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1.5.1, ‘주님의 신적 본질을 이루는 두 키워드는 사랑과 지혜다(The very Divine Essence is Love and Wisdom)’ (2023/6/26)
번역/COMPENDIUM 2023. 6. 26. 09:47‘주님의 신적 본질을 이루는 두 키워드는 사랑과 지혜다(The very Divine Essence is Love and Wisdom)’ (2023/6/26)
‘콤펜디움(COMPENDIUM, 叢書)’ 1장 ‘하나님에 관하여’, 오늘은 5강, ‘주님의 신적 본질을 이루는 두 키워드는 사랑과 지혜다(The very Divine Essence is Love and Wisdom)’입니다.
※ ‘콤펜디움(COMPENDIUM, 叢書, Samuel. M. Warren, 1875)’
1. 어떤 저자의 모든 저작(Writings)을 한 데 모아놓은 것으로, 여기서는 스베덴보리의 모든 신학적 저작 가운데서 특정 주제별로 그에 해당하는 글들을 선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을 말합니다. 일종의 조직신학 같은 책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2. 이 콤펜디움을 엮은 워렌은 그저 주제별 해당 글들을 선별, 엮기만 했을 뿐 무슨 자의적 해설을 더하거나 섞거나 하지 않았으므로 여전히 원저자는 스베덴보리라 해도 될 듯 합니다.
오늘의 메인 본문은 스베덴보리 저,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Angelic Wisdom concerning Divine Love and Wisdom, 1763) 1장, ‘창조주’(The Creator) 8강, ‘주님의 신적 본질을 이루는 두 키워드는 사랑과 지혜다(The very Divine Essence is Love and Wisdom)’에 나오는, 책 전체 글 번호로는 29, 30번 글입니다.
29
그 본질에 있어 지혜와 한 몸인 사랑(Love together with wisdom in its very essence)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이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안에 있는 사랑으로 모두를 사랑하시며, 자기 안에 있는 지혜로 모두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피조 세계(The created universe)역시 그 창조 질서의 측면에서 볼 때(viewed in relation to its order),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로 너무나도 충만, 그 안 모든 만물(all things in the aggregate)을 일컬어 지혜 그 자체라 할 정도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것들(things limitless)이 그런 질서 가운데 계속 연결되고, 동시에 하나로 합쳐 하나를 이루기 때문인데요,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단결, 끊임없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그리고 오직 이것 때문입니다. Love together with wisdom in its very essence is in God. This no one can deny; for God loves everyone from love in himself, and leads everyone from wisdom in himself. The created universe, too, viewed in relation to its order, is so full of wisdom coming forth from love that all things in the aggregate may be said to be wisdom itself. For things limitless are in such order, successively and simultaneously, that taken together they make a one. It is from this, and this alone, that they can be held together and continually preserved.
30
사람에게 생명(삶)을 위한 두 가지 능력(capacities, abilities)이 생기는 것, 곧 하나를 통해서는 언더스탠딩(understanding, discernment)이, 다른 하나를 통해서는 윌(will, volition)이 생기는 것은 바로 이 ‘주님의 신적 본질을 이루는 두 키워드는 사랑과 지혜다(the Divine essence itself is love and wisdom)’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언더스탠딩을 생기게 하는 능력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지혜의 입류(the influx of wisdom from God)로 말미암는 모든 것이 시작되고, 윌을 생기게 하는 능력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의 입류(the influx of love from God)로 말미암는 모든 것이 시작됩니다. 사람이 정말 지혜롭지도, 그리고 올바른 사랑을 하지도 않는다 해서 이 능력들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단지 닫힐 뿐인데요, 다만 이 능력들이 닫혀 있는 한은, 비록 언더스탠딩을 여전히 언더스탠딩이라 하고, 윌을 윌이라 하더라도 사실은 더 이상 아닙니다. 언더스탠딩도, 윌도 이 능력들이 정상적으로 작동 중일 때만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일 이 두 능력이 사라지면 사람의 모든 것(all that is human)은 소멸될 것입니다. 인간(the human)은 사고(thought)를 통해서 생각하고 말하며, 의지(will)를 통해서 의도하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윌과 언더스탠딩이 있어 사람입니다. 이 사실로 분명한 건, 주님의 신성(the Divine)은 인간 안에서 이 두 능력, 곧 지혜로울 수 있는 능력과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안에 자리를 잡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사랑의 가능성이 있음을, 그리고 지혜로움의 가능성이 있음을 저는 많은 경험을 통해 그동안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당장은 할 수 있는 만큼 사랑도, 될 수 있는 만큼 지혜롭지도 않을지라도 말이지요. 이 사실은 앞으로 여러 다른 데서 풍부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It is because the Divine essence itself is love and wisdom that man has two capacities for life; from one of these he has understanding, from the other will. The capacity from which he has understanding derives everything it has from the influx of wisdom from God, and the capacity from which he has will derives everything it has from the influx of love from God. Man’s not being truly wise and not loving rightly does not take away these capacities, but merely closes them up; and so long as they are closed up, although the understanding is still called understanding and the will is called will, they are not such in essence. If these two capacities, therefore, were to be taken away, all that is human would perish; for the human is to think and to speak from thought, and to will and to act from will. From this it is clear that the Divine has its seat in man in these two capacities, the capacity to be wise and the capacity to love (that is, that one may be wise and may love). That in man there is a possibility of loving [and of being wise], even when he is not wise as he might be and does not love as he might, has been made known to me from much experience, and will be abundantly shown elsewhere.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태는 몇 가지 설명 및 오늘의 권면입니다.
1. ‘피조 세계 역시 그 창조 질서의 측면에서 볼 때,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로 너무나도 충만, 그 안 모든 만물을 일컬어 지혜 그 자체라 할 정도입니다.’ (29번 글에서)
다음은 위 문장에 나오는 ‘지혜’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글입니다.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에서 인용했습니다.
천국의 총합이 한 사람의 모양(heaven in its whole complex reflects a single man)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신비(an arcanum)이지만, 천국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사실과 그에 관련된 세부 사항들을 아는 것이 천사의 지성을 이루는 핵심(the chief thing in the intelligence of the angels there)이다. 천사들이 이 사실을 보편 원리(general principle)로 삼고 있지 않으면, 거기 의존하는 많은 것을 명확히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의 공동체도 각각 사람 모양을 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천국을 ‘가장 큰 신적 사람(the greatest man and the Divine man)’이라고 부른다. 신적(Divine)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주님의 신성이 천국을 이루기 때문이다. (HH.59)
즉 어떤 건물이나 도시 전체 설계에 그 설계자의 모든 지혜가 담겨있듯 천국 역시 그 전체 설계에 주님의 지혜가 온전히 담겨있을 것이므로, 우리가 그 천국의 설계 형태에 주목하면 주님의 지혜에 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는 말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2.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그런 질서 가운데 계속 연결되고, 동시에 하나로 합쳐 하나를 이루기 때문인데요,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단결, 끊임없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그리고 오직 이것 때문입니다.’ (29번 글에서)
이 역시 다음 글들을 통해 그 의미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역시 ‘천국과 지옥’에서 인용했습니다.
천국의 형상이 그렇기 때문에, 천국은 주님에 의해 단 한 사람처럼, 즉 한 단위로 다스려진다. 잘 알려진 대로 사람은 전체나 각 세부나 무수히 다양한 부분들로 이루어졌다. 전체는 사지와 기관과 내장들로, 그리고 각 부분은 섬유와 신경과 혈관으로 되어 있어 지체 안에 지체가, 부분 안에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사람은 한 사람으로 움직인다. 이와 같이 천국도 주님의 감찰과 인도하심(the auspices and direction of the Lord)에 따라 하나로 움직이는 것이다. (HH.63)
사람 안에 있는 많은 부분들이 하나로 움직이는 것은, 사람 안에 있는 것은 모두 전체의 유익을 위해 뭔가 기여하고, 쓰임새(use) 없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전체는 부분들로 구성되고, 부분은 전체를 이루기 때문에, 전체는 부분을 위한, 부분은 전체를 위한 쓰임새를 수행한다. 그러므로 양쪽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서로를 목적으로 삼으며, 모든 부분이 합동해서 각기 전체와 전체의 유익에 참여하는 형태를 이루어낸다. 그 결과 모든 부분이 하나로 움직이는 것이다.
[2] 천국들 간에도 이런 연합(affiliations)이 이루어진다. 천국에서는 모두 그 쓰임새를 따라 같은 형태(form)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공동체에서 쓰임새를 수행하지 않는 자는 이질적이므로 천국에서 추방된다. 쓰임새를 수행한다는 것은 전체의 공동유익을 위해 타인에게 선한 의도로 행하는 것을 말한다. 쓰임새를 수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타인에게 선한 의도로 행하기는 하지만 전체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후자는 모든 것보다 자기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며, 전자는 주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천국에서는 모두가 하나로 움직이는데, 그것은 주님으로 말미암는 것이지, 천사들 스스로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주님을 모든 것의 유일한 원천으로 바라보고, 주님 나라를 그 유익을 추구해야 할 사회로 삼기 때문이다. 이것을 주님은 성서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그의 의를 구한다’는 것은 주님의 선을 구하는 것(to seek his good)이다.
[3] 이 세상에서 자기 조국의 유익을 자기 유익보다, 이웃의 유익을 자기 유익보다 더 사랑한 사람은 내세에서 주님의 나라를 구하고 사랑한다. 거기서는 주님의 나라가 조국이기 때문이다. 또 타인에게 행하는 선을 사랑한 사람들은 내세에서 이웃을 사랑한다. 천국에서는 선이 이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가장 큰 사람(the greatest man)’ 안에, 즉 천국에 있다. (HH.64)
3. 영어 ‘understanding’과 ‘will’을 앞으로는 가급적 소리나는 그대로 ‘언더스탠딩’과 ‘윌’로 적겠습니다. 이 ‘understanding’에 대한 번역이 참 애매하기 때문인데요, 그냥 ‘이해’라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조금 풀어 ‘이해하는 능력’이라 하기도 그렇고... 무슨 ‘이해력’이나 ‘사고력’, ‘이성’이나 ‘생각’ 등... 참 쉽지가 않습니다. 영어 ‘charity’나 ‘affection’ 등과 같은 케이스입니다. ‘will’의 경우는 ‘의지’나 ‘의도’ 등 크게 문제될 건 없지만, 그냥 ‘understanding’과 짝을 맞추기 위해 ‘윌’로 표기하겠습니다만, 그러나 융통성 있게 하겠습니다.
4. ‘언더스탠딩도, 윌도 이 능력들이 정상적으로 작동 중일 때만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일 이 두 능력이 사라지면 사람의 모든 것은 소멸될 것입니다. 인간은 사고를 통해서 생각하고 말하며, 의지를 통해서 의도하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윌과 언더스탠딩이 있어 사람입니다. 이 사실로 분명한 건, 주님의 신성은 인간 안에서 이 두 능력, 곧 지혜로울 수 있는 능력과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안에 자리를 잡는다는 것입니다.’ (30번 글에서)
다음은 위에서 말한 ‘언더스탠딩(understanding)’과 ‘윌(will)’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글입니다.
영적이고 천적인 문제에 대한 바른 개념이 없는 사람은, 영적이고 천적인 것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사람의 모양과 형상으로 배열되고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사람의 외면(man’s outmost nature)을 구성하는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것이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떠나서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은 선한 것을 의도하고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his ability to understand what is true and to will what is good)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의지(willing)와 사고력(understanding)이 바로 사람을 이루는 영적이고 천적인 것이다. 게다가 모든 사람의 특질(quality)은 그의 사고력과 의지의 성질에 의해 결정된다. 또한 사람의 육신은 이 세상에서 사고력과 의지에 봉사하도록 지어진 것이고, 그 두 기능의 명령에 따라 자연계에서 사용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이유로, 몸은 그 자체가 행하는 것이 하나도 없고, 항상 사고력과 의지의 명령에 완전히 복종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이 입과 혀를 통해 말로 나오고, 사람의 의도가 사지를 통해 행동에 옮겨지는 것이다. 따라서 행동하는 것은 사고력과 의지이지 몸 자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사고력과 의지에 속한 것이 사람을 이루며, 내면이 외면에 작용하듯(as what is internal into what is external) 그 두 기능이 육체의 지극히 세부적인 데까지 작용하기 때문에, 영과 육은 같은 형태로 되어 있음이 명백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내적인 인간, 영적인 인간이라 하는 것이다. 천국은 바로 가장 크고 가장 완벽한 사람의 형태이다. (HH.60)
여기서는 번역자의 번역을 존중, ‘사고력’과 ‘의지’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오늘 강의의 요약 및 결론은,
첫째, 주님의 신적 본질을 이루는 지혜는 천국의 구조와 설계 형태에 반영되어 있으며, 그래서 천국 설계 형태를 아는 것이 주님의 신적 지혜를 아는 첫걸음이라는 사실입니다.
둘째, 주님의 신적 사랑에서 주님의 신적 지혜가 나옵니다. 여기서 주님의 신성의 본질인 선과 진리가 나오며, 또 여기서 사람을 이루는 의지와 이해하는 능력, 곧 윌과 언더스탠딩이 나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인플럭스(influx)로 연결되어 있는데요, 이 인플럭스는 피조 세계 전체와 주님을 연결하는,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어떤 영적 연결이요, 흐름입니다. 이 인플럭스로 주님의 신적 사랑과, 신성을 이루는 선, 그리고 인간의 의지가 한 흐름으로 연결되고, 또 주님의 신적 지혜와, 신성을 이루는 진리, 그리고 인간의 이해하는 능력인 언더스탠딩이 한 흐름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런 흐름과 연결로 인해, 어떤 사람이든지 선하고 진실한 사람이 될 가능성, 선과 진리의 사람이 될 가능성, 그리고 주님의 사랑과 지혜의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자기 자신은 물론, 어느 누구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으로 5강, ‘주님의 신적 본질을 이루는 두 키워드는 사랑과 지혜다(The very Divine Essence is Love and Wisdom)’를 마치고, 다음은 6강, ‘주님의 신적 사랑과 주님의 신적 지혜는 실체(實體)이며, 형태를 가진다(Divine love and Divine wisdom are substance and are form)’입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