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14-19

 

16절,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Verse 16, And unto the woman he said, I will greatly multiply thy sorrow and thy conception; in sorrow thou shalt bring forth sons, and thine obedience shall be to thy man [vir], and he shall rule over thee.

 

※ 16절 속뜻

 

선악과를 범하기 전엔 진리를 생각하고 실천하기가 쉬웠다면 선악과를 범한 이제부터는 정말 마치 임산부가 아이 해산하듯 생사를 넘나드는 영적 전투를 치러야만 가능한 일이 되었으며, 남편이라는 것, 합리적, 이성적 능력이라는 것도 겉 껍데기만 남게 된 것이 마치 경건의 모양만 있고, 능력은 없는 것과 같게 되었다. 모든 질서와 수칙은 천적, 영적 출발점을 따르므로, 이 상황에서도 참된 결혼의 법칙은 아내는 남편을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다. 비록 아내는 자기 본성을 따르고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려 하고, 남편은 예전과 달리 덜 합리적이고, 덜 이성적이 되었지만...

 

 

261. 지금 여자는 교회를 말하는데 특히 프로프리움(proprium, 固有本性, 자아, own, self-dependence)을 사랑했던 교회를 말합니다.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는 전투(combat), 갈등(conflict), 그로 인한 불안, 염려를, ‘임신은 모든 생각을,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는 그녀가 그렇게, 곧 이런 상태에서 낳게 될 진리를, ‘남편은 여기서도 앞서 살핀 대로, 교회가 복종하게 될, 그리고 교회를 다스리게 될 래셔널(the rational, 합리적, 이성적 능력)을 상징합니다. By the “woman” is now signified the church as to proprium, which it loved; by “greatly multiplying her sorrow” is signified combat, and the anxiety it occasions; by “conception,” every thought; by the “sons whom she would bring forth in sorrow,” the truths which she would thus produce; by “man,” here as before, the rational which it will obey, and which will rule.

 

 

262. 앞서 지금까지 보여드린 여자가 교회를 상징한다면, 여기 나오는 여자는 본성(own), 곧 자치(自治), 주님한테서 독립하려는(self-dependence) 태도로 인해 왜곡된 교회입니다. 그 이유는, 지금 다루고 있는 내용이, 태고교회의 왜곡된(perverted), 망가진(had become corrupt) 후손들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That the church is signified by the “woman” has been previously shown, but here the church perverted by the own which was itself formerly signified by the “woman,” because the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had become perverted, is now treated of.

 

※ ‘the own which was itself formerly’(전에는 그 자체였던 본성), 즉 처음, 곧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창2:23) 하던 천적 인간 시절에는 순수하게 인간의 본성을 가리키던 ‘여자’(교회)가 지금은 ‘망가진 교회’를 가리키고 있다는 말입니다.

 

 

263. 그러므로 사람의 감각 파트가 자신을 외면하거나 비난하게 되면 악한 영들은 강력하게 싸움을 시작하는 반면, 수행 천사들은 애를 먹기 시작하는 것이며, 그래서 이 전투를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즉 진리를 품고, 생산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When therefore the sensuous part averts itself or curses itself, the consequence is that evil spirits begin to fight powerfully, and the attendant angels to labor, and therefore this combat is described by the words, “I will greatly multiply thy sorrow, in relation to the conception and birth of sons,” that is, as to the thoughts and productions of truth.

 

※ 사람의 감각 파트는 뱀의 손아귀에 넘어갔음에도 불구, 뱀의 말, 즉 감각이 원하는 걸 따르지도 않고, 오히려 금욕적인 삶, 참된 영성에 기초한 금욕적 삶을 살고자 하면, 자기 말 잘 들을 땐 가만히 있던 악한 영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괴롭힌다는 말입니다.

 

※ 이 본문은 실제로 자식 낳는 본문이 아니라 선악과를 범한 후 인간은 진리 편에 서서 살아가기가 실제 영적 전투를 치러야만 가능한,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 되었다는, 그런 본문입니다.

 

 

264. 이 말씀에 나오는 임신과 출산은 영적인 뜻, 임신은 마음에 품은 생각을, ‘자식은 진리를 말하는 것임은 호세아를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e “conception and birth of sons,” in the Word, are taken in a spiritual sense—“conception” for the thought and device of the heart, and “sons” for truths—is evident from Hosea:

 

11에브라임의 영광이 새 같이 날아가리니 해산하는 것이나 아이 배는 것이나 임신하는 것이 없으리라 12혹 그들이 자식을 기를지라도 내가 그 자식을 없이 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떠나는 때에는 그들에게 화가 미치리로다 (호9:11-12) As for Ephraim, their glory shall fly away like a bird, from the birth, and from the womb, and from the conception; though they shall have brought up their sons, yet will I bereave them, that they be not man; yea, woe also to them when I depart from them, (Hos. 9:11–12)

 

여기 에브라임은 지성 혹은 진리에 대한 이해를, 그리고 자식은 진리 자체를 말합니다. where “Ephraim” signifies the intelligent, or the understanding of truth; and “sons,” truths themselves.

 

에브라임’, 곧 처음엔 지성적이었으나 결국 바보가 된, 에브라임이 나오는 데는 말씀 어디든 다 마찬가지라고들 합니다. It is likewise said elsewhere concerning Ephraim, or one who is intelligent, who has become foolish: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그에게 임하리라 그는 지혜 없는 자식이로다 해산할 때가 되어도 그가 나오지 못하느니라 (호13:13) The sorrows of one in travail have come upon him, he is an unwise son, for at the time he will not stand in the breach of the womb of sons. (Hos. 13:13)

 

이사야입니다. And in Isaiah:

 

4시돈이여 너는 부끄러워할지어다 대저 바다 곧 바다의 요새가 말하기를 나는 산고를 겪지 못하였으며 출산하지 못하였으며 청년들을 양육하지도 못하였으며 처녀들을 생육하지도 못하였다 하였음이라 5그 소식이 애굽에 이르면 그들이 두로의 소식으로 말미암아 고통 받으리로다 (사23:4-5) Blush, O Zidon, for the sea hath spoken, the fortress of the sea, saying, I have not travailed, nor brought forth, nor have I brought up young men, nor caused girls to grow up; as at the report concerning Egypt, they shall bring forth according to the report of Tyre, (Isa. 23:4–5)

 

여기 시돈, 신앙에 관한 지식들 가운데 있었으나 기억-지식들을 가지고 자신들을 파괴하여 지금은 척박해진 사람들을 말합니다. where “Zidon” means those who have been in the knowledges of faith, but have destroyed them by memory-knowledges, and so have become barren.

 

[2] 다시 같은 선지서에서 거듭남을 다루면서 여기서도 똑같이 신앙의 진리들이 아이로 상징되고 있습니다. Again in the same prophet, treating of regeneration, and where likewise the truths of faith are signified by “sons”:

 

7시온은 진통을 하기 전에 해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아를 낳았으니 8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냐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한 순간에 태어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하는 즉시 그 아들을 순산하였도다 9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아이를 갖도록 하였은즉 해산하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해산하게 하는 이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 (사66:7-9) Before she travailed she bringeth forth; and before her pain came, she was delivered of a man child; who hath heard such a thing? Who hath seen such things? Shall the earth bring forth in one day, and shall I not cause to bring forth? saith Jehovah; shall I cause to bring forth, and close up? saith thy God. (Isa. 66:7–9)

 

천국 결혼을 통해 잉태되고 태어나는 선들과 진리들을 가리켜, 그래서 아들들이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에서 주님 하신 말씀입니다. Goods and truths, being conceived and born of the heavenly marriage, are therefore called “sons” by the Lord in Matthew:

 

37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마13:37-38) He that soweth the good seed is the son of man; the field is the world and the seed are the sons of the kingdom. (Matt. 13:37–38)

 

구원하는 신앙의 선들과 진리들을 가리켜 주님은 아브라함의 자손’(8:39)이라 하십니다. ‘후손(255번 글에서 다룬 대로) 신앙을 가리키는데, 거기 보면, ‘후손’(seed)에서 나오는 자손’(sons)은 신앙의 선들과 진리들이기 때문입니다. And the goods and truths of a saving faith he calls “sons of Abraham” (John 8:39); for “seed” (as stated n. 255) denotes faith, wherefore “sons,” which are of the “seed,” are the goods and truths of faith.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요8:39)

 

이런 이유로, 그 자신 후손으로서의 주님은 자신을 가리켜 인자’(人子, the Son of man, the Son of Humankind), 즉 교회의 신앙이라 하셨습니다. Hence also the Lord, as being himself the “seed,” called himself the “Son of man,” that is, the faith of the church.

 

 

265. 남편이 래셔널(the rational, 합리적, 이성적 사고능력)을 상징한다는 것이 이 장 6절에 보면 있는데요, 거기에 보면,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 그도 동의했음을 의미합니다. 같은 내용이 158번 글, 아담에 관한 내용을 보아도 분명한데요, 거기 보면, 아담(남자, 사람, vir)은 지혜와 지성을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That by “man” [vir] is signified the rational appears from verse 6 of this chapter, in that the woman gave to her man with her, and he did eat, by which is meant his consent; and the same is also evident from what was said of the man in n. 158, where by him is meant one who is wise and intelligent.

 

하지만 여기 나오는 남편은 래셔널을 말합니다. 선악과, 곧 지식의 나무(the tree of knowledge)를 먹음으로써 지혜와 지성이 파괴되었고, 그 결과, 아무것도 안 남았기 때문이며, 래셔널이라는 것은 외관상 그럴듯하게 지성을 흉내 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Here however “man” denotes the rational, because in consequence of the destruction of wisdom and intelligence by eating of the tree of knowledge, nothing else was left, for the rational is imitative of intelligence, being as it were its semblance.

 

 

266. 모든 법과 수칙(守則, precept)은 참된 출발점인 천적, 영적인 것에서 나오므로, 다음과 같은 사실, 곧 이 결혼의 법칙 또한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이 결혼의 법칙이란, 아내는 자기 고유본성에 속한 걸 원하고, 또 남편처럼 이성적이기 보다는 자기 마음이 원하는 걸 행하기 때문에, 반드시 신중한 남편을 따르며,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법칙입니다. As every law and precept comes forth from what is celestial and spiritual, as from its true beginning, it follows that this law of marriage does so, which requires that the wife, who acts from desire, which is of what is her own, rather than from reason, like the man, should be subject to his pru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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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66권 중에서 속뜻(arcana, 秘義, internal meaning)이 있는 성경을 '말씀'(The Word, 총 34권)이라 하며, 다음과 같습니다.

 

참고로, 속뜻은 오직 주님이 직접 하신 말씀에만 있습니다.

 

구약 : 창, 출, 레, 민, 신, 수, 삿, 삼상, 삼하, 왕상, 왕하, 시,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29권)

 

신약 : 마, 막, 눅, 요, 계 (5권) (AC.10325)

 

서신서들을 비롯, 나머지 성경들(총 32권, 구약 10권, 신약 22권)은 말씀을 환히 비추는 조명의 역할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성경, 곧 구약의 문학서, 가령 룻기, 욥기, 잠언, 전도서 등과 신약의 로마서, 고린도서 등 서신서들에서 어떤 교리를 뽑아내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안전하지 않은 일입니다.

 

참고로, 디모데후서 3장 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에 나오는 ‘성경’은 지금의 신구약 66권 성경을 말하는 게 아니라 바울 당시 ‘구약 성경’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당시 지금 자기가 쓰고 있는 이 편지가 나중에 성경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며, 그가 겸손한 사람이면 지금도 굉장히 무안해하고, 황송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육과 영으로 되어 있듯, 그리고 겉 사람과 속 사람으로 되어 있듯, 말씀 또한 겉뜻과 속뜻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사람의 영이 지상에서 머무르는 동안 필요한 옷이요 그릇이듯, 말씀의 겉뜻 또한 속뜻을 담기 위한 옷이요 그릇입니다.

 

천국에 올라가는 것은 영이듯 말씀 또한 그렇습니다.

 

천사들은 말씀을 속뜻으로 읽습니다.

 

속뜻은 주님의 진심(眞心), 본심(本心)이며,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속뜻으로 읽을 때, 주님과 하나 되는 결합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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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 사제요 아우구스티노회 수사였으면서도 로마 카톨릭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 비텐베르크 대학교회 정문에 95개 논제를 붙임으로써 이후 ‘이신칭의’를 기치로 종교개혁의 물꼬를 튼, 그러나 참 쉽지 않은 삶을 살다 간 마르틴 루터라든지...

 

유대교의 가르침, 곧 모세의 율법을 전혀 자기들 방식, 즉 사두개와 바리새 등의 방식으로 따르지 않고, 하나님 나라, 천국 복음을 오직 신성한 증거와 능력, 권능으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을 것을 가르치시다가 저들이 보기에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만(오, 주님, 이런 참람한 표현을 용서해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이후 그의 제자들의 순교적 삶이라든지...

 

이런 불세출의 위인들까지는 아니더라도 역사의 마이너리티로 오히려 루터, 츠빙글리, 캘빈보다도 더 앞서 오랫동안 참된 신앙 집단으로 살며 순교의 삶을 살다간 많은, 당시 로마 카톨릭 입장에서는 이단들이었던 분들이라든지...

 

이런 분들의 예를 들었다고 무슨 제가 감히 저런 분들의 반열에 든다 말씀드리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아이고, 그 무슨...

 

다만 그 어떤 거대한 흐름과 시대 조류에 함께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포기, 대신 자신의 옳다 여긴 바를 진정성 있게 추구한, 그러나 당연히 그에 따른 시대적 값지불은 개의치 않았다는 점에서 저처럼 개신교 목사로서 스베덴보리를 하는 자 역시 그렇지 않을까 하여 예로 든 것뿐입니다.

 

현 기독교, 그리고 개신교 시대에 개신교 목사가, 아니 꼭 목사,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여도 마찬가지... 중간에 저처럼 스베덴보리를 하게 되면, 아니, 스베덴보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심지어 수도사, 수도원, 성인전 같은 걸 찾기만 해도 일어나는, 제가 경험하고 있는 몇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사랑하는 지인들의 소리소문없는 절교, 단절, 멀리함이요, 혈육 및 가족 역시 영육간 서먹해짐이요...

 

지금은 ‘왜 이런 일이 제게 일어나는지 저는 그 이유를 모르지만. 주님은 아십니다. 주님, 저를 인도해주세요...’ 하며, 그저 모든 걸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섭리 아래 주님의 이노센스만 꼭 붙잡고 가고자 늘 주님의 빛을 구할 뿐입니다.

 

둘째는, 점점 내면이 열림에 따른 내적 시야의 개안(開眼)과 함께, 그렇지 않은 주변의 외적 사고 및 겉 사람 신앙, 감각 및 세속 신앙에 대한 또렷한 인식 등 맑고 밝은 빛 가운데 있다는 확신과 생생해짐, 무엇보다 근원적 평화, 마치 천사처럼 말이지요...

 

셋째는, 기도와 치유, 축사 등의 능력입니다. 영육 간 원리 및 지상과 천국, 인체와 천국 간 상응 원리 등을 알게 되어 그렇게 요란을 떨거나 애를 쓰지 않아도 권능의 삶이 시작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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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14-19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Verse 15,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he shall trample upon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

 

※ 15절 속뜻

 

선악과를 범한 결과, 이제 뱀과 여자, 곧 사람을 주님에게서 돌아서게 하는 모든 악 및 자아 사랑과 교회가 서로 대적하며, 교회 내 모든 부정(不貞)과 주님 사랑이 대적하여 그 결과, 모든 것을 지배하려는 악한 시도가 주님 사랑에 의해 철저히 무산되어 짓밟힐 것이요, 뱀으로 상징된 모든 악한 시도는 사람의 모든 외적, 자연적인 것들 가운데 가장 낮은 것들밖에는 상해를 입히지 못할 것이다.

 

 

250. 모든 사람이 이 구절을 주님의 강림(降臨)에 관한 첫 번째 예언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워딩을 보면 분명 그런 것처럼 보이며, 그래서 이 워딩과, 또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저 유대인들조차 어떤 메시아가 한 분 오시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Everyone is aware that this is the first prophecy of the Lord’s advent into the world; it appears indeed clearly from the words themselves, and therefore from them and from the prophets even the Jews knew that a messiah was to come.

 

그러나 지금까지 ’, ‘여자’, ‘뱀의 후손’, ‘여자의 후손’,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가 특별히 뭘 의미하는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Hitherto however no one has understood what is specifically meant by the “serpent,” the “woman,” the “serpent’s seed,” the “woman’s seed,” the “head of the serpent which was to be trodden upon,” and the “heel which the serpent should bruise.”

 

그러므로 이들이 설명되어야만 합니다. They must therefore be explained.

 

여기서 은 일반적으로 모든 악을, 특별히는 자아 사랑을 의미합니다. ‘여자는 교회를, ‘뱀의 후손은 모든 부정(不貞, infidelity), ‘여자의 후손은 주님 신앙을, ‘는 주님 자신을, ‘뱀의 머리는 일반적으로는 지배적인 악을, 특별히는 지배적인 자아 사랑을, ‘상하게 하다’(trample upon)는 암울함(depression), 배로 다니고 흙을 먹을지니라, ‘발꿈치는 자연적(肉的, the corporeal)으로 가장 낮은 것, 뱀이 상하게’(bruise)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By the “serpent” is here meant all evil in general, and specifically the love of self; by the “woman” is meant the church; by the “seed of the serpent,” all infidelity; by the “seed of the woman,” faith in the Lord; by “he,” the Lord himself; by the “head of the serpent,” the dominion of evil in general, and specifically that of the love of self; by to “trample upon,” depression, so that it should “go upon the belly and eat dust”; and by the “heel,” the lowest natural (as the corporeal), which the serpent should “bruise.”

 

 

251. 을 가리켜 일반적으로 모든 악을, 특별히는 자아 사랑을 의미한다 하는 이유는, 모든 악은 마음속 감각 영역에서, 그리고 처음부터 으로 상징된 기억-지식, 즉 오히려 주님으로부터 돌아서게 하는 지식에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뱀은 모든 종류의 악, 특히 자아 사랑, 또는 같은 건데, 이웃과 주님을 향한 증오를 가리킵니다. The reason why the “serpent” means all evil in general, and specifically the love of self, is that all evil has had its rise from that sensuous part of the mind and also from that memory-knowledge which at first were signified by the “serpent”; and therefore it here denotes evil of every kind, and specifically the love of self, or hatred against the neighbor and the Lord, which is the same thing.

 

이 악이나 증오는 다양하며, 수많은 속(, genera)과 더욱 수많은 종(, species)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말씀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뱀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snakes, 23:33), ‘독사’(cockatrices, 8:17), ‘독사’(asps, 32:33), ‘독사’(adders, 140:3), ‘불뱀’(fiery serpents, 21:6), ‘독사’(vipers, 23:33), 그리고 기타 날으는 뱀’, ‘기는 뱀등인데요, , 곧 증오의 차이에 따른 것입니다. As this evil or hatred was various, consisting of numerous genera and still more numerous species, it is described in the Word by various kinds of serpents, as “snakes,” “cockatrices,” “asps,” “adders,” “fiery serpents,” “serpents that fly” and “that creep,” and “vipers,” according to the differences of the poison, which is hatred.

 

그래서 이사야에 보면은 Thus we read in Isaiah:

 

블레셋 온 땅이여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의 열매는 날아다니는 불뱀이 되리라 (사14:29) Rejoice not thou, whole Philistia, because the rod which smiteth thee is broken, for out of the serpent’s root shall go forth a cockatrice, and his fruit shall be a flying fire serpent. (Isa. 14:29)

 

뱀의 뿌리는 감각 및 기억-지식하고 연결된, 오히려 주님을 향해 등을 돌리게 하는 지식과 연결된 마음의 영역이나 원리를, ‘독사는 거짓의 유래가 된 악을, ‘날아다니는 불뱀은 자아 사랑에서 나오는 탐욕을 각각 가리킵니다. The “serpent’s root” denotes that part of the mind, or that principle, which is connected with the senses and with memoryknowledge; the “cockatrice” denotes evil originating in the falsity thence derived; and the “flying fire serpent,” the cupidity that comes from the love of self.

 

유사한 내용이 같은 선지서 또 다른 곳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됩니다. By the same prophet also similar things are elsewhere thus described: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사59:5) They hatch cockatrice’s eggs, and weave the spider’s web; he that eateth of their eggs dieth, and when it is crushed there cometh out a viper. (Isa. 59:5)

 

여기 창세기에 나오는 뱀을 계시록에서는 큰 붉은 용’, ‘옛 뱀’, ‘마귀, 사탄’, ‘온 천하를 꾀는 자’(12:3, 9; 20:2)라 하고 있는데요, 또 다른 구절들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여기 나오는 마귀는 그 무슨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특별한 마귀를 말하는 게 아니라, 악한 영들의 무리 전체를, 그리고 악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The serpent described here in Genesis is called in the Revelation the “great and red dragon,” and the “old serpent,” and also the “devil and satan,” that “deceives the whole world” (12:3, 9; 20:2), where, and also in other places, by the “devil” is not meant any particular devil who is prince over the others, but the whole crew of evil spirits, and evil itself.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계12:3)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계12:9)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계20:2)

 

 

252. 여자가 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은 위 천국 결혼을 다룬 155번 글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That by the “woman” is meant the church, is evident from what was said above (n. 155) concerning the heavenly marriage.

 

천국이, 결과적으로는 교회가 주님과 본성(own)에 있어 하나가 되는 것, 이런 것이 바로 천국 결혼의 본질인데요, 이때 천국과 교회, 주님도 각자 자기 본성 안에 있는 만큼 하나가 되는 그런 하나 됨입니다. 본성 없이는 하나 됨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Such is the nature of the heavenly marriage, that heaven, and consequently the church, is united to the Lord by its own, insomuch that these are in their own, for without their own there can be no union.

 

주님이 자비로(in mercy) 이노센스와 평화, 그리고 선을 이 본성 안으로 스며들게 하실 때, 이 본성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여전히 유지하면서도, 가장 천국적이며 행복한 상태가 됩니다. (164번 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When the Lord in mercy instills innocence, peace, and good into this own, it still retains its identity, but becomes heavenly and most happy (as may be seen at n. 164).

 

주님으로 말미암은 천국적이고 천사적인 본성의 퀄리티와, 자아(self) 때문에 지옥적이고 악마적으로 변해버린 본성의 퀄러티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The quality of a heavenly and angelic own from the Lord, and the quality of an own, which, because from self, is infernal and diabolical, cannot be told.

 

그 차이는 천국과 지옥 같은 차이입니다. The difference is like that between heaven and hell.

 

 

253. 교회를 일컬어 여자’, ‘아내’, ‘신부’, ‘처녀이라 하는 것은 교회가 가지는 일종의 천국적, 천사적 본성에 의한 것입니다. It is by virtue of a heavenly and angelic own that the church is called a “woman,” and also a “wife,” a “bride,” a “virgin,” and a “daughter.”

 

계시록에서는 교회를 가리켜 여자라 하는데요, She is called a “woman” in Revelation:

 

1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4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 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13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계12:1, 4-5, 13) A woman clothed with the sun, and the moon under her feet, and upon her head a crown of twelve stars. And the dragon persecuted the woman who brought forth the man child. (Rev. 12:1, 4–5, 13)

 

이 구절에서 여자는 교회를, ‘는 사랑을, ‘은 신앙을, ‘별들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신앙의 진리들을 의미하는데, 이 모두가 악한 영들이 아주 극도로 증오하며 박해하는 것들입니다. In this passage by a “woman” is meant the church; by the “sun,” love; by the “moon,” faith; by “stars,” as before, the truths of faith, all of which evil spirits hate, and persecute to the utmost.

 

이사야에서도 교회를 일컬어 여자라고도 하고, ‘아내라고도 합니다. The church is called a “woman,” and also a “wife,” in Isaiah:

 

5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6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사54:5-6) Thy maker is thy husband, Jehovah of armies is his name, and thy redeemer the holy one of Israel, the God of the whole earth is he called; for as a woman forsaken and afflicted in spirit hath Jehovah called thee, and as a wife of youth [adolescentiarum], (Isa. 54:5–6)

 

지으신 이를 또한 남편이라고도 하는데요, 그 이유는 그 본성과 하나 되었기 때문입니다. ‘버림받은 여자’, ‘어린 아내는 특별히 고대교회와 태고교회를 상징합니다. where the “maker” is called also the “husband,” because united to the own; and a “woman forsaken” and a “wife of youth” signify specifically the ancient and most ancient churches.

 

마찬가지로 말라기에서도 Likewise in Malachi: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말2:14) Jehovah hath borne witness between thee and the wife of thy youth. (Mal. 2:14)

 

계시록에서도 이 여자를 아내라고도 하고, ‘신부라고도 합니다. She is called a “wife” and a “bride” in the Revelation: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9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계21:2, 9) I saw the holy city new Jerusalem coming down from God out of heaven, prepared as a bride adorned for her husband: come hither, I will show thee the bride, the lamb’s wife. (Rev. 21:2, 9)

 

여러 선지서들에서는 교회를 처녀로도, ‘로도 부르고 있습니다. The church is called a “virgin” and a “daughter” throughout the prophets.

 

 

254. 네 후손’(the seed of the serpent)이 모든 부정(不貞, infidelity)을 의미한다는 것은, ‘의 상징이 모든 악이라는 점과, ‘라는 것이 생산 관련, 또는 출산과 관련되는 것이라는 점, 그리고 여기서는 그 대상이 교회이기 때문에, ‘네 후손은 교회의 부정을 가리킴이 분명합니다. That by the “seed of the serpent” is meant all infidelity,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a “serpent,” as being all evil; “seed” is that which produces and is produced, or that which begets and is begotten; and as the church is here spoken of, this is infidelity.

 

왜곡된 상태의 유대교회를 일컬어 이사야에서는 행악의 종자’, ‘간음자와 음녀의 자식들’, ‘거짓의 후손이라 하고 있습니다. In Isaiah, in reference to the Jewish church in its perverted state, it is called a “seed of evil doers,” a “seed of adultery,” a “seed of falsehood”: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사1:4) Woe to the sinful nation, a people laden with iniquity, a seed of evil doers, sons that are destroyers; they have forsaken Jehovah, they have provoked the holy one of Israel, they have estranged themselves backward. (Isa. 1:4)

 

3무당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자식들아 너희는 가까이 오라 4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누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미느냐 너희는 패역의 자식, 거짓의 후손이 아니냐 5너희가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음욕을 피우며 골짜기 가운데 바위 틈에서 자녀를 도살하는도다 (사57:3-5) Draw near hither, ye sons of the sorceress, the seed of the adulterer. Are ye not children of transgression, a seed of falsehood? (Isa. 57:3–5)

 

그리고 다시 거기 루시퍼(Lucifer, 계명성, 12절에 나오는)라 하는 또는 에 대해 말하면서 And again, speaking of the “serpent” or “dragon,” who is there called Lucifer:

 

19오직 너는 자기 무덤에서 내쫓겼으니 가증한 나뭇가지 같고 칼에 찔려 돌구덩이에 떨어진 주검들에 둘러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 20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였고 네 백성을 죽였으므로 그들과 함께 안장되지 못하나니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은 영원히 이름이 불려지지 아니하리로다 할지니라 (사14:19-20) Thou art cast out of thy sepulcher like an abominable shoot, because thou hast corrupted thy land, thou hast slain thy people; the seed of evildoers shall not be called to eternity. (Isa. 14:19–20)

 

 

255. 여자의 후손이 주님 신앙(faith in the Lord)을 상징한다는 것은, ‘여자의 상징은 교회라는 점과, 후손은 신앙 말고는 없다는 점을 볼 때 분명합니다. 교회를 교회라 하는 것은 주님 신앙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That the “seed of the woman” signifies faith in the Lord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woman” as being the church, whose “seed” is nothing but faith, for it is from faith in the Lord that the church is called the church.

 

말라기에 보면, 신앙을 경건한 자손’(the seed of God)이라 하고 있습니다. In Malachi, faith is called the “seed of God”:

 

14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15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말2:14-15) Jehovah hath witnessed between thee and the wife of thy youth; and not one hath done so who had a residue of the spirit; and wherefore one, seeking the seed of God? But observe ye in your spirit, lest he deal treacherously against the wife of thy youth. (Mal. 2:14–15)

 

이 구절에서, ‘어려서 맞이한 아내’(the wife of youth)는 고대 및 태고 교회들이며, 후손’(seed, 혹은 신앙)에 대하여 선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In this passage the “wife of youth” is the ancient and most ancient churches, of whose “seed” (or faith) the prophet speaks.

 

이사야 역시, 교회와 관련하여 In Isaiah also, in reference to the church: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사44:3) I will pour waters upon the thirsty, and floods upon the dry [land]; I will pour my spirit upon thy seed, and my blessing upon thine offspring. (Isa. 44:3)

 

계시록에서는 In Revelation: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계12:17) The dragon was wroth with the woman, and went to make war with the remnant of her seed, who were keeping the commandments of God, and have the testimony of Jesus Christ. (Rev. 12:17)

 

그리고 시편에서는 And in David:

 

3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4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29또 그의 후손을 영구하게 하여 그의 왕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 36그의 후손이 장구하고 그의 왕위는 해 같이 내 앞에 항상 있으며 (시89:3-4, 29, 36) I have made a covenant with mine elect, I have sworn unto David my servant, even to eternity will I establish thy seed, and his seed will I make to endure forever, and his throne as the days of the heavens; his seed shall endure to eternity, and his throne as the sun before me, (Ps. 89:3–4, 29, 36)

 

여기서 다윗은 주님을, ‘왕위는 주님의 나라를, ‘는 사랑을, ‘자손은 신앙을 각각 의미합니다. where by “David” is meant the Lord; by “throne,” his kingdom; by the “sun,” love; and by “seed,” faith.

 

 

256. 신앙뿐 아니라 주님 자신도 여자의 후손’(the seed of the woman)이라 하는 이유는, 주님은 홀로 신앙을 주는 분이시며, 그래서 주님이 곧 신앙이시기 때문이고, 또 주님은 사람으로 태어나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기뻐하셨기 때문인데, 다만 이 교회는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의 결과, 아주 끔찍한, 지옥과도 같은 본성으로 완전히 굴러떨어진 그런 교회였는데도 말입니다. 주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는, 주님의 신적 천적 본성과 주님의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주님의 신적 권능으로 결합, 자기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이런 하나 됨이 실현되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피조 세계는 완전히 소멸될 뻔하였습니다. Not only is faith but also the Lord himself is called the “seed of the woman,” both because he alone gives faith, and thus is faith, and because he was pleased to be born, and that into such a church as had altogether fallen into an infernal and diabolical own through the love of self and of the world, in order that by his Divine power he might unite the Divine celestial own with the human own in his human essence, so that in him they might be a one; and unless this union had been effected, the whole world must have utterly perished.

   

※ 주님의 인성이 신적 인성(The Divine Human)이 되셔야만 했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태생적 인성은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악을 유전한 인성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벗고 전혀 새로운 신적 인성이 되셔야만 하셨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내용으로서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 사유로, 주님은 여자의 후손이시고, 그래서 ‘그것’이 아닌, ‘’라 하신 것입니다. Because the Lord is thus the seed of the woman, it is not said “it,” but “he.”

 

 

257. 뱀의 머리가 일반적으로는 악의 지배를, 구체적으로는 자아 사랑의 지배를 의미한다는 것은 그 본성(its nature)에서 나오는데요, 이 본성은 단지 지배를 추구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지상의 모든 걸 지배하고자 하며, 그 정도로는 양이 안 차 계속해서 이번에는 천국의 모든 것을, 더 나아가 급기야 바로 주님까지도! 그러고도 여전히 만족을 모르는, 아주 끔찍한 본성입니다. That by the “head of the serpent” is meant the dominion of evil in general, and specifically of the love of self, is evident from its nature, which is so direful as not only to seek dominion, but even dominion over all things upon earth; nor does it rest satisfied with this, but aspires even to rule over everything in heaven, and then, not content with this, over the Lord himself, and even then it is not satisfied.

   

※ ‘악의 지배’(the dominion of evil)란 악이 지배적 위치에 올라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뜻입니다.

 

자아 사랑의 스파크가 일어나는 곳마다 그 안에는 이런 게 잠재해 있습니다. This is latent in every spark of the love of self.

 

우리가 지각해야 하는 것은, 사후(死後)에 규제가 풀려 하고픈 대로 마음껏 할 수 있게 되면, 이런 본성이 즉시 우리 안에서 거침없이 터져 나오며, 점점 자라나 높은 데를 지향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If it were indulged, and freed from restraint, we should perceive that it would at once burst forth and would grow even to that aspiring height.

   

※ ‘규제가 풀려’(freed from restraint)는 아직 몸 안에서 사는 이 지상 생활에서는 남의 이목과 사회적 도덕과 윤리, 체면 등이 있어 마음대로 못 하지만, 사후 이 몸을 벗고 영이 되면 그때는 사정이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분명한 것은, 이 ‘’, 곧 자아 사랑이라는 이 악은 남을 지배하기를 정말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그리고 이런 거에 휘둘리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하는 사실입니다. Hence it is evident how the “serpent,” or the evil of the love of self, desires to exercise dominion, and how much it hates all those who refuse its sway.

 

이것이 뱀의 머리’, 곧 자신을 높이는 것, 그래서 주께서 상하게’(tramples down) 하시는, 땅바닥으로까지 짓밟히게 하시는 것이며, 그래서 이것이 바로 앞 절에서 기술한 대로, ‘배로 다니며 흙을 먹을지니라인 것입니다. This is that “head of the serpent” which exalts itself, and which the Lord “tramples down,” even to the earth, that it may “go upon its belly, and eat dust,” as stated in the verse immediately preceding.

 

이사야에서는 이를 루시퍼라 부르며, ‘이나 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Thus also is described the “serpent” or “dragon” called “Lucifer” in Isaiah:

 

12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루시퍼 Lucifer)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15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사14:12-15) O Lucifer, thou hast said in thy heart, I will ascend the heavens, I will exalt my throne above the stars of God, and I will sit upon the mount of the congregation, in the sides of the north, I will ascend above the heights of the cloud, I will be made equal to the most high; yet thou shalt be brought down to hell, to the sides of the pit. (Isa. 14:12–15)

 

계시록에서는 이나 이 자기 머리를 어떤 식으로 높이는지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The “serpent” or “dragon” is also described in the Revelation in regard to the way in which he exalts his head:

 

3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dragon)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9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계12:3, 9) A great red dragon, having seven heads, and ten horns, and many diadems upon his heads; but he was cast into the earth. (Rev. 12:3, 9)

 

시편에서는 In David:

 

1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2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6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7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 (시110:1-2, 6-7) The saying of Jehovah to my Lord, Sit thou at my right hand, until I make thine enemies thy footstool: Jehovah shall send the rod of thy strength out of Zion, he shall judge the nations, he hath filled with dead bodies, he hath bruised the head over much land; he shall drink of the brook in the way, therefore shall he lift up the head. (Ps. 110:1–2, 6–7)

 

 

258. 상하게 할 것이요’, 혹은 상하게 할 것이니라가 디프레션(depression, 암담함)을 의미하며, 그 결과, ‘배로 다니며 흙을 먹을지니라가 되게 하려는 것이 지금 분명한 것은, 본 절과 선행절들을 보면 됩니다. That by “trampling on” or “bruising” is meant depression, so as to compel it to “go on the belly and eat the dust,” is now evident from this and the preceding verses.

 

이사야서에서도 이와 같은데요, So likewise in Isaiah:

 

4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5높은 데에 거주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6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 (사26:4-6) Jehovah hath cast down them that dwell on high; the exalted city he will humble it; he will humble it even to the earth; he will prostrate it even to the dust; the foot shall tread it down. (Isa. 26:4–6)

 

2보라 주께 있는 강하고 힘 있는 자가 쏟아지는 우박같이, 파괴하는 광풍같이, 큰물이 넘침같이 손으로 그 면류관을 땅에 던지리니 3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라 (사28:2-3) He shall cast down to the earth with the hand; they shall be trampled on by feet—a crown of pride. (Isa. 28:2–3)

 

 

259. 발꿈치’(the heel)가 가장 낮은 자연적(the lowest natural)이거나 육적(肉的, corporeal)인 걸 의미한다는 것은, 먼저 태곳적 사람들이 사람에게 있는 다양한 것을 어떤 식으로 생각했는지 알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는 건데요, That by the “heel” is meant the lowest natural or corporeal cannot be known unless the way in which the most ancient people considered the various things in man is known.

 

그들은 사람의 천적, 영적인 것을 머리와 얼굴로 언급했습니다. 이들 천적, 영적인 것에서 나오는 체어리티(charity, 이웃 사랑)와 자비는 가슴으로, 자연적인 것은 발로, 더 자연적인 것은 발바닥으로, 가장 자연적이고 육적인 것들을 발꿈치로 언급했습니다. 그들은 그저 그렇게 언급만 한 게 아니라 실제 일상에서도 그렇게 불렀습니다. They referred his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to the head and face; what comes forth from these as charity and mercy, to the chest; natural things, to the feet; lower natural things, to the soles of the feet; and the lowest natural and corporeal things, to the heel; nor did they merely refer to them, but also so called them.

 

사유(思惟, reason)의 가장 낮은 단계, 곧 기억-지식의 경우 또한 그런데, 야곱이 단과 관련하여 예언한 데를 보면 그렇습니다. The lowest things of reason, that is, memory-knowledges, were also meant by what Jacob prophesied concerning Dan:

 

※ ‘사유의 가장 낮은 단계가 기억-지식’인 이유는, 기억-지식(memory-knowledge, 세상 지식, 오감(五感)으로 습득하는 감각적 사실들)은 가장 날 것이요, 거칠고 투박하기 때문입니다. 식재료 식으로 말하면 껍질도 까지 않은, 아직 흙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양파나 부추, 파, 당근, 무, 배추 상태와 같다 할 수 있겠습니다.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창49:17) Dan shall be a serpent upon the way, an adder upon the path, biting the horse’s heels, and his rider falls backward. (Gen. 49:17)

 

시편에서도 Also in David:

 

죄악이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에워싸는 환난의 날을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시49:5) The iniquity of my heels hath compassed me about. (Ps. 49:5)

 

야곱 관련해서도, 같은 식으로 그가 자궁으로부터 나올 때, In like manner by what is related of Jacob, when he came forth from the womb,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창25:26) That his hand laid hold of Esau’s heel, whence he was called Jacob, (Gen. 25:26)

 

야곱이라는 이름은 발꿈치에서 나오는데요, ‘야곱으로 상징되는 유대교회가 발꿈치에 상해를 입혔기 때문입니다. for the name “Jacob” comes from the “heel,” because the Jewish church, signified by “Jacob,” injured the heel.

 

뱀은 그것이 독사의 일종이 아닌 한, 자연적인 것들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것밖에는 상해를 입힐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보다 높은 차원인, 사람 내면의 자연적인 것은 물론, 더욱 그의 영적인 것과 더더욱 천적인 것은 절대 상해를 입힐 수 없습니다. 이런 천적, 영적, 내면의 자연적인 것을 주님은 당사자도 모르게 그의 안에 보존하시고, 보관하시기 때문입니다. A serpent can injure only the lowest natural things, but unless it is a species of viper, not the interior natural things in man, still less his spiritual things, and least of all his celestial things, which the Lord preserves and stores up in man without his knowledge.

 

그렇게 주님이 보관, 간수해 오신 것을 가리켜 말씀에서는 남은 자’(리메인스, remains)라 하고 있습니다. What are thus stored up by the Lord are called in the Word “remains.”

 

뱀이 사람 안 자연적인 것들 가운데 가장 낮은 것을 파괴하되, 홍수 전 사람들한테서는 감각의 원리와 자아 사랑을 가지고, 그리고 유대인들 가운데서는 감각적인 것들, 전통들, 하찮은 것들 및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을 가지고, 오늘날에는 감각과 기억-지식 및 철학에 속한 것들, 그리고 그에 대한 사랑으로 역시, 그리고 여전히 같은 짓을 반복하는 이런, 뱀이 일하는 방식에 대하여 이제부터 쭈욱 들으시게 되는데, 이는 주님의 허락, 곧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The mode in which the serpent destroyed those lowest natural things in the people before the flood, by the sensuous principle and the love of self; and among the Jews, by sensuous things, traditions, trifles, and by the love of self and of the world; and how at this day he has destroyed and continues to destroy them by the things of sense, of memory-knowledge, and of philosophy, and at the same time by the same loves, shall of the Lord’s Divine mercy be told hereafter.

 

 

260.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으로부터 분명한 것은 주님이 그들을 구원하시러 세상에 오심이 그 시대 교회에게 계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From what has been said it is evident that it was revealed to the church of that time that the Lord would come into the world to save them.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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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14-19

 

14절,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Verse 14,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se thou hast done this, thou art cursed above every beast, and above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upon thy belly shalt thou go, and dust shalt thou eat all the days of thy life.

 

※ 14절 속뜻

 

이들 후손은 자신들의 이런 영적 넘어짐의 원인이 바로 자신들에게 있음을, 자신들의 감각 영역을 주님 주신 다른 모든 영역과 애정들보다 더 사랑한 결과임을 지각하였으며, 이로 인해 이제 앞으로 이들, 곧 이들의 감각 영역은 더 이상 천적인 것을 못 보고 대신 육체와 세상에 속한 것으로만 살아가는 역기능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242.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는 그들이 (자기들의 넘어짐의) 원인은 바로 자기들의 감각 영역이었음을 지각했다는 의미입니다. By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is signified that they perceived their sensuous part to be the cause [of their fall].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는 그들의 감각 영역이 스스로를 천적(天的, heavenly)인 것을 거슬러 육체의 일로 돌아서게 했고, 결국 저주를 자초하게 했음을 말합니다. 여기 가축들의 짐승은 앞에서처럼 어펙션(affections, 애정)을 말합니다. The serpent cursed above every beast and above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signifies that their sensuous part averted itself from that which is heavenly, and turned itself to that which is of the body, and thus cursed itself; the “beast,” and the “wild animal of the field” here signify affections, as before.

 

배로 다니고는 이제 더 이상 감각 영역은 천국에 속한 것들을 바라보는 대신 육체와 세상에 속한 것만 내려다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The “serpent going upon its belly” signifies that their sensuous part could no longer look upward to the things of heaven, but only downward, to those of the body and the earth.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는 이제 감각 영역은 육체와 세상에 속한 걸로만 살아가야 하는, 다시 말씀드리면, 지옥처럼 비참한 처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Its “eating dust all the days of its life” signifies that their sensuous part became such that it could not live from anything but that which is of the body and the earth, that is to say, it became infernal.

 

 

243. 천적이었던 태고인들에게 있어서는 몸에 속한 감각적인 것들은 그들의 속 사람에게 순응하고 순종하는 그런 것들이었고, 심지어 그들은 그런 것들에는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In the most ancient celestial men the sensuous things of the body were of such a character as to be compliant and subservient to their internal man, and beyond this they did not care for them.

   

※ 원래 이런 게 주님의 질서고, 몸, 감각 등 겉의 것들의 순기능이지요.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감각에 속한 것들을 속 사람보다 우선했고, 그 결과 그것들은 분리가 되더니 육체가 되었으며, 그렇게 해서 저주 아래 놓이게 된 것입니다. But after they had begun to love themselves, they set the things of sense before the internal man, and therefore those things were separated, became corporeal, and so were condemned.

 

 

24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는 앞서 밝힌 대로, 자신들의 넘어짐의 원인이 바로 자신들의 감각 영역에 있음을 그들이 지각했다는 의미로, 여기에 대해서는 뭐, 더 설명할 게 없지 싶습니다. Having before shown that by “Jehovah God speaking to the serpent” is signified their perceiving the sensuous part to be the cause of their fall, no more need be said in regard to these words.

 

 

245.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는 그들의 감각 영역이 스스로를 천적인 것을 거슬러 육체의 일로 돌아서게 했고, 결국 저주를 자초하게 했다는 의미임은 말씀의 속뜻을 보면 명료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That “he said to the serpent, thou art cursed above every beast, and above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signifies that the sensuous part averted itself from that which is heavenly, turned itself to that which is of the body, and thus cursed itself, may be clearly shown from 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

 

여호와 하나님 또는 주님은 결코 누구를 저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Jehovah God or the Lord never curses anyone.

 

그는 절대로 누구에게 화를 내시거나, 절대로 누구를 시험하시거나, 절대로 누구를 벌하시거나, 절대로 절대로 누구를 저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He is never angry with anyone, never leads anyone into temptation, never punishes anyone, and still less does he curse anyone.

 

이 모든 것은 지옥의 무리들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결코 무슨 자비나 평화, 선한 의도에서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All this is done by the infernal crew, for such things can never proceed from the fountain of mercy, peace, and goodness.

 

이 말씀을 비롯 성경의 여러 다른 데들에서 위와 같은 표현들, 곧 여호와 하나님이 얼굴을 돌리시고, 화를 내시며, 벌하시고, 시험하신다, 뿐만 아니라 죽이시고, 심지어 저주하신다 하는 표현들이 있는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온 우주 안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모든 것을 정하시는, 심지어 악 자체는 물론, 형벌, 시험들까지도 모두 다 다스리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심을 믿을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리고 그들이 이런 가장 일반적인 걸 받아들여, 주님이 어떻게 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역사하시는지, 형벌이나 시험 같은 악을 돌이켜 선이 되게 하시는지글 보고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The reason of its being said, both here and in other parts of the Word, that Jehovah God not only turns away his face, is angry, punishes, and tempts, but also kills and even curses, is that men may believe that the Lord governs and disposes all and every thing in the universe, even evil itself, punishments, and temptations; and when they have received this most general idea, may afterwards learn how he governs and disposes all things by turning the evil of punishment and of temptation into good.

 

말씀을 가르칠 때와 배울 때, 이런 가장 보편적인 진리들이 반드시 가장 먼저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문자의 뜻, 말씀의 겉뜻에 이런 것들, 이런 표현들이 가득한 것입니다. In teaching and learning the Word, the most general truths must come first; and therefore the literal sense is full of such things.

 

 

246. 가축과 들의 짐승이 어펙션을 말한다는 건 앞서 그걸 다룬 글들인 45, 46번 글들과, 거기 주님의 허락으로 추가된 시편의 다음 구절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e “beast and the wild animal of the field” signify affections is evident from what was previously said concerning them (n. 45–46), to which it is permitted to add the following passage from David:

 

9하나님이여 주께서 흡족한 비를 보내사 주의 기업이 곤핍할 때에 주께서 그것을 견고하게 하셨고 10주의 회중을 그 가운데에 살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 (시68:9-10) Thou, O God, dost send the rain of thy kindnesses; thou confirmest thy laboring inheritance; thy wild animal shall dwell therein, (Ps. 68:9–10)

 

여기서도 주의 회중’(wild animal)은 선한 애정을 가리킵니다. ‘그 가운데에 살게 하셨나이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where also “wild animal” denotes the affection of good, because it is said that it shall “dwell in the inheritance of God.

 

창세기 124, 25절에서는 가축과 땅(the earth)의 짐승이라 하신 반면, 여기와 또 창세기 219, 20절에서는 가축과 들(the field)의 짐승으로 언급하시는 이유는, 이들 구절은 교회 혹은 거듭난 사람을 다루고 있는 반면, 창세기 1장은 아직은 교회가 아닌, 혹은 이제 막 거듭남의 과정을 시작하려는 사람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the field)이라는 말은 교회, 혹은 거듭남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The reason why here, and also in chapter 2:19–20, the “beast and the wild animal of the field” are mentioned, while in chapter 1:24–25, the “beast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re named, is that the present passage treats of the church or regenerated man, whereas the first chapter related to what was as yet not a church, or to man about to become regenerate; for the word “field” is applied to the church, or to the regenerate.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20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창2:19-20)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1:24-25)

 

 

247. 배로 다니고가 이제 더 이상 감각 영역은 천국에 속한 것들을 바라보는 대신 육체와 세상에 속한 것만 내려다보게 되었다는 말임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분명한데요, 고대에는 ’(the belly)의 상징이 그런 것이었다는 것, 그건 배가 땅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었고, ‘가슴하면 땅 위, ‘머리하면 가장 높은 곳을 각각 가리켰다는 사실입니다. That the “serpent going on his belly” denotes that their sensuous part could no longer look upward to the things of heaven, but only downward to those of the body and the earth,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in ancient times by the “belly” such things are signified as are nearest to the earth; by the “chest” such as are above the earth; and by the “head,” what is highest.

 

여기서 언급 중인 것은, 감각 영역은 그 자체로 사람의 본성 중 가장 낮은 영역으로서, ‘배로 다녔다하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것을 향해 돌아섰기 때문입니다. It is here said that the sensuous part, which in itself is the lowest part of man’s nature, “went upon its belly,” because it turned to what is earthly.

 

그 배가 땅에 착 달라붙음, 그 얼굴에 진토가 날라와 덕지덕지 묻음 등 이런 유사한 상징이 유대교회에도 있었는데요, The depression of the belly even to the earth, and the sprinkling of dust on the head, had a similar signification in the Jewish church.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음 표현을 시편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Thus we read in David:

 

24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25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26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시44:24-26) Wherefore hidest thou thy faces, and forgettest our misery and our oppression? For our soul is bowed down to the dust, and our belly cleaveth to the earth. Arise, a help for us, and redeem us for thy mercy’s sake, (Ps. 44:24–26)

 

여기서도 보면 분명히 사람이 여호와의 얼굴을 외면하여 등 돌리는 것을 가리켜, ‘그의 배가 땅 먼지에 착 달라붙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where also it is evident that when man averts himself from the face of Jehovah, he “cleaves by his belly to the dust and to the earth.

 

요나서에도 보면 큰 물고기의 ’, 요나가 그리로 던져졌지요. 마찬가지로 땅에 속한 낮은 영역들, 세속의 일들을 상징합니다. 아래 그의 예언을 보시면 분명합니다. In Jonah likewise, by the “belly” of the great fish, into which he was cast, are signified the lower parts of the earth, as is evident from his prophecy: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욘2:2) Out of the belly of hell cried I, and thou heardest my voice, (Jonah 2:2)

 

여기 스올’(hell)은 낮은 땅, 곧 지옥을 가리킵니다. where “hell” denotes the lower earth.

 

 

248. 그래서 만일 사람이 하늘에 속한 일들을 생각하면 그를 가리켜 똑바로 서서 걷다’, ‘위를 보다’, ‘앞으로 나아가다라고 합니다. 다 같은 의미이지요. 반대로 그가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일들을 생각하면 그때는 엎드려 배로 다니다’, ‘아래를 보다’, ‘뒤로 물러가다라고 합니다. And therefore when man had regard to heavenly things, he was said to “walk erect,” and to “look upward,” or “forward,” which means the same; but when he had regard to corporeal and earthly things, he was said to be “bowed to the earth,” and to “look downward” or “backward.

 

레위기입니다. As in Leviticus: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그들에게 종된 것을 면하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내가 너희의 멍에의 빗장을 부수고 너희를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 (레26:13) I am Jehovah your God, who brought you forth out of the land of Egypt, that ye should not be their bondmen; and I have broken the bonds of your yoke, and made you to go erect. (Lev. 26:13)

 

미가서에도 In Micah: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족속에게 재앙을 계획하나니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또한 교만하게 다니지 못할 것이라 이는 재앙의 때임이라 하셨느니라 (미2:3) Ye shall not thence remove your necks, neither shall ye go erect. (Micah 2:3)

 

예레미야서에도 In Jeremiah:

 

8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 조소거리가 되었으니 전에 그에게 영광을 돌리던 모든 사람이 그의 벗었음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그는 탄식하며 물러가는도다 13높은 곳에서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시고 내 발 앞에 그물을 치사 나로 물러가게 하셨음이여 종일토록 나를 피곤하게 하여 황폐하게 하셨도다 (애1:8, 13) Jerusalem hath sinned a sin, therefore they despise her, because they have seen her nakedness; yea, she groaned and hath turned backward. From on high hath he sent fire into my bones, and hath made me to return backward; he hath made me desolate. (Lam. 1:8, 13)

 

그리고 이사야서에서도 And in Isaiah:

 

24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25헛된 말을 하는 자들의 징표를 폐하며 점치는 자들을 미치게 하며 지혜로운 자들을 물리쳐 그들의 지식을 어리석게 하며 (사44:24-25) Jehovah thy redeemer, that turneth wise men backward, and maketh foolish their knowledge. (Isa. 44:24–25)

 

 

249.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가 이제 감각 영역은 육체와 세상에 속한 걸로만 살아가야 하는, 다시 말씀드리면, 지옥처럼 비참한 처지가 되었다는 말임은 말씀에 나오는 ’(dust)의 상징을 보면 또한 분명합니다. 미가서입니다. That to “eat dust all the days of its life” signifies that their sensuous part became such that it could not live from anything except that which is of the body and the earth, that is to say, that it became infernal, is evident also from the signification of “dust” in the Word; as in Micah:

 

14원하건대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주하는 주의 기업의 양 떼를 먹이시되 그들을 옛날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옵소서 16이르되 여러 나라가 보고 자기의 세력을 부끄러워하여 손으로 그 입을 막을 것이요 귀는 막힐 것이며 17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리이다 (미7:14, 16-17) Feed thy people as in the days of eternity. The nations shall see and shall blush at all their might; they shall lick the dust like a serpent, they shall be shaken out of their holds like creeping things [serpentes] of the earth. (Micah 7:14, 16–17)

 

옛날같이는 태고교회를 의미합니다. ‘여러 나라는 자기 본성(own), 자아를 의뢰하는 자들로, ‘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로 묘사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The “days of eternity” mean the most ancient church; the “nations,” those who trust in their own, of whom it is predicated that “they shall lick the dust like a serpent.

 

시편에도 In David:

 

광야에 사는 자는 그 앞에 굽히며 그의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며 (시72:9) Barbarians shall bow themselves before God, and his enemies shall lick the dust. (Ps. 72:9)

 

광야에 사는 자원수들은 오직 땅과 세상에 속한 것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Barbarians” and “enemies” are those who regard only earthly and worldly things.

 

이사야입니다. In Isaiah: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사65:25) Dust shall be the serpent’s bread. (Isa. 65:25)

 

’(dust, 아래 마10:14에서는 먼지로 번역)이 영적 천적인 하늘의 일 대신 오로지 육의 일, 땅의 일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가리키기 때문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마10:14)

 

하신 것입니다. As “dust” signifies those who do not regard spiritual and celestial things, but only what is corporeal and earthly, therefore the Lord enjoined his disciples that if the city or house into which they entered was not worthy, they should “shake off the dust of their feet” (Matt. 10:14).

 

(‘먼지’가 선고, 지옥 등과 관련된 것을 상징한다는 사실은 19절에서 더 깊이 볼 것입니다.) (That “dust” signifies what is condemned and infernal, will be further shown at verse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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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14-19

 

1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se thou hast done this, thou art cursed above every beast, and above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upon thy belly shalt thou go, and dust shalt thou eat all the days of thy life.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he shall trample upon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 16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And unto the woman he said, I will greatly multiply thy sorrow and thy conception; in sorrow thou shalt bring forth sons, and thine obedience shall be to thy man [vir], and he shall rule over thee. 17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And unto the man he said, Because thou hast hearkened unto the voice of thy wife, and hast eaten of the tree of which I commanded thee, saying, Thou shalt not eat of it; cursed is the ground for thy sake; in great sorrow shalt thou eat of it all the days of thy life. 18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And the thorn and the thistle shall it bring forth unto thee, and thou shalt eat the herb of the field. 19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In the sweat of thy face shalt thou eat bread, till thou return unto the ground; for out of it wast thou taken; for dust thou art, and unto dust shalt thou return.

 

개요

 

234. 홍수로 이어지는 교회의 후속 상태가 여기 기술되고 있습니다. 그 당시 교회는 자신을 철저히 파괴했기 때문에,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예언이 주어집니다. The subsequent state of the church down to the flood is here described; and as at that time the church utterly destroyed itself, it is foretold that the Lord would come into the world and save the human race.

 

 

235. 감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거 믿는 걸 꺼림으로써 감각은, 이게 인데, 자신을 저주했고, 끔찍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14) Being unwilling to believe anything that could not be apprehended by the senses, the sensuous part which is the “serpent” cursed itself, and became infernal. (verse 14)

 

 

236. 이런 이유로 온 인류가 지옥을 향해 달려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 주님은 세상에 오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15) Therefore to prevent all mankind from rushing into hell, the Lord promised that he would come into the world. (verse 15)

 

 

237. 교회가 여자라는 표현으로 더 깊이 설명되고 있는데요, 이 교회는 자아 혹은 본성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더 이상 진리를 파악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비록 통제할수 있도록 이성(理性, 合理, a rational)이 그들에게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16) The church is further described by the “woman,” which so loved self or the own as to be no longer capable of apprehending truth, although a rational was given them that should “rule”. (verse 16)

 

 

238. 다음은 합리적 능력의 어떠함에 관한 설명입니다. 여기 보면, 이 합리적 능력은 자아, 본성에 동의, 저주를 자초하더니 결국 끔찍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건강한 이성이라고는 할 수 없고 대신 삐딱선을 타는, 이성 흉내만 내는 게 된 것입니다. (17) The quality of the rational is then described, in that it consented, and thus cursed itself, and became infernal, so that reason no longer remained, but ratiocination. (verse 17)

 

※ 지금 검수완박 등으로 미쳐 돌아가는 저 며칠 안 남은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등 좌파들을 보면 확 와닿습니다.

 

 

239. 저주와 황폐함, 그리고 정처 없이 떠돌게 된 그들의 본성에 관한 설명입니다. (18) The curse and vastation are described, and also their ferine nature. (verse 18)

 

 

240. 다음은 신앙과 사랑의 모든 것을 그들이 아주 극도로 싫어하고 혐오하는 그런 사람이 됨으로써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19) Next, their aversion to everything of faith and love; and that thus from being man they became not men. (verse 19)

 

배경

 

241. 태고인들은 천적(天的, celestial)이어서 땅 위 온 세상 만물을 육안으로 보면서도 속으로는 그 사물이 가리키는 천국 신성한 것을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The most ancient people, being celestial men, were so constituted that every object they beheld in the world or upon the face of the earth, they indeed saw, but they thought about the heavenly and Divine things the objects signified or represented.

   

※ 즉 상응(相應, correspondence) 능력으로 살던 사람들이었다는 말입니다.

 

※ 이렇게 상응의 사람들이 되면 일단 세상에서 추구하던 일체의 세속적인 것들에서 한발 물러나게 됩니다. 즉, 무슨 세상 지위를 탐하거나, 무슨 세상 것을 누리려 하거나 소유하려 하는 일체의 노력들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됩니다. 대신 그것들의 쓰임새에만 집중합니다. 주님이 세상에서 나의 지위를 높이셔도, 또 무슨 누림이나 소유를 많게 하셔도 오직 그 쓰임새만 생각합니다. ‘왜 나를 이 자리에 오르게 하셨을까?’, ‘왜 내가 이런 대접을 받게 하실까?’, ‘왜 내게 이런 재산과 명예를 허락하실까?’ 등 말이죠. 천사들이 이렇거든요! ^^

 

그들이 시력은 그저 도구 역할이었을 뿐, 그들이 뭘 보았는지는 그들의 말로 알 수 있었습니다. Their sight was merely an instrumental agency, and so consequently was their speech.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런 걸 알 수 있는데요, 만일 누가 어떤 사람이 하는 말에 깊이 동의가 되면, 그는 실제로 그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마치 말 자체보다는 말에 담긴 의미만 건지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좀 더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심지어 그 말의 의미보다 더 보편적인 의미에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Anyone may know how this was from his own experience, for if he attends closely to the meaning of a speaker’s words, he does indeed hear the words, but is as if he did not hear them, taking in only the sense; and one who thinks more deeply does not attend even to the sense of the words, but to a more universal sense.

 

그러나 지금 이 후손들은 그들의 선조들하고는 달랐습니다. 이들 역시 땅 위 온 세상 만물을 육안으로 보았지만 선조들과 달리 이들은 마치 사랑하듯 보았고, 마음과 생각이 거기에 사로잡혔으며, 천국 신성한 것조차 자기들이 지금 육안으로 보고 있는 걸 가지고 생각했습니다. But the posterities that are here treated of were not like their fathers, for when they beheld the objects in the world and on the face of the earth, as they loved them, their minds cleaved to them, and they thought about them, and from them about things heavenly and Divine.

   

※ 즉 천국에 대한 걸 세상 것을 가지고 유추하는 것이지요. 가령,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왕 같은 제사장이라 했으니 천국 가면 아랫사람들을 많이 두고 마음껏 누리는 삶을 살겠네 ^^’, ‘천국은 날마다 잔치하는 곳이라 했으니 날마다 큰 연회 베풀어 가장 기름진 음식들을 배불리 먹을 수 있겠네 ^^’, ‘천국 길은 황금길이요, 집은 보석 집이라 했으니 황금을 비롯, 각종 보석 등 나는 큰 부자가 되겠네 ^^’ 등 천국을 무슨 세속의 확장 정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들에게는 감각적인 것이 원리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선조들에게는 한낱 도구였던 것들이 말입니다. Thus with them what is sensuous began to be the principal, and not as with their fathers the instrumental.

 

이처럼 세상에 속한 것, 땅에 속한 것이 원리가 되면, 사람들은 하늘에 속한 걸 이걸로 유추하며, 그런 식으로 눈이 머는 것입니다. And when that which is of the world and of the earth becomes the principal, then men reason from this about the things of heaven, and so blind themselves.

 

어떻게 이런 일이!하는 것 역시 각자의 경험을 보면 알 수 있는데요,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서 정작 그 말의 의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 말에서 건지는 게 거의 없고, 더 나아가 보편적인 의미는 더 말할 것도 없으며, 때로는 그 사람이 하는 모든 말을 단어 하나 가지고, 심지어 어떤 문법적 특이점을 가지고 일일이 판단, 거의 시비를 걸기 때문입니다. How this is may also be known by anyone from his own experience; for he who attends to the words of a speaker, and not to the sense of the words, takes in but little of the sense, and still less of the universal import of the sense, and sometimes judges of all that a man says from a single word, or even from a grammatical peculiarity.

 

※ 이 역시 스베덴보리의 경험에서 나오는 멘트인 것 같습니다. 그가 주님의 허락을 받아 처음 세상에 이런 천국 아케이나를 전하기 시작했을 때, 공공장소에서 그는 이런 심한 모욕을 자주 당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사례를 미리 읽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공연히는 삼가고 대신 사적 SNS로 신중하게 나누기는 하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바로는 ‘저런... 참 괜찮은 목사님이 어쩌다 저런 듣도 보도 못한 이단에 빠지셨을까... 쯪쯧’ 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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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1-13

 

11-13절,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Verses 11-13, And he said, Who told thee that thou wast naked? Hast thou eaten of the tree whereof I commanded thee that thou shouldest not eat? And the man said, The woman whom thou gavest to be with me, she gave me of the tree, and I did eat.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woman, Why hast thou done this? And the woman said, The serpent beguiled me, and I did eat.

 

※ 11-13절 속뜻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과 ‘여자’하고는 말씀하시지만 ‘’하고는 하지 않으십니다. 사실 ‘’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으로 표현된 인간의 이성, 정확히는 천적 인간의 네 번째 후손들의 이성과 ‘여자’로 표현된 인간의 자아, 마찬가지로 천적 인간의 네 번째 후손들의 자아는 자기들이 미혹되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이들은 주님 신앙에 관한 것들을 자기들이 직접 확인하기를 원했습니다. 이미 자기 사랑의 사람들로 기울었기 때문입니다.

 

 

229. 이 구절들이 의미하는 바는 앞서 설명되어온 내용으로 분명한데요, , 인간의 합리적, 이성적인 면이 자아, 본성으로 말미암아 속아 넘어가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아는 자신에게 무척 소중해서, 이걸 자아 사랑이라고 하는데, 그는 자기가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거 말고는 더이상 아무것도 안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The signification of these words is evident from what has been explained before, namely, that the rational of man suffered itself to be deceived by its own, because this was dear to him (that is, by the love of self), so that he believed nothing but what he could see and feel.

 

모두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여호와 하나님은 뱀하고는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 실제로 뱀이라는 건 존재하지도, ‘으로 상징된 감각적인 걸 특정하시지도 않으셨다는 것이며, 대신 이 구절들에는 어떤 다른 의미가 들어 있는데 그것은 자신들이 이들 감각으로 인해 속았음을 지각했다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자아 사랑의 결과, 그들은 주님과 주님 신앙에 관해 들어온 것들의 사실 여부를 자기들이 믿기 전에 먼저 좀 확인할 수 있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Everyone can see that Jehovah God did not speak to a serpent, and indeed that there was no serpent, neither did he address the sensuous part that is signified by the “serpent”; but that these words involve a different meaning, namely, that they perceived themselves to be deluded by the senses, and yet, in consequence of self-love, were desirous of ascertaining the truth of what they had heard concerning the Lord, and concerning faith in him, before they believed it.

 

 

230. 이들 네 번째 후손의 지배적인 악은 자아 사랑이었으며, 동시에 세상 사랑은 오늘날만큼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생활권이 그들 소유의 가정과 권속들 내였기 때문이며,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열망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The ruling evil of this posterity was the love of self, without their having at the same time so much of the love of the world as exists at the present day; for they dwelt within their own households and families, and had no desire to accumulate wealth.

 

 

231. 홍수 전 있었던 태고교회의 악, 뿐만 아니라 홍수 후인 고대교회의 악, 그리고 또 유대교회의 악, 계속해서 새 교회나 주님 오신 후 시작된 이방교회의 악, 그리고 오늘날 현 교회의 악까지, 이 모든 악은 주님이나 주님의 말씀 대신 자신과 자신의 감각을 믿은, 그리고 지금도 믿고 있는 것입니다. The evil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existed before the flood, as well as that of the ancient church after the flood, and also that of the Jewish church, and subsequently the evil of the new church, or church of the Gentiles, after the coming of the Lord, and also that of the church of the present day, was and is that they do not believe the Lord or the Word, but themselves and their own senses.

 

※ 이 모든 일이 ‘하나의 악’(A single evil)으로 일어났습니다.

 

이런 이유로 지금은 신앙이 없으며, 신앙이 없는 곳에 이웃 사랑도 없고,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거짓이요 악이 되었습니다. Hence there is no faith, and where there is no faith there is no love of the neighbor, consequently all is false and evil.

 

※ 즉 거짓과 악으로 인도되는 상황(a situation that leads to all falsity and evil)이라는 말입니다.

 

 

232. 오늘날은 그러나 이전 시대에 비해 훨씬 더 상황이 악화되었습니다. 고대인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과학 지식을 포함, 여러 학문 관련 지식들 때문에 사람들이 이제는 감각마저 불신하게 된 건데요, 이로 인해 형언할 수 없는 어두움이 시작되었습니다. At this day, however, it is much worse than in former times, because men can now confirm the incredulity of the senses by memory-knowledges unknown to the ancients, and this has given birth to an indescribable degree of darkness.

 

과학 혁명의 토대가 되어 중세와 근대를 이어주게 된 소위 르네상스 시대(대략 14세기에서 16세기 말)를 맞아 그동안 감각이 낳은 온갖 회의론마저 돋보기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스베덴보리(1688-1772, 스웨덴)는 이 주석을 1749년에 시작, 1756년에 마쳤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이 어두움의 엄청난 실상을 알면 아마 기절할 만큼 놀라들 자빠질 겁니다. If men knew how great is the darkness from this cause they would be astounded.

 

 

233. 세상 학문과 지식을 가지고 신앙의 신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겠다고 하는 것은 마치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겠다는 것만큼이나, 그리고 갈비뼈 하나로 가슴과 심장의 극히 미세한 근육들을 움직이겠다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입니다. To explore the mysteries of faith by means of memoryknowledges is as impossible as it is for a camel to go through the eye of a needle, or for a rib to govern the finest fibrils of the chest and of the heart.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마19:24)

 

정말 거칠고 투박한 것, 네, 정말 거칠고 투박하지요! 그것은 영적, 천적인 것에 우리의 감각과 세상 학문, 과학 지식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So gross, yea, much more so, is that which pertains to our senses and memory-knowledge relatively to what is spiritual and celestial.

 

※ 주님의 허락으로 스베덴보리 57세 때 시작, 죽을 때까지 27년간 계속된 영계 체험을 통해서 영들과 천사들, 그리고 주님의 그 영광의 지혜와 비밀들에 대하여 알게 된 그로서는 그에 비해 이 세상 지혜와 지식, 학문적 성과라는 것들이 얼마나 초라하고 하등한 것인지가 아주 생생하게 대비되었던 것 같습니다.

 

자연의 셀 수 없이 많은 비밀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사실은 거의 단 하나도 발견하기 어렵고, 또 잘 알려진 대로, 조사하는 중에 그만 오류에 빠지곤 합니다. He who would investigate the hidden things of nature, which are innumerable, discovers scarcely one, and while investigating them falls into errors, as is well known.

 

영적, 천적 삶 가운데 숨겨진 진리들을 조사하는 경우는 훨씬 더합니다. 그런 삶에는 자연적으로는 볼 수도 없는 것 하나 안에도 얼마나 많은 무수한 신비들이 존재하는지 모릅니다! How much more likely is this to be the case while investigating the hidden truths of spiritual and celestial life, where myriads of mysteries exist for one that is invisible in nature!

 

[2] 한 가지 예를 들어 살펴보면은, 사람은 혼자서는 악을 행하고, 주님으로부터는 등을 돌리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As an illustration take this single example: of himself man cannot but do what is evil, and turn away from the Lord.

 

하지만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니라 그와 함께 있는 악한 영들이 그러는 것이며, Yet man does not do these things, but the evil spirits who are with him.

 

악한 영들 역시 그들 자신이 그러는 게 아니라 그들이 그동안 자신의 자아로 만들어 온 악 자체가 그러는 것입니다. Nor do these evil spirits do them, but the evil itself which they have made their own.

 

그럼에도 불구, 사람이 악을 행하여 주님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짓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오직 주님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Nevertheless man does evil and turns himself away from the Lord, and is in fault; and yet he lives only from the Lord.

 

또 한편으로, 사람은 혼자서는 선을 행할 수도, 주님을 향할 수도 없지만, 천사들로 말미암아 합니다. So on the other hand, of himself man cannot possibly do what is good, and turn to the Lord, but this is done by the angels.

 

그런데 이 역시 천사들이 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주님 홀로 하시는 것입니다. Nor can the angels do it, but the Lord alone.

 

그러면서도 마치 사람이 제 힘으로 하는 것처럼 선도 행할 수 있고, 주님을 향할 수도 있습니다. And yet man is able as of himself to do what is good, and to turn himself to the Lord.

 

이런 사실들은 우리가 가진 감각이나 세상 학문과 지식, 철학 같은 걸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걸 가지고 누구더러 컨설팅을 좀 해달라 하면, 이 모든 게 사실임에도 불구, 모조리 부정될 것입니다. These facts can never be apprehended by our senses, memory-knowledge, and philosophy, but if these are consulted will be denied in spite of their truth.

 

모든 천적인 게 다 겪듯 말입니다. And it is the same all through.

 

[3] 지금까지 들으신 내용으로 분명한 사실은, 믿음의 일들을 감각적인 것들과 세상 학문과 지식을 통해 컨설팅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자신들을 의심과 부인, 곧 깊은 흑암에 빠지게 하며, 그 결과 결국엔 모든 탐욕 가운데 빠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From what has been said it is evident that those who consult sensuous things and memory-knowledges in matters of belief, plunge themselves not only into doubt, but also into denial, that is, into thick darkness, and consequently into all cupidities.

 

그 이유는 그들이 거짓된 것을 믿고 거짓된 것을 행하기 때문이며, For as they believe what is false, they also do what is false.

 

또 그들은 영적이고 천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대신 육체와 세상에 속한 것들만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And as they believe that what is spiritual and celestial has no existence, so they believe that there is nothing else but what is of the body and the world.

 

이렇게 저들은 자아와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사랑하며, 이런 식으로 거짓된 것에서 샘처럼 솟아나는 모든 탐욕과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And so they love all that belongs to self and the world, and in this way do cupidities and evils spring from what is fa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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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 원고

2022-04-24(D1)-주일예배(2304, 창2,25, AC.163-165),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으려면'.pdf
0.42MB

 

2. 설교 및 축도 유튜브

https://youtu.be/OcFrm4tHI-Q

 

 

3. 예배 순서 및 축도 원고

2022-04-24(D1)-주일예배(2304, 창, AC.),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으려면', 순서, 축도.pdf
0.21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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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4(D1)-제10권17호통452호.pdf
0.25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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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1-13

 

9, 10절,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Verses 9, 10, And Jehovah God cried unto the man [homo], and said unto him, Where art thou? And he said, I heard thy voice in the garden, and I was afraid, because I was naked; and I hid myself.

 

※ 9, 10절 속뜻

 

속뜻 대부분이 8절과 같아 생략

 

 

226. 부르시며’, ‘동산에서 나는 소리’,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의 의미들은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The meaning of “crying,” of the “voice in the garden,” of their “being afraid because they were naked,” and of “hiding themselves” has been previously explained.

 

사람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 너는 무엇을 하느냐 먼저 묻는 것은 말씀에서 흔한 일입니다. 주님은 이미 다 아시면서 말이지요. 그러시는 이유는, 그러면 그가 혹시 시인하고 자백할까 해서입니다. It is common in the Word for man to be first asked where he is and what he is doing, although the Lord previously knew all things; but the reason for asking is that man may acknowledge and confess.

 

 

227. 오늘날(1750년 즈음 유럽), 퍼셉션, 내적 음성 및 양심의 기원을 좀 알 수 있었으면 하는 데 반해 실제 알려진 건 거의 없는 상황인지라 제가(Swedenborg, 스베덴보리, 1688-1772) 이 주제로 무슨 말씀을 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s it is desirable that the origin of perception, internal dictate, and conscience, should be known, and as at the present day it is altogether unknown, I may relate something on the subject.

 

정말 엄청난 사실은 인간은 영들과 천사들을 통해 주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It is a great truth that man is governed by the Lord by means of spirits and angels.

 

악한 영들의 지배가 시작되면 천사들은 악과 거짓들의 방향을 바꾸느라 애를 쓰며, 이렇게 전투가 발생합니다. When evil spirits begin to rule, the angels labor to avert evils and falsities, and hence arises a combat.

 

이 전투에서 인간은 퍼셉션, 내적 음성 및 양심을 통해 점점 더 예리해져 갑니다. It is this combat of which the man is rendered sensible by perception, dictate, and conscience.

 

이것과 또 시험을 통해 인간은 영들과 천사들이 자기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아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육체의 일에 아주 깊이 잠겨 영들과 천사들에 관한 걸 전혀 믿지 않는 그런 사람만 아니라면 말입니다. By these, and also by temptations, a man might clearly see that spirits and angels are with him, were he not so deeply immersed in corporeal things as to believe nothing that is said about spirits and angels.

 

그런 사람들은 심지어 이런 영적 전투를 수백 번 느껴도 여전히 말하기를, 그런 건 다 상상이며, 마음이 어수선해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Such persons, even if they were to feel these combats hundreds of times, would still say that they are imaginary, and the effect of a disordered mind.

 

저는 허락하심을 받아 이런 영적 전투를 수천수만 번 느낄 수도, 아주 생생하게 감지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거의 수년 동안이나 지속되었지요. 뿐만 아니라 이런 전투를 일으키는 그들이 누구며 무슨 일을, 그리고 어디 출신인지, 그들이 올 때와 떠날 때 등도 마찬가지로 느끼고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들과 대화하고 있습니다. I have been permitted to feel such combats, and to have a vivid sense of them, thousands and thousands of times, and this almost constantly for several years, as well as to know who, what, and where they were that caused them, when they came, and when they departed; and I have conversed with them.

 

 

228. 천사들에게는 말로 어떻게 설명이 안 되는 정말 차원이 다른 정교한 퍼셉션이 있는데요, 천사들은 이걸로 신앙의 진리와 사랑의 선에 반대되는 어떤 것에 들어갈지 말지를 지각합니다. It is impossible to describe the exquisite perception whereby the angels discover whether anything gains admission that is contrary to the truth of faith and the good of love.

   

※ 천사들은 내적 존재여서 사람의 생각 안으로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출입 기준은 신앙의 진리와 사랑의 선이어서 이에 부합하면 들어오고, 반대되면 들어오지 않습니다. 우리와 달리 천사들은 이 선과 진리에 대한 지각이 수천 배나 뛰어납니다.

 

※ 각 사람에겐 최소 두 명의 천사와 악한 영들이 와 있습니다. 천사들은 그 사람의 선과 진리의 기억 속으로, 악한 영들은 그 사람의 악과 거짓의 기억 속으로 들어갑니다. 천사 둘, 악령 둘인 이유는 사람이 의지와 이해로 되어 있기 때문인데, 사람의 의지에 해당하는 천적 천국에서 한 명, 사람의 이해에 해당하는 영적 천국에서 한 명이 오기 때문이며, 악령도 마찬가지, 하나는 의지에 해당하는 지옥, 하나는 거짓에 해당하는 지옥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은 들어가는 것의 질(質, quality)과 언제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그런 것에 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는 인간이 혼자 하는 것 보다 수천 배나 더 완벽하게 지각합니다. They perceive the quality of what enters, and when it enters, a thousand times more perfectly than the man himself, who scarcely knows anything about it.

   

※ ‘인간이 혼자 하는 것 보다’라는 표현은 천사나 악령은 인간의 선하거나 악한 기억과 생각 속으로 들어가 마치 그것이 처음부터 자기 것인 줄 알고 그걸 재료 삼아 사유 활동을 하는데 인간은 그들의 활동 결과 떠오르는 생각들을 자기가 하는 줄로 아는, 이런 배경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생각조차도 천사들은 더욱 풀로 지각합니다. 인간이 그걸로 할 수 있는 가장 그레이트한 것보다도 더 말이지요. The least of thought in a man is more fully perceived by the angels than the greatest is by himself.

 

이런 얘기는 정말 믿어지지 않으시겠지만 백 프로 사실입니다. This is indeed incredible, yet is most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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