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떨며 나아온 열두 해 혈루 여인을 딸로 호칭하신 이유’ (2023/5/11)
...43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44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4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47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니 48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눅8:40-48)
사람 앞에 무릎을 꿇는 건 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어떨 땐 매우 치욕적이지만, 주님(the Divine)앞에서는 완전히 다른데요,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건 그 자체로 온전한 예배(total prostration)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람이 생각하기를, 힘과 능력, 지혜에 있어 오직 주님만이 전부이시며, 사람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거나, 모든 선은 오직 주님으로만 말미암으며, 사람으로는 전혀, 오히려 악만 말미암는다 할 때 그렇습니다. 사람이 진심으로 이런 사실을 시인, 인정할 때, 그는 마치 그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것 같으며, 그래서 그 결과 그의 얼굴에 이런 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가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게 될 때, 그는 또한 자신의 본성(the proprium [what is his own])으로부터도 지워지게 되는데, 이 본성이라는 것은 본질상 완전히 악하기만 한 것입니다. (AE.77)
이 내용은 스베덴보리 저, ‘계시록 해설’(Apocalypse Explained) 77번 글 인용이며, 이 글은 계시록 1장 17절,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중,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And I fell at his feet)에 관한 속뜻 주석입니다.
오늘 메시지의 하이라이트는, 주님의 인성과 신성의 하나 되심, 곧 주님의 신적 인성(Divine Human)으로부터 무한한 능력이 나오는 것처럼, 말씀의 겉 글자로 표현된 자연적 진리 안에 속뜻인 내적 진리가 담길 때, 그때에도 역시 무한한 능력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 안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인데요, 그것을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이렇게 묘사, 표현한 것입니다. ‘옷 가’는 말씀의 자연적 진리, ‘손을 대는 것’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감,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는 그 결과, 주님으로부터 무한한 능력이 나와 이 여인을 고치셨기 때문입니다.
더욱 자세한 내용은 아래 블로그를 참고하시고요, 오늘은 위 제목처럼, 주님이 많은 여인을 고치셨지만 유일하게 오늘 본문에서만 ‘딸’이라 호칭하신 이유를 살짝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예배 메시지에서 이것이 메인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본문에 나오는 ‘옷 가’는 히브리어로 ‘찌찌트’(ציצית)라 하는 것으로, 다음 민수기 말씀에 나오는 ‘옷단 귀에 만드는 술’을 말합니다.
38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39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40그리하여 너희가 내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행하면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민15:38-40)
류모세 이스라엘 선교사의 ‘열린다 성경’ 시리즈를 보면, 이 ‘찌찌트’는 그 사람의 정체성, 모든 것, 인격 전체를 나타내며, 그래서 본인의 허락 없이 함부로 만질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건 마치 지나가는 노인의 백발 수염을 잡아 흔드는 것과 같기 때문인데요, 만일 그랬다가는, 특히 유대 정결법에 저촉되는 사람이 만졌다가는 현장에서 돌에 맞을 수도 있는 것이며, 이 여인이 몹시 두려워한 것도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듯 정말 여인은 목숨을 걸고 주님의 ‘찌찌트’에 손을 댄 것인데요...
이런 사정을 아시고 주님은 복음서 전체에서 유일하게 이 현장, 이 여인에게만큼은 ‘딸’이라는 호칭으로 불러주십니다. 아무리 유대 사회 영향력 있는 랍비라 하더라도 자기 피붙이가 자신의 ‘찌찌트’ 만지는 건 괜찮기 때문인데요, 주님의 이 기가 막힌 순간적 배려에 아마도 둘러섰던 모든 무리가 다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해했을 것이며, 이 여인은 그래서 온몸을 떨며 주님의 사랑과 애정, 다정하신 따뜻한 배려에 깊은 감사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아휴, 이 글을 쓰는데 제가 다 눈물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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