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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6.24 창5:3, AC.481-485, '아담은 백삼십 세에'

창5

 

3절,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Verse 3,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 3절 속뜻

 

 

 

481. ‘백삼십 세’라는 표현은 하나의 새 교회가 일어나기 전 흐른 시간을 상징합니다. 이 새로 일어난 교회는 태고교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말을 듣는 교회였습니다. ‘모양’이라는 용어는 신앙에, ‘형상’이라는 용어는 사랑에 각각 관련됩니다. By a “hundred and thirty years” there is signified the time before the rise of a new church, which, being not very unlike the most ancient, is said to be born “into its likeness, and after its image”; but the term “likeness” has relation to faith, and “image” to love.

 

이 교회를 일컬어 ‘셋’이라 하였습니다. This church was called “Seth.”

 

 

482. 이 장에 나오는 ‘세’와 ‘몇 세를 살고’ 하는 표현들이 속뜻으로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 없습니다. What the “years” and the “numbers of years,” which occur in this chapter, signify in the internal sense, has hitherto been unknown.

 

겉뜻에 머무르시는 분들은 세속적 년 수들로 생각하시겠습니다만, 이 장부터 십이 장까지는 겉뜻에 나오는 표현 그대로 실제 역사적으로 일어난 것은 하나도 없고, 대신 일반적으로는 모든 것,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다른 것이 들어 있습니다. Those who abide in the literal sense suppose them to be secular years, whereas from this to the twelfth chapter there is nothing historical according to its appearance in the literal sense, but all things in general and every single thing in particular contain other matters.

 

이름뿐 아니라 숫자 역시 같은 경우입니다. And this is the case not only with the names, but also with the numbers.

 

말씀에서 자주 언급되는 숫자는 삼(3), 칠(7)이 있는데요, 이 숫자들이 언급되는 곳마다 거기서 이 숫자들은 그 숫자들에 포함되어 있거나 표현하고 있는 시간이나 다른 무엇과 관련, 가장 거룩하고 신성한 상태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 숫자들은 가장 짧은 시간 간격들이나 가장 긴 시간 간격들이나 같은 걸 상징합니다. 부분들이 전체에 속하듯 가장 작은 것들은 가장 큰 것에 속하기 때문인데, 전체가 부분에서, 가장 큰 것이 가장 작은 것에서 제대로 나올 수 있으려면 반드시 닮음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In the Word frequent mention is made of the number three, and also of the number seven, and wheresoever they occur they signify something holy or most sacred in regard to the states which the times or other things involve or represent; and they have the same signification in the least intervals of time as in the greatest, for as the parts belong to the whole, so the least things belong to the greatest, for there must be a likeness in order that the whole may properly come forth from the parts, or the greatest from its leasts.

 

그래서 이사야에서 Thus in Isaiah: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해와 같이 삼 년 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지라 (사16:14) Now hath Jehovah spoken, saying, Within three years, as the years of a hireling, and the glory of Moab shall be rendered worthless. (Isa. 16:14)

 

주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기한 같이 일 년 내에 게달의 영광이 다 쇠멸하리니 (사21:16) Thus hath the Lord said unto me, Within a year, according to the years of a hireling, and all the glory of Kedar shall be consumed, (Isa. 21:16)

 

둘 다 가장 작은 간격들과 가장 큰 간격들을 상징합니다. where both the least and the greatest intervals are signified.

 

하박국에서 In Habakkuk: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합3:2) Jehovah, I have heard thy renown, and was afraid; O Jehovah, revive thy work in the midst of the years, in the midst of the years make known, (Hab. 3:2)

 

‘수년 내에’라는 표현은 주님의 강림을 상징합니다. where the “midst of the years” signifies the Lord’s advent.

 

보다 작은 간격들의 경우, 거듭남 가운데 있는 사람처럼 모든 주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보다 큰 간격들의 경우는 주님의 교회가 새롭게 일어나는 경우를 상징합니다. In lesser intervals it signifies every coming of the Lord, as when man is being regenerated; in greater, when the church of the Lord is arising anew.

 

이사야에서 ‘구속할 해’라 하신 경우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It is likewise called the “year of the redeemed,” in Isaiah: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가 구속할 해가 왔으나 (사63:4) The day of vengeance is in my heart, and the year of my redeemed is come. (Isa. 63:4)

 

그래서 계시록 20장 2절, 7절, 사탄이 결박되어 있었던 천 년과, 계시록 20장 4절로 6절, 첫째 부활 관련 천 년 역시 절대 천 년(1,000년)을 상징하는 게 아니고, 대신 상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보여드린 것처럼, ‘날’은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며, ‘년’ 또한 그렇습니다. 이렇게 년 수, 햇수를 가지고 상태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So also the thousand years in which Satan was to be bound (Rev. 20:2, 7), and the thousand years of the first resurrection (Rev. 20:4–6), by no means signify a thousand years, but their states; for as “days” are used to express states, as shown above, so also are “years,” and the states are described by the number of the years.

 

2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7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계20:2, 7)

 

4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계20:4-6)

 

그래서 본 장의 시간들 또한 상태들을 포함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모든 개 교회는 선천적, 후천적 재능 차이에 따라 퍼셉션의 상태가 다른 교회들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Hence it is evident that the times in this chapter also involve states; for every church was in a different state of perception from the rest, according to the differences of genius, hereditary and acquired.

 

 

483. 다음과 같은 이름들, 곧,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는 매우 많은 교회들을 상징합니다. 이 가운데 첫 번째, 제일의 교회를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이 교회들의 가장 주된 특징은 퍼셉션이었고, 그래서, 이 시절 교회 간 차이는 주로 퍼셉션의 차이에서 왔습니다. By the names which follow: “Seth,” “Enosh,” “Kenan,” “Mahalalel,” “Jared,” “Enoch,” “Methuselah,” “Lamech,” “Noah,” are signified so many churches, of which the first and principal was called “man.” The chief characteristic of these churches was perception, wherefore the differences of the churches of that time were chiefly differences of perception.

 

저는 여기서 퍼셉션에 관한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천국 그 어디든 선과 진리에 관한 퍼셉션 말고 다른 것으로 천국을 다스리는 것은 없습니다. 이 퍼셉션은 도저히 설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른 점들이 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어떤 두 소사이어티도 유사한 퍼셉션을 엔조이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존재하는 퍼셉션들은 종(種, Species)과 속(屬, Genus)으로 분류됩니다. 속만으로도 셀 수가 없는데, 그 각각의 종 역시 하나하나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이에 관하여는 주님의 신적 자비, 곧 주님의 허락을 받아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I may here mention concerning perception, that in the universal heaven there reigns nothing but a perception of good and truth, which is such as cannot be described, with innumerable differences, so that no two societies enjoy similar perception; the perceptions there existing are distinguished into genera and species, and the genera are innumerable, and the species of each genus are likewise innumerable; but concerning these,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셀 수 없는 속(屬)이 존재하고, 그 각 속에 딸린 종(種) 또한 셀 수 없이 많으며, 더욱이 개별 종 안에서도 셀 수 없는 다양함이 있기 때문에, 분명한 사실은, 오늘날 세상이 알고 있다는 천적, 영적인 것들에 관해 아는 것이 얼마나 미미한지, 너무 보잘 것 없어 거의 없는 것과 다름없을 정도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심지어 퍼셉션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기 때문이며, 만일 그것에 관해 듣는다 해도 그런 것의 존재 자체를 믿지 않고, 그런 식으로 다른 것 역시 안 믿기 때문입니다. Since then there are innumerable genera, and innumerable species in each genus, and still more innumerable varieties in the species, it is evident how little—so little that it is almost nothing—the world at this day knows concerning things celestial and spiritual, since they do not know even what perception is, and if they are told, they do not believe that any such thing exists; and so with other things also.

 

태고교회는 심지어 일반적, 구체적 퍼셉션 차이들에 관해서조차 주님의 천적 왕국을 표현했습니다만, 오늘날은 퍼셉션의 본성에 관한 가장 일반적 측면에서조차 전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이들 교회들의 퍼셉션 그 속(屬)과 종(種) 어떤 경우도 할 수 없이 어둡고 낯설게만 보입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represented the celestial kingdom of the Lord, even as to the generic and specific differences of perception; but whereas the nature of perception, even in its most general aspect, is at this day utterly unknown, any account of the genera and species of the perceptions of these churches would necessarily appear dark and strange.

 

그들은 그 시절 가족, 가문 및 민족들로 구분되며, 결혼도 가족과 가문 내에서만 했습니다. 퍼셉션의 속과 종의 보존을 위해서이며, 민족적 특성의 전수처럼 부모를 통해 정확히 전수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이유로, 태고교회에 속했던 사람들은 지금도 천국에서 함께 지냅니다. They were at that time distinguished into houses, families, and nations, and contracted marriage within their houses and families, in order that genera and species of perceptions might exist, and be derived from the parents precisely as are the propagations of native character; wherefore those who were of the most ancient church dwell together in heaven.

 

 

484. ‘셋’이라는 교회가 태고교회와 아주 비슷하게 닮았었다는 사실은, 그가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라는 표현을 보면 분명합니다. 용어 ‘모양’(likeness)은 신앙과, ‘형상’(image)은 사랑과 관련됩니다. 이 교회가 사랑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 관련, 태고교회를 닮지 않았다는 사실은, 방금 앞서 말씀드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하신 것으로 분명합니다. 이것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여섯째 날 영적 인간을 상징하는데요, 즉, 아직은 사랑이 주된 원리가 아닌, 여전히 사랑과 결합된 신앙이 주된 원리였다는 말씀입니다. That the church called “Seth” was very nearly like the most ancient church is evident from its being said that the man begat in his likeness, according to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the term “likeness” having relation to faith, and “image” to love; for that this church was not like the most ancient church with regard to love and its derivative faith, is plain from its being said just before,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by which is signified the spiritual man of the sixth day, as was said above, so that the likeness of this man was to the spiritual man of the sixth day, that is, love was not so much the principal, but still faith was conjoined with love.

 

 

485. 여기 ‘셋’은 위 4장 25절의 ‘셋’과는 다른 교회라는 사실은 435번 글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That a different church is here meant by “Seth” from that which was described above (Gen. 4:25), may be seen at n. 43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창4:25)

 

교리가 다른 교회들을 같은 이름으로 불렀다는 사실은, 앞 장 17절, 18절에 나오는 ‘에녹’과 ‘라멕’을, 여기 5장 21절과 30절에서는 다른 교회들인데 같은 이름인 ‘에녹’, ‘라멕’으로 부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That churches of different doctrine were called by the same name, is evident from those which in the foregoing chapter (Gen. 4:17–18) were called “Enoch” and “Lamech,” while here other churches are in like manner called “Enoch” and “Lamech” (Gen. 5:21, 30).

 

17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18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창4:17-18)

 

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30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21, 30)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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