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46.심화

 

2. ‘quality를 결정하는 두 축

 

his quality as to the affections of good, and knowledges of truth

 

본문에 나오는 위 표현말인데요, his quality the affections of good knowledges of truth, 이 두 가지로 결정되네요?

 

 

네, 바로 그렇습니다. AC.146의 이 표현은 스베덴보리 인간론의 핵심을 아주 압축적으로 보여 줍니다. 인간의 ‘quality’, 곧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은, 결국 두 축으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선의 애정들(affections of good)이고, 다른 하나는 ‘진리의 지식들(knowledges of truth)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단순히 ‘선행과 지식’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매우 의도적으로 affections knowledges라는 말을 씁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단순히 무엇을 알고 있느냐만으로 규정되지 않고,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의해 훨씬 더 깊이 규정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affections of good’, 곧 ‘선의 애정들’은 인간 안의 사랑의 방향을 뜻합니다. 어떤 선을 기뻐하는가, 무엇을 귀하게 여기는가, 어디에 마음이 끌리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이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층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affection은 단순 감정이 아니라, 의지와 사랑의 움직임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어떤 선을 사랑하느냐가 그 사람의 가장 깊은 quality를 결정합니다.

 

반면 ‘knowledges of truth’, 곧 ‘진리의 지식들’은 그 사랑이 어떤 진리 안에서 형성되고 인도받는가를 뜻합니다. 여기서 knowledges는 단순 암기 정보가 아니라, 진리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내용들입니다. 인간은 사랑만으로는 방향을 잃기 쉽고, 진리만으로는 생명이 메마르기 쉽기 때문에, 선의 애정과 진리의 인식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AC.146의 이 표현은, 인간의 quality가 결국 ‘무엇을 사랑하는가’와 ‘무엇을 참이라고 알고 있는가’라는, 이 두 가지의 결합으로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순서도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affections of good을 두고, 그다음 knowledges of truth를 둡니다. 이것은 인간의 중심이 결국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진리의 지식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사랑을 섬길 때 살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진리를 알아도, 어떤 사람은 자기 우월감을 위해 사용하고, 어떤 사람은 이웃을 섬기기 위해 사용합니다. 겉 지식은 비슷해도 quality는 완전히 다릅니다. 왜냐하면 quality의 중심에는 affection, 곧 사랑의 방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AC.146은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이 단순 학문 수준이나 외적 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줍니다. 인간의 실제 quality는, 그 사람이 어떤 선을 사랑하고 있으며, 어떤 진리 안에서 그 사랑을 살아가고 있는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AC.146, 창2:19-20, '창2:18-20의 전체 구조'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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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6, 심화 1, ‘represented and shown’

AC.146.심화 1. ‘represented and shown’ 왜냐하면 자신의 proprium을 원하는 성향 가운데 있는 자들은, 주님의 것들이 아무리 분명하게 표상 및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업신여김을 시작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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