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And the man said, This now is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therefore she shall be called wife, because she was taken out of man [vir]. (2:23)

 

AC.157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이 그 안에 속 사람이 들어 있는, 겉 사람의 own을 뜻하였기 때문에, 고대에는 자기의 사람들, 곧 같은 집이나 같은 가족에 속한 사람들이나, 어떤 정도로든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라반은 야곱에게 말하기를, Inasmuch as “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 signified the own of the external man in which was the internal, therefore in ancient times all those were called “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 who could be called their own [proprii], and were of one house, or of one family, or in any degree of relationship. Thus Laban said of Jacob,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29:14) Surely thou art my bone and my flesh. (Gen. 29:14)

 

아비멜렉도 자기 어머니의 형제들과 외조부 집안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And Abimelech said of his mother’s brethren, and of the family of the house of his mother’s father,

 

청하노니 너희는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또 나는 너희와 골육임을 기억하라 하니 (삿9:2) Remember that I am your bone and your flesh. (Judges 9:2)

 

또한 이스라엘 지파들이 다윗에게 말하기를, The tribes of Israel also said of themselves to David,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삼하5:1) Behold, we are thy bone and thy flesh. (2 Sam. 5:1)



해설

 

AC.157은 앞 절의 선언, 곧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 ‘시적 표현이나 개인적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 고대 세계 전체에 통용되던 ‘영적, 사회적 인식의 언어’였음을 보여주는 단락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성경 안의 실제 역사적 용례들을 통해, 이 표현이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분명히 합니다.

 

핵심은 이 표현이 ‘자기의 사람들’(their own, [proprii])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단순한 친근감이나 애정 표현이 아니라, ‘같은 생명권, 같은 소속, 같은 정체성 안에 있다는 인식’을 뜻합니다. 즉 ‘너는 나와 하나의 own에 속한다’는 선언입니다.

 

라반이 야곱에게 한 말은 혈연적 사실을 넘어, 야곱을 자기 집안의 일부로 완전히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아비멜렉의 말 역시 정치적 설득의 언어이지만, 그 근거는 혈연적 자기 동일성에 있습니다. 다윗에게 한 이스라엘 지파들의 말도 마찬가지로, 왕과 백성이 단순한 계약 관계가 아니라 ‘하나의 몸과 같은 관계’임을 선언하는 말입니다.

 

이 모든 용례에서 공통적인 것은, ‘뼈와 살’이라는 표현이 ‘분리될 수 없는 결속’을 뜻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외적 연합이 아니라, own으로 묶인 연합입니다. 그래서 이 표현은 매우 강력합니다. 한편으로는 보호와 충성의 언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판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상태’를 뜻하기도 합니다.

 

이 점이 창2의 문맥에서는 결정적으로 중요해집니다. 앞 절에서 ‘여자’가 ‘아내’로 불리고, 이제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언어가 등장함으로써, 인간의 own은 더 이상 외부에 있는 어떤 것으로 취급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 자신’, 나의 집, 나의 몸, 나의 생명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것이 바로 다음 절(AC.158-159)로 이어지는 논리적, 영적 다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는 말은, 단순히 결혼제도의 기원이 아니라, ‘자기의 own과의 결합이 최종적으로 정당화되는 단계’를 뜻합니다. AC.157은 그 결합이 왜 그렇게 강력하고 되돌리기 어려운지를, 고대 언어의 실제 사용을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심화

 

1. ‘창29:14’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창29:14) Surely thou art my bone and my flesh. (Gen. 29:14) (AC.157)

 

 

이 구절이 AC.157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뼈와 살’이라는 표현이 단순 혈연관계를 넘어, 같은 본성과 같은 생명에 속한 결합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AC.157의 흐름에서 스베덴보리는 ‘뼈’와 ‘살’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계속 설명하고 있는데, 특별히 ‘뼈’는 보다 외적이고 지탱하는 진리 구조를, ‘살’은 그 안에 살아 있는 선과 affection을 뜻합니다. 따라서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는 말은 단순 친척 확인이 아니라, ‘너와 나는 같은 생명 질서 안에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창29:14에서 라반은 야곱을 단순 외부 손님으로 대하지 않고, 자기와 같은 혈육, 곧 자기 생명권 안에 속한 자로 인정합니다. 스베덴보리식 속뜻에서는 이것이 단순 가족 관계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야곱은 이후 교회의 외적 차원과 연결되는 인물인데, ‘뼈와 살’이라는 표현은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 사이, 곧 겉 사람과 속 사람 사이에도 결합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특히 AC.149 이후 스베덴보리는 계속 ‘뼈’와 ‘살’을 영적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에스겔의 마른 뼈 환상에서는 죽은 상태의 인간이 주님의 breath로 살아나는 모습이 나오고, 주님의 부활 장면에서는 ‘영은 살과 뼈가 없다’고 하심으로써, 신적 인성의 실제성과 충만함을 보여줍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뼈와 살’은 단순 육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 전체 구조를 뜻합니다.

 

그래서 AC.157에서 이 구절이 인용되는 이유는, 참된 결합은 단순 외적 접촉이 아니라 같은 선과 진리, 같은 생명 질서 안에 속하는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뼈’만 있으면 차갑고 딱딱한 구조에 불과하지만, ‘살’이 함께할 때 거기에 살아 있는 affection과 생명이 들어옵니다. 즉, 진리와 선의 결합이 완전한 인간을 이룹니다.

 

또 이 표현은 앞선 창2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와도 연결됩니다. 거기서도 핵심은 단순 육체적 동일성이 아니라, 서로 같은 생명과 본질 안에서 결합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라반의 말 역시, 말씀 전체의 상응 체계 안에서는 ‘같은 생명 안에 속함’, ‘같은 affection과 진리 안에서 연결됨’을 뜻하는 표현으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AC.156, 창2:23,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AC.156-159)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And the man said, This now is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therefore she shall be called wife, be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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