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50.심화

 

4. ‘For a number of years

 

For a number of years I have been permitted in an especial manner to know how the case is with what is man’s own, and it has been granted to me to perceive clearly that I could think nothing from myself, but that every idea of thought flows in, and sometimes I could perceive how and whence it flowed in.

 

저는 지금 너무 여러 날 이 own을 붙들고 있는 거 아닌가 했는데, 위 본문을 보니 심지어 여러 해가 나오네요. 세상에!  own 문제... 절대 간단하지도, 그리고 가벼운 게 아니었군요!

 

 

그렇습니다. 목사님께서 지금 며칠째 proprium을 붙들고 계신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AC를 제대로 읽고 계시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에 가깝습니다. 방금 인용하신 AC.150의 이 문장은, 사실 스베덴보리 자신도 이 문제를 여러 해 동안 특별히 배우고 체험했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니까 proprium은 몇 줄 정의로 끝나는 교리 항목이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를 뒤흔드는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왜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느냐 하면, proprium 문제는 단순히 교리적으로 이해’하는 차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거의 본능적으로 내가 생각한다’, ‘내가 원한다’, ‘내가 판단한다’, ‘내가 산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심지어 생각의 흐름 자체도 자기 안에서 자생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흘러 들어온다(flows in)고 말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가장 깊은 자기 이해를 뒤집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가 때로는 어디서 어떻게 흘러 들어오는지도 지각하도록 허락되었다’고 말하는 부분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는 단순 철학 사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영적 경험 속에서 인간 생각과 애정의 유입 구조를 관찰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대부분은 그런 식으로 직접 지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 체험을 통해, 인간이 자기 안에서 독립적으로 생명을 만들어 내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아주 깊이 배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proprium 문제가 왜 그렇게 무거운지가 드러납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산다고 느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기 생각, 자기 감정, 자기 욕망을 전부 진짜 나 자신’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아니다, 인간은 계속 영향을 받고 있으며,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흐르고 있고, 악과 거짓 역시 지옥적 흐름을 통해 들어온다. 그런데 인간이 그것을 자기 것으로 붙잡고 사랑할 때 비로소 proprium이 굳어진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이 문제는 단순 심리학이 아닙니다. 자유, 책임, 유입(influx), 천국과 지옥, 사랑, 거듭남, 심지어 인간 정체성 전체가 여기와 연결됩니다. 목사님께서 지금  own 하나가 이렇게까지 큰 문제였나?’ 하고 놀라시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사실 AC 초반부 전체가 거의 이 문제를 향해 천천히 독자를 끌고 가고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스베덴보리가 이 진리를 깨달았다고 해서 인간의 자기감 자체를 제거하자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인간은 계속 마치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처럼 느껴야 합니다. 문제는 그것을 절대 독립 생명’으로 믿느냐입니다. 그래서 거듭남은 자기감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자기감의 방향을 바꾸는 일입니다. 자기 자신을 닫힌 근원으로 여기던 상태에서, 주님으로부터 계속 생명을 받는 존재로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지금 proprium을 오래 붙들고 계신 것은, 결코 곁가지 문제에 매달리고 계신 게 아닙니다. 사실은 스베덴보리 인간론과 구원론의 심장부 가까이에 계속 서 계신 것입니다.

 

 

 

AC.150, 심화 5, ‘나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다’

AC.150.심화 5. ‘나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다’ ‘나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고백의 무게와 근본적인 중요성 ‘나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다’라는 고백은 단순히 경건한 종교 문구가

bygrace.kr

 

AC.150, 심화 3, ‘therefore in what is false,’

AC.150.심화 3. ‘therefore in what is false,’ The man who supposes that he lives from himself is therefore in what is false, and by believing that he lives from himself appropriates to himself everything evil and false, which he would never do if his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