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교회에서는 십계명이 곧 거룩함 자체였다

In the Israelitish church the Decalogue was holiness itself

 

 

해설

 

이 문장은 매우 짧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상당히 깊습니다. 먼저 ‘거룩함 자체’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십계명을 ‘거룩한 것들 중 하나’ 정도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고, 아예 ‘거룩함 그 자체’라고 단정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강조가 아니라, 십계명이 단지 많은 거룩한 것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거룩함의 중심, 기준, 본체와 연결된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십계명이 이렇게까지 절대적인 위치를 갖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십계명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가장 직접적으로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이 계명들은 단지 사회 질서를 위한 법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규정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이 계명들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일이 됩니다. 이 점에서 십계명은 ‘거룩한 삶의 출발점’이 아니라 ‘거룩함이 실제로 작동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교회’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교회’는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의 상태와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교회에서 십계명이 거룩함 자체였다’는 말은, 그들의 종교 생활 전체가 십계명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구약에서 십계명은 법궤 안에 보관되고, 성막과 성전의 가장 중심에 놓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모든 예배와 의식, 그리고 삶이 이 계명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왜 십계명이 그렇게 중심에 놓였는지도 이해됩니다. 십계명은 인간이 반드시 피해야 할 ‘악의 기본 형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 등, 이것들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인간 안의 사랑이 왜곡된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것들을 거부하는 것이 곧 ‘거룩함으로 들어가는 첫 단계’가 됩니다. 다시 말해, 거룩함은 어떤 신비한 체험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죄로 알고 그것을 끊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결국 이 문장은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은 단지 지켜야 할 규칙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과 연결되는 통로이며, 그 자체로 거룩함이 역사하는 자리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교회에서 십계명은 다른 모든 것들보다 중심에 있었고, 그 자체로 가장 거룩한 것으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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