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베덴보리의 저작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의외로 그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하는 방식의 ‘국가를 위한 기도’, ‘정치 지도자를 위한 기도’, ‘악한 정권이 무너지게 해 달라는 기도’를 거의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일기, 편지, 저작 어디를 보아도 그런 정치적 기도문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라와 민족의 운명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관심의 초점이 지상의 정치보다 훨씬 깊은 곳, 곧 사람들의 영적 상태와 주님의 섭리에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째, 스베덴보리에게 국가의 흥망은 결국 사람들의 영적 상태의 결과였습니다. 그는 어떤 나라가 번영하거나 쇠퇴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경제나 군사력보다 그 사회를 이루는 사람들의 사랑(love)의 성격에서 찾았습니다.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이 지배하면 결국 부패한 통치자가 등장하고, 정의와 진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보다 선한 질서가 세워진다고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악한 왕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것’보다 ‘악한 백성에게 걸맞은 왕이 나타나는 것’을 더 근본적인 원인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관심은 언제나 지도자 한 사람을 바꾸는 것보다 사람들의 마음이 거듭나는 데 있었습니다.

 

둘째, 그는 악한 군주나 정치 지도자도 결국 주님의 섭리 아래 허용된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악을 승인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악인조차도 다른 더 큰 악을 막거나 공동체를 일정한 질서 속에 붙들어 두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신다고 설명합니다. 성경에서 바로가 그러했고, 앗수르가 그러했으며, 바벨론이 그러했습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라면 어떤 폭군을 보며, 먼저 ‘저 사람을 당장 제거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기보다 ‘주님, 저 악이 더 큰 악을 만들지 못하도록 다스려 주시고, 그것마저도 당신의 선한 목적에 사용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셋째, 그는 세상의 악과 싸우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을 정치적 투쟁보다 영적 전투에서 찾았습니다. 그의 저작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지옥은 사람들의 악한 사랑을 통하여 세상에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악한 제도와 부패한 정치도 그 자체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인간의 탐욕과 거짓이 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는 악의 열매보다 악의 뿌리를 제거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는 정치적 행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변화만으로는 악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넷째, 주님 나라의 도래 역시 정치적 혁명으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의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기도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주님의 통치가 시작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장차 천국이 완전히 나타날 미래도 포함하지만, 가장 먼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통치를 의미합니다. 한 사람 안에 주님의 나라가 세워질 때 그것이 가정으로, 교회로, 사회로 퍼져 나간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먼저 사람을 바꾸시는 주님의 역사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다섯째, 그렇다면 스베덴보리는 나라를 위해 어떻게 기도했을까요? 그의 저작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방향이었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님, 사람들의 마음을 진리와 선으로 이끌어 주십시오

 

거짓과 악이 더 이상 사람들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막아 주십시오

 

권세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보다 공공의 선을 사랑하게 하여 주십시오

 

악인들조차도 당신의 섭리 안에서 더 큰 악을 행하지 못하도록 다스려 주십시오

 

주님의 나라가 먼저 사람들의 심령 안에 세워지게 하시고, 그 결과가 세상에도 나타나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오늘날의 상황에 비추어 보면 스베덴보리는 어느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위해 기도하기보다 그들 안에서 역사하는 선과 악의 영적 원리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는 정의로운 통치자는 사랑했겠지만, 맹목적으로 숭배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악한 통치자는 미워하기보다 그 악이 더 확장되지 않도록 주님의 섭리를 신뢰했을 것입니다. 그의 희망은 언제나 ‘누가 권력을 잡느냐’보다 ‘주님의 나라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속에 얼마나 이루어지느냐’에 있었습니다.

 

이 점은 스베덴보리의 신앙을 잘 보여 줍니다. 그는 세상 역사가 결국 인간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섭리가 움직이는 역사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정치적 승패를 넘어서 언제나 ‘주님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주기도문의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그에게 이것은 단순한 예배용 문구가 아니라 나라와 민족, 지도자, 그리고 온 세상을 위한 가장 근본적인 기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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