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3:16)



AC.263

그러므로 감각 파트(the sensuous part)가 스스로 주님으로부터 돌아서면,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스스로 저주를 자초하면, 악한 영들은 강력하게 공격을 시작하고, 이때 함께 있는 천사들은 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게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영적 싸움이 임신 및 해산 관련, 내가 네 고통을 크게 더하겠다는 말씀으로 묘사된 것입니다. 이는 영적으로는 생각들과 진리의 생겨남에 관한 것을 의미합니다. When therefore the sensuous part averts itself or curses itself, the consequence is that evil spirits begin to fight powerfully, and the attendant angels to labor, and therefore this combat is described by the words, “I will greatly multiply thy sorrow, in relation to the conception and birth of sons,” that is, as to the thoughts and productions of truth.

 

 

해설

 

이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앞 절에서 설명한 ‘고통을 크게 더하리라’는 말씀이 왜 영적 전쟁을 의미하는지를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사람이 타락한 이후 영적 세계에서는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줍니다. 곧, 사람이 주님에게서 등을 돌리기 시작하면 악한 영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반대로 천사들은 사람을 보호하고 인도하기 위해 더욱 힘쓰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양측의 작용이 사람 안에서 경험되는 영적 유혹과 내적 갈등입니다.

 

여기서 ‘감각 파트(the sensuous part)는 사람의 가장 바깥 의식, 곧 오감을 통하여 세상과 접촉하는 자연적 차원을 말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미 AC.259에서 뱀이 공격하는 대상이 바로 이 가장 낮은 자연적 차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감각 자체는 주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악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감각이 주님의 질서를 따르지 않고 독립하여 스스로 진리와 선을 판단하려 할 때입니다. 이것이 ‘감각 파트가 스스로 돌아선다(averts itself)는 말의 의미입니다.

 

또한 스베덴보리는 ‘저주를 받는다(curses itself)는 표현을 매우 신중하게 사용합니다. 원문은 사람이 하나님께 저주를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감각 파트가 스스로 주님에게서 돌아섬으로써 스스로 저주받은 상태에 이른다는 의미입니다. 즉, 저주의 원인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과의 연결을 끊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창3에서 반복되어 온 스베덴보리의 해석 원리와도 일치합니다.

 

그 결과 영계에서는 즉시 변화가 일어납니다. 악한 영들은 사람 안에 있는 자기 사랑과 거짓을 더욱 자극하며, 힘껏 공격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님께서는 천사들을 통하여 사람을 결코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천사들은 사람 안에 보존되어 있는 리메인스를 통하여 선한 생각과 선한 애정을 일깨우며, 사람이 완전히 악에 넘어가지 않도록 끊임없이 보호합니다. 따라서 영적 유혹은 악한 영과 천사가 서로 대등하게 싸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천사들을 통하여 사람을 지키시는 가운데 악을 허용하시는 질서 있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스베덴보리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라’를 영적 전쟁으로 해석합니다. 이 고통은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악한 영들의 영향과 천사들의 보호가 사람 안에서 동시에 작용할 때 경험하는 내적 긴장과 불안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주님 편에 서려 할수록 자기 사랑은 더욱 저항하고, 그 저항 속에서 유혹과 갈등이 생깁니다. 이것이 영적 의미에서의 ‘고통’입니다.

 

이어지는 ‘잉태와 아들들을 낳는 것’도 앞 절 설명을 더욱 발전시킵니다. ‘잉태’는 새로운 생각이 형성되는 과정이며, ‘아들들을 낳는 것’은 그 생각이 실제 진리의 삶으로 나타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은 타락 이후에는 결코 평탄하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새로운 진리가 생각 속에 자리 잡으려 할 때마다 악은 그것을 방해하려 하고, 진리가 삶으로 나타나려 할 때마다 자기 사랑은 그것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진리는 반드시 영적 싸움을 통과하여야만 사람의 것이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AC.261AC.263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AC.261이 ‘고통’, ‘잉태’, ‘아들’의 영적 의미를 정의하였다면, AC.263은 왜 그런 고통이 생기는지를 설명합니다. 그 원인은 주님께서 고통을 주시기 때문이 아니라, 타락한 사람 안에서 악한 영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천사들도 더욱 애써 사람을 보호하게 되므로, 사람은 두 세계의 영향을 의식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AC.263은 창3:16의 ‘고통을 크게 더하리라’는 말씀이 영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유혹의 과정을 묘사한 것임을 밝히는 글입니다. 사람이 감각적 차원에서 주님에게서 돌아설 때 악한 영들은 더욱 강하게 역사하고, 천사들은 사람 안에 있는 리메인스를 통하여 더욱 힘써 보호합니다. 그 결과 사람 안에서는 새로운 진리가 생각 속에 잉태되고, 삶 속에 태어나는 과정 전체가 영적 싸움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이 고통은 형벌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과정에서 허락하시는 영적 전투의 모습이며, 그 싸움의 끝에는 언제나 주님의 보호와 승리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스베덴보리의 가르침입니다.

 

 

 

AC.262, 창3:16, ‘여자’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3:16)AC.262‘여자’(woman)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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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3:16)



AC.262

여자(woman)가 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보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전에 여자로 뜻하였던 그 proprium(own)으로 말미암아 왜곡된 교회를 의미합니다. 이는 지금 다루고 있는 대상이, 이미 타락하여 왜곡된 태고교회의 후손들이기 때문입니다. That the church is signified by the “woman” has been previously shown, but here the church perverted by the own which was itself formerly signified by the “woman,” because the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had become perverted, is now treated of.

 

 

해설

 

이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여자’라는 동일한 상징이 문맥에 따라 서로 다른 상태의 교회를 나타낼 수 있음을 설명합니다. 그는 앞에서 이미 ‘여자’는 교회를 의미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상징은 언제나 고정된 하나의 의미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문맥에 따라 그 상태가 달라집니다. 따라서 여기의 ‘여자’는 교회 일반이 아니라, 자기 고유 proprium이 들어와 본래의 순수함을 잃기 시작한 교회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특별히 중요한 표현은 ‘왜곡된 교회(the church perverted)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교회가 하루아침에 완전히 악한 교회가 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곡되었다(perverted)는 것은 본래의 질서가 점차 비틀어지고 방향이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즉, 주님을 중심으로 살던 교회가 점차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같은 진리를 가지고도 그것을 바라보는 중심이 달라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 원인이 바로 ‘proprium(own)입니다. 본래 사람은 자신에게서 선과 진리가 나오는 것처럼 느끼지만, 태고교회 사람들은 그것이 실제로는 주님으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것임을 퍼셉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proprium을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사람은 점차 자신이 선하고, 자신이 지혜롭고, 자신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자기중심성이 모든 영적 왜곡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이 글은 창3의 시점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분명히 ‘지금 다루고 있는 대상은 이미 타락하여 왜곡된 태고교회의 후손들’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창3은 태고교회가 완전히 끝난 이후의 고대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태고교회의 계보 안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이미 그들의 내적 상태는 본래의 순수함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었습니다. 이것은 AC.261에서 보았던 내적 질서의 변화가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다시 확인해 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후손(posterity)이라는 표현도 단순한 혈통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성경에서 후손을 흔히 같은 교회의 영적 계승자라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따라서 태고교회의 후손이란 태고교회의 전통과 계시를 이어받았지만, 그 정신과 생명을 점차 잃어버린 사람들을 뜻합니다. 외형상으로는 같은 교회에 속해 있지만, 내적으로는 이미 다른 상태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처럼 스베덴보리는 교회의 타락을 매우 점진적인 과정으로 설명합니다. 처음에는 퍼셉션이 약해지고, 이어 자기 proprium이 커지며, 그 결과 진리의 이해가 왜곡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사랑과 지혜의 질서 자체가 무너져 홍수에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창3은 완전한 타락의 결과를 기록한 장이라기보다, 그 타락이 시작되고 점차 심화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장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교회에도 이 원리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교회의 외형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습니다. 말씀도 있고, 예배도 있으며, 신앙고백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이 주님에서 자기 자신으로 옮겨가는 순간, 교회는 외적으로는 여전히 교회이지만 내적으로는 이미 왜곡되기 시작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변화가 항상 자기 proprium을 사랑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거듭 강조합니다.

 

AC.262는 창3에 나오는 ‘여자’가 더 이상 창2의 순수한 태고교회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는 글입니다. 여기의 ‘여자’는 자기 proprium을 사랑함으로써 본래의 질서를 잃기 시작한 태고교회의 후손들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새로운 교회의 시작이 아니라, 여전히 태고교회의 역사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영적 쇠퇴의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며, 이후 창4와 창5, 그리고 홍수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질 교회의 점진적인 타락을 이해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AC.263, 창3:16,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3:16)AC.263그러므로 감각 파트(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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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61, 창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AC.261-26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And unto the woman he said, I will greatly 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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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And unto the woman he said, I will greatly multiply thy sorrow and thy conception; in sorrow thou shalt bring forth sons, and thine obedience shall be to thy man [vir], and he shall rule over thee. (3:16)



AC.261

이제 여자(woman)는 그 교회가 사랑하였던 고유한 것(proprium)의 측면에서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greatly multiplying her sorrow)는 영적 싸움과, 그로 인해 생기는 근심과 고통을 의미합니다. ‘임신(conception)은 모든 생각을 의미하며,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sons whom she would bring forth in sorrow)는 그렇게 하여 생겨나는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남편(man)은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성적인 것(the rational)을 의미하며, 여자는 그것에 순종하게 되고, 그것이 여자를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By the “woman” is now signified the church as to proprium, which it loved; by “greatly multiplying her sorrow” is signified combat, and the anxiety it occasions; by “conception,” every thought; by the “sons whom she would bring forth in sorrow,” the truths which she would thus produce; by “man,” here as before, the rational which it will obey, and which will rule.

 

 

해설

 

이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창3:16의 말씀을 영적 의미로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뱀과 여자의 후손에 관한 말씀을 다루었다면, 이제는 타락이 시작된 이후 태고교회의 내적 상태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는 먼저 ‘여자’를 단순히 최초의 여성인 하와 개인으로 보지 않고, 교회를 상징하는 존재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특별히 ‘proprium을 사랑하게 된 교회’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본래는 모든 선과 진리가 주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로 살았던 교회가, 이제는 점차 자신의 own을 신뢰하기 시작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proprium’은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뜻합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원래 퍼셉션을 통해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흘러 들어온다는 사실을 직접 알았습니다. 그러나 뱀의 유혹 이후 사람은 자기 생각과 자기 의지, 자기 지혜를 점차 사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여전히 태고교회였지만, 그 내면에는 이미 타락의 과정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새로운 교회의 시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태고교회가 점차 본래의 순수성을 잃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라는 말씀도 문자적인 육체의 고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영적 전투(combat)와, 그로 인해 생기는 근심과 불안(anxiety)으로 설명합니다. 자기 자신을 따르려는 성향과 주님을 따르려는 성향이 서로 충돌하면서 사람 안에는 이전에는 없었던 내적 갈등이 생겨납니다. 이 고통은 주님의 형벌이 아니라, 거듭남을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영적 유혹과 내적 긴장을 의미합니다.

 

이어지는 ‘잉태, 임신(conception)은 스베덴보리가 분명하게 ‘모든 생각(every thought)이라고 설명합니다. 잉태는 아직 출산이 아닙니다. 영적으로는 진리가 처음 마음속에 받아들여지고, 생각과 이해의 형태로 형성되는 단계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 전에 먼저 잉태되듯이, 영적 생명도 먼저 생각 속에서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생각이 형성되는 모든 과정을 ‘임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다음의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라는 표현은 잉태된 생각이 실제 진리의 삶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아들’은 진리를 상징하므로,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생각 속에만 있던 진리가 실제 삶과 행동 속에서 열매를 맺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잉태와 출산은 같은 과정이 아니라 서로 이어지는 두 단계입니다. 먼저 진리가 생각 속에 잉태되고, 그다음 그 진리가 삶 속에서 실천되고 확립될 때 비로소 ‘아들이 태어난다’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이 모든 과정이 영적 싸움과 근심 가운데 이루어진다고 설명합니다.

 

마지막으로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라는 말씀도 문자적인 남녀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남편(man)은 앞에서와 같이 이성적인 것(the rational)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시점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아직 홍수 이전이며, 교회는 여전히 태고교회입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것은 퍼셉션이 이미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proprium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퍼셉션이 점차 약해지고, 그에 따라 이성의 기능이 이전보다 점점 더 중요해지는 방향으로 내적 질서가 변하기 시작하였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한순간에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창3은 태고교회가 이미 끝난 뒤의 이야기가 아니라, 태고교회가 점차 쇠퇴해 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시기의 사람들도 여전히 퍼셉션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그것은 처음 창조되었을 때처럼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 변화는 창세기 4장과 5장을 거치며 더욱 심화되었고, 마침내 홍수 이후 노아로 대표되는 고대교회에서는 퍼셉션 대신 양심(conscience)이 영적 삶의 중심이 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됩니다. 따라서 AC.261은 그 역사적 전환이 시작되는 첫 단계를 설명하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AC.261은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타락이 시작된 태고교회의 영적 상태를 묘사하는 말씀입니다. 자기 own을 사랑하기 시작한 교회는 이제 영적 전투, 싸움을 경험하게 되고, 그 싸움 속에서 새로운 진리가 먼저 생각 속에 ‘잉태’되며, 이어서 삶 속에서 ‘출산’됩니다. 동시에 사랑 안에서 직접 진리를 지각하던 퍼셉션은 점차 약해지고, 이성의 역할이 점차 커지는 방향으로 교회의 내적 질서가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아직 태고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이며, 훗날 홍수 이후 양심을 중심으로 하는 고대교회가 세워질 역사적 전환을 준비하는 단계로 이해하는 것이 스베덴보리의 전체 문맥에 가장 충실한 해석입니다.

 

 

 

AC.262, 창3:16, ‘여자’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3:16)AC.262‘여자’(woman)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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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60, 창3:15, ‘당시의 교회에게 이미 주어진 계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60지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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