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63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64그의 눈을 가리고 물어 이르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65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 66날이 새매 백성의 장로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여서 예수를 그 공회로 끌어들여 67이르되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대답하시되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68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69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 70다 이르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71그들이 이르되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그 입에서 들었노라 하더라 (눅22:63-71)

 

 

“인자”는 주님에게서 나오는 신적 진리를 뜻하고, “권능의 우편에 앉는 것”은 주님의 전능하심을 뜻한다. 신적 선은 신적 진리를 통해 전능한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그들이 보리라”고 말한 것은 주님이 세상에서 지옥을 완전히 이기시고 지옥의 모든 것과 천국의 모든 것을 당신의 질서 안에 두신 후, 신적 진리는 자체로 전능한 힘이 있음을 뜻한다. (천국의 비밀 9807:6, 이순철 역) I say unto you, Henceforth ye shall see the son of man sitting at the right hand of power, and coming upon the clouds of heaven (Matt. 26:64). From henceforth shall the son of man be sitting at the right hand of the power of God (Luke 22:69).The son of man” denotes the Divine truth that proceeds from the Lord; “sitting at the right hand of power” denotes that he has omnipotence, for Divine good has omnipotence by means of Divine truth; its being said that “from henceforth they shall see it” signifies that Divine truth was in its omnipotence after the Lord in the world had conquered the hells, and had reduced all things therein and in the heavens into order, and that in this way those could be saved who would receive him in faith and love (see n. 9715). (AC.9807:6, 출28:1, ‘그의 아들들’에 관한 주석에서)

 

 

오늘 말씀에는 주님께서 ‘지키는 사람들’에게 어떤 수모를 겪으셨으며, 주님은 어떻게 그 모든 일을 견디셨는지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씀의 문자적 의미로 보면, 이 ‘지키는 사람들’이 주님을 괴롭히며 욕보이고 있지만, 속뜻으로는 말세에 타락한 교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럽히는 것이고, 그리하여 그들 스스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제 그것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 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럽힌다’는 건 말씀에 손을 댄다는 것으로, 주님의 말씀에 사람이 무엇을 섞는 것, 곧 자의적으로 해석, 곡해, 왜곡하는 걸 말합니다. 말씀은 오직 말씀하신 분만이 푸실 수 있으며, 이를 계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계시받은 자만이 풀 수 있으며, 이때에도 푼다고 하지 않고, 전달한다고 해야 합니다. 사람은 오직 전달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먼저 본문 63절입니다.

 

63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여기서 지키는 사람들은 주님 당시 유대교회 사람들이고요,

 

※ 당시 예루살렘에는 두 종류의 군인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본래 성전 경비대, 다른 하나는 식민지를 관할, 통치하는 로마 군인들이었습니다. 지금 장면은 아직 빌라도를 만나기 전이므로 유대인들로 구성된 성전 경비대이지 싶습니다.

 

또한 교회의 마지막 때, 타락한 교회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마지막 때에는 유대교회 사람들이 주님을 함부로 대한 것처럼 교회들이 신성한 말씀을 마음대로 해석하여 더럽힙니다. 그것이 군사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곧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말씀을 더럽히는 이유는,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나려고 하지 않고, 세상 욕심을 채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 욕심 때문에 말씀이 오염되고 변질되는 것입니다.

 

※ 아타나시우스 신조(the Athanasian Faith)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제작 연대는 분명하지 않지만, 사도신경, 니케아 신조와 함께 초대교회 3대 신경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신조의 주된 내용은 삼위일체와 성육신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그의 유작, ‘계시록 해설’에서 이 신조를 다루고 있는데, 아래 내용은 그중 어떤 게 ‘말씀을 더럽히는 것’인지 당시 종교, 특히 교황 교회의 부패상을 배경으로 아래와 같이 적고 있습니다.

 

심지어 죽은 자의 뼈와 무덤에 거룩함이 있다는 것, 시체가 기적을 행한다는 것, 사람이 자신의 부를 우상이나 수도원에 성별(聖別)하지 않으면 나중에 연옥에서 고통을 당한다는 것, 천국과 지옥의 권세를 가졌으므로 사람이 신이라는 것 even that there is holiness in the bones of the dead and in sepulchers, that carcasses perform miracles, that man will be tormented in purgatory if he does not consecrate his wealth to idols or to monasteries, that men are gods because heaven and hell are in their power

 

그러니까 말씀을 가까이하는 목적이 주님 사랑이 아닌, 말씀을 그저 자기 사랑, 세상 사랑을 위한 수단과 도구로 삼는 일체의 종교적 행위가 곧 말씀을 더럽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그들이 말씀을 어떻게 더럽히는지 하는 내용입니다. 64절, 65절입니다.

 

64그의 눈을 가리고 물어 이르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65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

 

영어 성경에는 주님의 눈을 가리는 게 아니라 얼굴을 가리고 때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말씀에서 주님의 얼굴은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민수기 6장에는 주님께서 아론에게 명하시길,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할 때는 다음과 같이 말하라고 하십니다. 즉

 

24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6:24-26)

 

라고 말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명령하신 이유는, 주님에게서 나오는 사랑과 자비는 모든 악과 거짓을 이기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볼 때, 군사들이 주님의 얼굴을 가리고 때리는 것은, 타락한 교회들이 말씀을 왜곡함으로써 말씀의 생명인 사랑을 죽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교리가 바로 사랑 없는 믿음만의 교리, 오직 믿음의 교리입니다.

 

※ 이 ‘오직 믿음’(Faith Alone) 교리는 대단히 위험합니다. 주님은 스베덴보리를 통해 계시록에 나오는 모든 심판의 대상이 모두 이 ‘오직 믿음’의 교회임을 밝히고 계십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천국은 속 사람의 상태로 들어가는 곳인데, 이 교리로는 이런 사실을 가볍게 여기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즉 평소 속 사람의 상태 관리에 소홀, 결국 구원받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마27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매달고 조롱하기를,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마27:42)

 

라고 합니다. 사실 나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역설 중에서도 역설입니다. 내가 있어야 남도 있지 않나 그렇게 모두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그런데도 주님은 인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심으로써, 이웃을 위해 나를 죽이는 것이 사랑이요 구원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사랑 없는 믿음 안에 있는 자들은 주님의 그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위에 계신 주님을 향해 “거기서 내려와 먼저 너 자신을 구원하라”고 조롱했습니다. 앞에서 주님의 얼굴을 가리고 때리면서 누가 때렸는지 말하라고 하는 자들도 같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말씀 안에 신성이 있음을 믿지 않았고, 그러므로 말씀의 능력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자기 입맛대로 곡해했고, 내심 말씀의 능력이 어디 있는가 하고 비웃었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얼굴을 가리고 때리면서 누가 때렸는지 말하라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만약 기적이 나타났다면 그들은 말씀이신 주님을 믿었을까요? 잠시는 믿는 것같이 했겠지만, 계속 믿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기적에 대해 ‘천국의 비밀’ 7290:2번 글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적은 믿음을 강제하며 강제된 믿음은 사람 안에 남지 않고 흩어져 없어진다. 그러므로 예배의 내적인 것인 믿음과 인애는 사람의 자유 안에 심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때 그것은 그의 것이 되고 그의 것이 되면 그에게 영원히 남기 때문이다. But miracles are not done among those who are in internal worship, that is, in charity and faith, because to these they are hurtful, for miracles compel belief, and what is compelled does not remain, but is dissipated. The inward things of worship, which are faith and charity, must be implanted in freedom, for then they are appropriated, and what is so appropriated remains; whereas that which is implanted in compulsion, remains outside the internal man in the external, because nothing enters into the internal man except by means of intellectual ideas, which are reasons; for the ground which there receives is an enlightened rational.

 

그래서 주님은 기적을 보이라고 하는 자들에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군사들이 밤새 주님을 욕보이는 동안 날이 밝았습니다. 66절입니다.

 

66날이 새매 백성의 장로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여서 예수를 그 공회로 끌어들여

 

말씀에서 날이 밝았다는 건 교회가 주님과 연결된 상태, 즉 가르침을 받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반대로 교회가 주님에게 등을 돌린 상태입니다. 주님에게 등을 돌렸다는 것은 주님이 주시는 선과 진리를 거부하고, 지옥의 악과 거짓에 깊이 빠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 상태에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주님을 공회로 끌고 갔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지옥적인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며, 그리하여 진리를 핍박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를테면 대제사장들은 말씀 안에 있는 선을 자아의 악과 섞는 사람들이고, 서기관들은 말씀 안에 있는 진리를 자아의 거짓과 섞는 사람들입니다. 말세에 교회들은 그런 방법으로 말씀을 더럽히고, 더럽혀진 말씀을 가지고 교인들을 잘못된 길로 끌고 갑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주님을 공회로 끌고 가는 건 말세에 타락한 교회들이 거짓 교리를 가지고 진리를 심판하려고 하는 걸 의미합니다. 지금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존 교회의 지도자들은 새 교회의 진리로 다시 오신 주님을 불법자요 이단이라고 마음대로 심판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주님께 묻습니다. 67절, 68절입니다.

 

67이르되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대답하시되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68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말씀에서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 부음 받은 자, 또는 왕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왕은 속뜻으로 진리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하는 것은 악의적인 거짓 안에 있는 자들이 진리를 심판하는 것입니다. 악의적인 거짓 안에 있는 사람이 있고, 선의의 거짓 안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후자의 사람은 언젠가는 진리를 이해합니다. 그들에게 아직 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자의 사람, 즉 악의적인 거짓 안에 있는 사람은 영원히 진리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악과 진리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할 것이다 하신 것입니다. 계속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69절입니다.

 

69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

 

여기서 인자는 진리의 측면에서 주님을 뜻합니다. 인자로 표현되는 진리는 지옥과 싸우는 진리이고, 그러므로 아직 완전한 진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진리라면 지옥이 감히 공격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시험을 받으실 때마다 당신 자신을 인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리라고 한 인자는 누굴까요? 지옥의 시험을 완전히 이기시고 전능한 힘을 갖게 된 진리, 바로 주님이십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신 것은, 이제부터의 말씀은 지옥의 어떤 어둠도 훼손할 수 없는 완전한 말씀이며 진리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지옥의 모든 시험을 이기시고, 완전한 진리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가지고, 낡고 타락한 교회를 대신, 새 교회의 문을 여십니다. 그 완전하고 전능한 진리이시며 주님이신 이가 바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인자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오셔서 지옥을 완전히 이기시기 전의 말씀은 완전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천국의 비밀’ 6373번 글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성한 진리는 천국을 통해 인간에게로 흘러들어온다. 그러나 인간이 선으로부터 멀어졌을 때, 그 신성은 충분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주님은 세상에 오셔서 당신 안의 인성을 거룩하게 만드셨고, 그리하여 그때 주님의 신적 인성은 신성한 진리의 근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진리를 통해 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에 대해 욥기 15장 15절은 ‘하나님은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가 보시기에 부정하거든’이라고 말한다.

 

욥기에 ‘하늘이라도 그가 보시기에 부정하거든’이라고 한 것은 주님이 보시기에 그동안 천국을 통해 지상으로 내려오는 진리는 인간을 거듭나게 할 정도로 완전한 진리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그런가 하면 ‘천국의 비밀’ 9807:6번 글은

 

주님이 세상에서 지옥을 완전히 이기시고 천국과 지옥의 모든 것을 당신의 질서 안에 두신 후, 신적 진리는 자체로 전능한 힘을 가진다.

 

라고 합니다. 이상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주님 오시기 전의 말씀이 인간에 의해 훼손될 수 있는 말씀이라면, 주님이 오신 후의 말씀은 아무도 훼손할 수 없는 능력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오늘 본문 70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70다 이르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은 지옥을 이기고 영화롭게 되신 주님의 신적 인성을 뜻하고, 또한 그때 선으로 충만하게 된 능력의 말씀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대제사장에게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하신 것은, 이제부터의 말씀은 누군가 더럽히려고 할 때, 그들의 추악함이 드러날 뿐 결코 더럽힐 수 없는 말씀임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더럽히려 할수록 오히려 그들 스스로 진리를 증거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가 믿는 이 진리가 바로 그런 전능하신 진리입니다. 새 교회의 모든 성도가 이 진리의 힘을 의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진리의 전능하신 힘에 의지해 매일 같이 새로워지시길 기도합니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요17:5)

 

아멘

 

2023-02-05(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2024-10-27(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2024-10-27(D1)-주일예배(2567, 눅22,63-71),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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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도.2024-10-27(D1)-주일예배(2567, 눅22,63-71),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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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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