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마지막 가르침

 

 

44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50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52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눅24:44-53)

 

 

주님의 인성이 영화롭게 되었을 때, 즉 신성하게 되었을 때, 주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당신의 몸 전체로 다시 살아나셨다. 그것은 여느 인간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은 몸으로는 다시 살 수 없고 오로지 영으로만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다. (주님에 관한 교리 35:9, 이순철 역) As the Lord’s human was glorified, that is, made Divine, he rose again after death on the third day with his whole body, which does not take place with any man; for a man rises again solely as to the spirit, and not as to the body. (L.35:9)

 

 

※ 드디어 오늘, 누가복음 마지막 본문인 24장 44절로 53절을 끝으로, 지난 2022년 11월 25일 금요일부터 시작한 이 누가복음 속뜻 강해 설교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만 2년 2개월이 넘었는데요, 지금도이지만, 그때는 더더욱 말씀의 속뜻에 대해 쌩(生)초보였던지라 누구의 도움 없이 오직 제힘으로만 주일 설교를 준비하려면 한 주 내내 주일설교에만 전념해도 모자라기에 고민하며 기도하던 중, 다른, 이 길을 먼저 걸으신 분들의 설교를 참고하라시는 주님의 퍼셉션을 얻어 시작한, 전혀 새로운 형태의 주일 설교 준비였습니다. 특별히 자존심 센 저로서는 더욱 말이지요. 그러나 개인의 자존심은 주님의 퍼셉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제 짐이 ‘쉽고 가벼워짐’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원본 그대로 인용, 그저 대신 읽는 수준이었지만, 갈수록 ‘아, 이대로는 좀... 나는 몰라도 이런 속뜻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무척 생소하며, 때로는 반발심이 들 수도 있겠다’ 싶어 중간중간 최대한 양쪽, 그러니까 개신교와 이 스베덴보리 양쪽을 경험하고 있는 중간자적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설명을 곁들이느라 솔직히 의식적으로는 갈수록 거의 일주일 내내 이 주일 설교에만 매달리기도 했지요... 뭐,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사실 저 개인적으로는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정말 큰 개인적 성장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본인의 설교를 얼마든지 인용, 원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지금은 은퇴하신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님께도 거듭 감사 말씀을 전합니다. 한 가지, 특이하게도 저는 매번 원고를 인쇄, 설교 때 나누어주어 그 원고를 함께 보며 설교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리고 스베덴보리의 글 인용 시, 가급적 그 영어 원문을 병기(倂記)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이 역시, 주님의 퍼셉션을 따른 것입니다. 이 관련 영어 원문 찾는 시간이 제법 걸리기도 했지만, ‘이렇게 하라신 주님의 어떤 뜻이 있으시겠지’ 믿고, 우직하게 순종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부디 나누어드린 이 모든 원고를 다들 몇 번씩 다시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주님의 빛 비추심을 간절히 구하시면서 말이지요. 말씀의 속뜻을 맛보실수록 참 자유를 경험하시기 때문인데요, 다음 주님 말씀처럼 말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네, 아멘, 아멘입니다.

 

네, 그럼 시작합니다.

 

시편 88편 4절로 6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4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이 인정되고 힘없는 용사와 같으며 5죽은 자 중에 던져진 바 되었으며 죽임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 같으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시니 그들은 주의 손에서 끊어진 자니이다 6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와 어둡고 음침한 곳에 두셨사오며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자신이 시험에 들었을 때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시험 중에는 종종 손과 발이 묶인 사람처럼 아무 힘을 쓸 수 없거나 죽임을 당해 웅덩이에 버려진 것 같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말씀은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겪으셨던 시험을 묘사한 것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주님은 세상에 오셔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말씀에는 주님의 시험에 대해 광야에서의 40일간의 시험과 겟세마네 동산과 십자가에서의 마지막 시험 정도로만 기록하고 있지만, 주님은 아주 어릴 적부터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얼마나 시험이 깊었으면 죽임을 당해 무덤에 던져진 것 같다고 하고, 아버지마저 기억하지 않는다고 했을까요. 주님은 그 모진 시험을 이김으로써 지옥을 정복하시고, 천국과 지옥의 무너진 질서를 본래대로 되돌려 놓으셨습니다.

 

※ ‘주님은 아주 어릴 적부터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시험을 당하셨다’ 하는 이유는, 주님의 성육신이 인류 전체 및 피조 세계 전체를 대상으로 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터무니없이 보잘것없는 무슨 비유를 들자면, 자식, 즉 책임져야 하는 자녀가 없거나 한둘인 사람과 일곱이나 열둘인 사람이 부모로서 겪게 될 그 마음고생의 무게는 차원이 다르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사랑의 대상이 피조세계 전체이기 때문에 지옥 또한 주님을 향해 총력전을 펼친 것입니다. 사랑의 대상이 아예 없거나 내 몸, 내 새끼 정도의 사람이면, 지옥은 그런 사람은 쳐다도 안 봅니다. 가만 놔둬도 알아서 지옥으로 올 것이기 때문이지요.

 

오늘 본문에는 무덤에서 살아나신 주님이 하늘에 오르시기 전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모인 제자들 앞에서 말씀을 전하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말씀에서 예루살렘은 주님의 교회를 뜻하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제자들에게 하신 이 말씀은 교회 안의 모든 신앙인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본문 44절은 먼저 이렇게 말합니다.

 

44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십니다. 여기서 모세의 율법은 구약의 역사서를 뜻하고, 선지자의 글은 예언서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은 구약 성경 전체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시기 전에는 구약에 기록된 비밀들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45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45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한글 성경에는 마음이라 했지만, 영어 원문에는 understanding, 즉 이해력,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직접 제자들의 이해력을 열어 말씀에 감춰진 내적인 것을 깨닫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기 전의 교회들은 천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흘러들어오는 빛을 통해 말씀을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신 후에는 주님의 신적 인성으로부터 직접 나오는 빛을 통해 말씀의 깊은 것들을 밝히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새로운 이해력을 통해 깨달은 비밀, 즉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성경의 비밀들은 뭘까요?

 

그것에 대해 본문 46절에서 49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46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 의하면 성경 전체가 기록하고 있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비밀은, 첫째는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지옥의 시험을 이김으로써 인성을 영화롭게 하시고, 그리하여 신성한 인간(Divine Human)으로 다시 살아나시는 것인데요, 예를 들면, 모세오경에 등장하는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은 모두 주님을 표상한다는 사실과, 예언서의 모든 내용 또한 주님의 싸움과 심판을 나타내며, 시편 말씀 또한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거기서 다윗은 진리로 세상에 오신 주님을 표상하며, 이방인들과의 싸움은 지옥을 상대로 한 주님의 싸움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주님의 인성의 영화와 부활이 왜 그렇게 중요하냐고 묻습니다. 그것에 대해 ‘계시록 해설’ 806번 글 3번 항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은 당신의 인성을 영화롭게, 또는 거룩하게 만드심으로써 지옥을 영원히 굴복시키셨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주님은 첫 번째 원리로부터 마지막의 것을 수단으로 영원히 그리고 완전하게 활동하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신성한 활동은 그런 방법으로 세상의 가장 낮은 사람에게까지 미친다. 그렇지 않으면 천국의 첫 번째 사람들에게만 미쳤을 것이고, 가장 낮은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미쳤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오시기 전에 일어났던 것처럼 천국의 첫 번째 사람들이 무너진다면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활동은 끝났을 것이고, 그리하여 인간은 어떤 방법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서 입으신 인성을 통한 주님의 신적 활동을 가리켜 가장 낮은 사람에게까지 흘러 들어오는 주님의 직접적인 입류(influx)라고 부른다. (이순철 역) The other reason was that He might glorify His Human, that is, make it Divine, since by this and by no other means is He able to keep the hells subjugated to eternity, for He thus acts to eternity from first principles by means of things ultimate, and in fullness. In this way His Divine operation reaches down even to those who are lowest in the world, while otherwise it would reach only to those who are first in heaven, and mediately through these and those that follow to the lowest, who are men; consequently if these should give way, as happened just before the Lord’s coming, the Divine operation among men would cease, and consequently they would have no means of salvation. The Divine operation of the Lord through the Human assumed in the world is called His immediate influx even to those who are lowest. (AE.806:3)

 

주님이 첫 번째 원리로부터 마지막의 것을 가지고 영원히 그리고 완전하게 활동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첫 번째 원리인 주님의 신성에서 나오는 사랑과 지혜는 주님으로부터 천국을 거쳐 마지막의 것인 자연계의 인간에게로 흘러들어오고, 인간 안에서는 속 사람으로부터 겉 사람의 가장 바깥쪽의 감각에까지 흘러 들어오는 데, 그때 신성의 활동은 가장 힘이 있고,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신성의 힘이 천국의 천사들에게만 미치고 자연계에는 제대로 미치지 못한다면, 또는 인간의 속 사람 안에만 있고, 겉 사람의 감각에까지 미치지는 못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언제까지나 지옥일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주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그것을 통해 지옥의 시험을 불러들이시고, 그리고 승리하심으로써 당신의 인간을 거룩하게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신성한 인간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주님에게서 직접 나오는 진리는 힘이 있고 완전한 진리입니다. 주님의 영화와 부활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 그러니까 육체 안에 갇혀 사는 인간을 구원하시려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 즉 자기들처럼 육체로 와서 자기들처럼 말하고, 먹고 마시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들 수준, 자기들의 눈높이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주 단순하게 말씀드리자면 말입니다. 주님의 영화와 부활은, 그러니까 사람들로 하여금 ‘어? 육체로 있어도 천국에 합당한 거룩함, 신성함이 가능하네?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살면 얼마든지 천국을 갈 수 있는 거네?’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구약에 기록된 것으로 꼭 이루어져야 할 두 번째 비밀은, 주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주님의 이름은 주님의 신적 인성, 즉 신성한 인간이신 주님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된다는 것은 주님의 신적 인성을 믿는 새 교회로부터 실질적인 회개가 시작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은 신적 인성이신 주님이 직접 세우시는 새 교회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회개에 대해 ‘참된 기독교’ 528번 글은 이렇게 말합니다.

 

실질적인 회개는 스스로를 검토하여 죄를 인정하는 것이며 그런 다음 주님께 기도해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이순철 역) Actual repentance is examining oneself, recognizing and acknowledging one’s sins, praying to the Lord, and beginning a new life. (TCR.528)

 

회개는 입술로만 하는 게 아니고 죄의 고백과 함께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회개와 죄의 용서는 인간의 힘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지옥을 이기고 신성한 몸으로 살아나신 주님의 힘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신성한 인간으로 부활하신 주님에게서 나오는 능력이 완전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하신 것입니다. 오로지 그들만이 말씀의 비밀을 깨달았으며, 진정한 회개를 경험했기 때문이지요.

 

50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52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말씀을 마치시고 주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들어 축복하신 후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히브리어로 베다니는 가난한 자의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영적 의미로는 가난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지는 않으나 말씀을 갈망하는 교회 밖의 사람들을 뜻합니다. 주님께서는 말씀의 진리를 사랑하는 교회 안의 사람들과 교회 밖의 사람들이라도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손을 들어 축복하십니다. 이제부터는 신적 인성이신 주님에게서 나오는 완전한 능력이 그 신실한 사람들을 덮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진정한 회개가 주님의 교회로부터 시작해 교회 밖의 모든 순수한 사람들에게 퍼져 나갈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런 방법으로 온 땅을 천국으로 바꾸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무덤에서 살아나신 주님은 성경 전체가 담고 있는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를 마지막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첫째는, 주님이 고난을 받으시고 인성을 영화롭게 하신 것과 그렇게 해서 육신으로 부활하신 일이었습니다. 둘째는 그로 인해 세워지는 새 교회를 시작으로 진정한 회개의 불길이 교회 밖으로 퍼져나간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진정한 회개와 죄의 용서는 입술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주님을 의지해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은 부활하신 주님에게서 나오는 완전하고 직접적인 진리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주님의 축복을 받아 진정한 회개에 이를 수 있을까요? 새벽에 무덤을 찾았던 여인과 시몬과 같은 사람, 슬퍼하며 엠마오로 가는 사람들과 말씀을 갈망하는 베다니의 순수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진리를 향한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해도 무기력하고 열심이 생기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사소해 보이는 선한 일을 매일 하나씩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워만 있던 사람은 일어나 공원을 산책하는 것도 좋습니다.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는 것도 좋겠지요. 매일 정해진 시간에 10분이라도 말씀을 읽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다 보면 기적과 같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와 축복이 모든 성도와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3:18)

 

아멘

 

 

※ 이상으로 누가복음 속뜻 강해를 마치고, 다음 주부터는 매주 그 본문이 다를 수 있는, 속뜻 주제 설교로 준비하겠습니다.

 

2023-06-11(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2025-02-02(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2025-02-02(D1)-주일예배(2582, 눅24,44-53), '주님의 마지막 가르침'.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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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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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도.2025-02-02(D1)-주일예배(2582, 눅24,44-53), '주님의 마지막 가르침'.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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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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