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And unto the woman he said, I will greatly multiply thy sorrow and thy conception; in sorrow thou shalt bring forth sons, and thine obedience shall be to thy man [vir], and he shall rule over thee. (창3:16)
AC.261
이제 ‘여자’(woman)는 그 교회가 사랑하였던 고유한 것(proprium)의 측면에서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greatly multiplying her sorrow)는 영적 싸움과, 그로 인해 생기는 근심과 고통을 의미합니다. ‘임신’(conception)은 모든 생각을 의미하며,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sons whom she would bring forth in sorrow)는 그렇게 하여 생겨나는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남편’(man)은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성적인 것(the rational)을 의미하며, 여자는 그것에 순종하게 되고, 그것이 여자를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By the “woman” is now signified the church as to proprium, which it loved; by “greatly multiplying her sorrow” is signified combat, and the anxiety it occasions; by “conception,” every thought; by the “sons whom she would bring forth in sorrow,” the truths which she would thus produce; by “man,” here as before, the rational which it will obey, and which will rule.
해설
이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창3:16의 말씀을 영적 의미로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뱀과 여자의 후손에 관한 말씀을 다루었다면, 이제는 타락이 시작된 이후 태고교회의 내적 상태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는 먼저 ‘여자’를 단순히 최초의 여성인 하와 개인으로 보지 않고, 교회를 상징하는 존재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특별히 ‘proprium을 사랑하게 된 교회’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본래는 모든 선과 진리가 주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로 살았던 교회가, 이제는 점차 자신의 own을 신뢰하기 시작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proprium’은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뜻합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원래 퍼셉션을 통해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흘러 들어온다는 사실을 직접 알았습니다. 그러나 뱀의 유혹 이후 사람은 자기 생각과 자기 의지, 자기 지혜를 점차 사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여전히 태고교회였지만, 그 내면에는 이미 타락의 과정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새로운 교회의 시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태고교회가 점차 본래의 순수성을 잃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라는 말씀도 문자적인 육체의 고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영적 전투(combat)와, 그로 인해 생기는 근심과 불안(anxiety)으로 설명합니다. 자기 자신을 따르려는 성향과 주님을 따르려는 성향이 서로 충돌하면서 사람 안에는 이전에는 없었던 내적 갈등이 생겨납니다. 이 고통은 주님의 형벌이 아니라, 거듭남을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영적 유혹과 내적 긴장을 의미합니다.
이어지는 ‘잉태, 임신’(conception)은 스베덴보리가 분명하게 ‘모든 생각’(every thought)이라고 설명합니다. 잉태는 아직 출산이 아닙니다. 영적으로는 진리가 처음 마음속에 받아들여지고, 생각과 이해의 형태로 형성되는 단계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 전에 먼저 잉태되듯이, 영적 생명도 먼저 생각 속에서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생각이 형성되는 모든 과정을 ‘임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다음의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라는 표현은 잉태된 생각이 실제 진리의 삶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아들’은 진리를 상징하므로,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생각 속에만 있던 진리가 실제 삶과 행동 속에서 열매를 맺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잉태와 출산은 같은 과정이 아니라 서로 이어지는 두 단계입니다. 먼저 진리가 생각 속에 잉태되고, 그다음 그 진리가 삶 속에서 실천되고 확립될 때 비로소 ‘아들이 태어난다’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이 모든 과정이 영적 싸움과 근심 가운데 이루어진다고 설명합니다.
마지막으로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라는 말씀도 문자적인 남녀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남편’(man)은 앞에서와 같이 이성적인 것(the rational)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시점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아직 홍수 이전이며, 교회는 여전히 태고교회입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것은 퍼셉션이 이미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proprium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퍼셉션이 점차 약해지고, 그에 따라 이성의 기능이 이전보다 점점 더 중요해지는 방향으로 내적 질서가 변하기 시작하였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한순간에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창3은 태고교회가 이미 끝난 뒤의 이야기가 아니라, 태고교회가 점차 쇠퇴해 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시기의 사람들도 여전히 퍼셉션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그것은 처음 창조되었을 때처럼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 변화는 창세기 4장과 5장을 거치며 더욱 심화되었고, 마침내 홍수 이후 노아로 대표되는 고대교회에서는 퍼셉션 대신 양심(conscience)이 영적 삶의 중심이 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됩니다. 따라서 AC.261은 그 역사적 전환이 시작되는 첫 단계를 설명하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AC.261은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타락이 시작된 태고교회의 영적 상태를 묘사하는 말씀입니다. 자기 own을 사랑하기 시작한 교회는 이제 영적 전투, 싸움을 경험하게 되고, 그 싸움 속에서 새로운 진리가 먼저 생각 속에 ‘잉태’되며, 이어서 삶 속에서 ‘출산’됩니다. 동시에 사랑 안에서 직접 진리를 지각하던 퍼셉션은 점차 약해지고, 이성의 역할이 점차 커지는 방향으로 교회의 내적 질서가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아직 태고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이며, 훗날 홍수 이후 양심을 중심으로 하는 고대교회가 세워질 역사적 전환을 준비하는 단계로 이해하는 것이 스베덴보리의 전체 문맥에 가장 충실한 해석입니다.
AC.260, 창3:15, ‘당시의 교회에게 이미 주어진 계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60지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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