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3:14)



AC.249

평생 흙을 먹을 것이다(eat dust all the days of its life)라는 말씀은, 그들의 감각 파트(the sensuous part)가 몸과 땅에 속한 것 외에는 아무 걸로도 살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하며, 다시 말해 지옥 상태(infernal state)가 되었음을 뜻합니다. 이것은 말씀에서 (dust)이 갖는 의미로부터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미가서에 That to “eat dust all the days of its life” signifies that their sensuous part became such that it could not live from anything except that which is of the body and the earth, that is to say, that it became infernal, is evident also from the signification of “dust” in the Word; as in Micah:

 

14원하건대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주하는 주의 기업의 양 떼를 먹이시되 그들을 옛날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옵소서, 16이르되 여러 나라가 보고 자기의 세력을 부끄러워하여 손으로 그 입을 막을 것이요 귀는 막힐 것이며 17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리이다 (7:14, 16-17) Feed thy people as in the days of eternity. The nations shall see and shall blush at all their might; they shall lick the dust like a serpent, they shall be shaken out of their holds like creeping things [serpentes] of the earth (Micah 7:14, 16–17).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옛날(days of eternity)은 태고교회를 의미하고, ‘여러 나라(nations)는 자기 자신, 그러니까 자신의 own을 신뢰하는 자들을 의미하는데, 그들에 대하여 뱀처럼 티끌을 핥을 것(they shall lick the dust like a serpent)이라고 말합니다. 시편에서는 The “days of eternity” mean the most ancient church; the “nations,” those who trust in their own, of whom it is predicated that “they shall lick the dust like a serpent.” In David:

 

광야에 사는 자는 그 앞에 굽히며 그의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며 (72:9) Barbarians shall bow themselves before God, and his enemies shall lick the dust (Ps. 72:9).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광야에 사는 자들(Barbarians)원수들(enemies)은 영적이고 천적인 것들은 돌아보지 않고, 오직 세상과 육체의 것들만 바라보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사야에서 Barbarians” and “enemies” are those who regard only earthly and worldly things. In Isaiah: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65:25) Dust shall be the serpents bread (Isa. 65:25).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흙이 뱀의 양식이라는 것은 감각적 인간이 영적이고 천적인 것들을 잃어버리고, 오직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것만을 생명으로 삼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이유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느 집이나 성이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shake off the dust of their feet)고 명하셨습니다. As “dust” signifies those who do not regard spiritual and celestial things, but only what is corporeal and earthly, therefore the Lord enjoined his disciples that if the city or house into which they entered was not worthy, they should “shake off the dust of their feet” (Matt. 10: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0:14)

 

(‘(dust)이 정죄된 것(condemned)과 지옥적인 것(infernal)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후에 19절에서 더 설명될 것입니다.) (That “dust” signifies what is condemned and infernal, will be further shown at verse 19.)

 

 

해설

 

이 본문의 핵심은 ‘(dust)의 의미를 설명하는 데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뱀에게 ‘평생 흙을 먹을지니라’고 하신 말씀은 문자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실제 뱀은 흙을 먹고 사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감각적 인간의 영적 상태에 대한 상징으로 해석합니다.

 

그에 따르면 ‘’은 단순한 흙이 아니라 가장 낮고 가장 외적 차원의 삶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더 이상 주님과 천국의 것을 사랑하지 않고, 오직 몸과 세상, 그리고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게 되면 그는 영적으로 ‘’을 먹는 사람이 됩니다. 즉 영적 양식이 아니라 세상적 양식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가서의 ‘뱀처럼 티끌을 핥는다’는 표현은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결국 가장 낮은 차원의 것들에 머물게 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윗의 ‘원수들이 티끌을 핥을 것이다’라는 말씀도 같은 뜻입니다. 여기서 원수는 단순한 인간의 적이 아니라 주님의 길을 거부하고 세상만 바라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특히 사65:25의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라는 말씀은 AC.249의 핵심 증거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창세기 3장의 저주와 직접 연결합니다. 뱀이 흙을 먹는다는 것은 감각적 인간이 더 이상 천적인 것에서 생명을 얻지 못하고, 오직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것에서만 만족을 찾는 상태를 뜻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하신 말씀도 같은 원리로 설명합니다. 발은 인간의 가장 바깥 차원을 의미하고, 발에 묻은 먼지는 세상적이고 거부된 것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먼지를 떨어 버리는 것은 그러한 상태와 자신을 분리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결국 AC.249에서 스베덴보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창세기 3장의 ‘흙을 먹는다’는 표현이 단순한 형벌의 선언이 아니라 영적 상태의 묘사라는 점입니다. 사람이 하늘의 것을 잃어버리면 반드시 무엇인가를 양식으로 삼아야 하는데, 그때 그는 주님의 진리와 선이 아니라 세상과 육체의 것들을 양식으로 삼게 됩니다. 바로 그 상태를 성경은 ‘뱀이 흙을 먹는다’는 상응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화

 

1. ‘미7:14, 16-17’

 

14원하건대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주하는 주의 기업의 양 떼를 먹이시되 그들을 옛날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옵소서, 16이르되 여러 나라가 보고 자기의 세력을 부끄러워하여 손으로 그 입을 막을 것이요 귀는 막힐 것이며 17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리이다 (미7:14, 16-17) Feed thy people as in the days of eternity. The nations shall see and shall blush at all their might; they shall lick the dust like a serpent, they shall be shaken out of their holds like creeping things [serpentes] of the earth (Micah 7:14, 16–17).

 

 

미7:14, 16-17은 AC.249에서 ‘흙’(dust)과 ‘뱀’(serpent)의 상징적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인용됩니다.

 

‘주의 백성을 먹이소서, 옛날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옵소서’라는 말씀에서 ‘옛날’(days of eternity)은 스베덴보리에게 태고교회(the Most Ancient Church)를 의미합니다. 즉 주님과의 살아 있는 연결 속에서 천적 사랑과 지각(perception)을 누리던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 기도는 단순히 과거의 번영을 회복해 달라는 요청이 아니라, 태고교회가 가졌던 영적 생명과 주님과의 친밀함을 다시 회복시켜 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16-17절에서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여러 나라’(nations)가 자기 힘을 부끄러워하고, ‘뱀처럼 티끌을 핥는다’고 말합니다. AC.249에서 스베덴보리는 이 ‘여러 나라’를 단순한 이방 민족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own을 신뢰하는 사람들로 해석합니다. 이들은 주님보다 자기 판단을, 천국보다 세상을, 진리보다 감각을 더 신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뱀처럼 티끌을 핥는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창세기 3장에서 뱀이 ‘흙을 먹을지니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여기서 흙은 단순한 흙이 아니라 가장 낮은 차원의 것, 곧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티끌을 핥는다는 것은 영적 양식을 잃어버리고, 오직 세상적인 것들만을 삶의 양식으로 삼는 상태를 뜻합니다.

 

또한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라는 표현도 같은 맥락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하늘을 향해 서지 못하고 가장 낮은 감각적 수준에 머무는 상태로 이해합니다. AC.247과 AC.248에서 보았듯이, 영적으로 위를 향하는 것은 주님과 천국을 향하는 것이고, 아래를 향하는 것은 세상과 육체를 향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땅을 기는 존재는 영적 방향을 상실한 상태를 상징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구절이 단순한 심판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두려워한다고 말합니다. 즉 자기 힘과 자기 지혜를 신뢰하던 상태가 무너진 후에야 비로소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가 자주 말하는 섭리의 원리와도 연결됩니다. 인간은 자신의 own에 대한 신뢰가 깨질 때, 비로소 주님의 능력을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AC.249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뱀처럼 티끌을 핥는다’는 표현이 창세기 3장의 ‘흙을 먹을지니라’와 같은 상응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곧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은 결국 영적 양식을 잃고, 가장 낮은 육체적, 세속적 차원의 것들만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흙을 먹는 뱀’의 상태이며, 감각적 인간이 지옥적 상태로 기울어지는 모습인 것입니다.

 

 

2. ‘시72:9’

 

광야에 사는 자는 그 앞에 굽히며 그의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며 (시72:9) Barbarians shall bow themselves before God, and his enemies shall lick the dust (Ps. 72:9).

 

 

시72:9은 AC.249에서 ‘티끌을 핥는다’(lick the dust)는 표현의 영적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인용됩니다.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의 원수들이 굴복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티끌’(dust)에 주목합니다. 그의 상응 해석에 따르면, 티끌은 단순한 흙이 아니라 영적이고 천적인 것들을 떠나 오직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것들만을 바라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의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며’라는 말씀은 단순히 패배와 굴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가장 낮은 차원에 머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AC.249에서 스베덴보리는 ‘원수들’(enemies)을 주님과 천국의 것들보다 세상과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로 이해합니다. 그들은 하늘의 진리와 선으로부터 생명을 얻지 못하고, 오직 세상적인 것들만을 양식으로 삼습니다.

 

이 표현은 창3:14의 ‘뱀은 흙을 먹을지니라’는 말씀과 직접 연결됩니다. 뱀이 흙을 먹는다는 것은 감각적 인간이 영적인 것들을 잃어버리고,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것들만을 추구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서 원수들이 티끌을 핥는다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가장 낮은 차원의 삶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AC.247-248에서 살펴본 것처럼, 주님을 향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위를 바라보며 ‘바로 서서 걷는’ 사람입니다. 반면 티끌을 핥는 사람은 시선이 땅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의 관심은 천국이 아니라 세상이며, 진리가 아니라 자기 이익입니다. 따라서 ‘티끌을 핥는다’는 것은 영적 방향이 완전히 아래로 향한 상태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AC.249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성경에서 ‘티끌’이 단순한 흙이 아니라 영적으로 가장 낮고 세속적인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티끌을 핥는다’는 표현은 그러한 상태를 기꺼이 자신의 양식으로 삼는 감각적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창세기에서 뱀이 ‘흙을 먹게 된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3. ‘사65:2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사65:25) Dust shall be the serpent’s bread (Isa. 65:25).

 

 

사65:25는 AC.249에서 ‘흙’(dust)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하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로 인용됩니다.

 

문자적으로 읽으면 평화로운 미래의 모습이 묘사됩니다. 맹수와 온순한 짐승이 함께 살고, 사자도 짚을 먹으며, 뱀은 흙을 먹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특별히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다’(Dust shall be the serpent’s bread)라는 구절에 주목합니다.

 

그 이유는 실제 뱀이 흙을 먹고 사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상응 언어로 이해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뱀’(serpent)은 감각적 인간(the sensuous man)을 의미하고, ‘흙’(dust)은 영적, 천적인 것들을 떠나 오직 육체적, 세속적 차원에 머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흙이 뱀의 양식이다’라는 말씀은 감각적 인간이 자기 본성대로 살 때, 영적 진리와 천적 선이 아니라 세상적인 것들과 육체적인 것들만을 양식 삼게 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그의 생각과 관심, 그리고 기쁨이 모두 가장 낮은 차원에 머물게 된다는 것입니다.

 

AC.249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14의 ‘너는 평생 흙을 먹을지니라’는 말씀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사야에서도 동일하게 뱀과 흙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흙을 먹는다는 것이 감각적 인간의 영적 상태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사야 65장이 전반적으로는 새 하늘과 새 땅, 곧 회복된 교회의 평화로운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감각적 차원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가장 낮은 자리에 머문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즉 질서가 회복되더라도 감각은 감각으로 남고, 가장 아래 단계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뱀이 흙을 먹는 것이 단순한 형벌의 선언이 아니라, 감각적 차원이 본래 속한 위치를 보여주는 말씀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감각은 하늘의 것을 직접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가장 바깥 차원에서 기능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자리를 지키며 위의 것들을 섬길 때는 질서 안에 있고, 반대로 그것이 주인이 되면 창세기 3장에서 말하는 타락한 뱀의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AC.249에서 사65:25는 ‘흙’이 영적으로 가장 낮고 육체적, 세속적인 것을 의미하며, ‘뱀이 흙을 양식으로 삼는다’는 것은 감각적 인간이 그러한 것들만으로 살아가는 상태를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거로 인용된 것입니다.

 

 

4. ‘사65:2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사65:25)

 

 

AC.249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먼지’(dust)가 단순한 흙이 아니라 정죄된 것(condemned)과 지옥적인 것(infernal), 그리고 순전히 세속적이고 육체적인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집이나 성을 떠날 때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명하십니다. 이것은 당시에도 일종의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그 안에 더 깊은 상응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성경에서 ‘발’(feet)은 인간의 가장 바깥 차원, 곧 자연적이고 외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발에 묻은 ‘먼지’(dust)는 세상과 접촉하면서 붙게 되는 가장 낮고 외적인 것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린다’는 것은 단순히 흙을 털어내는 행위가 아니라, 진리를 거부하고 오직 세상적인 것에만 머무는 상태와 자신을 분리하는 것을 뜻합니다.

 

특히 AC.249의 문맥에서는 창세기 3장의 ‘뱀은 흙을 먹을지니라’는 말씀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흙은 영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육체적, 세속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복음을 거부하는 집이나 성에서 먼지를 떨어 버리라는 말씀은, 그러한 상태를 자기 안에 받아들이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저주하거나 증오하라는 명령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 사람들을 정죄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그들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그 상태를 자기 안에 끌어안고 머물지 말고 떠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영적인 것을 거부하는 상태에 자신도 함께 얽매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이 구절은 매우 깊은 영적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수많은 영향들을 접하게 되지만, 주님을 향하는 사람은 그것들 가운데 영적 생명을 해치는 것들을 분별하고 떨어내야 합니다. 마치 제자들이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듯이 말입니다.

 

따라서 AC.249에서 이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 ‘먼지’가 단순한 흙이 아니라 영적으로는 가장 낮고 세속적이며 정죄된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는 말씀은 그러한 상태와 결별하고 주님의 길을 계속 걸어가라는 영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AC.248, 창3:14, ‘몸의 자세와 방향을 영적 상태의 상응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창3:14)AC.248그러므로 사람이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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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8.심화

 

4. ‘44:24, 25

 

24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25헛된 말을 하는 자들의 징표를 폐하며 점치는 자들을 미치게 하며 지혜로운 자들을 물리쳐 그들의 지식을 어리석게 하며 (44:24, 25) Jehovah thy redeemer, that turneth wise men backward, and maketh foolish their knowledge (Isa. 44:24–25).

 

 

AC.248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뒤로 돌린다(turn backward)는 표현이 영적으로는 진리와 지혜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여호와께서 거짓 예언자들과 점치는 자들의 헛된 지혜를 무너뜨리시고, 그들의 지식을 어리석게 만드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특히 ‘지혜로운 자들을 물리쳐(turneth wise men backward)라는 표현에 주목합니다.

 

그의 상응 해석에서 ‘(forward)은 주님과 천국을 향하는 방향이며, ‘(backward)는 자기 자신과 세상을 향하는 방향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뒤로 돌린다’는 것은 단순히 위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바라보아야 할 사람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되고, 주님께 의존해야 할 사람이 자기 지혜를 신뢰하게 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특히 이 구절의 ‘지혜로운 자들’은 참된 의미의 지혜로운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지혜를 신뢰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스베덴보리는 AC.215 AC.232-233에서도 반복하여, 사람이 자신의 감각과 이성, 그리고 학문만으로 영적 진리를 판단하려 하면 결국 어둠에 빠진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여기의 ‘지혜로운 자들을 뒤로 돌린다’는 것은 주님께서 억지로 그들을 어리석게 만드신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지혜를 최고로 여긴 결과 스스로 진리에서 멀어지게 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그들의 지식을 어리석게 한다’는 말씀도 같은 의미입니다. 지식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 주님과 분리된 지식이 문제입니다. 천국을 향해 사용되던 지식은 지혜가 되지만, 자기 사랑을 위해 사용되는 지식은 결국 어리석음이 됩니다.

 

그래서 AC.248에서 이 구절은 ‘앞을 향함’과 ‘뒤를 향함’이라는 영적 상응을 설명하는 증거로 사용됩니다. 사람이 주님을 향할 때는 영적으로 앞을 향하고 있는 것이며, 자기 자신과 세상을 향할 때는 뒤를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지혜를 신뢰하는 사람은 결국 ‘뒤로 돌려진 지혜로운 자’가 되어, 스스로는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진리에서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 이 구절의 내적 의미입니다.

 

 

 

AC.248, 창3:14, ‘몸의 자세와 방향을 영적 상태의 상응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창3:14)AC.248그러므로 사람이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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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8, 심화 3, ‘애1:8, 13’

AC.248.심화 3. ‘애1:8, 13’ 8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 조소거리가 되었으니 전에 그에게 영광을 돌리던 모든 사람이 그의 벗었음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그는 탄식하며 물러가는도다, 13높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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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8.심화

 

3. ‘1:8, 13

 

8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 조소거리가 되었으니 전에 그에게 영광을 돌리던 모든 사람이 그의 벗었음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그는 탄식하며 물러가는도다, 13높은 곳에서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시고 내 발 앞에 그물을 치사 나로 물러가게 하셨음이여 종일토록 나를 피곤하게 하여 황폐하게 하셨도다 (1:8, 13) Jerusalem hath sinned a sin, therefore they despise her, because they have seen her nakedness; yea, she groaned and hath turned backward. From on high hath he sent fire into my bones, and hath made me to return backward; he hath made me desolate (Lam. 1:8, 13).

 

 

AC.248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뒤로 물러간다(turn backward)는 표현이 단순한 후퇴가 아니라 영적으로 주님과 천국으로부터 돌아서는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상응의 의미에서 ‘예루살렘(Jerusalem)은 교회를 뜻합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의 죄는 단순히 한 도시의 범죄가 아니라 교회의 타락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은 ‘벗은 몸(nakedness)이 드러났다고 말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미 AC.213 이하에서 ‘벌거벗음’은 순진무구함이 사라지고, 선과 진리가 결핍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벌거벗음은 교회가 더 이상 선과 진리로 옷 입고 있지 않은 상태를 뜻합니다.

 

이어지는 ‘그는 탄식하며 물러가는도다(hath turned backward)라는 표현이 AC.248의 핵심입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영적으로 ‘(forward)은 주님과 천국을 향하는 방향이고, ‘(backward)는 자기 자신과 세상을 향하는 방향입니다. 따라서 뒤로 물러간다는 것은 단순히 한 걸음 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의 방향이 주님에게서 자기 자신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13절의 ‘나로 물러가게 하셨음이여(hath made me to return backward)도 같은 의미로 이해됩니다. 문자적으로는 황폐와 심판의 탄식이지만, 내적 의미에서는 교회가 진리와 선에서 멀어져 점점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 속으로 후퇴하는 상태를 묘사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황폐하게 하셨도다(he hath made me desolate)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여기서 황폐(desolation)는 선과 진리가 점차 사라져 버린 영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구절이 창세기 3장의 뱀이 ‘배로 기어가는’ 상태와 같은 흐름 속에 있다는 점입니다. 뱀은 더 이상 위를 바라보지 못하고 아래만 바라봅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은 더 이상 앞을 바라보지 못하고 뒤를 향합니다. 두 경우 모두 공통점은 주님을 향하던 방향이 자기 자신과 세상을 향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AC.248에서 이 구절은, 성경의 ‘뒤로 물러감’이 단순한 위치 이동이 아니라 영적 방향 전환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인용된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뒤로 물러갔다는 것은 교회가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에서 떠나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그 결과 벌거벗음과 황폐가 뒤따르게 된 것입니다.

 

 

 

AC.248, 심화 4, ‘사44:24, 25’

AC.248.심화 4. ‘사44:24, 25’ 24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25헛된 말을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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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8, 심화 2, ‘미2:3’

AC.248.심화 2. ‘미2:3’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족속에게 재앙을 계획하나니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또한 교만하게 다니지 못할 것이라 이는 재앙의 때임이라 하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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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8.심화

 

2. ‘2:3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족속에게 재앙을 계획하나니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또한 교만하게 다니지 못할 것이라 이는 재앙의 때임이라 하셨느니라 (2:3) Ye shall not thence remove your necks, neither shall ye go erect (Micah 2:3).

 

 

AC.248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바로 서서 걷는다(go erect)는 표현이 영적으로는 주님과 천국을 향한 자유롭고 올바른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문자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악과 불의에 대한 심판 선언입니다. 그러나 내적 의미에서는 교회가 진리와 선에서 벗어났을 때, 어떤 영적 상태에 빠지는지를 묘사합니다.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은 거짓과 악의 멍에 아래 놓여 더 이상 자유롭게 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목은 머리와 몸을 연결하는 부분이므로, 상응으로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을 연결하는 기능을 뜻합니다. 그런데 목이 멍에에 눌리게 되면, 사람은 더 이상 위를 향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또한 교만하게 다니지 못할 것이라(neither shall ye go erect)는 단순히 당당하게 걷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바로 서서 걷는다’는 표현을 영적으로 이해합니다. 원래 거듭난 인간은 주님을 바라보며 영적으로 곧게 서 있습니다. 그러나 악과 거짓에 사로잡히면 내면이 굽어지고, 하늘을 향하던 시선이 땅으로 향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레26:13과 정반대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레위기에서는 주님께서 멍에를 부수시고 백성을 ‘바로 서서 걷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미가서에서는 스스로 악 가운데 머문 결과, 더 이상 ‘바로 서서 걷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는 자유의 상태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 속박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AC.248에서 이 구절은, 사람이 하늘의 것들을 향할 때는 ‘바로 서서 걷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세상과 자기 사랑에 사로잡힐 때는 영적으로 굽어져 더 이상 ‘바로 서서 걷지 못하는’ 사람으로 묘사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로 인용된 것입니다. 결국 ‘바로 섬’은 천국을 향한 상태를, ‘굽어짐’은 세상과 자기 자신을 향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AC.248, 심화 3, ‘애1:8, 13’

AC.248.심화 3. ‘애1:8, 13’ 8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 조소거리가 되었으니 전에 그에게 영광을 돌리던 모든 사람이 그의 벗었음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그는 탄식하며 물러가는도다, 13높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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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8, 심화 1, ‘레26:13’

AC.248.심화 1. ‘레26:13’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그들에게 종된 것을 면하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내가 너희의 멍에의 빗장을 부수고 너희를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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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8.심화

 

1. ‘26:13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그들에게 종된 것을 면하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내가 너희의 멍에의 빗장을 부수고 너희를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 (26:13) I am Jehovah your God, who brought you forth out of the land of Egypt, that ye should not be their bondmen; and I have broken the bonds of your yoke, and made you to go erect (Lev. 26:13).

 

 

AC.248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바로 서서 걷는다(go erect)는 표현이 단순한 육체적 자세가 아니라 영적인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고대교회 사람들에게 ‘위를 본다’, ‘앞을 본다’, ‘바로 선다’는 것은 모두 주님과 천국을 향하는 상태를 뜻하였고, 반대로 ‘아래를 본다’, ‘뒤를 본다’, ‘굽어진다’, ‘땅에 엎드린다’는 것은 세상과 육체, 자기 사랑을 향하는 상태를 뜻하였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바로 서서 걷게 하셨다’는 말씀은 단순히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었다는 의미만이 아닙니다. 내적 의미로는 인간이 감각과 세상적인 것들의 지배에서 벗어나 다시 하늘을 향해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애굽은 흔히 감각적 인간과 자연적 지식에 대한 의존을 의미하므로, 애굽의 종이 되었다는 것은 영적인 것보다 세상적인 것을 더 신뢰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멍에의 빗장을 부수고 바로 서서 걷게 하셨다’는 것은 주님께서 인간을 그러한 속박에서 해방시키시고, 다시 내적 사람, 곧 속 사람이 외적 사람, 곧 겉 사람을 다스리는 질서 속으로 회복시키셨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3장에서 뱀이 ‘배로 기어가는’ 상태와 정반대입니다. 뱀은 더 이상 위를 보지 못하고 땅만 바라보는 상태를 상징하지만, 여기서 ‘바로 서서 걷는’ 사람은 다시 하늘을 향해 시선을 들고, 주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상태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AC.248에서 이 구절은, 참된 자유란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해 바로 설 수 있는 상태이며, 영적으로 ‘바로 서서 걷는 것’이야말로 거듭난 인간의 모습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인용된 것입니다.

 

 

 

AC.248, 심화 2, ‘미2:3’

AC.248.심화 2. ‘미2:3’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족속에게 재앙을 계획하나니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또한 교만하게 다니지 못할 것이라 이는 재앙의 때임이라 하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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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8, 창3:14, ‘몸의 자세와 방향을 영적 상태의 상응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창3:14)AC.248그러므로 사람이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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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3:14)



AC.248

그러므로 사람이 하늘의 것들을 바라볼 때에는 바로 서서 걷는다(walk erect)고 하였고, ‘위를 본다(look upward) 또는 앞을 본다(look forward)고 하였는데, 이것들은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을 바라볼 때에는 땅으로 굽어진다(bowed to the earth)고 하였고, ‘아래를 본다(look downward) 또는 뒤를 본다(look backward)고 하였습니다. 레위기에서 And therefore when man had regard to heavenly things, he was said to “walk erect,” and to “look upward,” or “forward,” which means the same; but when he had regard to corporeal and earthly things, he was said to be “bowed to the earth,” and to “look downward” or “backward.” As in Leviticus: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그들에게 종된 것을 면하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내가 너희의 멍에의 빗장을 부수고 너희를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 (26:13) I am Jehovah your God, who brought you forth out of the land of Egypt, that ye should not be their bondmen; and I have broken the bonds of your yoke, and made you to go erect (Lev. 26:13).

 

미가에서 In Micah: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족속에게 재앙을 계획하나니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또한 교만하게 다니지 못할 것이라 이는 재앙의 때임이라 하셨느니라 (2:3) Ye shall not thence remove your necks, neither shall ye go erect (Micah 2:3).

 

예레미야에서 In Jeremiah:

 

8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 조소거리가 되었으니 전에 그에게 영광을 돌리던 모든 사람이 그의 벗었음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그는 탄식하며 물러가는도다, 13높은 곳에서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시고 내 발 앞에 그물을 치사 나로 물러가게 하셨음이여 종일토록 나를 피곤하게 하여 황폐하게 하셨도다 (1:8, 13) Jerusalem hath sinned a sin, therefore they despise her, because they have seen her nakedness; yea, she groaned and hath turned backward. From on high hath he sent fire into my bones, and hath made me to return backward; he hath made me desolate (Lam. 1:8, 13).

 

이사야에서 And in Isaiah:

 

24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25헛된 말을 하는 자들의 징표를 폐하며 점치는 자들을 미치게 하며 지혜로운 자들을 물리쳐 그들의 지식을 어리석게 하며 (44:24, 25) Jehovah thy redeemer, that turneth wise men backward, and maketh foolish their knowledge (Isa. 44:24–25).

 

 

해설

 

이 글은 AC.247의 연속으로, 고대교회 사람들이 인간의 몸의 자세와 방향을 영적 상태의 상응으로 사용하였음을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위를 본다’와 ‘앞을 본다’는 것은 단순한 시선의 방향이 아니라 주님과 천국을 향하는 내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반대로 ‘아래를 본다’와 ‘뒤를 본다’는 것은 세상과 자기 자신에게 마음이 붙들린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레26:13의 ‘너희를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는 말씀은 단순히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었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영적으로는 주님께서 사람을 세상과 자기 사랑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시고, 다시 하늘을 향해 살 수 있는 상태로 회복시키셨다는 의미로 봅니다. ‘바로 서서 걷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미2:3의 ‘교만하게 다니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은 원문상 ‘바로 서서 걷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교회가 타락하여 더 이상 하늘을 향한 자유롭고 올바른 상태에 머물 수 없게 된 것으로 이해합니다. 즉 영적으로 굽어 버린 상태가 된 것입니다.

 

1:8, 13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뒤로 물러간다(turned backward)는 표현이 나옵니다. 예루살렘은 교회를 의미하는데, 그 교회가 죄 가운데 빠지자 ‘뒤로 물러가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은 주님과 천국을 의미하고, ‘’는 자기 자신과 세상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뒤로 물러간다’는 것은 단순한 후퇴가 아니라 사랑의 방향과 삶의 중심이 주님에게서 자기 자신으로 바뀌는 것을 뜻합니다.

 

44:24-25도 같은 원리로 설명됩니다. ‘지혜로운 자들을 물리친다(turneth wise men backward)는 표현은 단순히 지식을 잃게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자기 지혜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결국 진리에서 멀어져 영적으로 ‘뒤를 향하게 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다시 말해 하늘을 바라보아야 할 사람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AC.248의 핵심은 매우 분명합니다. 성경에서 ‘’, ‘’, ‘바로 섬’, ‘곧게 걸음’은 모두 주님과 천국을 향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반대로 ‘아래’, ‘’, ‘굽어짐’, ‘땅에 엎드림’은 세상과 육체, 자기 사랑을 향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창세기에서 뱀이 ‘배로 기어가게 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이동 방식의 변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내적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을 의미합니다. 원래는 위를 바라보던 존재가 아래를 바라보게 되었고, 앞을 향하던 존재가 뒤를 향하게 되었으며, 주님을 향하던 사랑이 자기 자신과 세상을 향하게 된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것이 뱀의 저주에 담긴 가장 깊은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화

 

1. ‘26:13

 

 

AC.248, 심화 1, ‘레26:13’

AC.248.심화 1. ‘레26:13’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그들에게 종된 것을 면하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내가 너희의 멍에의 빗장을 부수고 너희를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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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3

 

 

AC.248, 심화 2, ‘미2:3’

AC.248.심화 2. ‘미2:3’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족속에게 재앙을 계획하나니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또한 교만하게 다니지 못할 것이라 이는 재앙의 때임이라 하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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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8, 13

 

 

AC.248, 심화 3, ‘애1:8, 13’

AC.248.심화 3. ‘애1:8, 13’ 8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 조소거리가 되었으니 전에 그에게 영광을 돌리던 모든 사람이 그의 벗었음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그는 탄식하며 물러가는도다, 13높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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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4:24, 25

 

 

AC.248, 심화 4, ‘사44:24, 25’

AC.248.심화 4. ‘사44:24, 25’ 24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25헛된 말을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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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9, 창3:14, ‘흙’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창3:14)AC.249‘평생 흙을 먹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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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7, 창3:14, ‘배로 다니고’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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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7.심화

 

2. ‘2:2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2:2) Out of the belly of hell cried I, and thou heardest my voice (Jonah 2:2),

 

 

이 구절은 AC.247에서 ‘(belly)가 가장 낮은 것들, 곧 땅과 육체에 속한 차원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인용됩니다.

 

문자적으로는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기도이지만, 스베덴보리는 그보다 더 깊은 내적 의미에 주목합니다. 그는 ‘스올의 뱃속(out of the belly of hell)이라는 표현을 단순한 물고기의 위장 속으로 보지 않고, 영적으로 가장 낮고 어두운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특히 여기서 ‘’는 앞에서 본 창3:14의 ‘배로 기어갈지니라’와 같은 상응을 가집니다. 고대교회의 상응 언어에서 머리는 가장 높은 것들, 가슴은 중간의 영적, 자연적인 것들, 배는 가장 낮은 감각적, 육체적인 것들을 의미하였습니다. 따라서 ‘스올의 뱃속’은 단순히 어떤 장소가 아니라, 인간이 영적으로 가장 아래 단계까지 내려간 상태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뱀이 배로 기어가는 것은 하늘을 등지고 아래만 바라보는 타락의 상태를 의미하지만, 요나는 가장 낮은 상태에 있으면서도 여호와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아래에 있지만 아래에 머물기를 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그곳에서 위를 향해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보면, 이 구절은 단순히 고난 중의 기도가 아니라 인간이 영적으로 가장 어두운 상태에 있을지라도 주님께 부르짖을 수 있으며, 주님은 그 음성을 들으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요나는 가장 낮은 곳에 있었지만, 주님과의 연결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AC.247에서 이 구절은 ‘’가 가장 낮은 차원을 의미한다는 증거로 사용됩니다. 동시에 그 낮은 상태가 반드시 절망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보여줍니다. 사람이 비록 ‘스올의 뱃속’과 같은 상태에 있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주님을 향해 부르짖기 시작하는 순간 이미 위를 향한 길이 열리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AC.247에서 욘2:2를 인용한 이유는, ‘’가 영적으로 가장 낮은 차원과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며, 동시에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도 주님의 자비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영적 원리를 암시하기 위해서입니다. 요나는 땅 아래와 같은 상태에 있었지만, 그의 기도는 하늘에 닿았고,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인간을 다루시는 방식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AC.247, 창3:14, ‘배로 다니고’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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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7, 심화 1, ‘시44:24-26’

AC.247.심화 1. ‘시44:24-26’ 24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25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26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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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7.심화

 

1. ‘44:24-26

 

24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25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26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44:24-26) Wherefore hidest thou thy faces, and forgettest our misery and our oppression? For our soul is bowed down to the dust, and our belly cleaveth to the earth. Arise, a help for us, and redeem us for thy mercys sake (Ps. 44:24–26),

 

 

이 시편 구절은 AC.247에서 ‘(belly)가 가장 낮은 차원의 것, 곧 몸과 땅에 속한 것을 의미한다는 증거로 인용됩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시편 기자는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한 육체적 고통의 표현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그는 여기서 ‘영혼(soul)이 진토에 엎드려 있고, ‘(belly)가 땅에 붙어 있다는 표현 속에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특히 ‘배가 땅에 붙었다(our belly cleaveth to the earth)는 표현은 창3:14의 ‘배로 기어갈지니라’와 직접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배는 인간 안의 가장 낮은 수준, 곧 감각적이고 자연적인 차원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배가 땅에 붙는다는 것은 인간의 생각과 관심, 그리고 사랑이 하늘의 것들보다 세상과 몸의 것들에 매여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AC.247에서 그는 ‘사람이 여호와의 얼굴에서 돌아설 때, 배가 티끌과 땅에 붙는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얼굴을 돌리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주님의 얼굴에서 돌아섰다는 점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인간의 시선은 위를 향하지 못하고 아래를 향하게 됩니다. 영원한 것보다 일시적인 것을, 천국보다 세상을, 주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시편 기자는 바로 그 상태에서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부르짖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도움 요청이 아니라, 땅에 붙어 있는 상태에서 다시 위를 향하게 해 달라는 영적 기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AC.247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가 가장 낮은 감각적 수준을 의미하며, ‘배가 땅에 붙는다’는 것은 감각적 인간이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고 세상적인 것들에 매이게 된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곧 창세기에서 뱀이 ‘배로 기어가게 된 것’의 의미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성경적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AC.247, 심화 2, ‘욘2:2’

AC.247.심화 2. ‘욘2:2’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욘2:2) Out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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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7, 창3:14, ‘배로 다니고’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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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3:14)



AC.247

뱀이 배로 기어간다(serpent going on his belly)는 것은 그들의 감각 파트(the sensuous part)가 더 이상 하늘의 것들을 바라볼 수 없고, 오직 몸과 땅에 속한 것들만 바라보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고대인들이 (belly)로는 땅에 가장 가까운 것들을, ‘가슴(chest)으로는 땅보다 높은 것들을, 그리고 머리(head)로는 가장 높은 것들을 의미하였다는 사실로부터 분명합니다. 여기서 감각 파트는 인간 본성 가운데 가장 낮은 부분인데, 그것이 배로 기어간다(went upon its belly) 한 것은 땅에 속한 것들로 향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대교회에서 배를 땅에 대고 엎드리거나 머리에 티끌을 뿌리는 행위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편은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That the “serpent going on his belly” denotes that their sensuous part could no longer look upward to the things of heaven, but only downward to those of the body and the earth,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in ancient times by the “belly” such things are signified as are nearest to the earth; by the “chest” such as are above the earth; and by the “head,” what is highest. It is here said that the sensuous part, which in itself is the lowest part of man’s nature, “went upon its belly,” because it turned to what is earthly. The depression of the belly even to the earth, and the sprinkling of dust on the head, had a similar signification in the Jewish church. Thus we read in David:

 

24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25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26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44:24-26) Wherefore hidest thou thy faces, and forgettest our misery and our oppression? For our soul is bowed down to the dust, and our belly cleaveth to the earth. Arise, a help for us, and redeem us for thy mercys sake (Ps. 44:24–26),

 

여기서도 사람이 여호와의 얼굴에서 돌아설 때, ‘배가 티끌과 땅에 붙는다(cleaves by his belly to the dust and to the earth)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요나가 큰 물고기의 뱃속에 들어간 일도 가장 낮은 곳들, 곧 아래의 땅(lower earth)을 의미하며, 그래서 그는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라고 말합니다. where also it is evident that when man averts himself from the face of Jehovah, he “cleaves by his belly to the dust and to the earth.” In Jonah likewise, by the “belly” of the great fish, into which he was cast, are signified the lower parts of the earth, as is evident from his prophecy: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2:2) Out of the belly of hell cried I, and thou heardest my voice (Jonah 2:2),

 

여기서 스올(hell)은 아래의 땅을 의미합니다. where “hell” denotes the lower earth.

 

 

해설

 

이 글은 창3:14의 ‘배로 기어갈지니라’는 말씀을 더욱 깊이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뱀이 원래부터 배로 기어 다니므로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인간 안의 감각 파트가 영적인 방향을 잃어버린 상태를 묘사하는 상징으로 해석합니다.

 

고대교회 사람들은 인간의 몸 자체를 하나의 상응 구조로 보았습니다. 머리는 가장 높은 것들, 곧 천적이고 신적인 것들을 의미하였고, 가슴은 사랑과 신앙 같은 중간 영역을 의미하였으며, 배는 가장 아래 단계, 곧 자연적이고 감각적인 영역을 의미하였습니다. 따라서 ‘배로 기어간다’는 것은 단순한 자세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향이 완전히 아래로 향했다는 뜻입니다.

 

원래 인간은 위를 향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눈은 하늘을 볼 수 있고, 생각은 진리를 향할 수 있으며, 사랑은 주님을 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감각이 주인이 되면 시선이 바뀝니다. 이제 관심은 영적인 것보다 세속적인 것에, 영원한 것보다 눈앞의 것에, 주님보다 자기 자신에게 머물게 됩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배로 기어가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시편을 인용합니다.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라는 말은 단순히 육체적 고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낮아지고 세상적인 것에 얽매인 상태를 묘사합니다. 특히 ‘배가 땅에 붙었다’는 표현은 감각적 인간이 하늘을 향한 시선을 잃어버린 상태를 상징합니다.

 

요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물고기의 배를 단순한 생물학적 공간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것은 가장 낮은 영적 상태, 곧 빛이 거의 닿지 않는 영역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요나는 ‘물고기의 배’와 ‘스올의 뱃속’을 연결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이것은 영적으로 깊은 침체와 어둠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결국 AC.247의 핵심은 ‘’가 가장 낮은 차원의 삶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뱀이 배로 기어간다’는 것은 감각적 인간이 더 이상 위를 바라보지 못하고, 오직 아래의 것들만 바라보게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형벌의 선언이 아니라, 인간이 주님에게서 멀어질 때 일어나는 영적 방향 상실의 묘사입니다. 원래 하늘을 향하던 존재가 이제는 땅만 바라보게 되었고, 영원을 생각하던 존재가 순간적인 것만 생각하게 되었으며, 주님을 향하던 사랑이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 향하게 된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것이 ‘배로 기어가는 뱀’의 가장 깊은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화

 

1. ‘44:24-26

 

 

AC.247, 심화 1, ‘시44:24-26’

AC.247.심화 1. ‘시44:24-26’ 24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25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26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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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2

 

 

AC.247, 심화 2, ‘욘2:2’

AC.247.심화 2. ‘욘2:2’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욘2:2) Out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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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8, 창3:14, ‘몸의 자세와 방향을 영적 상태의 상응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창3:14)AC.248그러므로 사람이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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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6, 창3:14, ‘들의 모든 짐승’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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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6.심화

 

1. ‘68:9-10

 

9하나님이여 주께서 흡족한 비를 보내사 주의 기업이 곤핍할 때에 주께서 그것을 견고하게 하셨고 10주의 회중을 그 가운데에 살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 (68:9, 10) Thou, O God, dost send the rain of thy kindnesses; thou confirmest thy laboring inheritance; thy wild animal shall dwell therein (Ps. 68:9–10),

 

 

68:9-10 AC.246에서 ‘들의 짐승(wild animal of the field)이 애정(affection)을 의미한다는 증거로 인용됩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메마른 기업을 회복시키시고, 그 가운데 주의 회중이 거하게 하신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영어 원문에는 ‘thy wild animal shall dwell therein’이라는 표현이 있어, 스베덴보리는 이 ‘들의 짐승’을 단순한 동물로 보지 않습니다.

 

그의 상응 해석에 따르면 ‘(rain)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진리와 축복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기업(inheritance)은 교회 또는 주님께 속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 가운데 거하는 들짐승(wild animal)’은 그 교회 안에 살아 있는 선한 애정, 곧 주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정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의 내적 의미는, 주님께서 진리의 비를 내려 황폐해진 교회를 회복시키시고, 그 안에 선한 애정들이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AC.246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성경의 ‘들의 짐승’이 언제나 실제 동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의 애정들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특히 여기서는 ‘들의 짐승이 하나님의 기업 가운데 거한다’고 말하는데, 문자 그대로의 동물보다 교회 안에 거하는 선한 애정으로 이해할 때 훨씬 자연스럽고 깊은 의미가 드러난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field)이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은 단순한 자연의 들판이 아니라 진리와 선이 심기고 자라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들의 짐승’은 교회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애정들, 특히 선과 진리를 사랑하는 정서들을 뜻하게 됩니다.

 

결국 AC.246에서 이 시편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들의 짐승’이 상응으로는 인간 안의 애정, 특히 선한 애정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성경 자체로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주의 들짐승이 그 가운데 거하나이다’라는 말씀은, 주님께서 회복하신 교회 안에 선의 애정과 체어리티가 살아 있음을 뜻하는 말씀으로 해석되는 것입니다.

 

 

 

AC.246, 창3:14, ‘들의 모든 짐승’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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