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14-19

 

17절,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Verse 17, And unto the man he said, Because thou hast hearkened unto the voice of thy wife, and hast eaten of the tree of which I commanded thee, saying, Thou shalt not eat of it; cursed is the ground for thy sake; in great sorrow shalt thou eat of it all the days of thy life.

 

※ 17절 속뜻

 

 

 

 

267.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는 아담(the man), 혹은 래셔널(rational, 合理)의 동의를 말하는데, 이 부주의한 동의로 스스로를 외면 또는 저주하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가 가리키는 완전한 겉 사람의 동의를 말합니다. By the “man hearkening to the voice of his wife” is signified the consent of the man, or rational, by which it also averted or cursed itself, and consequently the whole external man, denoted by “cursed is the ground for thy sake.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는 그의 미래의 삶은 비참할 것이며, 이것은 심지어 그 교회의 종말 때까지, 혹은 네 평생에그럴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To “eat thereof in sorrow” means that the future state of his life would be miserable, and this even to the end of that church, or “all the days of his life.

 

 

268. 이 겉 사람을 상징함은 ’(earth, 1:1, AC.16), ‘지면’(ground, 2:5, AC.90), ‘’(field, 2:5, AC.90) 관련 앞서 했던 언급들을 보시면 분명합니다. That the “ground” signifies the external man is evident from what was previously stated concerning “earth,” “ground,” and “field.”

 

사람이 거듭나면 그를 가리켜 더 이상 이라 하지 않고 대신 지면이라고 합니다. 천적 씨가 그의 안에 심겼기 때문입니다. 그는 대지’(지면)에 비교되며 말씀 여러 곳에서 대지로 언급됩니다. When man is regenerate, he is no longer called “earth,” but “ground,” because celestial seed has been implanted in him; he is also compared to “ground” and is called “ground” in various parts of the Word.

 

선과 진리의 씨앗들은 속 사람이 아닌 겉 사람, 즉 그의 어펙션(affection, 애정)과 기억 안에 심깁니다. 속 사람 안에는 그의 본성과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없고, 그런 건 대신 겉 사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The seeds of good and truth are implanted in the external man, that is, in his affection and memory, and not in the internal man, because there is nothing of one’s own in the internal man, but only in the external.

 

속 사람 안에는 선과 진리가 있으며, 이들이 더 이상 안 보이면, 그 사람은 겉 혹은 육(, corporeal)이 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주님은 그 사람 본인도 모르게 그의 속 사람 안에 이들 선과 진리를 여전히 계속해서 차곡차곡 보관하십니다. 겉 사람이 마치 죽은 것 같은 상황, 가령, 시험, 불행, , 그리고 임종의 때와 같은, 그런 상황이 아니면 이들 속 사람 안에 있는 선과 진리들은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In the internal man are goods and truths, and when these no longer appear to be present, the man is external or corporeal; they are however stored up in the internal man by the Lord, without the man’s knowledge, as they do not come forth except when the external man as it were dies, as is usually the case during temptations, misfortunes, sicknesses, and at the hour of death.

 

래셔널도 겉 사람에게 속하며(AC.118), 실상은 속 사람과 겉 사람 사이 일종의 중간역할을 합니다. 속 사람은 이 래셔널을 통해 육과 결합한 겉 사람에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The rational belongs also to the external man (n. 118), and is in itself a kind of medium between the internal man and the external; for the internal man, through the rational, operates on the corporeal external.

 

그러나 래셔널이 동의(同意, consents)를 하면, 즉 래셔널이 정() 방향인 속 사람에서 겉 사람으로가 아닌, 겉 사람에서 속 사람으로인 역() 방향을 취하면, 겉 사람은 속 사람과 분리가 되고, 그러면 속 사람의 존재를 더 이상은 알 수 없게 되며, 그 결과 속 사람에 속한 것들인 지성과 지혜 역시 알 수 없게 됩니다. But when the rational consents, it separates the external man from the internal, so that the existence of the internal man is no longer known, nor consequently the intelligence and wisdom which are of the internal.

 

 

269. 여호와 하나님(, 주님)’, 혹은 겉 사람을 저주하신게 아니라 반대로 겉 사람이 속 사람으로부터 스스로를 외면 및 분리, 그리고 그 결과 저주를 자초한 것인데요, 이것은 앞서 본 내용(AC.245)으로 분명합니다. That Jehovah God (that is, the Lord) did not “curse the ground,” or the external man, but that the external man averted or separated itself from the internal, and thus cursed itself, is evident from what was previously shown (n. 245).

 

 

270.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가 삶이 비참한 상태가 되는 것을 상징한다는 것은, ‘먹는’ 것이 그 속뜻으로는 사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고, 앞선 내용들과 이어지는 내용들로 분명합니다. That to “eat of the ground in great sorrow” signifies a miserable state of life is evident from what precedes and follows, not to mention that to “eat,” in the internal sense, is to live.

 

다음과 같은 사실로도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그런 삶의 상태는 악한 영들은 싸움을 시작하고, 수행 천사들은 고생할 때 따라옵니다. The same is evident also from the fact that such a state of life ensues when evil spirits begin to fight, and the attendant angels to labor.

 

이런 삶의 상태는 악한 영들이 주도권을 잡기 시작할 때 더욱 비참해집니다. 그때 그들은 겉 사람을 다스리고, 천사들은 단지 속 사람만 다스리는데, 속 사람 안에는 리메인스가 거의 없어, 천사들은 그 사람을 방어하는데 필요한 것을 거기서 거의 못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참과 염려가 일어납니다. This state of life becomes more miserable when evil spirits begin to obtain the dominion; for they then govern the external man, and the angels only the internal man, of which so little remains that they can scarcely take anything thence with which to defend the man; hence arise misery and anxiety.

 

죽은 사람들은 이런 비참과 염려에 거의 예민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더 이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인데요, 비록 그들이 자신들을 더욱 사람으로 정말로 생각하더라도 말이지요. 그들은 더 이상 영적이고 천적인 것, 그리고 영원한 삶에 관해 짐승들보다 더 아는 게 없으며, 짐승들처럼 땅에 속한 것들을 향해서는 아래를, 세속적인 것들을 향해서는 밖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본성에만 호의를 보이며, 래셔널의 완전한 동의 하에 자신들의 성향과 감각에만 탐닉합니다. Dead men are seldom sensible of such misery and anxiety, because they are no longer men, although they think themselves more truly so than others; for they know no more than the brutes of what is spiritual and celestial, and what is eternal life, and like them they look downward to earthly things, or outward to worldly ones; they favor only their own, and indulge their inclinations and senses with the entire concurrence of the rational.

 

이들은 죽은 상태이기 때문에 아무런 영적 전투나 시험 없이 살아가며, 다 드러난 사람들이 되어, 이들의 삶은 그 무게로 가라앉고, 그래서 그 결과, 점점 더 자신들을 저주하고, 재촉해서 계속해서 더 깊이깊이 지옥의 저주 아래 들어가게 할 것입니다. 이들은 다른 삶, 곧 지옥이지요, 거기서는 무슨 시험이나 불행 때문에 죽음에 이를 위험이 전혀 없지만, 그러나 가장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되는, 그런 삶의 입구에 이를 때까지 이런 삶을 살게 되기 때문에, 바로 이런 상태를 본문에서는, ‘땅은 저주를 받고 너는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로 상징한 것입니다. Being dead, they sustain no spiritual combat or temptation, and were they exposed to it their life would sink under its weight, and they could thereby curse themselves still more, and precipitate themselves still more deeply into infernal damnation: hence they are spared this until their entrance into the other life, where, being no longer in danger of dying in consequence of any temptation or misery, they endure most grievous sufferings, which likewise are here signified by the ground being cursed, and eating of it in great sorrow.

 

 

271. ‘네 평생에’가 그 시대 교회의 종말에 대한 상징인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분명한데요, 여기서 다루는 주제가 어느 한 개인이 아닌, 교회와 교회의 상태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That “all the days of thy life” signifies the end of the days of the church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he subject here treated of is not an individual man, but the church and its state.

 

그 교회 시대의 종말은 홍수의 때였습니다. The end of the days of that church was the time of the flood.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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