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 in the air of the day; and the man and his wife hid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God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3:8)

 

AC.223

 

주님의 얼굴(the face of the Lord)이 자비(mercy), 평화(peace), 그리고 모든 선(good)을 의미한다는 사실로부터,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자비로 바라보시며, 결코 누구에게도 자신의 얼굴을 돌리시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악 가운데 있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 얼굴을 돌립니다. 주님께서 이사야서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As the “face of the Lord” is mercy, peace, and every good, it is evident that he regards all from mercy, and never averts his countenance from any; but that it is man, when in evil, who turns away his face, as is said by the Lord in Isaiah: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59:2) Your iniquities have separated between you and your God, and your sins have hid his face from you (Isa. 59:2);

 

또 여기 창세기에서는 그들이 벗었으므로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숨었다(they hid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because they were naked) 말하고 있습니다. and here, “they hid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because they were naked.”

 

 

해설

 

AC.223은 앞 절(AC.222)의 내용을 더욱 분명하게 결론짓는 구절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께서 죄인을 외면하시고, 노하셔서 얼굴을 돌리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말씀의 내적 의미를 통해 정반대의 사실을 설명합니다.

 

그에 따르면 주님의 얼굴은 자비(mercy), 평화(peace), 사랑(love), 선(good) 자체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얼굴을 돌리신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주님은 태양과 같으시며, 그 사랑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모두에게 끊임없이 흘러갑니다. 태양이 특정 사람에게만 빛을 비추고 다른 사람에게는 등을 돌리는 일이 없는 것처럼, 주님의 사랑도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흐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왜 ‘주께서 얼굴을 숨기셨다’거나 ‘주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표현이 나올까요? 스베덴보리는 그것이 인간의 체험에 따른 표현이라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얼굴을 돌린 쪽은 주님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사람이 악과 거짓 속으로 들어갈수록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지고, 결국 그것을 피하려 하게 됩니다.

 

이사야 592절도 같은 의미입니다.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었다’고 하지, ‘그가 얼굴을 돌렸다’고 하지 않습니다. 죄가 장벽이 된 것입니다. 마치 두꺼운 구름이 태양을 가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태양은 여전히 빛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창세기 3장의 아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주님이 아담을 피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오히려 곧이어 ‘네가 어디 있느냐’고 부르십니다. 찾으시는 분은 주님이시고, 숨는 쪽은 인간입니다.

 

이것은 영적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통찰입니다. 사람이 말씀을 읽기 싫어하고, 기도하기 싫어하고,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종종 ‘주님이 멀리 계신 것 같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설명에 따르면 실제로 멀어진 것은 주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입니다. 주님은 여전히 같은 사랑으로 가까이 계시지만, 우리의 상태가 그 사랑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AC.223은 매우 위로가 되는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주님은 결코 사람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얼굴은 언제나 자비와 평화를 향해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멀리 도망가도, 주님은 여전히 찾고 계십니다. 문제는 주님께서 우리를 외면하시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그 얼굴을 향해 돌아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담은 숨었지만, 주님은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오늘날에도 모든 사람의 영적 삶 속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심화

 

1. ‘59:2

 

 

AC.223, 심화 1, ‘사59:2’

AC.223.심화 1. ‘사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사59:2) Your iniquities have separated between you 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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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2, 창3:8,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은지라’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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