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17.심화

 

5. ‘왕상10:1-2

 

1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2예루살렘에 이르니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왕상10:1, 2)

 

 

이 구절이 AC.117에서 참조되는 이유는, ‘스바의 여왕’과 그녀가 가져온 ‘금과 보석과 향품’이라는 장면을 통해 ‘인식의 영역, 곧 이해가 참된 지혜를 향해 나아와 시험받고, 결국 그것을 인정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먼저 ‘스바의 여왕’은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상응적으로는 ‘선과 진리에 대한 풍부한 인식, 곧 이해 안에 있는 인식의 상태’를 대표합니다. 스바는 앞선 여러 본문에서처럼 사랑의 선과 그로부터 나온 것들과 연결되지만, 여기서는 그것이 ‘솔로몬을 시험하러 오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인식이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라, ‘참된 지혜가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때 ‘솔로몬’은 분명히 ‘주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대표합니다. 그러므로 이 만남은 단순한 왕과 여왕의 만남이 아니라, ‘인간의 이해와 인식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참된 지혜와 마주하는 장면’입니다. ‘어려운 문제로 시험한다’는 표현은, 이해가 자기 안의 모든 의문과 생각을 가지고 진리를 시험해 보는 과정을 뜻합니다.

 

그녀가 가져온 ‘향품과 많은 금과 보석’도 중요합니다. 금은 사랑의 선, 보석은 신앙의 진리, 향품은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는 기쁨과 경배를 의미합니다. 즉, 그녀는 단순히 물질을 들고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모든 선과 진리, 그리고 인식의 내용들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 말한다’는 것은, 이해가 자기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드러내어 진리 앞에 놓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 장면의 결론은 명확합니다. 인식은 스스로 완전한 것이 아니라, ‘참된 지혜 앞에서 시험되고, 그 지혜를 인정함으로써 비로소 질서 안에 들어갑니다’. 이는 AC.117의 핵심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기혼이 의미하는 ‘인식’은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지혜에 종속될 때에만 참된 것이 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이 참조되는 이유는, 인식의 영역이 단순히 왜곡되거나 거래되는 모습만이 아니라, 이렇게 ‘주님을 향해 나아와 시험받고, 결국 그 지혜를 인정하며 질서 속으로 들어가는 긍정적 과정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 이해와 인식은 주님께 맞서 독립하려 할 때는 혼란이 되지만, 주님께 나아가 그분의 지혜를 인정할 때는 참된 신앙의 통로가 된다는 점을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AC.117, 창2:13, '천적 인간의 이해, 기혼 : 인식이 예물이 되는'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창2:13) AC.117 또한 ‘구스 땅’(land of Cush), 곧 에티오피아는 금과 보석, 향료가 풍부하였는데, 이것들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선과 진리,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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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7, 심화 4, ‘시72:7, 10’

AC.117.심화 4. ‘시72:7, 10’ 7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10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시72: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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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72:7, 10

 

7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10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72:7, 10) In his days shall the righteous flourish, and abundance of peace until there shall be no moon; the kings of Tarshish and of the isles shall bring presents; the kings of Sheba and Seba shall offer a gift (Ps. 72:7, 10).

 

 

이 구절이 AC.117에 인용된 이유는, ‘스바와 시바’, 그리고 ‘왕들이 예물을 드린다’는 표현을 통해 ‘인식과 진리의 영역이 주님께로 돌아와 바르게 질서 지어질 때의 상태’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이 시편은 주님의 나라, 곧 참된 왕의 통치 상태를 묘사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의인이 흥왕하고 평강이 풍성하다’는 것은 단순한 도덕적 번영이 아니라, ‘사랑과 신앙이 올바른 질서 안에서 살아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때의 ‘평강’은 외적 평화가 아니라, 의지와 이해가 조화를 이루는 내적 평화입니다.

 

이어 ‘다시스와 섬의 왕들’, ‘스바와 시바 왕들’이 등장합니다. 상응에서 ‘왕들’은 진리, 특히 이해 안에 있는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스바와 시바’는 앞선 여러 구절들에서 보았듯이, ‘사랑의 선과 그것에 속한 것들, 그리고 그로부터 나온 인식과 풍요’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이 장면은, ‘여러 차원의 진리와 인식들이 주님께로 나아와 예물을 드리는 상태’를 말합니다.

 

여기서 ‘예물을 드린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것은 물질적 헌납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진리와 인식, 이해의 모든 것을 주님께 돌려드리는 상태’, 곧 그것들이 더 이상 자기 소유나 자랑이 아니라, 주님께 속한 것임을 인정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 점에서 이 구절은 앞서 인용된 다른 본문들과 대비를 이룹니다. 예를 들어, 두로의 상업 장면에서는 보석과 금이 ‘거래’되었습니다. 즉, 인식과 진리가 자기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같은 영역의 것들이 ‘예물’로 드려집니다. 다시 말해, ‘인식과 진리가 주님께 종속되고, 올바른 질서로 회복된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이 AC.117에 인용된 이유는 분명합니다. 기혼이 의미하는 ‘인식의 영역’은 타락하면 거래의 도구가 되지만, 회복되면 이렇게 ‘주님께 드려지는 예물, 곧 참된 신앙의 표현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같은 ‘금과 보석’, 같은 ‘인식과 진리’라도, 그것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상태가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인용입니다.

 

 

 

AC.117, 심화 5, ‘왕상10:1-2’

AC.117.심화 5. ‘왕상10:1-2’ 1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2예루살렘에 이르니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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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7, 심화 3, ‘겔27:22’

AC.117.심화 3. ‘겔27:22’ 스바와 라아마의 상인들도 너의 상인들이 됨이여 각종 극상품 향 재료와 각종 보석과 황금으로 네 물품을 바꾸어 갔도다 (겔27:22) The merchants of Sheba and Raamah, these were th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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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7:22

 

스바와 라아마의 상인들도 너의 상인들이 됨이여 각종 극상품 향 재료와 각종 보석과 황금으로 네 물품을 바꾸어 갔도다 (27:22) The merchants of Sheba and Raamah, these were thy merchants, in the chief of all spices, and in every precious stone, and in gold (Ezek. 27:22),

 

 

이 구절이 AC.117에 인용된 이유는, ‘스바와 라아마’, 그리고 ‘보석과 금’이라는 표현을 통해 ‘인식(기혼의 영역)이 어떻게 참되게도, 왜곡되게도 사용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이 본문은 두로에 대한 말씀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두로는 상응에서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지식과 인식, 곧 진리들을 다루는 영역’을 뜻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것이 ‘상인들’에 의해 거래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상인은 사고파는 자이므로, 이는 진리와 인식이 ‘생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익과 목적을 위한 것’으로 사용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제 ‘스바와 라아마’가 등장합니다. 스바는 앞선 AC.113에서도 보았듯이, 본래는 ‘사랑의 선과 그로부터 나온 좋은 것들’과 연결되는 긍정적 상응을 갖습니다. 라아마 역시 그 계열에 속한 것으로, 선과 진리의 영역과 관련된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져오는 물품이 ‘향 재료, 보석, ’입니다. 이것들은 각각 ‘사랑에서 나온 것들의 기쁨, 신앙의 진리, 사랑의 선’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상업’, 곧 거래의 맥락 안에 놓여 있다는 점입니다. 즉, 본래 주님으로부터 유입되어 생명을 살리는 데 쓰여야 할 선과 진리, 인식들이, ‘외적 목적과 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상태’로 전락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왜곡된 인식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이 점이 AC.117의 흐름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기혼은 선과 진리에 대한 인식, 곧 이해의 영역을 의미하지만, 그 인식은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랑과 신앙 안에서 사용될 때는 살아 있는 것이 되지만, 외적 목적과 자기 중심성에 종속될 때는 이렇게 ‘거래되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 분명합니다. ‘보석과 금’ 같은 거룩한 상응들조차, 그 출처와 사용이 바뀌면 ‘참된 생명의 요소가 아니라, 외적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 인식과 진리는 그 자체로 거룩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나오고, 무엇을 위해 사용되는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하는 인용입니다.

 

 

 

AC.117, 심화 4, ‘시72:7, 10’

AC.117.심화 4. ‘시72:7, 10’ 7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10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시72: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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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7, 심화 2, ‘단11:43’

AC.117.심화 2. ‘단11:43’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은과 모든 보물을 차지할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단11:43) He shall have power over the treasures of gold and of silver, and over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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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1:43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은과 모든 보물을 차지할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11:43) He shall have power over the treasures of gold and of silver, and over all the desirable things of Egypt; and the Lybians and the Ethiopians shall be under his steps, (Dan. 11:43)

 

 

이 구절이 AC.117에 인용된 이유는, ‘애굽’과 ‘구스’가 각각 ‘외적 지식과 내적 인식의 영역’을 뜻하며, 그것들이 어떻게 왜곡되고 종속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이 말씀에서 ‘애굽의 금과 은, 모든 보물’은 단순한 재물이 아니라, 말씀의 상응에 따라 ‘외적 지식과 그 안에 담긴 선과 진리의 요소들’, 곧 기억 지식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애굽은 늘 외적 인간, 특히 감각과 경험에서 모은 지식을 상징하는데, 그 지식 안에도 본래는 선과 진리의 흔적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것이 ‘권세 아래 놓인다’고 말합니다. 이는 외적 지식이 본래의 질서를 잃고, 다른 힘에 의해 지배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어 ‘리비아와 구스’가 나옵니다. 스베덴보리의 용법에서 구스는 단순한 민족이 아니라, ‘마음의 기능, 특히 이해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식의 영역’, 곧 AC.116에서 말한 ‘선과 진리에 대한 인식(cognitio)’과 연결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구스가 ‘그의 시종이 된다’, 곧 ‘발 아래 놓인다’고 표현됩니다. 이는 이해의 기능, 인식의 능력이 본래 주님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왜곡된 중심에 종속되어 버린 상태’를 뜻합니다.

 

이 구조를 함께 보면 분명해집니다. 외적 지식(애굽)과 내적 인식(구스)이 모두 하나의 잘못된 중심 아래 놓이게 되는 상태, 곧 ‘질서가 뒤집힌 상태’가 묘사되고 있습니다. 본래의 질서에서는 사랑에서 신앙으로, 신앙에서 이해와 인식으로 흐르며,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유입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반대로, 외적 지식과 인식이 주님이 아닌 다른 중심에 의해 지배됩니다. 이것이 바로 스베덴보리가 반복해서 말하는 ‘거꾸로 된 질서’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이 AC.117에 인용된 이유는, 기혼이 의미하는 ‘인식의 영역’이 항상 선하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중심 아래 놓일 때는 왜곡되고 종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이해와 인식 자체는 중립적인 능력이 아니라, 그것이 어디에서 유입을 받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상태가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인용입니다.

 

 

 

AC.117, 심화 3, ‘겔27:22’

AC.117.심화 3. ‘겔27:22’ 스바와 라아마의 상인들도 너의 상인들이 됨이여 각종 극상품 향 재료와 각종 보석과 황금으로 네 물품을 바꾸어 갔도다 (겔27:22) The merchants of Sheba and Raamah, these were th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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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7, 심화 1, ‘습3:5, 9-10’

AC.117.심화 1. ‘습3:5, 9-10’ 5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9그때에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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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5, 9-10

 

5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9그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10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바칠지라 (3:5, 9-10) In the morning he will give his judgment for light; for then will I turn to the people with a clear language, that they may all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to serve him with one shoulder; from the passage of the rivers of Cush my suppliants shall bring mine offering. (Zeph. 3:5, 9–10)

 

 

이 구절이 AC.117에 인용된 이유는, ‘구스’와 ‘구스의 강들’이 단순한 지리적 장소가 아니라 ‘이해의 영역, 곧 인식이 형성되고 정결케 되는 자리’를 뜻하며, 그 인식이 주님께로 돌이켜질 때, 어떻게 회복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 본문에서 핵심은 ‘입술을 깨끗하게 한다’는 표현입니다. 입술은 말씀에서 단순한 말 기관이 아니라 ‘고백’, 곧 신앙의 표현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깨끗하게 된다’는 것은, 사람이 가지고 있던 혼탁한 인식, 뒤섞인 이해가 정결해져서, ‘참된 선과 진리를 바르게 인식하고 고백하게 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바로 AC.116에서 말한 ‘선과 진리에 대한 인식(cognitio)’이 정돈되는 과정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이어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기서 ‘한 가지’라는 것은 외적 통일이 아니라, ‘의지와 이해가 하나로 합해진 상태’, 곧 사랑과 신앙이 분리되지 않고, 함께 작동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는 기혼이 의미하는 이해의 영역이,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결합된 상태로 회복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구스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온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스베덴보리의 상응에서 ‘구스’는 마음의 기능, 특히 이해의 능력과 연결되어 있고, ‘’은 그 이해 안으로 흘러드는 지혜의 흐름을 뜻합니다. 따라서 ‘구스 강 건너편’이라는 말은, ‘이해의 영역 깊은 곳에서, 혹은 그 바깥까지 퍼져 있던 인식들이 주님께로 되돌아오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이 구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람의 이해와 인식이 혼탁하여 불의와 왜곡 속에 있지만, 주님께서 그것을 밝히시고 정결케 하실 때, 그 인식은 다시 주님께로 돌아와 ‘예물’이 됩니다. 여기서 예물은 외적 제사가 아니라, ‘정결해진 인식과 고백, 곧 주님께 드려지는 참된 신앙의 표현’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이 AC.117에 인용된 이유는 분명합니다. 기혼, 곧 이해의 강과 그 영역인 구스가 단순한 ‘지적 능력’이 아니라, ‘정결케 될 수도 있고, 왜곡될 수도 있는 인식의 자리이며, 그 인식이 주님께로 돌이켜질 때, 비로소 참된 신앙의 고백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AC.117, 심화 2, ‘단11:43’

AC.117.심화 2. ‘단11:43’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은과 모든 보물을 차지할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단11:43) He shall have power over the treasures of gold and of silver, and over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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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7, 창2:13, '천적 인간의 이해, 기혼 : 인식이 예물이 되는'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창2:13) AC.117 또한 ‘구스 땅’(land of Cush), 곧 에티오피아는 금과 보석, 향료가 풍부하였는데, 이것들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선과 진리,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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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2:13)

 

AC.117

 

또한 구스 땅(land of Cush), 곧 에티오피아는 금과 보석, 향료가 풍부하였는데, 이것들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선과 진리, 그리고 그로부터 나온 향기로운 것들, 곧 사랑과 신앙에 대한 인식들에 속한 것들을 의미합니다. 이는 위에서 인용한 이사야서 60 6, 마태복음 2 1절과 11, 시편 72 15절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The “land of Cush,” or Ethiopia, moreover, abounded in gold, precious stones, and spices, which, as before said, signify good, truth, and the things thence derived which are grateful, such as are those of the knowledges of love and faith. This is evident from the passages above cited (n. 113) from Isa. 60:6; Matt. 2:1, 11; Ps. 72:15.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60:6)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2:1, 11)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72:15)

 

말씀에서 구스(Cush) 에티오피아(Ethiopia), 또한 스바(Sheba)가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는 것도 예언서들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데, 스바냐에서는 구스의 강들(rivers of Cush)도 함께 언급됩니다. That similar things are meant in the Word by “Cush” or “Ethiopia,” and also by “Sheba,” is evident from the prophets, as in Zephaniah, where also the “rivers of Cush” are mentioned:

 

5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9그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10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바칠지라 (3:5, 9-10) In the morning he will give his judgment for light; for then will I turn to the people with a clear language, that they may all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to serve him with one shoulder; from the passage of the rivers of Cush my suppliants shall bring mine offering. (Zeph. 3:5, 9–10)

 

또 다니엘에서는 북방 왕과 남방 왕에 대하여 말하면서, And in Daniel, speaking of the king of the north and of the south: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은과 모든 보물을 차지할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11:43) He shall have power over the treasures of gold and of silver, and over all the desirable things of Egypt; and the Lybians and the Ethiopians shall be under his steps, (Dan. 11:43)

 

여기서 애굽(Egypt)은 기억 지식들을 의미하고, ‘에티오피아 사람들(Ethiopians)은 인식들을 의미합니다. where “Egypt” denotes memory-knowledges, and the “Ethiopians” knowledges.

 

[2] 또한 에스겔에서는 말합니다. So in Ezekiel:

 

스바와 라아마의 상인들도 너의 상인들이 됨이여 각종 극상품 향 재료와 각종 보석과 황금으로 네 물품을 바꾸어 갔도다 (27:22) The merchants of Sheba and Raamah, these were thy merchants, in the chief of all spices, and in every precious stone, and in gold (Ezek. 27:22),

 

이들 또한 같은 방식으로 신앙에 대한 인식들을 의미합니다. 시편에서는 주님에 대하여, 곧 천적 인간에 대하여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by whom in like manner are signified knowledges [cognitiones] of faith. So in David, speaking of the Lord, consequently of the celestial man:

 

7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10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72:7, 10) In his days shall the righteous flourish, and abundance of peace until there shall be no moon; the kings of Tarshish and of the isles shall bring presents; the kings of Sheba and Seba shall offer a gift (Ps. 72:7, 10).

 

이 말씀들은 앞뒤 문맥으로 보아 분명히 신앙의 천적인 것들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것들은 솔로몬에게 와서 어려운 문제들을 물으며 향료와 금과 보석들을 가져온 스바 여왕을 통해서도 동일하게 의미하고 있습니다 (왕상10:1, 2). These words, as is plain from their connection with the preceding and subsequent verses, signify celestial things of faith. Similar things were signified by the queen of Sheba, who came to Solomon, and proposed hard questions, and brought him spices, gold, and precious stones (1 Kings 10:1–2).

 

1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2예루살렘에 이르니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왕상10:1, 2)

 

왜냐하면 말씀의 역사적 부분들에 담긴 모든 것들은, 예언서들과 마찬가지로, 아르카나를 의미, 표상 및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For all things contained in the historical parts of the Word, as well as in the prophets, signify, represent, and involve arcana.

 

 

해설

 

이 글은 ‘둘째 강 기혼’이 의미하는 ‘선과 진리에 대한 인식’이 어디에서 어떻게 풍성해지는지를, 지명과 민족의 상응을 통해 매우 구체적으로 풀어 줍니다. AC.116에서 구스 땅이 마음, 곧 이해의 기능을 의미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AC.117은 왜 하필 ‘구스’인가를 설명하는 자리입니다.

 

구스(에티오피아)는 성경 전반에서 금과 보석, 향료가 풍부한 땅으로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이는 단순한 역사 정보가 아니라, 상응 언어입니다. 금은 사랑의 선, 보석은 신앙의 진리, 향료는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는 기쁨과 향기로운 것들을 의미하는데, 그러니까 구스는 ‘선과 진리에 대한 인식이 풍성한 이해의 영역’을 표상하기 때문입니다.

 

스바냐에서 ‘구스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라는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강은 지혜의 흐름이고, 예물은 주님께 드려지는 신앙과 사랑의 인식들입니다. 이해의 영역에서 길러진 인식들이, 지혜의 흐름을 따라 주님께로 돌아가는 장면입니다. 이는 천적 질서에서 이해가 자기 목적을 가지지 않고, ‘주님을 향해 봉사하는 기능’임을 보여 줍니다.

 

다니엘의 예언은 이 구조를 더 분명히 합니다. 애굽은 기억 지식, 곧 가장 외적 지식의 저장고를 의미하고, 에티오피아는 그 지식들 가운데서 선과 진리에 속한 인식들을 의미합니다. 기억 지식 자체는 중립적이지만, 그것이 에티오피아, 곧 이해의 인식으로 정리될 때에만 영적 질서 안으로 들어옵니다.

 

에스겔에서 스바와 라아마의 상인들이 향료와 보석과 금으로 장사한다는 표현도 같은 맥락입니다. 장사는 교환을 의미하며, 이는 ‘인식의 전달과 소통’을 뜻합니다. 신앙의 인식들은 개인 안에 머무르지 않고, 교회와 공동체 안에서 오가며 풍성해집니다.

 

시편 72편은 이 모든 것을 주님, 곧 천적 인간의 통치로 귀결시킵니다. 스바와 세바의 왕들이 예물을 드린다는 것은, 이해와 인식의 최고 차원이 주님께 복종하고 헌신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은 진리를, ‘예물’은 사랑과 신앙에서 나온 인식을 뜻합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에게 와서 어려운 문제를 묻고 귀한 예물을 드린 이야기는, 이 모든 상응을 역사적 장면으로 압축해 보여 줍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스바 여왕은 인식을 각각 표상합니다. 인식은 지혜를 시험하지만, 결국 지혜를 인정하고, 예물을 드립니다. 이것이 천적 질서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역사서도 예언서와 동일하게 아르카나를 담고 있다고 말이지요. 이는 창세기 2장의 강 이야기뿐 아니라, ‘성경 전체를 읽는 열쇠’를 다시 한번 확인해 줍니다.

 

AC.117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해의 인식들이 풍성해질수록, 그것들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지혜이신 주님께 예물로 돌아가며, 이 질서 안에서만 참된 지성과 평강이 이루어진다고 말입니다.  

 

 

심화

 

1. ‘3:5, 9-10

 

 

AC.117, 심화 1, ‘습3:5, 9-10’

AC.117.심화 1. ‘습3:5, 9-10’ 5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9그때에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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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1:43

 

 

AC.117, 심화 2, ‘단11:43’

AC.117.심화 2. ‘단11:43’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은과 모든 보물을 차지할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단11:43) He shall have power over the treasures of gold and of silver, and over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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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7:22

 

 

AC.117, 심화 3, ‘겔27:22’

AC.117.심화 3. ‘겔27:22’ 스바와 라아마의 상인들도 너의 상인들이 됨이여 각종 극상품 향 재료와 각종 보석과 황금으로 네 물품을 바꾸어 갔도다 (겔27:22) The merchants of Sheba and Raamah, these were th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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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72:7, 10

 

 

AC.117, 심화 4, ‘시72:7, 10’

AC.117.심화 4. ‘시72:7, 10’ 7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10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시72: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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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왕상10:1-2

 

 

AC.117, 심화 5, ‘왕상10:1-2’

AC.117.심화 5. ‘왕상10:1-2’ 1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2예루살렘에 이르니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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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6, 창2:13, '천적 인간의 이해, 기혼 : 사랑에서 나온 것을 알아보는 능력' (AC.116-117)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창2:13) AC.116 ‘둘째 강’(second river), 곧 ‘기혼’(Gihon)은 선과 진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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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6.심화

 

1. ‘knowledge 인식으로 번역

 

위 본문에서 기혼을 설명하면서 선과 진리에 속한 모든 것들, 다시 말해 사랑과 신앙에 속한 모든 것들에 대한 인식(knowledge [cognitio])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왜 영어 knowledge 인식으로 번역하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여기서 knowledge’를 지식’이 아니라 인식’으로 번역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핵심은 이 단어가 가리키는 수준과 기능’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식’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지식(memory-knowledge, scientifica)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랑과 신앙에서 흘러온 선과 진리를 알아보고 분별하는 이해의 작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같은 knowledge 계열 단어를 쓰지만, 라틴어 원어에서는 cognitio’가 사용되며, 이것은 단순 축적된 지식이라기보다 알아차림, 인지, 식별’에 가까운 의미를 갖습니다. 그래서 한국어로 옮길 때, ‘지식’이라고 하면 너무 외적이고 정적인 느낌이 강해지고, ‘인식’이라고 해야 그 내적이고 동적인 성격’이 살아납니다.

 

특히 이 문맥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기혼은 이해’의 영역을 다루고 있는데, 이 이해는 외부에서 자료를 모아 정리하는 기능이 아니라, ‘이미 주님으로부터 유입된 사랑과 신앙의 내용들을 이해의 빛 안에서 알아보는 기능’’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지식을 쌓는다’기보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참인지 알아본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인식’이라는 번역이 더 정확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스베덴보리가 지식’이라는 말을 따로 구분해서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그는 mere memory-knowledge’라는 표현으로, 감각과 경험에 근거한 외적 지식을 따로 비판적으로 다룹니다. 만약 여기서도 같은 지식’이라는 단어를 써 버리면, 기혼이 의미하는 고차원의 이해 작용과 그 기억 지식’이 혼동됩니다. 그래서 번역에서는 의도적으로 구분하여, 하나는 지식’, 하나는 인식’으로 나누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정리하면, 여기서 knowledge’를 인식’으로 번역하는 이유는 이것이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신앙에서 나온 선과 진리를 이해 안에서 알아보고 분별하는 살아 있는 작용’이기 때문입니다. 즉, ‘지식’이 저장이라면, ‘인식’은 작동이며, 기혼은 바로 그 작동하는 이해의 강을 가리킵니다.

 

 

 

AC.116, 창2:13, '천적 인간의 이해, 기혼 : 사랑에서 나온 것을 알아보는 능력' (AC.116-117)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창2:13) AC.116 ‘둘째 강’(second river), 곧 ‘기혼’(Gihon)은 선과 진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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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2:13)

 

AC.116

 

둘째 강(second river),  기혼(Gihon)은 선과 진리에 속한 모든 것들, 다시 말해 사랑과 신앙에 속한 모든 것들에 대한 인식(knowledge [cognitio])을 의미합니다. ‘구스 땅(land of Cush)은 마음(mind), 곧 역량(faculty, 능력, 기능)을 의미합니다. 마음은 의지와 이해로 이루어져 있으며, 첫째 강에 대해 말한 것은 의지에 관한 것이고, 이 둘째 강에 대해 말한 것은 이해에 관한 것으로서, 여기에 선과 진리에 대한 인식들이 속합니다. The “second river,” which is called “Gihon,” signifies the knowledge [cognitio] of all things that belong to the good and the true, or to love and faith, and the “land of Cush” signifies the mind or faculty. The mind is constituted of the will and the understanding; and what is said of the first river has reference to the will, and what of this one to the understanding to which belong the knowledges [cognitiones] of good and of truth.

 

 

해설

 

이 글은 에덴에서 흘러나온 하나의 지혜의 강이 ‘의지와 이해라는 두 축’으로 어떻게 분화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AC.110에서 첫째 강 비손은 사랑에서 나온 신앙의 지성으로, 곧 의지의 영역과 직접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AC.116은 그 다음 단계로, 이해의 영역을 다룹니다.

 

기혼’이 의미하는 것은 선과 진리에 대한 ‘인식(knowledge [cognitio])입니다. 여기서 인식은 단순한 정보 축적이나 기억 지식이 아니라, ‘사랑과 신앙에 속한 것들을 분별하고 알아보는 이해의 능력’을 뜻합니다. 천적 인간에게서 이해는 독립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며, 언제나 사랑과 신앙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받아 정리하고 밝히는 역할을 합니다.

 

구스 땅’이 마음이나 역량(faculty, 능력, 기능)을 의미한다는 설명은, 이 인식이 머무는 자리를 분명히 합니다. 마음은 하나의 단일한 능력이 아니라, 의지와 이해라는 두 기능으로 구성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매우 일관되게 유지합니다. 인간의 영적 구조는 언제나 이 둘의 상호작용으로 설명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다시 등장합니다. 첫째 강에 대한 설명은 의지에 속하고, 둘째 강에 대한 설명은 이해에 속합니다. 의지는 사랑을 담는 그릇이고, 이해는 그 사랑과 신앙에 속한 것들을 ‘인식으로 풀어내는 그릇’입니다. 그래서 둘째 강은 ‘모든 것들에 대한 인식’으로 정의됩니다.

 

이 구조를 놓치면, 두 강의 차이가 흐려집니다. 비손은 사랑에서 직접 흘러나온 신앙의 지성이라면, 기혼은 그 사랑과 신앙에 속한 것들을 ‘이해 차원에서 폭넓게 인식하는 능력’입니다. 하나는 근원에 가깝고, 다른 하나는 전개에 가깝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 인식들이 여전히 ‘천적 질서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AC.111–112에서 강조된 바와 같이,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지 않은 인식은 참된 것이 아니라는 선언과 연결됩니다. 기혼의 인식은 세상 지식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유입된 선과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AC.116은 이렇게 말합니다. 천적 인간에게서 이해는 사랑을 대신하여 판단하지 않으며, 사랑에서 흘러온 선과 진리를 밝히고 정리하는 조용한 강으로 흐른다고 말입니다.  

 

 

심화

 

1. ‘knowledge인식으로 번역

 

 

AC.116, 심화 1, ‘knowledge’를 ‘인식’으로 번역

AC.116.심화 1. ‘knowledge’를 ‘인식’으로 번역 위 본문에서 기혼을 설명하면서 ‘선과 진리에 속한 모든 것들, 다시 말해 사랑과 신앙에 속한 모든 것들에 대한 인식(knowledge [cognitio])’이라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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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7, 창2:13, '천적 인간의 이해, 기혼 : 인식이 예물이 되는'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창2:13) AC.117 또한 ‘구스 땅’(land of Cush), 곧 에티오피아는 금과 보석, 향료가 풍부하였는데, 이것들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선과 진리,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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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5, 창2:11-12, '천적 인간의 인식 : 의미만 봄'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5 태고의 사람들은 ‘땅들’(lands)에 대하여 말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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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5.심화

 

2. ‘28:11

 

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 (28:11)

 

 

이 구절이 AC.115에서 참조되는 이유는, ‘보석에 이름이 새겨진다’는 표현을 통해 ‘진리가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생명과 상태를 담은 고정된 실재’임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출애굽기 28장에서는 보석 자체보다도 ‘그 위에 이름을 도장처럼 새긴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도장은 임의로 바뀌는 표시가 아니라, 정체성과 소속을 확정하는 표지입니다. 따라서 보석에 이름이 새겨졌다는 것은, 각각의 보석, 곧 각각의 진리가 막연한 지식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구별된 상태’를 담고 있다는 뜻입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신앙의 진리들이 각기 다른 성질과 기능을 가지며, 분명히 구별된 채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또한 이 이름들이 ‘이스라엘 아들들’, 곧 열두 지파의 이름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는 신앙의 모든 다양한 형태와 상태들이 각각의 진리로 보존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진리는 하나로 뭉뚱그려진 추상이 아니라, 삶의 다양한 상태 속에서 각각 ‘이름을 가진 채’ 살아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이 보석들이 ‘금 테에 물려 있다’는 사실이 함께 강조됩니다. 금은 사랑의 선을 의미하므로, 이름이 새겨진 보석들은 ‘사랑 안에 고정된 진리들’을 뜻합니다. 즉 진리는 사랑과 분리되어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 자리 잡고 그 안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결국 이 구절은 AC.115의 논지를 이렇게 뒷받침합니다. 진리는 단순히 아는 내용이 아니라, 각기 구별된 상태로 사람 안에 새겨지는 것이며, 그 모든 진리는 사랑이라는 중심 안에서 질서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본문을 통해 ‘보석 = 신앙의 진리’라는 상응을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름이 새겨진 보석 = 살아 있는 상태로 확정된 진리’라는 점까지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AC.115, 심화 1, ‘창25:18’

AC.115.심화 1. ‘창25:18’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 (창25:18) 이 구절이 AC.115에 인용된 이유는, 앞에서 설명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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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5.심화

 

1. ‘25:18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 (25:18)

 

 

이 구절이 AC.115에 인용된 이유는, 앞에서 설명된 ‘하윌라’라는 상응이 단순한 지명 해석이 아니라, 말씀 전체에서 일관되게 사용되는 ‘내적 상태의 표지’임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창세기 2장에서 ‘하윌라 땅’은 마음, 곧 내적 영역을 의미하며, 그 안에 ‘’이 있다는 것은 그 마음 안에 사랑의 선이 존재함을 뜻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5장에서는 같은 ‘하윌라’가 ‘앗수르’와 ‘애굽’ 사이에 놓인 영역으로 등장합니다. 여기서 ‘애굽’은 기억 지식, ‘앗수르’는 이성 또는 추론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하윌라’는 그 둘 사이에 위치한 인간의 내적 자리, 곧 마음의 영역을 다시 한번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구절의 핵심은 지리 설명이 아니라 ‘배치’입니다. 기억 지식과 이성이라는 두 외적 기능 사이에 ‘마음’이 놓여 있다는 것은, 인간의 진짜 중심이 바깥 정보나 논리 자체가 아니라 그보다 더 깊은 내적 자리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즉 사람은 단순히 아는 존재도 아니고, 생각하는 존재만도 아니며, 그 중심에는 ‘사랑이 자리하는 마음’이 있다는 구조를 보여줍니다.

 

또한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다’는 표현은, 이 상태가 단순히 중립적인 위치가 아니라 ‘대면하고 선택하는 자리’임을 암시합니다. 마음은 기억 지식과 이성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 사이에서 방향을 정하는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구절은 이렇게 사용됩니다. 창세기 2장에서 상징적으로 제시된 ‘하윌라’의 의미를, 창세기 25장의 역사적 서술 속에서도 동일하게 확인함으로써, ‘하윌라 = 마음’이라는 상응이 임의적 해석이 아니라 말씀 전체에 흐르는 일관된 구조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AC.115, 심화 2, ‘출28:11’

AC.115.심화 2. ‘출28:11’ 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 (출28:11) 이 구절이 AC.115에서 참조되는 이유는, ‘보석에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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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5, 창2:11-12, '천적 인간의 인식 : 의미만 봄'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5 태고의 사람들은 ‘땅들’(lands)에 대하여 말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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