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3:15)



AC.251

(serpent)이 일반적으로는 모든 악을, 특별히는 자기 사랑(love of self)을 의미하는 이유는, 모든 악이 처음에는 감각 파트(the sensuous part)와 기억 지식(memory-knowledge)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감각 파트와 기억 지식이 처음에는 으로 표상되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은 모든 종류의 악을 의미하며, 특별히는 자기 사랑, 곧 이웃과 주님에 대한 증오를 의미합니다. 사실 자기 사랑과 이웃 및 주님에 대한 증오는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악과 증오는 매우 다양하여 수많은 종류(genera)와 그보다 더 많은 종(species)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말씀에서는 여러 종류의 뱀으로 묘사됩니다.(snakes), ‘독사(cockatrices), ‘아스프(asps), ‘살무사(adders), ‘불뱀(fiery serpents), ‘날아다니는 뱀(serpents that fly), ‘기어다니는 뱀(that creep), ‘독사(vipers) 등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모두 증오(hatred)라는 독(poison) 차이에 따른 것입니다. The reason why the “serpent” means all evil in general, and specifically the love of self, is that all evil has had its rise from that sensuous part of the mind and also from that memory-knowledge which at first were signified by the “serpent”; and therefore it here denotes evil of every kind, and specifically the love of self, or hatred against the neighbor and the Lord, which is the same thing. As this evil or hatred was various, consisting of numerous genera and still more numerous species, it is described in the Word by various kinds of serpents, as “snakes,” “cockatrices,” “asps,” “adders,” “fiery serpents,” “serpents that fly” and “that creep,” and “vipers,” according to the differences of the poison, which is hatred.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23:3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술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뱀과 독사를 너희 가운데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를 물리라 하시도다 (8:17)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맹독이라 (32:33)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 (140:3)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21:6)

 

 

그래서 이사야는 Thus we read in Isaiah:

 

블레셋 온 땅이여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의 열매는 날아다니는 불뱀이 되리라 (14:29) Rejoice not thou, whole Philistia, because the rod which smiteth thee is broken, for out of the serpents root shall go forth a cockatrice, and his fruit shall be a flying fire serpent (Isa. 14:29).

 

여기 뱀의 뿌리(serpent’s root)는 감각과 기억 지식에 연결된 정신의 원리를 의미하고, ‘독사(cockatrice)는 거기서 나온 거짓으로부터 생겨난 악을 의미하며, ‘날아다니는 불뱀(flying fire serpent)은 자기 사랑에서 나오는 정욕(cupidity)을 의미합니다. 같은 선지자는 또 The “serpent’s root” denotes that part of the mind, or that principle, which is connected with the senses and with memory-knowledge; the “cockatrice” denotes evil originating in the falsity thence derived; and the “flying fire serpent,” the cupidity that comes from the love of self. By the same prophet also similar things are elsewhere thus described: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59:5) They hatch cockatrices eggs, and weave the spiders web; he that eateth of their eggs dieth, and when it is crushed there cometh out a viper (Isa. 59:5).

 

창세기에서 묘사된 이 뱀은 요한계시록에서는 큰 붉은 용(great and red dragon), ‘옛 뱀(old serpent), ‘마귀(devil), ‘사탄(satan), 그리고 온 천하를 미혹하는 자(deceives the whole world)라고 불립니다 (12:3, 9; 20:2).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마귀(devil)는 다른 악령들을 지배하는 어떤 특정한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영들의 전체 무리와 악 자체(evil itself)를 의미합니다. The serpent described here in Genesis is called in the Revelation the “great and red dragon,” and the “old serpent,” and also the “devil and satan,” that “deceives the whole world” (12:3, 9; 20:2), where, and also in other places, by the “devil” is not meant any particular devil who is prince over the others, but the whole crew of evil spirits, and evil itself.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12:3)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12:9)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20:2)

 

 

해설

 

이 글은 지금까지 설명되어 온 ‘’의 의미를 한층 더 확대하는 매우 중요한 대목입니다. AC.250에서 스베덴보리는 뱀을 일반적으로 모든 악, 특별히 자기 사랑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여기서는 왜 뱀이 그런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왜 성경에 그토록 많은 종류의 뱀이 등장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모든 악은 처음부터 자기 사랑에서 나옵니다. 교만, 탐욕, 시기, 복수심, 지배욕, 증오, 멸시 등은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려는 사랑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사랑과 이웃 및 주님에 대한 증오를 사실상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게 되면, 결국 주님보다 자신을 높이고, 이웃보다 자신을 우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여러 뱀들은 서로 다른 악의 형태들을 상징합니다. 독이 강한 뱀일수록 더욱 깊고 악의적인 형태의 거짓과 증오를 의미합니다. 특히 스베덴보리는 뱀의 독(poison)을 ‘증오(hatred)에 대응시킵니다. 육체의 생명을 죽이는 독이 영적으로는 사랑과 신앙을 죽이는 증오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14:29의 ‘뱀의 뿌리 독사 날아다니는 불뱀’이라는 순서는 악이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먼저 감각과 자기 판단에 의존하는 원리가 생기고(뱀의 뿌리), 거기서 거짓이 나오며(독사), 마침내 자기 사랑의 강렬한 정욕과 욕망이 생겨납니다(날아다니는 불뱀).

 

또한 사59:5의 ‘독사의 알’은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거짓과 악의 씨앗을 의미합니다. 알이 부화하면 독사가 나오듯이, 잘못된 원리와 거짓된 생각을 품고 있으면, 결국 악한 삶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스베덴보리는 요한계시록의 ‘큰 붉은 용’, ‘옛 뱀’, ‘마귀’, ‘사탄’을 모두 창세기의 뱀과 연결합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설명을 덧붙입니다. 곧 ‘마귀’란 어떤 한 존재의 이름이 아니라, 악 자체와 악한 영들의 전체 집단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AC.251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창세기의 뱀은 단순한 동물도 아니고 단순한 유혹자도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안에서 주님과 반대되는 모든 악의 원리를 의미하며, 그 중심에는 자기 사랑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뱀들은 모두 그 악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 모습을 묘사하는 상징들인 것입니다.

 

 

심화

 

1. ‘사14:29’

 

블레셋 온 땅이여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의 열매는 날아다니는 불뱀이 되리라 (사14:29) Rejoice not thou, whole Philistia, because the rod which smiteth thee is broken, for out of the serpent’s root shall go forth a cockatrice, and his fruit shall be a flying fire serpent (Isa. 14:29).

 

 

AC.251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악이 어떻게 점차 발전하고 심화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이 구절을 단순한 국가들 사이의 예언으로 보지 않고,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과정을 설명하는 말씀으로 해석합니다.

 

먼저 ‘뱀의 뿌리’(the serpent's root)는 감각(senses)과 기억 지식(memory-knowledge)에 기초한 원리를 의미합니다. 원래 감각과 기억 지식 자체는 악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주님과 말씀보다 위에 놓이게 되면, 인간은 영적 진리를 감각과 자기 판단으로 재단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상태가 ‘뱀의 뿌리’입니다.

 

그다음 ‘독사’(cockatrice)가 나옵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독사는 그 감각적 원리에서 나온 거짓으로부터 생겨난 악을 의미합니다. 즉 처음에는 단순히 자기 판단을 신뢰하는 정도였지만, 점차 진리를 왜곡하고 거부하는 상태로 발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날아다니는 불뱀’(flying fire serpent)이 나옵니다. 이것은 자기 사랑(love of self)에서 나오는 강렬한 정욕(cupidity)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불’(fire)은 사랑을 뜻하지만, 악한 의미에서는 자기 사랑의 불타는 욕망을 의미합니다. 또한 ‘날아다닌다’(flying)는 것은 그 악이 더욱 빠르고 넓게 퍼지며, 인간 전체를 지배하게 된 상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악의 성장 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감각과 자기 지혜를 지나치게 신뢰하는 원리가 생깁니다(뱀의 뿌리). 그다음에는 거짓과 악이 생겨납니다(독사). 그리고 마침내 자기 사랑에서 나오는 강력한 욕망과 정욕이 인간을 지배하게 됩니다(날아다니는 불뱀).

 

이 점은 AC.229-233에서 스베덴보리가 설명한 태고교회 후손들의 타락 과정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극악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감각을 지나치게 신뢰했고, 다음에는 신앙의 진리를 의심했으며, 그다음에는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마침내 악과 거짓이 그들의 삶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AC.251에서 사14:29는 단순한 예언 구절이 아니라, 악의 영적 계보를 보여주는 말씀으로 인용됩니다. 뿌리는 감각적 자기 신뢰이고, 줄기는 거짓과 악이며, 열매는 자기 사랑의 불타는 정욕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모두 ‘뱀’이라는 하나의 상징 안에 포함되는 다양한 단계들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2. ‘사59:5’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사59:5) They hatch cockatrice’s eggs, and weave the spider’s web; he that eateth of their eggs dieth, and when it is crushed there cometh out a viper (Isa. 59:5).

 

 

AC.251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악과 거짓이 처음에는 작은 씨앗이나 알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치명적인 영적 독으로 발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앞의 사14:29에서는 ‘뱀의 뿌리 → 독사 → 날아다니는 불뱀’이라는 악의 성장 과정을 설명하였다면, 여기서는 그 악이 어떻게 인간 안에서 잉태되고 자라나는지를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독사의 알’(cockatrice's eggs)은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거짓의 씨앗과 악의 원리를 의미합니다. 알은 아직 부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겉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이미 독사가 들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잘못된 원리나 거짓된 생각도 처음에는 무해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을 품고 키우면 결국 악한 삶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죽음은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영적 죽음을 의미합니다. 즉 거짓을 진리처럼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기 삶의 양식으로 삼으면 신앙과 사랑의 생명이 점차 사라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또한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알 속에 감추어져 있던 것이 결국 밖으로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생각 속에만 있던 거짓과 악이 시간이 지나면서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고, 마침내 인간의 성품 자체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거미줄을 짠다’(weave the spider's web)는 표현은 거짓된 사고 체계를 의미합니다. 거미는 자기 실로 그물을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자기 지혜를 신뢰하는 사람은 자기 생각으로 논리의 그물을 짜서 거짓을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거미줄은 보기에는 정교하지만 옷이 될 수 없고, 사람을 보호할 수도 없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런 표현을 통해 인간이 자기 지혜로 만들어 낸 거짓된 교리와 논증을 설명합니다.

 

따라서 AC.251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악과 거짓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알처럼 잉태되고, 점차 자라며, 결국 독사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언제나 자기 사랑과 자기 지혜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래서 사59:5는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뱀’의 의미를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뱀은 단순히 하나의 악이 아니라, 거짓된 원리가 잉태되고 성장하여 마침내 인간의 삶 전체를 물들이는 과정을 상징하며, 독사의 알은 바로 그 시작 단계의 악과 거짓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 ‘계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계12:3)

 

 

AC.251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세기 3장의 ‘뱀’과 요한계시록의 ‘큰 붉은 용’이 본질적으로 같은 영적 실체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창세기의 뱀을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모든 악, 특히 자기 사랑(love of self)과 그로부터 나오는 거짓을 의미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악이 역사 속에서 더욱 거대하고 조직적인 형태로 나타난 모습이 바로 요한계시록의 ‘큰 붉은 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구절을 인용한 뒤 곧이어 계12:9과 20:2를 연결하여, 이 용이 바로 ‘옛 뱀’, ‘마귀’, ‘사탄’이라고 불린다고 설명합니다. 즉 창세기의 뱀과 계시록의 용은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 같은 원리를 다른 모습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특히 ‘붉은’(red)이라는 표현은 말씀에서 사랑을 의미하는 색이지만, 악한 의미에서는 자기 사랑과 그로부터 나오는 파괴적인 욕망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큰 붉은 용’은 자기 사랑이 거대한 세력으로 성장한 모습을 상징합니다.

 

또한 ‘머리가 일곱’이라는 것은 거짓과 악이 완전한 형태로 조직되어 있음을 뜻하며, ‘뿔이 열’이라는 것은 그것이 행사하는 힘과 영향력을 의미합니다. 물론 AC.251에서는 아직 이 세부 상응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용 = 옛 뱀’이라는 연결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마귀’(devil)를 어떤 특정한 인격체나 지옥의 왕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곧이어 ‘마귀란 다른 악령들을 지배하는 어떤 한 존재가 아니라, 악한 영들의 전체 무리와 악 자체(evil itself)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계시록의 큰 붉은 용도 어떤 한 괴물이 아니라, 주님과 진리에 반대되는 모든 악과 거짓의 집합적 세력을 의미합니다. 창세기의 뱀이 한 사람 안에서 역사하는 자기 사랑과 감각적 거짓을 상징한다면, 계시록의 용은 그것이 교회 전체와 인류 역사 속에서 거대한 세력으로 나타난 모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AC.251에서 계12:3을 인용한 이유는, 창세기의 뱀과 계시록의 용이 동일한 영적 원리, 곧 자기 사랑과 악, 그리고 거짓의 세력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의 처음에 등장하는 ‘뱀’은 성경의 마지막에 가서는 ‘큰 붉은 용’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이는 주님과 대적하는 악의 본질이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4. ‘계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계12:9)

 

 

AC.251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세기 3장의 ‘뱀’이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악과 거짓의 원리 자체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성경 스스로가 증언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이 구절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계시록이 직접 ‘큰 용’을 ‘옛 뱀’(the old serpent)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합니다. 창세기에 등장한 뱀과 계시록에 등장한 큰 용이 동일한 영적 실체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영적 실체는 무엇일까요? 스베덴보리는 그것을 일반적으로는 모든 악(evil), 특별히는 자기 사랑(love of self)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자기 사랑에서 나오는 거짓과 불신, 그리고 증오가 바로 ‘온 천하를 꾀는 자’로 표현됩니다.

 

또한 이 구절은 ‘옛 뱀’, ‘마귀’(devil), ‘사탄’(satan)이라는 세 이름을 하나로 연결합니다. 이를 통해 스베덴보리는 성경의 여러 표현들이 결국 같은 원리를 가리킨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매우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마귀’와 ‘사탄’을 어떤 한 인격적 존재, 곧 모든 악령들을 통치하는 지옥의 왕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AC.251에서 그는 분명히 말합니다.

 

‘마귀란 다른 악령들 위에 군림하는 어떤 특정한 마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영들의 전체 무리(the whole crew of evil spirits)와 악 자체(evil itself)를 의미한다.’

 

즉 스베덴보리에게 마귀는 하나의 개체라기보다 집합적 이름입니다. 마치 ‘인류’라는 말이 특정 개인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포함하는 것처럼, ‘마귀’는 모든 악한 영들과 그들 안에 있는 악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사탄’ 역시 비슷하게 이해됩니다. 일반적으로 스베덴보리는 ‘마귀’는 악(evil)과 관련되고, ‘사탄’은 거짓(falsity)과 관련된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악과 거짓이 결합하여 세상을 미혹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라는 표현은 단순한 공간적 이동이 아닙니다. 영적으로는 주님의 진리 앞에서 악과 거짓이 더 이상 높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주님의 심판과 질서 회복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AC.251에서 계12:9을 인용한 이유는, 창세기의 뱀과 계시록의 옛 뱀, 큰 용, 마귀, 사탄이 모두 같은 영적 원리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곧 그것은 주님을 대적하는 모든 악과 거짓, 특별히 자기 사랑에서 나오는 악의 세력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3장의 뱀이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인간과 교회 안에서 역사하는 악의 보편적 원리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5. ‘계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계20:2)

 

 

AC.251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세기 3장의 ‘뱀’이 단순한 뱀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영적 원리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앞서 계12:9에서는 ‘큰 용’이 곧 ‘옛 뱀’, ‘마귀’, ‘사탄’이라고 직접 설명되었습니다. 여기 계20:2에서도 같은 표현이 반복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통해 창세기의 뱀과 계시록의 용이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즉 창세기의 뱀, 계시록의 큰 붉은 용, 옛 뱀, 마귀, 사탄은 모두 서로 다른 존재들이 아니라 동일한 영적 실재를 가리키는 다양한 표현들입니다. 그 실재란 일반적으로는 모든 악(evil)이며, 특별히는 자기 사랑(love of self)과 그로부터 나오는 거짓과 불신입니다.

 

그래서 AC.251의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창세기의 뱀은 자기 사랑에서 나오는 악을 의미합니다. 그 악은 인간 역사 속에서 계속 활동하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계시록에서는 그것이 ‘큰 용’, ‘옛 뱀’, ‘마귀’, ‘사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따라서 성경의 처음과 끝은 같은 영적 원리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서 ‘결박하여’(bound)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문자적인 쇠사슬이나 감옥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는 악과 거짓의 세력이 더 이상 이전처럼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도록 제한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AC.251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는 주된 목적은 ‘천 년’이나 ‘결박’의 의미를 설명하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목적은 오직 하나, 곧 계시록이 직접 ‘용 = 옛 뱀 = 마귀 = 사탄’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매우 중요한 설명을 덧붙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귀’는 어떤 특정한 악령의 이름이 아닙니다. 지옥 전체를 통치하는 한 명의 절대적 악의 군주를 뜻하는 것도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마귀’는 악한 영들의 전체 무리(the whole crew of evil spirits)와 악 자체(evil itself)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계20:2는 창세기의 뱀에 대한 스베덴보리의 해석을 뒷받침하는 증거 구절로 사용됩니다. 곧 성경의 ‘뱀’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인간을 주님에게서 떼어 놓고,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게 만드는 모든 악과 거짓의 원리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시록은 그 사실을 ‘옛 뱀’, ‘마귀’, ‘사탄’, ‘용’이라는 여러 이름으로 다시 확인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AC.250,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AC.250-260)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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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he shall trample upon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 (3:15)



AC.250

이것이 주님께서 세상에 오실 것을 예언한 최초의 예언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말씀 자체가 그것을 분명히 보여주며, 유대인들도 이 말씀과 예언자들의 글을 통하여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도 여기서 말하는 (serpent), ‘여자(woman), ‘뱀의 후손(serpent’s seed), ‘여자의 후손(woman’s seed),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head of the serpent which was to be trodden upon), 그리고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heel which the serpent should bruise)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것들을 설명해야 합니다. 여기서 은 일반적으로는 모든 악을 의미하며, 특별히는 자기 사랑(love of self)을 의미합니다. ‘여자는 교회(church)를 의미합니다. ‘뱀의 후손은 모든 불신(infidelity)을 의미합니다. ‘여자의 후손은 주님에 대한 신앙(faith in the Lord)을 의미합니다. ‘(he)는 주님 자신(the Lord Himself)을 의미합니다. ‘뱀의 머리는 일반적으로는 악의 지배(dominion of evil), 특별히는 자기 사랑의 지배를 의미합니다. ‘상하게 하다(trample upon)는 그것을 낮추고 억누르는 것(depression)을 의미하며, 그 결과 뱀은 배로 기어가고 흙을 먹게됩니다. 그리고 발꿈치는 가장 낮은 자연적 차원(the lowest natural), 곧 육체적인 것(the corporeal)을 의미하는데, 뱀은 바로 이것을 상하게(bruise) 할 것입니다. Everyone is aware that this is the first prophecy of the Lord’s advent into the world; it appears indeed clearly from the words themselves, and therefore from them and from the prophets even the Jews knew that a messiah was to come. Hitherto however no one has understood what is specifically meant by the “serpent,” the “woman,” the “serpent’s seed,” the “woman’s seed,” the “head of the serpent which was to be trodden upon,” and the “heel which the serpent should bruise.” They must therefore be explained. By the “serpent” is here meant all evil in general, and specifically the love of self; by the “woman” is meant the church; by the “seed of the serpent,” all infidelity; by the “seed of the woman,” faith in the Lord; by “he,” the Lord himself; by the “head of the serpent,” the dominion of evil in general, and specifically that of the love of self; by to “trample upon,” depression, so that it should “go upon the belly and eat dust”; and by the “heel,” the lowest natural (as the corporeal), which the serpent should “bruise.”

 

 

해설

 

AC.250은 창3:15 전체에 대한 스베덴보리의 핵심 해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뱀의 저주와 감각적 인간의 타락을 설명해 왔지만, 이제는 이 말씀이 단순한 타락의 기록이 아니라 장차 오실 주님에 대한 최초의 복음임을 밝힙니다.

 

특히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역사 속의 한 사건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영적 역사와 주님의 구속 사역을 예언하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여기 등장하는 모든 표현은 상응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모든 악, 특히 자기 사랑을 의미합니다. 왜 자기 사랑이 특별히 언급되는가 하면, 지금까지 AC.229-243에서 계속 설명된 것처럼 태고교회 후손들의 근본적인 타락 원인이 바로 자기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사랑은 인간을 주님으로부터 떼어 놓고 자기 자신을 중심에 놓게 만듭니다.

 

여자’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교회는 진리와 선을 받아들이고 주님과 결합하는 존재로 묘사되기 때문에 종종 여성으로 상징됩니다. 따라서 여기서 여자는 단순히 하와 개인이 아니라, 장차 주님을 받아들일 교회를 의미합니다.

 

뱀의 후손’은 모든 불신을 의미합니다. 불신은 단순히 믿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주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신뢰하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뱀의 후손, 곧 뱀의 씨는 자기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거짓과 불신 전체를 가리킵니다.

 

반대로 ‘여자의 후손’, 곧 ‘여자의 씨’는 주님에 대한 신앙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신앙의 근원은 궁극적으로 주님 자신이시므로, 스베덴보리는 이어서 ‘(he)가 곧 주님 자신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여자의 씨는 단순한 인간적 신앙이 아니라, 장차 세상에 오실 주님과 그분에게서 나오는 참된 신앙을 가리킵니다.

 

뱀의 머리’는 악의 지배를 의미합니다. 특히 자기 사랑이 인간 안에서 왕 노릇 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머리는 지배와 통치를 상징하므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은 악의 통치권을 깨뜨리는 것을 뜻합니다.

 

상하게 하다(trample upon)는 완전히 없애 버린다는 뜻보다 억누르고 복종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그것을 ‘낮추고 억압하는 것(depression)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결과 뱀은 더 이상 높이 들리지 못하고, ‘배로 기어가며 흙을 먹는’ 상태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발꿈치(heel)는 인간의 가장 낮은 자연적 차원, 곧 육체적 차원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인간 존재의 가장 바깥 부분입니다. 따라서 뱀이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는 것은 악이 인간의 외적 삶과 자연적 차원에서는 여전히 공격과 시험을 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AC.250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창3:15은 단순히 뱀과 여자의 싸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랑과 주님 사이의 영원한 싸움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뱀은 악과 자기 사랑을, 여자는 교회를, 여자의 씨는 주님과 그분에게서 오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결국 악의 머리, 곧 악의 지배 자체를 꺾으실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악은 인간의 가장 바깥 차원인 ‘발꿈치’를 공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베덴보리에게 이 구절은 성경 전체에서 처음 나타나는 메시아 예언일 뿐 아니라, 인류 구원의 역사 전체를 압축하여 보여주는 위대한 예언인 것입니다.

 

 

 

AC.251, 창3:15, ‘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1‘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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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9, 창3:14, ‘흙’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창3:14)AC.249‘평생 흙을 먹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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