrine that remained from the most ancient church. How the case is with churches or doctrines has already been stated, namely, that they decline, until there no longer remains anything of the goods and truths of faith, and then the church is said in the Word to be vastated. But still remains are always preserved, or some with whom the good and truth of faith remain, although they are few; for unless the good and truth of faith were preserved in these few, there would be no conjunction of heaven with mankind. As regards the remains that are in a man individually, the fewer they are the less can the matters of reason and knowledge that he possesses be enlightened, for the light of good and truth flows in from the remains, or through the remains, from the Lord. If there were no remains in a man he would not be a man, but much viler than a brute; and the fewer remains there are, the less is he a man, and the more remains there are, the more is he a man. Remains are like some heavenly star, which, the smaller it is the less light it gives, and the larger, the more light. The few things that remained from the most ancient church were among those who constituted the church called Noah; but these were not remains of perception, but of perfection, and also of doctrine derived from the things of perception in the most ancient churches; and therefore a new church was now raised up by the Lord, which being of an entirely different native character from the most ancient churches, is to be called the ancient church—ancient from the fact that it existed at the close of the ages before the flood, and during the first period after it. Of this church, by the Divine mercy of the Lord, more will be said here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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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고대교회, 즉 홍수 후 일어나는 세 교회들의 부모 교회

 

29절,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And he called his name Noah, saying, He shall comfort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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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고대교회, 즉 홍수 후 일어나는 세 교회들의 부모 교회를 상징한다는 내용이 뒤에 이어지는 페이지들에 나오는데요, 거기에 노아에 관한 내용이 정말 많이 나옵니다. That by “Noah” is signified the ancient church, or the parent of the three churches after the flood, will appear from the following pages, where Noah is largely treated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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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의 속뜻

 

29절,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And he called his name Noah, saying, He shall comfort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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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고대교회(古代, the ancient church)를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라는 것은 교리를 의미하는데, 이 교리에 의해 그동안 왜곡되었던 모든 것이 어디에서나 회복될 것입니다. By “Noah” is signified the ancient church. By “comforting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is signified doctrine, whereby what had been perverted would be resto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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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Noah), 홍수 때까지 남은 몇 교회, 태고교회의 리메인스’(remains)

 

창5 개요

 

468

이전 장들을 통해 지금까지 말씀드리고 보여드린 내용들을 볼 때 분명한 건, 이름은 이교(異敎, heresy)나 교리(敎理, doctrine)를 의미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본 장에 나오는 이름들은 사람들이 아닌 어떤 것들, 현 맥락에서는 교리들이나 교회들, 곧 태고교회로부터 이 ‘노아’ 때까지 그들이 겪은 변화들에도 불구하고 보존된 교리나 교회들을 의미함을 보실 수 있습니다. 모든 교회의 경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줄어들다가 결국엔 몇 개 정도만 남게 되는데, 그 가운데 홍수 때까지 남은 이들 몇 교회를 가리켜 ‘노아’라 했던 것입니다. From what has been said and shown in the foregoing chapter, it is evident that by names are signified heresies and doctrines. Hence it may be seen that by the names in this chapter are not meant persons, but things, and in the present instance doctrines, or churches, which were preserved, notwithstanding the changes they underwent, from the time of the most ancient church even to “Noah.” But the case with every church is that in course of time it decreases, and at last remains among a few; and the few with whom it remained at the time of the flood were called “Noah.”

 

[2] 참된 교회가 줄어들다가 몇 안 남게 되는 건, 다른 교회들 역시 그렇게 줄어든 걸 보면 분명합니다. 남겨진 자들을 말씀에서는 ‘리메인스’(remains), ‘남은 자’(remnant)라 하고, 또 말하기를, ‘가운데’(in the midst), 혹은 ‘중간에’(middle), ‘땅에’(of the land) 있다고도 합니다. 이런 게 보편적이듯 특별한 경우 역시 그렇습니다. 즉 교회의 경우처럼 각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요. 각 사람 안에 있는 리메인스가 주님에 의해 보존되지 않으면 사람은 영원히 소멸하고 말기 때문인데, 영적, 천적 생명이 그의 리메인스 안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또한 일반적 혹은 보편적으로, 만일 교회, 즉 참 신앙이 몇 사람 안에라도 늘 남아있지 않으면 인류는 소멸됩니다. 잘 알려진 대로, 한 도시, 아니 간혹 한 나라 전체가 단지 몇 사람 덕분에 구원을 받곤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관련된 이런 일이 인체의 경우에도 있습니다. 심장이 괜찮은 한 이웃한 장기들 또한 괜찮을 수 있습니다만, 만일 심장이 약해지면 인체의 다른 장기들 역시 공급이 중단되어 그 사람은 죽습니다. 마지막 리메인스들이 바로 ‘노아’라고 하는 교회들입니다. (창6:12와 다른 구절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온땅이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That the true church decreases and remains with but few, is evident from other churches which have thus decreased. Those who are left are in the Word called “remains,” and a “remnant,” and are said to be “in the midst,” or “middle,” “of the land.” And as this is the case in the universal, so also it is in the particular, or as it is with the church, so it is with every individual man; for unless remains were preserved by the Lord in everyone, he must needs perish eternally, since spiritual and celestial life are in the remains. So also in the general or universal—if there were not always some with whom the church, or true faith, remained, the human race would perish; for, as is generally known, a city, nay, sometimes a whole kingdom, is saved for the sake of a few. It is in this respect with the church as it is with the human body; so long as the heart is sound, life is possible for the neighboring viscera, but when the heart is enfeebled, the other parts of the body cease to be nourished, and the man dies. The last remains are those which are signified by “Noah”; for (as appears from Gen. 6:12, as well as from other places) the whole earth had become corrupt.

 

[3] 보통, 교회뿐 아니라 각 개인 안에 있는 리메인스에 관하여 많은 말씀들이 예언서에 보면 나옵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입니다. Of remains as existing in each individual as well as in the church in general, much is said in the prophets; as in Isaiah:

 

3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4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사4:3-4) He that is left in Zion, and he that remaineth in Jerusalem, shall be called holy to him, even everyone that is written unto lives in Jerusalem, when the Lord shall have washed the filth of the daughters of Zion, and shall have washed away the bloods of Jerusalem from the midst thereof, (Isa. 4:3–4)

 

거룩함(holiness)으로 서술되고 있는 위 구절에서, 리메인스는 교회의 리메인스 및 교회에 속한 사람 또한 의미하고 있습니다. 시온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을 단순히 그들이 ‘남겨졌다’는 이유 만으로 거룩하다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in which passage holiness is predicated of the remains, by which are signified the remains of the church, and also of a man of the church; for “those left” in Zion and Jerusalem could not be holy merely because they were “left.” Again:

 

20그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21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사10:20-21) It shall come to pass in that day, that the remains of Israel, and such as are escaped of the house of Jacob, shall no more again stay upon him that smote them, but shall stay upon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in truth. The remains shall return, the remains of Jacob, unto the mighty God. (Isa. 10:20–21)

 

예레미야에서는 In Jeremiah:

 

그날 그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 (렘50:20) In those days, and in that time, the iniquity of Israel shall be sought for, and there shall be none; and the sins of Judah, and they shall not be found; for I will pardon him whom I shall make a remnant. (Jer. 50:20)

 

미가서입니다. In Micah: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미5:7) The remains of Jacob shall be in the midst of many peoples, as the dew from Jehovah, as the showers upon the grass. (Micah 5:7)

 

[4] 한 사람 혹은 교회의 잔여물 혹은 리메인스는 십 분의 일(the tenths)로도 표현되었는데, 이 십 분의 일은 거룩했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 십(10)을 가진 수 또한 거룩했고, 그래서 ‘’(10)은 리메인스를 서술하는데 쓰이고 있습니다. 이사야입니다. The residue or remains of a man, or of the church, were also represented by the tenths, which were holy; hence also a number with ten in it was holy, and “ten” is therefore predicated of remains; as in Isaiah:

 

12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그중에 십 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사6:12-13) Jehovah shall remove man, and many things [shall be] left in the midst of the land; and yet in it [shall be] a tenth part, and it shall return, and shall be for exterminating; as an oak, and an ilex, when the stock is cast forth from them, the holy seed is the stock thereof; (Isa. 6:12–13)

 

여기 남아 있는 것을 가리켜 ‘거룩한 씨’라 하고 있습니다. 아모스에서 where the residue is called a “seed of holiness.” And in Amos: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 중에서 천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암5:3) Thus saith the Lord Jehovah, The city that goeth forth a thousand shall have a hundred left, and that which goeth forth a hundred shall have ten left to the house of Israel. (Amos 5:3)

 

이 구절들과 다른 많은 데에서 그 속뜻으로는 우리가 지금까지 말해온 ‘리메인스’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한 도시가 거기 있는 교회의 리메인스 덕분에 보존된다는 사실은 소돔 관련,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분명합니다. In these and many other passages, in the internal sense are signified the “remains” of which we have been speaking. That a city is preserved for the sake of the remains of the church, is evident from what was said to Abraham concerning Sodom: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18:32) Abraham said, Peradventure ten may be found there; and he said, I will not destroy it for ten’s sake. (Gen. 18:32)

 

창6: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창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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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Noah), 일종의 새 교회

 

창5 개요

 

467

라멕’은 태고교회가 누리던 퍼셉션을 전혀 소유하지 못한 교회로 묘사되는 반면, ‘노아’는 일종의 새 교회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29절) Lamech” is described as retaining nothing of the perception which the most ancient church enjoyed; and “Noah” is described as a new church. (verse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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