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13.심화

 

4. ‘72:15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72:15) He shall live, and to him shall be given of the gold of Sheba; prayer also shall be made for him continually, and every day shall he bless him (Ps. 72:15).

 

 

이 구절이 AC.113에 인용된 이유는, ‘’이 사랑의 선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주님께 드려지는 왕적 예배의 중심 장면’ 속에서 다시 한번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시편 72편은 겉으로는 왕에 대한 시이지만, 내적 의미에서는 ‘주님과 그분의 나라’를 노래하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린다’는 표현은 단순한 공물이나 정치적 헌납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오는 선이 그 근원이신 주님께 돌아가 드려지는 영적 질서를 뜻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여전히 사랑의 선을 의미하면서도, 그것이 ‘그에게 드려진다’는 방향성을 분명히 한다는 데 있습니다. 사랑의 선은 인간 안에 머무르며 자랑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주님께 향하고, 그분께 속하는 것으로 인정될 때, 참된 의미를 가집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금의 상응을 단순히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선이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 곧 ‘주님께 드려지고, 주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 속에서 완성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또한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한다’는 표현이 이어지는 것은, 금으로 상징되는 사랑의 선이 단발적 행위가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와 삶의 상태’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의 선이 주님께 드려질 때, 그것은 곧 기도와 찬송, 곧 주님과의 끊임없는 연결 상태로 나타납니다. 이는 사랑과 신앙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생명으로 흐르는 천적 질서의 특징입니다.

 

이 구절은 앞서 인용된 이사야 60장과 마태복음 2장의 장면과도 정확히 호응합니다. 스바의 금이 주님께 드려지고, 그와 함께 찬송과 경배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금은 언제나 ‘사랑의 선’이며, 그 선은 ‘주님께 돌아가 드려질 때’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는 동일한 원리를 반복하여 증거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인용을 통해, 금의 상응이 단순한 상징 해석이 아니라, 말씀 전체에 일관되게 흐르는 ‘사랑의 선이 주님께 귀속되는 질서’임을 확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AC.113, 창2:11-12, '금은 사랑의 선 : 말씀 전체에 흐르는 일관된 상응의 증언'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3 말씀에서 지혜의 선,곧 사랑의 선을 ‘금’(gold)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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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3, 심화 3, ‘마2:1, 11’

AC.113.심화 3. ‘마2:1, 11’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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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1, 11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2:1, 11) The wise men from the east, who came to Jesus when he was born, fell down and worshiped him; and when they had opened their treasures, they presented unto him gifts; gold, and frankincense, and myrrh (Matt. 2:1, 11).

 

 

이 구절이 AC.113에 인용된 이유는, ‘금이 사랑의 선을 의미한다’는 상응이 단지 구약의 표상 체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이 세상에 오셨을 때, 실제 사건 속에서 완전히 드러났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드린 세 가지 예물, 곧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우연한 선택이 아니라, 주님께 드려질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세 가지 영적 요소를 상징합니다. 여기서 황금은 사랑의 선, 유향은 신앙에서 나오는 예배와 경외의 향기, 몰약은 가장 외적 차원까지 순종하는 삶과 정결을 의미합니다.

 

특히 이 장면의 핵심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라는 점과 ‘경배하며 드렸다’는 흐름에 있습니다. 동방은 주님을 의미하고, 그쪽에서 온 박사들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빛을 어느 정도라도 받아들인 이들을 상징합니다. 그들이 아기 예수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황금을 드렸다는 것은, 사랑의 선이 그 근원인 주님께로 돌아가 온전히 드려지는 가장 순수한 질서를 보여줍니다. 즉, 금은 소유가 아니라 ‘헌납’이며, 그 헌납은 사랑이 자기 근원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이 점에서 이 구절은 앞서 인용된 다른 본문들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에스겔 28장은 금을 자기 것으로 여기는 왜곡된 상태를 보여주었고, 이사야 60장은 금이 주님께로 모여드는 회복된 상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마태복음의 장면은 그 모든 상응이 ‘주님 앞에서 실제로 성취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금이 사랑의 선이라면, 그 선은 반드시 주님께 경배로 드려질 때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AC.113은 이 구절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금은 사랑의 선이며, 그 선의 가장 참된 표현은 주님을 알아보고, 그분께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동방 박사들의 예물은 단순한 경배의 예식이 아니라, 인간 안에 있는 모든 선과 진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완전한 상응의 실현 장면입니다.

 

 

 

AC.113, 심화 2, ‘사60:6’

AC.113.심화 2. ‘사60:6’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사60:6) The multitude of 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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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60:6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60:6) The multitude of camels shall cover thee, the dromedaries of Midian and Ephah; all they from Sheba shall come, they shall bring gold and incense, and they shall show forth the praises of Jehovah (Isa. 60:6).

 

 

이 구절이 AC.113에 인용된 이유는, ‘’이 사랑의 선을 의미한다는 것을 단순한 정의가 아니라 ‘주님께로 돌아오는 예배의 장면 속에서 살아 있는 상응으로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사야 60장은 겉으로 보면 열방이 시온으로 모여드는 영광의 장면이지만, 내적 의미에서는 사람 안에 주님의 나라가 세워질 때, 모든 외적 요소들이 그 중심으로 질서 있게 모여드는 상태를 묘사합니다. 여기서 스바 사람들이 ‘금과 유향’을 가지고 온다는 것은, 단순한 예물이 아니라 ‘사랑의 선(금)’과 ‘예배의 내적 향기, 곧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는 기쁨과 경외(유향)’가 함께 주님께 드려지는 것을 뜻합니다.

 

특히 중요한 점은, 이 ‘’이 사람 자신에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한다’는 흐름 속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랑의 선이 자기 소유로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 돌아가고, 주님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사용될 때, 비로소 참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앞서 에스겔 28장의 경우가 ‘자기 지혜로 금을 얻었다고 여기는 왜곡된 상태’를 보여주었다면, 이사야 60장은 ‘금이 본래 있어야 할 자리, 곧 주님께 드려지는 상태’를 보여주는 긍정적 장면입니다.

 

또한 낙타와 미디안, 에바, 스바 같은 이름들은 모두 외적 차원의 것들, 곧 기억 지식과 자연적 인식들을 상징하는데, 이것들이 ‘금과 유향을 가지고 온다’는 것은 외적 인간, 곧 겉 사람의 모든 것이 결국 내적 중심, 곧 주님을 향해 정돈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가장 바깥에 있는 지식과 경험들까지도 사랑의 선과 예배의 향기 속으로 들어와 하나의 질서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AC.113의 논지를 이렇게 확증합니다. ‘금은 언제나 사랑의 선을 의미하지만, 그 선이 참되게 드러나는 모습은 주님께로 돌아가며, 그분을 찬송하는 삶 속에서 나타난다.’ 스베덴보리는 이 인용을 통해, 금의 상응을 단순한 의미 규정이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 완성되는 살아 있는 선’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AC.113, 심화 3, ‘마2:1, 11’

AC.113.심화 3. ‘마2:1, 11’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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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3, 심화 1, ‘겔28:4’

AC.113.심화 1. ‘겔28:4’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겔28:4) In thy wisdom and in thine intelligence thou hast gotten thee riches, and hast gotten gold and silver in thy treasures (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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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8:4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28:4) In thy wisdom and in thine intelligence thou hast gotten thee riches, and hast gotten gold and silver in thy treasures (Ezek. 28:4).

 

 

이 구절이 AC.113에 인용된 이유는, ‘’이라는 상징이 단순한 물질적 부가 아니라 ‘지혜의 선, 곧 사랑의 선’을 의미한다는 점을 ‘긍정과 부정, 두 방향에서 동시에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에스겔 28장은 표면적으로는 두로 왕의 번영을 말하지만, 내적 의미에서는 ‘자기 지혜와 자기 지성으로 모든 것을 얻었다고 여기는 인간 상태’를 드러냅니다. 여기서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다’는 말은, 본래라면 주님으로부터 흘러와야 할 ‘사랑의 선(금)’과 ‘신앙의 진리(은)’를, 마치 자기 것으로 소유한 것처럼 착각하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단순히 ‘ = ’이라는 사전적 대응을 증명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셈입니다. ‘금이 사랑의 선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람이 그것을 자기 지혜와 총명으로 얻었다고 말할 때, 그것은 이미 질서가 뒤집힌 상태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즉, 이 구절은 ‘금의 참된 의미’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의미가 왜곡될 때 어떤 영적 상태가 되는지도 함께 보여줍니다.

 

AC.113의 전체 맥락은 ‘금이 사랑의 선을 의미한다’는 것을 성막과 성전의 모든 금 기구들을 통해 확증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 28장의 이 구절은 거기에 하나의 중요한 균형을 더합니다. 곧, 같은 ‘’이라도 그것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인식될 때는 ‘거룩한 선’이 되지만, 인간이 자기 지혜로 얻은 것처럼 여길 때는 ‘타락한 선, 혹은 외형만 선인 것’이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국 이 인용은 이렇게 이해하시면 정확합니다. ‘금은 언제나 사랑의 선을 의미하지만, 그 금을 누구의 것으로 보느냐에 따라, 곧 주님의 것인가, 사람 자신의 것인가에 따라 그 상태의 참됨과 거짓됨이 갈린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통해, 상응의 의미를 단순 정의로 끝내지 않고, ‘인간의 실제 상태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까지 함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AC.113, 심화 2, ‘사60:6’

AC.113.심화 2. ‘사60:6’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사60:6) The multitude of 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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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3, 창2:11-12, '금은 사랑의 선 : 말씀 전체에 흐르는 일관된 상응의 증언'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3 말씀에서 지혜의 선,곧 사랑의 선을 ‘금’(gold)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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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2:11, 12)

 

AC.113

 

말씀에서 지혜의 선,곧 사랑의 선을 (gold)으로 의미하고 표상하는 것보다 더 흔한 것은 없습니다. 언약궤 안에 있던 모든 금과, 성전 안의 금, 금상, 등잔대, 기구들, 그리고 아론의 옷 위에 있던 금은 모두 지혜의 선, 곧 사랑의 선을 의미하고 표상하였습니다. 예언서들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에스겔에서 말하기를, Nothing is more common in the Word than for the good of wisdom or of love to be signified and represented by “gold.” All the gold in the ark, in the temple, in the golden table, in the candlestick, in the vessels, and upon the garments of Aaron, signified and represented the good of wisdom or of love. So also in the prophets, as in Ezekiel: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28:4) In thy wisdom and in thine intelligence thou hast gotten thee riches, and hast gotten gold and silver in thy treasures (Ezek. 28:4).

 

여기서는 지혜와 총명(intelligence)으로부터 금과 은(gold and silver), 곧 선과 진리가 나온다고 분명히 말하는데, 여기서 (silver)은 진리를 의미하며, 이는 언약궤와 성전에서도 동일합니다. 이사야에서도 말합니다. where it is plainly said that from wisdom and intelligence are “gold and silver,” or the good and the true, for “silver” here signifies truth, as it does also in the ark and in the temple. In Isaiah: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60:6) The multitude of camels shall cover thee, the dromedaries of Midian and Ephah; all they from Sheba shall come, they shall bring gold and incense, and they shall show forth the praises of Jehovah (Isa. 60:6).

 

또한 Thus also: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2:1, 11) The wise men from the east, who came to Jesus when he was born, fell down and worshiped him; and when they had opened their treasures, they presented unto him gifts; gold, and frankincense, and myrrh (Matt. 2:1, 11).

 

여기서도 (gold)은 선을 의미하고, ‘유향과 몰약(frankincense and myrrh)은 그레이트한 것들을 의미하는데, 이는 이것들이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여호와의 찬송(the praises of Jehovah)이라 불립니다. 이 때문에 시편도 말하기를, Here also “gold” signifies good; “frankincense and myrrh,” things that are grateful because from love and faith, and which are therefore called “the praises of Jehovah.” Wherefore it is said in David: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72:15) He shall live, and to him shall be given of the gold of Sheba; prayer also shall be made for him continually, and every day shall he bless him (Ps. 72:15).

 

 

해설

 

이 글은 앞서 AC.110–112에서 언급된 ‘’의 의미를, ‘말씀 전체에 걸친 일관된 상응’으로 확증하는 자리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금이 단순히 귀한 금속이어서 상징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말씀의 가장 깊은 층위에서 ‘사랑의 선, 지혜의 선을 나타내는 고정된 표상’이어서임을 보여줍니다.

 

먼저 그는 모세오경의 중심 상징들을 열거합니다. 언약궤, 성전, 상, 등잔대, 기구들, 아론의 옷에 쓰인 금은 모두 우연한 장식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주님과 교회, 곧 인간 안에서 가장 거룩한 것들을 표상하는 기구들이며, 그 핵심을 이루는 재료가 금이라는 사실은, ‘사랑의 선이 모든 거룩함의 본체’임을 말해 줍니다. 진리는 구조를 세우지만, 선은 거기에 생명을 줍니다.

 

에스겔의 인용은 이 원리를 지성의 차원으로 확장합니다. 지혜와 지성으로부터 금과 은을 얻는다는 말은, 선과 진리가 인간의 능력에서 생겨난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온 지혜와 지성이 인간 안에서 그렇게 인식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금은 선, 은은 진리로 분명히 구분됩니다. 이는 선이 중심이고, 진리는 그 선을 드러내는 빛이라는 질서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줍니다.

 

이사야의 ‘스바의 금과 유향’은 이 질서를 예배의 차원으로 옮겨 놓습니다. 금은 사랑의 선이고, 유향은 사랑에서 나온 기쁨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이것들이 함께 ‘여호와의 찬송’이라 불립니다. 참된 찬송은 말이나 음악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과 신앙에서 나온 삶의 향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조는 마태복음의 동방 박사 이야기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그들이 드린 세 가지 예물, 곧 금, 유향, 몰약은 우연한 선물이 아닙니다. 금은 사랑의 선, 유향은 신앙에서 나온 기쁨의 진리, 몰약은 그 선과 진리가 외적 삶에서 나타나는 헌신과 순종을 의미합니다. 이는 곧 ‘천적 인간의 내적 질서가 주님께 드려지는 장면’입니다.

 

다윗의 시편 인용은 이 모든 것을 왕의 통치, 곧 주님의 통치로 귀결시킵니다. ‘스바의 금이 드려진다’는 것은, 주님께서 사랑의 선으로 인정받고 경배받으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기도와 송축이 끊이지 않습니다. 사랑의 선이 중심에 있을 때, 진리의 고백과 삶의 찬송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AC.113은 이렇게 말합니다. 금은 값비싸기 때문에 거룩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선을 대표하기 때문에 거룩하며, 말씀 전체는 이 한 가지 질서를 수없이 다양한 장면과 상징으로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심화

 

1. ‘28:4

 

 

AC.113, 심화 1, ‘겔28:4’

AC.113.심화 1. ‘겔28:4’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겔28:4) In thy wisdom and in thine intelligence thou hast gotten thee riches, and hast gotten gold and silver in thy treasures (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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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60:6

 

 

AC.113, 심화 2, ‘사60:6’

AC.113.심화 2. ‘사60:6’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사60:6) The multitude of 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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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1, 11

 

 

AC.113, 심화 3, ‘마2:1, 11’

AC.113.심화 3. ‘마2:1, 11’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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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72:15

 

 

AC.113, 심화 4, ‘시72:15’

AC.113.심화 4. ‘시72:15’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시72:15) He shall live, and to him shall be given of the gold of Sheba; prayer also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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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2, 창2:11-12, '지혜, 지성, 선, 진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기준은 오직 주님'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2 더욱이 다음의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에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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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그러니까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사는 것이네요?

 

 

네, 정확히 그 방향입니다. 다만 ‘요셉처럼, 다니엘처럼’이라는 말을 단순히 ‘세상 속에서도 성공한 신앙인’이라는 이미지로만 이해하면 핵심을 놓칠 수 있습니다. 더 깊은 의미는 ‘외적 환경과 상관없이 내적 중심을 지킨 사람’이라는 데 있습니다. 요셉과 다니엘은 각각 이집트와 바벨론이라는 전혀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았지만, 그들의 삶의 근원은 그 체제에 있지 않았습니다.

 

요셉의 경우를 보면,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그 체제의 언어와 구조를 그대로 사용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지혜를 ‘내가 해석하나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께서 해석하시나이다’라고 돌렸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같은 지혜를 사용하지만, 그 출처를 자기에게 두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과,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을 구별하는 삶’입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바벨론의 학문과 행정 체계 안에서 최고 수준의 지성으로 활동했지만, 그 중심은 바벨론에 있지 않았습니다. 왕의 꿈을 해석할 때도, 그는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지 않고 ‘지혜는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또한 상황이 아무리 자신에게 불리, 자신을 에워싸더라도, 내적 방향, 곧 기도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겉으로는 완전히 그 시대와 사회 안에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전혀 다른 근원에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질서입니다. 겉 사람은 세상과 함께 움직이지만, 속 사람은 주님을 향해 열려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역할이나 위치가 아니라 ‘출처’입니다. 같은 판단을 하고, 같은 일을 해도, 그것이 자기 영광이나 두려움에서 나오느냐, 아니면 주님께 맡기고 이웃을 위한 선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삶이 됩니다. 요셉과 다니엘은 특별한 환경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니라, 이 ‘출처의 질서’를 지켰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살되, 세상에서 나오지 않는 생명으로 사는 것, 이것이 요셉과 다니엘의 삶이고, 동시에 우리가 지금 이 혼란 속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깊은 길입니다.

 

 

 

AC.112, 창2:11-12, '지혜, 지성, 선, 진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기준은 오직 주님'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2 더욱이 다음의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에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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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2, 심화 1, ‘세상에서는 가짜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AC.111.심화 1. ‘세상에서는 가짜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위 본문의 끝을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지 않은 것들, 곧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들도 비록 이러한 이름들로 불리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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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에서는 가짜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위 본문의 끝을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지 않은 것들, 곧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들도 비록 이러한 이름들로 불리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가짜입니다.’라고 하는데요,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그런 가짜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을까요?

 

 

말씀하신 대로, 이 세상에서는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지 않은 것들’, 곧 겉보기에는 지혜, 신앙, 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들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스베덴보리의 요지는 그것들을 ‘당장 제거하라’가 아니라, ‘그것들과 함께 살되, 그것에 속하지 말라’는 데 있습니다. 즉, 문제의 핵심은 외적 환경이 아니라 ‘내적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입니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사랑에서 나오도록’ 방향을 잡는 것입니다. 같은 말, 같은 행동이라도 그 출발점이 자기 사랑과 인정 욕구에서 나오느냐, 아니면 이웃에 대한 선의와 주님께 대한 순종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됩니다. 세상 속에서는 동일한 언어와 구조를 사용하더라도, 그 안에서 ‘내가 이것을 왜 하는가’가 중심을 결정합니다. 이 중심이 흐려지지 않도록 조용히 점검하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구별은 하되, 정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짜와 진짜를 분별하는 눈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적 질서가 쉽게 흐려집니다. 그러나 그 분별이 곧 사람에 대한 판단과 배척으로 이어지면, 그 순간 이미 중심이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는 사람 자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질서와 출처를 분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사람은 품되, 그 안의 흐름을 식별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는 ‘겉으로는 함께, 속으로는 방향을 지키는 삶’이 됩니다. 직장과 사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동일한 시스템과 언어를 사용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이것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인가, 아니면 나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인가’를 조용히 살피는 태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이 반복될수록, 사람은 점점 더 ‘흐름의 출처’를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퍼셉션으로 가는 길입니다.

 

또한 너무 급하게 완전한 상태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상태에서는 대부분의 신앙이 ‘진리에서 시작하여 사랑으로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짜와 섞여 있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과정의 일부’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 방향이 바뀌고 있는가입니다. 점점 더 사랑에서 나오려 하고, 점점 더 주님께 돌리려 한다면, 이미 질서는 회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삶은 겉으로는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더 평범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출처가 바뀐 삶’입니다. 같은 일을 하되, 다른 근원에서 하는 삶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변화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을 떠나지 않고도, 세상 한가운데서 ‘다른 질서로 사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태도는 가짜를 피해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는 흐름’을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 때, 사람은 점점 더 분별하게 되고, 동시에 점점 더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AC.112, 심화 2,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AC.112.심화 2.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그러니까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사는 것이네요? 네, 정확히 그 방향입니다. 다만 ‘요셉처럼, 다니엘처럼’이라는 말을 단순히 ‘세상 속에서도 성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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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2, 창2:11-12, '지혜, 지성, 선, 진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기준은 오직 주님'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2 더욱이 다음의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에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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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2:11, 12)

 

AC.112

 

더욱이 다음의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에서 나오지 않는 지혜는 없으며, 그러므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지혜라는 건 없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신앙에서 나오지 않는 지성도 없으며, 그러므로 역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지성이라는 건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에서 나오지 않는 선은 없고, 따라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선도 없으며, 신앙에서 나오지 않는 진리는 없고, 그러므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진리도 없습니다.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지 않은 것들, 곧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들도 비록 이러한 이름들로 불리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가짜입니다. Be it known moreover that there is no wisdom which is not from love, thus from the Lord; nor any intelligence except from faith, thus also from the Lord; and that there is no good except from love, thus from the Lord; and no truth except from faith, thus from the Lord. What are not from love and faith, and thus from the Lord, are indeed called by these names, but they are spurious.

 

 

해설

 

이 글은 지금까지 이어진 모든 설명을 ‘원천의 문제’로 단정 짓는 매우 강한 선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지혜, 지성, 선, 진리라는 네 가지를 나열하지만, 그 요지는 단순합니다. ‘출처가 주님인가 아닌가’입니다. 무엇이 얼마나 고상해 보이는지, 얼마나 정교한지,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는 기준이 아닙니다. 기준은 오직 하나, 사랑과 신앙을 통해 주님에게서 나왔는가 하는 점입니다.

 

먼저 지혜와 지성의 구분이 다시 한번 분명해집니다. 지혜는 사랑에서 나오고, 지성은 신앙에서 나옵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기능이지만, 근원은 같습니다. 사랑과 신앙이 주님에게서 오기 때문에, 지혜와 지성 또한 주님에게서 옵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자율적 생산 영역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받아들이는 그릇이지, 원천이 아닙니다.

 

이어 선과 진리의 문제로 넘어갑니다. 선은 사랑에서 나오고, 진리는 신앙에서 나옵니다. 이는 앞서 ‘생명나무’가 사랑과 그로부터 나온 신앙을 의미한다는 설명과 정확히 맞물립니다. 선과 진리는 인간의 도덕적 성취나 지적 판단의 결과가 아니라, ‘사랑과 신앙의 생명’이 드러난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것들의 근원은 언제나 주님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한발 더 나아가, 매우 불편할 수 있는 말을 합니다.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지 않은 것들도, 세상에서는 지혜, 지성, 선, 진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가짜’라고 단언합니다. 이 말은 지적 능력이나 도덕적 행위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근원의 왜곡’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가짜라는 말의 핵심은, 그것들이 ‘생명을 주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겉으로는 지혜처럼 보일 수 있고, 진리처럼 말할 수 있으며, 선처럼 행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신앙, 곧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유입이 없다면, 그것들은 지속되지 않고, 사람을 살리지 못합니다. 결국 자기 사랑이나 세상 사랑으로 되돌아갑니다.

 

이 글은 천적 인간의 상태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합니다. 천적 인간에게서는 지혜와 지성, 선과 진리가 분리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근원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에서 신앙이 나오고, 그 신앙에서 지성이 나오며, 그 모든 것이 다시 사랑의 선으로 돌아갑니다. 이 순환이 살아 있을 때, 그것은 참된 것입니다.

 

AC.112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나오느냐이며,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주님에게서 나오지 않은 것은 이름만 같을 뿐, 생명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심화

 

1. ‘세상에서는 가짜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AC.112, 심화 1, ‘세상에서는 가짜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AC.111.심화 1. ‘세상에서는 가짜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위 본문의 끝을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지 않은 것들, 곧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들도 비록 이러한 이름들로 불리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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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AC.112, 심화 2,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AC.112.심화 2.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그러니까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사는 것이네요? 네, 정확히 그 방향입니다. 다만 ‘요셉처럼, 다니엘처럼’이라는 말을 단순히 ‘세상 속에서도 성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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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3, 창2:11-12, '금은 사랑의 선 : 말씀 전체에 흐르는 일관된 상응의 증언'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3 말씀에서 지혜의 선,곧 사랑의 선을 ‘금’(gold)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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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1, 창2:11-12, '왜 이런 설명이 오늘날 이해되기 어려운가'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1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내적 의미에서 어떠한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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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1.심화

 

2. ‘온 하늘은 가장 정밀한 질서로 배열되어 있다

 

위 본문에 언급하기를, ‘외적인 인간들은 거의 기억 지식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그것을 지성과 지혜, 그리고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사랑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많은 이들은 의지와 이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들이 하나의 마음을 이룬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합니다.’라고 하면서 계속해서, ‘그러나 이 각각의 것들은 서로 구별되며, 참으로 매우 명확하게 구별됩니다. 그리고 온 하늘은 주님에 의해, 수없이 많은 사랑과 신앙의 차이에 따라, 가장 정밀한 질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라고 하는데요, 이 나중 언급이 얼른 와닿지가 않아요. 정말 이런 게 가능할까요? 지상에서는 실현되기 어렵겠지요?

 

 

말씀하신 정말 이런 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상에서는 사람의 상태가 섞여 있고, 겉 사람 중심의 질서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사랑과 신앙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질서가 세워진다는 개념이 거의 체감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것은 지상에서 관찰되는 사회 질서’가 아니라, ‘생명 자체의 질서’입니다. 이 둘은 출발점이 다릅니다. 지상에서는 외적 조건과 이해관계가 질서를 만들지만, 하늘에서는 오직 사랑의 질’이 질서를 만듭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하늘에서의 질서는 누가 더 많이 알고, 더 잘하고, 더 높은 위치에 있느냐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각 존재가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자리가 정해집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단순히 종류만 다른 것이 아니라, 그 방향, 깊이, 순수성, 목적이 모두 다릅니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이, 사랑도 하나같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수없이 많은 차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차이는 우리가 머리로 분류할 수 있는 몇 가지 범주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의 결입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차이가 어떻게 질서’가 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하늘의 질서는 외부에서 억지로 배열되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각 존재는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 가장 잘 맞는 자리’로 자연스럽게 이끌립니다. 비슷한 사랑을 가진 이들은 서로를 편안하게 느끼고, 다른 사랑을 가진 이들과는 어울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각기 자기와 맞는 공동체 안에 있게 되고, 그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인 질서를 이룹니다. 이것은 억지로 맞춘 질서가 아니라, 생명이 스스로 자리 잡은 질서입니다.

 

이 점에서 지상과 하늘의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지상에서는 서로 다른 상태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 섞여 살며, 외적 규칙과 제도로 겨우 질서를 유지합니다. 그래서 늘 충돌과 긴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내적 상태 자체가 곧 자리’이기 때문에, 맞지 않는 것끼리 억지로 함께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곳에서는 겉 사람과 속 사람이 분리되지 않고, 존재의 본질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질서는 지상에서는 완전히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아직 겉 사람 중심의 상태에 있고, 사랑도 순수하게 분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혀 무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과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갈리고, 어떤 환경에서는 마음이 열리고, 어떤 곳에서는 닫히는 경험을 이미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질서의 아주 희미한 그림자’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것은 결국 이것입니다. 하늘의 질서는 복잡한 규칙의 체계가 아니라, ‘사랑의 차이가 그대로 드러난 생명의 배열’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질서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이 중심이기 때문에, 무질서가 아니라 완전한 조화를 이룹니다. 지상에서는 이것이 부분적으로만, 그리고 어둡게 나타나지만, 인간은 원래 그 질서 안에서 살도록 창조되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 설명은 낯설지만, 동시에 깊은 곳에서는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AC.111, 창2:11-12, '왜 이런 설명이 오늘날 이해되기 어려운가'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1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내적 의미에서 어떠한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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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1, 심화 1, ‘인간 상태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

AC.111.심화 1. ‘인간 상태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 위 본문에 나오는 ‘오늘날에는 사랑에서 나온 신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그로부터 나오는 지혜와 지성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 없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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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1.심화

 

1. ‘인간 상태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

 

위 본문에 나오는 오늘날에는 사랑에서 나온 신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그로부터 나오는 지혜와 지성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표현, 그리고 해설에 나오는 인간 상태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표현 등, 이 표현들을 설명해 주세요.

 

 

이 표현은 단순히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른다’는 지식 부족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구조 자체가 태고교회 때와 달라졌다는 진단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오늘날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라, ‘인식하는 방식 자체가 변했다’는 뜻입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사랑이 먼저이고, 그 사랑에서 신앙과 지혜와 지성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무엇이 참이고 선한지를 별도의 추론 없이 바로 퍼셉션’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은 그 상태에 있지 않고, 사랑과 지성이 분리된 상태에서 살기 때문에, 같은 말을 들어도 그 의미를 체험적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 상태 자체가 달라졌다’는 말은,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가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태고교회 인간은 속 사람, 곧 사랑과 의지의 중심에서 살았고, 겉 사람은 그 흐름을 따르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사랑의 표현이었고, 지혜는 사랑이 스스로를 밝히는 빛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은 겉 사람, 곧 감각과 기억 지식, 이성과 판단의 영역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신앙은 생각의 동의가 되고, 지혜는 정보의 정리가 되며, 지성은 분석 능력이 됩니다. 이처럼 출발점이 바뀌었기 때문에, 같은 신앙’, 같은 지혜’라는 말을 써도 실제 내용은 전혀 다른 것이 됩니다.

 

이 변화의 핵심은 사랑에서 나온 신앙’을 더 이상 직접 알지 못하게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신앙은 대부분 먼저 이해하고, 그다음 믿으려 하는 신앙’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신앙은 이미 사랑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아는 상태’입니다. 전자는 항상 의심과 선택의 긴장을 동반하지만, 후자는 갈등 없이 흐르는 생명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에게 이 개념을 설명하면, 머리로는 이해하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낯설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경험의 토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혜와 지성’을 모른다는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지혜를 경험이나 노하우, 지성을 사고 능력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지혜는 사랑에서 나오는 생명의 빛이고, 지성은 그 빛이 질서를 이루어 펼쳐진 상태입니다. 즉, 그것들은 기능이 아니라 생명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사랑 중심의 상태에서 벗어나 버렸기 때문에, 이 지혜와 지성도 더 이상 체험적으로 알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표현은 비판이라기보다 진단입니다. 인간은 여전히 생각하고, 배우고, 판단하지만,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을 직접 아는 감각’은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2장을 설명하면서도 계속해서 이것은 지금 상태에서는 이해되기 어렵다’고 반복하는 것입니다. 설명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듣는 쪽의 내적 구조가 이미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말은 희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잃어버린 질서 위에 다시 세워질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인간은 퍼셉션 대신 양심을 통해, 사랑에서 나온 신앙 대신 진리에서 시작하는 신앙을 통해 준비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이 성숙해지면, 다시 사랑이 중심이 되고, 그 사랑에서 신앙과 지혜가 흘러나오는 상태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모른다’는 말은 끝이 아니라, ‘다른 길을 통해 다시 들어가야 하는 상태’라는 뜻입니다.

 

 

 

AC.111, 심화 2, ‘온 하늘은 가장 정밀한 질서로 배열되어 있다’

AC.111.심화 2. ‘온 하늘은 가장 정밀한 질서로 배열되어 있다’ 위 본문에 언급하기를, ‘외적인 인간들은 거의 기억 지식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그것을 지성과 지혜, 그리고 신앙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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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1, 창2:11-12, '왜 이런 설명이 오늘날 이해되기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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