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64.심화
4. ‘사66:7-9’
7시온은 진통을 하기 전에 해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아를 낳았으니 8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냐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한순간에 태어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하는 즉시 그 아들을 순산하였도다 9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아이를 갖도록 하였은즉 해산하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해산하게 하는 이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 (사66:7-9) Before she travailed she bringeth forth; and before her pain came, she was delivered of a man child; who hath heard such a thing? Who hath seen such things? Shall the earth bring forth in one day, and shall I not cause to bring forth? saith Jehovah; shall I cause to bring forth, and close up? saith thy God (Isa. 66:7–9).
스베덴보리가 AC.264에서 사66:7-9을 인용한 이유는, ‘해산’, ‘낳음’, ‘남아’라는 표현이 말씀에서 육체적 출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남 가운데 진리가 새롭게 태어나는 영적 과정을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앞의 호세아와 사23 인용들이 진리가 태어나지 못하거나 잃어버려지는 상태를 보여 주었다면, 사66은 반대로 주님께서 새 교회와 새 생명을 급속히 일으키시는 긍정적 출산의 장면을 보여줍니다.
‘시온은 진통을 하기 전에 해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아를 낳았으니’라는 말씀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보통은 산고가 있고, 그다음 출산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고통이 오기 전에 먼저 낳았다고 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본문을 인용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영적 출산은 인간의 힘과 계산으로만 진행되는 자연적 과정이 아니라, 주님의 역사로 이루어질 때에는 사람의 예상과 순서를 넘어갑니다. 진리의 태어남은 본질적으로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남아를 낳았다’는 표현에서 ‘남아, 곧 사내아이’는 신앙의 진리, 또는 강건하게 세워지는 진리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아들’은 진리를 상징하므로, 여기의 사내아이는 거듭남이나 새 교회 안에서 태어나는 참된 진리를 가리킵니다. 사66은 단지 한 아이의 출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진리가 교회 안에 새롭게 태어나는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한순간에 태어나겠느냐’(Shall the earth bring forth in one day,)라는 말씀은 새 교회의 형성과 거듭남의 놀라움을 말합니다. ‘나라’로 옮긴 ‘땅’(earth)은 교회가 세워지는 터, 또는 교회 자체를 의미할 수 있고, ‘나라’는 진리와 선으로 이루어진 영적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주님께서 교회를 새롭게 하실 때, 단순히 개인의 생각 하나를 고치시는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영적 질서 전체를 태어나게 하신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은 AC.261에서 말한 ‘임신’과 ‘출산’의 구별도 더 분명하게 해줍니다. 임신은 진리가 생각과 의도 안에서 형성되는 단계이고, 출산은 그 진리가 실제 생명과 삶으로 나타나는 단계입니다. 사66은 그 출산이 주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질 때, 인간이 생각하는 고통과 지연의 질서를 넘어 새 생명이 태어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를 거듭남을 다루는 본문으로 인용합니다.
또한 ‘내가 아이를 갖도록 하였은즉 해산하게 하지 아니하겠느냐?’라는 말씀은 주님의 섭리에 대한 강한 위로입니다. 주님께서 어떤 사람이나 교회 안에서 참된 진리를 잉태하게 하셨다면, 그 목적은 그것이 실제로 태어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주님은 시작만 하시고 끝내지 않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거듭남의 과정에서 진리가 아직 완전히 삶으로 나타나지 않은 사람에게도, 주님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사23의 시돈은 신앙의 지식을 가지고도 그것을 기억 지식으로 파괴하여 끝내 해산하지 못하는 상태를 보여주었습니다. 반면 사66은 주님께서 친히 역사하실 때 임신과 출산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두 본문은 서로 대조를 이룹니다. 인간의 지식과 자기 지혜가 앞설 때는 영적 불임이 오지만, 주님의 신적 작용이 중심이 될 때는 새 진리와 새 교회가 태어납니다.
AC.264에서 사66:7-9을 인용한 이유는, ‘아들을 낳는다’는 표현이 말씀에서 신앙의 진리가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며, 그 태어남은 궁극적으로 주님께서 이루시는 거듭남과 새 교회의 탄생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절은 창3:16의 ‘고통 가운데 아들을 낳는다’는 말씀을 단지 형벌의 언어로 읽지 않게 해줍니다. 오히려 타락 이후에도 주님께서 사람 안에 진리를 잉태하게 하시고, 때가 되면 그것을 삶으로 태어나게 하시는, 구원의 질서를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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