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67.심화

 

3. 이제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로 하여금 여러 해 동안 영들과, 그리고 천사들과 함께 있게 하시고,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제가 듣고 보았던 것들을 밝히는 일이 이제 허락되었습니다.’ 말인데요, 제가 알기로 한 13년인가 지난 후라고 읽은 것 같습니다. 왜 주님은 이렇게 텀(term)을 두셨을까요?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그 기간을 어떻게 참았나요? 저 같으면 입이 근질거려 못 참았을 것 같은데...

 

 

목사님께서 기억하신 ‘ 13’이라는 기간은, 스베덴보리가 본격적으로 저술을 시작하기 전 준비기로 널리 이해되는 내용과 잘 맞습니다. 그는 ‘Emanuel Swedenborg의 삶’에서 1744–1745년 무렵 ‘영적 눈이 열리는 사건’을 겪은 뒤, 곧바로 대중을 향해 말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상당 기간 ‘보고, 듣고, 익히는 상태’에 머물렀고, 그 후에야 저술과 공개적 증언이 허락되었다고 밝힙니다. 이 점은 특히 Heaven and Hell 서문과 여러 곳에서 ‘이제 밝히는 것이 허락되었다’는 표현으로 반복됩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은 이런 ‘’을 두셨을까요? 첫째 이유는 ‘질서(order)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증언에 따르면, 영계는 단순한 체험의 나열이 아니라 매우 정교한 질서 속에 있으며, 그것을 전달하는 일 역시 같은 질서를 따라야 합니다. 만일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본 것을 즉시 말하게 되면, 인간의 기억, 상상, 기존 신학적 틀과 뒤섞여 왜곡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먼저 오랜 시간 동안 반복적으로 보고 듣게 하시며, 그가 ‘자기 생각이 아닌 것’을 분별하도록 훈련하신 것입니다. 즉, 단순한 체험자가 아니라 ‘증언할 수 있는 그릇’으로 빚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둘째는 ‘의지와 이해의 정화’, 곧 거듭남의 심화 과정입니다. 스베덴보리도 처음부터 완전히 준비된 상태는 아니었고, 그 역시 인간으로서 자연적 사랑과 자기 지혜의 흔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접하는 방대한 영적 사실들이 그의 이해 속에서 올바르게 정리되려면, 그의 의지와 이해 자체가 주님의 질서에 맞게 재정렬되어야 했습니다. 이 과정 없이 곧바로 말하게 되면, 전달 내용이 아니라 전달자의 상태가 메시지를 흐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주님은 ‘내용’보다 먼저 ‘사람’을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셋째는 ‘대표성과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단 한 번의 환상이나 특정 사건을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라, 천국과 지옥, 인간의 사후 상태, 말씀의 내적 의미 전반을 체계적으로 증언해야 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려면 단편적 경험이 아니라, 다양한 상태와 다양한 영들, 천사들의 삶을 충분히 관찰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긴 시간 동안 ‘여러 해 동안’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광범위한 경험이 축적된 뒤에야, 그것을 정리하여 인류에게 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 ‘그 기간을 어떻게 참았는가’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가 ‘참았다’기보다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도록 인도받았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그는 그 기간 동안 이미 매우 깊은 기쁨과 확신 속에 있었고, 무엇보다 ‘주님의 뜻에 따라 말할 때가 따로 있다’는 내적 인도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스베덴보리의 여러 기록을 보면, 그는 자신의 사명에 대해 강한 절제와 순종의 태도를 보이며, 스스로 앞서 나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체험한 세계가 얼마나 ‘질서와 순종’ 위에 서 있는지를 반영하는 태도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그가 완전히 침묵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그 기간에도 학자로서, 사상가로서 글을 쓰고 연구를 계속했으며, 다만 ‘영계에 대한 공개적 증언’만을 보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완전히 막혀 있는 상태가 아니라, 점진적으로 준비되어 가는 상태였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결국 이 ‘13년의 침묵’은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왜곡 없는 계시 전달’을 위한 필수적인 준비 기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점은 오늘 우리가 Arcana Coelestia를 읽을 때 느끼는 독특한 신뢰감, 곧 ‘체험담이 아니라 질서 있게 정리된 세계’라는 인상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배경이기도 합니다. 만일 그가 즉흥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면, 지금과 같은 깊이와 일관성은 결코 나오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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