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18.심화
4. ‘이성적 마음’(the rational mind)
본문에 ‘겉 사람에 속한 이성적 마음’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왜 ‘이성적 마음’(the rational mind)이 겉 사람에 속하나요?
핵심부터 말씀드리면, 스베덴보리에게서 ‘이성적 마음’(the rational mind)은 ‘‘위에서 오는 것을 받아 겉 사람의 생각과 지식을 조직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기능상 겉 사람에 속한 것으로 분류됩니다’. 이것은 이성이 낮거나 세속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위(속 사람)와 아래(감각, 기억 지식)를 연결하는 ‘중간이면서도 아래쪽에 기울어 있는 층위’’라는 의미입니다.
먼저 구조를 보시면, 속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사랑과 신앙, 곧 생명에 속한 것을 직접 받는 자리입니다. 여기서는 퍼셉션이 중심이고, 판단 이전의 ‘아는 상태’가 있습니다. 반면 겉 사람은 감각과 기억 지식, 말과 행위의 자리입니다. 이 둘 사이에 놓인 것이 이성적 마음입니다. 이성은 위로부터 온 것을 받아 아래의 지식과 생각을 ‘정리하고, 연결하고, 판단으로 풀어내는 기능’을 합니다. 바로 이 ‘아래로 작용한다’는 점 때문에, 분류상 겉 사람 쪽에 둡니다.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이성적 마음이 실제로 ‘기억 지식(scientifica)을 재료로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이성은 아무것도 없는 데서 작동하지 않고, 경험과 언어, 개념이라는 외적 자료를 가지고 추론합니다. 그래서 그 작용의 장(場)은 자연스럽게 겉 사람의 영역에 놓입니다. 주님으로부터의 유입은 속 사람을 통해 내려오지만, 이성이 그것을 다루는 방식은 ‘겉 사람의 재료와 형식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AC.118에서 말하는 흐름, 곧 ‘주님 → 속 사람 → 이성적 마음(겉 사람)’이라는 질서가 성립합니다. 이 질서가 유지되면 이성은 명석해지고, 섬기는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이 흐름이 끊어지면, 같은 이성적 마음이 ‘자기 힘으로 생각한다고 여기며 독립하려 하고’, 그때 왜곡이 생깁니다. 스베덴보리가 앗수르(이성)를 두고 긍정과 경계를 동시에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리하면, ‘이성적 마음’이 겉 사람에 속한다고 하는 것은 그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작용의 방향과 자리의 문제’입니다. 이성은 위에서 시작되지 않고, 위에서 받은 것을 아래에서 펼쳐내는 기능이기 때문에, 구조상 겉 사람의 편에 놓입니다. 그래서 이성은 언제나 ‘근원’이 아니라 ‘통로’이며, 그 근원을 향해 열려 있을 때에만 참된 명석함을 갖습니다.
AC.118, 심화 5, ‘스베덴보리가 앗수르를 두고 긍정과 경계를 동시에 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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