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AC.482

이 장에 나오는 ‘해’(years)와 ‘연수’(numbers of years)가 속뜻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문자적 의미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이것들을 세상의 실제 연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12장에 이르기까지는 문자적 의미에 나타나는 모습 그대로의 역사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전체적으로나 하나하나에 있어서나 모두 다른 것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름들뿐 아니라 숫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에는 숫자 ‘셋’이 자주 나오고 숫자 ‘일곱’도 자주 나오는데, 이 숫자들이 나오는 곳마다 시간이나 그 밖의 것들이 포함하거나 표상하는 상태와 관련하여 어떤 거룩한 것 또는 지극히 거룩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가장 짧은 시간의 간격에서도 가장 긴 시간의 간격에서와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부분들이 전체에 속하는 것처럼 가장 작은 것들도 가장 큰 것들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전체가 부분들로부터, 또는 가장 큰 것이 가장 작은 것들로부터 합당하게 이루어지려면 서로 간에 유사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What the “years” and the “numbers of years,” which occur in this chapter, signify in the internal sense, has hitherto been unknown. Those who abide in the literal sense suppose them to be secular years, whereas from this to the twelfth chapter there is nothing historical according to its appearance in the literal sense, but all things in general and every single thing in particular contain other matters. And this is the case not only with the names, but also with the numbers. In the Word frequent mention is made of the number three, and also of the number seven, and wheresoever they occur they signify something holy or most sacred in regard to the states which the times or other things involve or represent; and they have the same signification in the least intervals of time as in the greatest, for as the parts belong to the whole, so the least things belong to the greatest, for there must be a likeness in order that the whole may properly come forth from the parts, or the greatest from its leasts. Thus in Isaiah: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해와 같이 삼 년 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지라 (사16:14) Now hath Jehovah spoken, saying, Within three years, as the years of a hireling, and the glory of Moab shall be rendered worthless. (Isa. 16:14)

 

주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기한 같이 일 년 내에 게달의 영광이 다 쇠멸하리니 (사21:16) Thus hath the Lord said unto me, Within a year, according to the years of a hireling, and all the glory of Kedar shall be consumed, (Isa. 21:16)

 

여기서는 가장 짧은 시간의 간격과 가장 긴 시간의 간격이 모두 의미됩니다. 하박국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where both the least and the greatest intervals are signified. In Habakkuk: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합3:2) Jehovah, I have heard thy renown, and was afraid; O Jehovah, revive thy work in the midst of the years, in the midst of the years make known, (Hab. 3:2)

 

여기서 ‘수년 내’(midst of the years)는 주님의 오심을 의미합니다. 더 짧은 시간의 간격에서는 사람이 거듭날 때와 같은 주님의 모든 오심을 의미하고, 더 긴 시간의 간격에서는 주님의 교회가 새롭게 일어날 때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이사야에서 ‘내가 구속할 해’(year of the redeemed)라고도 합니다. where the “midst of the years” signifies the Lord’s advent. In lesser intervals it signifies every coming of the Lord, as when man is being regenerated; in greater, when the church of the Lord is arising anew. It is likewise called the “year of the redeemed,” in Isaiah: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가 구속할 해가 왔으나 (사63:4) The day of vengeance is in my heart, and the year of my redeemed is come. (Isa. 63:4)

 

마찬가지로 사탄이 결박되어 있을 ‘천 년’(계20:2, 7)과 첫째 부활의 ‘천 년’(계20:4-6)도 결코 천 년이라는 기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태들을 의미합니다. 앞에서 보여 준 것처럼 ‘날들’(days)이 상태들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듯이 ‘해들’(years)도 그러하며, 그 상태들은 그 연수에 의해 묘사됩니다. So also the thousand years in which Satan was to be bound (Rev. 20:2, 7), and the thousand years of the first resurrection (Rev. 20:4–6), by no means signify a thousand years, but their states; for as “days” are used to express states, as shown above, so also are “years,” and the states are described by the number of the years.

 

2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7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계20:2, 7)

 

4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 (계20:4-6)

 

그러므로 이 장의 시간들 역시 상태들을 포함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각 교회는 타고난 성향과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향의 차이에 따라 다른 교회들과 서로 다른 퍼셉션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Hence it is evident that the times in this chapter also involve states; for every church was in a different state of perception from the rest, according to the differences of genius, hereditary and acquired.

 

해설

AC.482는 창5의 긴 수명과 숫자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정면으로 다루는 중요한 글입니다. 아담 130세, 이후에 이어지는 800년, 807년, 815년 등의 숫자를 오늘날의 연대기처럼 읽기 전에, 스베덴보리는 먼저 말씀에서 ‘시간’과 ‘숫자’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창5의 ‘해’는 속뜻에서 교회의 ‘상태’를 나타내며, 그 연수의 숫자는 그 상태의 어떠함을 묘사합니다.

 

특히 이 글에는 매우 강한 문장이 나옵니다. ‘여기서부터 12장에 이르기까지는 문자적 의미에 나타나는 모습 그대로의 역사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의 AC.478에서 ‘아담’이 인류 최초의 어떤 한 사람이 아니라 태고교회를 가리킨다고 한 설명과 같은 방향입니다. 창5의 이름들이 여러 교회를 의미한다면, 그 이름들 옆에 붙어 있는 연수 역시 그 교회에 속한 개인들의 생물학적 수명을 기록한 숫자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름뿐 아니라 ‘숫자들도’ 다른 것들을 담고 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렇다고 말씀의 숫자를 임의로 상징화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AC.482가 예로 드는 ‘셋’과 ‘일곱’처럼 말씀의 숫자에는 일정한 영적 의미가 있으며, 그 의미는 숫자가 나타나는 문맥 속에서 그때의 상태와 연결됩니다. 특히 스베덴보리는 작은 것과 큰 것 사이에 ‘유사성’이 있어야 한다는 원리를 설명합니다. 동일한 영적 질서가 짧은 시간에서도, 긴 시간에서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숫자가 서로 다른 시간 규모에서 사용되더라도 그 안에 담긴 본질적인 의미는 유지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의 ‘수년 내’가 좋은 예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주님의 오심’으로 풀이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오심은 한 가지 규모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삶이라는 작은 규모에서는 사람이 거듭날 때 주님께서 그 사람 안에 오시는 것을 의미할 수 있고, 교회 전체라는 큰 규모에서는 새로운 교회가 일어날 때 주님께서 오시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시간의 규모는 다르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적 질서는 서로 상응합니다.

 

이 원리에 따르면 계20의 ‘천 년’도 문자 그대로 1,000년이라는 기간을 반드시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AC.482는 사탄이 결박되는 천 년과 첫째 부활의 천 년이 ‘결코 천 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태들을 의미한다’고 직접 설명합니다. 따라서 말씀의 예언적·상응적 시간 표현을 읽을 때 중요한 질문은 ‘정확히 몇 년인가?’만이 아니라 ‘이 기간이 어떤 영적 상태를 나타내는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이 창5 전체를 읽는 중요한 열쇠를 줍니다. 각각의 교회는 ‘서로 다른 퍼셉션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 차이는 각 교회의 타고난 성향과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향에 따라 달랐습니다. 그러므로 창5에 나타나는 서로 다른 연수는 단순히 ‘누가 몇 살까지 살았는가’를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아담에서 셋, 에노스, 게난 등으로 이어지는 여러 교회가 어떤 퍼셉션의 상태에 있었는지를 표현하는 숫자들입니다.

 

이렇게 보면 AC.481의 ‘백삼십 년’도 이해의 방향이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태고교회의 한 개인이 정확히 130년을 산 뒤 아들을 낳았다는 시간 정보가 속뜻의 중심이 아니라, 태고교회로부터 ‘셋’이라 하는 새 교회가 일어나기까지의 상태와 과정을 나타냅니다. 앞으로 이어지는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그 숫자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설명하게 됩니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는 개별 숫자의 의미를 앞질러 확정하기보다, 먼저 ‘창5의 연수는 교회의 상태를 나타낸다’는 AC.482의 해석 원리를 분명히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창5의 족보는 이름과 숫자가 결합된 하나의 내적 역사입니다. 이름들은 태고교회로부터 이어진 여러 교회들을 나타내고, 그 옆의 연수들은 그 교회들의 서로 다른 상태를 나타냅니다. 문자에서는 수백 년에 이르는 인간의 수명이 보이지만, 속뜻에서는 태고교회가 여러 후대 교회로 이어지면서 그 퍼셉션과 내적 상태가 어떻게 달라져 갔는지가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AC.482 해설)

 

 

 

창5:3, AC.483, ‘퍼셉션(perception)의 차이로 구별된 태고교회의 여러 교회’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AC.483뒤이어 나오는 ‘셋’(Seth), ‘에노스’(Enosh), ‘게난’(Kenan), ‘마할랄렐’(Mahalalel),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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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81, 창5:3, '태고교회와 닮은 새 교회 셋' (AC.481-485)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창5:3) AC.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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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창5:3)

 

AC.481

‘백삼십 년’(a hundred and thirty years)은 새 교회가 일어나기까지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이 교회는 태고교회와 아주 다르지는 않았으므로 ‘자기의 모양대로, 자기의 형상을 따라 낳았다’(into its likeness, and after its image)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모양’(likeness)은 신앙과 관계되고, ‘형상’(image)은 사랑과 관계됩니다. 이 교회를 ‘셋’(Seth)이라 하였습니다. By a “hundred and thirty years” there is signified the time before the rise of a new church, which, being not very unlike the most ancient, is said to be born “into its likeness, and after its image”; but the term “likeness” has relation to faith, and “image” to love. This church was called “Seth.”

 

해설

AC.481부터 창5:3이 시작됩니다. 앞의 창5:1-2가 태고교회 자체의 어떠함을 보여 주었다면, 이제부터는 그 태고교회로부터 이어지는 후대 교회의 계승이 본격적으로 나타납니다. ‘아담이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라는 말씀은 속뜻으로 한 아버지가 백삼십 세에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보다, 태고교회 이후 그와 유사한 성격을 지닌 새로운 교회가 일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먼저 ‘백삼십 년’은 문자 그대로의 연대가 아니라 ‘새 교회가 일어나기까지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130이라는 숫자를 곧바로 우리가 익숙한 역사적 연수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글에서 그 숫자가 어떤 기간, 곧 태고교회로부터 새로운 교회가 일어나기까지의 상태와 과정에 관계된다는 점을 먼저 밝힙니다. 이 숫자의 구체적인 의미는 이어지는 글에서 더 설명됩니다.

 

새롭게 일어난 교회가 바로 ‘셋’입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표현은 이 교회가 태고교회와 ‘아주 다르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셋은 태고교회와 완전히 단절된 전혀 다른 종류의 교회가 아니라, 그 교회의 본질적인 성격을 상당 부분 이어받은 새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그가 ‘자기의 모양대로, 자기의 형상을 따라’ 태어났다고 표현합니다. 창5의 계보가 단순한 생물학적 혈통의 기록이 아니라 교회들의 발생과 계승을 보여 주는 기록이라는 사실이 여기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모양’과 ‘형상’의 설명입니다. 앞의 AC.473에서는 창5:1의 ‘하나님의 모양’이 천적 인간과 관계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모양’이 신앙과, ‘형상’이 사랑과 관계된다고 합니다. 이것을 단순히 ‘모양 = 신앙, 형상 = 사랑’이라는 고정된 사전식 대응으로 받아들이면 앞의 설명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응의 의미는 언제나 해당 문맥과 관계 속에서 읽어야 합니다. 여기서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아담’으로 표상된 태고교회와 그로부터 나온 ‘셋’이라는 새 교회의 유사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핵심은 셋이라는 새 교회 안에도 태고교회를 이루었던 신앙과 사랑의 질서가 이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앞의 창5:2에서 신앙과 사랑이 결혼을 이루어 하나의 ‘사람’이 되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셋은 그 태고교회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 신앙과 사랑의 성격을 닮은 교회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말씀에서 ‘자기의 모양대로, 자기의 형상을 따라’ 낳았다고 한 속뜻입니다.

 

이 대목은 창4의 ‘셋’과 창5의 ‘셋’을 구별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합니다. 지금 AC.481만으로 그 문제를 모두 결론지을 필요는 없지만, 이어지는 AC.485에서 스베덴보리는 두 ‘셋’이 서로 다른 교회를 의미한다고 명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우선 창5의 셋이 ‘태고교회와 아주 다르지는 않았던 새 교회’라는 사실을 붙들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AC.482-485를 따라가면 이 새 교회가 태고교회와 무엇을 공유하면서도 어떻게 구별되는지가 더욱 분명해질 것입니다.

 

결국 AC.481은 창5의 계보를 읽는 방향을 다시 한번 보여 줍니다. 한 사람이 늦은 나이에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다시 다음 세대를 낳았다는 족보의 표면 아래에는, 주님의 섭리 가운데 한 교회에서 다른 교회가 일어나고 그 교회 안에 앞선 교회의 신앙과 사랑이 이어지는 내적 역사가 있습니다. 태고교회가 쇠퇴해 간다고 해서 주님께서 그 안의 모든 것을 사라지게 두시는 것이 아니라, 다음 교회가 받아 이어 갈 수 있는 것을 보존하시고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일으키십니다. 창5:3의 ‘셋’은 바로 그 새로운 교회의 시작을 보여 줍니다. (AC.481 해설)

 

 

 

창5:3, AC.482, ‘해(years)와 연수(numbers of years)는 교회의 상태를 의미’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AC.482이 장에 나오는 ‘해’(years)와 ‘연수’(numbers of years)가 속뜻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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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80, 창5:2, ‘여섯째 날의 끝과 안식일의 시작에 이른 사람’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80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사람’이라 일컬어졌다는 것은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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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80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사람’이라 일컬어졌다는 것은 1장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창1:26-27). 곧 여섯째 날의 끝인데, 이는 안식일의 저녁, 다시 말해 안식일 또는 일곱째 날이 시작되는 때에 해당합니다. 앞에서 보여 준 것처럼 일곱째 날, 곧 안식일은 천적 인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That they were called “man” in the day that they were created, appears also from the first chapter (Gen.1:26–27), that is, at the end of the sixth day, which answers to the evening of the sabbath, or when the sabbath or seventh day began; for the seventh day, or sabbath, is the celestial man, as was shown above.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6, 27)

 

해설

AC.480은 창5:2의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라는 표현을 창1:26-27의 여섯째 날과 연결합니다. 창1에서 ‘사람’이 등장하는 때는 여섯째 날의 마지막이며, 곧 일곱째 날인 안식일을 눈앞에 둔 때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날’은 단순히 시간의 하루를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이 거듭나는 과정에서 하나의 영적 상태가 완성되고 다음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섯째 날은 거듭남의 싸움이 거의 완성되는 단계입니다.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진리와 선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악과 거짓에 맞서고, 신앙을 통하여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아직 여섯째 날인 동안에는 싸움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이 상태가 완성되고 일곱째 날이 시작되면서 사람은 천적 인간의 상태로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AC.480이 ‘사람’이라는 이름을 여섯째 날의 끝과 일곱째 날의 시작에 연결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스베덴보리는 여섯째 날의 끝을 ‘안식일의 저녁’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이 완전히 끊어진 두 상태가 아니라, 앞의 상태가 완성되면서 다음 상태가 열리는 연속적인 거듭남의 과정임을 보여 줍니다. 영적 인간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전혀 다른 존재인 천적 인간이 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영적 인간 안에 이루어 오신 일을 완성하시면서 그를 천적 상태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의 AC.472-479에서 이어져 온 설명을 다시 하나로 묶어 줍니다. ‘창조하다’는 영적 인간과 관련되고, ‘만들다’는 천적 인간과 관련되며, ‘하나님의 형상’은 영적 인간을, ‘하나님의 모양’은 천적 인간을 의미합니다. 또한 ‘남자와 여자’로 나타나는 신앙과 사랑이 결혼을 이루었을 때 그 둘을 함께 ‘사람’이라 합니다. 이제 AC.480은 이 모든 과정이 창1의 여섯째 날에서 일곱째 날로 넘어가는 구조 안에 이미 들어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안식일’의 의미도 중요합니다. 안식은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닙니다. 거듭남의 앞선 단계에서는 사람이 마치 자신의 힘으로 싸우는 것처럼 느끼지만, 천적 상태에서는 주님께서 역사하시는 질서 안에 더욱 온전히 들어가게 됩니다. 신앙과 사랑, 이해와 의지가 서로 맞서지 않고 하나를 이루며, 선을 행하는 것이 억지스러운 의무가 아니라 사랑에서 나오는 기쁨이 됩니다. 이러한 천적 상태가 바로 일곱째 날, 곧 안식일이 의미하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다’는 창5:2의 말씀은 창1의 창조 이야기를 다시 불러옵니다. 창1의 여섯 날은 사람의 거듭남의 연속적인 상태들이며, 그 과정은 일곱째 날의 천적 상태를 향합니다. 창5는 그 전체 과정을 길게 반복하지 않고, ‘창조되던 날’과 ‘사람’이라는 표현을 통해 그 완성된 태고교회의 상태를 다시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결국 AC.480은 창1과 창5가 서로 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창1에서 여섯 날에 걸쳐 묘사된 거듭남은 일곱째 날의 천적 인간에 이르고, 창5는 바로 그 천적 인간이었던 태고교회로부터 후대의 여러 교회가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다루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인간의 명칭이 아니라, 주님께서 거듭남의 전 과정을 통하여 신앙과 사랑을 결합하시고 마침내 안식의 질서 안으로 이끄신 교회의 상태를 담고 있습니다. (AC.480 해설)

 

 

 

AC.481, 창5:3, '태고교회와 닮은 새 교회 셋' (AC.481-485)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창5:3) AC.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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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79, 창5:2, ‘흙에서 취하여 거듭나고 참된 사람이 된 태고교회’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79말씀에서 ‘이름을 부르다’(calling a name) 또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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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79

말씀에서 ‘이름을 부르다’(calling a name) 또는 ‘이름으로 부르다’(calling by name)는 사물의 어떠함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서 보여 준 바 있습니다. 여기서는 태고교회의 어떠함과 관련되는데, 곧 사람이 흙에서 취해졌다는 것, 다시 말해 주님에 의해 거듭났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아담’(Adam)이라는 말이 ‘흙’(ground)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후 그가 천적 인간이 되었을 때에는 주님을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신앙으로 말미암아 가장 탁월한 의미에서 ‘사람’이 되었습니다. By “calling a name,” or “calling by name,” is signified in the Word to know the quality of things, as was shown above, and in the present case it has relation to the qual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denoting that man was taken from the ground, or regenerated by the Lord, for the word “Adam” means “ground”; and that afterwards when he was made celestial he became most eminently “man,” by virtue of faith originating in love to the Lord.

 

해설

AC.479는 창5:2의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에서 왜 ‘이름’이 중요한지를 설명합니다. 말씀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단순히 그 대상을 다른 대상과 구별하기 위한 호칭을 붙인다는 뜻에 그치지 않습니다. 속뜻으로는 그 대상의 ‘어떠함’, 곧 그 본질과 상태가 어떠한지를 알고 나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하셨다는 것은 단순한 명명이 아니라 태고교회가 어떤 교회였는지를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그 첫 번째 어떠함은 ‘흙에서 취해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흙’은 단순한 물질적 흙을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이 주님에 의해 거듭나는 상태와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아담’이라는 말이 ‘흙’(ground)을 의미한다고 설명하면서, 사람이 흙에서 취해졌다는 것을 ‘주님에 의해 거듭났다’는 의미로 풀이합니다. 따라서 ‘아담’이라는 이름 자체에 태고교회의 거듭남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 ‘흙’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연 상태 그대로의 인간을 뜻한다고 보기보다, 주님께서 거듭남의 역사를 행하실 수 있도록 준비된 사람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씨가 땅에 떨어져 싹을 내고 열매를 맺듯이, 주님께서 사람 안에 선과 진리를 심으시고 자라게 하실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흙에서 취해졌다’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새롭게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를 새롭게 하시고 거듭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태고교회의 과정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AC.479는 ‘그 후 그가 천적 인간이 되었을 때’ 가장 탁월한 의미에서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앞의 AC.472-476에서 계속 살펴본 흐름과 연결됩니다. 처음에는 영적 인간으로 창조되어 진리와 신앙을 통하여 선과 사랑으로 나아가지만, 마침내 신앙과 사랑이 결혼을 이루면 천적 인간이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상태에서 그는 더욱 온전한 의미의 ‘사람’이 됩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그가 무엇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AC.479는 그것을 ‘주님을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신앙’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신앙이 사랑과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이 근원이고 신앙은 그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바로 이러한 질서가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를 이루었습니다. 따라서 참된 사람됨은 얼마나 많은 진리를 알고 있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신앙이 주님을 향한 사랑에서 나오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 점은 창4에서 다루었던 가인의 상태와 다시 선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가인은 사랑과 분리된 신앙을 표상했습니다. 반면 창5에서 ‘사람’이라 하는 태고교회의 본래 상태는 ‘주님을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신앙’입니다. 신앙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신앙이 어디에서 나오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사랑에서 나온 신앙은 사람을 참된 ‘사람’으로 이루지만, 사랑에서 분리되어 독립하려는 신앙은 본래의 천적 질서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결국 AC.479에서 ‘아담’, ‘흙’, ‘거듭남’, ‘사람’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됩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흙’과 같은 상태에서 새롭게 하시고 거듭나게 하시며, 그를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이끄시고, 마침내 주님을 향한 사랑에서 신앙이 흘러나오는 질서를 이루실 때 그는 가장 온전한 의미에서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다’는 말씀은 태고교회의 이름을 알려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주님께서 그 교회 안에 이루신 거듭남의 어떠함 전체를 압축하여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AC.479 해설)

 

 

 

AC.480, 창5:2, ‘여섯째 날의 끝과 안식일의 시작에 이른 사람’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80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사람’이라 일컬어졌다는 것은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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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78, 창5:2, ‘아담이라는 한 사람이 아니라 태고교회’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78그를 ‘아담’(Adam)이라 하는 이유는 히브리어 ‘아담’(A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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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78

그를 ‘아담’(Adam)이라 하는 이유는 히브리어 ‘아담’(Adam)이 ‘사람’(man)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고유한 이름으로서 ‘아담’이라 일컬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는 것은 이 구절과 앞의 여러 구절에서 매우 분명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를 단수로 말하지 않고 복수로 말하며, 또한 이 말이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적용되어 둘을 함께 ‘사람’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둘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것은 누구나 본문의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다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라고 하였고, 마찬가지로 1장에서도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를 다스리게 하자’(창1:26)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다루는 주제는 인류 최초의 어떤 한 사람의 창조가 아니라 태고교회라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The reason why he is called “Adam” is that the Hebrew word “Adam” signifies “man”; but that he is never properly called “Adam” by name, but “man,” is very evident from this passage and also from former ones, in that [in some cases] he is not spoken of in the singular number, but in the plural, and also from the fact that the term is predicated of both the man and the woman, both together being called “man.” That it is predicated of both, everyone may see from the words, for it is said, “He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that they were created”; and in like manner in the first chapter: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n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Gen. 1:26) Hence also it may appear that the subject treated of is not the creation of some one man who was the first of mankind, but the most ancient church.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1:26)

 

해설

AC.478은 창세기 초반의 ‘아담’을 스베덴보리가 어떻게 읽는지를 매우 직접적으로 밝히는 대목입니다. 핵심은 히브리어 ‘아담’(Adam)이 본래 ‘사람’을 뜻한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는 이 대목의 ‘아담’을 처음부터 한 개인의 고유명사로 읽기보다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읽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속뜻으로는 태고교회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그 근거 가운데 하나가 단수와 복수의 변화입니다. 창1:26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고’라고 단수로 말씀하신 뒤 곧이어 ‘그들로... 다스리게 하자’고 복수로 말씀하십니다. 창5:2에서도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뒤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다’고 합니다. 따라서 본문 자체에서 ‘사람’은 어느 한 남성 개인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남자와 여자를 함께 포괄하는 말로 사용됩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문법적 특징을 태고교회라는 집단적 의미를 보여 주는 중요한 단서로 봅니다.

 

이것은 바로 앞의 AC.475-477과도 이어집니다. 남자와 여자는 각각 신앙과 사랑을 의미하고, 이 둘이 결혼을 이루었을 때 더 이상 둘을 따로 ‘남자와 여자’라고 하지 않고 하나의 ‘사람’(homo)이라 합니다. 그리고 AC.477에서는 가장 높은 의미로 오직 주님 자신만이 사람이시며, 천적 교회는 주님의 ‘모양’으로서, 영적 교회는 주님의 ‘형상’으로서 사람이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창5:2의 ‘사람’은 단순한 종(種)으로서의 인간이라는 뜻을 넘어, 주님의 형상과 모양을 받아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AC.478의 마지막 문장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다루는 주제는 인류 최초의 어떤 한 사람의 창조가 아니라 태고교회’라고 명시합니다. 이것은 창세기 초반의 속뜻을 읽는 그의 기본 원리를 다시 확인해 줍니다. ‘아담’이라는 이름 아래 한 개인의 생애를 중심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최초의 사람들을 어떻게 교회로 세우시고 그 교회를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이끄셨는가를 읽는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조심할 점이 있습니다. AC.478의 논점은 창세기 본문의 역사성 전체를 한 문장으로 부정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 스베덴보리가 분명히 밝히는 것은 말씀의 속뜻에서 ‘아담’이 인류 최초의 한 개인을 주제로 삼는 것이 아니라 태고교회를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 역시 ‘실제로 아담이라는 개인이 존재했는가?’라는 문제로 곧바로 옮겨가기보다, 왜 주님께서 말씀에서 하나의 교회를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내셨는가를 이해하는 데 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보면 창5:1의 ‘아담 계보의 책’도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것은 속뜻으로 한 개인 아담의 생물학적 후손 명단을 제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 하는 태고교회로부터 여러 후대 교회가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보여 주는 교회의 계승에 관한 기록입니다. AC.469에서 ‘계보의 책’을 태고교회에 속한 사람들의 열거라고 한 것과 AC.470에서 이어지는 이름들이 실제적인 것들, 곧 교회적 실재를 의미한다고 한 설명이 여기서 서로 연결됩니다.

 

결국 AC.478은 ‘아담’이라는 이름을 통하여 다시 한번 창5를 읽는 관점을 정리해 줍니다. 문자에서는 한 사람의 이름과 그의 후손들의 계보가 이어지지만, 속뜻으로는 ‘사람’이라 하는 태고교회와 그 교회로부터 이어지는 여러 교회의 역사가 펼쳐집니다. 그러므로 창5의 계보를 따라간다는 것은 단순히 누가 누구를 낳았는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태고교회가 여러 세대를 거치며 어떤 영적 상태들을 지나 노아에 이르게 되는지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AC.478 해설)

 

 

 

AC.479, 창5:2, ‘흙에서 취하여 거듭나고 참된 사람이 된 태고교회’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79말씀에서 ‘이름을 부르다’(calling a name) 또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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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77, 창5:2, ‘오직 주님만이 참된 사람이시며, 교회는 그분의 형상과 모양’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77‘사람’(man)이 태고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서 자주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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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77

‘사람’(man)이 태고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서 자주 말하고 보여 주었습니다. 가장 높은 의미로는 오직 주님 자신만이 사람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로부터 천적 교회는 주님의 모양이므로 사람이라 하고, 이후 영적 교회도 주님의 형상이므로 사람이라 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로는 인간다운 이해(human understanding)를 가진 모든 이를 사람이라 합니다. 사람은 이해하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사람이기 때문이며, 그 능력에 따라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사람답습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구별은 마땅히 주님을 향한 사랑에 기초한 그의 신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합니다. That “man” is the most ancient church has been often said and shown above; for in the supreme sense the Lord himself alone is man. From this the celestial church is called man, as being a likeness, and from this the spiritual church is afterwards so called because it was an image. But in a general sense everyone is called a man who has human understanding; for man is man by virtue of understanding, and according thereto one person is more a man than another, although the distinction of one man from another ought to be made according to his faith as grounded in love to the Lord.

 

[2] 태고교회와 모든 참된 교회, 그리고 그로부터 교회에 속한 사람들, 곧 주님을 향한 사랑과 주님을 믿는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특별히 ‘사람’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말씀으로부터 분명합니다. 에스겔에서는, That the most ancient church, and every true church, and hence those who are of the church, or who live from love to the Lord and from faith in him, are especially called “man,” is evident from the Word, as in Ezekiel:

 

10내가 또 사람을 너희 위에 많게 하리니 이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11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주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리니 12내가 사람을 너희 위에 다니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 이스라엘이라 (겔36:10-12) I will cause man to multiply upon you, all the house of Israel, all of it; I will cause to multiply upon you man and beast, that they may be multiplied and bear fruit; and I will cause you to dwell according to your antiquities; and I will do better unto you than at your beginnings and I will cause man to walk upon you, my people Israel, (Ezek. 36:10–12)

 

하였습니다. 여기서 ‘옛적’(antiquities)은 태고교회를, ‘처음’(beginnings)은 고대교회들을 의미하며, ‘이스라엘 족속’과 ‘내 백성 이스라엘’은 초대교회, 곧 이방인들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이 모든 교회를 ‘사람’이라 합니다. where by “antiquities” is signified the most ancient church; by “beginnings,” the ancient churches; by the “house of Israel” and “people Israel,” the primitive church, or church of the Gentiles; all which churches are called “man.”

 

[3] 신명기에서도, So in Moses:

 

7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8지극히 높으신 자가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실 때에, 인종을 나누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신32:7, 8) Remember the days of eternity, understand ye the years of generation and generation; when the most high would give the nations an inheritance, when he would set apart the sons of man, he set the bounds of the peoples according to the number of the sons of Israel, (Deut. 32:7–8)

 

하였습니다. 여기서 ‘옛날’(days of eternity)은 태고교회를, ‘역대’(generation and generation)는 고대교회들을 의미합니다. ‘인종’(sons of man)은 주님을 향한 신앙 안에 있던 사람들이며, 이 신앙이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입니다. 거듭난 사람을 ‘사람’이라 하는 것은 예레미야에서도 나타납니다. where by the “days of eternity” is meant the most ancient church; by “generation and generation,” the ancient churches; the “sons of man” are those who were in faith toward the Lord, which faith is the “number of the sons of Israel.” That a regenerate person is called “man,” appears from Jeremiah:

 

23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25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렘4:23, 25) I beheld the earth, and lo it was empty and void; and the heavens, and they had no light; I beheld, and lo, no man, and all the birds of the heavens were fled, (Jer. 4:23, 25)

 

하였습니다. 여기서 ‘땅’은 외적 인간(external man, 겉 사람)을, ‘하늘’은 내적 인간(internal man, 속 사람)을, ‘사람’은 선에 대한 사랑을, ‘공중의 새’는 진리에 대한 이해를 의미합니다. where “earth” signifies the external man; “heaven” the internal; “man” the love of good; the “birds of the heavens” the understanding of truth.

 

[4] 다시 예레미야에서는, Again: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렘31:27) Behold the days come that I will sow the house of Israel, and the house of Judah, with the seed of man, and with the seed of beast, (Jer. 31:27)

 

하였습니다. 여기서 ‘사람’은 속 사람을, ‘짐승’은 겉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사야에서는, where “man” signifies the internal man, “beast” the external. In Isaiah: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사2:22) Cease ye from man in whose nostrils is breath, for wherein is he to be accounted of, (Isa. 2:22)

 

하였습니다. 여기서 ‘사람’은 교회에 속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다시, where by “man” is signified a man of the church. Again: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사6:12) Jehovah shall remove man far away, and many things shall be left in the midst of the land, (Isa. 6:12)

 

하였는데, 이는 사람의 황폐함, 곧 더 이상 선도 진리도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speaking of the vastation of man, in that there should no longer exist either good or truth. Again:

 

땅의 주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도다 (사24:6) The inhabitants of the earth shall be burned, and man shall be left very little, (Isa. 24:6)

 

하였습니다. 여기서 ‘사람’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다시, where “man” signifies those who have faith. Again:

 

8대로가 황폐하여 행인이 끊어지며 대적이 조약을 파하고 성읍들을 멸시하며 사람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9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사33:8, 9) The paths have been desolated, the farer on the path hath ceased, he hath made vain the covenant, he hath despised the cities, he hath not regarded man, the earth mourneth and languisheth, (Isa. 33:8–9)

 

하였습니다. 여기서 ‘사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에노스’(Enosh)입니다. 다시, denoting the man who in the Hebrew tongue is “Enosh.” Again:

 

12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 13그러므로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사13:12, 13) I will make a man more precious than fine gold, and a man than the gold of Ophir; therefore I will shake the heavens, and the earth shall be moved out of her place, (Isa. 13:12–13)

 

하였습니다. 여기서 첫 번째 ‘사람’에 해당하는 말은 ‘에노스’(Enosh)이고, 두 번째는 ‘아담’(Adam)입니다. where the word for man in the first place is “Enosh,” and in the second is “Adam.”

 

해설

AC.477의 출발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 교회를 ‘사람’이라 하는가 하는 질문에 스베덴보리는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답합니다. ‘가장 높은 의미로는 오직 주님 자신만이 사람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이 교회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사람의 기준이십니다. 교회와 거듭난 사람이 ‘사람’이라 하는 까닭은 그들 자신에게서 참된 인간성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사랑과 선과 진리를 받아 주님의 것을 닮아 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AC.473의 ‘형상’과 ‘모양’이 다시 연결됩니다. 천적 교회는 주님의 ‘모양’이므로 사람이라 하고, 영적 교회는 주님의 ‘형상’이므로 역시 사람이라 합니다. 따라서 창5:1-2에서 ‘하나님의 모양’과 ‘사람’이라는 표현이 이어지는 것은 우연한 배열이 아닙니다. 태고교회가 주님의 모양을 이루는 천적 교회였기 때문에 말씀은 그 교회를 특별히 ‘사람’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사람은 이해하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사람이다’라는 문장은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만 떼어 놓으면 지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더 참된 사람이라는 뜻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즉시 그 기준을 바로잡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참된 구별은 ‘주님을 향한 사랑에 기초한 신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이해’(understanding)는 단순한 지능이나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진리를 받아들이고 분별할 수 있는 인간의 내적 능력과 관계됩니다. 그리고 그 이해 역시 사랑과 결합될 때 비로소 참된 인간성을 이룹니다.

 

이어지는 수많은 성경 인용은 바로 이 사실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 줍니다. 겔36:10-12에서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은 단순한 인구 증가만을 뜻하지 않고 교회가 회복되고 번성하는 것을 속뜻으로 포함합니다. 그래서 ‘옛적’은 태고교회, ‘처음’은 고대교회들을 가리키며, 이스라엘과 이방인 가운데 세워진 교회까지 모두 ‘사람’이라는 이름 아래 묶입니다. 시대와 외적 형태는 달라도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아 살아 있는 교회라는 점에서는 모두 ‘사람’인 것입니다.

 

신32:7-8 역시 같은 흐름을 보여 줍니다. ‘옛날’과 ‘역대’는 태고교회와 고대교회들을 가리키고, ‘인종’은 주님을 향한 신앙 안에 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반면 렘4:23, 25에서는 정반대의 상태가 나타납니다. ‘사람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속뜻으로는 ‘선에 대한 사랑’이 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공중의 새가 날아갔다는 것은 ‘진리에 대한 이해’까지 사라진 상태입니다. 사랑의 선과 진리에 대한 이해가 사라지자 말씀은 그것을 ‘사람이 없다’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사람’의 의미를 매우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렘31:27의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에서는 ‘사람’이 내적 인간(internal man, 속 사람)을, ‘짐승’이 외적 인간(external man, 겉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6:12와 사24:6에서는 선과 진리 또는 신앙이 사라지는 교회의 황폐함을 ‘사람’이 사라지는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결국 이 인용들은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말씀에서 ‘사람’이라는 말은 단지 생물학적 인간을 가리키는 데 머물지 않고,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아 참으로 살아 있는 내적 상태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33:8-9와 사13:12-13에서 ‘에노스’(Enosh)와 ‘아담’(Adam)이라는 히브리어가 구별되어 제시되는 것도 앞으로 창5의 이름들을 읽는 데 중요합니다. 창5의 이름들은 단순히 사람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서로 다른 상태를 담고 있으며, ‘사람’을 뜻하는 여러 표현 자체에도 서로 다른 내적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에노스’는 곧 창5에서 하나의 교회를 나타내는 이름으로 다시 다루어지므로, 여기서는 그 의미가 앞으로 더욱 구체적으로 밝혀질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AC.477은 ‘사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주님으로부터 시작하여 교회와 개인에게로 내려옵니다. 가장 높은 의미로 참된 사람은 오직 주님이시며, 교회는 주님의 모양 또는 형상을 받아 ‘사람’이 되고, 개인 역시 주님으로부터 사랑과 신앙, 선과 진리를 받아 거듭날수록 참된 사람이 됩니다. 따라서 창5:2의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다’는 말씀은 단순히 남자와 여자를 통칭하여 인간이라고 이름 붙였다는 것보다 훨씬 깊습니다. 신앙과 사랑이 결혼을 이루고 주님의 모양을 나타내는 교회, 바로 그것이 말씀의 속뜻으로는 ‘사람’입니다. (AC.477 해설)

 

 

 

AC.478, 창5:2, ‘아담이라는 한 사람이 아니라 태고교회’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78그를 ‘아담’(Adam)이라 하는 이유는 히브리어 ‘아담’(A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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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76, 창5:2, ‘남자와 여자에서 하나의 사람으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76‘남자와 여자’(male and female)가 신앙과 사랑 사이의 결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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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76

‘남자와 여자’(male and female)가 신앙과 사랑 사이의 결혼을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서 밝히고 입증하였습니다. 거기서 남자, 곧 남성(man [vir])은 이해(understanding)와 거기에 속한 모든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신앙에 속한 모든 것을 의미하고, 여자, 곧 여성은 의지(will) 또는 의지에 속한 것들을 의미하며, 따라서 사랑과 관계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여자를 ‘하와’(Eve)라 하였는데, 이 이름은 생명을 의미하며, 생명은 오직 사랑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앞에서 보여 준 것처럼 여자는 또한 교회를 의미하고, 남자는 교회에 속한 사람(man [vir] of the church)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교회가 영적이었을 때의 상태와 그 후 천적으로 만들어진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창1:26-27에서와 같이 ‘여자’보다 ‘남자’가 먼저 언급됩니다. 또한 ‘창조하다’(create)라는 표현은 영적 인간과 관련됩니다. 그러나 그 후 결혼이 이루어졌을 때, 곧 교회가 천적으로 만들어졌을 때에는 ‘남자와 여자’라고 하지 않고 ‘사람’(man [homo])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그들의 결혼으로 말미암아 둘 모두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곧이어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다’고 하며, 이것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That by “male and female” is signified the marriage between faith and love was declared and proved above, where it was shown that the male or man [vir] signifies the understanding and whatever belongs to it, consequently everything of faith; and that the female or woman signifies the will, or the things appertaining to the will, consequently whatever has relation to love; wherefore she was called Eve, a name signifying life, which is of love alone. By the female therefore is also signified the church, as has been previously shown; and by the male, a man [vir] of the church. The subject here is the state of the church when it was spiritual, and which was afterwards made celestial, wherefore “male” is mentioned before “female,” as also in chapter 1:26–27. The expression to “create” also has reference to the spiritual man; but afterwards when the marriage has been effected, that is, when the church has been made celestial, it is not said “male and female,” but “man” [homo], who, by reason of their marriage, signifies both; wherefore it presently follows, “and he called their name man,” by which is signified the church.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6, 27)

 

해설

AC.476은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신앙과 사랑의 결혼’을 의미하는지를 이해(understanding)와 의지(will)의 관계를 통해 설명합니다. ‘남자’(vir)는 이해와 거기에 속한 것들을 의미하므로 신앙에 속한 것을 표상하고, ‘여자’는 의지와 거기에 속한 것들을 의미하므로 사랑에 속한 것을 표상합니다. 여기서 신앙은 단순히 어떤 교리를 믿는 행위가 아니라 진리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쪽과 관계되고, 사랑은 그 진리를 원하고 기뻐하며 살아내는 의지의 쪽과 관계됩니다.

 

여자를 ‘하와’라 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와’는 생명을 의미하고, 스베덴보리는 생명이 본질적으로 사랑에 속한다고 설명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따라 살고, 그 사랑이 그의 의지와 삶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자가 의지와 사랑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은 서로 연결됩니다. 교회의 생명 역시 단순히 진리를 알고 있는 데 있지 않고, 그 진리가 사랑과 의지 안에서 살아 있게 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특히 눈여겨볼 것은 ‘남자’가 ‘여자’보다 먼저 언급된 이유입니다. AC.476은 여기서 다루는 상태가 교회가 처음에는 ‘영적’이었다가 이후 ‘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영적 상태에서는 진리와 신앙을 통하여 사랑과 선으로 나아가므로, 이해와 신앙을 의미하는 ‘남자’가 먼저 나옵니다. 이것은 창1:26-27에서도 동일합니다. 또한 AC.472에서 살펴본 것처럼 ‘창조하다’라는 표현 역시 영적 인간과 관련됩니다.

 

그러나 신앙과 사랑의 결혼이 이루어져 교회가 천적 상태에 이르면 표현이 달라집니다. 더 이상 ‘남자와 여자’라고 각각 말하지 않고 둘을 하나로 묶어 ‘사람’(homo)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남자나 여자의 구별이 없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속뜻으로는 이해와 의지, 신앙과 사랑이 더 이상 서로 분리된 두 원리로 머물지 않고 하나의 생명을 이루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그의 이름’이 아니라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다’고 합니다. 둘이 결혼을 이루었기 때문에 하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 점은 AC.472-473의 ‘형상’과 ‘모양’의 구별과도 정확히 이어집니다. 영적 인간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신앙을 통하여 선으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천적 인간은 신앙과 사랑, 이해와 의지가 결혼을 이루어 주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모양’입니다. 따라서 창5:1-2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태고교회가 영적 상태에서 출발하여 신앙과 사랑의 결혼을 이루는 천적 상태에 이른 과정을 압축하여 보여 줍니다.

 

결국 ‘남자와 여자’에서 ‘사람’으로 표현이 바뀌는 것은 태고교회의 거듭남이 어디에 이르렀는지를 보여 줍니다. 진리를 이해하는 것과 선을 사랑하는 것, 신앙과 사랑이 따로 움직이는 동안에는 아직 결혼이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둘을 결합하시면 신앙은 사랑으로부터 나오고, 이해는 의지와 하나가 되어 움직이며, 사람의 내적 삶 전체가 하나의 질서를 이루게 됩니다. 바로 이 상태를 말씀은 ‘사람’(homo)이라 하고, AC.476은 이 ‘사람’이 곧 교회를 의미한다고 밝힙니다. (AC.476 해설)

 

 

 

AC.477, 창5:2, ‘오직 주님만이 참된 사람이시며, 교회는 그분의 형상과 모양’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77‘사람’(man)이 태고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서 자주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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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75, 창5:2, ‘신앙과 사랑의 결혼을 이룬 교회’(AC.475-480)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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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hey were created. (창5:2)

 

AC.475

 

‘남자와 여자’(male and female)는 신앙과 사랑 사이의 결혼을 의미하며,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다’(calling their name man)는 것은 그들이 교회였음을 의미합니다. 특별한 의미로는 교회를 ‘사람’(man [homo])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By “male and female,” is signified the marriage between faith and love; by “calling their name man,” is signified that they were the church, which, in an especial sense, is called “man” [homo].

 

해설

AC.475는 창5:2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는 말씀을 태고교회의 내적 상태에 대한 묘사로 읽습니다. 여기서 ‘남자와 여자’는 단순히 두 성별을 가리키는 데 머물지 않고 ‘신앙과 사랑 사이의 결혼’을 의미합니다. 즉 태고교회 안에서 신앙과 사랑이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를 이루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말하는 ‘결혼’은 두 가지가 단순히 함께 존재한다는 뜻보다 훨씬 깊습니다. 참된 신앙은 사랑으로부터 나오고, 참된 사랑은 신앙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냅니다. 사랑과 분리된 신앙은 살아 있는 신앙이 될 수 없으며, 신앙과 진리 없이 막연한 감정에 머무는 사랑 역시 온전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과 사랑의 결혼은 사람 안에서 진리와 선이 하나의 생명을 이루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것은 창4에서 우리가 보았던 가인의 문제와도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가인이 표상한 것은 사랑 또는 체어리티로부터 분리된 신앙이었습니다. 반면 여기 창5:2에서 태고교회를 묘사하는 ‘남자와 여자’는 신앙과 사랑이 결혼을 이루고 있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창5는 처음부터 태고교회의 본래 질서가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보여 줍니다. 신앙이 사랑과 경쟁하거나 사랑으로부터 독립하여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결합되어 하나의 생명을 이루는 질서입니다.

 

이어지는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다’는 말씀도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사람’(homo)은 특별한 의미로는 ‘교회’를 가리킨다고 설명합니다. 말씀에서 참된 의미의 사람은 단지 인간의 외형을 가진 존재라는 뜻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사랑과 신앙을 받아 그 둘이 하나를 이루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신앙과 사랑의 결혼이 이루어진 공동체를 ‘사람’이라 한다는 것은,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참된 인간성을 받아 살아가는 공동체임을 보여 줍니다.

 

더욱이 본문은 ‘그의 이름’이 아니라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다’고 합니다. 남자와 여자를 함께 가리키면서 하나의 이름인 ‘사람’을 주신 것입니다. 속뜻으로는 이것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신앙과 사랑은 서로 떨어져 각각 완전한 것이 아니라 결합될 때 하나의 교회를 이루며, 바로 그 결합된 상태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참된 정체성은 신앙만으로도, 사랑만으로도 설명되지 않고, 주님 안에서 신앙과 사랑이 결혼을 이루는 데 있습니다.

 

결국 AC.475가 보여 주는 태고교회의 모습은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신앙’과 ‘그 신앙을 통하여 나타나는 사랑’이 하나를 이루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교회를 ‘사람’이라 부르십니다. 창4에서 사랑과 신앙의 분리가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렸다면, 창5:2는 그보다 먼저 있었던 본래의 질서를 다시 보여 줍니다. 참된 교회도 참된 인간도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신앙이 서로 결혼을 이루는 곳에서 형성됩니다. (AC.475 해설)

 

 

 

AC.476, 창5:2, ‘남자와 여자에서 하나의 사람으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76‘남자와 여자’(male and female)가 신앙과 사랑 사이의 결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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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74, 창5:1,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나아간 태고교회’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4그러므로 여기서 다루는 주제는 태고교회의 출생 또는 번성(birth or propagation)이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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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4

그러므로 여기서 다루는 주제는 태고교회의 출생 또는 번성(birth or propagation)이므로, 먼저 이 교회가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나아간 것이 묘사됩니다. 이후의 번성은 바로 이 상태로부터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Since therefore the subject here treated of is the birth or propag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is is first described as coming from a spiritual to a celestial state, for the propagations follow from this.

 

해설

AC.474는 AC.469에서 시작된 창5:1의 해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서, 왜 창5의 계보가 곧바로 셋과 그 후대의 교회들로 들어가지 않고 먼저 태고교회 자체의 상태를 설명하는지를 밝혀 줍니다. 창5가 다루려는 것은 태고교회의 ‘출생 또는 번성’입니다. 여기서 ‘번성’은 단순히 자녀가 태어나 인구가 늘어나는 생물학적 번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교회로부터 그 성격을 이어받은 후대의 교회들이 생겨나고 계속되는 교회적 번성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 후대의 교회들을 설명하려면 먼저 그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밝혀야 합니다. 그래서 창5:1은 태고교회가 먼저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나아간 것을 묘사합니다. AC.472와 AC.473에서 살펴본 ‘창조하다-영적 인간-하나님의 형상’과 ‘만들다-천적 인간-하나님의 모양’이라는 질서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이 창5의 여러 교회가 이어지는 출발점입니다.

 

특히 마지막의 ‘이후의 번성은 바로 이 상태로부터 이어진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등장할 셋, 에노스, 게난 등의 교회들은 아무 관계 없이 차례로 등장하는 독립된 교회들이 아니라, 먼저 이루어진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로부터 파생되고 계승되는 교회들입니다. 물론 후대로 내려가면서 처음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장 개요에서 보았듯이 그 상태는 점차 변화하고 쇠퇴하여 마침내 노아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계승의 출발점은 주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입니다.

 

이것은 ‘계보의 책’이라는 표현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합니다. 문자적으로 계보에는 부모와 자녀의 출생이 기록되지만, 속뜻으로는 교회가 교회를 낳고 그 교회의 고유한 상태가 후대에 전달되는 과정이 기록됩니다. 그러므로 창5의 ‘낳았다’는 표현을 앞으로 만날 때에도 단순히 개인의 출생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떤 교회 상태로부터 다음 교회 상태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AC.474는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창4와 창5의 관계에도 하나의 중요한 기준을 더해 줍니다. 적어도 창5의 계열에 대해서는 스베덴보리가 그 출발점을 분명히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가 된 태고교회’에 두고 있으며, 그 이후의 교회들이 ‘이 상태로부터’ 번성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창5는 태고교회 자체의 천적 상태를 출발점으로 하여 그 후대 교회들의 계승과 변화를 추적하는 하나의 분명한 교회적 계열입니다. 이것이 창4의 계열과 정확히 어떤 관계를 이루는지는 계속 확인해야 하지만, 창5 자체의 출발점과 진행 방향은 이제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결국 AC.469-474에서 창5:1은 앞으로 펼쳐질 교회사의 기준점을 세웁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새롭게 창조하여 영적 인간으로 만드시고, 다시 사랑으로부터 살아가는 천적 인간으로 완전하게 하셨으며, 그렇게 이루어진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로부터 이후의 여러 교회가 이어져 나갑니다. 그러므로 창5의 계보를 움직이는 가장 깊은 시작은 인간의 혈통이 아니라, 사람을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이끄시는 주님의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입니다. (AC.474 해설)

 

 

 

AC.469-474 심화 1, ‘태고교회는 왜 집안과 일가와 민족으로 구별되어 있었는가?’

AC.469-474 심화1, ‘태고교회는 왜 집안과 일가와 민족으로 구별되어 있었는가?’ AC.470-471에서 스베덴보리는 태고 시대의 사람들이 ‘집안’(house), ‘일가’(family), ‘민족’(nation)으로 구별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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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75, 창5:2, ‘신앙과 사랑의 결혼을 이룬 교회’(AC.475-480)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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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73, 창5:1, ‘하나님의 형상에서 하나님의 모양으로’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3‘하나님의 모양’(likeness of God)이 천적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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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3

‘하나님의 모양’(likeness of God)이 천적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이 영적 인간을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서도 보여 준 바 있습니다. ‘형상’(image)은 ‘모양’(likeness)을 위한 준비 단계이며, ‘모양’은 실제적인 닮음(real replica)입니다. 천적 인간은 전적으로 주님의 다스림을 받기 때문에 주님의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That a “likeness of God” is a celestial man, and an “image of God,” a spiritual man, has also been previously shown. An “image” is preparatory to a “likeness,” and a “likeness” is a real replica, for a celestial man is entirely governed by the Lord, as his “likeness.”

 

해설

AC.473은 우리가 흔히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을 거듭남의 서로 다른 상태로 구별합니다. ‘형상’은 영적 인간을, ‘모양’은 천적 인간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둘의 관계를 ‘형상은 모양을 위한 준비 단계’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서로 무관한 두 종류의 인간을 나란히 놓은 구별이라기보다, 주님께서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과정에서 앞선 상태와 더 완성된 상태의 관계를 보여 줍니다.

 

‘형상’이 영적 인간을 뜻한다는 것은 그가 이미 주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받아 주님의 질서를 반영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아직 진리와 신앙을 통하여 선과 사랑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는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지만, 아직 자신의 의지와 주님의 뜻 사이에서 싸움과 선택을 경험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형상’은 ‘모양’을 향한 준비입니다.

 

반면 ‘모양’은 단순히 외형적으로 비슷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실제적인 닮음’이라고 표현하면서 그 이유를 곧바로 밝힙니다. 천적 인간은 ‘전적으로 주님의 다스림을 받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천적 인간이 주님과 동일한 존재가 된다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그의 사랑과 의지와 삶의 질서가 주님으로부터 흘러오는 생명을 더욱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어, 그 삶에서 주님의 사랑과 선이 실제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AC.472의 ‘창조하다’와 ‘만들다’의 구별도 더욱 선명해집니다. 사람이 새롭게 ‘창조되어’ 영적 인간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되는 것과 연결되고, 그 영적 인간이 더욱 온전하게 ‘만들어져’ 천적 인간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모양’이 되는 것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창조 → 형상 → 영적 인간’과 ‘만들다 → 모양 → 천적 인간’이라는 두 흐름은 서로 다른 설명이 아니라 동일한 거듭남의 질서를 서로 다른 말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전적으로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말을 인간의 자유가 없어지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참된 자유는 주님과 반대되는 것을 마음대로 행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에 따라 선을 기쁘게 행하는 데 있습니다. 천적 인간은 억지로 주님께 복종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뜻과 자신의 사랑이 점점 하나의 방향을 향하기 때문에 선을 행하는 것이 그의 기쁨과 자유가 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의 ‘모양’이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결국 AC.473은 거듭남의 목적이 단지 ‘올바른 것을 아는 사람’을 만드는 데 있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 안에 당신의 ‘형상’을 이루시고,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 형상이 사랑과 삶 속에서 더욱 실제적인 ‘모양’이 되도록 이끄십니다. 신앙과 진리가 사랑을 향하여 나아가고, 마침내 사람이 주님의 다스림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며 그 사랑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모양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AC.473 해설)

 

 

 

AC.474, 창5:1,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나아간 태고교회’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4그러므로 여기서 다루는 주제는 태고교회의 출생 또는 번성(birth or propagation)이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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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72, 창5:1, ‘창조함과 만드심,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2‘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날’(day in which God created man)이 그가 영적으로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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