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심’의 속뜻

 

2절,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hey were created.

 

475

남자와 여자’는 신앙과 사랑 간 결혼을,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심’은 그들은 교회, 즉 특별한 뜻으로는 ‘사람(man, homo)이라고 하는 교회였음을 의미합니다. By “male and female,” is signified the marriage between faith and love; by “calling their name man,” is signified that they were the church, which, in an especial sense, is called “man” [ho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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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의 주제가 태고교회의 출생 혹은 퍼져나감이기 때문에, 이것을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가는 것으로 처음 묘사

 

1절,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This is the book of the births of man.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474

여기서 다루어지고 있는 주제가 태고교회의 출생 혹은 퍼져나감이기 때문에, 이것을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가는 것으로 처음 묘사하고 있습니다. 퍼져나감들이 여기서부터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Since therefore the subject here treated of is the birth or propag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is is first described as coming from a spiritual to a celestial state, for the propagations follow from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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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적 인간은 주님에 의해 온전히 다스림을 받는, 주님의 모양이다.

 

1절,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This is the book of the births of man.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473

하나님의 모양(a likeness of God)은 천적 인간,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an image of God)은 영적 인간임 또한 앞서 보여드렸습니다. (cf. 창1:26) ‘형상(An image)은 ‘모양(a likeness)을 준비하는 것이며, ‘모양’은 실물과 똑같아 보이는 모방(a real replica)입니다. 천적 인간은 주님에 의해 온전히 다스림을 받는, 주님의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That a “likeness of God” is a celestial man, and an “image of God,” a spiritual man, has also been previously shown. An “image” is preparatory to a “likeness,” and a “likeness” is a real replica, for a celestial man is entirely governed by the Lord, as his “likeness.”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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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의 속뜻

 

1절,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This is the book of the births of man.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472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는 그가 영적으로 지음 받았음을,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는 그가 천적으로 지음 받았음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앞에서 말씀드리고 보여드린 내용에 나옵니다. ‘창조하다(to create)라는 표현은 새롭게 창조되고 있는, 즉 거듭나는 중인 사람에게 잘 어울리며, ‘만들다(make)라는 말은 온전해져 가는 사람에게 잘 어울립니다. 그런 까닭에 영적 인간을 천적으로 만드신 것을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created in making)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셨다’(창2:2)고 하신 앞 2장 말씀처럼, ‘창조하기(creating), ‘짓기(forming) 및 ‘만들기(making) 간에 관찰되는 정확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다른 구절들에서도 ‘창조하다(to create)는 영적 인간에, ‘만들다(to make), 즉 온전하게 하다(to perfect)는 천적 인간에 연관됩니다. (cf. AC.16, 88) That by the “day in which God created man” is signified his being made spiritual, and that by “God making him in his likeness” is signified his being made celestial, appears from what was said and shown above. The expression to “create” properly relates to man when he is being created anew, or regenerated; and the word “make,” when he is being perfected; wherefore in the Word there is an accurate distinction observed between “creating,” “forming,” and “making,” as was shown above in the second chapter, where it is said of the spiritual man made celestial that “God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created in making”; and in other passages also, to “create” relates to the spiritual man, and to “make,” that is, to perfect, to the celestial man. (See n. 16 and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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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그렇게 자기들끼리만 따로 지내며 가족들, 가문들 및 민족들로만 구별된 이유

 

1절,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This is the book of the births of man.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471

그들이 그렇게 자기들끼리만 따로 지내며 가족들, 가문들 및 민족들로만 구별된 이유는, 이것이 교회 전체의 보존을 의미하기 때문이며, 모든 가족과 가문이 그들의 어른들의 결정을 따를 수 있어야 사랑과 참된 예배 안에 머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 가족마다 다른 모든 가족과 구별되는 특이한 천성들이 있었다는 점 또한 인상적입니다. 자녀들, 심지어 먼 후손들까지도 그들의 부모들로부터 어떤 특이한 천성들, 곧 그들의 얼굴 생김새 및 다른 많은 특징들을 가지고 구별될 수 있도록 그런 독특한 특징들을 물려받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서로 뒤섞이는 대신 정확히 구별될 수 있도록 그들이 이런 식으로 거주하는 것을 주님은 기뻐하셨습니다. 이렇게 교회는 주님의 나라(the kingdom of the Lord)에 대한 살아있는 일종의 표상(表象, representative)이었습니다. 주님의 나라에는 사람들의 그룹들(societies, groups of people)이 셀 수 없이 많으며, 각각의 그룹들은 그들의 사랑과 신앙에 따라 다른 모든 그룹들과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앞에서 관찰한 것처럼, ‘혼자 사는 것(living alone)(cf. AC.139, 창2:18), 그리고 ‘장막에 거주함(dwelling in tents)(cf. AC.414, 창4:20)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같은 이유로, 주님은 유대교회가 가족, 가문 및 민족으로 구별되며, 그래서 모두가 자기 친족 가운데서만 결혼하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The reason why they dwelt thus alone by themselves, distinguished only into houses, families, and nations, was that by this means the church might be preserved entire, that all the houses and families might be dependent on their parent, and thereby remain in love and in true worship. It is to be remarked also that each house was of a peculiar genius, distinct from every other; for it is well known that children, and even remote descendants, derive from their parents a particular genius, and such marked characteristics that they can be distinguished by the face, and by many other peculiarities. Therefore, in order that there might not be a confounding, but an exact distinction, it pleased the Lord that they should dwell in this manner. Thus the church was a living representative of the kingdom of the Lord; for in the Lord’s kingdom there are innumerable societies, each one distinct from every other, according to the differences of love and faith. This, as observed above, is what is meant by “living alone,” and by “dwelling in tents.” For the same reason also it pleased the Lord that the Jewish church should be distinguished into houses, families, and nations, and that everyone should contract marriage within his own family; but concerning this,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4:20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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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부터 11, 에벨(Eber)의 때까지는 그 이름들이 특정 인물들이 절대 아닌, 실제 어떤 것들(actual things)을 의미

 

1절,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This is the book of the births of man.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470

계보를 적은 책’이 태고교회에 속했던 사람들의 일람이라는 사실은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아 너무나 분명한데요, 본 장부터 11장, 에벨(Eber)의 때까지는 이름들이 절대 인물들(persons)이 아닌, 실제적인 것들(actual things)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태곳적 인류는 가족들, 가문들 및 민족들로 구별되었습니다. 하나의 가족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들 및 그들을 섬겼던 사람들로 구성되었고, 하나의 가문은 좀 더 크고 작은 가족들로 구성되는데, 멀리 떨어진 건 아니지만 함께 사는 것도 아닌 그런 구성으로, 하나의 민족은 좀 더 크거나 작은 가문들로 구성, 그렇게 구별되었습니다. That the “book of the births” is an enumeration of those who were of the most ancient church is very evident from what follows, for from this to the eleventh chapter, that is, to the time of Eber, names never signify persons, but actual things. In the most ancient time mankind were distinguished into houses, families, and nations; a house consisting of the husband and wife with their children, together with some of their family who served; a family, of a greater or lesser number of houses, that lived not far apart and yet not together; and a nation, of a larger or smaller number of famil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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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보를 적은 책(The book of the births), 태고교회에 속했던 사람들의 일람(一覽, enumeration)

 

1절,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This is the book of the births of man.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469

계보를 적은 책(The book of the births)은 태고교회에 속했던 사람들의 일람(一覽, enumeration)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는 그가 영적으로 지음 받았음을 가리키고,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는 그가 천적으로 지음 받았음을 의미하는데요, 그래서 이 구절을 태고교회에 관한 설명으로 보는 것입니다. The “book of the births” is an enumeration of those who were of the most ancient church;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denotes his being made spiritual; and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signifies that he was made celestial: thus it is a descrip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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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Noah), 홍수 때까지 남은 몇 교회, 태고교회의 리메인스’(remains)

 

창5 개요

 

468

이전 장들을 통해 지금까지 말씀드리고 보여드린 내용들을 볼 때 분명한 건, 이름은 이교(異敎, heresy)나 교리(敎理, doctrine)를 의미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본 장에 나오는 이름들은 사람들이 아닌 어떤 것들, 현 맥락에서는 교리들이나 교회들, 곧 태고교회로부터 이 ‘노아’ 때까지 그들이 겪은 변화들에도 불구하고 보존된 교리나 교회들을 의미함을 보실 수 있습니다. 모든 교회의 경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줄어들다가 결국엔 몇 개 정도만 남게 되는데, 그 가운데 홍수 때까지 남은 이들 몇 교회를 가리켜 ‘노아’라 했던 것입니다. From what has been said and shown in the foregoing chapter, it is evident that by names are signified heresies and doctrines. Hence it may be seen that by the names in this chapter are not meant persons, but things, and in the present instance doctrines, or churches, which were preserved, notwithstanding the changes they underwent, from the time of the most ancient church even to “Noah.” But the case with every church is that in course of time it decreases, and at last remains among a few; and the few with whom it remained at the time of the flood were called “Noah.”

 

[2] 참된 교회가 줄어들다가 몇 안 남게 되는 건, 다른 교회들 역시 그렇게 줄어든 걸 보면 분명합니다. 남겨진 자들을 말씀에서는 ‘리메인스’(remains), ‘남은 자’(remnant)라 하고, 또 말하기를, ‘가운데’(in the midst), 혹은 ‘중간에’(middle), ‘땅에’(of the land) 있다고도 합니다. 이런 게 보편적이듯 특별한 경우 역시 그렇습니다. 즉 교회의 경우처럼 각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요. 각 사람 안에 있는 리메인스가 주님에 의해 보존되지 않으면 사람은 영원히 소멸하고 말기 때문인데, 영적, 천적 생명이 그의 리메인스 안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또한 일반적 혹은 보편적으로, 만일 교회, 즉 참 신앙이 몇 사람 안에라도 늘 남아있지 않으면 인류는 소멸됩니다. 잘 알려진 대로, 한 도시, 아니 간혹 한 나라 전체가 단지 몇 사람 덕분에 구원을 받곤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관련된 이런 일이 인체의 경우에도 있습니다. 심장이 괜찮은 한 이웃한 장기들 또한 괜찮을 수 있습니다만, 만일 심장이 약해지면 인체의 다른 장기들 역시 공급이 중단되어 그 사람은 죽습니다. 마지막 리메인스들이 바로 ‘노아’라고 하는 교회들입니다. (창6:12와 다른 구절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온땅이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That the true church decreases and remains with but few, is evident from other churches which have thus decreased. Those who are left are in the Word called “remains,” and a “remnant,” and are said to be “in the midst,” or “middle,” “of the land.” And as this is the case in the universal, so also it is in the particular, or as it is with the church, so it is with every individual man; for unless remains were preserved by the Lord in everyone, he must needs perish eternally, since spiritual and celestial life are in the remains. So also in the general or universal—if there were not always some with whom the church, or true faith, remained, the human race would perish; for, as is generally known, a city, nay, sometimes a whole kingdom, is saved for the sake of a few. It is in this respect with the church as it is with the human body; so long as the heart is sound, life is possible for the neighboring viscera, but when the heart is enfeebled, the other parts of the body cease to be nourished, and the man dies. The last remains are those which are signified by “Noah”; for (as appears from Gen. 6:12, as well as from other places) the whole earth had become corrupt.

 

[3] 보통, 교회뿐 아니라 각 개인 안에 있는 리메인스에 관하여 많은 말씀들이 예언서에 보면 나옵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입니다. Of remains as existing in each individual as well as in the church in general, much is said in the prophets; as in Isaiah:

 

3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4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사4:3-4) He that is left in Zion, and he that remaineth in Jerusalem, shall be called holy to him, even everyone that is written unto lives in Jerusalem, when the Lord shall have washed the filth of the daughters of Zion, and shall have washed away the bloods of Jerusalem from the midst thereof, (Isa. 4:3–4)

 

거룩함(holiness)으로 서술되고 있는 위 구절에서, 리메인스는 교회의 리메인스 및 교회에 속한 사람 또한 의미하고 있습니다. 시온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을 단순히 그들이 ‘남겨졌다’는 이유 만으로 거룩하다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in which passage holiness is predicated of the remains, by which are signified the remains of the church, and also of a man of the church; for “those left” in Zion and Jerusalem could not be holy merely because they were “left.” Again:

 

20그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21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사10:20-21) It shall come to pass in that day, that the remains of Israel, and such as are escaped of the house of Jacob, shall no more again stay upon him that smote them, but shall stay upon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in truth. The remains shall return, the remains of Jacob, unto the mighty God. (Isa. 10:20–21)

 

예레미야에서는 In Jeremiah:

 

그날 그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 (렘50:20) In those days, and in that time, the iniquity of Israel shall be sought for, and there shall be none; and the sins of Judah, and they shall not be found; for I will pardon him whom I shall make a remnant. (Jer. 50:20)

 

미가서입니다. In Micah: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미5:7) The remains of Jacob shall be in the midst of many peoples, as the dew from Jehovah, as the showers upon the grass. (Micah 5:7)

 

[4] 한 사람 혹은 교회의 잔여물 혹은 리메인스는 십 분의 일(the tenths)로도 표현되었는데, 이 십 분의 일은 거룩했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 십(10)을 가진 수 또한 거룩했고, 그래서 ‘’(10)은 리메인스를 서술하는데 쓰이고 있습니다. 이사야입니다. The residue or remains of a man, or of the church, were also represented by the tenths, which were holy; hence also a number with ten in it was holy, and “ten” is therefore predicated of remains; as in Isaiah:

 

12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그중에 십 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사6:12-13) Jehovah shall remove man, and many things [shall be] left in the midst of the land; and yet in it [shall be] a tenth part, and it shall return, and shall be for exterminating; as an oak, and an ilex, when the stock is cast forth from them, the holy seed is the stock thereof; (Isa. 6:12–13)

 

여기 남아 있는 것을 가리켜 ‘거룩한 씨’라 하고 있습니다. 아모스에서 where the residue is called a “seed of holiness.” And in Amos: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 중에서 천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암5:3) Thus saith the Lord Jehovah, The city that goeth forth a thousand shall have a hundred left, and that which goeth forth a hundred shall have ten left to the house of Israel. (Amos 5:3)

 

이 구절들과 다른 많은 데에서 그 속뜻으로는 우리가 지금까지 말해온 ‘리메인스’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한 도시가 거기 있는 교회의 리메인스 덕분에 보존된다는 사실은 소돔 관련,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분명합니다. In these and many other passages, in the internal sense are signified the “remains” of which we have been speaking. That a city is preserved for the sake of the remains of the church, is evident from what was said to Abraham concerning Sodom: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18:32) Abraham said, Peradventure ten may be found there; and he said, I will not destroy it for ten’s sake. (Gen. 18:32)

 

창6: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창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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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Noah), 일종의 새 교회

 

창5 개요

 

467

라멕’은 태고교회가 누리던 퍼셉션을 전혀 소유하지 못한 교회로 묘사되는 반면, ‘노아’는 일종의 새 교회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29절) Lamech” is described as retaining nothing of the perception which the most ancient church enjoyed; and “Noah” is described as a new church. (verse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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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Noah), 열 번째 교회, 홍수 후 세 교회의 부모 교회, 고대교회

 

창5 개요

 

466

열 번째 교회, 홍수 후 세 교회의 부모 교회였던 이 교회의 이름은 ‘노아(Noah)입니다. 이 교회를 고대교회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됩니다. (28-29) A tenth, the parent of three churches after the flood, was named “Noah.” This church is to be called the ancient church. (verses 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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