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동산, 네 강’의 속뜻 (2025/9/21)
1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4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7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4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15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17)
창세기 속뜻 강해, 오늘은 2장 세 번째 시간으로, 10절로 14절, ‘에덴동산, 네 강’의 속뜻입니다.
오늘부터는 각 단락의 절 별 개요도 다루겠습니다. 이는 마치 지도와 같아 이를 이용하면 그 구절과 단락의 전체 속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를 위해 지난주부터 시작한 2장 첫 단락(1-17절) 전체 절 별 개요를 먼저 살피고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를 위해 오늘은 본문을 전체 본문으로 실었습니다.
시작합니다.
73
죽은 상태에서 사람은 그동안 영적(靈的, spiritual) 상태가 되어 왔고, 이 상태에서 이번에는 천적(天的, celestial) 상태가 되는데, 이것이 이제부터 다루는 내용입니다. (1절)
74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이며, 이날 주님은 안식하십니다. (2, 3절)
75
안개로 축축해진 땅에서 나는 ‘초목’(the shrub)과 ‘채소’(the herb)는 그의 지식과 그의 합리성(rationality), 곧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5, 6절)
76
그의 생명, 곧 천적 인간의 생명을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로 표현, 표상하고 있습니다. (7절)
77
그다음, ‘동방 에덴동산’은 그의 지성(intelligence)을, ‘보기에 아름다운 나무’는 진리에 관한 퍼셉션(perceptions)을, ‘먹기에 좋은 나무’는 선에 관한 퍼셉션을 말합니다. ‘생명나무’(the tree of lives)는 사랑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the tree of knowledge), 곧 지식의 나무는 신앙(faith)을 의미합니다. (8, 9절)
78
‘동산을 적시는 강’은 지혜(wisdom)를 의미합니다. 거기 네 개의 강이 있었는데, 그 첫 번째는 선과 진리, 두 번째는 선과 진리, 즉 사랑과 신앙에 관한 모든 지식입니다. 이 둘은 속 사람에게 속합니다. 세 번째는 이성(reason), 네 번째는 기억-지식인데, 이 둘은 겉 사람에게 속합니다. 모든 것은 지혜로 비롯되며, 지혜는 주님 사랑, 주님 신앙에서 비롯됩니다. (10-14절)
79
천적 인간(天的, the celestial man)은 그런 일종의 동산입니다. 이 사람이 동산 안 모든 것을 즐기는 것은 허락되었으나 자기 것으로 소유하는 건 금하셨습니다. 이 동산은 그 소유권이 주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15절)
80
그는 또한 주님의 허락으로, 주님이 주시는 모든 퍼셉션을 가지고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을 습득합니다. 그러나 그가 자신과 세상의 것을 가지고 그러거나, 감각과 기억-지식을 가지고 신앙의 신비들을 탐구하거나 하면 절대 안 됩니다. 그런 짓을 하면 그의 천적 본성이 죽음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16, 17절)
어떻게 좀 도움이 되십니까? 항상 숲의 나무 하나하나와 숲 전체를 함께 보아야 중간에 길을 잃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럼 오늘 본문입니다.
10절,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07
‘강이 에덴에서’(a river out of Eden)는 사랑에서 나오는, 즉 사랑에서 생겨나는 지혜를 말합니다. ‘에덴’(Eden)은 사랑이기 때문이지요. ‘동산을 적시고’는 지성이나 이해하는 재능 부여를,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는 이어지는 내용처럼 네 강을 가지고 지성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108
태고인들(太古人, the most ancient people)은 사람을 일종의 ‘동산’(a garden)에 비유하면서 또한 지혜에도 비유했습니다. 그리고 지혜에 관계된 것들은 ‘강’(rivers)에 비유했지요. 그들은 단순히 비유만 한 게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게 불렀는데, 그것은 그런 언어생활이 그들의 일상이었기 때문입니다. 후대의 선지자들도 그랬습니다. 선지자들도 종종 그렇게 비유했고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사야를 보면,
10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사58:10, 11)
신앙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다루면서 말이지요...
※ 지면 관계상 다른 예들은 첨부하는 주석 원본을 참고하세요.
...이들 본문에서 분명한 것은, 태고인들이 사람이나 사람의 일들을 하나의 ‘동산’에 비유할 때 그들은 ‘물들’과 ‘강들’이라는 표현을 보탰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통해 사람이 적셔질 수 있도록, 그리고 이들 물들과 강들을 통해 사람을 성장케 하는 것들을 의미하도록 말입니다.
109
비록 지혜와 지성이, 보이는 건 사람한테서지만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처럼 이들은 오직 주님에게 속한 것이라는 사실을 에스겔에서는 비슷한 표상으로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1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8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2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 (겔47:1, 8-9, 12)
여기서 주님은 ‘동’(東, the east)으로, 그리고 물과 강물이 발원하는 ‘성소’(the sanctuary)로 상징되십니다. 계시록에서도 그렇습니다.
1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22:1-2)
11, 12절,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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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강, 즉 ‘비손’(Pishon)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 지성, 즉 사랑 기반 신앙과 같이 가는, 어울리는 지성을, ‘하윌라 땅’(the land of Havilah)은 마음을, ‘금’은 선을, ‘베델리엄과 호마노’(bdellium and the onyx stone)는 진리를 의미합니다. ‘금’이 두 번 언급되는 이유는, 금이 사랑의 선, 곧 사랑하고 같이 가는 선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선, 곧 사랑 기반 신앙과 같이 가는 선을 의미하기 때문이며, ‘베델리엄과 호마노’가 언급되는 이유는, 하나는 사랑의 진리, 곧 사랑에 속한 진리를, 다른 하나는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진리, 곧 사랑 기반 신앙에 속한 진리를 각각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이 천적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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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내용은 속뜻(the internal sense)으로 있기 때문에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오늘날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 그러니까 사랑에 기반한 신앙이라는 게 뭔지, 또 그런 신앙에서 나오는 지혜라든지 지성 같은 게 뭔지를 아는 사람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겉 사람들이 아는 거라곤 거의 기억-지식, 그러니까 세속적 팩트(fact)밖에 없기 때문인데, 그들은 이런 걸 가지고 지성이니, 지혜니, 신앙이니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심지어 사랑이 뭔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이 의지와 이해, 즉 지적 능력이 무엇이며, 그리고 이 둘이 한마음을 이루기 위해 결합한다는 게 뭔지를 모릅니다. 비록 실상이 이렇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모든 것 하나하나가 다 뚜렷하며, 실제로 저마다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갖습니다. 주님은 사랑과 신앙의 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차이점만큼이나 이 온 천국을 마치 수학 좌표처럼 가장 명료하고, 정밀, 정교하게 지으셨습니다.
※ 우리가 모른다고 해서, 우리가 희미하다고 해서 주님 지으신 이 피조 세계도 덩달아 흐릿한 게 아닙니다. 우리의 내적 시야가 열리지 않아 못 보는 것일 뿐, 실제로 주님 지으신 이 모든 세계는 더할 수 없이 세밀하고 명료합니다. 과연 그런지는 자연계는 초 고배율 현미경과 천체망원경으로, 영계는 주님이 사모하는 자에게 점점 허락하시는 내적 시야로 보시면 됩니다. 가령, 전자의 경우, 전에는 천체망원경 기술이 요즘과 같지 않아 저 우주 흐릿한 뭔가가 그저 무슨 큰 별인가 보다 했지만, 최근 제임스웹이라는 우주 망원경을 통해 보니 세상에! 그게 수천 개의 은하가 모여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입니다. 주님의 세계는 우리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상상할 수 없는 세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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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지혜는 사랑에서, 그러니까 주님한테서만 나온다는 사실, 모든 지성은 신앙에서, 역시 주님한테서만 나온다는 사실, 또 모든 선은 사랑에서, 마찬가지로 주님한테서만 나오며, 모든 진리는 신앙에서, 이 역시 주님한테서만 나온다는 사실 등, 이런 모든 사실이 더욱더 알려지게 하세요. 사랑과 신앙에서 나온 게 아닌, 그러니까 주님한테서 나온 게 아닌데도 버젓이 사랑이다, 신앙이다 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은 다 가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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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서 지혜나 사랑의 선을 표상하는 데 있어 ‘금’(gold)보다 더 일반적인 것은 없습니다. 법궤, 성전, 금상, 촛대, 대접들 및 아론의 예복 등 이 모든 것에 있는 금은 지혜나 사랑의 선을 표상했습니다...
※ 역시 지면 관계상 내용을 줄입니다.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2:1, 11)
여기 ‘황금’(gold)은 선을, ‘유향과 몰약’(frankincense and myrrh)은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는, 정말 그레이트한 것을, 그래서 이르기를 ‘여호와의 찬송’(the praises of Jehovah)이라 하는 것들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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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진리는 말씀에서 ‘보석’(precious stones)으로 표상되고 있습니다. 아론의 에봇 판결 흉패(the breastplate of judgment)와 두 어깨 위 보석들처럼 말입니다. 판결 흉패에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gold, blue, bright crimson, scarlet double-dyed, and fine-twined linen)은 사랑에 속한 것들을, ‘보석’은 그 사랑에서 나오는, 그 사랑에 기반한 신앙에 속한 것들을 표상합니다. 금테에 물릴 호마노 둘, 에봇 두 어깨 위 두 ‘기념 보석’(the two stones of memorial)처럼 말이지요.
9호마노 두 개를 가져다가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10그들의 나이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새기라 11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 12그 두 보석을 에봇의 두 어깨받이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워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 13너는 금으로 테를 만들고 14순금으로 노끈처럼 두 사슬을 땋고 그 땋은 사슬을 그 테에 달지니라 15너는 판결 흉패를 에봇 짜는 방법으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정교하게 짜서 만들되 16길이와 너비가 한 뼘씩 두 겹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17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18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19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20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금 테에 물릴지니 21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보석마다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 22순금으로 노끈처럼 땋은 사슬을 흉패 위에 붙이고 (출28:9-22)
...이 본문은 보석들이 아닌, 신앙의 천적 영적인 것들을 표상하는 말씀임은 누가 보더라도 확실합니다. 맞습니다! 보석 하나하나는 신앙의 어떤 에센셜을 표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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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곳적 사람들은 ‘땅’(lands)을 말할 때, ‘땅’이 무엇을 표상하는지를 이해했습니다. 마치 오늘날 가나안 땅과 시온산은 천국을 상징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장소들이 언급될 때마다 무슨 물리적 장소가 아닌, 오직 그것이 상징하는 것, 곧 천국을 떠올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게 본문 ‘하윌라 땅’(the land of Havilah)에도 해당합니다. 이 하윌라는 창세기 25장 18절에도 다시 나오는데요, 이 구절은 이스마엘 자손들 이야기인데, 거기서 그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거주하였더라’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 (창25:18)
천국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씀들에서 나오는 지성과 지성에서 흘러나오는 것들만 지각합니다. 그래서 ‘비손이라는 강이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에 나오는 ‘두르다’(to compass) 역시 그들은 흘러들어오는 걸로 지각합니다. 출애굽기 28장 11절에 나오는, 금테로 물린 아론의 에봇 두 어깨의 호마노 역시 그들은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 들어가야 하는 것으로 지각합니다.
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 (출28:11)
다른 많은 경우도 그렇습니다.
13절,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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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혼’(Gihon)이라 하는 ‘두 번째 강’은 선과 진리, 혹은 사랑과 신앙에 속한 모든 지식을, ‘구스 땅’(the land of Cush)은 마음이나 역량(力量, faculty), 곧 멘탈 능력을 의미합니다. 마음은 의지와 이해, 곧 지적 능력(intellect)으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 강에 대해 말한 것이 의지에 관한 거라면, 이 두 번째 강은 이해, 곧 지적 능력에 관한 것으로,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이 바로 여기에 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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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구스 땅’, 즉 이디오피아는 금, 보석, 그리고 향신료들로 풍부했는데, 이들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선, 진리,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정말 그레이트한 것들, 가령 사랑과 신앙 관련 지식 같은 그런 걸 의미합니다...
...이들 본문은 그 앞뒤 이어지는 연결 구절들을 보면 명백한 것처럼 신앙의 천적인 것들을 의미합니다. 스바의 여왕에 의해서도 유사한 것들이 의미되었는데, 그녀는 솔로몬을 찾아와 어려운 질문들을 하면서 그에게 향신료, 금, 그리고 보석들을 주었습니다.
1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2예루살렘에 이르니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왕상10:1-2)
선지서 뿐만 아니라 말씀의 역사 파트에 들어있는 모든 것이 아르카나를 의미, 표상 및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 ‘말씀의 역사 파트’란 말씀을 분류할 때 흔히 역사서로 분류하는 말씀들, 그러니까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서를 말합니다. 신학교에서는 이 외에도 룻기, 역대서,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도 포함하지만, 스베덴보리에 의하면, 이들 성경은 비록 성경에 포함은 되었어도 ‘말씀’은 아니므로 저 역시 제외하였습니다. 참고로, ‘말씀’이란, 천사들이 읽을 수 있는 아르카나가 들어있어야 ‘말씀’입니다. 저 성경들은 안타깝게도 아르카나가 들어있지 않고, 그래서 천사들이 읽을 수 없어서 ‘말씀’이 아닙니다. 아르카나가 없는 성경을 천사들이 읽고자 들여다보면 그냥 까맣게만 보인다고 합니다. 아르카나가 없는 성경들은 그러나 사람들을 위해서는 좋은 글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글들이 아르카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성경 확정 작업을 지난 수천 년 동안 해올 때 성경에 포함되는 걸 허락하신 것 같습니다.
14절,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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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힛데겔 강’(the river Hiddekel)은 이성(理性, reason), 즉 이성에 속한 명민함, 통찰력(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 명석함입니다. ‘앗수르’(Asshur)는 합리적 마인드(the rational mind), 곧 그런 이성을 발휘하는 마음입니다. ‘앗수르 동쪽으로 흐르는 강’의 의미는, 이 능력이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해 이 마인드 안으로, 즉 겉 사람에게 속한 그 안으로 흐른다는 것입니다. ‘프라’(Phrath), 즉 ‘유브라데’(Euphrates)는 기억-지식, 곧 팩트에 입각한 지식인데, 이는 종단(終端, the ultimate)이나 경계(boundary), 곧 마음의 최종 경계를 말합니다.
※ 그러니까 지금 천적 인간에게 있어 그 마음의 네 가지 영역, 곧 지혜, 지성, 이성 및 지식을 각각 이렇게 비손, 기혼, 힛데겔 및 유브라데라는 네 강으로 표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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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가 합리적 마인드, 즉 인간의 합리적인 면,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선지서들, 가령...
...이것은 이사야에서 훨씬 더 명료합니다.
23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24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사19:23-25)
여기와 여러 다른 구절에서, ‘애굽’(Egypt)은 기억-지식, 곧 팩트 기반 정보를, ‘앗수르’는 이성, 곧 이성적 능력을, ‘이스라엘’은 지성, 곧 이해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120
‘애굽’ 및 ‘유브라데’는 기억-지식 및 이들 지식이 시작되는 감각적인 것들(the sensuous things), 곧 팩트 기반 세속 지식과 이 세속 지식이 기반을 두는 감각적 인상을 말합니다.
※ 그러니까 인간의 오감에 깊은 인상을 주는 그런 것들만 팩트로 받아들이는 지식을 말합니다.
이런 사실은 선지서들을 보면 분명합니다...
...예레미야에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으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며 또 네가 그 강물을 마시려고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냐 (렘2:18)
여기 ‘애굽’과 ‘유브라데’는 같이 기억-지식, 곧 팩트를, ‘앗수르’는 거기서 나오는 합리화(reasonings), 곧 그런 걸로 건축되는 합리화를 말합니다.
시편에
8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11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시80:8, 11)
여기 ‘유브라데 강’은 감각적인 것과 기억에 속한 것, 곧 감각적이고 팩트에 기반한 정보를 말합니다. 기억 지식이 영적 천적 인간의 지성과 지혜의 바깥쪽 경계인 것과 같이 유브라데는 이스라엘 영토의 앗수르 방향 경계였기 때문입니다.
※ 내세에 들면, 즉 우리 영이 몸에서 들리면, 우리가 그동안 추상적으로만 생각하던 추상 개념들을 직접 영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되는데 가령 선, 진리, 사랑, 신앙, 의지, 이해, 지혜, 지성, 지식 및 감각 등 수많은 추상 개념들을 이제는 생생하게 마치 영상처럼 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속 사람, 곧 내적 존재가 되었으므로 내적 시야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육안으로 보듯 저렇게 명료하게 진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들은 말씀 또한 같은 걸 말합니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창15:18)
위 두 경계는 같은 걸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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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들을 통해서 천적 질서의 본성, 즉 생명에 속한 것들의 일 진행 방법을 분명히 알 수 있는데요, 즉 ‘동’(東, East)이신 주님한테서(from) 출발, 주님으로부터(from) 지혜가, 지혜를 통해서(through) 지성이, 지성을 통해서(through) 이성, 그리고 그렇게 이성을 가지고(by means of) 기억 지식이 생생해진다는 것입니다.
※ 즉, ‘기억-지식’이라 하는 세상 지식도 이 천적 질서 안에 있으면, 주님의 생명으로 생생해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돈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요, 다만 그 쓰임새, 용도에 달려 있듯 이 세상, 세속 지식도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순서이며 이런 사람들이 천적 인간들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장로들로 천적 인간들을 표상하였기에 그들을 일컬어 ‘지혜와 지식이 있는 인정받는 자들’(wise, intelligent, and knowing)(신1:13, 15)이라 한 것입니다.
13너희의 각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인정 받는 자들을 택하라 내가 그들을 세워 너희 수령을 삼으리라 한즉, 15내가 너희 지파의 수령으로 지혜가 있고 인정 받는 자들을 취하여 너희의 수령을 삼되 곧 각 지파를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과 조장을 삼고 (신1:13, 15)
그래서 법궤를 짠 브살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1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신 자들은 모두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할 것이니라 2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부터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 (출36:1-2)
이상으로 창세기 2장 세 번째 시간인 ‘에덴동산, 네 강’ 본문(창2:10-14)을 번역, 역시 설명을 곁들여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본문 및 이 부분 개요를 한 번 더 읽고 마치겠습니다.
10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4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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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을 적시는 강’은 지혜(wisdom)를 의미합니다. 거기 네 개의 강이 있었는데, 그 첫 번째는 선과 진리, 두 번째는 선과 진리, 즉 사랑과 신앙에 관한 모든 지식입니다. 이 둘은 속 사람에게 속합니다. 세 번째는 이성(reason), 네 번째는 기억-지식인데, 이 둘은 겉 사람에게 속합니다. 모든 것은 지혜로 비롯되며, 지혜는 주님 사랑, 주님 신앙에서 비롯됩니다. (10-14절)
여러 번 복습하시면서 가능하면 본문도 줄줄 외우시기를 바랍니다.
설교
2025-09-21(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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