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07.심화
1. ‘being left to their insane cupidities and persuasions’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상태에 ‘내맡겨졌다’, ‘남겨졌다’는 것은 주님께서 그들을 버리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상태를 허용하심으로써, 더 깊은 거룩한 것들을 모독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막으시는 자비로운 섭리를 뜻합니다. 앞글에서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AC.307 해설)
위 해설 중 이 부분 말인데요, 이미 돌이킬 수는 없고, 그럼 할 수 없이 ‘같은 지옥을 가더라도 덜 심한 지옥을 가도록’ 하셨다는 말로 이해해도 되나요?
네, 스베덴보리의 전체 신학에서는 그렇게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습니다. 다만 표현을 조금 더 정확하게 다듬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지옥을 가더라도 덜 심한 지옥을 가도록’이라는 말은 핵심 취지는 맞지만, 자칫 ‘주님께서 어느 지옥으로 보낼지를 결정하신다’는 뉘앙스를 줄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지옥의 위치나 정도를 주님께서 임의로 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형성한 사랑의 상태가 그에 상응하는 공동체를 찾아간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AC.306, 307의 의미를 스베덴보리식으로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이 이미 자기 사랑과 persuasion 속에 깊이 빠졌더라도, 아직 천국의 가장 깊은 거룩한 것들을 충분히 알지 못한 상태라면, 그 악은 그 정도에서 머뭅니다. 그러나 만일 그런 사람이 천적 진리까지 깊이 알고, 그것을 인정하였다가 다시 의도적으로 부인하고 거스른다면, 그는 ‘profanation’에 빠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한 악보다 훨씬 더 무서운 상태로 봅니다. 선과 악, 진리와 거짓을 한 사람 안에서 뒤섞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사람이 더 깊은 진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으십니다. 이것은 벌을 주기 위한 제한이 아니라, ‘더 악한 상태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보호’입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표현으로 옮기면,
‘같은 지옥을 가더라도 조금이라도 덜 악한 지옥에 머물도록 하시는 주님의 자비’
라는 뜻에 상당히 가깝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렇게 표현하면 더 스베덴보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상태에 이른 사람까지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비록 그가 끝내 지옥을 선택하게 될지라도, 더 깊은 거룩한 것들을 모독하여 훨씬 더 비참한 상태에 이르지 않도록 막으십니다. 그러므로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은 천국의 문을 닫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신이 만든 악보다 더 깊은 악 속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지키시는 마지막 자비의 표상입니다.’
이 표현이 AC.306과 AC.307의 핵심을 가장 잘 담는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것은 스베덴보리 신학의 매우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주님의 섭리는 구원받을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받지 않는 사람에게도 미칩니다.’ 지옥에 가는 사람에게조차도 가능한 한 악을 제한하시고, 가능한 한 고통을 줄이시며, 가능한 한 덜 악한 상태에 머물도록 질서를 세우십니다. 스베덴보리는 여러 저작에서 주님께서 지옥까지도 질서 가운데 다스리신다고 설명하는데, 바로 그 원리가 여기 AC.306, 307에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AC.307, 창3:24, ‘여섯째와 일곱째 후손’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3:24) AC.307 여기서는 홍수로 멸망한 여섯째와 일곱째 후손에 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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